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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

삼국유사 (140회 대출)

자료유형
단행본
개인저자
일연 고운기, 옮김
서명 / 저자사항
삼국유사 / 一然 지음 ; 고운기 옮김.
발행사항
서울 :   홍익출판사 ,   2001.  
형태사항
495 p. ; 23 cm.
총서사항
지혜의 샘·한국고전총서 ; 4
ISBN
8970656049
일반주기
색인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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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2 0 4 ▼a 953.03
090 ▼a 953.03 ▼b 2001d
100 1 ▼a 일연 ▼0 AUTH(211009)41254
245 1 0 ▼a 삼국유사 / ▼d 一然 지음 ; ▼e 고운기 옮김.
260 ▼a 서울 : ▼b 홍익출판사 , ▼c 2001.
300 ▼a 495 p. ; ▼c 23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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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 ▼a 색인수록
700 1 ▼a 고운기, ▼e 옮김 ▼0 AUTH(211009)67816

소장정보

No. 소장처 청구기호 등록번호 도서상태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No. 1 소장처 중앙도서관/제3자료실(4층)/ 청구기호 953.03 2001d 등록번호 111210462 (61회 대출) 도서상태 대출가능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B M
No. 2 소장처 중앙도서관/제3자료실(4층)/ 청구기호 953.03 2001d 등록번호 111210463 (41회 대출) 도서상태 대출가능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B M
No. 3 소장처 중앙도서관/제3자료실(4층)/ 청구기호 953.03 2001d 등록번호 111306914 (39회 대출) 도서상태 대출가능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B M

컨텐츠정보

책소개

고려 중엽 승려인 일연이 지은 역사책으로 단군 조선의 건국신화에서부터 고려 중엽까지의 일들이 아주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으며, 김부식의 <삼국사기>와 더불어 현존하는 한국 고대 사적(史籍)의 쌍벽을 이루고 있다.

<삼국사기>에서는 볼 수 없는 많은 고대 사료들을 수록하고 있어 소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문헌이며, 그 방대함과 역사 기술상의 독특함으로 이미 고전 중의 고전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삼국유사>를 더 상세하고 젊은 언어로 충실하게 해석했다. 부록으로 왕력과 일연과 삼국유사의 시대를 담았다.

