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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90 | ▼a 728.60953 ▼b 2012 | |
| 100 | 1 | ▼a 이광노 |
| 245 | 1 0 | ▼a 중부 농촌 주택 : ▼b 충남 대덕, 충북괴산, 경북 금릉 : ▼b 무애연구소ㆍOB Seminar 중부 농촌 주택 최초ㆍ최후의 실측조사보고서 / ▼d 이광노 지음 ; ▼e 무애건축연구실, ▼e OB Seminar 현장조사 |
| 250 | ▼a 개정판 | |
| 260 | ▼a 서울 : ▼b 곰시, ▼c 2012 | |
| 300 | ▼a 287 p., 접지[4]장 : ▼b 삽화(일부천연색), 설계도 ; ▼c 31 cm | |
| 440 | 0 0 | ▼a 사라져간 우리 한옥 시리즈 ; ▼v 5 |
| 500 | ▼a 초판표제는 <중부지방 농촌주거>임 | |
| 710 | ▼a 무애건축연구실, ▼e 조사 | |
| 710 | ▼a OB Seminar, ▼e 조사 | |
| 740 | 2 | ▼a 중부지방 농촌주거 |
| 945 | ▼a KLPA |
소장정보
| No. | 소장처 | 청구기호 | 등록번호 | 도서상태 | 반납예정일 | 예약 | 서비스 |
|---|---|---|---|---|---|---|---|
| No. 1 | 소장처 과학도서관/Sci-Info(1층서고)/ | 청구기호 728.60953 2012 | 등록번호 121223203 | 도서상태 대출가능 | 반납예정일 | 예약 | 서비스 |
컨텐츠정보
책소개
‘사라져간 우리 한옥 시리즈’ 제5권. 충북과 충남, 그리고 경북에 걸친 중부 지방의 농촌 주택들을 실측 조사한 보고서로, 우리 한옥 연구의 기초 자료로 활용할 수 있도록 구성한 책이다.
농촌한옥의 평면실측을 비롯해 주민들을 직접 설문조사를 통해 농촌 한옥이 담고 있는 특색, 즉 그것이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를 조사했다. 또, 무애건축연구실이 1986~1987년 조사해 펴낸 《중부지방 농촌주거 실측조사 보고서》, 1988년 조사한 《경북 금릉 농촌주거 실측조사 보고서》 등 2권의 조사보고서를 한 권으로 엮은 것이다.
《중부농촌주택》, 1986년 무애건축연구실과 목원대학 김정동 교수팀이 공동으로 조사… 국내 최초?최후의 한옥 실측조사자료, ‘사라져간 우리 한옥 시리즈’ 전 5권으로 빛 보게 돼”
《중부 농촌 주택》은 충청 남북도와 경북에 걸친 중부 지방의 농촌 주택들을 실측 조사한 보고서다. 이 책은 ‘사라져간 우리 한옥 시리즈’의 다섯번째 시리즈물로, 1편 《가회동》, 2편 《파주ㆍ고성》, 3편 《서울, 옛 도시형 주택》, 4편 《남부 농촌 주택》에 이어 중부지방 농촌 주택들의 ‘속살’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조사 자료다.
《중부농촌주택》은 무애건축연구실이 1986~1987년 조사해 펴낸 《중부지방 농촌주거 실측조사 보고서》, 1988년 조사한 《경북 금릉 농촌주거 실측조사 보고서》 등 2권의 조사보고서를 한 권으로 엮은 것이다. 농촌한옥의 평면실측을 비롯해 주민들을 직접 설문조사를 통해 농촌 한옥이 담고 있는 특색, 즉 그것이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를 조사했다.
이 보고서는 1985년 7월에서 1986년 2월에 걸쳐 조사해 1986년 6월 무애건축연구실에서 출간한 ≪남부지방 농어촌주거 실측조사 보고서≫의 후속작업이다. 1986년 8월 서울대학교 무애건축연구실과 홍익대학교 윤도근(尹道根) 교수 연구실의 대학원생, 목원대학 김정동(金晶東), 이왕기(李王基) 교수와 학생들이 주축이 돼 주로 충청남북도 지역의 농촌을 조사한 연구결과다.
