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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역)우복집. 1

(국역)우복집. 1 (6회 대출)

자료유형
단행본
개인저자
정경세, 鄭經世, 1563-1633 정선용, 鄭善溶, 1957-, 역
서명 / 저자사항
(국역)우복집. 1 / 정경세 지음 ; 정선용 옮김.
발행사항
서울 :   민족문화추진회,   2003.  
형태사항
442, 120 p. ; 25 cm.
ISBN
897977446X 8979774451 (세트)
일반주기
권말에 원문영인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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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 ▼a 897.83 ▼b 정경세 우 ▼c 1
100 1 ▼a 정경세, ▼g 鄭經世, ▼d 1563-1633 ▼0 AUTH(211009)126050
245 2 0 ▼a (국역)우복집. ▼n 1 / ▼d 정경세 지음 ; ▼e 정선용 옮김.
260 ▼a 서울 : ▼b 민족문화추진회, ▼c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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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6 ▼a 이 책자는 정부의 지원으로 발간된 것임.
700 1 ▼a 정선용, ▼g 鄭善溶, ▼d 1957-, ▼e▼0 AUTH(211009)48120
950 1 ▼a 가격불명

소장정보

No. 소장처 청구기호 등록번호 도서상태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No. 1 소장처 중앙도서관/제3자료실(4층)/ 청구기호 897.13 정경세 우a 1 등록번호 111287638 (6회 대출) 도서상태 대출가능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B M
No. 2 소장처 중앙도서관/민족문화연구원/ 청구기호 897.83 정경세 우 1 등록번호 192034851 도서상태 대출불가(자료실)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M

컨텐츠정보

목차


목차
해제
일러두기
우복집 제1권
 사(辭)
  귀거래사에 차운하다(次歸去來辭). 신축(辛丑)년 = 1(1)
 시(詩)
  ≪종정명언≫뒤에 제하다(題從政名言後). 을유(乙酉)년 = 3(1)
  꽃에 물을 주다(요花). = 4(1)
  문하성에서 숙직하고 있다가 느낌이 있어서 시를 지어 한익지에게 보이다(直宿門下省有感而成示韓益之). 무자(戊子)년 = 4(1)
  삼각 상인에게 주다(贈三角上人). 기축(己丑)년 = 4(1)
  중이 지은 시축에 제하다(題僧軸). 병신(丙申)년 = 5(1)
  이숙평이 단양으로 부임하매 계원들이 우리 집에 모여서 전송연을 베풀었는데, 출발하려고 할 적에 마침 비가 내렸다. 이에 "하늘이 비를 내려 아름다운 손님을 머물게 한다."라는 시구를 가지고 운을 나누어 시를 지었는데, 나는 유 자운을 얻어 지었다(李叔平赳丹陽계人會餞于弊居臨發有雨以天敎好雨留佳客分韻得留字). 기해(己亥)년 = 5(1)
  체부께서 병으로 월성에 누워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느낌이 있어서 짓다(聞體府病臥月城有感) = 6(1)
  병이 조금 괜찮아졌다는 말을 듣고 또다시 앞 시에 차운하여 짓다(又聞病歇次前韻). = 7(2)
  차운하여 이숙평에게 부치다(次韻寄李叔平). 신축(辛丑)년 = 8(2)
  신축년 5월 23일 새벽에 꿈속에서 돌아가신 선대부를 모시고 나서 짓다(辛丑五月二十三日曉夢侍先大夫). = 8(2)
  모란을 옮겨 심고 나서 동파의 길상 시에 차운하여 짓다(移植牧丹次東坡吉祥韻). = 9(2)
  우연히 읊다(偶今). = 9(2)
  이숙평의 시에 차운하다(次李叔平韻) = 10(2)
  제천의 관사에 머물면서 퇴도의 시에 차운하여 주인장에게 바치다(堤川館舍次退陶韻呈主人丈). = 11(2)
  서애 상공의 시에 공경히 차운하다(敬次厓相韻). = 11(2)
  제천 동헌의 판상에 있는 시에 차운해 방백으로 있는 이양구 시발 에게 부치다(次堤軒板上韻寄李養久方伯時發). 임인(壬寅)년 = 12(2)
  말을 타고 산장으로 들어가면서 입으로 읊조리다(入山莊馬上口占). = 13(2)
  북간은 골짜기가 몹시 깊고 궁벽해서 시냇물과 바윗돌이 자못 볼 만하였는데, 시내의 아래위로 수백 보가량 되는 양쪽에는 모두 철쭉으로 뒤덮여 있었다. 이에 매번 꽃이 필 때쯤 돌 위에 앉아 시냇물에 발을 담그고 바라보면 맑은 물결과 붉은 비단이 서로 어우러져 몹시 아름다운 풍취가 있었다. 나는 이곳을 몹시 좋아하여 시골 아이들에게 철쭉을 꺾어 망가뜨리지 말라고 경계시켰다. 그런데 올 2월에 내가 율촌에 머무를 적에 그 골짜기에 사는 아이가 와서 고하기를, "집 뒤에 있는 산봉우리와 골짜기가 지난번에 산불이 번져 거의 다 탔습니다". 하였다. 이에 내가 가장 먼저 철쭉은 괜찮냐고 물었더니, 불에 타 버리고 말았다고 하기에, 혀를 끌끌 차면서 오랫동안 애석해하였다. 그러다가 윤2월에 산거에 도착하여 먼저 북간을 둘러보니, 철쭉은 아무 탈이 없었다. 이는 대개 바위틈 사이에 뿌리를 박고 사는 탓에 잡초들 속에 뒤섞여 있지 않았으므로 산불에 타지 않은 것 같았는데, 산골 아이가 제대로 살펴보지 않고서 멋대로 대답한 것이다. 이에 내가 몹시 기쁜 마음이 들면서 느낌이 있기에 시를 지어 이를 기록하였다(北澗絶幽僻泉石頗奇勝緣潤上下數百步許兩岸皆척촉每遇花開詩坐石弄泉淸波紅錦爛만相映極有佳趣余甚愛之戒村童無得折毁今年二月余在栗村山奚來告云舍後峯壑頃爲山火所延집殆盡首問척촉免否曰不免矣余嗟惜久之閏二月到山居先尋北澗則척촉無恙焉蓋以植根巖竇不雜於衆蕪之中故得免於火患而山奚不察而妄答也欣然有感詩以識之). = 13(2)
  서재에 있다가 느낌이 있어서 지어 단양에 있는 이 사군에게 부치다. 거동산시의 운을 쓰다(齋居有感寄丹陽李使君用去冬山韻). = 15(3)
