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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5 | ▼a (KERIS)BIB00001083407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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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90 | ▼a 897.83 ▼b 박지원 2007 | |
| 100 | 1 | ▼a 박지원 ▼g 朴趾源 , ▼d 1737-1805 ▼0 AUTH(211009)80851 |
| 245 | 1 0 | ▼a 지금 조선의 시를 쓰라 : ▼b 연암 박지원 문학 선집 / ▼d 박지원 지음 ; ▼e 김명호 편역. |
| 260 | ▼a 파주 : ▼b 돌베개 , ▼c 2007. | |
| 300 | ▼a 542 p. ; ▼c 22 cm. | |
| 500 | ▼a 부록: 1, 연암 박지원의 삶과 문학. -2, 인명 및 사항 해설. -3, 작품 원제 색인 | |
| 500 | ▼a 색인수록 | |
| 500 | ▼a 박영철 편 '연암집'에서 연암 박지원의 대표작 100편을 국역 엄선함. | |
| 700 | 1 | ▼a 김명호 ▼g 金明昊 , ▼d 1953- , ▼e 편역 ▼0 AUTH(211009)22452 |
| 740 | ▼a 연암집 | |
| 945 | ▼a KINS |
소장정보
| No. | 소장처 | 청구기호 | 등록번호 | 도서상태 | 반납예정일 | 예약 | 서비스 |
|---|---|---|---|---|---|---|---|
| No. 1 | 소장처 중앙도서관/제3자료실(4층)/ | 청구기호 897.83 박지원 2007 | 등록번호 111410335 (27회 대출) | 도서상태 대출가능 | 반납예정일 | 예약 | 서비스 |
| No. 2 | 소장처 중앙도서관/제3자료실(4층)/ | 청구기호 897.83 박지원 2007 | 등록번호 111410336 (22회 대출) | 도서상태 대출중 | 반납예정일 2026-06-22 | 예약 | 서비스 |
컨텐츠정보
책소개
연암 박지원의 작품 세계를 다채롭고 균형 있게 조감할 수 있도록 구성한 문학 선집. 김명호 교수가 우전 신호열 선생과 함께 번역한 <연암집>을 저본으로 하여 대표작 100편을 가려 뽑았다. 앞선 <연암집>이 학술적인 전문 번역을 추구했다면, <지금 조선의 시를 쓰라>는 보다 문학적이고 대중적인 번역으로, 일반 독자를 대상으로 펴낸 책이다.
연암의 소설 10편, 산문 75편, 시 15수, 도합 100편의 작품을 양식별, 시기별로 담았다. <연암집>에 실려 있지는 않지만 연암의 대표작으로 널리 읽히는 <열하일기>의 작품 6편도 함께 실었다. 산문 중에는 연암의 독창적인 문학론이 드러난 글들도 많다.
사상성보다는 문예성, 역사성보다는 현대성에 치중하여 수록작을 선정했다. 따라서 작가의 개성과 인간미가 진솔하게 드러나고, 인생의 보편적 주제를 다루며, 기발한 사유나 참신한 발상을 보여주는 작품들이 주를 이룬다.
작품마다 제목을 새로 붙이고 그 아래에 원제를 병기했다. 부록으로 '작품 원제 색인'을 두었고 작품 이해를 돕는 주석과 '인명 및 사항 해설', 상세한 주해도 함께 실었다. 말미에 수록한 '연암 박지원의 삶과 문학'이란 제목의 글은, 김명호 교수가 앞으로 집필할 예정인 <연암 평전>을 밑그림 삼아 쓴 것이다.
