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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 | 1 | ▼a 淺川伯敎, ▼d 1884-1964 |
| 245 | 1 0 | ▼a 부산요와 일본 다완 / ▼d 아사가와 노리타카 지음 ; ▼e 최차호 옮김 |
| 246 | 1 9 | ▼a 釜山窯と對州窯 |
| 246 | 3 | ▼a Fuzan'yo to Taishuyo |
| 260 | ▼a 서울 : ▼b 어드북스, ▼c 2012 | |
| 300 | ▼a 186 p. : ▼b 삽화 ; ▼c 23 cm | |
| 536 | ▼a 본 도서는 부산문화재단 '2012 학예이론도서 발간지원사업'의 일부 지원으로 제작되었음 | |
| 650 | 0 | ▼a Pottery, Korean ▼z Japan ▼z Tsushima Island |
| 700 | 1 | ▼a 최차호, ▼d 1945-, ▼e 역 ▼0 AUTH(211009)12497 |
| 900 | 1 0 | ▼a 아사가와 노리타카, ▼e 저 |
| 900 | 1 0 | ▼a Asakawa, Noritaka, ▼e 저 |
| 945 | ▼a KLPA |
소장정보
| No. | 소장처 | 청구기호 | 등록번호 | 도서상태 | 반납예정일 | 예약 | 서비스 |
|---|---|---|---|---|---|---|---|
| No. 1 | 소장처 중앙도서관/제3자료실(4층)/ | 청구기호 738.0953 2012z1 | 등록번호 111667290 (16회 대출) | 도서상태 대출가능 | 반납예정일 | 예약 | 서비스 |
컨텐츠정보
책소개
일생을 조선 도자기 연구에 매진하여 '한국 도자기의 신'이라 불린 아사가와 노리타카의 저서 <釜山窯.對州窯>의 한글판. 80년 가까이 지속된 조.일 공동 생산 체제와 부산의 가마에서 만든 일본 막부의 도자기 등 감춰진 역사를 낱낱이 밝힌다. 부산요의 성립과 폐쇄, 운영체제, 생산된 다완의 목록뿐 아니라 조선과 일본 도공 사이의 외교적 마찰, 조선 도공의 애환 등의 기록을 다룸으로써 잊혀진 역사를 생생히 재조명한다.
다시 태어난 『釜山窯·對州窯』가 밝히는
도자기 역사의 불모지 부산의 재조명
일생을 조선 도자기 연구에 매진하여 ‘한국 도자기의 신(神)’이라 불린 아사가와 노리타카 선생의 저서 『釜山窯·對州窯』의 한글판! 80년 가까이 지속된 조·일 공동 생산 체제와 부산의 가마에서 만든 일본 막부의 도자기 등 감춰진 역사를 낱낱이 밝힌다. 부산요의 성립과 폐쇄, 운영체제, 생산된 다완의 목록뿐 아니라 조선과 일본 도공 사이의 외교적 마찰, 조선 도공의 애환 등의 기록을 다룸으로써 잊혀진 역사를 생생히 재조명한다.
☞ 출판사 서평
감춰진 역사에 주목하라, 도공의 숨결을 품은 부산요
한국의 도자기는 4000년이라는 유구한 역사를 지니며 그 우수성과 명성은 세계적으로도 유명하다. 역사적으로만 보아도 ‘도자기 전쟁’이라 불린 임진왜란을 통해 많은 도공이 일본에 끌려갈 정도로 당대 높은 수준을 자랑했다. 여기까지는 대다수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나 임진왜란이 끝난 후 일본이 부산 왜관에 가마를 지어 다완을 생산하게 했다는 점, 이후 일본 도공을 파견해 공동 생산 체제를 갖추었다는 점은 그간 역사 속에 묻혀 있던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도자기사를 가장 먼저 정리한 사람은 일본인 아사가와 노리타카 선생이다. 그는 조선 도자기에 매료되어 한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가마터 700여 곳을 정리하는 등 ‘한국 도자기의 신(神)’이라 불리며 도자기사를 새로 썼다. 일생을 도자기 연구에 매진한 결과 1930년 그간의 조사 내용을 종합한『釜山窯·對州窯』라는 책을 출간하였으나 지금껏 번역이 이루어지지 않아 정작 한국인들에게는 알려져 있지 않은 상태였다.
