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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90 | ▼a 294.0953 ▼b 2010z8 ▼c 2.5 | |
| 100 | 0 | ▼a 의천 ▼g 義天, ▼d 1055-1101 |
| 245 | 1 0 | ▼a 대각국사집 / ▼d 의천 ; ▼e 이상현 옮김 |
| 246 | 0 | ▼i 한자표제: ▼a 大覺國師集 |
| 260 | ▼a 서울 : ▼b 동국대학교출판부, ▼c 2012 | |
| 300 | ▼a 749 p. ; ▼c 23 cm | |
| 440 | 1 0 | ▼a (한글본) 한국불교전서. ▼n [2], ▼p 고려 ; ▼v 5 |
| 500 | ▼a 이 책은 『한국불교전서』(동국대학교출판부 간행) 제4책의 『大覺國師文集』과『大覺國師外集』을 저본으로 번역하였음 | |
| 500 | ▼a 색인수록 | |
| 546 | ▼a 韓漢對譯 | |
| 700 | 1 | ▼a 이상현, ▼e 역 |
| 740 | 2 | ▼a 大覺國師文集 |
| 740 | 2 | ▼a 大覺國師外集 |
| 945 | ▼a KLPA |
소장정보
| No. | 소장처 | 청구기호 | 등록번호 | 도서상태 | 반납예정일 | 예약 | 서비스 |
|---|---|---|---|---|---|---|---|
| No. 1 | 소장처 과학도서관/Sci-Info(1층서고)/ | 청구기호 294.0953 2010z8 2.5 | 등록번호 121229034 (4회 대출) | 도서상태 대출가능 | 반납예정일 | 예약 | 서비스 |
컨텐츠정보
책소개
고려시대 대각 국사 의천(1055~1011)의 시문을 모은 [대각국사문집大覺國師文集]과 의천과 관련된 다른 사람들의 글을 모은 [대각국사외집大覺國師外集]의 두 책을 총괄하는 [대각국사집大覺國師集]의 역주본. 국내에 남아 있는 여러 종류의 판본을 비교·검토하여 원문의 오류를 최대한 보완하였고, 상세한 역주를 통해 의천의 종합적 사상과 세계인으로서의 행적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의천 연구의 권위자의 해제를 통해 일제시대 일본인 학자들에 의해 잘못 짜맞추어진 [대각국사집]의 판본 문제가 명확히 해명됨으로써 앞으로 대각 국사 의천 연구에 있어 중요한 전기가 마련된 것으로 평가된다.
[대각국사집大覺國師集]은 고려시대 대각 국사 의천(1055~1011)의 시문을 모은 [대각국사문집大覺國師文集]과 의천과 관련된 다른 사람들의 글을 모은 [대각국사외집大覺國師外集]의 두 책을 총괄하는 명칭으로, 세계인 의천의 활동과 교류, 사상을 알려주는 가장 중요한 자료이다.
특히 저서의 서문은 의천의 불교사상에 대한 일차적 자료로서 큰 의미가 있으며, 송과 요의 황제와 고위관료, 그리고 고창高昌과 일본 지역 승려들과의 폭넓은 교류활동을 기록한 글들은 의천의 국제적 문화교류 양상과 동아시아 불교에서의 위상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또한 의천이 남긴 시문은 그의 불교사상과 교류관계, 나아가 일상생활 및 개인적 감정을 여과 없이 표현하고 있다.
의천은 교종의 대표격인 화엄종을 진흥하는 한편 교학과 관행觀行의 병행을 주장하며 고려 천태종을 개창하여 불교교단을 개편함과 동시에 고려불교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였다. 이와 함께 고려, 송, 요, 일본 등 동아시아 전체에 걸친 폭넓은 인적 교류와 불서 유통을 통해 고려 문화의 국제적 위상을 드높였다. 특히 당시까지 전해지던 모든 불교전적을 집성하고 주석서인 장소章疏를 한데 모아 목록과 함께 총서로 간행한 것은 동아시아 불교사에서 매우 특기할 만한 업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현재 [대각국사집]의 판본은 모두 불완전한 결본으로 전해지고 있는데, 이 역주본에서는 국내에 남아 있는 여러 종류의 판본을 비교·검토하여 원문의 오류를 최대한 보완하였고, 상세한 역주를 통해 의천의 종합적 사상과 세계인으로서의 행적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의천 연구의 권위자의 해제를 통해 일제시대 일본인 학자들에 의해 잘못 짜맞추어진 [대각국사집]의 판본 문제가 명확히 해명됨으로써 앞으로 대각 국사 의천 연구에 있어 중요한 전기가 마련된 것으로 평가된다.
