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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王朝實錄抄)漢城府資料集. 24 , 宣祖 26年(1593)

(朝鮮王朝實錄抄)漢城府資料集. 24 , 宣祖 26年(1593)

자료유형
단행본
단체저자명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편
서명 / 저자사항
(朝鮮王朝實錄抄)漢城府資料集. 24 , 宣祖 26年(1593) / 편저: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발행사항
서울 :   서울特別市史編纂委員會,   2006.  
형태사항
604, 131 p. ; 27 cm.
일반주기
권말에 원문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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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0 ▼a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e▼0 AUTH(211009)15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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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정보

No. 소장처 청구기호 등록번호 도서상태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No. 1 소장처 중앙도서관/서고2층(단행본)/대형 청구기호 953.105 2001 24 등록번호 111408201 도서상태 대출가능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B M
No. 2 소장처 중앙도서관/서고2층(단행본)/대형 청구기호 953.105 2001 24 등록번호 111408202 도서상태 대출가능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B M
No. 3 소장처 중앙도서관/민족문화연구원/ 청구기호 953.105 2001 24 등록번호 192042732 도서상태 대출불가(자료실)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M

컨텐츠정보

목차

일러두기


목차


377. 선조실록 권34 선조 26년 정월 1일(병진) [21집 595면] 경강으로 군량을 수송하는 방안을 논의하다 43


378. 선조실록 권34 선조 26년 정월 3일(무오) [21집 595면] 용만관에서 원외랑 유황상을 접대하고 평양과 서울의 탈환에 대해 논의하다 43


379. 선조실록 권34 선조 26년 정월 5일(경신) [21집 596면] 평양 및 서울 수복 작전에 대해 논의하다 45


380. 선조실록 권34 선조 26년 정월 7일(임술) [21집 597면] 평양 수복 후 서울로의 진격 계획을 보고하다 47


381. 선조실록 권34 선조 26년 정월 8일(계해) [21집 598면] 한성부판윤 이덕형이 군수 물자 조달 상황을 보고하다 49


382. 선조실록 권34 선조 26년 정월 9일(갑자) [21집 599면] 사간원이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군량이 문제라며 모속관의 파견을 청하다 50


383. 선조실록 권34 선조 26년 정월 10일(을축) [21집 599면] 서울 수복 후 백관이 축하를 올리기로 하다 51


384. 선조실록 권34 선조 26년 정월 11일(병인) [21집 600면] 호조에서 서울을 수복한 뒤 장수를 보내 용산창 등 창고를 점거하도록 하라고 청하다 51


385. 선조실록 권34 선조 26년 정월 11일(병인) [21집 602면] 명나라 주사가 팔도의 병마 총수 및 서울 인근 병마의 숫자를 묻다 52


386. 선조실록 권34 선조 26년 정월 12일(정묘) [21집 603면] 지평 서성이 벽제관에서 이탈한 이후의 행적을 밝히고, 풍헌직을 사임하고자하다 52


387. 선조실록 권34 선조 26년 정월 12일(정묘) [21집 603면] 평양 수복의 결과 한성판윤을 서울로 파견하여 서울 수복에 대비하자는 방책을 논의하다 53


388. 선조실록 권34 선조 26년 정월 13일(무진) [21집 606면] 한준을 한성부 판윤으로 임명하다 60


389. 선조실록 권34 선조 26년 정월 14일(기사) [21집 606면] 윤두수가 이 제독에게 가려하자 인견하여 위로하고 서울 수호 등에 대해 논의하다 60


390. 선조실록 권34 선조 26년 정월 14일(기사) [21집 607면] 한성부판윤 등이 병군 장수가 생포한 왜적 장수를 심문한 내용을 보고하다 66


391. 선조실록 권34 선조 26년 정월 15일(경오) [21집 608면] 서울이 수복되지 않았음을 이유로 문묘에는 관원을 보내 고하도록 하다 68


392. 선조실록 권34 선조 26년 정월 15일(경오) [21집 608면] 이시언이 선봉 왜적이 도성을 향해 도망했다고 첩보하다 69


393. 선조실록 권34 선조 26년 정월 19일(갑술) [21집 610면] 예조가 도성으로 돌아가 요여를 만드는 일을 아뢰다 70


394. 선조실록 권34 선조 26년 정월 22일(정축) [21집 612면] 창의사 김천일이 도성 공격을 위해 대기하고 있다고 보고 하다 70


395. 선조실록 권34 선조 26년 정월 22일(정축) [21집 612면] 김천일이 왜적이 강릉과 태능을 도굴하려다 실패했다고 보고하다 71


396. 선조실록 권34 선조 26년 정월 22일(정축) [21집 612면] 황해감사 유영경이 왜적이 서울로 돌아간 첩보 등을 치계하다 71


397. 선조실록 권34 선조 26년 정월 23일(무인) [21집 612면] 신안관에서 명 장수를 접견하고 서울 수복에 즈음하여 백성을 위무하는 일을 논하다 72


