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 간의 냉전이 최고조에 달했던 1958년, 에드가 후버가 이끄는 FBI는 미국 육군과 함께 소련을 기만하기 위해 소련측에 거짓 정보를 제공하는 이중스파이를 운영하기로 결정했다. 이 작전은 ‘충격작전’으로 명명되었다.
FBI가 이중간첩을 운영하기로 한 것은,
첫째 이중간첩과 접선에 나서는 소련 스파이들의 신원을 확인하고 이들 가운데 외교관 신분의 보호막 없이 활동하는 이른바 ‘불법스파이’망을 노출시켜 일망타진하고, 둘째 소련인들이 어떻게 미국인을 스파이로 포섭하고 운영하는가를 알아내며, 셋째 미군에 관한 소련의 정보에 어떤 공백이 있는가를 파악하고, 넷째 이중간첩을 통해 소련에 거짓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소련을 중대하게 기만하기 위한 기반을 확립하기 위해서였다.
FBI는 이러한 목적에 따라 육군과 주도면밀한 협조 아래 벨보어 육군 원자력 발전소 기지에 근무하는 육군상사 조 캐시디를 이중간첩 요원으로 선발, 워싱턴 주재 소련 대사관의 해군 무관 보좌관이라는 위장직책으로 워싱턴에서 정보활동을 벌이고 있던 GRU 소속 폴리카르포프 중령에게 ‘미끼’로 던져진다.
폴리카르포프는 백악관에서 두 블록 떨어진 YMCA에서 매주 목요일 취미로 배구경기를 하고 있었다. 캐시디는 바로 YMCA의 배구 동호인으로 폴리카프포프 앞에 미끼로 던져진 것이다. 그때가 1959년 봄이었다. 캐시디가 YMCA 배구 동호인 클럽에서 배구를 시작한 지 5개월이 지난 1959년 8월 초순 마침내 폴리카르포프가 미끼를 물었다. 전부터 순진하게 보이는 캐시디 상사를 눈여겨보던 그가 저녁 식사를 함께 하자고 제의한 것이다.
이때부터 1979년까지 무려 21년 동안 캐시디는 ‘돈에 팔려 조국을 배신한 첩자’로 위장하면서 소련에 거짓 정보를 제공하는 이중간첩으로 활동하게 된다. 이 기간 동안 캐시디를 담당한 소련군 GRU 장교만도 6명이나 된다. 그들은 모두 워싱턴 주재 소련 대사관과 뉴욕의 소련 유엔대표부 소속으로 위장한 정예 스파이들이었다. 물론 캐시디가 소련에 제공한 정보 가운데는 치명적인 신경가스에 관한 정보처럼 부분적으로 사실인 것도 있었다. 소련이 이중간첩이라는 의심을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진짜 정보도 제공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스파이 세계에서 상대를 기만하기 위해 건네지는 정보는 흔히 ‘먹이’로 통한다. 캐시디가 소련에 넘겨줄 ‘먹이’는 미국 국방부 안에 설치된 비밀위원회의 면밀한 심사를 거쳐 최종적으로는 합참의장의 승인을 받아 확정된다. 이러한 ‘먹이’ 가운데는 치명적인 신경가스 개발 계획과 연구상황, 미군의 기지 및 배치상황 같은 특급비밀에 속한 것도 포함되었다.
물론 소련에 넘겨준 신경가스 정보 가운데 일부는 사실이었지만 신경가스 자체의 결함 때문에 무기화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내려진 것이었다. 미국은 소련을 헛고생시키기 위한 기만작전의 일환으로 이러한 정보를 소련에 제공했다. 이중간첩 작전을 수행하면서 미국은 해당 기관간의 업무분담을 명확히 함으로써 갈등과 마찰의 소지를 없애려고 노력했다. 즉 육군은 ‘먹이’를 제공하고 요원 운영 및 관리는 FBI가 책임지도록 한 것이다.
충격작전이 진행되면서 FBI가 당초 의도했던 대로 외교관 신분의 보호막 없이 활동하는 ‘불법스파이’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미네소타 대학 교수인 로페즈 부부가 바로 그들이다. 스파이 역사에서 이런 종류의 불법스파이가 수사기관에 포착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FBI는 로페즈 부부를 감시하기 위해 온갖 첨단장비를 총동원한다. 그 가운데는 미 항공우주국(NASA)이 달 착륙 당시 사용했던 초소형 최첨단 비디오 카메라도 들어 있다. 소련측도 캐시디에게 오늘날 휴대용 스캐너의 원조격인 초소형 롤오버 카메라와 마이크로도트, 투명글씨를 쓰도록 되어 있는 카본종이와 같은 첨단 스파이 장비를 제공했다.
캐시디와 소련측은 이들 장비와 비밀문서들을 은박지로 둘러싸고 그 위에 석고를 발라 ‘가짜 돌’처럼 만든 다음 워싱턴과 뉴욕 시내의 미리 지정해 놓은 드롭사이트에 떨어뜨려 상대방이 회수하는 방식으로 접선했다. 이런 방식은 수사기관이 접선 장면을 직접 포착할 수 없도록 하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FBI는 이중간첩 캐시디로부터 사전에 드롭사이트에 관한 정보를 모두 듣고 있었으므로 캐시디가 떨어뜨려 놓은 가짜 돌을 소련 요원이 회수하는 장면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캐시디는 이중간첩으로서 미국정부에 헌신한 공로로 1974년 2월 2일 수훈 훈장을 받는다. 이 훈장은 당초 닉슨 대통령이 직접 수여할 예정이었으나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사임을 향해 치닫고 있던 닉슨은 그럴 만한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훈장은 닉슨을 대신해 아브람스 육군 참모총장이 수여하게 된다.
그러나 훈장 수여식은 비밀로 행해지고 캐시디에게 수여된 훈장은 수여식 직후 회수되어 국방부에 보관된다. 미국정부는 캐시디가 훈장을 받았다는 사실이 외부에 알려짐으로써 그가 이중간첩이라는 사실이 노출되어 현재 진행 중인 충격작전이 수포로 돌아갈 것을 우려한 것이다. 캐시디는 충격작전이 끝나갈 무렵인 1980년 9월 FBI 윌리엄 웹스터 국장으로부터도 감사장을 받는다.
소련의 불법스파이 로페즈 교수 부부를 공중감시하던 FBI 소속 수상비행기가 여름 폭풍을 만나 추락해 두 명의 요원이 사망한다. FBI는 이 사건을 계기로 로페즈 부부를 체포해 재판에 회부하려고 한다. 그러나 FBI가 로페즈 부부를 감시하면서 동원한 불법적 수단, 즉 불법도청 등이 재판과정에서 논란이 될 것을 우려해 법무부는 그들의 체포를 허락하지 않는다. 결국 FBI는 로페즈 부부가 비행기를 타고 그들의 나라인 멕시코로 돌아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정보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