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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연 : 김인정 작품집 (4회 대출)

자료유형
단행본
개인저자
김인정
서명 / 저자사항
홀연 : 김인정 작품집 / 김인정
발행사항
서울 :   온우주,   2013  
형태사항
382 p. ; 21 cm
총서사항
온우주 단편선 ;007
ISBN
9788998711078
내용주기
逆天漫談 -- 柔淳漫談 -- 紙背漫談 -- 심각하게 찬란한 -- 冬栢 -- 花仙 -- 백탑의 도시 -- 천 번의 밤 천 번의 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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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소장처 청구기호 등록번호 도서상태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No. 1 소장처 중앙도서관/제3자료실(4층)/ 청구기호 897.37 김인정 홀 등록번호 111706892 (2회 대출) 도서상태 대출가능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B M
No. 2 소장처 과학도서관/Sci-Info(1층서고)/ 청구기호 897.37 김인정 홀 등록번호 121227837 (2회 대출) 도서상태 대출가능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B M
No. 소장처 청구기호 등록번호 도서상태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No. 1 소장처 중앙도서관/제3자료실(4층)/ 청구기호 897.37 김인정 홀 등록번호 111706892 (2회 대출) 도서상태 대출가능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B M
No. 소장처 청구기호 등록번호 도서상태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No. 1 소장처 과학도서관/Sci-Info(1층서고)/ 청구기호 897.37 김인정 홀 등록번호 121227837 (2회 대출) 도서상태 대출가능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B M

컨텐츠정보

책소개

'온우주 단편선' 7권 김인정 작품집. 단아하고 묵향 배인 문체로 쓴 동양적인 필치가 압도적인 작품집이다. 가상의 나라 월훤국, 도사들이 실제로 존재하는 가상의 현대, 환상의 나라 등 배경은 다르고 이야기도 다르지만, 한결같이 애틋한 정서와 고아하고 단정한 문체, 어여쁜 이야기 끝에 인생의 한 자락을 담는 통찰력을 맛볼 수 있다.

모두 꽃 같구나
하루를 피든 천 년을 피든 똑같다
죄 져버릴 꽃이거니

순백의 종이 위에 은은한 묵향 순정, 붉은 동백꽃잎
찬란한 향기를 정성스럽게 엮은 이야기꾸러미


온우주 출판사에서 독창적인 상상력과 뛰어난 흡입력을 지닌 이야기만 엄선해서 묶은 온우주 단편선의 일곱 번째 작품집으로 김인정의 『홀연』이 출간되었다. 한국 장르문학만을 출간하는 온우주 출판사에서는 이미 출간된 곽재식, 정도경, 이서영, 김현중의 작품집 이후 2013 온우주 단편선으로 전혜진, 박애진의 작품집을 준비 중이며, 2013년 한 해 동안 총 7명의 작가가 쓴 작품집 10권을 펴낼 예정이다.
김인정의 작품집 『홀연』은 단아하고 묵향 배인 문체로 쓴 동양적인 필치가 압도적인 작품집이다. 가상의 나라 월훤국, 도사들이 실제로 존재하는 가상의 현대, 환상의 나라 등 배경은 다르고 이야기도 다르지만, 한결같이 애틋한 정서와 고아하고 단정한 문체, 어여쁜 이야기 끝에 인생의 한 자락을 담는 통찰력을 맛볼 수 있다. 숨 돌릴 틈 없는 생활에서 잠시 멈춰가는 휴식이자 통찰의 시간으로, 김인정의 작품집은 손색이 없을 것이다.