정보제공 :
저자소개
의천(지은이)
의천은 고려 제12대 국왕 문종과 이자연의 장녀 인예왕후 이씨의 넷째 아들로 1055년 9월 28일 궁중에서 태어났다. 의천은 문종 19년(1065) 5월 14일 영통사 난원(爛圓, 999∼1066)의 문하로 출가해 화엄교학을 배웠다. 의천은 출가 이후 1985년 송나라에 가기 전까지 교장을 모으고 강론과 수학에 힘썼으며 화엄교학을 중심으로 유교나 도교까지 섭렵했다. 1085년 제자인 수개, 양변 등과 함께 송나라에 간 의천은 1085년 5월 21일 변경(?京)에 들어가 철종 황제를 만나고, 화엄종 승려인 유성, 진수 정원 등을 비롯해 다양한 종파의 승려들을 방문했다. 의천이 송에서 폭넓게 사상을 교류하면서 국제적이고 보편적인 사상 체계를 성립한 시기였다. 의천은 1086년 5월 29일 14개월여의 입송 구법을 마치고 교장 3000여 권을 수집해서 귀국해, 흥왕사에 교장도감을 두고 송·요·일본 등지에서 구한 제종교장(諸宗敎藏)을 간행하는 사업에 주력했다. 의천은 화엄종을 중심으로 천태종을 개창하려는 노력이 좌절되면서, 1094년 2월에는 홍원사로 옮겨 주지가 되어 교학을 강의했지만 곧 해인사로 옮겼다. 인주 이씨인 이자의, 흥왕사 지소의 세력에 밀려 해인사에 퇴거했던 의천은 숙종의 즉위 이후인 숙종 1년(1096) 개경의 흥왕사로 돌아와 주지가 되어 강학했다. 숙종 2년(1097) 5월에는 국청사가 완공되었고 흥왕사 주지를 겸하면서 천태교관을 강의했다. 이 시기 의천의 불교계에서의 역할은 화엄종과 천태종의 병립을 통해 불교계를 재편하는 것이었다. 의천은 숙종 5년(1100)에 국청사에서 천태교학을 강하고, 숙종 6년(1101) 2월에는 천태종 승과 대선을 실시해서 40명을 선발했다. 의천의 활동 가운데 국가적 사업으로는 지남관, 겸제원을 복구해 백성의 편익을 도모했고, 국가의 중대사를 자문했으며, 주전(鑄錢)을 건의해 시행하는 등 숙종의 개혁 정치를 도운 것을 들 수 있다. 의천은 숙종 6년 10월 지병으로 총지사에서 사망했다. 의천의 사후, 불교계는 재편되어 그의 화엄종과 천태종 문도들은 분열했다. 이후 의천의 화엄과 천태 사상은 제대로 전승되지 못했고, 그의 사상과 계보를 달리하는 균여계 화엄종과 법안종의 사상 경향성에 주목한 백련사 결사의 중심인물인 요세(了世)의 천태종이 고려 후기 불교계를 주도했다.
이상현(옮긴이)
한문고전번역가로, 1949년 전주에서 출생하였다. 모친은 거출(巨出)이라고 불렀다. 종말론에 빠져들어 종교학과에 들어갔다가 자아모순동일률의 그물을 찢고 빠져나왔으며, 불교대학원에서 한국불교의 대중화를 꾀하여 삼계교(三階敎)를 연구하고 발표하였다. 기자 생활 중에 새종교 현장을 취재 및 발굴하였고, 역사 유적 탐방 기행문을 발간하였다. 해직된 뒤에 한문 고전의 세계에 뛰어들어 강의와 번역에 종사하였다. 조선왕조실록 번역에 참여하였으며, 한국문집총간 중 《가정집》, 《간이집》, 《계곡집》, 《고산유고》, 《고운집》, 《녹문집》, 《도은집》, 《목은집》, 《상촌집》, 《죽석관유집》, 《택당집》, 《포저집》 등을, 한국불교전서 중 《기암집》, 《몽암대사문집》, 《무용당유고》, 《부휴당대사집》, 《사명당대사집》, 《월파집》, 《청허당집》, 《침굉집》 등을 번역하였다.
