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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41 | 1 | ▼a kor ▼h e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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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90 | ▼a 951.02 ▼b 2025 | |
| 100 | 1 | ▼a Bol, Peter Kees, ▼d 1948- ▼0 AUTH(211009)87828 |
| 245 | 1 0 | ▼a 피터 볼의 중국 지성사 강의 : ▼b 무주에서 본 리터라티의 학 1100-1600 / ▼d 피터 K. 볼 지음 ; ▼e 민병희 옮김 |
| 246 | 1 9 | ▼a Localizing learning : ▼b the literati enterprise in Wuzhou, 1100-1600 |
| 260 | ▼a 서울 : ▼b 너머북스, ▼c 2025 | |
| 300 | ▼a 688 p. : ▼b 삽화, 도표, 지도 ; ▼c 21 cm | |
| 490 | 1 0 | ▼a 너머의 글로벌 히스토리 ; ▼v 11 |
| 500 | ▼a 부록: 2.1. 도학 저자들의 저서 목록, 2.2. 비(非)도학 계열 저자들의 저서 목록, 4.1. 왕백의 저서 외 | |
| 504 | ▼a 참고문헌(p. 632-661)과 색인수록 | |
| 650 | 0 | ▼a Learning and scholarship ▼z China ▼z Jinhua Shi ▼x History |
| 650 | 0 | ▼a Intellectuals ▼z China ▼z Jinhua Shi ▼v Biography |
| 650 | 0 | ▼a Elite (Social sciences) ▼z China ▼z Jinhua Shi ▼x History |
| 651 | 0 | ▼a Jinhua Shi (China) ▼x History |
| 651 | 0 | ▼a Jinhua Shi (China) ▼x Intellectual life |
| 651 | 0 | ▼a China ▼x Intellectual life ▼y 960-1644 |
| 700 | 1 | ▼a 민병희, ▼d 1970-, ▼e 역 ▼0 AUTH(211009)141290 |
| 830 | 0 | ▼a 너머의 글로벌 히스토리 ; ▼v 11 |
| 900 | 1 0 | ▼a 볼, 피터 K., ▼e 저 |
| 945 | ▼a ITMT |
소장정보
| No. | 소장처 | 청구기호 | 등록번호 | 도서상태 | 반납예정일 | 예약 | 서비스 |
|---|---|---|---|---|---|---|---|
| No. 1 | 소장처 중앙도서관/제3자료실(4층)/ | 청구기호 951.02 2025 | 등록번호 111918001 (1회 대출) | 도서상태 대출중 | 반납예정일 2026-03-16 | 예약 예약가능 | 서비스 |
컨텐츠정보
책소개
중국 지성사에서 가장 중요한 흐름 중 하나인 12세기 신유학의 확산에서 17세기 고증학의 시작까지, 중국 남동부 절강성의 무주에서 펼쳐진 신유학(도학), 문학, 박학이 각축했던 리터라티(사)의 ‘학문’을 5세기에 걸쳐 입체적으로 추적한다.
피터 볼 교수(하버드대)는‘왜 학문이 주제인가? 이 기간을 왜 다루는가? 사(士)란 누구인가? 그리고 왜 이 지역에 대해 썼는가?’라는 책을 관통하는 네 질문을 던지며 송-원-명 시기의 ‘사의 학’을 지성사와 사회사를 가로지르며 조망한다. 그런데 왜‘지역’의 시각에서 접근했을까? 12세기 여진의 침략에 따른 북송에서 남송으로의 시대적 전환은 ‘지역적 전환’을 동반했다. 남송 이후 특히 몽골 지배 시기를 지나면서 사대부의 존재 양상과 정체성 자체가 ‘지역’이라는 단위와 밀접하게 결합되었기 때문이다.
도학(신유학), 문학, 박학, 고증학까지
어느 것도 조정과 수도에서 시작된 것은 없었다
『피터 볼의 중국 지성사 강의_무주에서 본 리터라티의 학 1100-1600』(원제 Localizing Learning: The Literati Enterprise in Wuzhou, 1100-1600)는 중국 지성사에서 가장 중요한 흐름 중 하나인 12세기 신유학의 확산에서 17세기 고증학의 시작까지, 중국 남동부 절강성의 무주에서 펼쳐진 신유학(도학), 문학, 박학이 각축했던 리터라티(사)의 ‘학문’을 5세기에 걸쳐 입체적으로 추적한다.
