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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90 | ▼a 002.0951 ▼b 2011 | |
| 100 | 1 | ▼a 葉德輝, ▼d 1864-1927 ▼0 AUTH(211009)787 |
| 245 | 1 0 | ▼a 서림청화 : ▼b 중국을 이끈 책의 문화사 / ▼d 섭덕휘 지음 ; ▼e 박철상 옮김 |
| 246 | 0 9 | ▼a 書林淸話 |
| 246 | 3 | ▼a Shu lin qing hua |
| 260 | ▼a 서울 : ▼b 푸른역사, ▼c 2011 ▼g (2012) | |
| 300 | ▼a 589 p. : ▼b 삽화 ; ▼c 25 cm | |
| 500 | ▼a 색인수록 | |
| 700 | 1 | ▼a 박철상 ▼g 朴徹庠, ▼d 1967-, ▼e 역 ▼0 AUTH(211009)97764 |
| 900 | 1 0 | ▼a Ye, Dehui, ▼e 저 |
| 945 | ▼a KLPA |
소장정보
| No. | 소장처 | 청구기호 | 등록번호 | 도서상태 | 반납예정일 | 예약 | 서비스 |
|---|---|---|---|---|---|---|---|
| No. 1 | 소장처 중앙도서관/제2자료실(3층)/ | 청구기호 002.0951 2011 | 등록번호 111633670 (17회 대출) | 도서상태 대출가능 | 반납예정일 | 예약 | 서비스 |
| No. 2 | 소장처 중앙도서관/제2자료실(3층)/ | 청구기호 002.0951 2011 | 등록번호 111633671 (16회 대출) | 도서상태 대출중 | 반납예정일 2026-04-11 | 예약 | 서비스 |
| No. 3 | 소장처 과학도서관/Sci-Info(1층서고)/ | 청구기호 002.0951 2011 | 등록번호 121221843 (3회 대출) | 도서상태 대출가능 | 반납예정일 | 예약 | 서비스 |
| No. 4 | 소장처 세종학술정보원/인문자료실1(2층)/ | 청구기호 002.0951 2011 | 등록번호 151301818 (2회 대출) | 도서상태 대출가능 | 반납예정일 | 예약 | 서비스 |
| No. | 소장처 | 청구기호 | 등록번호 | 도서상태 | 반납예정일 | 예약 | 서비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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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텐츠정보
책소개
한학자인 부친의 영향을 받아 옛 서적에 깊은 관심을 가지면서부터 매우 이채로운 경력을 쌓아온 박철상. 고문헌 연구에 탁월한 행보를 보여온 박철상이 국내 최초로 <서림청화書林淸話>를 완역했다. <서림청화>는 청나라 말기 판본학.목록학의 대가 섭덕휘葉德輝(1864~1927)의 저술로, 책 자체를 다룬 저작으로는 전무후무하다는 평을 듣는 중국 서지학의 고전이다.
<서림청화>는 중국 출판문화 전반을 체계적으로 다룬 최초의 저작이다. 고서의 판본에 사용되는 각종 용어와 명칭을 정리하고 그 근원을 추적했으며, 또한 역대 출판기관과 그 곳에서 출판한 서적들을 시대별로 개괄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판본학, 목록학 분야의 고전이 된 <서림청화>는 이후 등장한 수많은 저술에서 중요하게 인용되고 있다.
옮긴이에 따르면 우리 선조들이 수입한 중국 고서는 또 다른 형태의 우리 책이다. 조선에 수입된 중국본은 형태적으로 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조선 지식인들은 중국본 서적을 수입하자마자 대부분 능화문이 들어간 조선식 장정으로 바꿨다. 거기에다 새롭게 제목을 쓰고 정성스럽게 장서인을 찍었으며, 때론 빼곡히 필기를 남기기도 했다. 외형적으로는 완전히 다른 우리 책의 형태로 개장한 것이다.