목차
한글본 한국불교전서를 펴내며 = 5
대각국사집 해제 = 7
일러두기 = 54
대각국사문집(大覺國師文集)
대각국사문집 제1권(大覺國師文集卷第一) = 57
신집원종문류 서문(新集圓宗文類序) = 59
신편제종교장총록 서문(新編諸宗敎藏總錄序) = 62
간정성유식론단과 서문(刊定成唯識論單科序) = 64
대각국사문집 제2권(大覺國師文集卷第二) = 73
대각국사문집 제3권(大覺國師文集卷第三) = 77
국청사를 창건하고 개강할 때의 치사(新創國淸寺啓講辭) = 79
우란분경을 개강할 때의 치사(講蘭盆經發辭) = 82
원각경을 개강할 때의 치사(2수)(講圓覺經發辭)(二首) = 85
유교경 개강에 즈음한 치사(講遺敎經發辭) = 91
유교경의 파강에 즈음한 치사(遺敎經罷講辭) = 92
대각국사문집 제4권(大覺國師文集卷第四) = 103
진사 백중언에게 설법하며 제시한 강령(爲進士白仲言說法提綱) = 108
대각국사문집 제5권(大覺國師文集卷第五) = 113
송나라에 들어가서 불법을 구하겠다고 청한 표문(請入大宋求法表) = 115
인반의 차견을 사례한 표문(謝差引伴表) = 119
해주에 어재를 내린 것을 사례한 표문(謝賜海州御齋表) = 121
차와 약을 내린 것을 사례한 표문(謝賜茶藥表) = 122
남경에 어재를 내린 것을 사례한 표문(謝賜南京御齋表) = 124
교외에서 환영해 준 것을 사례한 표문(謝郊迎表) = 126
위문해 준 것을 사례한 표문(謝撫問表) = 127
조현(朝見)하는 날에 선물을 내린 것을 사례한 표문 = 128
황태후에게 위와 같은 일로 사례한 표문(謝皇太后同前表) = 129
조현하는 날에 재연을 내린 것을 사례한 표문(謝朝見日賜齋筵表) = 130
황태후에게 위와 같은 일로 사례한 표문(謝皇太后同前表) = 131
목욕의 은명을 사례한 표문(謝賜沐浴表) = 132
황태후에게 위와 같은 일로 사례한 표문(謝皇太后同前表) = 133
항주 정원 법사에게 가서 불법을 배우겠다고∼(乞就杭州源?梨處學法表) = 134
대각국사문집 제6권(大覺國師文集卷第六) = 141
요청한 대로 허락해 준 것을 사례한 표문(謝依允所請表) = 143
송반을 차견해 준 것을 사례한 표문(謝差送伴表) = 144
황태후에게 위와 같은 일로 사례한 표문(謝皇太后同前表) = 145
불조(佛祖)의 도영(圖影)을 하사한 것을 사례한 표문 = 146
용흥절에 공덕을 봉축하며 올린 표문(龍興節日進奉功德表) = 147
대각국사문집 제7권(大覺國師文集卷第七) = 151
불법을 전해 받은 것을 사례한 표문(謝傳法表) = 153
황태후에게 위와 같은 일로 사례한 표문(謝皇太后同前表) = 155
교외에서 맞아 준 것을 사례한 표문(謝郊迎表) = 156
황태후에게 위와 같은 일로 사례한 표문(謝皇太后同前表) = 157
관반을 차견한 것을 사례한 표문(謝差?伴表) = 158
황태후에게 위와 같은 일로 사례한 표문(謝皇太后同前表) = 159
관사에 머물게 하고 음식을 하사한 것을 사례한 표문(謝就?賜食表) = 160
황태후에게 위와 같은 일로 사례한 표문(謝皇太后同前表) = 161
조정을 하직하는 날에 예물을 하사한 것을 사례한 표문(謝朝辭日賜禮物表) = 162
조정을 하직하는 날에 전연을 베풀어 준 것을 사례한 표문(謝朝辭日餞筵表) = 163
송반을 차견한 것을 사례한 표문(謝차송반表) = 164
조서를 내려 장유(?諭)해 준 것을 사례한 표문 = 165
황태후에게 위와 같은 일로 사례한 표문(謝皇太后同前表) = 166