  "들판 넓고 하늘 멀어 바라보매 수심인데, 중원으로 돌아가는 길은 다시 유유하네. 산은 검석 따라와서 그 모습 장대하고, 물은 금탄 감돌면서 쉬지 않고 흘러가네. 뜬세상에 몇몇이나 푸르른 빛 바라봤나, 소년 시절 객 되어서 머리 온통 하얘졌네. 늙은이의 이 눈물에 감정 담아 전하고자, 천 줄기를 흩뿌려서 북류에 부치누나."라고 읊은 시가 있는데 이 시는 서애옹이 경자년 겨울에 충주로 가는 도중에 지은 것이다. 병을 앓고 있는 가운데에 우연히 기억해 내고는 읊조리다가 그 시에 차운하여 짓다(野闊天回一望愁中原歸路更悠悠山從劒石來方壯水요金灘去不休浮世幾人靑入眠少年爲客白渾頭惟將老淚供多感쇄盡千行寄北流厓翁庚子冬忠州道上作也病中偶記得諷詠不已因次其韻). = 16(3)
  회포를 적다. 홍태고가 지은 도담의 판상에 있는 시의 운을 쓰다(書懷用洪太古島潭板上韻). = 17(3)
  화거사에게 주다(贈花居士). 병서(幷序) = 18(3)
  또 절구 한 수를 지어서 주다(又贈一絶). = 18(3)
  역사를 읊다(詠史). = 19(4)
  즉사(卽事) = 21(4)
  한음 이 상공이 부쳐준 새 책력 윗면에 시가 씌여져 있었는데, 그 시에 이르기를, "갖은 근심 병 많은 속에 한 해 저무는데, 한가로이 사는 그댄 만호조차 깔보리라. 외국의 비방을 신이 이미 줬을 거니, 계당의 깊은 정취 다 이루기 어려우리. 산 위 구름 변하는 건 보기에 질릴 거고, 연못 물 맑은 것이 유독 사랑스러우리. 이 책력 보내는 건 별다른 뜻이 아니거니, 봄이 오면 늙은 농부 밭 가는 걸 도와주소."라고 하였다. 이는 바로 이 상공이 스스로 지어서 직접 써 보낸 것이다. 병든 나는 한 글자도 도성 안으로 들여보내지 못한 지가 이미 오래되었으나, 도타운 뜻에 사례하지 않을 수가 없기에, 드디어 그 운을 써서 시를 지어 바친다(漢陰李相公寄以新曆上面有詩云百憂多病歲쟁嶸遙想居閑萬戶輕醫局禁方神已授溪堂幽趣盡難成壓看列岫浮雲變獨愛方塘活水淸持送此書無別事春來應相老農耕乃其所自製而手寫者也病人不以一字入都中久矣而厚意不可無謝遂用其韻以呈). = 21(4)
  희암장이 보내 준 시에 차운하여 사례하다. 후산체를 본떳다(次韻謝希庵丈見寄效后山體). = 22(4)
  두자미가 초당에 제한 시에 이르기를, "상원 때 경영하기 시작하여서, 보응 때야 겨우 마쳐 손을 놓았네." 하였는데, 이는 초당을 지은 기간을 기록한 것이다. 근래 두자미의 연보를 펼쳐 보니 숙종 건원 2년 기해 12월에 공이 동곡에서 검남으로 갔는데, 다음해인 경자년은 바로 상원 원년이었다. 배 기공 면이 성도에 주둔해 있을 때 공을 위하여 완화계에다가 초당을 지어 2년 뒤인 임인년에 완성하였는데, 임인년은 바로 대종 보응 원년인바, 전후 3년간에 걸쳐서 초당을 완성한 것이다. 당시는 전쟁으로 인해 떠돌아다니는 중이어서 먹고살기조차 넉넉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비록 어진 성주의 도움을 받아 집 한 채를 얻어 살았다고는 하지만, 역시 몹시 어려웠을 것이다. 내가 경자년 봄에 비로소 우산의 북간에 땅을 얻은 다음 온 힘을 다 기울여 집을 지었는데, 임인년에 이르러서야 당과 실이 대충 완비되었다. 그사이의 노고는 대개 두자미의 고생 정도만이 아니었으며, 세월이 오래 걸린 것도 서로간에 아주 흡사하였고, 간지의 호칭도 역시 같았다. 이것이 비록 우연히 들어맞은 것이라고는 하지만, 가슴속에 느낌이 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 내가 두자미와 같은 것이 어찌 이 한 가지일 뿐이겠는가. 가난하고 외로운 것이 첫 번째 같은 점이요, 몸이 파리한 것이 두 번째 같은 점이요, 병란을 만나 곤욕을 겪은 것이 세 번째 같은 점이요, 언사에 가벼워 끝내는 곤욕을 당한 것이 네 번째 같은 점이요, 자신에 대해서 지나치게 허여하여 다른 사람에게 비웃음을 받는 것이 다섯 번째 같은점이다. 임금을 사모하고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을 밥 한 술 먹는 즈음에도 잊지 못하는 충성심에 이르러서는, 비록 감히 스스로 두자미와 같다고는 못하겠으나, 역시 감히 스스로 같지 않다고도 못하겠다. 두자미와 같지 않은 점은 오직 문장이 천고에 빛나고 광염이 천길이나 높은 것뿐이다. 불행한 바에 있어서는 서로 같으면서 장점에 있어서는 서로 같지 못하니, 이 역시 조물주가 그렇게 만든 것이다. 나는 이 점에 대해 느끼는 바가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나 스스로에 대해 비통하게 생각한다. 이에 인하여 두자미의 '기제초당' 시의 운을 차운하여 나의 뜻을 드러낸다(杜子美寄題草堂詩曰經營上元始斷手寶應年蓋識其歲月也近閱子美年譜肅宗乾元二年己亥十二月公自同谷赴劒南翌年庚子卽上元元年也裵冀公冕鎭成者爲公築草堂於浣花溪越二年壬寅卽代宗寶應元年則首尾三載而草堂成干戈羈旅之中포비不給雖蒙賢主人之助得一屋以居亦甚艱矣余於庚子春始得地于愚山之北潤拮据營구至壬寅而堂室粗完其間勤苦蓋不시於子美而歲月久近恰與相同干支之號又同此雖出於適然而猶不能無感於懷也鳴呼余之同於子美者豈止此一事而已耶貧寒一同也羸유二同也遭亂困頓三同也輕於言事卒之取困四同也自許太過爲人所笑五同也至於戀君憂國一飯不忘之忠則雖不敢自謂同而亦不敢自謂不同也所不同者惟文章照千古光焰萬丈長耳同其所不幸而不能同其所長是亦命物者之爲耶余於此不惟所感而又爲之自悲焉因次寄題草堂詩韻以見意). = 22(4)
  정월 24일 새벽에 지진이 일어났기에 읊다(正月二十四日曉地震). = 25(5)
  내가 사계화를 몹시 좋아하여, 겨울에 사계화가 얼어죽을까 염려해 네 개의 대나무로 기둥을 세우고 가느다란 대나무를 가로지른 다음, 거적으로 사방을 덮어 씌어 바람과 눈을 가려 주었다. 그런데 금년은 입춘이 지난해에 들어 있어서 정월에 날씨가 이미 따뜻해졌기에, 망녕되이 이 뒤로는 필시 다시 춥지 않을 것이라고 여기고서, 마침내 거적을 벗겨내었다. 이는 대개 햇볕을 받고 비를 맞게 해 사계화로 하여금 일찍 싹을 돋게 하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며칠 전부터 날씨가 몹시 추워져 약한 뿌리가 스스로를 보호할 수가 없었던 탓에, 손톱으로 나무껍질을 벗겨보니 이미 바짝 말라 있었다. 아, 일을 순리에 따르지 않고 사사로운 뜻과 작은 지혜를 가지고 그 사이에서 안배하고 작위하여 속히 자라게 하려고 하였으니, 벼의 싹을 잡아 뽑은 송 나라 사람이 되기에 충분한 것이다. 이에 드디어 매성유의 오측체를 써서 이 사실을 기록하여 뒷날의 경계로 삼는다(余甚愛四季花冬月恐其悴爲立四竹柱加以細竹연用점圍覆之以護風雪今年立春在舊歲正月中日氣已和煦妄謂此後必不再寒遂撤其점蓋欲迎陽受雨使之早抽條也不意數日來寒凜특甚弱植不能自保爪其膚已燥矣鳴呼事不順理欲以私意小智安排作爲於其間望其速成其不爲알苗之宋人者鮮矣遂用梅聖兪五側體記其事以存後日之戒云). = 27(5)