김부식의 {삼국사기}와 더불어 현존하는 한국 고대 사적(史籍)의 쌍벽 {삼국유사}. 지금으로부터 천 오백 년 전쯤 이 땅에 살았던 조상들의 삶을 고스란히 찾아가 볼 수 있다. {삼국사기}에서는 볼 수 없는 많은 고대 사료들을 수록하고 있어 소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문헌이며, 그 방대함과 역사 기술상의 독특함으로 이미 고전 중의 고전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삼국유사}를 더 상세하고 젊은 언어로 충실하게 해석했다. ♣ {삼국유사}라는 책 1145년 고려 인종 23년에 우리의 고대사를 정리하는 역사서의 편찬에 대해 관심으로 인해 김부식의 {삼국사기}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100여 년이 흐르는 동안 고려 사회는 커다란 변화를 겪었다. 문신귀족들의 차별에 불만을 품은 무인들이 반란을 일으키고 정권을 잡은 것이다. 무인들의 집권은 단순히 집권 자체로 끝나지 않았다. 그것은 사람들의 세계관에 변화를 주었다. 또 송(宋)나라의 멸망과 원(元)나라의 성립은 우리 중심의 새로운 세계관을 형성해 보려던 고려의 정권 담당자들에게 커다란 충격과 암시를 함께 주었다. 하늘처럼 알았던 중국도 변방의 오랑캐에게 무릎을 꿇음으로써 당대의 관념은 완전히 무너졌다. {삼국유사} 탄생의 배경은 이 두 가지 당대의 세계사적 사건에 기인한다. 세계관의 변화는 역사관의 변화를 가져왔고, 모든 것을 중국 중심으로 해석했던 {삼국사기}의 역사기술은 이제 힘을 잃고 {삼국유사}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 {삼국유사}의 구성 {삼국유사}는 전체가 9개 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왕력(王曆) 기이(紀異) 흥법(興法) 탑상(塔像) 의해(義解) 신주(神呪) 감통(感通) 피은(避隱) 효선(孝善)이 그것이다. 전체적인 구성을 본다면 연대기로서 왕력, 준(準)역사서로서 기이, 불교문화사적 관점에서 당대인의 삶을 기록한 흥법 이하의 여러 편으로 삼대분(三大分)해 볼 수 있다. 여기서 왕력은 {삼국유사} 전체 기술의 기반이 되는 부분이고, 기이는 양적으로도 역사자료의 가치를 충분히 가지고 있지만, 기술방식이나 역사관에서 {삼국사기}와 다른 질적인 면이 있다. 특히 [기이]편은 그 서문에서 밝힌 바 우리에게 뿌리가 되는 나라와 왕들을 비록 기이한 이야기처럼 들릴지 모르나 굳이 수록했다는 것, 그래서 단군신화가 처음으로 문서상에 기록되었다는 데에서 더 이상 강조할 필요 없는 가치를 가지고 있다. [흥법] 이하의 편들을, 불교문화사적 관점에서 당대인의 삶을 기록했다. 일연은 승려이고 분명한 불교적 역사의식을 가진 사람이었다. 불교문화사란 그런 저자에게서 나올 수 있는 당연한 결과다. 다만 불교 하나로 모든 것을 재단하고 있지 않다는 점, 그러므로 읽는 이도 어떤 편협한 선입관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점이 중요하다. 일연은 {삼국유사}를 쓰면서 이 책이 {삼국사기} 같은 역사서로만, {고승전} 같은 불교서로만 만족하지 않았다. 그것들이 어우러지면서 우리 고대사를 입체적으로 조망해 볼 어떤 틀을 만들어 냈다고 보아야 옳을 것이다. 본문 중에서고조선{고기}(古記)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옛날 환인(桓因)의 서자 환웅(桓雄)이 자주 하늘 아래에서 사람이 사는 세상을 찾아가고자 하였다. 아버지가 자식의 뜻을 알고, 아래로 세 봉우리가 솟은 태백산을 굽어보니,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할 만하였다. 이에 천부(天符)의 증표 세 개를 주어 가서 다스리도록 하였다. 환웅은 3천 명의 무리를 이끌고 태백산 마루 신단수 아래로 내려왔다. 이 곳을 일러 신시(神市)라 하였고 스스로를 환웅천왕이라 불렀다. 풍백(風伯), 우사(雨師) 그리고 운사(雲師)를 거느리고, 곡식 운명 질병 형법 선악을 주관하는 등 무릇 세상의 3백 60여 가지 일을 맡아보고, 세상에 있으며 교화를 베풀었다. 그때 곰 한 마리와 호랑이 한 마리가 굴에 같이 살면서, 늘 환웅 신에게 자신들이 사람으로 변하게 해달라고 빌었다. 