이 책은 그의 저서 『釜山窯·對州窯』의 한글판으로 부산요의 성립과 폐쇄, 운영체제 등을 다루며 잊혀진 역사, 특히 도자기사적으로 빛을 발하지 못했던 부산을 재조명한다. 조선 다완과 부산요, 대주요의 역사, 양국의 관계와 교류 등 본격적인 내용에 들어가기에 앞서 도기 연구 방법을 소개하고, 본 연구가 기초로 한 방식을 살핀다. 사료를 바탕으로 한 방법론적인 부분 이외에도 부주의나 개인적 이익에 현혹되지 말아야 함을 당부하지만, 특히 강조하는 사실은 일본 도기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먼저 조선을 알아야 한다는 점이다. 즉, 일본과 조선 공통으로 존재하는 부산요는 두 나라에서만 고유하게 창작된 순수 도기를 찾는 데 가장 핵심이 되며 이것이 바로 이 책의 집필 목적 중 하나임을 밝히고 있다.
80여 년간 유지한 조·일 공동 생산체제
그 과정과 방식은?
임진왜란을 통해 수많은 도공이 일본에 끌려갔지만,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갑자기 일본의 도자기 수준이 높아진 것은 아니었다. 이에 도쿠가와 막부는 부산에 가마를 만들도록 명령하고 소우케를 통해 견본을 보내어 조선 도공에게 도기를 만들도록 했다. 조선 도공의 입장에서는 주문이 들어오면 설명대로 제작하는 방식이었다. 이때 나온 다완이 ‘고혼(御本)’으로 명칭 자체에 견본이란 뜻이 있으며 고려 다완의 일종이다.
이후 조선의 기술을 습득함과 동시에 본인들의 취향에 맞는 도자기를 얻기 위해 1644년부터는 일본 도공을 번사(燔師)로 파견하였다. 이때 다완을 굽기 위한 재료인 백토, 약토, 황토, 필요한 도공, 화공 등을 함께 조선에 요구하였다. 이 과정에서 여러 차례 문제가 발생하였다. 매번 흙을 대량으로 요구하였으며, 전혀 생산되지 않는 원료를 요구할 때도 많았다. 특히 말썽을 일으키며 조선과 마찰을 겪은 인물로 야헤이타(松村彌平太)가 있다. 그와 관수의 논쟁은 본문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복잡한 사건을 몇 차례 반복하고 1717년 부산요는 끝내 문을 닫았으나 80년 가까이 부산에서 생산되어 일본으로 건너간 도자기들이 80년간 지속된 부산요의 역사를 고스란히 전해준다. 비록 끝까지 잘 마무리되진 못했지만, 최고로 인정받고 있는 이 시기 도자기들이 있기에 비교적 성공한 공동 프로젝트로 보아도 무방하지 않을까 한다.
21세기 한국과 일본의 교류증진을 위하여
잊혀진 역사, 감춰진 역사를 찾아내 세상에 드러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나 일본인의 입장에서 일본 도자기의 원류가 조선임을 밝혀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아사가와 노리타카 선생이 조선민족미술관(현 국립민속박물관)을 설립한 것도 모자라 한국 가마터를 조사하고 직접 도자기를 제작한 것만 보아도 그가 국경을 초월하여 행동한 지식인임을 알 수 있다. 한국인도 하지 못한 일을 해냈기에 우리에겐 더욱 뜻깊게 와 닿는다. 그의 결실 『釜山窯·對州窯』가 비록 80여 년이 지난 오늘에야 제대로 번역되어 새롭게 태어났지만, 그의 크나큰 업적과 결과는 지난 시간 아무런 의미 없이 존재한 것이 아니며 도공의 숨결을 품은 도자기처럼 더 커다란 의미를 내뿜기 위해 인내로 버티고 있었는지 모른다.
