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성’의 관점에서 일제 말기의 문학을 재구성해보고자 한 시도의 산물이다. 1930년대 후반에서 해방직전까지의 시기를 일제 말기라는 시기의 문제성을 중심으로 다시 읽어 보고자 했고, 그 키워드는 표제에서 알 수 있듯이 ‘타자성의 위치’이다.
이 책의 1부에는 ‘여성’이라는 타자성을 중심으로 식민주의의 지배뿐 아니라 그에 대한 저항들도 다시 읽어 보려는 시도들을 모았다. 강경애, 지하련, 이선희, 최정희 등의 여성작가들과 이기영, 한설야 등의 대표적 프로문학 작가들을 다룬 글들에서 ‘여성’이라는 타자성의 위치와 그에 입각하여 독해 가능한 지배와 저항의 변증법을 밝혀 보고자 했다.
2부에서는 ‘디아스포라와 로컬리티’라는 주제로 ‘타자성’의 문제를 사유해 보고자 했다. 3부에서는 일제 말기의 최종 시기에 산출된 작품들을 중심으로 식민주의의 다각적 지배와 그 균열이 의미하는 바를 밝혀 보고자 했다.
기존의 주체들이 읽지 못한 문학을‘타자성의 위치’로 넓혀 문학 세계의 영역을 확장
『식민주의와 타자성의 위치』는 ‘타자성’의 관점에서 일제 말기의 문학을 재구성해보고자 한 시도의 산물이다. 1930년대 후반에서 해방직전까지의 시기를 일제 말기라는 시기의 문제성을 중심으로 다시 읽어 보고자 했고, 그 키워드는 표제에서 알 수 있듯이 ‘타자성의 위치’이다.
한정된 문학의 바깥을 읽다
주지하다시피 한국문학사는 지식인 남성들의 문학사이다. 그것은 단지 한국문학사의 주도층이 지식인 남성들이라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한국문학사가 지식인 남성들의 시선을 중심으로 구성되고 그들의 시선으로 한정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무슨 뜻인가. 문학이 담아낸 세계의 형상, 그리고 그것을 판단하는 가치, 그리고 그것이 진행되는 방향이 모두 지식인 남성들의 시선에 의해 결정된다는 뜻이다. 지식인이었고 지배담론을 해득하는 데 유리했으며 문학적 형상화를 완결지어야 할 주체들의 시선을 따라 세계를 해석하고 판단한 결과물로 문학이 이해되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타자성의 시선’이란 그렇게 한정된 문학 바깥을 읽기 위한 방법론이라 할 수 있다. 한정된 문학의 이해영역을 예컨대 여성, 빈민, 이민자 등의 타자들의 시선으로 넓혀 보려고 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지식인 남성 주체의 대척점에 이러한 타자들을 놓거나, 이 타자들을 서사를 주도하는 주체로 대치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기존의 주체들이 읽지 못했거나 주변화시킨 것들을 ‘타자성의 위치’로 더 넓혀 읽음으로써 문학이 다루는 세계의 영역을 확장하고자 하는 것이 이 책의 정확한 의도라고 할 수 있다. 예컨대 덜 형상화되거나, 혹은 충분히 탐구되지 못한 여성인물들을 통해 이기영의 『고향』과 한설야의 『황혼』을 다시 읽는 일. 그것은 식민지 현실을 형상화한 작품들이 충분히 말하지 못한 세계를 다시 발견하고 새로 발견된 세계를 중심으로 서사의 빈 곳을 상상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럼으로써 문학은 세계를 탐구하고 새로운 세계와 만나는 일들을 중단없이, 봉합없이 계속해 나갈 수 있게 된다.
일제 말기의 시기란 예외 없는 강압의 세계였고 전체주의적 폭력의 세계이기도 했다. 국책의 강요와 전쟁의 수행이 문학의 내용과 형식을 결정하는 시기라고 읽을 수도 있다. 저항하거나 협력하거나의 명료한 주체적 태도가 부각될 수밖에 없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강압과 폭력의 시대였으므로 명료히 발화될 수 없는 이야기들이 더 잠재되어 있었던 시기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자신의 말을 분명히 가질 수 없었던 타자들의 존재는 우회적으로 떠도는 말들을, 모호하게 서사의 이면으로 숨어 버릴 수밖에 없는 현실을 포기하지 않고 추적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일제 말기 김사량의 문학이 소중한 것은 이중어 글쓰기의 환경 속에서도 식민의 현실을 잊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하기에는 무언가 부족하다. 재현될 수 없는 서발턴의 고통을 끊임없이 주시함으로써 식민주의 탐구의 지평을 넓힌 것이야말로 김사량 문학이 지닌 진정한 가치라 할 수 있다.
타자들의, 타자들에 관한 이야기
이 책의 1부에는 ‘여성’이라는 타자성을 중심으로 식민주의의 지배뿐 아니라 그에 대한 저항들도 다시 읽어 보려는 시도들을 모았다. 강경애, 지하련, 이선희, 최정희 등의 여성작가들과 이기영, 한설야 등의 대표적 프로문학 작가들을 다룬 글들에서 ‘여성’이라는 타자성의 위치와 그에 입각하여 독해 가능한 지배와 저항의 변증법을 밝혀 보고자 했다.
2부에서는 ‘디아스포라와 로컬리티’라는 주제로 ‘타자성’의 문제를 사유해 보고자 했다. ‘디아스포라’라는 용어가 그리 흡족하지는 않지만 ‘식민주의’와 ‘타자성’이라는 한정을 통한다면 그 의미는 비교적 분명해진다. 김사량과 김석범의 문학은 ‘제국’의 지배가 강제한 이산의 산물이며 그로부터 가능한 저항의 끈질긴 증거물이기도 하다. 백신애 문학을 지방성의 관점에서 해명한 글은 타자의 위치가 만들어내는 복합적 리얼리티를 확인할 수 있게 한다.
3부에서는 일제 말기의 최종 시기에 산출된 작품들을 중심으로 식민주의의 다각적 지배와 그 균열이 의미하는 바를 밝혀 보고자 했다. 생산문학론과 재조 일본인 문학이란 식민주의 국책이 직접적으로 문학을 규정함으로써 형성 가능했던 문학이다. 표면적으로는 국책 이데올로기를 노골적으로 반영하고 있는 것 같지만 그 이면에는 발화되지 못하고 억압된 당대의 리얼리티가 있다. 작가들은 그것을 국책과 식민주의 옹호로 봉합했지만, 잔존한 리얼리티의 흔적을 통해 온전히 국민문학으로 통합될 수 없었던 식민주의 이데올로기의 균열을 점검할 수 있다.
식민주의의 문제는 그것이 우리 민족의 이익에 위배된다거나, 민족적 정체성을 말살했기 때문이라든가 하는 데만 있는 것이 아니다. ‘민족주의’에 대한 광범위한 거부감 때문에 피식민지의 ‘민족주의’가 깡그리 부정되어서도 안 되겠지만, 소위 민족적 한계 내에서만 식민주의를 비판하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도 알려진 상식이다. 한 국가가 정치적,경제적으로 다른 국가를 지배하고 그것이 정당화되는 논리, 강자에 의해 약자가 지배되고 희생되어도 좋다거나 심지어 그것이 당연하다는 논리 자체가 식민주의가 우리 역사에 남긴 가장 잔혹한 폐해이다. 누구도 소외되거나 배제되지 않고, 누구나 자신의 행복을 스스로 결정하고 실행할 권리를 존중받는 세계야말로 식민주의 극복의 이상적 목표라 한다면, ‘타자성의 위치’에서 탈식민을 기획하는 일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현실적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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