환웅 신은 신령스런 쑥 한 다발과 마늘 스무 낱을 주고서, '너희들은 이것을 먹고 1백일간 햇빛을 보지 말아라. 사람의 모습을 얻게 될 게야' 라고 말했다. 곰과 호랑이는 받아서 그것을 먹고 21일을 꺼렸는데, 곰은 여자의 몸이 되었지만, 호랑이는 제대로 꺼리지 못해 사람의 몸이 되지 못하였다. 웅녀는 누구와 혼인할 상대가 없었기 때문에 늘 신단수 아래에서 잉태하게 해달라고 빌었다. 이에 환웅이 사람의 몸으로 나타나 혼인하고,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니 단군(檀君)이라 불렀다. <14∼15페이지> 진성여대왕과 거타지제51대 진성여왕(眞聖女王)이 조정에 나간 지 몇 년 되었을 때였다. 유모 부호부인(鳧好夫人)과 그 남편 위홍(魏弘) 잡간 등 서너 사람이 신하로서 총애를 받고 권세를 마구 휘둘러 정치가 어지러워졌다. 도적까지 들끓자, 백성들이 이를 걱정하여 [다라니](抒羅尼)로 은밀한 문장을 지어 길거리에 내붙였다. 왕과 못된 신하들이 이를 얻어보고는 말했다. "왕거인(王居仁)이 아니면 누가 이런 문장을 지었겠느냐?" 그리고 나서는 왕거인을 감옥에 가두었다. 그가 시를 지어 하늘에 호소하였더니, 하늘이 감옥을 뒤흔들었다. 이 때문에 그를 풀어주었다. <119페이지> 고구려의 영탑사승전(僧傳)에서는, "석(釋) 보덕(普德)은 자(字)가 지법(智法)인데, 이전 고구려 용강현 사람이다"라고 하였다. 자세한 것은 앞서의 본전을 보라. 늘 평양성에서 살았다. 산사의 한 노스님이 와서 경전을 강독해 달라고 청했다. 간곡히 거절했으나 피할 수 없었다. 가서 {열반경} 40권을 강독하고, 자리가 끝나자 성의 서쪽 대보산 바위 동굴 아래에서 선관(禪觀)에 들었다. 신인(神人)이 나타나 이 곳에 꼭 머무르기를 청하고, 지팡이를 앞에 놓더니 그 땅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아래 8면의 7층탑이 있다." 파보니 과연 그랬다. 그래서 절을 세워 영탑사(靈塔寺)라 하고 거기에 머물렀다. <208페이지> 저자 소개일연(一然) 속명은 김견명(金見明)이다. 자는 일연(一然)이고, 시호는 보각(普覺)이다. 경상북도 경산(慶山)에서 태어났다. 1214년(고종1년) 9세에 전라도 해양(海陽:현재 광주) 무량사(無量寺)에 들어가 학문을 닦다가 1219년 승려가 되었다. 1227년 승과(僧科)에 급제, 1237년 삼중대사(三重大師), 1246년 선사(禪師), 1259년 대선사(大禪師)가 되었다. 1261년(원종2년) 왕명으로 선월사(禪月寺) 주지가 되어 목우의 법을 이었다. 1268년 운해사(雲海寺)에서 대덕(大德) 100여 명을 모아 대장경 낙성회(大藏經落成會)를 조직, 그 맹주가 되었다. 1277년(충렬왕3년) 운문사(雲門寺) 주지가 되어 왕에게 법을 강론, 1283년 국존(國尊)으로 추대되고 원경충조(圓經沖照)의 호를 받았다. 1284년 경상북도 군위(軍威)의 인각사(麟角寺)를 중건하고 궁궐에서 구산문도회(九山門都會)를 열었다. 저서로는 {삼국유사(三國遺事)}를 비롯하여 {어록(語錄)}, {계승잡저(界乘雜著)}, {중편조동오위(重編曹洞五位)}, {조도(祖圖)}, {대장수지록(大藏須知錄)}, {제승법수(諸僧法數)}, {조정사원(祖庭事苑)}, {선문점송사원(禪門拈頌事苑)} 등이 있다. 옮긴이 고운기 (高雲基) 1961년 전남 벌교에서 출생하였다. 한양대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 대학원 국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박사논문은 [일연의 세계인식과 시문학 연구](1993)이다. {일연}(1997), {새로 읽는 한국고시가}(1998),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유사 이야기}(2001)를 냈고, 학위논문을 보완한 {일연과 삼국유사의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한편, 198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하였으며, {밀물 드는 가을 저녁 무렵}(1987), {섬강 그늘}(1995), {나는 이 거리의 文法을 모른다}(2001) 등 세 권의 시집을 냈다. 1999년 9월, 일본 게이오(慶應)대학 문학부 연구원으로 도일(渡日), 현재 한국과 일본의 고시가를 비교 연구하고 있다.