품고만 있으면 아무것도 되지 않아요. 한 글자씩 쓰는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씩 달의 모래들로 탑을 쌓듯이. 알면서도 어렵습니다. - 작가의 말 中

독창적이면서도 전혀 독자를 가르치거나 교훈을 주려고 드는 법 없이 그저 옛날이야기를 하듯이 차분하게, 때로는 넉살 좋게 풀어나간다. 그러므로 독자는 그냥 들려주는 대로 따라가면 된다. 어쨌든 김인정 작가는 “좋아한다”는 감정에 대한 이야기들을 탁월하게 잘 쓰는 작가이고,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이야기란 본래 인간의 삶에서 가장 따스하고 아름다운 부분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 정보라, 권말해설 中

수록작에 대하여

역천만담逆天漫談
유순만담柔淳漫談
지배만담紙背漫談

가상의 나라 월훤국에서 서자로 났으나, 황제가 붕어한 후 적자인 동생이 갓난쟁이라 왕위를 이어받은 왕 선, 그리고 10년째 그 곁을 지키며 좋게 말해 직선적이고 나쁘게 말해 제멋대로에 소양마저 부족한 선 때문에 감봉과 위장병을 달고 사는 천재 신하 신유운의 이야기.

“하긴 역모죄라니 또 붉은 무리 푸른 무리 모두 얼굴이 벌게서 길길이 날뛰고 있을 테지.”
자신의 그, 붉고 푸른 신하 무리가 들었다면 한층 얼굴을 붉히며 주상 전하 통촉하시라는 둥 떠들어댔을 어휘를 써가며 선이 말했다. 유운이라 불린 신하는 어차피 한 치도 흐트러뜨리지 않은 의관을 다시 매만지며 서책을 정리해 장에 챙겨 넣었다. 군주 된 몸으로 일개 관료의 사저에 사사로이 드나든 일이 밝혀지면 “통촉하시옵소서” 정도로 끝나지 않을 터였으며 삼사三司에서 벌 떼같이 들고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외궁 시절부터 고락을 함께해온 친우를 만나는 것은 선에게 대단한 낙이었으므로 선은 성가신 후과를 감수하고서라도 그 낙을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 10쪽

“대…… 대군마마! 그런 상스러운……!”
“그럼 이 상황에 욕 한 마디도 못하면 날더러 어쩌란 거야? 젠장! 빌어먹을 인간, 그러길래 아랫도리 간수 좀 잘 하라니까! 어리고 예쁜 정실부인 두고 궁둥짝 붙일 새도 없이 뻔질나게 싸다닐 적부터 내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다!”
“대군마마! 다시 한 번 말씀 드리거니와 마마께서는 오늘부터 포의의 몸이 아니십니다. 날이 밝는 대로 당장 제궐로 행차하시어 대업을 도모하시지 않으면 안…… 마마! 대군마마!”
애타게 부르짖는데도 ‘대군마마’라고 불린 사내는 한 번 돌아보는 일도 없이 성큼성큼 걸어 저만치 매어놓았던 말 잔등에 훌쩍 뛰어올랐다. - 31쪽

생각보다 노련한 말솜씨라 선은 감탄했다. 외궁에서 자랐다 하나 외부와 교류가 전혀 없다시피 한 채 토끼나 잡고 꿩이나 쫓아다니던 대군이셨다. 주상 자리에 오른 후로는 더욱이 이리 치이고 저리 치여, 태평한 척 가장하고 잘 웃어넘기는 와중에도 나름 고심하는 듯싶었다. 유운으로서는 그런 주인 보기가 못내 안쓰러울 뿐이었다. 고민은 깊은데 공부는 싫고 사람은 좋은데 두루 사귀는 건 꺼리니 대체 종잡을 수 없는 주인이시다 여겼던 탓이다. 하여 막내동생을 돌보듯 매사에 노심초사했건만 의외로 백성을 대하면서 낯을 바꾸는 게 제법이라 멀찍이서 넋을 놓고 지켜보았다.
그러나.
“자, 한 장 그려드릴 테니 보시고…… 어라?”
“도련님! 종이 앞면에 그리셔야지요, 앞면에!”
믿을 사람이 따로 있지. - 79~80쪽

심각하게 찬란한
주단해는 도사들이 사는 세상에서 왕의 형제인 평서겸이 만든 특별활동부 탐정클럽의 유일한 부원이다. 병원에 있던 사이에 강제로 정해진 일인데 아름답고 성격도 좋은 것 같지만 괴상하게 삐뚤어지고 과시욕이 강한 평서겸 때문에 항상 기분이 나쁘다. 들어오는 의뢰란 것도 다 시시해서 이번에 들어온 의뢰는 축구부 누구한테 몰래 도시락을 갖다주는 것이다. 그것도 주단해가 어려서부터 알았고 좋아하는 남자애한테.

