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지성 송호근이 소설가로 귀환한다. 그의 세 번째 장편소설 《연해주》가 나남출판에서 출간되었다. 시베리아의 칼바람 속에서도 뜨거운 삶을 살았던 한 사람의 이야기다. 바로 일제강점기, 연해주에서 독립군 사령관으로 활약했던 실존인물 김경천(金擎天, 1888~1942)이다.
당시 그의 활약상은 ‘백마 탄 김장군’이라는 전설로, 조선은 물론 러시아와 중국에까지 회자된 바 있다. 김훈 작가는 추천의 글 〈말과 총〉에서 “이 소설은 싸우던 싸움을 끝까지 싸우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모든 등장인물이 신민에서 시민으로 진화하려는 열망을 증언한다”고 썼다. 소설 《연해주》는 망국의 역사를 온몸으로 감당해야 했던 한 인물을 통 해 시대와 끊임없이 다퉈야만 하는 인간의 운명을 드러내고 있다.
이병주국제문학상 수상작가 송호근의 세 번째 장편소설
- 연해주는 혁명과 분열, 내란과 투쟁, 빨치산 의병대와 제국군대가 대평원의 평화로움을 한꺼번에 깨뜨리고 있는 역사의 현장이었다. (172쪽)
- “우리 시대, 나라가 처한 상황이 우리 운명을 결정한 것이오. 내가, 나 스스로 나의 운명을 결정하고 싶었는데, 거꾸로 된 거요. 나의 결정권을 시대에 넘겨줬다고나 할까, 그걸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은 나도 같소.” (233쪽)
첫 장편소설 《강화도》(2017)로 이병주국제문학상을 수상한 송호근이 《다시, 빛 속으로》(2018)에 이어 신작 《연해주》를 출간했다. 늘 냉철한 시선으로 우리 사회를 진단하던 그가 이번에는 뜨거운 이야기로 대한민국의 시원을 되돌아본다. 일제강점기, 연해주에서 활약한 김경천(金擎天, 1888~1942) 장군이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대한제국의 군인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나온 뒤 장교로 복무했다. 그러나 대한제국이 무너지던 당시 김경천은 ‘시민의 자유’에 눈떴고, 3·1만세운동을 현장에서 목격한 뒤 연해주로 망명해 항일 무장투쟁에 헌신한다. 당시 그의 활약상은 ‘백마 탄 김장군’이라는 전설로 러시아와 중국에 회자되어 〈동아일보〉 등을 통해 조선에까지 전해졌다. 그러나 국내 진군을 앞두고 소련 정부의 정치적 희생양이 된 그는 수용소군도에 수감, 그곳에서 생을 마감한다. 소설 《연해주》는 시베리아 칼바람 속에서도 열정적인 삶을 살았던 위인 김경천의 생애를 좇으며 당대의 현실과 부딪혀 좌절하는 한 인간의 운명을 박진감 있게 그려 낸다.
시민(市民)과 국민(國民)이 탄생한 시원 속으로
- 경천은 아찔했다. 고종이 여전히 군주로 남아 있는 경천에게 제권은 끝났고 민권이 시작됐다는 선언은 그의 가치관을 일시에 뒤집어 놓을 만큼 충격적이었다. 민권 시대가 개막됐다! 그 민권은 우리 것이다, 따라서 일본에 양여한 것은 무효다! 신규식의 포효가 들렸다. (100쪽)
- 평범함을 회복하기 위해 인생을 던졌다. 타인들의 평범함, 이웃들의 평범함이란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 그 속에서 평범하게 살아가고 싶은 소망은 왜 이렇게 어렵고 불가능한 것인가. 사랑하는 사람과 평화롭게 한평생 살아가는 것을 막는 이 역사란 대체 무엇인가. (349쪽)
대한제국 황제였던 고종의 서거로 ‘군주의 나라’에서 ‘국민의 나라’로 옮아가던 시기, 그 무렵 민권(民權)에 눈뜨며 탄생한 자유민은 김경천 혼자만이 아니었다. 소설 속에는 지청천, 최재형, 이상재, 정재관 등 당시 실존했던 인물들이 등장하여 국가에 대한 견해와 이념을 들려준다. 그리하여 갈림길 앞에선 그들의 선택은 독자에게 시대와 개인의 관계, 즉 운명에 대해 숙고하도록 한다. 섬세한 필치로 이 역사적 인물들을 되살려 낸 송호근은 작가의 말에서 “민권이란 시민과 국민의 출발점”(11쪽)이라고 썼다. 이야기 속 묘사되는 세태와 풍경이 ‘관원과 백성’에서 ‘시민과 국민’으로 진보하고자 했던 모든 개인의 투쟁을 대변한다. 소설 《연해주》는 김경천과 그의 시대를 경유해 현재의 대한민국을 구성하는 우리들, 바로 시민과 국민에 탄생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는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고 있는가?
- 경천은 손이 뒤로 묶인 채 광장 바닥에 쓰러진 백군 장교들을 바라봤다. 선혈이 눈을 적셨다. 붉은 피와 백색의 눈이 서로 스며 무엇을 만들어 내는가. 평화, 독립 혹은 무엇? 잔인한 광경이었다. 역사는 이토록 잔인하고 냉혹한 장면을 요구하는가? (257쪽)
- 혁명을 좇아 연해주로 온 것은 운명이었다. 한 시대가 자신의 인생 속으로 걸어 들어온 것도 운명이었다. 인간과 혁명이, 혁명과 시대가 운명과 맞닿아 지피는 포연(砲煙)에 길을 잃을지라도 내처 가야 했다. 인생은 꿈과 현실의 접전(接戰)이 그리는 궤적이다. (360쪽)
소설 《칼의 노래》, 《하얼빈》 등을 쓴 작가 김훈은 이 책의 추천사에 “싸우던 싸움을 끝까지 싸우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언어의 길이 끝나는 자리에서 사람들은 무기를 들었다. 모든 등장인물이 신민(臣民)에서 시민(市民)으로 진화하려는 열망을 증언한다”(추천의 글 〈말과 총〉 중에서)고 썼다. 그의 말처럼 송호근은 《연해주》를 통해 ‘제국’에서 ‘민국’으로 변화하던 세기, 그 요동치는 시대를 산 모든 이가 역사의 강을 온몸으로 건넜음을 도도히 그리고 담담히 그려 낸다. 학문이 미처 밝히지 못한 진실의 영역을 문학이 환히 비추고 있다. 소설 《연해주》는 ‘인간은 무엇으로 살고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끊임없이 답해 온 송호근이 내놓은 가장 성실한 대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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