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서체인 동국진체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서로서, 동국진체를 대표하는 서가(書家) 6인의 서예이론을 종합적이고 계통적으로 연구하여 한국서예이론의 맥락을 가늠할 수 있게 한 책이다. 저자는 동국진체가 반만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한민족의 고유한 서예인 동시에 선비들의 고차원적인 사유의 결정체임을 최초로 밝혀냄으로써 조상들의 예술적 수준을 널리 알리는 계기를 마련했다.
본서는 동국진체에 담긴 조상들의 서예에 대한 이상과 미학정신을 추적하여 궁극적으로 한국 서예이론사 구축을 목표로 저술되었다. 연구대상은 우리 민족의 주체적 의식과 예술 활동이 왕성하게 일어났던 17세기에서 19세기까지의 3세기에 걸친 시기의 서론이다. 동국진체 서가 6인은 친구, 인척, 사승 등 밀접한 인간적 유대관계 속에서 서예담론을 전개하였다.
한국의 고유서예(固有書藝), 동국진체(東國眞體)를 말하다
-李匡師와 金正喜 두 쌍벽(또는 거두)의 불꽃 튀는 書藝論爭
1. 저자와 책 소개
저자 문정자는 우리나라의 고유 서예인 동국진체의 실체를 최초로 학계에 소개한 학자이다.
이번에 출판한 『한국서예, 先人에게 길을 묻다』(문정자, 2013, 7, 다운샘)는 고유서체인 동국진체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서로서, 동국진체를 대표하는 서가(書家) 6인의 서예이론을 종합적이고 계통적으로 연구하여 한국서예이론의 맥락을 가늠할 수 있게 한 책이다. 저자는 동국진체가 반만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한민족의 고유한 서예인 동시에 선비들의 고차원적인 사유의 결정체임을 최초로 밝혀냄으로써 조상들의 예술적 수준을 널리 알리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는 한국서예사연구의 발판을 마련한 큰 성과일 뿐만 아니라 나아가 한중일 삼국의 서예이론을 비교할 때, 한국서예이론의 고유한 전통과 주체성 및 독창성을 입증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를 제공한 것이다.
본서는 동국진체에 담긴 조상들의 서예에 대한 이상과 미학정신을 추적하여 궁극적으로 한국 서예이론사 구축을 목표로 저술되었다. 연구대상은 우리 민족의 주체적 의식과 예술 활동이 왕성하게 일어났던 17세기에서 19세기까지의 3세기에 걸친 시기의 서론이다. 동국진체 서가 6인은 친구, 인척, 사승 등 밀접한 인간적 유대관계 속에서 서예담론을 전개하였다. 그 결과 서론의 성격은 계승적 측면과 변혁적 측면의 두 측면을 아우른다. 동국진체 서론은 현존하는 한국서론의 대표성을 지니며 그 안에 차원 높은 예술정신과 고유한 가치를 내포한다.
2. 키워드: 동국진체(東國眞體)에 대한 정의들
-‘동국진체’란 이 땅 위의 사람들에 의해서 오랜 시간 성숙되어온 고도의 문화적 역량과 예술혼이 결합된 참된 글씨이다. 환언하면 ‘동국진체’는 우리 민족의 특수한 미의식과 고차원적인 사유(思惟)가 결합된 글씨로서, 일명 ‘한민족 진체(韓民族 眞體)’로 명명할 수 있다. 이는 왕희지의 ‘진체(晉體)’ 및 무기무운의 ‘속체(俗體)’와 구별되는 글씨이며 개혁성, 고유성, 철학성, 독창성, 주체성, 현재성의 특성을 지녔다.
-‘동국진체 서론(書論)’은 한국서예이론의 대간(大幹)이며, 한국서예사에 찬연히 빛나는 이론의 금자탑이다.
-동국진체는 17?18?19 세기의 서가인 이서, 윤두서, 윤순, 이광사, 이삼만, 김정희등 각 시대 최고의 지성이 주도했던 서예 개혁 운동이자 서예이론이며 서예이다.