  이른 봄에 누대에 오르다(早春登臺). = 29(5)
  밤에 홀로 앉아서(夜坐) = 30(5)
  우암(愚巖) = 30(5)
  산에게 묻다(問山). = 30(5)
  산이 답하다(山答). = 31(5)
  계정(溪亭) = 31(5)
  섣달 그믐날에 옥성서우에 머물면서 새벽에 닭 우는 소리를 듣고 반성되는 점이 있기에 입으로 읊조리다(歲除日宿玉成書宇曉聞鷄聲有省口占). 갑진(甲辰) = 31(5)
  속리산에 사는 정 장로가 새해가 되어 시를 부치면서 대추 한 봉지도 같이 보내왔기에 그 시에 차운하여 사례하다(離山晶長老新歲寄詩副以棗實一封次韻謝之). = 32(6)
  정생 영방이 찾아와 시를 지어 주기에 그 시에 차운하여 답하다(鄭生 榮邦 來訪以詩相贈次韻答之). = 32(6)
  정월 23일 밤에 꿈속에서 회암 선생을 모시고 앉아 있는데, 얼마 있다가 상산공이 찾아왔기에 서로 무릎을 맞대고 앉아 대화를 나누었다. 이에 내가 상산공에게 이르기를, "공의 문파가 학문하는 것을 보면, 바로 사람이 한밤중에 물속에 앉아서 스스로 별과 달이 모두 나의 다리 아래에 있다고 여기는 것과 같다." 하자, 상산공이 회암 선생에게, "공이 두루 논설을 한 탓에 지금 후생들이 나에 대해 의심하고 있는데, 내가 어찌 일찍이 이런 말을 하였는가." 하니, 회암 선생이 이르기를, "나는 일찍이 공이 한 말을 가지고 후생들에게 말해준 적이 없다. 이는 단지 내가 문자상으로만 남겨 놓은 것을 후생들이 스스로 능히 엿보고서 그대의 설을 깨트린 것이다." 하였다. 그러자 상산공이 드디어 손가락으로 나의 손바닥에다 글자를 쓰기를, "말이 많으면 도에 방해가 되는 법이니 의당 말이 없어야만 한다." 하였는데 마치 은밀히 부탁하는 것처럼 하였다. 이에 내가 "이는 바로 선가에서 말한 '금침을 남에게 건네 주진 말아라.' 고 한 구절과 똑같다." 하였다. 꿈에서 깨어난 뒤 생각해보니, 선가에서는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겨 마음을 알고 본성을 보기를 구하다가 어렴풋이 대충 그 그림자만을 보고서는 문득 "내가 깨달은 바가 있다. 광명이 번쩍하고 빛남을 환하게 보았는바, 만물이 모두 여기에 갖추어져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본 것이 진짜 도체가 아니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그런즉 꿈 속에서 말한 별과 달의 비유는 이런 뜻이 내포되어 있는 듯하다. 다만 이와 같이 비유한 것은 이미 일찍이 서책에서는 보지 못하였으며, 또한 일찍이 심려상에서 생각해 보지도 않았다. 그런데 홀연히 꿈을 꾸는 즈음에 육노와 마주 앉아 말을 나누면서 발설하였다. 이것이 비록 아주 근사하고 적절한 비유라고는 생가하지 않지만, 역시 혼미한 가운데서 한 아무런 뜻이 없는 말은 아니다. 이에 드디어 이를 기록해서 장차 군자들에게 질정해 보고자 하며, 인하여 주자의 '아호흠'시에 차운하여 율시 두 수를 지어 내가 느낀 바를 말한다(正月二十三日夜夢侍晦先生坐俄而象山公至相與接膝余謂象山曰公門學正知人夜坐水中自謂星月盡在吾脚底象山謂晦庵曰緣公廣爲論說致令後生輩疑我我何嘗作如此說話耶晦庵云我不曾將公說話與後生只是著之文字後生輩自能처得破耳象山遂以手指畵余掌作字曰多言害道宜無言若有以密付者然余曰此正示禪家莫把金針度與人底言句一般覺而思之禪家瞑目注想求以識心見性황惚之間略見些箇影子便謂有所悟洞見光明閃삭萬物皆備於此而不知其所見者非眞道體也夢中星月之喩似有此意但如此取譬旣不曾之於簡編中又不曾思之於心慮上忽於夢寐之際對陸老發之雖未見其親切的當而亦非無義之섬言也遂記之將以就正於君子因次鵝湖欽韻得二律道所感云). = 33(6)
  방백으로 있는 이군 양구가 오랫동안 주성에 머물러 있으면서 서로 편지를 보내어 안부를 물었는데, 지금까지 서로 만나지 못한 지가 2년이나 되었다. 밤에 달을 마주하고 앉아 있노라니 스스로 마음을 어찌할 수 없기에 시를 읊조리다가 단율 한 수를 지어 부치다(方伯李君養久駐州城以書相問于今不相見已二年矣夜坐對月殆不能自遣吟得短律以寄). = 35(6)
  부 방백이 차운하다(附方伯次韻). = 36(6)
  함흥에 있는 승려 묘정이 여기저기 떠돌다가 영남에 와서는 견일암에 머물러 있은 지가 두 해나 되었는데, 내가 사는 우복으로부터 십 리도 채 안 되는 곳에 암자가 있었으므로 자주 천석 사이에서 어울려 놀았다. 지금 북쪽으로 가고자 하여 내게 와서 떠난다고 고하였는데, 북관의 순찰사는 바로 나의 옛 동료 관원이다. 이에 편지를 써서 그로 하여금 전해 주게 하고는 이어 절구 한 수를 지어 주다(咸興僧妙淨行脚到嶺南住見日庵二年庵距吾愚伏未十里數相從泉石間今將北矣來告行北之巡乃余舊同寀也付以書使袖納仍贈一絶). = 36(6)
  집구시(集句) = 37(7)
  한가로이 길을 가다(閑行). = 37(7)
  송계를 지나면서 느낌이 있기에 짓다(過松溪有感). = 37(7)
  밤에 앉아 있노라니 회포가 일기에 짓다. 이때 주서절요를 읽고 있었다.(夜坐有懷時讀朱書節要) = 38(7)
  서애 선생의 시에 차운하다(次西厓先生韻). = 38(7)
  술사 두사충을 초대한다(招杜術士思忠). = 39(7)
  입춘일에 짓다(立春日作). 을사(乙巳)년 = 40(7)
  종숙인 참봉공에 대한 만사(從叔參奉挽詞) = 40(7)
  김사열이 찾아왔기에 창석 형의 시에 차운하여 시를 지어 주다(金士悅來訪次蒼石兄韻贈之). = 41(7)
  달밤에 이숙평 형제와 성사열 및 강명보 등 여러 사람들과 말을 나누다가 숙평이 절구 한 수를 내기에 각자 차운하여 짓다(月夜與李叔平昆仲成士悅康明甫諸人講話叔平出一絶各次韻). = 41(7)
  정 상국 탁에 대한 만사(鄭相國琢挽詞) = 42(8)
  김성극 창원에 대한 만사(挽金省克昌遠) = 43(8)
  우곡잡영 절구 이십 수(愚谷雜詠二十絶) 병오(丙午)년 = 43(8)
