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00 | 00000nam c2200205 c 450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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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0 | ▼a 9791189273217 ▼g 94020 | |
| 020 | 1 | ▼a 9791189273026 (세트) |
| 040 | ▼a 211009 ▼c 211009 ▼d 21100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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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82 | 0 4 | ▼a 951.903 ▼a 895.664408 ▼2 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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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90 | ▼a 953.06 ▼b 2021z5 | |
| 245 | 0 0 | ▼a 모리야 에이후 관계문서 / ▼d 이형식 편저 |
| 260 | ▼a 서울 : ▼b 아연출판부, ▼c 2021 | |
| 300 | ▼a 320 p. : ▼b 삽화 ; ▼c 22 cm | |
| 490 | 1 0 | ▼a 아연사료총서 ; ▼v 3 |
| 500 | ▼a 해제수록 | |
| 500 | ▼a 감수: 이시바시 미치히데, 미야모토 마사아키 | |
| 500 | ▼a 본서는 일본국문학연구자료관에 소장되어 있는 『모리야 에이후 관계문서(守屋榮夫關係文書)』 가운데 조선과 관련이 깊은 서한(조선인이 보낸 서한 192통, 사이토 총독을 비롯한 일본인이 보낸 서한 65통, 제3자들의 서한 5통)을 엮은 것임 | |
| 504 | ▼a 참고문헌(p. 38)과 색인수록 | |
| 546 | ▼a 본문은 일본어, 영어가 혼합수록됨 | |
| 600 | 1 4 | ▼a 守屋榮夫 |
| 700 | 1 | ▼a 이형식, ▼g 李炯植, ▼d 1973-, ▼e 편 ▼0 AUTH(211009)52446 |
| 700 | 1 | ▼a 石橋道秀, ▼e 감수 |
| 700 | 1 | ▼a 宮本正明, ▼e 감수 |
| 740 | 2 | ▼a 守屋榮夫關係文書 |
| 830 | 0 | ▼a 아연사료총서 ; ▼v 3 |
| 900 | 1 0 | ▼a 이시바시 미치히데, ▼e 감수 |
| 900 | 1 0 | ▼a Ishibashi, Michihide, ▼e 감수 |
| 900 | 1 0 | ▼a 미야모토 마사아키, ▼e 감수 |
| 900 | 1 0 | ▼a Miyamoto, Masaaki, ▼e 감수 |
| 945 | ▼a KLPA |
소장정보
| No. | 소장처 | 청구기호 | 등록번호 | 도서상태 | 반납예정일 | 예약 | 서비스 |
|---|---|---|---|---|---|---|---|
| No. 1 | 소장처 중앙도서관/제3자료실(4층)/ | 청구기호 953.06 2021z5 | 등록번호 111849556 (1회 대출) | 도서상태 대출가능 | 반납예정일 | 예약 | 서비스 |
컨텐츠정보
책소개
일본국문학연구자료관에 소장되어 있는 『모리야 에이후 관계문서(守屋榮夫關係文書)』 가운데 조선과 관련이 깊은 서한(조선인이 보낸 서한 192통, 사이토 총독을 비롯한 일본인이 보낸 서한 65통 , 제3자들의 서한 5통)을 활자화 한 것이다.
모리야 에이후는 3.1운동 직후에 조선총독부 비서실장으로 부임해 총독부 인사에 관여할 뿐만 아니라 총독·정무총감의 훈시를 작성하고 기밀비를 관리하는 등 조선총독의 이른바 ‘문고리 권력’으로 조선총독부 내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당시 조선 언론에서는 ‘모리야 정치’라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그는 1924년 9월 내무성으로 돌아갔지만 1928년 일본에서 중의원의원에 당선된 이후 제국의회 ‘조선통’으로 활약하면서 조선인들의 진정·청원 안건을 제국의회에 전달하는 등 조선통치 에 깊숙이 관여하였다.
조선인들이 모리야에게 보낸 서한에는 중의원 출마에 대한 격려, 당선 축하, 각종 인사 청탁, 조선통치에 대한 정책 제언, 식산은행 자금융자, 토지 불하, 어장 허가 청탁 등 다양한 내용이 담겨있다. 이로 볼 때 모리야와 조선인 사이에는 관료 포스트를 둘러싸고 후견인·피후견인 관계(Patron·Client Relationship)가 성립했했다고 볼 수 있다. 사이토 총독이 모리야에게 보낸 서한에는 이왕세자결혼문제, 李堈公脫走事件, 조선철도 만철위탁문제, 3.1운동 1주년 배재학당 만세시위, 외국인선교사문제 등 다양한 조선총독부의 현안이 담겨있다.