6인의 동국진체 서가들은 ‘철학성’과 ‘정법’의 확립에 초점을 맞추어 정도서예의 이론적 바탕을 확립하였고, 나아가 독창적인 자가체(自家體)를 창조하여 이론과 실제가 융합된 서예 모델을 제시하였다. 그것이 곧 옥동체(玉洞體), 공재체(恭齋體), 백하체(白下體), 원교체(圓嶠體), 창암체(蒼巖體), 추사체(秋史體)이다. 그들은 이론과 서예 두 측면을 하나로 융합하여 이론가이자 서예가로서 한국서예사상 대표적 위상을 차지한다.
3. 동국진체에서 진(眞)이란?
진(眞)의 실체는 첫째, 한민족의 역사와 문화, 살아 숨 쉬는 생명의 숨결이다.
둘째, 인간과 자연의 합일을 지향하는 선비들의 고차원적인 사유와 이 땅에서 형성된 고유한 미의식이다.
4. 본서의 성과 및 중요한 포인트
1) 한국의 고유서예인 동국진체의 존재를 발굴하고 그 가치와 중요성을 새롭게 부각시킨 데에 큰 의의가 있다. 또한 동국진체가 실제로 한국서예정신의 중추를 이루고 이로 인해 한국서예사의 기반이 더욱 충실해질 수 있었던 것은 본서가 얻은 성과이다.
2) 본서를 통해 얻은 가장 큰 수확은, ‘한국 서예는 중국 서예의 아류일 뿐인가?’라는 의문을 과감히 떨쳐내고, “한국서예는 새로운 창조이다”라고 당당하게 주장할 근거를 확립한 점이다.
-저자는 동국진체 서가들이 탁월한 지성과 창조적 열정으로 확립한 한민족의 진정한 서예를 확인하였다. 본 연구를 통해 동국진체는 ‘민족 고유의 미의식과 깊은 철학성을 내포한 독창의 세계이다’라는 확고한 결론을 도출하였다.
3) 김정희가 이광사를 비판한 이후로 18세기의 서예사가 오랜 시간 제자리를 잡지 못한 채 왜곡되어 왔다. 본서에서 그 실체적 진실을 추적한 결과로 한국서예사에서 18세기 서예를 재평가 하고 그 위상을 회복시킨 점에서 의의가 크다.
4) 한국서예사에 한국고유서론이 존재함을 알렸고, 그 독창적인 사유와 서예미학의 가치를 분석하여 한국서예정신의 윤곽을 드러냈다. 이로써 한국의 서론과 중국, 일본의 서예이론을 비교 논의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였다.
5) 200여장의 서예 걸작품을 두루 수록하여 이해를 돕고, 동시에 읽으며 감상하는 즐거움을 주었다. 그 가운데 다수가 처음 공개되는 작품들이다.
5. 동국진체의 서예사적 의의.
동국진체는 장구한 한국 서예사의 흐름 속에 독보적으로 존재한다. 그것은 조선 시대의 주체적이고 창조적인 서예정신을 대변할 뿐 아니라, 보다 초월적이며 영속적인 문화한민족의 예술적 표상으로 존재한다는 결론을 도출하여, 문화적 자긍심을 고취하였다.
6. 동국진체와 현 시대 서예를 접목시킬 공통분모.
1) ‘동국진체는 개혁이다’
동국진체 서론의 핵심은 정법회복을 위한 개혁정신이다.
그들은 ‘바꾸자’, ‘왜’, ‘무엇을’, ‘어떻게’와 관련된 논의를 전개했다.
2) ‘동국진체는 열린정신이다’.
동국진체는 어느 시대 누구든지 당대서단의 모순을 각성하고 변혁의 대상으로 삼아 추동하면 언제든 열리는 역동적인 정신임을 파악했다.
3) ‘동국진체는 시대의 변화에 발맞추어 나가는 진보정신이다’
동국진체 서가들은 각자 당면한 시대의 정신과 가치를 서론에 반영하였다. 우리가
21세기 현재의 동국진체를 창출하려면 이 시대의 진실과 모순의 실체를 파악하고 미래의 비젼을 확립하는 일이 최우선 과제라고 결론지었다.
7. 동국진체 서가들이 후학에게 던지는 메시지.
