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 책은 왜 썼는가?이 책은 미군의 노근리 양민 학살사건이 국제법을 위반한 대형 인권유린 사건임을 전세계에 알리고 그것을 해결하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이것은 민간인들이 미국에 대해 잘못을 지적하고 정당한 요구를 제기한 첫 번째
운동이었다. 노근리 운동 이전에는 학생운동 등에서 이념적인 반미운동은 있었지만, 대개는 피해를 입어도 미국이 두려워 또는 미국에 은혜를 입었는데 감히 그럴 수 없다고 해서 정당한 요구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노근리 운동은 미국의 잘못을 당당하게 지적하고 항의하는 시민운동의 효시였다고 할 수 있다.
아울러 이 책에는 저자의 현장체험과 역사의식이 살아 숨쉬고 있으며 끈끈한 동족애와 생명존중 사상이 담겨 있다. 그리고 과거의 아픔에 붙잡혀만 있지 않고 이를 극복하는 애틋한 의지와 조국의 푸른 미래를
바라보는 신선한 사고와 시각도 엿볼 수 있다.
노근리 사건은 아직 매듭이 지어지지 않았다. 사건이 발생한 지 52년이 지났고 1960년에 첫 소청을 넣은 지 42년이 경과했지만, 사건의 정확한 진상은 밝혀지지 않았고 학살의 책임자도 찾아내지 못했으며
손해배상도 받아 내지 못했다. "노근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래서 이 책을 썼다. 노근리는 아직 살아 있다. 현재 진행되고 있다. 아니, 국제질서가 전쟁 없는 평화의 질서로 바뀔 때까지 노근리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2. 이 책은 무슨 내용을 담고 있는가?1) 노근리 문제가 국제적인 사건으로 이슈화되는 과정과 현재의 진행상황을 그 동안 공개되지 않은 사건과 함께 세밀하게 그린 논픽션이다.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유감표명 성명서를 받아 내는 과정은
미국정부와의 '총성 없는 한판의 전쟁'이었다.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니었다. 지난한 과정의 피와 땀의 열매인 것이다.
2) 미국정부는 유감만 표명하고 적당히 이 사건을 덮어 버리려고 했다. 노근리 사건 희생자 추모비가 아닌 한국전 민간인 피해자 전체를 위한 추모비 건립과 약간의 장학금 지급으로 한국전쟁 기간 동안
남한에서 벌어졌던 양민 학살사건 60여 건을 모두 덮어 버리려고 했다. 한국 역사의 진실을 밝히고 평화와 인권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서 미 의회에서의 청문회를 열거나 미국 법정에서 재판을 해서라도 반드시 진상이
규명되고 손해배상까지 받아 내야 하는 과제가 남아 있다.
3) 노근리 사건이 국제적인 사건이 된 것은 AP의 보도 덕분이었지만, 그 이면에는 '노근리 미군 양민학살사건 대책위원회'의 피나는 노력이 있었다. 정은용 대책위원장의 20여 차례에 걸친 손해배상 신청,
{그대, 우리의 아픔을 아는가}라는 실화소설의 출간, 50년 전 사건 직후 보도된 노근리 사건 관련 <조선인민보> 기사 발굴, 미 국립문서보관소 등에서의 증거자료 발굴, 매스미디어를 통한 홍보작업 등
노근리대책위의 피나는 노력이 AP의 보도가 있게 한 원동력이 된 것이다.
4) 노근리대책위 중에서도 정은용 위원장과 그의 아들 정구도 대변인의 활약은 눈부셨다. 이들이 없었다면 노근리 사건도 세상에서 빛을 보지 못하고, 피해자들도 세상 잘못 만난 것을 탓하며 쓸쓸히 죽어 가야
했을 것이다. 실제로 미국과의 싸움이 불가능하다고 여겨 참여를 회피하던 노근리 피해자들을 조직해서 노근리대책위를 만들고, 미국과의 싸움에서는 무엇보다도 신뢰할 수 있는 공식문서가 중요하다고 보고 증거자료 발굴에
몰두했으며, 미국은 여론의 영향력이 크다는 점에 착안해 탁월한 매스컴 홍보작업을 벌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들 부자는 미국정부에 대해 주눅들지 않고 항상 당당하게 일해 왔는데, 이 점은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정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5) 이들이 싸우는 방식은 기존의 운동권 방식과 전혀 달랐다. 미 국립문서보관소, 국회도서관 등에서 사건 관련 자료를 찾고, 이것을 보도자료로 만들어 언론사에 배포하고, 자료집을 만들고, 기자회견을
열고, 미 육군성 장관이나 주한 미대사를 면담하고, 변호사를 선임해 법논리 싸움을 벌이는 등 새로운 운동양식을 만들어 냈다고 할 수 있다. 완전히 사회의 여론과 공론에 의존하는 방법을 쓴 것이다. 항의시위라고는
두세 차례밖에 하지 않았다. 자기 사무실이 없어 정은용 위원장의 대전 자택과 정구도 대변인의 직장이 사무실이었다. 그것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6) 이들 부자에게는 작은 소망이 하나 있다. 사건이 해결되고 나면 노근리에 작은 기념관을 하나 짓고 다시는 전쟁이나 양민학살, 인권유린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사람들에게 전해 주고 싶다는
것이다.