피터 볼 교수(하버드대)는‘왜 학문이 주제인가? 이 기간을 왜 다루는가? 사(士)란 누구인가? 그리고 왜 이 지역에 대해 썼는가?’라는 책을 관통하는 네 질문을 던지며 송-원-명 시기의 ‘사의 학’을 지성사와 사회사를 가로지르며 조망한다. 그런데 왜‘지역’의 시각에서 접근했을까? 12세기 여진의 침략에 따른 북송에서 남송으로의 시대적 전환은 ‘지역적 전환’을 동반했다. 남송 이후 특히 몽골 지배 시기를 지나면서 사대부의 존재 양상과 정체성 자체가 ‘지역’이라는 단위와 밀접하게 결합되었기 때문이다.
피터 볼이 제시하는 ‘지역적 전환’은 매우 강력한 논제다. 송-원-명 시대 문학(고문), 도학, 박학, 고증학 중 어느 것도 조정과 수도에서 시작된 것은 없었다는 것이다. 이들 모두 당시의 권력자와 주류의 학에 대한 저항으로 시작되었다. 이 책이 다루는 지역의 사(士)들 사이에서 발생했고, 그들 스스로의 손에 달려 있었던 지적, 도덕적, 정치적, 사회적 운동의 산물이었다. 사의 학이 지역에 따라 구체화하면서 정치적 중심지인 조정과 수도의 문화보다 이러한 ‘사의 학’은 중국 문화의 국가적 특성을 구성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중국 남동부 절강성의 무주(지금의 금화)라는 지역을 통해 드러나는 사의 학의 구체적 실상은, 유학의 여러 학파와 문학, 박학, 그리고 의학까지도 포함한 다양한 지적 전통들 사이의 복합적인 상호 관계, 긴장·갈등·타협, 그리고 이에 대한 정당화와 비판의 논리가 동아시아 지성사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임을 잘 보여준다.
이 책을 열면 서론의 지도에서 부록까지 저자가 50년 중국 지성사 공부와 문제의식을 확장하기 위해 현지 조사와 디지털 인문학에 쏟은 뜨거운 열정이 생생하게 드러난다. 피터 볼은 이 책이 중국사를 보는 데에만 유용한지, 아니면 한국사를 생각하는 데도 유용한지를 생각해 보길 권한다. 조선 사회에서는 신유학(도학) 성공이 문학, 박학, 의학 등을 지워 버린 것일까? 지역의 맥락에서 드러내는 통합적 역사의 시각이 중국의 절강성 무주에만 해당할까? 현재 수도권 중심에서 ‘지역적 전환’이 화두인 한국 사회에 큰 시사점을 던진다.
왜 신유학에 단 한 장만 할애한 것인가?
『피터 볼의 중국 지성사 강의』가 다루는 송대에서 명 말에 이르는 1100년에서 1600년 사이의 중국 지성사는 통상 주자학에서 양명학, 그리고 고증학으로 이어지는 신유학의 계보로 이해되어 왔다. 그러나 “이 책이 지성사를 다룬다면서, 왜 당에서 청 사이에 일어난 중국 지성사에서 가장 중요한 발전인 신유학에 단 한 장만 할애한 것인가? 왜 그토록 많은 부분을 문학, 과거시험 공부, 백과전서적 학문에 쏟고 있는가?”라는 물음에 피터 볼은 학문을 좋은 사고, 좋은 행동, 좋은 글쓰기를 위한‘실천되는 것’으로 정의하며 “이곳에서는 어떤 학이 실천되고 있었는가?”에 주목한다. 따라서 이 책이 조명하는 대상은 신유학의 전개를 중심에 두지 않고, 이곳 무주를 배경으로 각 시기의 단면 속에서 실제 현실에서 전개된 다채로운 지적, 문화적 추구와 그 복합적 관계를 살아 있는 주체로의 ‘사’의 활동 전반인 것이다.