중국 출판문화를 깊이 있게 다룬 <서림청화>는 출판과 판본에 관한 수많은 물음을 던지고 답한다. 옮긴이 박철상은 섭덕휘가 <서림청화>에서 던진 질문을 조선의 출판문화에도 똑같이 던져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섭덕휘가 가지고 있던 문제의식을 우리 책에도 적용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100년 전 중국의 서재를 엿보다
-중국 서지학의 고전 <서림청화> 최초 완역
책을 사는 것은 첩妾을 사는 것과 같아 / 고운 용모에 마음 절로 기뻐지네. / 첩이야 늙을수록 사랑이 식어가지만 / 책은 낡을수록 향기 더욱 강렬하지. / 책과 첩, 어느 것이 더 나을지 / 쓸데없는 고민이 자꾸 이어지네. / 때로는 내 방에 죽치고 있는 첩보다 / 서가에 가득한 책이 더 낫지.
-환빈 섭덕휘 <환빈이 책을 사는 노래> 중에서
21세기 서치, 20세기 서치를 만나다
고문헌 연구에 탁월한 행보를 보여온 박철상이 국내 최초로 <서림청화書林淸話>를 완역했다. <서림청화>는 청나라 말기 판본학·목록학의 대가 섭덕휘葉德輝(1864~1927)의 저술로, 책 자체를 다룬 저작으로는 전무후무하다는 평을 듣는 중국 서지학의 고전이다. 우리 시대 고문헌 분야에서 일가를 이뤘다고 평가 받는 박철상과 이 책의 만남은 그래서 의미가 남다르다.
그리고 얼마 후 나는 그토록 그리던 목판본 <서림청화> 원본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출장 가기 전에 만나 술자리에서 한 이야기를 그 친구가 기억하고 있다가 인연을 맺어준 것이다. 1997년의 일이다.
그로부터 얼마 후 나는 번역을 시작했다. 금융위기로 온 나라가 시끄러울 때였다. <서림청화>를 번역하며 심란한 마음을 달랬다. 열 권이나 되는 분량이었지만, 초벌 번역은 4개월 만에 끝이 났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섭덕휘가 <서림청화>를 저술했던 상황도 비슷했다. 호남성湖南省에 병란兵亂이 일어나 사람들이 모두 피난을 떠나자 섭덕휘도 옛날에 살던 소주蘇州로 돌아가 <서림청화>를 저술했다. 피난을 고통으로 여기지 않고, 오히려 고향으로 돌아가 <서림청화>의 저술에 몰두했던 것이다.
-<옮긴이 서문> 중에서
박철상의 생업은 은행원(광주은행 외환영업부 부부장)이지만, 고문헌 연구와 관련된 역사학, 한문학, 고미술학, 서예사, 국문학, 서지학 등에 조예가 깊다. 한학자인 부친의 영향을 받아 옛 서적에 깊은 관심을 가지면서부터 매우 이채로운 경력을 쌓아오게 되었다. 그는 장서인에 대한 일련의 연구 발표를 통해 학계에 장서인의 중요성을 고취시키기도 했으며, 또한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의 <완당평전> 비평을 통해 200여 군데의 오류를 지적하는 등 추사 관련 연구에서도 독보적인 위치에 있다.
<서림청화>의 번역 작업은 그간 오랜 연구 활동의 결과물이자 오늘의 그를 있게 한 밑거름이라 할 수 있다. 우리의 고문헌을 이해하기 위해 중국에서 유입된 책들을 빼놓을 수 없었으며, 한문은 물론 고문헌 연구에 필요한 무수한 관련 분야를 알지 못하면 <서림청화>의 번역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책 속에 각종 판본들을 비교해 놓은 주석과 그동안 수집한 여러 도판 자료들이 그 증거다.
중국 출판이 걸어온 길
<서림청화>는 중국 출판문화 전반을 체계적으로 다룬 최초의 저작이다. 고서의 판본에 사용되는 각종 용어와 명칭을 정리하고 그 근원을 추적했으며, 또한 역대 출판기관과 그 곳에서 출판한 서적들을 시대별로 개괄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판본학, 목록학 분야의 고전이 된 <서림청화>는 이후 등장한 수많은 저술에서 중요하게 인용되고 있다. 중국 고서의 판본과 고대 중국의 출판문화를 이해하는 데 이보다 더 적당한 저술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게 옮긴이의 생각이다.