들어가기에 앞서 원저자와 번역자가 밝혔듯 이 책이 21세기 한국과 일본의 교류증진에 도움이 되길 바라며, 조선과 일본의 순수 제품을 밝히는 데 일조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정보제공 :
저자소개
아사가와 노리타카(지은이)
1884 ~1964년 1884년 山梨縣北巨摩郡甲村(현 北杜市 高根町)에서 출생 1906년 山梨縣 사범학교 졸업 1910년 『白樺』 창간 1913년 서울 남대문 공립심상소학교 근무 1914년 서울 서대문 공립심상고등소학교 근무 1922년 「이조 도기의 가치 및 변천에 대해」 발표, 조선민족미술관 주최 강연회에서 「이조 도자기의 역사」를 강연 1923년 경성 고등상업학교 강사(촉탁), 조선 요업사에 착수 1924년 조선민족미술관(현 국립민속박물관) 설립 1925년 계룡산·강진 등의 가마터 조사 1926년 제5회 조선미술전람회에서 그림≪항아리와 아이≫ ≪생물≫입선, 그림≪이조의 도기≫특선 1929년 조선 전국 가마터 369개소 조사 1930년 조선 전국 가마터 309개소 조사, 『부산요·대주요』 출판 1933년 전남 곡성에서 도자기 제작에 종사 1940년 이 무렵 수년 동안 회령요·곡성요·고폐요에서 도자기 제작 1946년 일본 귀국 1964년 千葉市에서 사망(향년 80세)
최차호(옮긴이)
chcho8843@hanmail.net 1945년 경남 고성에서 태어남. 2000년 현업을 정리할 때까지 일본 유학, 공직, 개인사업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침. 2001년부터 대마도를 70여 차례 방문하는 등 한·일 근세사와 왜관에 대한 연구와 집필활동을 하고 있음. 2003년 부산문화유산해설사회 초대회장 2003년 한국문화유산해설사회 초대회장 2006년 아메노모리 호슈 외교교류회 한국측 이사 2010년~2014년 현재 부산초량왜관연구회장 역서 『조선을 사랑한 아메노모리 호슈』 『부산요·일본다완』 등 출간
목차
목차 序文 = 4 옮긴이의 글 = 9 제1장 도기의 연구 및 본 연구에 대해 = 20 1. 도기의 양부(良否) 판단 = 23 2. 도기 제조상의 상식 = 25 3. 옛날 가마터의 연구 = 26 4. 역사적 문화 흔적과 도자기 파편의 연구 = 27 5. 역사적 문헌의 조사 = 28 6. 옛날부터 전해오는 확실한 것을 볼 것 = 28 제2장 조선 다완의 특징 = 34 제3장 대마도와 조선의 관계 = 53 제4장 부산의 왜관 = 80 제5장 부산요에 대하여 = 105 1. 부산요의 경로와 경과 = 105 2. 부산 번조소(燔造所) = 113 3. 번조소(燔造所)의 위치 = 115 4. 부산요의 도공 = 117 5. 부산요에서 사용한 태토 = 127 6. 왜관 관련 다완 = 132 7. 소우케(宗家)의 소장품에 대하여 = 139 제6장 도공 모산(茂山)의 이야기 = 154 제7장 대주요(對州窯)에 대하여 = 175 1. 대주요(對州窯) = 175 2. 대마도의 가마 흔적과 도공 = 177 1) 코우라 사라야마(小浦皿山) 가마 = 177 2) 쿠다(久田) 가마 = 178 3) 시카야키(志賀燒) 가마 = 179 4) 타테가메(立龜) 가마 = 180 5) 아수(阿須) 가마 = 181 6) 코우라(小浦) 가마 = 182 3. 대주요(對州窯)의 특징 = 182 4. 요시다 마다이치(吉田又市) 및 자손 = 18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