남송 시기 여조겸에서 이야기를 시작하는 책을 펼쳐보자. 여조겸은 주희의 조력자로서 도학(신유학)의 기본 교재가 된 『근사록』을 주희와 함께 편찬하는 등 신유학의 체계를 세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책이 보여주듯, 주희는 여조겸과 무주 지역의 사들이 추구한 학이 자신이 생각하는 올바른 학과는 어긋난다고 맹렬한 비판을 가한다. 여조겸은 분명 신유학자이지만 그가 행한 ‘학’의 모든 측면(지적, 문화적, 그리고 실천적 행위들)의 다채로운 스펙트럼이 곧 신유학으로 환원될 수 없다는 것이 피터 볼의 주장이다. 전작에서 이미 중국 지성사의 유학적 지향과 문학적 지향의 상호 관련성과 긴장 관계를 주된 주제로 제시한 바 있는 저자는 이 책에서 그 시각을 보다 구체적이고 풍부한 사례를 통해 전개한다. 이 지역의 출판사에서 출간된 인기 있던 산문 문집에 주목하면서 12, 13세기의 ‘과거시험 교육’을 살펴본 후,『기찬연해』, 『여지기승』, 『군서고색』 3편의 유서(類書)를 통해 백과전서적 박학(博學)을 지향한 사들을 자세히 다루고, 문학적 수련과 표현을 가장 중시한 사들을 소개한다. 또한 주자학의 정통을 자처한 금화의 4선생, 하기, 왕백, 김이상, 허겸이 주자의 학을 단 하나의 참된 앎의 방법으로 여기며 주자의 학과 학 자체를 동일시했음을 보여준다.
신유학과 고증학은 어떻게 병립하고 단절되었는가
12세기 중반, 남송의 무주(지금의 금화)에는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북송 시대의 유산인 왕안석의 경세학, 정이 형제의 도학, 구양수와 소식의 문학까지 포함된 다양한 지적 전통들이 공존했지만, 주희에 의해 성립된 신유학(성리학, 도학)은 학의 경계를 새로 그리며, 리터라티로서 사가 학문을 하는 궁극적 목표를 재정의할 것을 요구했다. 신유학의‘유일하게 올바른 학의 방식’에 대한 배타적 주장은 그 학문의 내용과 원리 자체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 두드러졌다. 신유학이라는 체계는 그 근본 전제(형이상학적 세계관과 이에 기반한 학의 실천 방식)를 인정하지 않으면 더 이상 신유학이라할 수 없다는 명확한 경계를 가진 학문이었다. 이러한 전제란 곧, 우주의 모든 존재와 현상이 하나의 통합된 근본 원리에 따라 질서화되어 있다는 믿음을 뜻하며, 따라서 신유학자의 모든 지적 활동과 추구는 그 질서를 인식하고 드러내려는 행위로 이해되었다. 그러나 도학이 일부의 사들에게는 뚜렷한 준거점이 되었지만 실제 신유학자들의 현실적 행위는 단선적이지 않았다. 그들은 신유학이 제시한 학의 방식 외에도 다양한 학문을 동시에 추구했다. 다만 자신이 진정으로 신유학적 정체성을 가진 사라면, 문학, 전장제도 연구, 의학, 천문학 등 어떤 학문을 하더라도 그것이 자신이 속한 신유학의 체계와 어떠한 방식으로든 통합될 수 있음을 정당화해야 했다. 그 정당화가 반드시 성공적이거나 논리적으로 완결되지 않았더라도 말이다.
이 책은 바로 그 ‘경계의 전제’가 학문을 규율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인물, 호응린에서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그는 무주의 전통에 대한 재해석과 새로운 종류의 텍스트 연구를 통해 학문의 사명이 도학적 수양과 문학적 성취를 결합하는 것이라는 관념을 단호히 거부했다. 그는 한 시대의 끝이 시작되는 지점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호응린의 관점은 이후의 고증학과 유사성을 지니는데, 저자는 신유학과 고증학이 어떤 조건에서 병립하고 또 어떤 지점에서 단절되었는가를 들여다보는데 호응린은 하나의 창문을 제공한다고 본다.
사는 누구였을까? 왜 이들을 ‘리터라티’라 이르는가?
