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경숙의 강렬한 흑백 사진들을 보며, 처음에는 눈살을 찌푸리고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 지 몰랐다. 똑바로 응시하기에는 너무도 숭고한 장면들이었다. 내가 태어나던 순간에 대한 기억이 무의식 속에 잠재해 있었던지, 두려움과 무서움의 감정도 동시에 일었다. 치열한 탄생의 순간을 무사히 넘긴 아기들이 포근하게 감싸여 잠들어 있는 모습을 보며, 가장 순수한 웃음을 짓는 것을 보며, 다시 사진들을 마주할 용기가 났다. 내 자신에 대해, 타인에 대해, 이 세상에 대해 무조건 겸손해야 함을 가르쳐주는, 감사해야 할 사진들이다.
징하고 짠한 ‘탄생’
다큐멘터리 사진은 먼저 ‘징’하고 ‘짠’한 고갱이가 박혀 있어야 한다. 여기서 ‘징’한 것은 대상의 본질에 더 가까이 다가가는 사진가의 자세를 말함이며, ‘짠’한 것은 그래서 얻는 ‘울림’이다. 결국 ‘짠’한 것은 ‘징’한 것을 자궁 삼아 얻어지는 탄생인 셈이다.
남경숙의 사진 70여 장을 보았다. 사진이 삶의 한 토막을 ‘징’하게 찍어 보여주고 있었다. 사진 속에는 탄생을 너머 모든 삶의 하중이 걸려 있었던 것이다. 나는, 세상의 무게에 대한 그녀의 섬세한 은유 때문에 그만 ‘짠’해졌다. 사실 이 표현은 그녀의 스승인 사진가 김홍희 선생의 말인데, 참 적절해서 필자가 빌려 쓴 것이다. 그녀에게 주문한 한 가지가 좀 ‘징’하게 찍을 수 없느냐는 것이었단다. 로버트 카파의 한 말씀 “당신의 사진이 좋지 않다면, 피사체에 한 걸음 더 다가가라.”의 한국형 버전 아닌가? 조금만 ‘더’….
남경숙의 사진을 보고, 그녀를 만나고 난 솔직히 감동했다. 세상 보는 눈이, 그녀가 나보다 한 수 위였다. 많은 것을 배웠다. 그 시선으로, 2000년부터 찍어온 이미지 무게를 미학적 허세 없이 보여준다는 것에 감동했다. 그 감동을 뒷받침하는 것이 해박한 의학적 지식과 그것을 이미지에 정확하게 일치시키는 능력, 아니 더, 그것이 삶의 어떤 부분과 연결되어 있는지를 꿰뚫어 보고 있는 곰삭은 성찰이었다.
사진 찍기 위해, 대충 어설프게 안 것이 아니라, 인간을 알고, 사랑하고, 느끼며, 그 한 순간인 탄생을 몸과 마음으로 먼저 받아들인 것이다. 글은 내가 쓰지만, 그녀에게서 참 많은 감동을 받았다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이다.
- 최건수(사진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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