이 책은 중부지방과 경북 지방 농촌 주택 연구의 귀중한 실측조사 자료일 뿐만 아니라, 지금은 사라진 이 지역의 생활상을 그대로 담아낸 귀중한 사회문화적 사료(史料)다.
이광노 서울대 건축학과 명예교수는 “농경민족의 주거원형은 농가(農家)에서 찾을 수 있다고 본다”면서 “우리 민족의 주택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는 농촌주택을 연구하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했다.
“하나는 농촌주택이 갖고 있는 근원적 요소를 찾아내 장차 우리나라 농민들이 잘 살 수 있는 이상적인 농촌주택 건설을 계획하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우리나라의 국민주택을 보다 알차고 이상적인 것으로 하기 위해 모든 주택의 근본인 농어촌 주택을 조사ㆍ연구함으로써 우리나라 주택의 특색을 추출해 내려는 데 있다.”
지난 10월 8일, 이광노 서울대 명예교수는 26년 여 년만에 충남 대덕군 산내면 이사리와 충북 괴산군 감물면 오간리를 둘러봤다. 당시 조사했던 충청도 지방의 농촌 주택들은 강산이 두 번하고도 절반이나 바뀌는 동안, 행정구역상 지명이 바뀌었다. 충북 괴산군 감물면 오간리는 옛 이름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으나, 충남 대덕군 산내면 이사리는 대전시가 광역시로 확장됨에 따라 대전 시내로 편입돼 대전시 동구 이사동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러나 26년 만에 다시 찾은 오간리 마을은 다행스럽게도 옛 모습 그대로였다. 오간리는 100년 전만 해도 포구(浦口)가 있어 서울 마포로 쌀과 콩, 새우젓 등을 남한강 물길을 따라 실어 날랐다고 한다. 마을 서쪽 달천 벼량 위에 세워진 망화정(望華亭)도 그대로다.
단지 7~8년전 망화정이 위치한 야산에 산불이 나는 바람에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불타버린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망화정은 1704년(숙종 30년) 충북 괴산군 청천면 화양동의 사당인 만동묘(萬東廟)를 바라보는 정자라는 뜻이라고 한다. 만동묘는 임진왜란 때 조선을 도와준 데 대한 보답으로 명나라 신종(神宗)을 제사지내기 위해 지은 사당이다
충북 괴산의 오간리는 오간리 대로, 충남 대덕 이사리는 이사리대로 중부 농촌주택의 특색을 잘 보존하고 있었다. 대덕의 이사리는 대전시가 확장되면서 26년 전의 모습이 상당히 훼손됐을 것이라고 판단했으나, 원형을 잘 지켜가고 있어 다행이었다고 한다.
충남 대덕의 이사리(二沙里) 마을은 상사리(上沙里?윗사라니)와 하사리(下沙里?아랫사라니)로 나뉜다. 이사리 마을은 은진송씨의 집성촌이다. 특히 이사동은 1392년 이후 목사공 송요년(宋遙年)이 살기 시작한 이래 21개 파로 늘어나면서 은진송씨의 성역이 됐다고 한다.
현재 상사리 마을 입구에는 1,077기의 분묘들이 계장(繼葬)돼 있고, 분묘 가운데는 구한말 난곡학파의 태두 송병화(宋炳華) 선생과 조선시대 은진송씨의 3대 시인(송남수, 송몽인, 송희갑) 등 벼슬한 관리 78명이 묻혀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송시열과 함께 은진 송씨를 대표하는 성리학자 송준길(宋俊吉)의 후손인 송윤재(宋倫在)씨는 “하나의 씨족(은진 송씨)이 510년간 1,000기가 넘는 산소를 자연친화적으로 계장한 것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일”이라며 “분묘 외에 55만평(182만㎡)의 이 동네에 재실 16채, 학문을 강론하던 당우(堂宇)가 5채가 있는 등 장묘 문화의 자연박물관인 셈”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는 “10여 년 전 남부순환고속도로가 건설되면서 상사리 마을 일부가 포함돼 상당수 주민들이 이주했다”면서 “처음에는 마을 주민들이 고속도로 건설을 반대했으나, 토지와 작물 보상을 받아 대전으로 이주하려는 일부 주민들 때문에 결국 고속도로가 마을을 관통하게 됐고, 설상가상 시(市)에서 공장건설을 허가하는 바람에 마을 모습이 정상이 아니다”라고 안타까워했다.