은기와 채백을 하사한 것을 사례한 표문(謝賜銀器彩帛表) = 167
대각국사문집 제8권(大覺國師文集卷第八) = 171
본국 문왕의 진용을 하사한 것을 사례한 표문(謝賜本國文王眞容表) = 173
황태후에게 위와 같은 일로 사례한 표문(謝皇太后同前表) = 174
금향로와 향합을 하사한 것을 사례한 표문(謝賜金香爐香合表) = 175
우리나라 국경에 도착해서 죄를 청한 표문 = 176
죄를 용서해 준 것을 사례한 표문(謝放罪表) = 178
요나라 황제에게 효공의 장소를 올린 표문(上大遼皇帝曉公章疏表) = 180
성유식론의 단과(單科)를 올린 표문 = 181
숙왕이 새로 즉위한 것을 하례한 표문(賀肅王新卽位表) = 182
부궐을 사양한 표문(2수)(辭赴闕表)(二首) = 183
대각국사문집 제9권(大覺國師文集卷第九) = 191
대송 황제에게 존상을 진봉한 장문(進奉大宋皇帝尊像狀) = 194
황태후에게 경문을 진봉한 장문(進奉皇太后經文狀) = 195
숙왕(肅王)의 교서에 답한 장문 = 196
송나라 밀주 지사에게 보낸 장문(與大宋知密州狀) = 197
고밀현 지사에게 보낸 장문(與知高密縣狀) = 198
숙주 지사에게 보낸 장문(與知宿州狀) = 199
숙주 통판에게 보낸 장문(與宿州通判狀) = 200
남경 유수에게 보낸 장문(2수)(與南京留守狀)(二首) = 201
대각국사문집 제10권(大覺國師文集卷第十) = 205
정원법사에게 올린 글(4수)(上淨源法師書)(四首) = 207
대각국사문집 제11권(大覺國師文集卷第十一) = 217
송나라 정원 법사를 만나고 올린 치어(見大宋淨源法師致語) = 219
송나라 정원 법사에게 올린 장문(3수)(上大宋淨源法師狀)(三首) = 220
송나라 정원 법사에게 올린 글(3수)(上大宋淨源法師書)(三首) = 222
송나라 선총 법사에게 올린 장문(3수)(與大宋善聰法師狀)(三首) = 227
송나라 정인 법사에게 올린 글(2수)(與大宋淨因法師書)(二首) = 230
송나라 원소 율사에게 답한 글(答大宋元炤律師書) = 232
송나라 행자 안현(顔顯)에게 준 글 = 234
대각국사문집 제12권(大覺國師文集卷第十二) = 239
화폐의 사용을 왕에게 건의한 글 = 240
대각국사문집 제13권(大覺國師文集卷第十三) = 263
내시 문관에게 준 글(與內侍文冠書) = 267
대각국사문집 제14권(大覺國師文集卷第十四) = 273
송나라 상국사에서 성수를 축원하는 재를 올리며∼(大宋相國寺祝聖壽齋疏) = 275
위와 같은 일로 황태후를 축원한 글(祝皇太后同前疏) = 276
송나라 법운선원에서 성수를 축원하는 재를∼(大宋法雲禪院祝聖壽齋疏) = 277
본강(本講) 진수(晋水) 법사에게 법계관(法界觀)의 강의를 청한 글 = 278
송나라에서 천태의 탑을 참배하고 발원한 글(大宋天台塔下親?發願疏) = 279
일본국의 법사들에게 교장의 수집을 요청하면서∼(寄日本國諸法師求集敎藏疏) = 280
금탑(金塔)을 희사하여 송나라 혜인원(慧因院)에 보낸 글 = 281
정원 사리를 천도하는 백일재를 올리며 지은 글(追薦淨源?梨百日齋疏) = 282
황금을 희사하여 탑 공양을 하면서 올린 글(捨黃金奉塔疏) = 284
세자를 대신하여 교장의 수집을 발원한 글(代世子集敎藏發願疏) = 285
대각국사문집 제15권(大覺國師文集卷第十五) = 295
순종의 기신에 예참한 글(順王忌晨禮懺疏) = 297
우란분일에 팔에 향을 사르며 발원한 글(蘭盆日燒臂發願疏) = 298
제종의 교장을 간행하며 선종을 대신해서 지은 글(代宣王諸宗敎藏彫印疏) = 300
