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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90 | ▼a 897.35 ▼b 염상섭 2013z1 | |
| 100 | 1 | ▼a 염상섭, ▼g 廉想涉, ▼d 1897-1963 ▼0 AUTH(211009)143085 |
| 245 | 1 0 | ▼a 염상섭 문장 전집 / ▼d 염상섭 ; ▼e 한기형, ▼e 이혜령 엮음 |
| 246 | 0 | ▼i 한자표제: ▼a 廉想涉 文章 全集 |
| 260 | ▼a 서울 : ▼b 소명출판, ▼c 2013- | |
| 300 | ▼a 책 : ▼b 삽화(일부천연색), 도판 ; ▼c 23 cm | |
| 500 | ▼a 부록수록 | |
| 504 | ▼a 참고문헌과 색인수록 | |
| 505 | 0 | ▼a 1. 1918-1928 (740 p.) -- 2. 1929-1945 (593 p.) -- 3. 1946-1962 (671 p.) |
| 536 | ▼a 이 책은 2007년 정부(교육과학기술부)의 재원으로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 ▼g (NRF-2007-361-AL0014) | |
| 700 | 1 | ▼a 한기형 ▼g 韓基亨, ▼d 1962-, ▼e 편 |
| 700 | 1 | ▼a 이혜령 ▼g 李惠鈴, ▼d 1971-, ▼e 편 |
| 900 | 1 0 | ▼a Han, Kee-hyung, ▼e 편 |
| 900 | 1 0 | ▼a Lee, Hye-ryoung, ▼e 편 |
| 945 | ▼a KLPA |
소장정보
| No. | 소장처 | 청구기호 | 등록번호 | 도서상태 | 반납예정일 | 예약 | 서비스 |
|---|---|---|---|---|---|---|---|
| No. 1 | 소장처 중앙도서관/제3자료실(4층)/ | 청구기호 897.35 염상섭 2013z1 1 | 등록번호 111735208 (22회 대출) | 도서상태 대출가능 | 반납예정일 | 예약 | 서비스 |
| No. 2 | 소장처 중앙도서관/제3자료실(4층)/ | 청구기호 897.35 염상섭 2013z1 2 | 등록번호 111736562 (18회 대출) | 도서상태 대출가능 | 반납예정일 | 예약 | 서비스 |
| No. 3 | 소장처 중앙도서관/제3자료실(4층)/ | 청구기호 897.35 염상섭 2013z1 3 | 등록번호 111736545 (20회 대출) | 도서상태 대출가능 | 반납예정일 | 예약 | 서비스 |
컨텐츠정보
책소개
<만세전>, <삼대>, '표본실의 청개구리', '두 파산' 등 염상섭은 '자연주의 및 사실주의 문학을 일관되게 추구해 온 소설가'서 평가받으며 한국문학사에 뚜렷한 공적을 새겼다. 하지만 이번에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그의 소설이 아니다. <염상섭 문장 전집>은 염상섭의 소설이 아닌 그의 '문장'에 주목한다.
다소 낯설지 모르는 '문장'이라는 용어를 이 책의 제목으로 삼은 것은 소설 이외의 다양한 성격의 글을 하나로 표현한 용어다. 이 책의 편자는 '염상섭의 소설 작품도 그렇지만, 특히 그의 적지 않은 '문장'들이 전모가 지금까지 채 드러나지 않았고, 따라서 충분한 독해의 대상이 되지 못한 상태'라고 말한다. 이러한 시각에서 염상섭 '문장' 정리 작업은 시작되었고, 2013년 올해 결실을 맺어 책으로 출간되었다.
소설가 염상섭, 그의 ‘문장’을 주목하다
<만세전(萬歲前)>, <삼대(三代)>, 「표본실의 청개구리」, 「두 파산(破産)」 등 염상섭은 ‘자연주의 및 사실주의 문학을 일관되게 추구해 온 소설가’로서 평가받으며 한국문학사에 뚜렷한 공적을 새겼다. 하지만 이번에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그의 소설이 아니다. <염상섭 문장 전집>(소명출판, 2013)은 염상섭의 소설이 아닌 그의 ‘문장’에 주목한다. 다소 낯설지 모르는 ‘문장’이라는 용어를 이 책의 제목으로 삼은 것은 소설 이외의 다양한 성격의 글을 하나로 표현한 용어다. 이 책의 편자는 ‘염상섭의 소설 작품도 그렇지만, 특히 그의 적지 않은 ‘문장’들이 전모가 지금까지 채 드러나지 않았고, 따라서 충분한 독해의 대상이 되지 못한 상태’라고 말한다. 이러한 시각에서 염상섭 ‘문장’ 정리 작업은 시작되었고, 올해 결실을 맺어 책으로 출간되었다. 그의 ‘문장’을 읽는 것은 20세기 한국인이 지녔던 지적 사유의 심부에 접근하는 것이라는 확신을 독자들에게 가져다 줄 것이다.