   서실(書室) = 43(8)
   계정(溪亭) = 44(8)
   회원대(懷遠臺) = 44(8)
   오봉당(五峯塘) = 44(8)
   오로대(五老臺) = 45(8)
   상봉대(翔鳳臺) = 45(8)
   오주석(鰲柱石 = 45(8)
   우화암(羽化巖) = 45(8)
   어풍대(御風臺) = 46(8)
   만송주(萬松洲) = 46(8)
   산영담(山影潭) = 46(8)
   수륜석(垂綸石) = 46(9)
   선암(船巖) = 47(9)
   화서(花서) = 47(9)
   운금석(雲錦石) = 47(9)
   쌍벽단(雙壁壇) = 48(9)
   청산촌(靑山村) = 48(9)
   화도암(畵圖巖) = 48(9)
   공선봉(控仙峯) = 48(9)
   수회동(水回洞) = 49(9)
  수찬 이숙평이 병든 몸으로 멀리에서 나를 찾아와 열흘 남짓 머물러 있었는데, 둘이서 침상을 마주하고 대화를 나누었으며, 절구 한 수를 지어 나에게 선사하였다. 이에 그 시에 차운하여 사례하다(李修撰叔平拘病遠來許以旬月留止爲對床語且以一絶見贈次韻謝之). = 50(9)
  부 원운(附元韻) = 50(9)
  속리산에 있는 선 장로가 사미승에게 편지를 보내 안부를 물어 주었기에 시를 지어 보내다(離山禪長老遺沙彌來致書問訊以詩送之). = 50(10)
  수재 전극항에게 부치다(寄全秀才克恒). = 51(10)
  청석 형이 천조에 조회하러 갔다가 돌아와 담병이 아주 심하게 들었는데, 한 해가 넘도록 신중하게 조섭하여 병이 나았다. 이에 같은 계원들이 술을 가지고 가서 위문하였는데, 좌중에서 율시 한 수를 지어 내 심정을 말하다(蒼石兄朝天回得痰病甚劇愼攝經年獲愈同契以壺개慰之坐間得一律道情). = 52(10)
  조월천에 대한 만사(挽趙月川) = 53(10)
  태백사의 중이 서애의 시를 가지고 중대로 나를 찾아왔기에 차운하여 주다(太白寺僧持西厓詩訪余于中臺次贈). 정미(丁未)년 = 53(10)
  우리 향리의 달존이신 주부 송장은 나이가 일흔 넷이고, 현감 김장은 일흔 둘이고, 나의 숙부는 일흔이고, 현감 윤장은 예순 일곱인데, 금년 상원일에 의사의 존애당에서 모여 잔치하면서 명명하기를 백수회라고 하였으니, 이는 성대한 일이다. 향리 사람들 가운데 혹 머리가 흰 사람들이 소문을 듣고는 술을 차고 찾아왔으며, 나의 벗인 김지덕과 김지복 형제 및 나 경세와 종제인 광세가 자제로서 모시고 앉아 종일토록 즐겁게 지냈는데, 밝은 달이 뜰 때까지 잔치가 이어졌다. 술이 얼큰하게 달아올라서 율시 한 수를 지어 좌상에 바치어 축하하는 마음으로 삼는다(吾鄕達尊主簿宋丈年七十四縣監金丈年七十二叔父年七十縣監尹丈六十七以今上元日燕集于醫舍之存愛堂命之曰白首會蓋盛事也鄕之白首者或聞風佩壺而至友人金知德知復及經世及從弟光世以子弟侍坐終日陶然續之以明月酒감吟得一律敬呈座上以申祝賀之침云). = 54(10)
  서애 선생에 대한 만사(西厓先生挽詞) = 55(10)
  군재에서 회포를 쓰다(君齋書懷). = 57(11)
  해인사 승려의 시축에 쓰다(書海印寺僧軸). = 58(11)
  정랑 서행보가 선사산 속에서 문을 닫아걸고 살다가 동짓달에 활짝 핀 분매 한 가지를 꺽어 지롱 속에 넣어 보내면서 세 편의 좋은 절구 시도 아울러 부쳐 왔기에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삼가 그 운을 써서 시를 지어 보내 사례하다(徐正郞行甫閉戶仙査山中冬至月以盆梅盛開者一枝折納紙籠中寄來副以淸詩三絶不勝喜倒謹用其韻謝之). = 58(11)
  산에 살다(山居). 무신(戊申)년 = 59(11)
  속리산에 사는 중 유성이 시를 지어 달라고 하기에 절구 한 수를 지어 주다(離嶽僧惟性索詩贈一絶). 기유(己酉)년 = 59(11)
  관서 백 이양구에게 부치다(寄關西李養久). = 59(11)
  연광정에서 묵었는데, 달빛이 아주 좋았다. 다음날 아침에 방백 이양구가 글을 보내어 안부를 물었는데, 서면에 쓰여진 우복이라는 글자를 보고서는 느낌이 있어 절구 한 수를 지어 답하다(宿練光亭月色甚好翌朝方伯李養久以書相問書面着愚伏字見而有感以一絶答之). = 60(11)
  지난 갑신년 봄에 내가 ≪논어≫를 읽고 있었을 때 꿈속에서 기자의 사당에 알현하고는 느낌이 있어 단율 한 수를 지었는데, 꿈에서 깨어난 뒤에 그 시의 첫 번째 연을 기억해 동반에게 말하였다. 그러자 어떤 사람이 놀리면서 말하기를, "깨어나서 지은 것이 도리어 꿈속에서 지은 것만 못하다." 하였다. 그로부터 25년이 지난 기유년 가을에 동지사로 북경에 가다가 평양을 지나게 되었는데, 당시에는 바야흐로 임금을 위해 상복을 입고 있어서 사우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이에 묘 아래에서 우러러보며 절하고는 드디어 지난날 꿈속에서 지었던 구절을 기억해 내어 그 뒤를 이어 마저 지어 단율을 이루었다(往在甲申春余方讀論語夢謁箕子祠有感賦一短律覺而記其首聯以語同伴則或戱之云覺時作還不及後二十五年己酉秋余以冬至使過平壤時方爲君服斬不得入祠宇瞻拜于廟下遂憶夢中句足成短律). = 60(11)
  십삼산에 도착하여 진 동자에게 써서 주다(到十三山書贈陳童子) = 61(11)
  응북암 방열과 이별하면서 남기다(留別應北庵邦悅). 경술(庚戌)년 = 62(11)
  고령에 도착하여 응북암에게 부치다(到高嶺寄應北庵). = 63(12)
  묵고 있던 집의 벽에 제하다(題寓居壁上). = 64(12)
  남쪽으로 돌아가는 신순부 지제와 이별하면서 차운하다(次韻別申順夫之悌南歸). = 64(12)
  관동의 막부로 부임하는 김회중 헌을 전송하다(送金晦中憲赴關東幕). = 64(12)
  응북암이 준 이태백취면도 병풍에 제하다. 그림은 바로 응북암이 직접 그린 것인데, 산해관을 나와서 송별할 적에 나에게 준 것이다(題應北庵所贈李太白醉眠圖障子圖乃應所自作出關送別時持贈). = 65(12)
  내가 우거하고 있는 집의 이웃에 이름이 김주라고 하는 산원이 한 사람 살고 있었는데, 소나무를 잘 옮겨 심는다고 이름이 났는바, 비록 여름철이더라도 굵기가 한 줌이 넘는 소나무를 옮겨 심어도 모두 살아난다고 하였다. 그가 나를 위하여 작은 화분에 노송 한 그루를 심어 가지고 왔는데, 줄기와 가지가 무성하여 보기에 아주 좋았다(寓居린有一算員名金柱者以善移松名雖夏月能移拱把之幹無不活者爲余以小盆盛一老松來枝幹扶疎甚可愛). = 66(12)
우복집 제2권
 시(詩)