재를 올리며 세자를 대신해서 지은 글 = 302
반야도량을 열며 올린 글(般若道場疏) = 303
대각국사문집 제16권(大覺國師文集卷第十六) = 307
문종에 대한 제문(祭) = 309
경덕 국사에 대한 제문(2수)(祭景德國師)(二首) = 310
적천사(?川寺) 의상 조사에 대한 제문 = 311
선종에 대한 제문(祭宣王文) = 312
분황사 원효 성사에 대한 제문(祭芬皇寺曉聖文) = 313
금산사 적법사에 대한 제문(祭金山寺寂法師文) = 315
홍제승통(弘濟僧統)에 대한 제문 = 316
용두사 우상 대사에 대한 제문(祭龍頭寺祐詳大師文) = 317
징원 승통 진찬(澄遠僧統眞讚) = 318
신참 학도 치수에게 보인 글(示新?學徒緇秀) = 319
신참 학도 지웅에게 보인 글(示新?學徒智雄) = 325
신참 학도 혜수에게 보인 글(示新?學徒慧修) = 328
신참 학도 덕칭에게 보인 글(示新?學徒德稱) = 330
대각국사문집 제17권(大覺國師文集卷第十七) = 339
밀주 자복사의 시에 화운하다(和密州資福寺留題) = 342
내가 보각 원소 율사로부터 시편과 도구를∼(某伏蒙寶閣炤律師辱示佳篇∼) = 343
내가 삼가 본강의 사리 존자로부터 시를∼(某伏蒙本講?梨尊慈垂示佳什∼) = 344
송나라 혜청 화엄에게 부치다(寄大宋慧淸華嚴) = 345
학사(學士) 윤관(尹灌)에게 부치다(2수) = 347
빗속에 길을 가며 말 위에서 입으로 읊다(雨中行次馬上口占) = 348
안양사에서 능정 승통의 진영에 참배하고(安養寺禮能淨僧統影) = 349
칠장사에서 혜소 국사의 진영에 참배하고(柒長寺禮慧炤國師影) = 350
공주의 청상에서 현종의 시를 보고(公州廳上觀顯留題) = 351
고대산 경복사 비래방장에서∼(孤大山景福寺飛來方丈禮普德聖師影) = 352
강성군 장수사에서 짓다(留題江城郡長壽寺) = 353
보월산 백운원에서 짓다(留題寶月山白雲院) = 354
보월산 용암원에서 짓다(留題寶月山龍巖院) = 355
지리산 화엄사에서 짓다(留題智異山花嚴寺) = 356
화엄사 연기 조사의 진영에 참배하고(華嚴寺禮緣起朝師影) = 357
서석산 규봉사에서 짓다(留題瑞石山圭峯寺) = 358
우연히 느낌이 들기에(偶感) = 359
대천산재에서 짓다(留題大天山齋) = 360
우연히 지어 스스로 반성하다(偶書自省) = 361
새로 선발한 대선과 대덕에게 보이다(示新授大選大德) = 362
우연히 짓다(偶作) = 363
여름날에 우연히 짓다(夏日偶成) = 364
대각국사문집 제18권(大覺國師文集卷第十八) = 369
남산율초를 강하는 중에 우연히 절구 한 수를 짓다(講南山律?次偶成一絶) = 371
총명원에서 짓다(留題?明院) = 372
무오년 5월 16일에 명을 받들어∼(戊午五月十六日 銜命行香于?持寺∼) = 373
농서의 학사가 임천사를 생각하는 시를∼(?西學士以憶臨川寺詩見贈∼) = 374
차 선물에 사례하며 화답하다(和人謝茶) = 375
국원 공의 추일숙산사 시에 화운하다(和國原公秋日宿山寺) = 376
국원 공이 홍화사에 제한 시에 화운하다(和國原公題弘化寺) = 377
국원 공이 복흥사에 제한 시에 화운하다(和國原公題福興寺) = 378
국원 공이 새로 그린 수월관음에 찬한 시에∼(和國原公讚新?成水月觀音) = 379
대각국사문집 제19권(大覺國師文集卷第十九) = 383
김관후의 독금강경 시에 화운하다(和金官侯讀金剛經) = 386
작일에 치사한 농서상국으로부터 마명의 기신론을∼(昨承致仕瓏西相國∼) = 387
삼각산 취령사에서 짓다(留題三角山鷲嶺寺) = 388