사상가로서의 염상섭을 보다
사상을 지니고 살아가는 것, 혹은 그것을 표현하고 실천하는 것이 극단적으로 억압되었던 20세기 한국에서 염상섭은 문학이라는 대중언어를 통해 자기가 처한 시대의 곤혹에 대해 지속적인 사유와 해석을 시도했다. 그런 의미에서 염상섭의 문학은 사상의 형상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의 인식은 시대의 주류들에 대한 불화와 비타협의 정신으로 표현되었다. 그가 의도적으로 불화했던 대상은 누구보다 반세기 가까이 한국을 점령했던 제국의 식민자들이었다. 그러나 염상섭은 단성적인 언어와 사고방식을 고집했던 일부 프롤레타리아 비평가들, 자신의 언어조차 갖지 못했던 우익 이데올로그들의 편협과 나태에 대해서도 신랄한 공격을 주저하지 않았다. 비유컨대 근대 한국의 사상적 정황 속에서 염상섭은 상반되는 양쪽 모두를 비추는 야누스의 거울과 같은 존재였다.
독선과 자기애의 포로들에 대한 가혹한 멸시야말로 염상섭이 지녔던 지성의 본질이었다. 나르시즘과 동물성에 대한 그의 명징한 자의식은 아직도 한국사회가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치부의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염상섭은 불청객 취급을 받고 경원시되더라도 끊임없이 말을 거는 두터운 신경의 소유자였다. 그는 <만세전>의 이인화처럼 듣고자 하는 인내심이 출중했던 청자이기도 했다. 프롤레타리아 문학비평가들과 가장 열띤 논전을 벌인 문인이 염상섭이라는 사실은, 그가 절충주의자라거나 민족주의자라는 것을 의미하기보다 사회주의와 사회주의 운동세력의 역사적 존재성을 진지하게 받아들였음을 뜻한다. 그것은 사회주의를 잉태한 세계의 전체 안에 자신도 거하고 있다는 공통성의 감각에 기초해 있었다. 염상섭은 진정으로 응답하는 자였다.
세계공황 이후 맹위를 떨치던 프로문학이 침체에 빠져들고 이른바 ‘사상의 동요’가 확산되던 1934년 초 염상섭은 “조선에는 엄정한 의미로 ‘우익’은 없다. 자본주의가 발달 안 된 조선, 따라서 독자(獨自)의 자본주의적 문학이 생성치 못한 우리의 문학이란 것은 다분(多分)의 모방일지는 몰라도 완전한 부르주아 문학은 아닐 것이다. 따라서 예술지상주의에까지 올라가지도 못하였거니와 물론 파쇼화한 경향도 보지 못한 것이다. 그러므로 조선에서 구태여 이름 짓자면 ‘중간파’와 ‘좌파’는 있어도 ‘우익’이라는 것은 좀 부당할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 언급은 그 자신에게 붙여진 부르주아 문학자니 하는 규정에 대한 유감의 표현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전체성과 그것에 기반하여 생성되어야 할 삶과 사유의 공통성에 대한 환기였다. 하지만 반이성(反理性)의 배중률(排中律)이 지배했던 한반도 현대사에서 염상섭의 본뜻은 충분히 이해받지 못했다.
오사카 한국노동자 일동 대표(「독립선언서」)로 3·1운동에 참여했던 염상섭은 1947년 임화와 김남천 등이 모두 월북한 즈음에서야, 즉 사상 통제가 가혹해진 8·15해방의 끝자락에서 조선문학가동맹에 가입해 활동했다. 그가 자발적 의사로 가입했다는 사실은 1947년 11월 1일, 2일에 <중앙신문>에 실린 「조선문학을 어떻게 추진할까」라는 대담에서 분명히 확인된다.
