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남부의 작은 마을 루르몬트에서 네덜란드 시민으로 5년째 살고 있는 저자가 감칠맛 나는 글솜씨로 풀어 놓는 재미난 외국살이. 네덜란드어 한 마디 못 했던 평범한 한국인인 저자는 달랑 짐 가방 두 개 들고 덜컥 네덜란드의 삶으로 뛰어들었다. 삶에서 우러나오는 네덜란드의 진한 향기를 다양하게 음미할 수 있는 책이다.
무한 자유와 과잉 규제가 얽히고설킨 나라, 차별 금지와 평등이 헌법 제1조인 나라, 세계에서 어린이가 가장 행복하다는 나라 네덜란드. 국민 대다수가 제 삶에 흡족해하지만, 그럼에도 우울증을 앓는 사람이 백만 명을 넘는 모순적인 이 나라의 문턱에서 저자는, 이민자만이 느낄 수 있는 외국살이의 낯선 면모를 다양한 단어와 풍부한 문장력으로 생생하게 풀어 놓는다.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었다. 1부 '루르몬트 일상'에는 저자 주변의 소소한 사연들과 루르몬트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이 담겨 있다. 2부 '림뷔르흐 나들이'에는 동네 루르몬트를 벗어나 저자가 자주 나들이 가는 옆 동네 고장이 소개되고, 마지막 3부 '네덜란드 걷기'는 림뷔르흐를 벗어나 네덜란드 전 지역을 두루 거닐며 만난 특별한 풍경이 변주된다.
한국을 떠나 네덜란드 남부의 작은 마을 루르몬트에서
네덜란드 시민으로 5년째 살고 있는 저자가
감칠맛 나는 글솜씨로 풀어 놓는 재미난 외국살이
경계에 선 사람들만이 볼 수 있는 광경이 있다. 직접 경험하지 않고는 알 수 없는 일들이 있다. 이 책은 네덜란드어 한 마디 못 했던 평범한 한국인인 저자가 달랑 짐 가방 두 개 들고 덜컥 네덜란드의 삶으로 뛰어든, 흔하디흔한 외국 생활기라 여겨질 수도 있다. 그러나 단 몇 줄만 읽어 내려도 풍차와 튤립, 하이네켄과 반 고흐에 머무르던 우리 속의 네덜란드는 그 모습을 새로이 한다. 무한 자유와 과잉 규제가 얽히고설킨 나라, 차별 금지와 평등이 헌법 제1조인 나라, 세계에서 어린이가 가장 행복하다는 나라 네덜란드. 국민 대다수가 제 삶에 흡족해하지만, 그럼에도 우울증을 앓는 사람이 백만 명을 넘는 모순적인 이 나라의 문턱에서 저자는, 이민자만이 느낄 수 있는 외국살이의 낯선 면모를 다양한 단어와 풍부한 문장력으로 생생하게 풀어 놓는다.
네덜란드의 집을 얘기하려면 ‘헤젤러흐gezellig’라는 말을 짚고 가야 한다. ‘아늑한’, ‘쾌적한’, ‘기분 좋은’, ‘편안한’ 같은 좋은 뜻이란 뜻은 다 버무린 듯한 이 말은 네덜란드적 삶의 지표다. 현대적인 내부 장식의 카페는 헤젤러흐하지 않고, 알맞게 어둑한 조명에 낡은 나무탁자, 갈색 천장의 카페를 헤젤러흐하다고 여기며, 한길가에 들어선 대형 매장보다 몇 대째 내려오는 골목의 조그만 가게를 헤젤러흐하게 생각한다. 집에 대해서도 으레 ‘헤젤러흐’함이 제일가는 잣대다. 저마다 지닌 ‘헤젤러흐 미학’에 따라 누구라도 실내장식 디자이너같이 집을 가꾸고 산다. (29쪽)
숲 속을 걷다가 토니는, 저기서 잠깐 헤니턴하고 가자, 라며 벤치를 가리켰다. 털썩 앉아 가쁜 숨 헉헉 몰아쉬기는 ‘쉬어 가기’이지만, 헤니턴은 숨을 가다듬고 눈에 들어오는 자연과 햇살을 누리는 일이다. 새들의 말을 혹시 알아들을 수 있을까 귀 기울여도 보고, 산들바람이 노곤한 몸에서 나는 땀을 실어 가고, 나무 내음이 땀구멍으로 들고 나는 것을 바라보는 일이다. 헤니턴의 목적어는 햇살, 봄날, 갠 하늘, 자연, 일상, 소소한 것들, 지금 이 순간, 경치, 휴가 따위인데, 그 가운데 으뜸은 단연 ‘인생 그 자체’. 사는 맛을 즐기고 누리는 헤니턴은 흥청망청 재미 보는 일에는 쓰이지 않는다. 둘러보면 헤니턴의 목적어는 무궁무진하다. (187쪽)
저자가 선택한 말의 질감과 풍성한 글맛, 그리고 뛰어난 표현력을 통해 우리는 삶에서 우러나오는 네덜란드의 진한 향기를 다양하게 음미할 수 있다. 지정된 날짜에 언어학교 인터뷰를 하러 갔을 때 정작 공문을 보낸 담당자는 결근한 이야기, 인터넷 해지를 신청하고도 이 년이나 지난 후에 처리된 이야기, 정부에 민원 신청하고 나서 한 해 반쯤 뒤에 답변을 받은 이야기 등 독특한 네덜란드의 속살을 엿볼 수 있는 기회, 이방인이기에 들을 수 있는 제각각의 사연들이 다채롭게 펼쳐진다.