원저자 섭덕휘의 가문은 대대로 유학을 했고 장서에 취미가 있었다. 섭덕휘가 수집한 고서 중에는 송·원대의 판본도 있었지만, 명·청 이래의 정각본精刻本·정교본精校本·초인본初印本 및 초교본?校本 등이 핵심이었다. 특히 청대 장서가들의 장서가 포함된 별집別集은 당대에 독보적이었는데, 이는 섭덕휘 장서만의 특색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총 10권으로 구성, 항목별로 편집된 <서림청화>의 특징을 옮긴이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첫째, <서림청화>는 고서의 판본에서 사용되는 각종 용어와 명칭을 고증하고 그 근원을 추적했다. 예를 들면, 책冊·권卷·본本·엽葉·부部·함函·판본板本·판편板片 등의 명칭이 언제부터 시작되었고, 절초본節抄本·건상본巾箱本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으며, 서사書肆는 언제 생겨났고, 그림이 있는 책은 언제 시작되었는가 하는 것 등이다.
둘째, <서림청화>는 중국 고대 서적 출판에 관한 각종 전문지식을 비교적 체계적으로 논술한 최초의 저작이다. 역대 목판본의 규격과 비용 등을 비롯하여 서적의 수장·교감·판각·인쇄·장정·구입·감별· 보존 등의 분야에 대해서도 비교적 자세하게 서술했다.
셋째, <서림청화>는 역대 출판기관과 그 곳에서 출판한 서적들의 차이점을 비교하고 우열을 논했다. 예를 들면 역대 관각官刻·사각私刻·방각坊刻·초본?本의 유통과 전승은 물론, 장서가로부터 각공刻工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성명과 공적에 대해 가능한 한 자세하게 고증하고 비교했다. 역대 개인 출판가들의 출판 현황에 대해서도 자세히 설명했다.
-<서림청화 해제> 중에서
우리에게 중국 고서란 어떤 의미인가?
옮긴이가 <서림청화>를 번역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중국의 출판문화와 중국 고서에 대한 이해야말로 조선시대 우리 출판문화 이해의 첩경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중국 고서란 어떤 의미일까?
중국 고서는 조선시대 출판물의 저본底本이었다. 조선시대 출판 방식의 하나는 중국에서 간행된 서적을 수입하여 활자나 목판으로 재간행하는 것이었다. 이런 방식의 출판은 정보의 수입과 유통이라는 측면에서 중요했기 때문에 중국과 교류를 시작한 이래 꾸준히 추진되었고, 간행된 서적도 상당수에 이른다. 중국 고서가 조선의 출판과 장서문화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이유이다.
조선과 중국 출판문화의 가장 큰 차이는 상업출판의 성행 여부에 있었다. 안정적인 수요층을 전제로 하는 상업출판은 광범위한 서적의 유통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책이 다양해진다는 측면에서도 중요했다. 그러나 조선의 상황은 여의치 않았다. 빈약한 경제력과 주자학 위주의 사상적 흐름, 일부 계층에 한정된 서적 수요는 관판官版 중심의 출판 시스템을 유지하게 했고, 본격적인 상업출판의 출현을 지연시켰다. 이때 중국본의 수입은 조선 출판문화의 취약점을 보완해주는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조선에서 출판되지 않은 서적들을 접할 수 있는 중요한 통로가 되었다.
또한 중국 고서는 조선시대 출판의 공백을 보충해 주었다. 특히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출판 시스템이 붕괴되었던 시기에는 그 역할이 더욱 컸다. 임진왜란은 조선 역사상 가장 큰 문화적 파괴가 자행된 시기였다. 조선 전기에 간행된 중요한 전적典籍의 상당수가 멸실되었고, 출판의 핵심이었던 동활자와 고려조부터 전해오던 왕실도서들이 약탈되거나 잿더미로 변해버렸다. 출판을 하려고 해도 그 저본마저 구하기 어려운 출판 공황이 발생한 것이다. 정부는 멸실된 전적들을 정비하기 위해 국내에 흩어져 있던 서적들을 수집하는 한편, 사행을 통해 명나라로부터 수입을 추진했다. 중국본의 수입은 빠른 시일 안에 부족한 서적을 보충하는 성과를 거두었을 뿐 아니라, 조선 지식인들의 장서구조를 바꾸어 놓음으로써 문학과 사상에까지도 직간접적인 영향을 끼쳤다. 다양한 중국본을 대량으로 수장한 새로운 형태의 장서가들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의 일이라고 옮긴이는 말한다.