삼각산 식암에서 짓다(留題三角山息庵) = 389
삼각산 인수사에서 문수의 성상에 참배하고(三角山仁壽寺禮文殊聖像) = 390
삼각산 사나방 주인에게 주다(贈三角山舍那房主) = 391
익종 대사가 고향에 돌아가는 것을 전송하며(送翼宗大師歸故山) = 392
윤 상공 관이 상 상인의 결사에 비겨∼(竊見尹相公灌擬常上人結杜?意之什∼) = 393
도생 승통이 속리사에 돌아가는 것을 전송하며(送道生僧統歸俗離寺) = 394
광명사 대선사 일공이 운봉으로 은퇴하기에∼(廣明寺大禪師日公退老雲峰∼) = 395
문인인 낙진 대사가 봉선사로 돌아가는 것을∼(送門人樂眞大師歸奉先寺) = 396
보자 대사가 전향사로 돌아가는 것을 전송하며(宋普滋大師歸?香寺) = 397
문인인 혜선 대사가 주지의 신분으로∼(門人慧宣大師以住持告別因以贈之) = 398
학도 대사 도린이 문류 편찬의 일을∼(見學徒大師道隣謝文類啓以頌?之) = 399
홍법원에서 시를 짓다(留題洪法院) = 400
서경의 아는 이에게 부치다(寄西京所知) = 401
충 상인이 고향에 돌아가는 것을 전송하며(送忠上人歸故山) = 402
어떤 일을 계기로 우연히 짓다(因事偶言) = 403
대자원에서 짓다(留題大慈院) = 404
차를 중에게 준 사람의 시에 화운하다(和人以茶贈僧) = 405
여름날에 길을 가다가 미륵당의 게송에 차운하여 읊다(夏日行次彌勒堂偈吟) = 406
유감(有感) = 407
법왕사 화엄 강주 이 상인에게 주다(2수)(贈法王寺華嚴講主利上人)(二首) = 408
학원에서 일을 기록하다(學院書事) = 409
현화사에서 짓다(留題玄化寺) = 410
자현 거사에게 부치다(寄玄居士) = 411
뜻을 말하다(言志) = 412
봉선사 익승 대사가 부지런히 배우기를 좋아하였으므로∼(奉先寺翼乘大師∼) = 413
원각대참을 삼각산 현 도인에게 부치다(以圓覺大懺寄三角山玄道人) = 414
감회시를 지어 학도에게 보이다(2수)(感懷示徒)(二首) = 415
모후의 상을 인하여 서도에 왔다가 영명사∼(因母后喪到西都登永明寺浮碧寮) = 416
반룡산 연복사에 와서 보덕 성사의∼(到盤龍山延福寺禮普德聖師飛房舊址) = 417
낙진 대사의 강의를 듣고(聽樂眞大師講) = 418
강의하다가 우연히 짓다(講次偶作) = 419
원연 대사가 산문을 찾아 준 것을 사례하다(謝圓演大師訪山門) = 420
감회시를 지어서 학도에게 보여 주다(感懷示學徒) = 421
화엄별장을 한 기거주에게 기증하다(以華嚴別章寄贈韓起居注) = 422
여름비 끝에 맑게 갠 경치를 보고(暑雨新晴) = 423
자계(自誡) = 424
일인(逸人)의 산재에 제하다(題逸人山齋) = 425
어제 숭대원에서 강의를 듣는 학도들이 자리를 베풀고∼(昨於崇臺院∼) = 426
학도의 시권을 보고(見學徒詩卷) = 427
문수굴에 제하다(題文殊?) = 428
우연히 절구 한 수를 읊어 담 대사에게 부치다(偶吟一絶寄湛大師) = 429
산사에 노닐며(遊山寺) = 430
대각국사문집 제20권(大覺國師文集卷第二十)
회포를 서술하다(?懷) = 440
모가 환관이 와서 전하는 왕지를 받들건대, 천축국∼(某承中使至奉傳王旨∼) = 441
해인사에 물러나 거하며 지은 시(4수)(海印寺退居有作)(四首) = 442
해동소에 의거하여 금강경을 강의하면서∼(依海東疏講金剛經慶而有作) = 443
해동의 교적을 읽고(讀海東敎迹) = 444
해 좌주를 전송하며(送海座主) = 445
가야산 천성사에 묵으며(宿伽耶山天城寺) = 446