정보제공 :
저자소개
박지원(지은이)
조선 후기의 탁월한 문장가이자 실학자다. 박사유(朴師愈)와 함평(咸平) 이씨(李氏) 사이에서 2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16세에 처사 이보천(李輔天)의 딸과 결혼했다. 장인에게는 《맹자》를, 처삼촌 이양천(李亮天)에게는 《사기(史記)》를 배워 본격적인 학문을 시작했다. 처남인 이재성(李在誠)과는 평생의 문우(文友) 관계를 이어 갔다. 청년 시절엔 세상의 염량세태에 실망해 불면증과 우울증으로 고생했으며 이러한 성장 배경을 바탕으로 진실한 인간형에 대해 모색한 전(傳) 아홉 편을 지어 《방경각외전(放?閣外傳)》이라는 이름으로 편찬했다. 영조 47년(1771) 마침내 과거를 보지 않기로 결심하고 서울 전의감동(典醫監洞)에 은거하면서 홍대용, 이덕무, 박제가, 유득공을 비롯한 많은 젊은 지식인들과 더불어 학문과 우정의 세계를 펼쳐 갔다. 정조 2년(1778) 홍국영이 세도를 잡고 벽파를 박해하자 생명에 위협을 느끼고 황해도 금천군(金川郡)에 있는 연암협(燕巖峽)으로 피신해 은둔 생활을 했다. 연암이라는 호는 이 골짝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정조 4년(1780)에 삼종형(三從兄)인 박명원(朴明源)의 연행(燕行) 권유를 받고 정사의 반당 자격으로 북경에 가게 되었다. 이때 건륭 황제가 열하에서 고희연을 치르는 바람에 조선 사신 역사상 처음으로 열하에 가는 행운을 얻게 되었다. 연행을 통해 깨달음을 확대한 연암은 여행의 경험을 수년간 정리해 《열하일기》를 저술했다. 정조 10년(1786) 유언호의 천거로 음사(蔭仕)인 선공감(繕工監) 감역(監役)에 임명되었다. 정조 13년(1789)에는 평시서주부(平市署主簿)와 사복시주부(司僕寺主簿)를 역임했고, 정조 15년(1791)에는 한성부 판관을 지냈다. 그해 12월 안의현감에 임명되어 다음 해부터 임지에서 관직 생활을 시작했다. 이때 정조 임금이 문체를 타락시킨 장본인으로 《열하일기》를 쓴 연암을 지목하고는 남공철을 통해 순정한 글을 지어 바치라 명령했으나 실제로 응하지는 않았다. 정조 21년(1797) 61세에 면천군수로 임명되었다. 이 시절에 정조 임금에게 《과농소초(課農小抄)》를 지어 바쳐 칭송을 들었다. 1800년 양양부사로 승진했으며 이듬해 벼슬에서 물러났다. 순조 5년(1805) 10월 20일 서울 가회방(嘉會坊)의 재동(齋洞) 자택에서 깨끗하게 목욕시켜 달라는 유언만 남긴 채 세상을 떠났다. 선영이 있는 장단(長湍)의 대세현(大世峴)에 장사 지냈다. 박지원의 문학 정신은 ‘법고창신(法古創新)’이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옛것을 본받되 변화를 알고 새롭게 지어내되 법도를 지키라”는 의미다. 그는 문학의 참된 정신은 변화의 정신을 바탕으로 창조적인 글을 쓰는 데 있다고 생각했다. 비슷하게 되려는 것은 참이 아니며, ‘닮았다’고 하는 말 속엔 이미 가짜가 들어 있다는 것이다. 연암은 억지로 점잖은 척 고상한 글을 써서는 안 되며 오직 진실한 마음으로 대상을 참되게 그려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하여 그는 틀에 박힌 표현이나 관습적인 문체를 거부하고 자신만의 독특한 문체를 지향했다. 나아가 옛날 저곳이 아닌 지금 여기를 이야기하고자 했다. 중국이 아닌 조선을, 과거가 아닌 현재를 이야기할 때 진정한 문학 정신을 구현할 수 있다고 믿었다. 연암의 학문적 성취와 사상은 《열하일기》에 집대성되어 있다. 《열하일기》에서 연암은 이용후생의 정신을 기반으로 청나라의 선진적 문물을 받아들여 낙후된 조선의 현실을 타개하자는 주장을 펼침으로써 북학파를 대표하는 학자로 우뚝 서게 되었다. 연암은 《열하일기》 외에도 《방경각외전》, 《과농소초》, 《한민명전의(限民名田議)》 등을 직접 편찬했다. 연암의 유고는 그의 아들 박종채에 의해서 정리되었는데 아들이 쓴 〈과정록추기〉에 의하면 연암의 유고는 문고 16권, 《열하일기》 24권, 《과농소초》 15권 등 총 55권으로 정리되었다. 《열하일기》는 오늘날 완질은 26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연암의 작품은 대부분이 문(文)이며 시(詩)는 50여 편이 전한다.