이후 정조가 등극하면서 출판과 장서문화에 또 한 번의 변화가 일어난다. 정조가 청나라 문물에 적극적인 관심을 표명하면서 청나라에서 간행된 서적들을 대량으로 수입했기 때문이다. 조선의 지식인들은 중국본을 직접 수입해 지적 갈증을 채워나갔고, 청나라 문사들과 교유를 넓히면서 청나라에서 간행된 서적들이 조선 지식인들의 서재에 넘쳐나게 되었다.
중국 고서는 또 다른 형태의 우리 책
옮긴이에 따르면 우리 선조들이 수입한 중국 고서는 또 다른 형태의 우리 책이다. 조선에 수입된 중국본은 형태적으로 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조선 지식인들은 중국본 서적을 수입하자마자 대부분 능화문이 들어간 조선식 장정으로 바꿨다. 거기에다 새롭게 제목을 쓰고 정성스럽게 장서인을 찍었으며, 때론 빼곡히 필기를 남기기도 했다. 외형적으로는 완전히 다른 우리 책의 형태로 개장한 것이다.
현재 국내외 도서관에는 이런 모습을 한 엄청난 양의 중국 고서들이 남아 있다. 그러나 이들은 조선본 코너가 아닌 중국본 코너에 꽂혀 있다. 이들은 단순한 중국본 고서가 아니라 조선 지식인들의 지적 탐색 과정을 보여주는 ‘우리 책’이다. 조선에서 간행되지는 않았지만 조선에서 유통됨으로써 조선 지식인들의 지적 자양분이 된 ‘우리 책’이다. 고려시대부터 왕실에 전해 내려오다 임진왜란 때 약탈되어 지금은 일본 궁내청宮內廳 서릉부書陵部에 소장되어 있는 북송본北宋本 <통전通典>이 그 대표적이 사례다. 2002년에 발견된 원판본元版本 <지정조격至正條格>도 그렇다. 과연 중국에서 간행된 책이라는 이유로 이들을 도외시하면서 조선의 지성사를 이야기 할 수 있을까? 제대로 된 조선의 학술사를 말할 수 있을까?
-<옮긴이 서문> 중에서
2011년, 올해는 <서림청화>가 저술된 지 100년이 되는 해다. 최근 해외로 유출된 문화재, 특히 전적典籍에 관심이 높은 반면, 우리의 선조들이 수입했던 중국본에는 아직까지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 남의 나라에서 간행된 책이기에 우리 책이란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출판의 주체만큼이나 독서의 주체 또한 중요한 문제다. 그것은 지식 유통의 문제이자 우리 학술사, 지성사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중국 출판문화를 깊이 있게 다룬 <서림청화>는 출판과 판본에 관한 수많은 물음을 던지고 답한다. 옮긴이 박철상은 섭덕휘가 <서림청화>에서 던진 질문을 조선의 출판문화에도 똑같이 던져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섭덕휘가 가지고 있던 문제의식을 우리 책에도 적용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서림청화>는 중국 출판문화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넓히는 것은 물론, 나아가 우리 출판문화에 대한 이해의 깊이를 더하는 징검다리가 될 것이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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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섭덕휘(지은이)
청나라 말기 학자로 자字는 환빈煥彬, 호는 직산直山 또는 해원?園이다. 주정산민朱亭山民이란 별호를 사용하기도 했다. 호남성湖南省 장사長沙 출신으로 1892년에 진사進士에 합격한 후 이부주사吏部主事가 되었지만 곧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는 장사에 관고당觀古堂과 여루麗樓를 세우고 고서를 수집해 그 안에 수장했다. 그의 장서 속에는 왕사정王士禎·공계함孔繼涵·유희해劉喜海·원영방袁芳瑛 등 청대 장서가들의 장서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의 장서는 명·청 이래의 정각본精刻本·정교본精校本·초인본初印本 및 초교본?校本 등이 핵심이었다. 특히 청나라 사람들의 별집別集은 그 수장이 비교적 온전해 당대에 독보적이었다. 판본학版本學과 목록학目錄學에 뛰어나 <서림청화> 10권, <서림여화書林餘話> 2권, <장서십약藏書十約> 1권, <해원독서지?園讀書志> 16권, <관고당장서목觀古堂藏書目> 4권 등을 저술했다.