학도 중에 나의 초상화를 그려 준 자가 있었는데∼(學徒中有寫吾眞者∼) = 447
천거 김 시랑에게 주다(贈天車金侍郞) = 448
대궐에 나아갈 즈음에 고사에서 짓다(2수)(赴闕次留題故寺)(二首) = 449
자선 대사의 논의를 듣고 나서 짓다(聞資善大師論議後有作) = 450
당나라 배 상공의 발보리심문을 읽고(讀唐朝裵相公發菩提心文) = 451
기묘년 6월 21일에 이방에 올라와 대화를 나눈 뒤에∼(己卯六月二十一日∼) = 452
농서 태위가 나의 서툰 시를 먼저 보고∼(?西大尉預見予惡詩和到盛∼) = 453
유배되어 경산(京山)으로 내려가는 부여 공(扶餘公)과 작별하며 = 454
부여 공에게 부치다(寄扶餘公) = 455
혜덕 왕사를 애도하며(悼慧德王師) = 456
오 선사가 늙었다면서 산으로 돌아가는 것을 전송하며(送悟禪師請老歸山) = 457
조 낭중의 시에 화운하여 나의 뜻을 서술하다(5수)(和曺郎中韻述自意)(五首) = 458
경진년 6월 4일에 국청사에서 천태의 묘현에 대한 강의를∼(庚辰六月四日∼) = 460
신사년 가을에 들어온 이래로 은자를 강의하는 동안∼(辛巳歲入?已來∼) = 462
대각국사문집 제21권(大覺國師文集卷第二十一) = 469
대각국사문집 제22권(大覺國師文集卷第二十二) = 471
대각국사문집 제23권(大覺國師文集卷第二十三) = 473
대각국사외집(大覺國師外集)
대각국사외집 제1권(大覺國師外集卷第一) = 477
송나라 철종 황제의 조서(2수)(大宋哲宗皇帝詔書)(二首) = 479
본국의 예종이 지은 대각 국사 진영의 찬문(本國睿王御製眞讚) = 481
송나라 성 법사의 답사(3수)(大宋誠法師答辭)(三首) = 483
송나라 원 법사의 답사(大宋源法師答辭) = 490
대각국사외집 제2권(大覺國師外集卷第二) = 495
제일(第一) = 496
제이(第二) = 497
제사(第四) = 501
제오(第五) = 503
제육(第六) = 504
대각국사외집 제3권(大覺國師外集卷第三) = 509
송나라 사문 유성이 보낸 글(2수)(大宋沙門有誠書)(二首) = 511
송나라 사문 인악이 보낸 글(大宋沙門仁岳書) = 515
송나라 사문 정원이 보낸 글(5수)(大宋沙門淨源書)(五首) = 516
송나라 사문 원소가 보낸 글(2수) = 520
송나라 사문 희변이 보낸 글(大宋沙門希辯書) = 524
대각국사외집 제4권(大覺國師外集卷第四) = 529
제사(第四) = 530
제오(第五) = 531
송나라 율교 사문 택기가 보낸 글(4수)(大宋律敎沙門擇其書)(四首) = 533
송나라 사문 도린이 보낸 글 = 535
대각국사외집 제5권(大覺國師外集卷第五) = 539
송나라 사문 변진이이 보낸 글(3수) = 540
별폭(別幅) = 544
송나라 사문 설숭이 보낸 글(大宋沙門契嵩書) = 545
송나라 사문 이섭이 보낸 글(大宋沙門利涉書) = 546
송나라 사문 혜청이 보낸 글(2수)(大宋沙門慧淸書)(二首) = 547
송나라 사문 희담이 보낸 글(大宋沙門希湛書) = 551
대각국사외집 제6권(大覺國師外集卷第六) = 555
송나라 사문 도형이 보낸 글(3수)(大宋沙門道亨書)(三首) = 557
송나라 사문 선총이 보낸 글(7수)(大宋沙門善聰書)(七首) = 560
송나라 변재 대사 원정이 보낸 글(大宋辯才大師元淨) = 569
송나라 사문 수장이 보낸 글(大宋沙門守長書) = 572
송나라 선원 사문 혜원이 보낸 글(大宋禪院沙門慧圓書) = 573
대각국사외집 제7권(大覺國師外集卷第七) = 577
송나라 사문 유근이 보낸 글(大宋沙門惟勤書) = 579