자신에게 솔직하게, 자기 방식으로 산다는 것의 의미
네덜란드에서 재발견한 내부로부터의 새로운 인생, 네덜란드식 인생 음미법
사람살이에 필요한 세 가지 기본 요소를 가리켜 ‘의식주’라 이르고, 그중에서도 가정을 꾸리고 살기 위해 있어야만 하는 것이 집이라면, 자신이 살 집을 마련하고 수리하는 삶은 그야말로 코앞에 들이닥친 현실일 것이다. 건축 일을 하면서도 정작 자신이 어떤 집에 살고 싶은지는 한 번도 그려 본 적이 없었던 저자는 네덜란드에 이르러 비로소 어떤 집에 살 것인지 생각하게 된다. 이는 집에 대한 고민인 동시에 한국에서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자기 자신을 재발견하는 일과 맞닿아 있다.
화장 안 한 민얼굴처럼 담백한 네덜란드 건물을 한결 화사하게 하는 것은 집마다 발코니에 내건 제라늄이나 나팔꽃 화분이다. 꽃이 없다면, 유리창을 캔버스 삼아 오브제처럼 놓인 앙증맞은 조각품이 없다면, 골목은 지루하고 싱거운 벽돌집 풍경에 그칠지도 모른다. 이런 존재미학은 도시 미관이나 마을 가꾸기 같은 공동체적 가치가 아니라 내면을 향해 있다. 남의 눈길이 아니라 나만의 그윽한 만족을 위해 날마다 쓰다듬고 매만지며 옷매무새를 살피는 것이다. (45쪽)
바다보다 낮은 땅 네덜란드, 그 척박한 공간을 개척해 일군 네덜란드인들은 집을 구심점으로 삼고 소중히 여긴다. 세상 저편에 얼마나 근사한 게 있는지보다 내 뜰에 뭐가 있는지가 더 중요하고 그로써 행복해하는 그들과 부대껴 살며 저자는 내부로부터의 삶의 속도와 밀도를 바꾸어 간다. 실제로 정원을 가꾸면서 내 마음속 정원에는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게 된다. 먼 곳을 꿈꿀 때는 먼저 자신을 돌아보아야 함을 깨달은 저자의 시선은 결국 스스로에 이르며 저자가 네덜란드 시민으로 적응해 가는 과정은 자아 찾기와 보폭을 같이한다.
아울러 『루르몬트의 정원』이 여타의 외국살이 이야기들과 차이를 보이는 것은 무엇보다 생활이 시작되는 보금자리, 바로 삶의 근원에서 출발한다는 점이다. 이 책은 사람살이 가장 내밀한 장소인 집에서 확장되어 나가는 공간적인 네덜란드 생활기이다. 집이 자리한 ‘우리 동네’ 루르몬트에서 출발한 걸음걸음은 루르몬트가 속한 주 림뷔르흐로, 나아가 네덜란드 전역으로 뻗어 나간다.
삶이 즐거워지는 발견, 네덜란드 들추기
크게 보면 살아가는 것은 하나의 여행이며 네덜란드로의 이주 또한 제법 긴 호흡의 여행이다. 그리고 새로운 여행들은 멈추지 않고 계속된다.
