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머리말
출판에 즈음하여
제1장 好太王碑文字考 = 1
1. 제1면 제2행 15번째 자, 聿 = 3
2. 제1면 제2행 35번째 자, 제1면 제3행 2번째 자, 鼈 = 4
3. 제1면 제3행 41번째 자, 履 ; 제1면 제4행 2번째 자, 부 = 6
4. 제1면 제8행 23번째 자, 王 = 8
5. 제1면 제9행 6번째 자, 倭 = 10
6. 제1면 제9행 13번째 자, 海 = 10
7. 제1면 제10행 22번째 자, 閣 = 16
8. 제1면 제11행 40∼41번째 자, □□ = 17
9. 제2면 제3행 20번째 자, 殘 = 18
10. 제2면 제4행 9번째 자, 主 = 19
11. 제2면 제4행 25번째 자, 歸 = 21
12. 제2면 제9행 30번째 자, 拔 = 22
13. 제3면 제1행 27번째 자, 41번째 자, 辭, 潰 = 23
14. 제3면 제2행 13번째 자, 寐 = 25
15. 제3면 제3행 21∼24번째 자, 和通殘□ = 26
16. 제3면 제3행 35∼36번째 자, 躬率 = 27
17. 제3면 제5행 10번째 자, 확(穫) = 28
18. 제3면 제6행 34번째 자, 駭 = 29
19. 제3면 제7행 6번째 자, 處 = 30
20. 제3면 제9행 1번째 자, 民 = 31
21. 제4면 제1행 5번째 자, 七 = 31
22. 제4면 제2행 34번째 자, 二 = 33
23. 제4면 제2행 35번째 자, 看 = 35
제2장 호태왕비문을 통하여 본 주몽왕의 출신과 그에 의한 고구려 건국연대 = 37
1. 주몽의 인물과 그의 출신에 대하여 = 37
2. 주몽에 의한 고구려의 건국연대 = 51
3. 주몽건국 이전의 '고구려 소국'에 대하여 = 58
제3장 고구려 산상왕의 존재 여부에 관한 문제 -양통방 선생과 상론함- = 63
1. 호태왕비문에 기록된 '17세손' 문제에 관하여 = 64
2. 『삼국지』「위지」를 어떻게 볼 것인가 = 67
3. 고구려 왕조 세계(世系)에 관한 『삼국사기』의 기록은 정확하다 = 72
4. 산상왕 그사람이 확실히 있었다 = 75
《자료논문》 고구려에 산상왕 연우란 없었다 -『삼국사기』의 고구려 군주 세계에 관한 문제를 논함- / 양통방 = 83
제4장 호태왕비문의 '영락(永樂)' 연호에 대하여 = 93
제5장 호태왕비문 영락 5년의 비려에 대한 고증 = 111
1. 비려의 성질에 대하여 = 111
2. 비려의 위치에 대한 고증 = 118
제6장 호태왕비문 영락 8년조의 정벌대상에 대하여 = 131
1. 숙신, 백제를 정벌대상으로 보는 견해의 부당성 = 131
2. 영락 8년의 정벌대상은 '동예' = 137
제7장 호태왕비문 영락 17년조의 정벌대상에 대하여 = 143
1. 후연이 정벌대상이었다는 견해에 대하여 = 143
2. 영락 17년의 정벌대상은 백제와 왜이다 = 153
제8장 호태왕비문의 '동부여'에 대하여 = 161
1. 동부여에 대한 종래의 잘못된 견해를 비판한다 = 161
2. 동부여에 대한 고증 = 171
제9장 이른바 한반도 내의 왜지(倭地)설에 대하여 -후루다 선생과 토론함- = 191
1. 호태왕비문의 '倭人滿基國境'에 대하여 = 191
2. 『삼국지』동이전과 이른바 한반도 내의 왜지 문제 = 201
《자료논문》호태왕비의 사료비판 -북한과 중국의 학자에게 물음- / 후루다다께히꼬 = 211
제10장 후루다 선생의 논문 「왜지의 사료비판」을 읽고서 = 241
1. 이른바 '직접법의 문체'에 대하여 = 242
2. 이른바 '我', '吾'의 용자법(用字法)에 대하여 = 245
3. 이른바 '倭人滿(倭)國境, 潰破城池'에 대하여 = 249
4. '倭人在帶方東南大海之中'에 대하여 = 255
5. '韓在帶方之南 東西以海爲限 南與倭接'에 대하여 = 258
6. 이른바 '지명비정(比定)을 근거로 한 왜지말살론'의 방법에 대하여 = 262
7. 독로국의 위치 고증에서 제기되는 이른바 세 가지 필수조건에 대하여 = 265
8. 이른바 '천 리의 바다'를 사이에 두고 있다는 문제에 대하여 = 270
9. 구야한국이 왜에 소속되어양 한다는 문제에 대하여 = 275
《자료논문》 왜지의 사료비판 -중국 연변대학 박진석시의 비판논문에 대답함- / 후루다다께히꼬 = 283
제11장 호태왕릉고 = 327
1. 태왕릉을 호태왕의 능묘로 보는 견해에 대하여 = 327
2. 호태왕릉과 장군묘의 관계 = 333
3. 태왕릉의 묘주에 대하여 = 340
제12장 호태왕비문 가운데의 수묘인연호의 신분에 대하여 = 343
1. 수묘인연호의 신분을 노예로 보는 견해에 대하여 = 343
2. 수묘인연호의 전신 - 민(民), 가(賈), 인(人)을 분석 = 348
3. 수묘인연호의 신분에 대하여 = 356
부록 1. 호태왕비문에 대한 일부 탁본과 사진 = 363
1. 사까와(酒勾景信)쌍구분 = 365
2. 미즈다니(水谷悌二郞)구장본 = 367
3. 동경대학 문화연구소장본 = 379
4. 서울 국립중앙도서관장본 = 387
5. 『조선유적유물도감』탁본 = 389
6. 집안시박물관 진열실 탁본 = 397
7. 장명선(張明善) 탁본 = 399
8. 1976년에 임지덕(林至德)이 찍은 사진(1) = 407
9. 1976년에 임지덕(林至德)이 찍은 사진(2) = 413
10. 주운대(周云臺)탁본 = 415
부록 2. 호태왕비문에 대한 일부 학자들의 해석문 = 417
1. 三宅米吉의 해석문 = 419
2. 호태왕비문에 대한 초균덕의 필기 = 421
3. 미즈다니(水谷悌二郞)의 해석문 = 425
4. 박시형의 해석문(1) = 427
5. 박시형의 해석문(2) = 429
6. 왕건군의 해석문 = 431
7. 이형구의 해석문 = 435
8. 다께다(武田幸男)의 해석문 = 437
9. 『조선유적유물도감』의 해석문 = 439
10. 박진석의 해석문(1) = 441
11. 박진석의 해석문(2) = 4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