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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미동경소진첩

작성자
[도서관] [libweb@korea.ac.kr]
작성일
2010-05-03
조회
27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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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1703년(숙종29) 癸未년에 태어난 동갑내로서 뜻과 출처가 같은 사람들이 모임을 갖고 자손 대대로 잊지 않기 위하여 만든 초상화첩
 
 
<내용>
1703년(숙종29) 癸未년에 태어난 동갑내로서 뜻과 出處가 같은 사람들이 모임을 갖고 자손 대대로 잊지 않기 위하여 만든 7명의 초상화첩이고, 끝에는 1771년(영조47) 10월 상순에 쓴 兪彦述의 서문이 있다. 1帖. 筆寫本 彩色畵 .
  7명의 초상화는 참판 李翼鎭(1703-?) 판서 趙榮進(1703-1775) 참판 李奎采(1703-?) 영의정 韓翼謨(1703-?) 부사 宋晉欽(1703-?) 영의정 申晩(1703-1765)이고 끝으로 성명이 기록되지 않은 초상화는 명확하지 않지만 서문을 쓴 兪彦述(1703-1773)의 초상화로 추측된다. 
  유언술의 서문에서 동경소진첩을 만든 경위와 의의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우리 小眞帖 중의 사람들은 한 해에 태어났고 한 나라에 살며 어려서도 좋아하는 것이 같았고 장성해서도 숭상하는 것이 같았으며 升沈榮落에 出處가 같았고 酸함甘苦에 氣味가 같아 태어나면서 부터 노년에 이르기 까지 같지 않은 일이 하나도 없다. 15명이 30년을 하루 같이 지냈으니 마음이 같지 않으면 그럴 수 있겠는가 소진첩을 만들지 않을 수 없다. 그리하여 43세가 되는 1745년(영조21)에 만들기 시작하였으나 帖中의 사람들이 나이가 아직 젊어 혹은 벼슬하느라 분주하고 세상의 일에 빠져 소진첩 만드는 일을 하지 못하였다. 어언 수십 년 이래로 7명이 잇따라 사망하고 생존자는 다만 8명뿐이다. 마침내 生死에 마음이 움직여 각자 조그마한 초상화를 그려 소진첩을 만들려고 하였다. 소진첩이 완성되기도 전에 3명이 또 세상을 떠나 지금은 5명만이 백발로 만나고 있으니 알 수 없는 인생사 이와 같도다. 같은 해에 태어난 자는 죽는 날도 당연히 큰 차이는 없을 것이다. 15명에서 8명으로 8명에서 5명으로 줄었고 5명도 모두 나이 70여세이니 죽을 날이 멀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후일 세월이 흐르고 세대가 바뀌면 소진첩중의 자손들이 초상화를 보고 그 마음을 상상하는데 도움이 없지 않을 것이니 어찌 소진첩 만드는 일을 중지할 수 있겠는가. 8명의 초상화를 각각 이름 아래에 붙여 소진첩을 만들고 그 내용을 기록하여 서문으로 삼는다.” 
  서문에 의하면 8명의 초상화로 소진첩을 만들었다고 하였는데, 현재는 7명의 초상화로 만들어졌으니 상세한 내용은 알 수 없다.
  
 
 
 
<Abstract>
The portrait album of Lee Ik-jin, Jo Young-jin, Lee Gyu-chae, Han Ik-mo, Song Hum, Shin Man, and Yoo Eon-sool, who hold an important position in government together and are the age-fellows born in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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