김명호(옮긴이)
1953년 부산에서 출생했다. 서울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덕성여대 국문과와 성균관대 한문학과의 교수를 거쳐 서울대 국문과 교수를 역임했다. 정년퇴임 후 필생의 과제인 연암 박지원 평전과 환재 박규수 연구의 완성에 힘쓰고 있다. 저서로 『열하일기 연구』, 『박지원 문학 연구』, 『초기 한미관계의 재조명』, 『환재 박규수 연구』, 『연암 문학의 심층 탐구』, 『홍대용과 항주의 세 선비』 등이 있으며, 국역서로 『연암집』(전3권, 신호열 공역)과 『지금 조선의 시를 쓰라』(편역)가 있다.
목차
목차
책머리에 = 4
일러두기 = 14
제1부 소설
이야기 솜씨 좋던 민 노인(閔翁傳) = 19
한양 명물이 된 거지 광문(廣文者傳) = 32
광문의 후일담(書廣文傳後) = 37
양반이 되자 하니(兩班傳) = 42
신선을 찾아서(金神仙傳) = 48
말 거간꾼의 술책(馬?傳) = 55
똥을 치며 사는 은자(穢德先生傳) = 65
요절한 천재 시인 우상(虞裳傳) = 71
범이 선비를 꾸짖다(虎叱) = 88
남산골의 숨은 선비 허생(許生傳) = 102
진정한 열녀란(烈女咸陽朴氏傳 幷序) = 118
제2부 산문
서문
지금 조선의 시를 쓰라 (?處稿序) = 129
비슷한 것은 참이 아니다(綠天館集序) = 133
오직 참을 그릴 뿐(孔雀館文稿 自序) = 136
아름답고도 내실 있는 글(旬稗序) = 139
참된 문학은 어디에(自笑集序) = 143
말똥 경단인가 여의주인가(螂丸集序) = 147
글 잘 짓는 이는 병법을 안다(騷壇赤幟引) = 151
글에도 소리와 빛깔이(鍾北小選 自序) = 155
옛 글을 본받되 새롭게 지어라(楚亭集序) = 159
까마귀는 검지 않다(菱洋詩集序) = 164
잊어야만 성취하리(炯言桃筆帖序) = 168
상말도 알고 보면 고상한 말(愚夫艸序) = 171
멀리 중국에서 벗을 구하는 까닭(會友錄序) = 175
두메산골로 들어가는 벗에게(贈白永叔入麒麟峽序) = 180
놓쳐버린 고승을 그리며(楓嶽堂集序) = 183
왜 청나라를 배우자고 하는가(北學議序) = 187
일가 형님의 환갑을 축하하며(族兄都尉公周甲壽序) = 191
「홍범」은 읽기 어렵지 않다(洪範羽翼序) = 197
해인사의 모임에서 느낀 것(海印寺唱酬詩序) = 204
발문
도화동의 꽃구경(桃花洞詩軸跋) = 207
벗이란 제이(第二)의 나다(繪聲園集跋) = 211
어느 감상가의 말로(觀齋所藏淸明上河圖跋) = 215
기(記)
자기를 찾아나선 광인(念齋記) = 217
공(空)을 보아라(觀齋記) = 221
이름 좋아하는 이에게 주는 충고(蟬橘堂記) = 224
여름밤의 음악회(夏夜?記) = 229
눈 속의 측백나무 같은 선비(不移堂記) = 232
마음을 비우고 완상하라(素玩亭記) = 238
진솔한 나의 모습(酬素玩亭夏夜訪友記) = 242
금학동 별장의 조촐한 모임(琴鶴洞別墅小集記) = 248
제 몸을 온전히 보존하는 법(以存堂記) = 253
머리 기른 중을 찾아서(髮僧菴記) = 258
만년에 휴식하는 즐거움(晩休堂記) = 265