이 인간…… 아니 이 귀하신 몸께서는 입학 후 사흘째 되는 날 전학을 왔는데, 오자마자 어쩔 줄 몰라 하는 교사들을 향해 위풍당당하게 선언했다고 합니다.
- 특별활동 클럽은 11학년 이상이면 자유롭게 만들 수 있다면서요? 저, 만들고 싶은 클럽이 하나 있는데요.
부원이 한 명도 없으면 클럽이 폐쇄되기 때문에 입원으로 부재 중이었던 나를 서겸 선배의 장난 같은 클럽에 강제로 편입한 것은, 학교 측의 배려였던 모양입니다. 아파서 입원 중이었던 나를! 아무것도 모르고 ‘사회’에서 차디찬 병원 침대에 널브러져 있던 나를! 처음 나가보는 사회였는데 가족들은 바쁘다고 면회 한 번 안 와서 울고 싶은 심정이었던 가엾은 나를! … 학교 측은 그냥 한 사람 남는다는 이유만으로 강제배정해버린 겁니다.
학교 따위 콱 망해버려랏! - 122~123쪽

“……난 축구부 회의 때문에 가봐야 돼. 이거, 전해드려. 꼭.”
두고 간다.
상희는 내 쪽을 다시 쳐다보지도 않고 가방을 문 가까운 곳의 책상 위에 올려놓고는 허둥지둥 달려가버렸습니다. 나는 펼쳐놓은 책 위에 손을 얹은 채로 멍하니 상희가 달려 나간 문 쪽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습니다. 충동이 몸 안을 휘저었습니다. 몸을 일으켜, 천천히 걸어가, 나는 상희가 두고 간 가방을 열었습니다.
수제 초콜릿, 베이컨으로 만 오이와 떡과 소시지, 호두가 들어간 크랜베리 빵 조각에 보기만 해도 달콤한 티라미수 조각. 구운 사과를 곁들여 레몬소스를 끼얹은 고로케도 있습니다. 밥이 없어서 끼니라기보다 간식거리 같습니다. 이건 뭔가 하고 마지막으로 조그만 보온병 뚜껑을 열자, 탄성이 터질 만큼 진한 핫초콜릿 냄새가 올라왔습니다. - 147쪽

“음…… 다퉜어요. 여자애들끼리.”
“그래?”
적당한 대답에 기쁜 듯 신기한 듯 복잡한 얼굴로 서겸 선배가 활짝 웃었습니다.
“잘됐네. 응, 잘했어, 단해 양.”
서겸 선배의 그 표정을 보고 나는 생각했습니다.
‘그렇구나. 선배도 내가 이상하다는 걸 알고 있었구나.’
저 표정은, 내가 ‘다툴 수 있을 리 없다’고 전제했던 사람이 짓는 거니까. 선배도 세이도 상희도 여랑이와 신비도, 그리고 은오도…… 모두 알고 있었던 거예요. 나만 몰랐던 겁니다. 나만. 모두들 나만 빼놓고 여기저기에서 수군수군 무언가를 이야기했던 거야. 항상, ‘이상한 애’라고 생각해왔던 거야.
‘은오도…….’
나, 어디가 이상한 걸까요? - 165~166쪽

동백冬柏
혜령은 엄청나게 몸이 약하고 부모님도 오래 살지 못했다. 그러나 부모님 때부터 아는 약사의 약 덕분에 어찌어찌 목숨은 부지하고 있다. 어느 날 약을 내놓으라며 높으신 분이 행패를 부리는 걸, 약사를 지키겠다고 나섰다가 혜령은 그 이후 몇 번에 걸쳐 앙심을 품은 남자들에게 죽을 뻔한다. 그걸 구해준 약사는 나이가 칠십은 넘을 거라 생각했는데 해사한 소년의 얼굴이다. 약사가 혜령을 데려다주는 길가로 때가 되지 않은 동백이 화사하게 핀다.

