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에 출간되었다 절판된 박기동의 첫 작품집 <아버지의 바다에 은빛 고기 떼>를 새로운 편집, 젊은 평론가의 새 해설과 함께 새로이 펴냈다. 우리 문단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첫 작품집 복간 시리즈인 '소설 르네상스'의 23번째 책. 단편 8편과 중편 '달과 까마귀'를 묶었다. 성장이라는 과도기에 놓인 소년 소녀들을 다룬 작가의 초기작들이 수록되어 있다.
‘바다의 아버지’들을 만나려는 항해의 시작
1979년에 출간되었다 절판된 박기동의 첫 작품집 <아버지의 바다에 은빛 고기 떼>를 새로운 편집, 젊은 평론가의 새 해설과 함께 새로이 펴냈다. 우리 문단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첫 작품집 복간 시리즈인 ‘소설 르네상스’의 스물세 번째 권이다. 간결하고 감각적인 문체와 환상적인 사건 전개로 당시의 리얼리즘 소설 미학과 거리를 두며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해온 박기동의 단편 8편과 중편〈달과 까마귀〉를 묶었다. 성장이라는 과도기에 놓인 소년 소녀들을 다룬 초기작들을 통해 자아의 정체성을 탐색하며 현실의 바다로 막 항해를 시작한 젊은 작가의 시선을 만날 수 있다.
이 작품집에는 거의 모든 소설 속에 부모와의 관계를 통해 정체성을 찾아 나서는 소년 소녀들(〈창공에 빛난 별 물 위에 어리어〉·〈아버지의 바다에 은빛 고기 떼〉·〈잠자라 생쥐, 푹 자요〉… )이 등장한다. 그리고 소설마다 그 주변에 아버지와 바다, 섬 같은 소재들을 곁들여 비슷한 상황을 유도함으로써 마치 연작소설을 읽는 듯하게 만든다. 결국 이 주인공들은 서로 상통하는 인물이며 각 작품은 아이가 과도기를 겪어내고 아버지가 되는, 누구나의 성장에 관한 하나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작가는 단문을 사용해 과거와 현재를 중첩시키고 인물들의 이름을 생략해 행위의 주체를 애매하게 만들며 시점을 바꾸어 사건을 환상적으로 전개하는 독특한 문체로 열일곱 살과 그 아버지들을 그린다. 초판 출간 당시 박기동은 “아이들이 떠난 바다에서 ‘아이’들이 아니라 ‘바다의 아버지’들을” 만나기를 기대한다고 말해 이 작품들이 혼란기의 아이들을 아버지로 성장시키려는 과정임을 내비쳤는데, 그의 작품 세계에 있어서도 이 소설집은 더 큰 바다로 나아가려는 항해의 출발점이 된다.
꿈과 현실의 경계에 선 열일곱 살들의 기록
이 작품집에서 주인공들은 대부분 열일곱 살이다. 이들은 스스로를 아이에서 벗어나 어른이 되었다고 여기는 나이이기 때문에 꿈과 현실의 경계를 기웃거릴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틈틈이 그 경계의 어느 쪽으로 넘어갈 것인가를 스스로에게 되물으며 현실에 대한 공격과 가정으로의 도피라는 기로에서 서성인다. 이때 소설 속 열일곱 살들은 가출을 택하지만 집의 안락함에 대한 회한과 현실에 부딪쳐야 하는 두려움이라는 이중의 고통을 피할 수 없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기 때문에 두렵고, 무엇이든 다 가지고 싶기 때문에 회한이 생기는 어중간한 열일곱 살들에게 작가는 주목한다.
소설 속의 이 불안한 소년 소녀들은 자신이 열일곱 살임을 강조하거나 손칼, 칼침 자리 같은 자기 현시적 이미지들에 애정을 쏟는 방식으로 스스로 성인임을 인정받으려 한다. 그런데 이런 강렬한 이미지들은 주로 아버지에게서 시작한다.〈아버지의 바다에 은빛 고기 떼〉의 아버지는 소년에게 완전한 어른이면서 무섭고 강한 존재다. 그러나 아버지는 항상 바다로 떠나며 칼침 흉터를 지닌 외설적이고 원초적인 모습으로 형상화된다. 소년은 이런 아버지를 증오하면서도 한편으로 기다리는 이중적 모습을 보여준다. 아버지의 흉터를 일종의 훈장으로 여겨 아버지보다 더 크고 아름다운 흉터로 몸을 꾸미고도 싶어 한다. 스스로를 원초적 아버지와 동일화하려는 이 욕망은 이 작품집 속 대부분의 주인공들 것이기도 하다. 박기동 소설은 성장기의 혼란 속에서 소년 소녀들이 일반적인 권위의 상징과는 다른 아버지와의 관계를 통해 곧 직면하게 될 현실로 나아가는 과정을 담는다.
새로운 아버지의 형상에서 오는 성장 실패담
열일곱 살들이 경계와 기로의 지점을 서성대며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아버지’라는 존재는 매우 강렬한 고리를 지으며 등장한다. 소설 속 열일곱 살들은 자연스럽게 성숙해가기보다는 주로 성장에 실패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 근원도 아버지들에게서 나온다. 전통적 근대소설에서 세속적 권위의 상징으로 다루어지던 아버지 대신 작가는 계속해서 외설적이고 원초적인 아버지 상을 담아내는 것이다.〈창공에 빛난 별 물 위에 어리어〉에서 자신의 삶을 지배하는 “아버지의 집”에서 도망친 열일곱 살 소녀는 소년을 만나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려 했지만 이것은 판타지로 드러나고 실제 소녀의 아버지는 가출 소년 소녀들의 피를 뽑아 파는 외설적인 인물로 그려 충격을 준다.〈가라앉는 섬〉에서의 아버지도 공적인 법과 권위의 상징이 아니라 “위아래 없이 화냥년들이 산”다는 강 건너로 배를 훔쳐 타고 떠난 뒤 소식이 없는 부끄러운 존재다.〈강 건너 불빛〉의 소년은 이런 아버지에 대한 죄의식으로 인해 오히려 ‘섬’이라는 공간에서 모성에 점령당하고 육지로 나온 후에도 아버지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게 된다.
이처럼 박기동 초기 작품 속에 강하게 박혀 있는 조금 어슷하고 비틀린 아버지들은 주체를 고갈시키고 그 욕망을 방해해 열일곱 살들의 성장 가능성을 봉쇄해버리는 역할을 한다. 부모와의 관계를 겪으며 소년 소녀가 어른으로 자라게 되는 기존의 가족 로망스와 이 로망스를 주도하던 상징적 아버지는 외설적이고 원초적인 아버지, 이를 넘어서려는 욕망과 닮고 싶은 욕망이 공존하는 열일곱이라는 나이의 등장으로 와해되고 만다. 이후의 작품들에서 이 아버지들이 점차 아들의 성장 모델이 되어간다는 점을 볼 때, 이 작품집의 아버지들은 소년 소녀, 작가와 함께 과도기의 혼란을 겪으며 성장해가는 존재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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