  용인에 있는 양벽정에 제하다(題龍仁양碧亭). 병서(幷序). 신해(辛亥)년 = 68(14)
  변산에 있는 석재암에 묵으면서 좌병에 제하다(宿邊山釋在庵題坐屛). = 68(14)
  순창 관사의 벽에 박눌재가 김충암에게 부친 절구 세 수가 있는데, 이는 대개 박눌재가 담양 부사로 있고 김충암이 순창 군수로 있을 적에 서로 오가면서 지은 시이다. 한익지를 비롯하여 여러 사람들이 모두 그 시에 차운하였는데, 나 역시 느낌이 있기에 그 시의 운을 써서 짓다(淳昌壁上有朴訥齋寄金沖庵三絶蓋朴爲潭陽金爲淳昌時相往復之作也韓益之諸公皆奉次余亦有感用其韻). = 69(14)
  재차 앞 시의 운을 써서 느낌을 말하다(再用前韻道所感). = 70(14)
  삼가 포은 선생의 판상운에 차운하다(謹次圃隱先生板上韻). = 71(14)
  한음 이 상공께서 서신을 보내어 매실을 보내 달라고 하여 용진에다가 이를 심어 산과 시내에 빛을 비추게 하고자 하였는데, 이는 늙은 뒤에 이곳에 살면서 감상할 계획에서였다. 이에 삼가 수천 개를 싸 보내고는 이어 느낀 바가 있기에 근체시 한 수를 지어 함께 보내었다. 당시에 상공께서는 헐뜯는 말에 곤욕을 당해 치사하게 해 주기를 청하고 있었다(漢陰李相公以書索梅子欲種之龍津令照映山澗蓋爲投老吟賞之計也謹以數千顆呈似仍有所感得近體一首幷奉時相公爲唇舌所困方乞致仕). = 71(14)
  조여직 정립을 곡하다(哭趙汝直 正立). 계축(癸丑)년 = 72(15)
  봄날에 고향으로 돌아가길 생각하다(春日思歸). = 74(15)
  홍 영원의 얼족으로 이름이 홍인수라고 하는 자가 장원교 서쪽에 살고 있는데, 구석진 곳에 있는 자그마한 정원에다가 기화요초를 뒤섞어 심고는 그 속에 쓸쓸하게 앉아 있었다. 내가 재차 그곳을 방문하여 솔과 대나무를 심은 화분 하나씩을 얻어왔는데, 남쪽으로 돌아갈 적에 돌려주기로 약속하였다. 이에 절구 한 수를 지어서 나의 뜻을 붙인다. (洪寧原○族名麟壽者居掌苑橋西偏關小園雜植奇花異卉蕭然坐其中余再往訪借得松竹各一盆約以南歸時奉還以一絶寄意) = 74(15)
  임계현에서 사상을 기다리다가 사상이 우계로로 접어들었다는 말을 듣고는 드디어 임계에서 급히 우계를 향해 갔는데, 산길이 몹시 험하기에 말 위에서 절구 한 수를 짓다(候使相于臨溪縣聞使相取羽溪路遂自臨溪急向羽溪山路極險馬上得一絶). = 75(15)
  백사 이 상공이 중하게 견책을 받아 도성 문 밖에 있었기에 절구 한 수를 지어 보내 문안하다(白沙李相公被重譴在都門外以一絶問之). = 75(15)
  환성정에 머무르다(宿喚仙亭). 갑인(甲寅)년 = 76(15)
  도솔사의 벽에 제하다(題兜率寺壁). = 76(15)
  통천의 청허당 북쪽 담장 아래에 있는 돌 가에 거문고를 만들기에 적당한 오동나무가 있기에 내가 베어 오라고 명하였다. 그러자 그곳의 수령으로 있는 강문경이 자못 아까워하는 뜻이 있었으므로 장난삼아 그 말을 기술해서 위로하다(通川淸虛堂北墻下石上有桐木中琴材余命伐之主守姜文卿頗有愛惜意戱述其語以慰之). = 76(15)
  보덕굴에 제하다(題普德窟). = 77(15)
  처음에 만폭동으로 들어가니 학이 하늘을 빙빙 돌고 있었다. 내가 젓대를 부는 사람에게 느린 곡조로 불라고 하자, 빙빙 돌면서 떠나가지 않아 마치 사람의 뜻을 아는 것만 같았다. 3일째가 되던 날 다시 그곳에 가니 또다시 나와서는 하늘을 날면서 춤을 추었다. 내가 보덕굴에다가 제한 시의 낙구에서 "금강대아래 사는 학에게 말하노니, 소선 놀이 즐거운지 안 즐거운지 묻지 마라." 한 것은, 대개 장난삼아 읊은 것이다. 그로부터 3일 뒤에 산을 나와 조계동에 도착하여 어제의 놀이를 돌이켜 생각하니, 아득하기가 마치 꿈속의 일만 같았으며, 그리운 마음이 들어 잊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홀연 구름 사이에서 빙빙돌며 나는 한쌍의 학이 보였는데, 오랫동안 날다가 떠났다. 이에 의연히 서로 감응하는 마음이 들어 절구 한 수를 입으로 읊조렸다.(初入萬瀑洞有鶴盤空余令笛手吹作慢調徊翔不去如解人意第三日再到則又出而飛舞余題詩于普德窟落句云爲報金剛臺下長鳴鶴莫浪問蘇仙之遊樂不樂蓋喜之也又後三日出山到曹溪洞回念昨遊杳如夢中事眷戀不能忘忽見雙鶴在雲소間盤旋良久而去依然有相感之懷口占一絶) = 78(15)
  동산에서 묵으면서 새벽에 일어나 보니 비가 왔기에 기뻐서 짓다. 이때 크게 가뭄이 들었다(宿洞山晨起喜雨是時大旱). = 79(15)
  금년에는 봄부터 비가 오지 않아 여름철에 들어서 더욱더 가뭄이 심하였는데, 5월 10일에야 새벽부터 저녁까지 단비가 내렸다. 이는 바로 세속에서 말하는 태종우이다. 이에 느낌이 있어서 시를 지어 기쁨을 표한다(今年自春不雨至夏愈甚五月十日有甘澍自晨至夜此國諺所稱太宗雨也有感而作志喜). = 79(16)
  남헌에 제하다(題南軒). = 80(16)
  작은 누각의 판상에 있는 시에 차운하다(次小樓板上韻). 을묘년 = 80(16)
  강릉의 선비들이 각각 쌀을 한 말씩 내어 서신을 가지고 와 문안하였는데, 그 뜻이 아주 은근하였기에 단율을 지어서 사례하다(江陵士子輩各出米斗以書來問訊其意甚勤以短律謝之). = 81(16)
  동짓날 밤에 앉아 있다가 우연히 읊조리다(冬至夜坐偶吟). = 82(16)
  입춘일에 우연히 읊조리다(立春日偶吟). = 82(16)
  월간 이숙재의 집에 분매 한 그루가 있는데, 섣달에 바야흐로 꽃이 활짝 피었기에 여러 벗들과 함께 가서 감상하다가 율시 한 수를 읊다(月澗李叔載家有盆梅一株臘月方盛開與諸友同往賞之吟得一律). 병진(丙辰)년 = 83(16)
  또다시 창석의 운을 써서 짓다(又用蒼石韻). = 83(16)
  참판 김희옥 늑에 대한 만사(挽金參判希玉늑) = 84(16)
  섣달 초엿샛날에 분매가 활짝 피었는데, 월간 형제가 찾아왔다. 이때 마침 바람이 몹시 불고 아주 추웠으므로 문을 닫고 조용히 앉아 있다가 절구 두 수를 짓다.(臘月初六日盆梅盛開月澗兄弟來訪適大風寒甚閉戶靜坐得二絶) = 84(17)
  창석이 또 절구 한 수를 읊기에 그 시에 차운하다(蒼石又賦一絶次韻). = 85(17)
  강 보은 우에 대한 만사(挽姜報恩 우) = 85(17)
  나의 집에 있는 두 개의 매화 화분 중에 하나를 창석에게 선사하다(余家有梅二盆以其一궤蒼石) = 86(17)
  분매를 읊은 절구 네 수(盆梅四絶) 정사년 = 86(17)
  옥성서원에서 더위를 피하다가 가뭄이 들어 마음이 답답하기에 벽에다가 제하다(避暑玉成悶旱題壁上). 기미(己未)년 = 88(17)