김동인, 백철과 함께 한 <중앙신문> 좌담회에서 염상섭은 조선문학가동맹의 ‘정치주의’와 전조선문필가협회의 ‘순수성’이라는 양극단을 버린다면 ‘합류(合流)의 가능성’이 없지 않음을 강조했다. 38선 이남에서의 정세가 좌우를 똑같이 저울질할 수 없었던 상황에서 조선문학가동맹에 참여한 것은 이념과 정국의 비대칭적 기울기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한 필사적 기투였다. 염상섭의 해방기 문학 활동이 모두 그 낯설고 추상적이며 동시에 직접적이었던 38선에 대한 사유에 바쳐졌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염상섭은 민중주의적 가치를 신봉하지는 않았지만 누구보다 더 삶의 고난과 고통, 운명의 아이러니, 역사적 질곡의 무게와 같은 인간들이 직면해 있는 한계상황에 예민했다. 한계상황 속에서 인간은 서로의 삶을 자기 명분의 실현도구나 수단으로 훼손하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에서 염상섭의 문장은 놀랍도록 현재적이다.
<염상섭 문장 전집>은 현재의 표기 방식을 준수하면서도 염상섭 언어 사용의 맛을 해치지 않기 위해 원문 텍스트를 존중하여, 그가 있던 시대의 문채(文彩)를 살려내었다. 또한 염상섭의 막내 따님 염희영 여사가 제공해준, 귀한 자료들로 채워진 화보는 이 책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구성요소다.
필자는 이 책을 엮으면서 비평이니, 평론이니, 정론이니, 수필이니 하는 꼬리표를 달아 대상 자료를 분류하기보다 그 모두를 통칭할 필요를 느꼈다고 한다. 또한 염상섭의 글들은 표면적 형식들과 무관하게 사유의 긴밀한 내적 소통 속에서 씌어졌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다고 한다.
시대의 징후를 드러내고 사태의 전말을 끌어내는 염상섭의 심후한 문장들을 하나의 전체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면, <염상섭 문장 전집>을 통해 사안의 맥락에 대한 심각한 고뇌로부터 글쓰기를 시작하는 사상가로서의 그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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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염상섭(지은이)
1897년 서울 종로구 필운동에서 태어난다. 중인 계층의 서울 토박이라는 계층적 특징은 염상섭 문학 세계의 근간을 이루는 것으로, 그의 소설에서는 풍부한 서울말의 흔적과 근대적 삶에 대한 예민한 현실 감각을 찾아볼 수 있다. 관립 사범 학교를 중퇴하고 보성학교 중학 과정을 수학하던 중 1912년 염상섭은 일본 유학을 떠난다. 일본군 육군 중위였던 맏형의 도움으로 교토(京都)부립 제2중학을 마치고 이후 게이오의숙대학(慶應義塾大學) 예과 1학기를 다니다 자퇴한다. 그러던 중 조선에서 발생한 3·1 운동의 소식을 듣게 되고, 이에 3월 19일 오사카 덴노지(天王寺) 공원에서 단독적으로 독립 선언을 주재했으나 거사 직전 검거된다. 약 3개월간의 수감 후에는 요코하마의 복음(福音)인쇄소에 취직해 직공 노릇을 한다. 이 시기 경험한 양가적 경험, 즉 ‘근대 그 자체로서의 일본(문학)에 대한 의식’과 ‘제국 일본과 식민지 조선의 문제’는 이후 염상섭 문학 전반을 관통하는 핵심적인 요소로 구체화된다. 1920년 1월 ≪동아일보≫ 기자로 임명된 염상섭은 귀국해서 정경부 기자로서 활동하다 1920년 7월 사직한다. 염상섭은 ≪폐허≫ 창간호 동인으로 활동하는 한편, 1920년 하반기부터 1921년 봄까지 오산학교에서 교직 생활에 몸담기도 한다. 1921년 <표본실의 청개구리>를 발표하며 문단에 데뷔하고 문단의 주목을 받는다. 1924년 ≪시대일보≫에 발표된 ≪만세전≫은 염상섭 문학의 전환점을 보여 주는 작품이다. 이러한 문학적 성취는 1926년에서 1928년 사이에 이뤄진 두 번째 일본 유학과 결부되어 보다 심화된 문제의식으로 나아간다. 일본 유학 중에도 염상섭은 꾸준히 작품을 발표하고 있으며 일본인과 조선인이라는 민족적 정체성의 문제(혈통, 혼혈)를 밀도 있게 다룬다. 1928년 2월 귀국해서 ≪이심≫, ≪광분≫ 등을 연재하는 것에 이어 마침내 1931년 ≪삼대≫를 발표한다. 1920∼1930년대 발표된 염상섭의 작품들은 식민지 근대의 문제를 탐구하며, 식민지 조선의 정치·경제·사회·문화·사상에 관한 사유를 전개하고 있다. 