-동국진체 서가들은 오늘의 한국인에게 문화적 자긍심과 함께 스스로 문화 창조의 새 주역이 되어야 함을 일깨운다. 즉 우리는 가치통합적인 한국(韓國)의 진체(眞體)를 새롭게 창조할 책무가 있고, 그것이 동국진체 정신을 현재진행형으로 되살리는 길이다. 그것은 또한 중국, 일본과 차별화된 한국만의 주체적이고 고차원적인 예술을 창출하는 방법이다.
8. 동국진체 書家들의 名作
1.옥동 이서(玉洞 李?)의 글씨: 97쪽, 도33, 「행서, 綠雨堂(孤山古宅宅號懸板)」
공재 윤두서가(恭齋 尹斗緖家)의 당호(堂號)인 ‘녹우당(綠雨堂)’은 뒷산 비자나무 숲 높은 가지에서 잎 떨어지는 소리가 빗소리 같다고 하여 지어진 운치 있는 이름이다. 옥동 이서가 웅장하고 기운 생동하는 동국진체 필치로 녹우당(綠雨堂) 현판(懸板)을 휘호하였다.
2. 공재 윤두서(恭齋 尹斗緖)의 글씨:
1) 56쪽, 도13, <행서, 묵희(墨戱)>
윤두서가 이서와 함께 동국진체(東國眞體)를 창시하고 동국진체 필법에 따라 쓴 글씨이다. 획에 근골이 있고 생동하면서도 윤두서의 여유로운 성품이 드러난다.
2) 60쪽, 도18, <예서, 유희한묵(遊戱翰墨)>
윤두서는 조선에서 고전(古篆)과 팔분(八分)이 쇠멸한 상태에서 진한(秦漢)의 전서·예서를 널리 수집하여 깊이 연구한 끝에 자득하였다. 이 글씨는 당시 독보적인 전예서의 경지를 보여준다.
3. 백하 윤순의 글씨
128쪽, 도56, <초서, 고어팔곡병(古語八曲?)>
18세기 서예평론가 이규상(李奎象)이 말했다. “윤순의 글씨는 타고난 재주라고 할 수 있는데 획법과 글자의 구성은 너무나 아름다워 마치 봉황이 춤추고 구슬이 찬란하게 빛나는 듯하니 우리나라 100년간의 글씨 가운데 으뜸이라고 할 만하다.”
결구조형을 중시하고 원법(圓法)을 구사했던 윤순의 글씨는 이처럼 자태가 뛰어났으며 이로써 당시 조야(朝野)에 필명을 크게 떨쳤다.
4. 원교 이광사
291쪽, 도168 <행초서, 대흥사 침계루(大興寺 枕溪樓)>
이광사의 서예원리는 자연물에 나타난 천기조화의 모습과 생명성을 글씨로 구현하는 것이다. 이 글씨는 자신의 조형원리를 생동하는 필치로 잘 표현하였다.
이 글씨가 있는 대흥사에는 조선의 최고 서가인 원교와 추사 두 사람의 글씨가 있고, 그들과 얽힌 일화가 전해온다. 예컨대 추사가 제주도로 귀양가는 길에 대흥사에 들러, 원교가 쓴 대웅보전(大雄寶殿) 현판을 보고 떼어내라고 호통을 쳤고, 귀양이 풀려 돌아오는 길에 다시 대흥사에 들른 추사는 뒤늦게 원교의 웅혼한 글씨에 감복하여 다시 달게 했다 한다.
5 창암 이삼만
226쪽, 도122, <해서, 신독(愼獨)>
‘그 홀로를 삼가라(신독愼獨)’는 뜻의 이 글씨는 ’어리석은 듯 서툰 듯한‘ 풍격을 한껏 품고 있다. 이삼만이 우졸미(愚拙美)란 화두에 마제잠두법(馬蹄蠶頭法)을 가미하여 쓴 글씨이다. 이 작품은 그가 구현하려는 ’우졸미‘의 궁극이며 노자(老子)의 대기(大器)로서의 서예로 볼 수 있다.
6. 추사 김정희
329쪽, 도192, <예서, 화법유장강만리畵法有長江萬理, 서예여고송일지書藝如孤松一枝>
추사의 조형원리는 기본적으로 전서와 예서 해서를 하나로 결합하고 고졸화(古拙化)하여 변화의 미를 추구함과 동시에 생명력을 고조시키는 것이다. 이 글씨는 변화의 다양성과 고졸미란 풍격을 잘 표출한 걸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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