  옥성서원의 뒷산을 세속에서는 서산이라고 부르는데, 한 가닥 가는 구름이 산허리를 가로지른 채 동쪽에서 서쪽으로 흘러갔다. 비록 심하게 가뭄이 든 때라도 문득 비가 내렸다. 금년에는 이 구름이 전혀 보이지 않다가 7월 16일 새벽에 비로소 나타났다. 이날 한낮에 홀연 비가 내렸기에 기쁜 마음에 시를 지었다.(玉成後山俗號西山有一帶細雲橫抹山腰自東而西雖盛旱輒雨今年絶無此雲七月十六日曉始有之是日午忽有雨喜而有言) = 89(18)
  전가원. 저광희체를 본떠 지었다(田家怨效儲光羲體). = 89(18)
  창석의 시에 차운하여 유계화에게 주다(次蒼石韻贈柳季華). = 90(18)
  여덕보 유길에 대한 만사(挽呂德甫 裕吉) = 90(18)
  풍호를 추억하다(憶楓湖). = 94(18)
  정한강에 대한 만사(鄭寒岡挽詞) 경신년 = 95(18)
  연아. 소강절의 수미음체를 본떠 지었다(演雅效康節首尾吟體). = 96(19)
  봄날에 월간, 창석, 남계, 우연, 신여섭과 함께 관동 칠팔 명과 유천의 조암에서 노닐다가 저광희체를 본떠 짓다(春日同月潤蒼石南溪愚淵申汝涉及冠童七八人遊酉川槽巖效儲光羲體). = 96(19)
  회암 선생의 시를 읽다가 십이진체가 있기에 삼가 그를 본떠 두 수를 짓다(讀晦庵先生詩有十二辰體謹效之得二首). = 97(19)
  성사열 남에 대한 만사(挽成士悅 남) = 99(19)
  모재 김 선생의 시에 차운하여 수재 군후에게 주다(次募齋金先生韻贈權秀才厚). 병서(幷序) = 100(19)
  제석에 회포를 쓰다(除夕書懷). = 102(20)
  조비중 익을 개장하는 데 대한 만사(趙비仲 翊改葬挽詞) = 102(20)
  명부 조찬한에게 바치다(呈趙明府纘韓). = 103(20)
  제석에 회포가 일어 달력에 쓰다(除夕有懷書曆日). = 104(20)
  다시 앞 시의 운을 써서 짓다(再用前韻). 신유년 = 104(20)
  정월 이튿날 홀로 앉아 있다가 느낌이 있어서 짓다(正月二日獨坐有感). 임술(壬戌)년 = 105(20)
  이군 호연 의활이 고등어를 보내 주면서 절구 한 수도 함께 보내 주었는데, 그 시 가운데 고명사의라는 말이 있기에 마음속에 느껴지는 점이 있어서 차운하여 사례하다(李君浩然 宜活 以古道魚見寄副以一絶有顧名思義之語有感于心次韻謝之). = 105(20)
  원운을 거꾸로 써서 또 한 수를 짓다(倒用元韻又得一首). = 106(20)
  진사 박언성은 효행이 있었다. 그는 정자에 낙지라고 이름을 붙였는데, 이는 마음과 뜻을 즐겁게 한다는 뜻을 취한 것이다. 모재 김 선생이 본도를 안절하였을 때 그의 집을 방문하여 절구 한 수를 남겨 두었는데, 그 시에 이르기를, "임금도운 성과 없이 머리 온통 하얘지고, 험한 곳서 말 몰아 쉴 겨를이 없구나. 효자의 높은 풍모 능히 내 뜻 일으키니, 길 가다가 수레 멈춰 잠깐 동안 머무누나."라고 하였는바, 그를 얼마나 대단하게 여겼는지를 상상할 수가 있다. 강형 명보는 바로 진사의 외증손인데, 모재 선생의 시를 벽에 건 다음 나에게 한마디해 주기를 요구하였다. 이에 삼가 그 운을 써서 느낀 바를 말한다.(朴進士彦誠有孝行以樂志名其亭蓋取樂其心志之義也慕齋金先生按節本道造其廬而訪之留一絶云咨詢無效雪侵頭原습驅馳未暇休孝里高風能起我爲傾行蓋暫遲留其見重可想矣康兄明甫卽進士之外曾孫也以慕齋詩揭之壁上要余作一語謹用其韻道所感) = 106(20)
  지난 겨울에 이군 숙평과 난로당의 생일 잔치에 갔는데, 술이 얼큰히 올랐을 때 주인장이 종이를 주면서 시를 지으라고 하자, 숙평은 붓을 잡고 즉석에서 지었는데, 나는 생각이 말라붙어 이어 지을 수가 없었다. 금년에 다시 가자 주인장이 독촉해 마지않기에 드디어 속초하여 바치다. (去冬與李君叔平赴難老堂壽席酒半主人丈授簡命詩叔平操筆立就余思학不能屬和今年再到則主人丈督之不置遂續貂奉呈). = 107(21)
  다시 앞의 운을 써서 느낀 바를 말한다(再用前韻道所感). = 108(21)
  연악에서 비에 막혀 이틀을 머무르면서 한퇴지의 '군행망후선 곤식기구검'의 시구로 운을 나누어 각자 시 한 수를 지었는데, 나는 식 자 운으로 지었다(淵嶽阻雨留二日以群行忘後先朋息棄拘檢分韻各賦一首得息字). = 109(21)
  노생석명에 대한 만사(挽盧甥 碩命) = 111(21)
  이군 무백이 중풍을 앓아서 이곳에 있는 의원을 찾아와 몇 달 동안 머물다가 장차 돌아가게 되었기에 여러 사람들과 함께 용문에서 전별연을 하였는데, 밤이 한창 깊어서 근체시 한 수를 지어 이별하는 선물로 주다(李君茂伯患偏風就醫于此留數月將歸者諸同人서別于龍門夜난吟得近體一首奉別). = 112(21)
  파곶에서 노닐다(遊巴串). = 113(21)
  산북에 대한 기행시를 지어 십운을 얻었는데, 비록 음률에 구애되어 선후를 뒤바꾸어 놓음을 면치 못하였지만, 경치 좋은 곳은 모두 수록해 놓았다. 그러므로 후대에 보는 자가 혹 상고할 바가 있을 것이다(山北紀行得十韻雖拘於音律不免易置先後要之勝處皆收入來者或當有巧也). = 113(22)
  동쪽 선유동의 반석에 제하다(題東仙遊洞盤石). = 115(22)
  김사한 창일의 시에 차운하다(次金四寒昌一韻). 병서(幷序) = 115(22)
  이군 시양이 소암의 시 한 책을 가지고 와서 보여주었는데, 반나절 동안 미처 다 읽지 못하고 대략 몇 편만 보았을 뿐이었다. 그런데도 이미 시가 웅건하고 아름다워, 세속에서 시구를 묘하게 얽어 남들이 보기에만 좋게 하는 자들이 비슷하게나마 지을 수 있는 것이 아님에 감복하였다. 그 가운데 이군에게 지어 준 절구가 있기에 삼가 그 시에 차운하여 이군에게 부쳐 보내니, 한번 웃으면서 보아주기 바란다(李君時揚袖疎庵詩一冊來示半餉之頃未及卒業而略窺數篇己服其雄健贍麗非世之摘藻이華取悅人目者所可彷彿也其中有贈李君絶句謹用其韻附李君呈似想爲之發一笑也). = 117(22)
  석담자에 대한 그리운 마음이 일기에 벽에 걸려 있는 도연명의 시에 화답하여 나의 뜻을 드러냈는데 이는 반드시 석담자에게 보내어 보여주고자 한 것은 아니다(有懷石潭子和壁上陶詩韻以見意非必欲寄示也). = 117(22)
  이자이가 연당에서 지은 시에 차운하다(次李子異蓮堂韻). 병서(幷序). 계해(癸亥)년 = 118(23)
  임 정언 숙영 에 대한 만사(挽任正言 叔英) = 119(23)
  옥당에 입직하면서 이여고가 벽에 써 놓은 시에 차운하다(入直玉堂次李汝固壁上韻). 갑자(甲子)년 = 121(23)