이사리 계곡길을 따라 오르면 1962년 완공한 광영지(光影池)라는 저수지가 있다. 그 옆으로 봉강정사(鳳岡精舍)가 있다. 후손인 난곡 송병화가 공부하며 후학을 기르던 곳이다. 봉강정사 안에 눈길을 끄는 건물로 동로사(東魯祠)가 있다. 정조대왕이 송자(宋子)라 일컬은 우암 송시열을 비롯해 공자와 주자의 위패를 모신 곳이다.
마을 입구의 사우당(四友堂)은 송준길, 송시열의 제자격인 송국택(宋國澤)의 별당이다. 사우당 송국택은 김장생(金長生)의 문하에서 수학했고, 28세에 문과에 급제해 승지와 동래부사를 지냈다. 사우(四友)는 매화, 연꽃, 국화, 소나무를 말한다. 송국택의 직계 후손으로 19세기말 문신을 지낸 송병화의 조부가 만든 우물 ‘한천(寒泉)’도 길손의 발길을 붙잡는다.
구한말 규장각 직각(奎章閣 直閣)을 지낸 송용재(宋龍在)의 아흔아홉칸 대문은 보는이를 압도한다. 그러나 자물쇠로 굳게 잠긴 대문 사이로 집마당에 잡초만 무성하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서글픈 생각마저 든다. 이밖에도 구한말 3일천하로 유명한 김옥균(金玉均)의 생가터도 있다.
한편, 지난 6월 28일, 경북 금릉 구성면 상원리 원터마을도 다녀왔다. 구성면을 찾았을 때, 들판에 양파자루를 산처럼 쌓아놓는 등 양파수확이 한창이었다. 마을 진입로에 방초정(芳草亭)이 손님을 맞는다. 그러나 원터마을은 조사 당시 모습이 아니었다. 조사 당시 묵었던 슈퍼와 이발소는 사라졌고, 새마을공장(젓가락 공장)은 창고로 휑뎅그레 했다. 마을 뒷산에 날아들던 왜가리들은 몇 년 전부터 종적을 감췄다고 한다. 젊은이들이 떠나고 노인들만 남은 텅빈 농촌의 모습 그대로였다고 한다.
서울대 이광노 명예교수는 “이번 《중부농촌주택》 발간을 끝으로 1985년부터 1991년까지 무애연구소와 OB세미나가 6년에 걸쳐 서울과 농촌주택을 발로 뛰며 조사한 땀의 기록들이 ‘사라져간 우리 한옥 시리즈’ 전 5권으로 빛을 보게 됐다”면서 “중부의 농촌주택들이 이번 기회에 전통마을로 지정돼 체계적인 관리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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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이광노(지은이)
서울대 건축학과 명예교수는 1928년 경기 개풍에서 출생했다. 경복중학(경복고)을 졸업하고 1945년 4월,경성공업전문학교(서울공대 전신) 건축공학과에 입학했다. 그의 아호를 따 1955년 설립한 '무애 건축연구소'는 '김수근 건축연구소'와쌍벽을 이루면서 한국 현대건축을 선도했다. 1949년 이 교수는 21세의 나이에 대구시청사 현상설계를 시작으로, 6·25전쟁 기간 동안 국군충혼탑, 유엔전우탑 등을 설계하는 등청년건축가로서 촉망을 받기 시작했다. 대학 졸업 후 교통부·서울시 연구원, 한미재단 주택건설 실무자로 6·25 직후 건축계의 부흥을이끌었고, 1954년 도미(渡美)해 건축사무소 '아이엠페이(I.M.PEI)'에서 세계적 건축가 이오밍 페이(Ieoh Ming Pei)에게 세계 수준의 건축기법을전수받았다. 28세에 서울공대 건축과 교수로 부임한 그는 30여 년 동안 강단에서 후학들을 양성하는 한편, 건설부 건축위원, 문화재위원, 서울시 도시계획위원·건축위원, 대한건축학회장으로 일했다. 그가 1949년부터 1987년까지 '현역' 시절 남긴 작품은 170여 점에 달한다. 삼성빌딩(1964), 국회의사당(1968), 홍릉 한국과학기술연구원(1968), 서울 한국어린이회관(1969), 서울대부속병원(1970), 서울대 종합계획 및 기본설계(1972), 제주대(1976),영남대(1981), 아산재단 중앙병원 기본설계(1986), 오지호기념미술관(1997), S문화관(2002), 오페라극장(2008) 등이 그의 표작품이다. 