본서는 일본국문학연구자료관에 소장되어 있는 『모리야 에이후 관계문서(守屋榮夫關係文書)』 가운데 조선과 관련이 깊은 서한(조선인이 보낸 서한 192통, 사이토 총독을 비롯한 일본인이 보낸 서한 65통 , 제3자들의 서한 5통)을 활자화 한 것이다. 모리야 에이후는 3.1운동 직후에 조선총독부 비서실장으로 부임해 총독부 인사에 관여할 뿐만 아니라 총독·정무총감의 훈시를 작성하고 기밀비를 관리하는 등 조선총독의 이른바 ‘문고리 권력’으로 조선총독부 내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당시 조선 언론에서는 ‘모리야 정치’라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그는 1924년 9월 내무성으로 돌아갔지만 1928년 일본에서 중의원의원에 당선된 이후 제국의회 ‘조선통’으로 활약하면서 조선인들의 진정·청원 안건을 제국의회에 전달하는 등 조선통치 에 깊숙이 관여하였습니다.
조선인들이 모리야에게 보낸 서한에는 중의원 출마에 대한 격려, 당선 축하, 각종 인사 청탁, 조선통치에 대한 정책 제언, 식산은행 자금융자, 토지 불하, 어장 허가 청탁 등 다양한 내용이 담겨있다. 이로 볼 때 모리야와 조선인 사이에는 관료 포스트를 둘러싸고 후견인·피후견인 관계(Patron·Client Relationship)가 성립했했다고 볼 수 있다. 사이토 총독이 모리야에게 보낸 서한에는 이왕세자결혼문제, 李堈公脫走事件, 조선철도 만철위탁문제, 3.1운동 1주년 배재학당 만세시위, 외국인선교사문제 등 다양한 조선총독부의 현안이 담겨있다. 또한 미국에 파견되었던 조합교회 목사 야마모토 다다요시(山本忠美)가 모리야에게 보낸 서한에는 조선통치에 대한 미국 내 프로파간다, 재미조선인의 친일화, 조선관계 정보수집 등 3.1운동 이후 야마모토의 재미선전활동이 드러나 있다. 이러한 서한의 주요 내용을 토대로 평가하자면, 본서는 1920∼30년대 조선지배정책사, 지방행정사, 기독교사, 재일유학생사, 일본정치사 등을 구명하는 필수불가결한 1급 사료가 될 것이다.
정보제공 :
목차
1. 일본인 서한 1. 阿部充家. ㆍ 40 2. ?藤? ㆍ 47 3. 山本忠美 ㆍ 74 2. 조선인 서한 1. 姜星熙 ㆍ 128 2. 姜昌基 ㆍ 128 3. ?星玉 ㆍ 131 4. ?泰用 ㆍ 132 5. 金基善 ㆍ 137 6. 金琪邰 ㆍ 150 7. 金基煥 ㆍ 155 8. 金東準 ㆍ 156 9. 金明濬 ㆍ 157 10. 金英? ㆍ 164 11. 金永哲 ㆍ 166 12. 金完變 ㆍ 167 13. 金在瀅 ㆍ 168 14. 金漢睦 ㆍ 168 15. 金漢秀 ㆍ 169 16. 南基允 ㆍ 171 17. 柳承欽 ㆍ 172 18. 閔丙爽 ㆍ 175 19. 朴命錫 ㆍ 178 20. 朴鳳九 ㆍ 181 21. 朴重陽 ㆍ 184 22. 方漢復 ㆍ 230 23. 相愛? 李起東ㆍ朴春琴 ㆍ 236 24. 徐相熙 ㆍ 236 25. 石明瑄 ㆍ 237 26. 石?衡 ㆍ 248 27. 孫斗漢 ㆍ 249 28. ?宗元 ㆍ 250 29. 申鉉求 ㆍ 251 30. 沈宜昇 ㆍ 261 31. 嚴柱明 ㆍ 262 32. 巖昌燮 ㆍ 263 33. ?斗煥 ㆍ 263 34. ?相根 ㆍ 265 35. 兪萬兼 ㆍ 265 36. 劉?淳 ㆍ 266 37. 李東雨 ㆍ 267 38. 李源讚 ㆍ 268 39. 李軫鎬 ㆍ 271 40. 李夏榮 ㆍ 279 41. 李海用 ㆍ 282 42. 張基昌 ㆍ 283 43. 張憲植 ㆍ 285 44. 崔晩達 ㆍ 288 45. 韓相龍 ㆍ 291 46. 咸善哉 ㆍ 296 47. ??純 ㆍ 297 48. 洪奭泳 ㆍ 302 3. 제삼자 서한 1. 姜星熙 ㆍ 304 2. 沈壽官 ㆍ 308 3. 沈衡? ㆍ 312 후 기 ㆍ 314 색 인 ㆍ 3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