정보제공 : Aladin

저자소개

일연(지은이)

고려의 승려이다. 속성은 전씨, 이름은 견명, 자는 회연, 호는 무극·목암이다. 경주 장산군(지금의 경산시) 출신으로, 아버지는 지방 향리 출신인 언필이다. 1206년(희종 2년)에 태어나 1289년(충렬왕 15년) 입적하였다 충렬왕 3년 운문사에 머무르면서 『삼국유사』 집필에 착수하였다. 특정 신앙이나 종파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불교 신앙을 표방하는 저술을 찬술했으며, 선과 교를 막론하고 많은 불교 서적을 편수하였다. 9세 때 해양(지금의 光州) 무량사에서 취학했으며, 14세 때 설악산 진전사로 출가하여 대웅장로에게서 구족계를 받았다. 1227년(고려 고종 14년) 선불장에 나아가 상상과에 급제한 이후 포산(현풍현 비슬산)의 보당암·무주암·묘문암 등지에서 머물렀으며, 1237년 삼중대사가 되고 1246년 선사가 되었다. 대몽항쟁기 일연은 포산에서 22년을 보내면서 뚜렷한 행적을 남기지 않았다. 1249년 최씨 무인정권과 밀접한 유대를 가지고 있던 정안의 초청으로 남해 정림사에 머물게 되었다. 이는 일시적으로 최이에게 반발한 정안이 수선사 계통의 승려를 기피하여 가지산문의 일연을 초청한 것인데, 이로 인하여 가지산문의 승려들이 최씨 정권과 연결되어 1251년에 완성된 대장경 조판 중 남해분사에서의 작업에 참가하게 되었다. 1259년 대선사가 되었고, 1261년(원종 2년) 원종의 명에 따라 강화도에 초청되어 선월사에 머물렀는데, 이때 지눌의 법맥을 계승했다. 이는 그가 가지산문(헌덕왕 때 보조선사 체징이 도의道義를 종조宗祖로 삼고 가지산 보림사에서 일으킨 선풍)에서 사굴산문(범일이 강릉의 굴산사에서 선풍禪風을 크게 일으킴으로써 사굴산파 또는 굴산선파라고 함)으로 법맥을 바꾼 것이 아니라 원종을 옹위한 정치세력이 불교계를 통솔하기 위해 일연을 이전의 수선사 계통의 승려를 대신한 계승자로 부각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를 배경으로 가지산문의 재건에 힘썼다. 1268년 왕명에 의해 운해사에서 대장낙성회를 주관하고, 1274년 비슬산 인홍사를 중수한 후 왕의 사액에 따라 인흥사로 개명했으며, 같은 해 비슬산 용천사를 불일사로 개명했다. 1281년 경주에 행차한 충렬왕에게로 가서, 불교계의 타락상과 몽골의 병화로 불타 버린 황룡사의 모습을 목격하였다. 1282년 충렬왕에게 선禪을 설하고 개경의 광명사廣明寺에 머물렀다. 1283년 국존國尊으로 책봉되어 원경충조圓經&#20914;照라는 호를 받았으며, 왕의 거처인 대내大內에서 문무백관을 거느린 왕의 구의례(옷의 뒷자락을 걷어 올리고 절하는 예)를 받았다. 그 뒤, 어머니의 봉양을 위해 고향으로 돌아왔다. 어머니가 1284년에 타계하자, 조정에서는 경상도 군위 화산의 인각사를 수리하고 토지 100여 경을 주어 주재하게 하였다. 경상북도 군위 인각사에서는 당시의 선문을 전체적으로 망라하는 구산문도회를 두 번 개최하였다. 1289년 금강인을 맺고 입적하였다. 대표적인 제자로는 혼구와 죽허가 있다. 저서에는 『삼국유사』 5권, 『선문염송사원』 30권, 『화록』 2권, 『게송잡저』 3권, 『중편조동오위』 2권, 『조파도』 2권, 『대장수지록』 3권, 『제승법수』 7권, 『조정사원』 30권 등을 저술하였다.

고운기(옮긴이)