‘경관’이라는 뜻의 영어 단어는 ‘란드스합landschap’이라는 네덜란드 말에서 온 것인데 ‘땅’, ‘대지’라는 ‘land’와 ‘~스러움, 그 안에 담긴 성정’의 접미사 ‘-schap’이 만난 말이다. 16세기 네덜란드에 이 ‘란드스합’을 회화로 표현하는 장르가 유행했고, 여기에서 ‘풍경화landscape’라는 개념이 생겨났다. 네덜란드에서는 이 ‘경관’, ‘풍경’이라는 말을 꽤 자주 듣는다. ‘경관’은 ‘자연’을 바라보는 관찰자의 감정과 생각을 품고 있다. 그 마음결은 자연을 어떤 지향으로 손질해 가꾸어 내는 것으로 나아가서, 바라보는 대상은 자연뿐만 아니라 사람이 살아가는 모든 환경이 된다. ‘자연경관’, ‘문화경관’, ‘역사경관’, ‘도시경관’도 모조리 풍경이다. 말하자면 내가 보고 느끼는 경치가 풍경이고 경관이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란 사람 수만큼이나 헤아릴 수 없는 것이다. (210쪽)
제1부 ‘루르몬트 일상’에는 저자 주변의 소소한 사연들과 루르몬트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이 담겨 있다. 저자는 꽃 인심 넉넉한 가족들과 더불어 카니발과 여왕의날, 카페테라스 차지하기 계절 등을 보내며 더러는 밤늦게까지 이야깃거리가 끊이지 않는 파티를 벌인다. 제법 그럴듯하게 정원도 가꾸고 언어학교에서 외국인 친구들과 손짓 발짓 문화의 스펙트럼을 넘나들기도 한다.
제2부 ‘림뷔르흐 나들이’에는 동네 루르몬트를 벗어나 저자가 자주 나들이 가는 옆 동네 고장이 소개된다. 네덜란드에서 경치 좋기로 이름난 지방 림뷔르흐의 언덕에 위치한 오래된 도시 팔켄뷔르흐, 이회암으로 만들어진 도시에서 킬로미터마다 백만 길더의 공사비가 든 백만 철도를 탄다. 장미 묘목 20만 그루에 둘러싸여 장미 향기를 맡으며 사는 장미마을 로튐에 들르고 매듭 작품으로 뒤덮인 매듭마을 바를로로 잰걸음을 옮긴다. 마을의 집들이 모두 흰색으로 칠해진 하얀 마을 토른과 저자가 상상하는 유럽다움의 이미지에 꼭 들어맞는 네덜란드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마스트리흐트도 빼놓을 수 없다.
제3부 ‘네덜란드 걷기’는 림뷔르흐를 벗어나 네덜란드 전 지역을 두루 거닐며 만난 특별한 풍경이 변주된다. 네덜란드 최대의 국립공원이 있는 헬데를란트, 자연과 문화가 조화된 호허 펠뤼어 국립공원에서 예술과 상상력의 관계를 생각한다. 「진주 귀걸이 소녀」로 유명한 화가 페르메이르의 도시 델프트에서 그의 흔적을 뒤쫓고. 자유로우면서도 질서 정연한, 다양한 경직성의 운하 도시 암스테르담을 토박이인 척 뜨내기인 척 돌아다닌다. 고다치즈로 유명하고 최근에는 에라스뮈스로 시선을 모으는 하우다와 네덜란드를 떠나기 전까지 반 고흐가 살았던 누에넌을 걷는다.
지은이 _ 금경숙
“정말 아무것도 없어. 풀밭에 젖소들뿐이라고.”
과연 여기 네덜란드에 와서 보니 자전거 타는 사람들 다음으로 흔한 풍경이 풍차를 배경으로 풀 뜯는 소나 양이다. 재즈와 현대음악이 유명하다던 네덜란드 카페에서는 컨트리 음악이 울려 퍼진다. 내가 사는 소도시 루르몬트의 하나뿐인 영화관에는 영화 한 편이 한 달 내내 걸려 있다. 네덜란드 사람들 스스로 인정하듯 나라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시골 마을’이어서 어디까지가 도시고, 어디까지가 시골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먼발치에서 언뜻 보면 서로 어금지금한 시골 마을이지만, 들여다보면 똑같은 낱낱은 하나도 없다. 아무리 덩치 작은 마을이더라도 제 색깔을 내고 제 법칙대로 사는 모양은 볼수록 신기하다. 이 책을 써 가는 일은, 조그맣게 웅크린 시골 마을에 들어설 때마다, 이 사람들도 제 방식을 지니고 살아가는구나, 크게 이름나지 않은 존재라도 제 역사를 만들며 그 자리에 있구나, 하고 받는 위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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