혜령은 몸을 일으켰다. 오래 살 수 없다. 아마, 남들처럼 혼인을 하고 아이를 낳을 만큼 살지도 못할 터다. 제 발로 걷기 시작할 무렵부터 알고 있었다. 그런 탓에 애당초 자포자기하고 ‘길게 남지 않았다’ 여기며 꾹꾹 눌러온 듯도 싶다. 하지만 제 머리로 아는 것과 귀로 듣는 것 사이엔 혜령 제 마음과 달리 괴리가 남았던가보다. 역시 대놓고 듣자니 좀 괴로웠다. 혜령은 겨우 웃어 보였다.
“길지…… 길지 않은 목숨이니까요.”
“잠시라도 더 살게 해달라며 매달리지 않느냐. 모두들.”
“아저씨를 죽게 두고 제가 조금 더 살아 뭐하겠어요?”
“어려운 질문이로군. 할 일은 처자가 스스로 찾아야지.”
“그러니까 은인이신 약사 아저씨께 도움이…….”
“아니다. 무모한 짓을 해선 안 돼. 처자는 어린아이니까.”
“……네에.”
대화가 잘되지 않는다. 완전히 다른 생물 두 마리가 날갯짓 소리로 눈치를 보고 있는 것만 같다. 혜령은 피로를 느꼈다. - 228쪽

“이 산의 주인은 용이지요. 교룡산 모양도 용이 웅크린 모양이구요, 착한 용께서 산 아래 교현을 항상 지켜주신다고 아버님이 옛날에 말씀해주셨어요.”
“용이 지키는 건 약속뿐이다.”
활짝 핀 동백이 꼭 등잔불이 바람에 꺼지듯 훅 소리도 없이 목을 떨궜다. 약관도 되지 못한 소년의 자태엔 영 어울리지 않는 슬픈 낯으로 그는 떨어진 동백을 받아 들었다. 눈처럼 흰 손 위에 핏방울 같은 동백. 죽은 새를 바라보는 양 몹시도 쓸쓸한 그 눈빛에 혜령은 입을 다물었다.
“모두 꽃 같구나. 하루를 피든 천 년을 피든 똑같다. 죄 져버릴 꽃이거니.”
새를 놓아주듯 풀어놓은 동백 꽃송이가 우두커니 선 혜령의 발치에 내려앉았다. -241~242쪽

화선花仙
말썽 많은 용왕의 딸이 벌 받아서 삼신할머니가 되었으나 아무것도 몰라 사고만 치고 그 자리에서도 쫓겨날 위기다. 용왕녀는 가위를 부러뜨렸다 위에 고해서 거북신선이 그 가위를 들고 내키지 않는 걸음을 한다. 용왕녀는 거북신선이 인간계를 마뜩치 않아 하는 이유를 묻고, 거북은 자신이 전에 도와주었던 해당화의 영이 인간남자를 사랑해서 어떤 꼴을 당했는지 이야기를 한다.

- 만약 낭랑께서 제게 원을 빌고자 하신다면 부족한 선인이나마 힘을 다해 도와드리리다.
- 약조를 하신 겝니다? 선인의 언약은 결코 거스를 수 없는 것이니.
물이 한 번 흐르면 되돌아가는 법 없듯 선인의 언약이 그러하다는 것을, 지고하신 용왕녀께옵서도 아시겠지요. 그러하니 분명 개탄하며 이르실 것입니다, 알맹이를 알지 못하는 채 무턱대고 내세운 조건이야말로 얼마나 위태한가 말입니다. 때로는 위대한 선인들마저 동정이니 안타까움 같은 소소한 가치 때문에 자신이 쌓은 모든 것이 무위로 돌아갈 만큼이나 위험한 계약에 휩쓸리고 맙니다. 염원이란 그리도 격렬한 것이거니 세상 어느 것인들 그에 휩쓸리고 삼켜지지 않으리란 법이 있겠습니까?
- 약조하고말고요.
하여, 낭랑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 271쪽