박철상(옮긴이)
1967년 전북 완주에서 출생했다. 한학자인 부친의 영향을 받아 일찍부터 우리 옛 전적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조선시대 장서인(藏書印)에 대한 일련의 연구 성과를 발표함으로써 학계에 장서인의 중요성을 고취시켰고, 조선후기 추사 김정희의 학예에 관한 독보적인 연구 성과를 발표하였다. 「조선시대 금석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이 논문의 학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모하(慕何)실학논문상을 수상했다. 현재 옛 간찰, 금석문, 조선시대 출판 및 장서문화, 연행(燕行), 여항인(閭巷人) 등 19세기 학술과 문화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저서로 『세한도』(2010), 『서재에 살다』(2014), 역서로 『서림청화(書林淸話)』(2011)가 있다. 공저로 『정조의 비밀 어찰』(2011), 『사상으로 조선시대와 소통하다』(2012)가 있으며, 다산 정약용의 문집에 수록되지 않은 간찰을 모은 『다산 간찰집』(2012)을 펴내기도 했다. 이 밖에도 40여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목차
목차 옮긴이서문:『서림청화』저술100년을맞이하며 = 5 『서림청화』해제 = 10 섭덕휘의 서문 = 26 무전손의 서문 = 28 【권1】 출판은 왜 하는가? = 32 판본에 관한 장서가들의 기록 = 39 책(冊)이란 무엇인가? = 50 권(卷)이란 무엇인가? = 56 본(本)이란 무엇인가? = 58 엽(葉)이란 무엇인가? = 63 부(部)란무 엇인가? = 66 함(函)이란 무엇인가? = 67 목판본은 언제 시작되었는가? = 70 오대(五代)에 목판본 출판이 성행했다 = 73 당(唐)나라 천우(天祐) 연간의 목판본은 가짜다 = 77 판각(板刻)은 금석(金石)에서 유래하였다 = 78 판본(板本)이란 무엇인가? = 80 판편(板片)이란 무엇인가? = 82 출판에 사용된 용어와 의미 = 83 【권2】 절초본(節◆U9214◆本)은 언제 시작되었는가? = 94 건상본(巾箱本)은 언제 시작되었는가? = 95 서사(書肆)는 언제 시작되었는가? = 98 목판본의 권점(圈點)은 언제 시작되었는가? = 100 목판본의 송체자(宋體字)와 원체자(元體字) = 101 불법복제 금지는 송나라 사람들이 시작했다 = 104 송대 건안(建安) 여씨(余氏)가 출판한 서적들 = 114 남송 임안(臨安) 진씨(陳氏)가 출판한 서적들 ① = 123 남송 임안(臨安) 진씨(陳氏)가 출판한 서적들 ② = 144 송대 진기(陳起) 부자가 출판한 서적은 서로 다르다 = 146 【권3】 송대의 관판본(官板本)과 서원본(書院本) = 160 송대 주(州)ㆍ부(府)ㆍ현(縣)의 출판 = 180 송대의 사가판본(私家板本)ㆍ가숙본(家塾本) = 182 송대의 방각본(坊刻本) = 190 【권4】 금대(金代) 평수(平水)의 출판 = 202 원대의 관판본 = 203 원대(元代)의 사가판본 = 211 원대의 방각본(坊刻本) = 216 원대 건안(建安) 섭씨(葉氏)가 출판한 서적들 = 223 광근당(廣勤堂)의『만보시산(萬寶詩山)』 = 226 【권5】 명대의 관판본 = 240 명대 목판본의 명품 = 243 명대의 사가판본ㆍ방각본 = 251 【권6】 송대 감본(監本)의 판매 방법 = 274 남송 감본의 보수 = 277 경전(經傳)의 주소(注疏)는 언제 합쳐졌는가? = 278 송대 의촉본(蜀本)『칠사(七史)』 = 280 송감(宋監)에서 중각한 의서 = 281 송판본 찬도호주(纂圖互注) 경서(經書)ㆍ자서(子書) = 283 송판본의 패기(牌記) = 286 송판본은 한 사람이 글씨를 썼다 = 