현재 한양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1961년 전남 보성에서 태어나 한양대학교 국문학과와 연세대학교 대학원 국문학과를 졸업하였다(문학박사). 학위논문은 〈一然의 세계인식과 詩文學 연구〉이다. 일본 게이오대학 문학부 방문연구원과 메이지대학 문학부 객원교수를 거치며 한일 고대문학을 비교 연구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유사》, 《스토리텔링 삼국유사 1~5》 등을 출간하였다. 198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시인이기도 하다. 《밀물 드는 가을 저녁 무렵》, 《구름의 이동속도》, 《고비에서》 등의 시집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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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목차
『삼국유사』를 펴내며 = 3
삼국유사 권제1
왕력 제1
 기이 (권)제(1)2 = 13
  고조선 = 14
  위만조선 = 16
  마한 = 19
  두 개의 부 = 20
  일흔 여덟 개 나라 = 21
  낙랑국 = 21
  북대방 = 22
  남대방 = 23
  말갈과 발해 = 23
  흑수와 옥저 = 25
  이서국 = 25
  다섯 가야 = 26
  북부여 = 26
  동부여 = 27
  고구려 = 28
  변한과 백제 = 31
  진한 = 32
  서른 다섯 금입댁 = 32
  또 네 계절 놀기 좋은 집 = 33
  신라의 시조 혁거세왕 = 34
  제2대 남해왕 = 38
  제3대 노례왕 = 40
  제4대 탈해왕 = 40
  김알지 = 44
  연오랑과 세오녀 = 45
  미추왕과 죽엽군 = 46
  내물왕과 김제상 = 48
  제18대 실성왕 = 53
  거문고의 갑을 쏘라 = 54
  지철로왕 = 55
  진흥왕 = 57
  도화녀와 비형랑 = 57
  하늘이 내려준 옥대 = 60
  선덕왕이 절묘하게 알아차린 세가지 일 = 61
  진덕왕 = 64
  김유신 = 66
  태종 춘추공 = 69
  장춘랑 파랑 = 83
삼국유사 권제2
 기이 = 85
  문무왕 법민 = 85
  만파식적 = 93
  효소왕대의 죽지랑 = 95
  성덕왕 = 98
  수로부인 = 99
  효성왕 = 101
  경덕왕과 충담사 그리고 표훈대덕 = 101
  혜공왕 = 105
  원성대왕 = 106
  이른 눈 = 111
  흥덕왕과 앵무 = 111
  신무대왕과 염장 그리고 궁파 = 111
  48대 경문대왕 = 113
  처용랑과 망해사 = 116
  진성여대왕과 거타지 = 119
  효공왕 = 122
  경명왕 = 123
  경애왕 = 123
  김부대왕 = 123
  남부여와 전백제 = 131
  무왕 = 136
  후백제와 견훤 = 139
  가락국기 = 155
삼국유사 권제3
 흥법 제3 = 177
  순도가 고구려에 오다 = 177
  마라난타가 백제 불교를 열다 = 178
  아도가 신라 불교의 기초를 놓다 = 179
  원종은 불교를 일으키고 염촉은 몸을 바치다 = 186
  법왕이 살생을 금하다 = 193
  보장왕이 노자를 섬기고 보덕이 암자를 옮기다 = 194
 탑상 제4 = 201
  동경 흥륜사의 금당 십성 = 201
  가섭불 연좌석 = 201
  요동성의 육왕탑 = 204
  금관성의 바사석탑 = 206
  고구려의 영탑사 = 208
  황룡사의 장륙 = 208
  황룡사의 구층탑 = 211
  황룡사 종과 분황사 약사 그리고 봉덕사 종 = 215
  영묘사의 장륙 = 216
  사불산과 굴불산 그리고 만불산 = 216
  생의사의 돌 미륵 = 219
  흥륜사의 벽화 보현 = 219
  세 곳의 관음과 중생사 = 220
  백률사 = 225
  민장사 = 227
  여러 차례 가져온 사리 = 228
  미륵선화와 미시랑 그리고 진자사 = 239
  남백월산의 두 성인 노힐부득과 달달박박 = 243
  분황사 천수대비, 맹인 아이가 눈을 뜨다 = 250
  낙산의 두 성인 관음과 정취 그리고 조신 = 251
  어산의 부처님 모습 = 259
  오대산의 오만 개 진신 = 264
  명주 오대산 보천태자 전기 = 272
  대산 월정사의 다섯 성중 = 273
  남월산 = 275
  천룡사 = 276
  무장사의 미타전 = 279
  백엄사의 석탑 사리 = 280
  영취사 = 281
  유덕사 = 282
  오대산 문수사의 석탑기 = 282
삼국유사 권제4
 의해 제5 = 285
  원광의 중국 유학 = 285
  보양과 이목 = 297
  양지가 지팡이를 부리다 = 301
  인도로 간 여러 스님들 = 303
  혜숙과 혜공의 삶 = 304
  자장이 계율을 정하다 = 309
  원효는 무엇에도 얽매지 않다 = 317
  의상이 화엄을 전하다 = 321
  말을 못 하던 사복 = 326
  진표가 간자를 전하다 = 327
  관동 풍악산의 발연사비석의 기록 = 333
  승전과 해골 = 338
  심지가 스승을 잇다 = 339
  유가종의 대현과 화엄종의 법해 = 344
삼국유사 권제5
 신주 제6 = 347
  밀본이 귀신들을 쫓아내다 = 347
  혜통이 용을 항복시키다 = 350
  명랑의 신인종 = 354
 감통 제7 = 357
  선도성모가 불사를 즐기다 = 357
  욱면이 염불해서 서방정토로 가다 = 360
  광덕과 엄장 = 362
  경흥이 우연히 성인을 만나다 = 365
  진신이 공양을 받다 = 367
  월명사의 도솔가 = 369
  선율이 살아 돌아오다 = 373
  김현이 호랑이에 감동되다 = 374
  융천사의 혜성가 = 381
  정수 스님이 얼어죽을 뻔한 여자를 구하다 = 382
 피은 제8 = 385
  낭지가 구름을 타다, 그리고 보현수 = 385
  연회가 이름을 감추다, 그리고 문수점 = 389
  혜현이 고요함을 구하다 = 391
  신충이 벼슬을 놓다 = 393
  포산의 성인 두 사람 = 395
  영재가 도적을 만나다 = 399
  물계자 = 400
  영여사 = 402
  포천산의 다섯 비구 = 403
  염불사 = 403
 효선 제9 = 405
  진정사의 지극한 효행 = 405
  대성이 두 세상의 부모에게 효도하다 = 407
  향득 사지가 허벅지 살을 베어 부모를 봉양하다 = 410
  손순이 아이를 묻다 = 411
  가난한 여자가 어머니를 봉양하다 = 412
부록
 [부록 1] 왕력 = 417
 [부록 2] 일연과 삼국유사의 시대 = 441
찾아보기 = 4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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