지역 엘리트가 사 엘리트로 전환되는 것은 송 이후 중국사에서 핵심적인 부분이었다. 그러나 사는 국가 엘리트 중 하나였지, 중국의 유일한 국가 엘리트는 아니었다. 당이나 송의 황실 가문은 왕조 말까지 2만 명에 달했고, 명대에도 존재했다. 원대에는 몽골인과 색목인이 세습적 엘리트였다. 이밖에 행정 서리, 불교 승려와 도교 도사들도 의심할 여지 없이 국가 엘리트였다. 송대 이전 시기 사라는 용어는 정부의 행정 관료를 지칭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1만 5천에서 3만 명 정도의 관료와 좀더 광범위한 집단으로 식별되었는데 주로 관직을 업으로 이어온 가문(세족)이었다. 이들은 전형적으로 수도(장안과 낙양)를 잇는 중심축 지역을 따라 밀집해 있었다.
저자는 관직 보유만으로 사를 ‘리터라티’라 한 번역은 정당하지 못하다 지적한다. 송대에 이르러 텍스트 전통과 문학적 작문을 익힌 사람들(리터라티)이 사로 취급되어 국가 엘리트 중 가장 중요한 집단이 되었으며, 출생보다는 학문이 전국적 엘리트의 구성원이 되는 자격을 제공해 주었다. 이는 학의 본질, 목적, 방법에 대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글쓰기에서의 고문과 도덕 사상에서의 도학이라는 사의 학의 국가적인 경향은 많은 저항 끝에 조정에서 인정받았으며, 과거시험과 학교를 통해 확산되었다. 1126년 여진이 개봉을 함락시키며 북송에서 남송으로 바뀐 뒤 제도적 변화를 거친 과거제도는 세족들의 지배적 지위를 약화시켰다. 송대에 사의 숫자가 가장 많이 증가한 곳은 현재의 절강성, 강소성, 복건성 등 중국 남부였다. 13세기 중반에는 과거 응시자가 40만 명에 이르렀다. 몽골의 1234년 화북, 1270년대 강남 지배 이후 상당 기간 사의 신분은 국가가 아닌 사들 스스로의 힘에 의해 유지되어야만 했다. 부침이 있었지만 1315년 과거제도는 다시 제도화되었고 도학이 공식적으로 과거시험 커리큘럼에 포함되었다. 명 말에 이르면 과거 응시자는 50만 명에 달했다.
관직이나 가문의 명망은 어느 시대에나 매우 바라는 것이었지만 송대를 기점으로 사가 공유한 정체성은 ‘학’을 통해 규정되었다. 텍스트를 읽고 문장을 쓰도록 훈련받는 교육이 이제는 잠재적 관료 집단인 전국적 엘리트에 누가 소속되는지를 정의하게 되었다. 학과 사의 신분 사이의 등식이 성립된 것이다.
“그들이 행한 학이 국가적 의미를 가진 것이었다면, 왜 지역적 관점이 필요한가?”
북송에서 남송으로의 시간적 전환은 공간적(지역적) 전환과 함께했다. 절강성, 강서성, 복건성 등 출신의 지역 엘리트가 사 엘리트로 전환되는 것은 송 이후 중국사에서 핵심적 부분이었다. 지역적 전환에서 중국의 남동부가 두드러진 까닭은 기후, 교통, 상업, 전쟁 지역과의 거리, 그리고 통치의 질 등 여러 측면에서 북부 지방보다 더 많은 사대부 가문을 지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절강성의 무주는 이 책의 서론에 수록된 지도들에서 드러나듯이 정치적 중심지나 상업이 번성한 소주와도 다소 떨어진, 한국의 안동이나 남원이 연상되는 산지 내륙이다. 피터 볼이 무주를 선택한 이유로, 12세기 중엽 이곳이 도학의 초기 중심지의 하나이면서도 한편으로 도학 운동 비판자들의 고향이었으며, 특히 현존하는 자료가 가장 풍부했기 때문이라 밝힌 것처럼 이곳은 지방지와 지역 기록이 흔했다.
이 책은 중국인물데이터베이스에 기반한 무주의 친족 및 사회적 연계에 대한 비교 정량 분석을 활용하여 사들의 행동에서 나타난 실질적 변화를 보여준다. 남송과 달리 원대 무주의 혼인 네트워크는 거의 전적으로 지역 내에서 이뤄졌으며, 그 대신 학문을 기반으로 한 연계가 강화되었다. 사당을 짓고 족보를 작성하고 유지하는 것은 공통된 사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병행되는 수단이었다. 사대부의 숫자는 지속적으로 증가했으며 이들은 지역의 일에 더 적극적이었고 교육에 더 많이 투자했다. 12세기 중엽에 이곳의 현시는 200 대 1로 전국에서 가장 경쟁률이 높았으며, 12세기 말에 이르면 무주 사람은 모든 과거시험에서 대략 10명의 진사를 배출했다. 과거시험이 거의 중요하지 않았고, 신분에서 몽골인, 색목인, 한인(북부)에 이어 가장 아래인 남인으로서 원대 무주의 사는 자신들 지역의 학의 역사를 바탕으로 정체성을 만들어냈고 이러한 정체성은 명대에 부활했다.