  이날 경연에 입시하였다가 해직시켜 주기를 청했으나 허락받지 못하였기에 앞 시의 운을 써서 다시 짓다(是日入侍經席乞解職不得請復用前韻). = 121(23)
  대사성 정시회 엽에 대한 만사(挽鄭大司成時晦 曄) 을축(乙丑)년 = 122(23)
  승지 조여액 우인에 대한 만사(挽曺承旨汝益 友仁) = 123(23)
  지평 황회보 유에 대한 만사(挽黃持平會甫 紐) 병인(丙寅)년 = 124(23)
  정사 강왈광 잠두 시에 차운하다(次正使 姜日廣 蠶頭韻). = 124(23)
  정사의 한강정 시에 차운하다(次正使漢江亭韻). = 125(24)
  정사의 양화도 시에 차운하다(次正使楊花渡韻). = 126(24)
  대간청의 협판에 쓰다(書臺諫廳挾板). = 126(24)
  참판 오덕구 백령가≪근사록≫을 써 달라고 한 데 대해 사례하다(謝吳參判德耉百齡 求寫近思錄). = 126(24)
  연안 부백 오여완 준이 서신을 보내어 안부를 물어 준 데 대해 사례하다(謝延安府伯吳汝完竣書問). = 127(24)
  계운궁에 대한 만사(啓運宮挽詞) = 127(24)
  송 영천 이창에 대한 만사(挽宋榮川 爾昌) 정묘(丁卯)년 = 130(24)
  만취 오로 억령에 대한 만사(挽晩翠吳老 億齡) = 131(24)
  정원대원군을 천장하는 데 대한 만사(大院君遷葬挽詞) = 131(24)
  영상 신흠에 대한 만사(挽申領相欽) 무진(戊辰)년 = 132(25)
  판서 이윤경 수광에 대한 만사(挽李判書潤卿 粹光) = 135(25)
  삼척으로 부임하는 이숙평을 전송하다(送李叔平赴任三陟). 경오(庚午)년 = 136(25)
  선조대왕을 천릉하는 데 대한 만사(宣祖大王遷陵挽詞) = 136(25)
  이생 유후에 대한 만사(挽李生裕後) = 128(25)
우복집 제3권
 주문(奏文)
  진위하기 위하여 올린 주문(陳慰奏文) 경오(庚午)년 = 139(26)
  등주를 경유하는 옛길을 다시 회복시켜 주기를 청하는 주문(請復登州舊路奏文) = 143(27)
 교서(敎書)
  영의정 유성룡이 사직한 데 대해 윤허하지 않으면서 내린 교서(不允領議政柳城龍辭職敎書) 병신(丙申)년 = 147(28)
  절개를 지키다가 의롭게 죽거나 성을 지키다가 사망한 수령 및 힘껏 싸우다가 싸움터에서 죽은 장졸들의 자손에 대해 관직을 제수하고 면천을 하면서 효유하기 위하여 내린 교서(伏節死義及守成身死守令力戰陣亡將卒子孫除職免賤曉諭敎書) = 149(28)
  삼도통제사 겸 경상우도수군절도사 이경준에게 내린 교서(敎三道統制使兼慶尙右道水軍節度使李慶濬書) 기유(己酉)년 = 151(29)
  책봉을 인준한 황제의 칙서를 맞이하고서 중외에 사면령을 반포하면서 내린 교서(迎准封皇勅頒赦中外敎書) 갑자(甲子)년 = 154(30)
  황태자의 탄생으로 인해 중외에 사면령을 반포하면서 내린 교서(皇太子誕生頒赦敎中外書) 병인(丙寅)년 = 155(30)
  동궁의 가례를 맞이하여 중외에 사면령을 반포하면서 내린 교서(東宮嘉禮頒赦敎中外書)정묘(丁卯)년 = 156(30)
  황제가 등극한 데 대한 조서를 맞이한 뒤에 사면령을 반포하면서 내린 교서(迎登極詔後頒赦中外敎書) 무진(戊辰)년 = 157(30)
 자첩(咨帖)
  정사(正使) 강왈광(姜曰廣)에게 보낸 회첩(回帖) 병인(丙寅)년 = 158(31)
  부사(副使) 왕몽윤(王夢尹)에게 보낸 회첩(回帖) = 159(31)
  도독 모문룡(毛都督)에게 보낸 회첩(回帖) 정묘(丁卯)년 = 161(31)
  도독 모문룡에게 올린 회자(都督回咨) = 162(32)
  원 군문(袁軍門) 숭환(崇煥)에게 올린 게첩(揭帖) = 165(33)
  손 각부(孫閣部)에게 보낸 회자(回咨) 경오(庚午)년 = 167(33)
  부총 유흥치(劉副摠興治)에게 보낸 회첩(回帖) 경오(庚午)년 = 170(34)
  부원수 정충신을 대신해 지어 유홍치에게 보낸 게첩(爲副元師鄭忠信揭劉興治帖) = 171(35)
 소차(疏箚)
  옥당에서 자강하기를 청한 차자(玉堂請自强箚) 을미(乙未)년 = 173(35)
  옥당에서 도성을 지키기를 청하기 위해 올린 차자(玉堂請守都城箚) 정유(丁酉)년 = 179(37)
  구언하는 교서에 응하여 올린 상소(應求言敎疏) 무신(戊申)년 = 184(39)
  오현을 문묘에 종사하기를 청한 상소(請從祀五賢文廟疏) = 203(44)
우복집 제4권
 소차(疏箚)
  옥당에서 한재에 대해 논한 차자(玉堂論旱災箚) 계해(癸亥)년 = 209(47)
  옥당에 있으면서 폐서인에 대해 논하기 위해 올린 차자(玉堂議廢庶人箚) = 214(48)
  옥당에 있으면서 체차해 주기를 청하기 위해 올린 상소(玉堂乞遞疏) = 216(49)
  홍문관에 있으면서 여덟 조목에 대해 올린 차자(弘文館八條箚) = 219(50)
  옥당에 있으면서 재이에 대해 논한 차자(玉堂論災異箚) = 235(55)
  구언하는데 응하여 올린 차자(應求言箚) 갑자(甲子)년 = 238(55)
  옥당에 있으면서 양덕윤에 대해 논한 차자(玉堂論梁德允箚) = 248(58)
  옥당에 있으면서 양사에 대해 처치하여 올린 차자(玉堂處置兩司箚) = 250(59)
  예에 대하여 의논하여 올리려던 차자(擬上議禮箚) 병인(丙寅)년 1월(正月) = 252(59)
  상례에 대해 의논하는 차자(議喪禮箚) = 255(60)
우복집 제5권
 소차(疏箚)
  올리려던 차자(擬上箚) = 266(65)
  우선은 원호를 정하지 말기를 청하는 차자(請姑停園號箚) = 267(65)
  홍문관에 있으면서 올린 차자(弘文館箚) = 270(66)
  사헌부에 있으면서 임금의 덕에 대해 논한 차자(司憲府論君德箚) = 275(67)
  일에 대해 논하여 올리려던 차자(擬上論事箚) 정묘(丁卯)년 = 282(70)
  옥당에 있으면서 간언을 따르라고 청하기 위해 올린 차자(玉堂請從諫箚) = 284(71)
  옥당에 있으면서 시무에 대해 논하여 올린 차자(玉堂論時務箚) = 285(71)
  또 올린 차자(又) = 293(73)
  오랑캐에게 보내는 답서에 대하여 논하여 올린 차자(論答虜書箚) = 300(76)
  옥당에 있으면서 구언하는 데 응하여 올린 차자(玉堂應求言箚) = 306(78)
  우옹 정경세가 옥당에 있으면서 정묘년에 올린 차자의 뒤에 제하다(題愚翁玉堂丁卯箚後) = 312(79)
  친제를 우선 정지하기를 청하기 위해 올린 차자(請姑停親祭箚) 무진(戊辰)년 = 313(80)
  모영에 중신을 보내지 말기를 청하기 위해 올린 차자(請停毛營遣重臣箚) 기사(己巳)년 = 314(80)