- 소녀는 해당화이옵거니 복이 많답니다. 본디 별명 붙기를 화선花仙, 꽃 중의 신선이라 붙었으니 따로 선계에 오르지 않고 다만 피었다 져도 이미 선인이 아니오니까?
그런 말도 했었지. 자유는 곱씹었다. 기쁘다 말한 것도 지겹다 말한 것도 필시 얼마간은 진정을 담고 있었을 터이니 어느 쪽이 오롯한 거짓이라고 감히 가릴 수야 없으리라. 저승에 죄를 달아 시비를 가리는 저울이 있다 전하거니와 과연 그녀의 모든 생을 두고 불행이라 말할 것인가 행복이라 말할 것인가. 자유는 손을 뻗어 이미 짙은 구름에 휩싸여서 보이지 않게 되어버린 이승을 향했다. 안개를 잡는 것만큼이나 인간을 잡는 일도 무상하였다. 진심도 영원도 연정도, 혹은 꿈마저 무상하니 어느 것은 죄이고 또한 어느 것은 죄가 아니란 말이더냐. - 301쪽

백탑의 도시
천재지변으로 수도의 건물들이 무너진 후 나라를 다스리는 공주는 어떤 일에도 무너지지 않을 건물을 원했다. 공주를 연모하는 남자가 나서, 달의 모래로 탑을 만들어 바치겠다고 한 후 사막으로 떠났다. 사막을 지키는, 나이를 알 수 없는 스이람 페페는 그를 도와 달로 날아갈 수 있도록 날개를 달아주었고, 남자는 백 개의 탑을 약속한 후 아흔아홉 개의 탑을 쌓았다. 그리고 마지막 탑을 쌓으러 달로 간 후 돌아가지 않았다. 공주는 그 이유가 궁금해서 친히 사막을 찾아와 스이람 페페를 만난다.

“친애하는 스이람, 고개를 들라.”
“스이람 페페는 달의 따님께서 왜 스이람 페페를 아시는지 묻습니다.”
아즈룽가 공주의 유리 눈동자가 스이람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내게 몰약을 가져다주는 진주바다의 상인이 알려주었다.”
“황금 왕국의 공주님, 스이람 페페는 진주바다의 상인이 죽은 땅을 지나가지 않는 것을 압니다.”
“내게 황금을 가져다주는 제비붓꽃 산속의 사냥꾼이 몰래 당신을 엿보았노라.”
“모든 달과 무수한 별들의 따님, 스이람 페페는 제비붓꽃 산에서 이 사막까지 삼십 년이나 걸린다고 말합니다.”
스이람이 아즈룽가의 장밋빛 입술을 향해 등불을 들이밀었다.
푸르스름한 빛이 얼비친 상아색 피부에는 상처가 없었다. 많은 물과 많은 음식을 충분히 먹고 부드러운 침상에서 눈을 붙인 사람의 그 매끄러운 뺨을 핥듯 일렁이던 등불이 훌쩍 멀어졌다. 스이람은 불을 끄고 제 집의 문을 열었다.
“들어오시지요, 고귀한 공주님. 스이람 페페는 달에서 온 악마들이 당신을 해치도록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 308~309쪽

달의 계곡들은 수를 더해가고 그에 비례하여 황량하던 왕도王都는 청백색의 무구한 빛을 뿌리는 여러 개의 탑으로 번성해갔다. 하나에서 둘로, 둘에서 넷으로. 넷에서 일곱, 열, 서른 개와 마흔 개로 늘어가는 탑을 발치에 두고 아즈룽가 공주는 어느 때보다도 향기롭게 군림하였다.
- 백 번째 탑을 완성하면 나의 공주님, 저만을 위해 한 번만 웃어주시겠습니까?
쟈르두 탈문이 아흔아홉 번째 탑을 쌓고 공주의 창밖에 엎드려 사뢰자 공주는 시녀를 시켜 창을 절반 열게 하고 친히 화병의 카라 꽃을 한 송이 뽑아 내밀었다. 쟈르두 탈문은 사랑하는 공주의 흰 피부에 닿듯 떨며 꽃송이에 입술을 스쳤다.
- 웃어주고말고. 그대가 나를 위해 백 번째 탑을 다 쌓으면. -318쪽

