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방 일간지에 가끔 시를 발표하기도 하며 시인이 되기를 꿈꾼다. 그러나 공부는 남에게 흉잡히지 않을 만큼만 하면 된다고 믿는 아버지는 내가 대학시험에 낙방하자 장남은 당연히 아버지의 뒤를 이어야 한다며 나를 시장 싸전에 앉혀놓는다. 그 다음날부터 나는 가슴속에 영글지 못한 채 들끓고 있는 여릿한 시어들만 간직한 채 커다란 짐자전거를 타고 아버지를 따라 장터로 쌀을 사러 다니고 배달일을 하며 바쁘게 지낸다.
이 생활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던 끝에 군에 자원 입대하고, 제대 후에는 서울 종로에 있는 학원에 다니며 잠깐의 해방을 맛보지만 석 달 만에 또다시 아버지에게 이끌려 싸전으로 내려오게 된다. 그리고 첫사랑 선아가 있지만, 아버지가 손수 골라준 무던하고 튼실한 여자와 결혼을 하고 만다.
이 처럼 장남인 나는 꿈들을 가슴속에 묻고 아버지 밑에서 지내지만, 동생들은 각자 자신의 꿈을 찾아 날아간다. 아버지 앞에서도 당당히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던 둘째는 멱살잡이를 당하지만 제 고집대로 대구에 있는 대학에 들어가고, 어려서부터 책을 좋아하던 셋째는 대학생은 한 명으로 족하다는 아버지의 성화 속에서도 어머니의 숨은 뒷바라지 덕분으로 서울의 일류대학에, 그것도 내가 꿈에도 그리던 국문학과에 당당히 합격을 하며, 여자는 고등학교까지만 배워도 충분하다는 아버지의 완고함 때문에 고교 졸업 후 공장에 다니던 누이는 가출했다가 뒤늦게 간호대학 합격증을 손에 쥐고 귀향한다.
크르렁하는 기침소리 하나로 모든 권위를 대신하는 아버지, 화가 나면 양동이를 집어던지고 밥상을 둘러엎는 급하고 엄한 성격을 갖고 있는 아버지는 예천에서 제일 먼저 돌 고르는 기계를 들여오고, 배달제를 도입하는가 하면 맛이 없는 쌀은 도로 바꿔주는 등 수완이 뛰어난 쌀장수이다.
또한 어렸을 적 우리들에게는 고무신 한 켤레를 두세 번씩이나 땜질해 신길 정도로 돈을 절대 헛되이 쓰지 않고, 돌박이를 등에 업은 아내에게는 콩나물 도가를 만들어 물 주는 일을 시키고, 싸전 옆에다 야채전을 열어 어머니를 붙잡아놓는 등 누구도 한가로이 몸을 쉬지 않게 한다.
어머니가 시주한 쌀을 시주승의 걸망에서 도로 쏟아낼 정도로 종교를 싫어하는 아버지는 선산에 대해서만큼은 끔찍할 정도로 애착을 갖고 있다. 그러나 내 시가 일간지에 실렸을 때는 시장을 돌며 `야가 우리 맏이시더`라며 대견해 하셨고, 동생들이 줄줄이 대학에 합격했을 때는 기쁨에 못 이겨 은근히 자랑까지 하는 따뜻함을 가진 분이기도 하다.
이러한 아버지의 그늘에서 어떻게든 벗어나고 싶었던 나는 양곡조합 총무일을 맡아 점차 밖으로 나돌기 시작한다. 아버지는 싸전을 자주 비우는 나를 못마땅해 하지만 내 덕분에 많은 정부미를 배정받고 재래시장이 헐리고 새로 들어선 상가의 목 좋은 자리를 배정받게 되자 나를 은근히 대견해 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조합원들과 술 한잔 걸치고 늦도록 마작패들과 어울리거나 시를 좋아하는 실비집 여자를 찾아 함께 미당을 노래하느라 늦는 날들이 점점 많아진다.
그러는 사이 나는 어느덧 세 아이의 아버지가 된다. 내가 조합 사무실의 화투판 위에서, 실비집 여자의 배 위에서 끌끌거리며 보낸 대가로 살림집을 팔던 날, 아버지는 내게 손찌검을 하거나 욕을 들이붓는 대신 술을 마시고 시장을 돌며 꺼이꺼이 눈물을 흘린다. 마음을 다잡고 다시 일을 해나가던 서른세 살 무렵 아버지가 내게 싸전을 전적으로 맡기자, 나는 사업을 좀더 확장해 보고자 의욕적으로 일한다.
그러나 현금보다 외상거래를 많이 하는 무리한 차떼기로 인해 곧 파산을 맞고, 이로써 아버지가 그리도 아끼던 선산밑에 붙어 있던 몇 마지기 논까지 팔게 된다. 결국 아버지가 평생 일군 모든 것을 다 망쳐놓은 난 도망치듯 서울의 단칸방으로 이사를 한다.
아내는 구슬 꿰는 부업을 시작하고, 나는 시계공장에서 하루종일 사포질하는 일로 근근히 살아가며, 처음으로 가장이란 사실을 뼈아프게 깨닫는다. 그토록 벗어나고 싶어 몸부림쳤던 아버지의 그늘을 급기야 벗어났다고 생각하는 순간, 나는 생활고의 그늘에 파묻히고 만 것이다.
맏형으로서 동생들과 함께 지낼 집 한칸 마련하지 못하는 데 대한 비애를 느끼던 어느 날 갑자기 올라온 아버지는, 우리가 사는 모습을 보고는 결국 예천에 있는 싸전을 모두 정리해 서울로 올라온다. 그 돈으로 나는 광명에 마당이 딸린 집을 하나 마련하고 서울의 어느 낡은 아파트 입구에 슈퍼를 얻어 장사를 시작한다.
그러나 얼마 안돼 아파트가 재개발로 헐리게 되자 권리금도 찾지 못한 채 나앉고 만다. 그 충격으로 쓰러진 아버지는 삼 일 만에 결국 세상을 하직하고, 아버지의 명복을 비는 기도를 드리러 시골로 내려간 어머니도 산에서 갑자기 쓰러져 중풍으로 눕게 된다.
아이들 교육을 위해 이사를 하자는 아내의 강력한 주장에 못 이겨 우리 가족은 서울로 본격적으로 진입한다. 아내는 파출부일을 나가며 극성스러울 정도로 아이들 교육에 매달리고, 나는 아파트 경비로 일하면서 쉬는 날에는 산책을 하며 어머니의 운동을 돕는다. 그러나 가을 햇살에 수유가 빨갛게 익어가던 어느 날 산책길에서 어머니는 트럭에 치여 운명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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