특히 대한극장·크리스천아카데미 등은 근대건축을 충실하게 해석해 한국적으로 표현한 작품으로, 중국대사관·서울대 규장각도서관은전통미를 표현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교수는 대한건축학회 회장, 문화재위원회 부위원장,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 미국 건축가협회(AIA) 명예특별회원을 역임했고, 서울시문화상, 보관문화훈장, 대한민국 예술원상 등을 받았다. 저서로는 《건축구조》, 역서로는 《한(韓)의 건축문화》(후지시마 가이지로 저) 등이있다. 이 교수는 88올림픽경기장과 선수촌, 법원청사, 코엑스몰, 국립중앙박물관, 인천국제공항 등의 심사위원장을 역임했고, 1960~1970년대 한국건축사의 새 장을 연 무애건축연구소와 서울대 건축과를 축(軸)으로 현대 건축가 양성의 '본산(本山)'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1954년 도미해 미국 뉴욕 맨해튼의 아이엠페이(I.M.PEI) 건축설계사무소에서 근무할 때다. 주말을 맞아 뉴욕에서 가장 번화한 5번가(Fifth Avenue)와 브로드웨이(Broadway) 거리를 걸을 때면, 뉴욕의 정취가 한눈에 들어왔 다. 패션과 상업의 중심가로서, 고급 상점·백화점·뮤지컬 극장·영화관을 찾는 사람들로 늘 생기가 도는 거리였다.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102층, 높이 381m)을 제외하고는 록펠러센터·시립도서관·시립박물관·센트럴공원·워싱턴광장, 구겐하임미술관 등 5~6층 이하의 특색 있는 건물들로 채워져 있었다. 10년 후 다시 뉴욕을 찾았을 때, 나는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무분별한 도심(都心) 재개발로 5번가와 브로드웨이의 고풍스런 상점들은 모조리 자취를 감추고 50층 이상의 고층빌딩들이 그 자리를 메우고 있었다. 맨해튼섬 북동부의 흑인 거주지인 할렘에서 흑인들이 이주해 왔고, 환락가도 생겨났다. 브로드웨이의 추억이 사라지고 만 것이다. 미국의 도심개발 부작용은 1980년대 이후 우리나라에도 그대로 답습됐다. 광화문, 을지로, 명동, 종로 일대의 기념비적 건물들, 한옥들이 헐려 나갔다. 화신백화점, 구 상업은행 본점(한국은행 소공별관), 경성우체국, 조선호텔등 건축학적으로 가치 있는 근대적 건물들이다. 서울시청 뒤편의 무교동, 보문동, 옥인동, 누하동 등 전통 한옥촌들도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자국의 건축문화를 상징하는 건축물을 소중하게 보존하는 유럽 나라들을 보면 부러움을 금할 수 없었다. 현대화 물결 속에 사라지는 우리의 건축문화 유산은 지금 보존하지 않으면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1984년 대한건축학회 회장에 취임하면서 나는 사비를 털어 개화기부터 일제 식민시대, 해방 직후의 근대 건축물들에 대해 대대적인 조사 작업에 착수했다. 물론, 이 조사는 '무애건축연구소'에서 1985년부터 가회동을 시작으로 전국의 한옥마을을 대상으로 한 실측 조사의 후속 작업으로 추진되었다. 그 결과, 1987년 7월 <한국근대건축연구>가 탄생했고, 1988년 3월 <미지정문화재 건축물 실측조사 보고서Ⅱ>가 나왔다.
목차
목차 개정판을 내며 = 10 서문 = 17 Ⅰ. 조사의 개요 = 20 조사의 목적 및 내용 조사의 범위 대상마을의 선정 조사팀의 구성 조사의 진행 조사 대상 마을 위치도 조사가옥 일람표 Ⅱ. 상가리 마을의 개관 = 26 마을 개관 마을 배치도 : (전체도면) Ⅲ. 가구별 분석 = 32 설문 도면(단위 세대 및 안채) 사진 Ⅳ. 설문양식 = 1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