송나라 사문 종간이 보낸 글(4수)(大宋沙門從諫書)(四首) = 580
송나라 사문 행단이 보낸 글(2수)(大宋沙門行端書)(二首) = 585
송나라의 전현수교 사문 지생이 보낸 글(2수)(大宋傳賢首敎沙門智生書)(二首) = 589
송나라 사문 법린이 보낸 글(大宋沙門法隣書) = 592
대각국사외집 제8권(大覺國師外集卷第八) = 599
고창국 환석 시라부저가 보낸 글(2수)(高昌國幻釋尸羅?底書)(二首) = 601
고창국 전계 사문 발다라선이 보낸 글(高昌國傳戒沙門鉢?羅仙書) = 604
요나라 어사중승 야율사제가 보낸 글(3수)(大遼御史中丞耶律思齊書)(三首) = 605
전조교 학도 희중이 보낸 글(2수)(傳祖敎學徒希中狀)(二首) = 608
송나라 사문 가구가 보낸 글(大宋沙門可久書) = 611
송나라 사문 희준이 보낸 글(大宋沙門希俊書) = 613
대각국사외집 제9권(大覺國師外集卷第九) = 617
송나라 능엄 대사의 탑을 중수한 기문(大宋重修楞嚴大師塔記) = 619
송나라 항주 혜인원 현수교장의 기문(大宋杭州慧因院賢首敎藏記) = 623
송나라 혜인원 정원 법사 진영에 대한 찬(大宋慧因院淨源法師眞讚) = 627
대각국사외집 제10권(大覺國師外集卷第十) = 631
유성은 삼가 먹을 갈고 붓을 적시어 56언의∼(有誠 謹熏毫滌硯書成山頌一首∼) = 633
향로와 불자를 법자 화엄승통에게∼(爐拂二事 付法子華嚴僧統 因成一絶) = 634
고려국 왕자 우세승통을 전송하며(送高麗國王子祐世僧統) = 635
도구 두 가지를 우세승통에게 바치며 짧은 노래를∼(道具二事 奉施祐世僧統∼) = 636
수로와 여의를 고려 우세승통 법사에게∼(手爐如意 傳高麗祐世僧統法師∼) = 637
선총이 고려 홍진우세승통 대법사를∼(善聰送高麗弘眞祐世僧統大法師) = 638
선총이 짧은 글을 부치면서 산게를 써서 봉정하니∼(善聰因寄短書∼) = 639
덕무는 아룁니다∼(德懋啓∼) = 640
산정에서 승통 대법사를 배웅하며(山頂送僧統大法師) = 642
유근은 아룁니다∼(惟勤啓∼) = 643
변진은 아룁니다∼(辯眞啓∼) = 646
충우는 아룁니다∼(?羽啓∼) = 648
송나라 북암산 비구 수장이 보낸 시(大宋北?山比丘守長上) = 651
대각국사외집 제11권(大覺國師外集卷第十一) = 657
짧은 게송으로 계림의 승통을 전송하다(短頌送?林僧統) = 659
고려 승통께서 보내 주신 분로와 가사와∼(高麗僧統?施焚?袈裟經帙∼) = 660
원정은 아룁니다∼(元淨啓∼) = 662
법원은 아룁니다∼(法圓啓∼) = 663
종희는 아룁니다∼(宗喜啓∼) = 664
혜청은 삼가 아룁니다∼(慧淸頓首∼) = 665
선원 종본이 보낸 시(禪院宗本上) = 666
근일에 삼가 대의를 해설하신 후서를 보았고∼(近日伏覩御解大義後?∼) = 667
삼가 고조시 2백 언에 화운하여 고려 우세승통에게∼(謹和古調詩二百言∼) = 668
용산 범해관음시(병서)(龍山泛海觀音詩)(?序) = 671
양걸을 전송한 시(送楊傑詩) = 673
충우는 아룁니다∼(?羽啓∼) = 675
층우는 고려 승통께서 선주 법사의 시편을∼(?羽因睹高麗僧統上?受∼) = 676
앙은 아룁니다∼(昻啓∼) = 677
대각국사외집 제12권(大覺國師外集卷第十二) = 687
영통사 대각 국사 비문 = 688
대각국사외집 제13권(大覺國師外集卷第十三) = 715
선봉사(僊鳳寺) 대각 국사 비문 = 716
옮긴이의 말 = 732
찾아보기 = 73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