역사와 사회·현실을 객관적으로 들여다보며 이를 깊이 있는 문제의식으로 구체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리얼리즘적 성격을 나타낸다. ≪삼대≫ 이후 염상섭은 ≪백구≫, ≪모란꽃 필 때≫, ≪불연속선≫ 등의 장편 소설을 발표하지만, 이들 작품은 앞선 시기의 작품들에 비해 통속화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런 가운데 1930년대 중반 염상섭은 돌연 만주행을 선택한다. 진학문의 권유로 ≪만선일보≫의 편집국장으로 근무하며, 1939년 만주 안동 대동항 건설 사업 선전에 종사한다. 이 기간 중 염상섭은 장편 소설 ≪개동≫을 집필하고, 안수길·박영준 등의 창작집 ≪싹트는 대지≫와 안수길의 창작집 ≪북원(北原)≫ 등의 서문을 쓴 것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창작 활동을 보이지 않는다. 1945년 광복을 맞이하기까지 약 10여 년의 기간 동안 그는 일종의 ‘문학적 단절’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해방된 서울로 돌아온 염상섭은 <해방의 아들>을 발표하며 다시금 문학 활동을 이어 가고, ≪경향신문≫ 창간 당시 편집국장으로 근무하기도 한다. 해방의 감격과 함께 곧이어 마주하게 된 ‘해방 이후’ 식민지의 모순, 미소 분할과 신탁 통치, 남북 분단 등의 혼란한 사회 현실의 모습을 <엉덩이에 남은 발자국>, <삼팔선>, ≪효풍≫ 등의 작품을 통해 세밀하게 그려 낸다. 1950년 6월 25일 한국 전쟁이 발발하지만 염상섭은 피난을 떠나지 못한다. 9·28 서울 수복, 10·25 중공군 개입, 1951년 1·4 후퇴의 혼란 속에서, 염상섭은 윤백남, 이무영 등과 함께 해군에 입대해 1951년부터 1953년까지 부산과 서울 정훈감실에서 해군 소령으로 복무한 뒤, 1954년 5월 임시 중령으로 전역한다. 전쟁의 발발과 폐허가 된 전후(戰後)의 현실 등과 같은 역사적 비극 앞에서, 염상섭의 소설은 일상적 삶의 감각을 객관적으로 보여준다. 1950년대 중후반 이후 발표되는 일련의 후기 작품들은 주로 남녀 연애담에 기반한 결혼과 가족의 문제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염상섭은 1963년 3월 14일 서울 성북동에서 타계한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서울 토박이의 삶은 서울에서 마무리된다. ‘작가’ 염상섭이 남긴 빛나는 작품들은 여전히 여기에 남아 있다. 염상섭은 평생에 걸쳐 작품 창작에 임하고, 소설을 쓴다는 것의 의미를 붙들었던 작가였다. 그가 보여 주는 치열한 소설 쓰기의 모습은 시대를 헤쳐 나가는 염상섭이라는 한 개인의 역사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거대한 물줄기로서 정립되어 가는 한국 문학사 그 자체의 역사와 다름없다.
한기형(엮은이)
충청남도 아산에서 출생했다. 성균관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한국근대소설의 형성과정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2년 성균관대학교 교수로 부임했으며 국립타이완정치대학 객좌교수를 역임했다. 2019년 현재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학술원 원장으로 일하고 있다. 문화제도사의 시각에서 식민지 근대성의 구조를 해명하는 데 문제의식을 두고 있다. 연구의 초점은 대중매체의 역사성, 문화시장과 문장표현에 대한 국가검열의 영향 두 가지이다. 그동안 <카프비평자료총서>(공편), <한국 근대소설사의 시각>, <근대어ㆍ근대매체ㆍ근대문학>(공저), <흔들리는 언어들>(공편), <식민지 검열―제도ㆍ텍스트ㆍ실천>(공편), <염상섭문장전집>(공편), <저수하의 시간, 염상섭을 읽다>(공편), <근대 학술사의 전망>(공저), <帝國の檢閱―文化の統制と再生産>(공편), <제국의 검열―문화의 통제와 재생산>(공편), <미친 자의 칼 아래서―식민지 검열관련 신문기사자료> 등의 책을 쓰거나 동료들과 함께 편집했다.