천 번의 밤 천 번의 낮
눈먼 공주가 3개의 나라를 다스리는 위대한 황제에게 시집 왔다. 그러나 황제는 자신의 비를 전혀 돌보지 않았고, 공주는 외롭게 탑에서 지내다가 축제 때 침입한 이발사에게 죽었다. 황제는 이 모든 일의 원흉인 마녀를 잡아, 어떻게 된 일인지 밝히려 하고, 마녀는 황제를 그의 힘이 미치지 않는 동쪽으로 데려가 공주의 진실을 보여준다.

“공주께서 다만 노래를 벗하고 홀로 시들어가기에 저는 할멈으로 꾸미고 시내로 나가 여러 사람에게 공주 이야기를 했습니다. 단 물이 많이 나는 과일을 파는 사내를 만나 이야기하고 천에 푸른색 염색을 하는 사내를 만나 이야기했습지요. 어린애를 업은 여자에게도, 날씬한 허리에 구슬을 꿴 띠를 두른 여자에게도 이야기했습니다. 귀가 어두운 노인, 내일 밥 먹을 거리가 없어 근심하는 병자, 불치병이 있는 것을 감추고 몰래 시내로 숨어 깃든 어린애들에게도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말입니다, 왕이시여, 저는 부정한 자이기에 햇빛과 달빛 아래 가리는 것이 없나이다. 문둥병으로 썩어 떨어진 살점을 삶아 약을 고는가 하면 또한 장미꽃을 띄운 물에 씻어낸, 가장 성스러운 갓난아이를 훔쳐 저주받은 기름에 튀겨냅니다. 마녀란 그런 것입니다. 왕께서는 밝은 것을 사랑하며 어여쁜 것을 아끼시나 마녀는 어두운 것도 밝은 것만큼 사랑하며 천박하고 더러운 것도 어여쁜 것만큼 귀하게 여기나이다.”
“그리하여? 시장의 천한 사내들마저 공주에 관해 지저귀게 되었다는 것인가? 마녀여. 백금 성의 창문에 그림자를 떨어뜨리는 성스러운 나무들뿐 아니라, 검은 강 주변을 에워싸고 바늘처럼 솟아 자라는 한 포기 잡초마저 공주에 관해 떠들어댔다는 것인가? 그대가, 악마에게 몸을 팔고 어둠에 혼을 건넨 그대가 그리하였는가!” -336~337쪽


정보제공 : Aladin

저자소개

김인정(지은이)

서강대에서 국문학, 방송대에서 일본학을 전공했다. 《화조풍월》로 제3회 황금드래곤 문학상 장편 부문 본심상 수상. 환상문학 웹진 거울의 필진. 동양적, 서정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환상소설과 로맨스를 사랑한다. 단편집 《그때는 귤이 없었단다》, 《홀연》을 비롯해 ‘호노라’라는 필명으로 여러 권의 전자책을 출간했으며 《엔딩 보게 해주세요》 등 다양한 앤솔로지와 게임 서사 작업에 참가해 왔다.

정보제공 : Aladin

목차

목차
역천만담(逆天漫談) = 7
유순만담(柔淳漫談) = 27
지배만담(紙背漫談) = 55
심각하게 찬란한 = 117
동백(冬柏) = 219
화선(花仙) = 261
백탑의 도시 = 305
천 번의 밤 천 번의 낮 = 327
해설 : 太平聖代의 古典的 純情 = 358
엮은이의 말 = 373
작가의 말 = 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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