※ 의정부 여중생 장갑차 압사사건과 노근리 사건의 같은 점과 다른 점은?1) 같은 점
① 피해자들은 분명히 미군에 의해 목숨을 잃었는데 책임질 가해자는 아무도 없다.
② 미국정부는 오만하게 책임을 부인하다가 여론에 떠밀려 하는 수 없이 대통령이 유감을 표명했다. 그런데 그것도 손해배상 등의 법적 책임을 동반하는 사과(apologize)가 아니라 윤리적으로만 미안하다는
뜻을 나타내는 깊은 유감(deeply regret)을 표명했을 뿐이다.
③ 한국정부는 국민을 대신해서 미국정부와 교섭하는 게 아니라, 미국의 눈치만 보고 미국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며, 자국민을 위해서는 일하지 않는다. 그래서 결국 피해자들은 나라 없는 백성의 설움을 절감하게
된다.
④ 한국 언론은 미국 대통령의 유감표명을 사실상의 사과 또는 사과표명으로 표현함으로써 미국의 행위에 황공하다는 입장을 보이거나, 사과와 유감의 차이도 모르는 무식함을 드러냈다.
⑤ 국민들은 인종편견을 가지고 한국민을 비하하며 한국민의 자존심을 짓밟는 미국정부에 대해 분노해 거족적으로 항의를 표시했다.
⑥ 두 사건 다 소파 개정으로 이어졌다. 2년 전 2000년의 소파 개정은 노근리 사건뿐 아니라 매향리 문제 등 많은 요인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지만, 노근리 문제도 그 중 중요한 요인이었다. 이번 여중생
사건도 다시 개정된 소파의 재개정으로 이어지고 있다.
⑦ 두 사건 다 현재 진행형이다. 노근리도 끝나지 않았고 여중생 사건도 끝나지 않았다. 책임자를 밝혀 내고 손해배상을 받아 내며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한미 소파 개정 등 항구적인 조치가
취해질 때 이 두 사건은 종결될 수 있는 것이다.
⑧ 한국정부는 미국에 대해 비굴하게 저자세를 보여 한국이 주권국가인가 의심하게 했지만, 한국 국민들은 미국정부에 대해 당당하게 정당한 요구를 제기함으로써 우리 국민의 아이덴티티를 확실하게 보였다.
⑨ 여중생 압사사건에서는 미선이와 효순이가 죽었다면, 저자의 아버지 정은용 노근리대책위원장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두 살배기 딸 구희와 다섯 살 난 아들 구필이를 잃었다.
2) 다른 점
① 노근리 사건에서는 1950년 7월에 미군기의 기총소사와 무차별 기관총 사격으로 대부분이 노인과 어린이인 약 400여 명이 학살을 당했다면, 여중생 압사는 미군의 장갑차에 꽃다운 나이의 두 여학생이
깔려 죽은 사건이다.
② 여중생 사건은 즉각적으로 국민의 공분을 일으켜 바로 항의시위로 이어졌다면, 노근리 사건은 50년 동안 피해자들이 어렵게 투쟁을 해 2001년 1월에야 겨우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유감표명을 받아
냈다.
③ 노근리 사건은 국제적인 냉전질서가 자리를 잡아 가고 있는 6 25전쟁중에 일어났다면, 여중생 사건은 탈냉전시대에 일어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정부와 미국정부는 예나 지금이나 똑같이 한국민을
무시하는 사대주의와 대국주의를 보이고 있다.
저자 소개정구도· 대전고등학교 졸업
· 한남대학교 졸업
· 한남대 대학원 경영학 박사
· 한국소비자교육원 정책자문위원 역임
· 한국전력공사 자금부장대리 역임
· (주)기독교TV 사업국장 직무대행 역임
· 노근리 미군 양민 학살사건 대책위 대변인
· 광운대학교 경영학과 겸임교수(경영학 박사)
· 지우 국제특허법률사무소 경영고문
주요 논문 및 저서
· {노근리사건의 진상과 교훈}(공저), 논문집, 도서출판 두남
· {주한미군문제 해결운동사: '노근리에서 매향리까지'}(공저), 깊은 자유
· {벤처기업의 창업과 경영}(2000), 도서출판 두남
· {글로벌 시대의 콘슈머리즘}(1999), 도서출판 나남
· {전자상거래 관련 법규해설}(2000), 세종기술연구소
· "상표확장의 희석효과에 관한 실증적 연구"
· "한국 전력산업의 전략적 마케팅에 관한 연구" 외 5편
정보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