이혜령(엮은이)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교수. 《한국 근대소설과 섹슈얼리티의 서사학》(2007), 《민중의 시대》(2023, 공저), 《문학을 부수는 문학들》(2018, 공저), 《검열의 제국》(2016, 공저) 등을 썼다. 앞으로는 ‘위안부’를 은폐한 식민지 담론과 문학의 재현체계를 다시 들여다보고자 한다.
목차
책머리에
1918
부인의 각성이 남자보다 긴급한 소이所以
현상윤玄相允 씨에게 여與하여 「현시現時 조선청년과 가인불가인可人不可人을 표준」을 갱론更論함
비평, 애愛, 증오憎惡
1919
독립선언서獨立宣言書
격檄
조야의 제공에게 호소함朝野の諸公に訴ふ
삼광송三光頌
상아탑 형께-「정사丁巳의 작作」과 「이상적 결혼」을 보고
1920
머리의 개조와 생활의 개조-안방주인마님께
백악白岳 씨의 「자연의 자각」을 보고서
이중해방二重解放
자기학대에서 자기해방에-생활의 성찰
조선인을 상想함
조선 벗에게 정呈하는 서書
노동운동의 경향과 노동의 진의眞義
여余의 평자적評者的 가치를 논함에 답함
김 군께 한 말
법의法衣
상여想餘
폐허에 서서
1921
저수하樗樹下에서
정情의 오吳 군
월평月評-7월 문단
<오뇌의 무도>를 위하여
부득이하여
남궁벽南宮璧 군의 사死를 앞에 놓고
1922
개성과 예술
지상선地上善을 위하여
역자의 말-「사일간四日間」
여자 단발문제와 그에 관련하여-여자계女子界에 여與함
별의 아픔과 기타
이끼의 그림자
니가타현新潟縣 사건에 감鑑하여 이출노동자에 대한 응급책
민중극단의 공연을 보고
1923
문인회 조직에 관하여
자서自序-<견우화>
세 번이나 본 공진회
문단의 금년, 올해의 소설계
1924
고뇌의 갑자甲子를 맞자
필주筆誅
경과經過의 대략大略
동인기同人記
문인인상호기文人印象互記
「이년 후」와 「거치른 터」
돌상은 방方 선생님께서-나는 <천자문> 한자만
선후選後에
역자의 말-<남방南方의 처녀>
1925
계급문학시비론-작가로서는 무의미한 말
조선문단 합평회 제1회-2월 창작소설 총평
처녀작 회고담을 다시 쓸 때까지
최육당崔六堂 인상
먼저 가정을 정리하고
어떤 날
조선문단 합평회 제2회-3월 창작소설 총평
내 일
조선문단 합평회 제3회-4월 창작소설 총평
조선문단 합평회 제4회-5월 창작소설 총평
감상과 기대
<조선문단> 및 그 합평회와 나
조선문단 합평회 제5회-6월 창작소설 총평
하련荷蓮이나 구경하자
1926
계급문학을 논하여 소위 신경향파에 여與함
프롤레타리아문학에 대한 P씨의 언言
국화菊花와 앵화櫻花
6년 후의 동경에 와서
지는 꽃잎을 밟으며
잡지와 기고
1927
문단 침체의 원인과 그 대책
민족, 사회운동의 유심적 고찰-반동, 전통, 문학의 관계
문예와 생활
문단시평文壇時評
나에게 대한 반박에 답함
의문이 왜 있습니까
2월 문단시평
문예만담-4월 창작 월평
시조와 민요-문예만담에서
작금昨今의 무산문학無産文學
문예文藝 만비키萬引
배울 것은 기교-일본문단 잡관雜觀
정신적 승화가 남녀 풍기風氣의 취체取締일까
여름밤
병중病中의 도향稻香
작자의 말-<사랑과 죄>
추야단상秋夜斷想
민족 호패戶牌-<아시조선兒時朝鮮>을 읽고
1928
소설시대=사대사상
내게도 간신히 하나 있다
조선과 문예, 문예와 민중
세 가지 자랑
소설과 민중-「조선과 문예, 문예와 민중」의 속론續論
문예가의 사회성
들리는 대로 비치는 대로
답안
축사祝辭
찾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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