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학교 세종학술정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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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해록

작성자
[도서관] [libweb@korea.ac.kr]
작성일
2010-05-03
조회
34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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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조선 성종 때의 문신이자 金宗直의 문인인 崔溥(1454-1504)가 제주도 敬差官으로 있던 중 부친상을 당해 고향인 나주로 향하다가 풍랑으로 표류하여 중국의 북경과 요동을 거쳐 귀국한 후 그간의 상황을 일기체로 기술한 책.
 
 
<내용>
조선 성종 때의 문신이자 金宗直의 문인인 崔溥(1454-1504)가 1487년(성종18) 11월12일 敬差官으로 제주도에 부임하여 근무하던 중 1488년 1월30일에 부친이 별세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閏1월 3일 제주를 떠나 고향인 나주로 향하다가 흑산도 부근에서 풍랑을 만나 온갖 고생을 하며 표류 한지 13일 만에 중국의 절강성 연안에 표착하였다. 그리고 항주에서 운하를 따라 북경과 요동을 거쳐 6월 14일 서울에 도착한 후 成宗의 명으로 그 간의 상황을 일기체로 기술하여 올린 책. 현재 이 자료는 明宗年間(1546-1567)에 甲寅字로 간행된 零本 1책(卷之一)이다.
  표해록 내용의 대략을 살펴보면 첫머리에 최부가 표해록을 쓰게 된 연유와 1487년(성종18) 9월17일에 제주도의 推刷敬差官으로 임명되어 11월12 일 제주에 도착한 사실을 기록하였다. 
  閏1월3일부터 16일까지는 부친상을 당해 제주를 떠나 고향인 나주로 향하다가 일행 42명과 함께 풍랑을 만나 표류하면서 겪은 일로, 일행과의 갈 등 추위와 굶주림 등으로 갖은 고생을 하였고 또한 물이 없어 오줌과 빗물을 받아먹었으며 12일에는 寧波府 지경에서 도적을 만나 식량을 빼앗기 고 매를 맞았으며 16일 牛頭의 外洋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그는 온갖 고난을 겪으면서도 喪主로서의 凡節과 소신을 잃지 않았다.
  17일부터 3월27일까지는 중국 관리를 만나 표류하게 된 사유를 밝히고 중국 대륙을 종단하여 북경으로 가면서 보고 듣고 느낀 갖가지 일들을 수록 하였고 3월28일부터 4월23일까지는 북경에 머무르며 중국인들과 문답한 내용과 경험한 일들을 수록하였으며 24일에는 북경을 떠나 란州와 요동을 거쳐 6월4일 압록강을 건넜고 의주에 이르기까지의 旅程과 중국의 海路 기후 산천 도로 官府 고적 풍속 민요 등 다양한 영역에 걸쳐 상세히 수록한 자료이다.
  일행 42명은 陪吏인 光州牧吏 程保 · 和順縣吏 金重 · 伴 李楨 · 羅州牧吏 孫孝子 · 濟州牧吏 李孝枝 · 鎭撫 安義 · 驛吏 崔巨伊山 · 奴子 2명 · 濟州 官奴 4명 · 護送人 金粟 등 9명 · 船軍 · 格軍 許尙理 등 20명이다. 
  
 
 
 
<Abstract>
A book of travels written in a diary-style by Choi Bu (1454-1504) in the age of King Sungjong, Joseon Dynasty. When he was in a government position in Jeju Island, the death of his father was led to his hometown, Naju to attend the funeral. However, due to heavy wind and waves he was on the drift around Beijing, Yodong in China for ages on the way home. Pyohaerok is about the travelogue of this drif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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