무주의 역사는 어떻게 학문의 문화가 지역사회에 뿌리내릴 수 있었는가에 대한 통찰을 제공한다. 이 책은 이렇게 12세기부터 17세기까지 한 지역에서 학문이 어떻게 공통된 과업으로 자리 잡았는지, 독특한 지역 정체성의 추구가 지역적인 것을 통해 어떻게‘전국적’인 것이 가능한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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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피터 K. 볼(지은이)
하버드대학교 동아시아언어문명학부 교수. 중국 지성사의 거장으로 7세기부터 17세기에 걸친 중국의 문화 엘리트를 국가와 지역 양쪽 수준에서 탐구해 왔다. 중국 역사지리정보시스템(CHGIS) 프로젝트, 중국역사인물데이터베이스(CBDB) 프로젝트를 이끄는 등 디지털 인문학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프린스턴대학교에서 당-송 변혁기 중국 지성사의 대전환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이를 보완하여 『중국 지식인들과 정체성』(원제 This Culture of Ours: Intellectual Transitions in T’ang and Sung China, 1994)을 출간했고, 신유학을 기존 철학사에서 벗어나 지성사의 관점에서 역사적으로 조명한 『역사 속의 성리학』(원제 Neo-Confucianism in History, 2010)을 내놓았다. 이 책 『피터 볼의 중국 지성사 강의』(원제 Localizing Learning: The Literati Enterprise in Wuzhou 1100-1600, 2022)까지 그의 50년 중국 지성사 공부와 문제의식을 확장한 3부작으로 꼽힌다.
민병희(옮긴이)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와 하버드대학교에서 동양사를 공부하였다. 주희의 사회·정치적 구상으로서의 ‘학’에 대한 연구로 하버드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전남대학교 사학과를 거쳐 홍익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중국과 동아시아의 지식, 사상, 사회를 연구하고 있다.
목차
한국어판 서문
서론 사의 학을 지역화하기
학學
시기: 12~16세기
출발점: 북송 시기를 돌아보다
리터라티로서의 사
사의 지역화
무주
책의 범위
1장 송대의 여조겸
과거시험, 서원, 스승
선생으로서의 여조겸
동지의 공동체 만들기
전기 작가로서의 여조겸
학자로서의 여조겸
사람들이 본 여조겸
사회적 영향
2장 학의 정치화
정치화된 학
과거시험을 위한 독서와 작문 그리고 출판
무주에서의 출판
학으로서의 논증적 글쓰기 형식
소식: 형식과 아이디어
책 쓰기
3장 세 편의 유서(類書)
『기찬연해』
『여지기승』
『군서고색』
4장 도학
금화 사선생
하기, 1188~1268
왕백, 1197~1274
김이상, 1232~1303
허겸, 1270~1337
계보의 끝
5장 원 정복에의 대처
덕행(윤리적 행위)
통치
문학: 학과 글쓰기
정복 이후 무주의 문장
유학과 문학을 아우르기
6장 연대와 혈연
사회적 맥락을 양적으로 살펴보기
“우리 무주”—지역 정체성과 사의 학
족보와 가문
사 가문의 지형
7장 명: 부흥과 분열
희망과 실망
부흥
장무 세대
장무
장무와 무주의 사 전통
명 시기 금화 사선생
왕양명으로의 전환
넓어지는 균열
8장 끝과 시작
“우리 무주”를 다시 정의하기
사들의 문제
지성사
호응린,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다
부록
2.1 _도학 저자들의 저서 목록
2.2 _비(非)도학 계열 저자들의 저서 목록
4.1_왕백의 저서
6.1_중국역사인물데이터베이스(CBDB) 데이터
6.2_무주의 인물 및 문학 선집
8.1_호응린의 현존 저작 목록
감사의 말
미주
참고문헌
옮긴이의 말
찾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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