취해서 운종교를 거닐다(醉踏雲從橋記) = 268
통곡하기에 좋은 장소(好哭場) = 272
한밤중에 고북구를 나서며(夜出古北口記) = 277
하룻밤에 아홉 번 강을 건너다(一夜九渡河記) = 282
코끼리에 관한 명상(象記) = 287
대나무에 미친 사람(竹塢記) = 293
공작처럼 아름다운 집(孔雀館記) = 296
연꽃과 대숲이 있는 집(荷風竹露堂記) = 300
학사루에서 최치원을 그리며(咸陽郡學士樓記) = 304
서간문
이별을 아쉬워하며(答京之) = 308
저 살아 있는 새를 보라(答京之 之二) = 310
사마천(司馬遷)의 마음(答京之 之三) = 312
글은 홀로 쓰는 것(答蒼厓) = 314
도로 눈을 감고 걸어라(答蒼厓 之二) = 317
『천자문』이 읽기 싫은 이유(答蒼厓 之三) = 319
애주가의 반성(答?齋) = 320
고라니나 파리나 마찬가지(答某) = 322
교만을 버려라(與楚?) = 324
삼년상을 마치고(謝黃允之書) = 325
긴긴날 소일하는 비결(答南壽) = 329
참된 벗을 그리며(答洪德保書 第二) = 332
한 처녀의 의문사에 대한 소견(答巡使論咸陽張水元疑獄書) = 336
주린 백성을 구호하는 즐거움(答大邱判官李侯 端亨 論賑政書) = 338
안의 고을로 놀러오시오(與人) = 343
지기를 잃은 슬픔(與人) = 347
귀양살이하는 벗에게(答李監司 書九 謫中書) = 350
쓸쓸한 고을살이(上金右相書) = 354
수수께끼와 속담의 뜻(答應之書) = 359
오랑캐로 몰린 사연(答李仲存書) = 363
『열하일기』를 위한 변명(答李仲存書) = 366
비문(碑文)
참된 이치는 발 밑에 있다(塵公塔銘) = 374
맏누님을 사별하고(伯?贈貞夫人朴氏墓誌銘) = 378
고생만 하신 형수님(伯嫂恭人李氏墓誌銘) = 380
벗 홍대용의 죽음(洪德保墓誌銘) = 384
위대한 어리석음(癡庵崔翁墓碣銘) = 390
추도문
죽음의 공교로움(李夢直哀辭) = 397
산 자가 더 슬프다(兪景集哀辭) = 402
장인 어른의 영전에(祭外舅處士遺安齋李公文) = 406
술친구를 잃고(祭鄭石癡文) = 411
논설
옥새는 요망스런 물건이다(玉璽論) = 413
은나라의 인자 다섯 분(伯夷論 下) = 417
진품을 알아본 사람(筆洗說) = 423
제3부 한시
설날 아침에 거울을 대하고(元朝對鏡) = 431
새벽길(曉行) = 432
몹시 추운 날(極寒) = 433
산길을 가다가(山行) = 434
강변의 노래(江居?吟) = 435
작고하신 형님을 그리며(燕巖憶先兄) = 436
농삿집 풍경(田家) = 437
필운대의 꽃구경(弼雲臺賞花) = 438
압록강을 돌아보며(渡鴨綠江回望龍灣城) = 439
계륵 같은 관직(齋居) = 440
해오라기 한 마리(一鷺) = 441
총석정에서 일출을 보다(叢石亭觀日出) = 442
문학을 지망하는 젊은이에게(贈左蘇山人) = 447
산중에서 동짓날을 맞아(山中至日書示李生) = 453
해인사(海印寺) = 456
연암 박지원의 삶과 문학 = 468
인명 및 사항 해설 = 505
작품 원제 색인 = 53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