  재변을 만나 공구수성하기를 청하기 위해 올린 차자(請遇修省箚) = 316(80)
  가도에 용병하지 말기를 청하기 위해 올린 차자(請勿用兵가島箚) 경오(庚午)년 = 318(81)
  근일에 내린 성교가 온당치 못함을 논하여 올린 차자(論近日聖敎未安箚) = 321(82)
  동지에 하례하는 것을 임시 정지할 것을 청하기 위해 올린 차자(請權停冬至賀禮箚) = 324(83)
  추숭하는 것을 주청하지 말기를 청하기 위해 올린 차자(請勿奏請追崇疏) 신미(辛未)년 = 325(83)
우복집 제6권
 소차(疏箚)
  상으로 내린 관직을 사양하면서 올린 상소(辭賞職疏) 임진(壬辰)년 10월(十月) = 331(86)
  기복하라는 명을 사양하면서 올린 상소(辭起復疏) 갑오(甲午)년 1월(正月) = 338(87)
  돌아가서 성묘하게 해 주기를 청하기 위해 올린 상소(乞歸省墓疏) 을미(乙未)년9월(九月) = 339(88)
  복수군을 따라 종군하게 해 주기를 청하기 위해 올린 상소(乞復수從軍疏) 정유(丁酉)년 1월(正月) = 343(89)
  소명에 대해 사양하기 위해 올린 상소(辭召命疏) 신축(辛丑)년 11월(十一月) = 345(90)
  성묘하게 해 주기를 청하기 위해 올린 상소(乞省墓疏) 기유(己酉)년 6월(六月) = 347(90)
  상으로 내린 자급을 사양하기 위해 올린 상소(辭賞秩疏) 경술(庚戌)년 = 348(91)
  해직을 청하기 위해 올린 상소(乞解職疏) = 350(91)
  대사성을 체차해 주기를 청하기 위해 올린 상소(乞遞大司成疏) = 352(92)
  사직하기 위해 올리려던 상소(擬上辭職疏) 신해(辛亥)년 = 353(92)
  상으로 받은 가자를 사양하기 위해 올린 상소(辭賞加疏) 임자(壬子)년 10월(十月) = 356(93)
  부제학을 사직하기 위해 올린 상소(辭副提學疏) 계해(癸亥)년 4월(四月) = 360(94)
  실정을 전달하기 위해 올린 차자(陳情箚) = 362(95)
  예문관 제학을 사직하기 위해 올린 상소(辭藝文提學疏) = 366(96)
  출사한 뒤에 사직하기 위해 올린 상소(出仕後辭職疏) = 367(97)
  실정을 전달하면서 체차해 주기를 청하기 위해 올린 차자(陳情乞遞箚) 갑자(甲子)년 = 369(97)
  체차해 주기를 청하기 위해 올린 상소(乞遞疏) = 374(98)
  견책을 내려 주기를 청하기 위해 올린 차자(乞行遣箚) = 375(99)
  다시 올린 차자(再箚) = 376(99)
  세 번째 올린 차자(三箚) = 380(100)
  대사헌을 사직하기 위해 올린 상소(辭大司憲疏) = 381(101)
  대사헌을 사직하기 위해 올린 차자(辭大司憲箚) = 382(101)
  부제학을 사직하기 위해 올린 서장(辭副提學狀) = 385(102)
우복집 제7권
 소차(疏箚)
  부제학을 사직하기 위해 올린 상소(辭副提學疏) 갑자(甲子)년 7월(七月) = 378(103)
  상으로 하사받은 직질을 사양하기 위해 올린 상소(辭賞秩疏) = 390(103)
  상으로 하사받은 직질을 사양하기 위해 올린 상소(辭賞秩疏) 을축(乙丑)년 = 392(104)
  도승지를 체차해 주기를 청하기 위해 올린 차자(乞遞都承旨箚) = 393(105)
  해직하여 집으로 돌아가 죽은 아들을 장사 지낼 수 있게 해 달라고 청하기 위해 올린 상소(乞解職歸葬亡子疏) = 395(105)
  형조 판서를 사직하기 위해 올린 상소(辭刑曹判書疏) = 396(105)
  대사헌을 사직하기 위해 올린 차자(辭大司憲箚) 병인(丙寅)년 = 397(106)
  부제학을 사직하기 위해 올린 차자(辭副提學箚) = 399(106)
  부제학을 체차해 주기를 청하기 위해 올린 차자(乞遞副提學箚) = 400(107)
  대사헌을 사직하기 위해 올린 차자(辭大司憲箚) = 403(107)
  대사헌을 체차해 주기를 청하기 위해 올린 차자(乞遞大司憲箚) = 404(108)
  부제학을 사직하면서 아울러 겸대한 여러 직책을 해임해 주기를 청하기 위해 올린 차자(辭副提學幷乞鐫免兼帶箚) = 406(108)
  직책을 해임시켜 주기를 청하기 위해 올린 상소(乞解職疏) 정묘(丁卯)년 = 407
  예문관 제학을 체차해 주기를 청하기 위하여 올린 차자(乞遞藝文館提學箚) = 408(109)
  녹훈 하는 것을 사양하기 위해 올린 상소(辭勳疏) 무진(戊辰)년 = 410(110)
  겸대하고 있는 지의금부사의 직책을 감하해 주기를 청하기 위해 올린 차자(乞減下兼帶知義禁箚) = 411(110)
  부제학을 체차해 주기를 청하기 위해 올린 차자(乞遞副提學箚) 기사(己巳)년 = 413(111)
  예조 판서를 체차해 주기를 청하기 위해 올린 차자(乞遞禮曹判書箚) = 415(111)
  직책을 체차하고 치사하게 해 주기를 청하기 위해 올린 상소(乞遞織致仕疏) = 416(111)
  이조 판서의 소명을 사양하기 위해 올린 상소(辭吏判召命疏) = 418(112)
  이조 판서의 임명에 대해 다시 사양하기 위해 올린 상소(再辭吏判疏) = 420(113)
  이조판서 겸 대제학의 직책을 사양하기 위해 올린 차자(辭吏曹判書大提學箚) = 422(113)
  재차 올린 차자(再箚) = 423(114)
  이조 판서를 체차해 주기를 청하기 위해 올린 차자(乞遞吏判箚) 경오(庚午)년 = 424(114)
  다시 올린 차자(再箚) = 425(115)
  이조 판서를 체차해 주기를 청하기 위해 올린 차자(乞遞吏判箚) = 426(115)
  다시 올린 차자(再箚) = 428(116)
  세 번째 올린 차자(三箚) = 430(116)
  이조 판서를 체차해 주기를 청하기 위해 올린 상소(乞遞吏判소) = 432(117)
  대제학을 체차해 주기를 청하기 위해 올린 차자(乞遞大提學箚) = 434(117)
  다시 올린 차자(再箚) = 436(118)
  대제학을 체차해 주기를 청하기 위해 올린 상소(乞遞大提學疏) 신미(辛未)년 = 437(118)
  다시 오린 상소(再疏) = 439(119)
  치사하게 해 주기를 청하기 위해 올린 상소(乞致事疏) 임신(壬申)년 1월(正月) = 440(119)
  해직을 청하기 위해 올린 상소(乞解職疏) = 44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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