290 송판본 중에서 가장 귀한 책 = 291 송판본의 자구(字句)도 모두 고본(古本)과 같은 것이 아니다 = 295 송판본에도 오류가 많다 = 297 송판본의 판식 = 299 송판본은 지묵(紙墨)이 아름답다 = 302 송대의 조지(造紙)와 서적의 인쇄 = 306 송대에는 책을 인쇄할 때 초지(椒紙)를 사용했다 = 307 송대의 필사 용지 = 308 송ㆍ원의 판본은 언제부터 귀하게 여겼는가? = 312 【권7】 원판본이 송판본보다 낫다 = 326 원판본에는 송설체가 많다 = 327 원판본에는 명수들이 쓴 것이 많다 = 330 원대의 관판본은 누가 만들었나? = 333 원대의 출판 비용 = 336 명대의 관판본은 번각만 가능했다 = 338 명대 서파본(書◆U5E15◆本) 의 오류 = 339 명나라 사람들은 출판을 잘 몰랐다 = 340 명대 남감(南監)에서는 벌금을 걷어 책판을 보수했다 = 342 명대 출판의 문제점 ① = 343 명대 출판의 문제점 ② = 344 명대의 허종로(許宗魯) = 346 명판본에서는 고체자(古體字)를 사용하였다 = 347 명대의 출판비용은 저렴했다 = 348 명판본의 사서생(寫書生) = 350 명나라 사람들의 책 장정 = 352 명대 모진의 급고각 ① = 353 명대 모진의 급고각 ② = 356 명대 모진의 급고각 ③ = 364 명대 모진의 급고각 ④ = 365 명대 모진의 급고각 ⑤ = 366 명대 모진의 급고각 ⑥ = 368 명대 모진의 급고각 ⑦ = 369 명대 모진의 급고각 ⑧ = 370 【권8】 송대 이래의 활자판 = 380 명대 석산(錫山) 화씨(華氏)의 활자판 = 387 명대 화견(華堅)의 세가(世家) = 393 명대 안국(安國)의 세가(世家) = 396 일본과 조선의활 자판 = 398 투인본(套印本) = 401 당ㆍ송 사람들의 유서(類書)출판 = 402 회도(繪圖) 서적의 유래 = 406 고서의 집각(輯刻) = 408 총서의 시작 = 410 총서(叢書)인가? 총집(總集)인가? = 412 원ㆍ명대의 도서관 = 413 송ㆍ원ㆍ명대의 인쇄용지 = 416 명대 이래의 희귀본 = 422 【권9】 내부(內府)에서 간행한 흠정서(欽定書) = 436 사고발관교서첩식(四庫發館校書帖式) = 444 무영전(武英殿) 취진판(聚珍板)의 누락 = 446 무석(無錫) 진씨(秦氏)가 출판한『구경(九經)』 = 447 『통지당경해(通志堂經解)』① = 448 『통지당경해』② = 449 『통지당경해』③ = 451 명수(名手)들의 사각본(寫刻本) = 452 청대에는 송판본 경사(經史)를 방각하지 않았다 = 454 완원의『십삼경주소』 = 455 『황청경해』의 단행본 = 457 장서에도 등급이 있다 = 459 건륭ㆍ가경 연간의 총서(叢書) = 460 고향 선배들의 책을 출판하다 = 462 고금 출판의 변천 = 463 오문(吳門) 서방(書坊)의 성쇠 = 465 북경 서사의 어제와 오늘 = 469 【권10】 『천록림랑』속의 위조된 송ㆍ원본 = 486 장사치들의 송ㆍ원본위조 = 487 송ㆍ원본위조는 명대에 시작되었다 = 490 서범(書范)이란 무엇인가? = 492 일본의 송판본은 믿을 수 없다 = 495 장서와 송판 = 497 송대의 판금서적 - 소동파ㆍ황산곡의 시문집 = 498 주자가 서적의 출판을 탄핵하다 = 499 명대 왕씨(王氏)의『사기』에 관한 이야기 = 502 주이존(朱彛尊)이 출판한 서적에 관한 이야기 = 504 명대 이래의 필사본 = 505 옛사람들은 책을 베낄 때 폐지를 사용했다 = 517 책을 베끼는 데 드는 비용이 저렴했다 = 519 여자가 필사한 서적들 = 520 장서가의 인기(印記) = 525 장서가들은 송ㆍ원본을 편애한다 = 529 서림청화발 = 538 찾아보기 = 540 서명 = 540 인명 = 564 일반 = 57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