398. 선조실록 권34 선조 26년 정월 24일(기묘) [21집 613면] 서울을 수복한 후에 따로 사은사 보낼 것을 논의하다 73


399. 선조실록 권34 선조 26년 정월 24일(기묘) [21집 613면] 서울 공략에 앞서 백성들을 내원을 유도하는 방책을 논의하다 73


400. 선조실록 권34 선조 26년 정월 26일(신사) [21집 615면] 영의정 최흥원 등이 공사를 동궁에게 재결 받으라는 전교를 거두어 달라고 청하다 74


401. 선조실록 권34 선조 26년 정월 27일(임오) [21집 616면] 예조에서 왕실의 원릉을 봉심할 조릉사를 차출하여 보내기를 청하다 76


402. 선조실록 권34 선조 26년 정월 27일(임오) [21집 616면] 서울 수복 작전을 앞두고 주민을 위로하기를 청하다 76


403. 선조실록 권34 선조 26년 정월 27일(임오) [21집 616면] 동궁을 호위하던 의용대를 금군의 예에 따라 윤번으로 숙직하게 하다 77


404. 선조실록 권34 선조 26년 정월 28일(계미) [21집 617면] 평양의 수선, 서울의 수복, 무기 제조 등에 만전을 기하라고 비망기로 이르다 77


405. 선조실록 권34 선조 26년 정월 28일(계미) [21집 617면] 유근을 한성부판윤으로 임명하다 79


406. 선조실록 권34 선조 26년 정월 28일(계미) [21집 617면] 이덕형이 개성부 및 서울 부근을 돌아보고 상황을 아뢰다 79


407. 선조실록 권34 선조 26년 정월 29일(갑신) [21집 618면] 서울의 수호와 방어에 만전을 기하도록 조처하다 80


408. 선조실록 권34 선조 26년 정월 29일(갑신) [21집 618면] 비변사에서 서울에 대신을 보내 종묘・사직을 봉심하자고 청하다 80


409. 선조실록 권34 선조 26년 정월 29일(갑신) [21집 618면] 서울 도성을 안무하는 일을 맡을 대신을 의논하라고 전교하다 81


410. 선조실록 권34 선조 26년 정월 30일(을유) [21집 619면] 한성판윤 유근을 인견하고 서울 수복책 등을 논의하다 81


411. 선조실록 권34 선조 26년 정월 30일(을유) [21집 620면] 경기순찰사 권징이 서울 인근의 정황을 보고하다 83


412. 선조실록 권34 선조 26년 정월 30일(을유) [21집 620면] 유성룡이 명나라 제독이 이경로에게 서울 수복전에서 공을 세울 기회를 주고자 한다고 치계하다 84


413. 선조수정실록 권27 선조 26년 정월 [25집 636면] 제독 이여송이 벽제관에서 패한 뒤 개성에 주둔하다 85


414. 선조수정실록 권27 선조 26년 정월 [25집 637면] 왜적이 서울 백성을 패전에 대한 보복으로 대량 학살하다 87


415. 선조실록 권35 선조 26년 2월 2일(정해) [21집 621면] 영의정 최흥원 등이 동궁을 해주로 진주하라는 전교를 다시 생각하라고 청하다 87


416. 선조실록 권35 선조 26년 2월 5일(경인) [21집 624면] 이 제독이 파주에 진주했다가 벽제에서 왜적에게 대패하다 89


417. 선조실록 권35 선조 26년 2월 6일(신묘) [21집 624면] 도체찰사 유홍이 벽제 전투의 전말을 치계하다 91


418. 선조실록 권35 선조 26년 2월 6일(신묘) [21집 624면] 강원감사가 왜적이 서울로 향할지 여부에 대한 첩보를 전하다 91


419. 선조실록 권35 선조 26년 2월 8일(계사) [21집 626면] 접대도감이 유격 진방철이 벽제 전투에 대해 전한 말을 보고하다 92


420. 선조실록 권35 선조 26년 2월 10일(을미) [21집 627면] 명나라 군대의 패전에 따라 전라순찰사 권율 등의 작전 실패를 추궁하다 92


421. 선조실록 권35 선조 26년 2월 10일(을미) [21집 628면] 평양 탈환에 대해 명 황제에 사의를 표하고 서울 탈환에 힘써줄 것을 청하다 93


422. 선조실록 권35 선조 26년 2월 10일(을미) [21집 629면] 유성룡이 명 군대가 패하여 동파로 불러나 주둔하고 있다고 치계하다 99


423. 선조실록 권35 선조 26년 2월 11일(병신) [21집 629면] 서울로 향하는 명나라 제독에게 함경도 왜적의 동향을 전하다 101


424. 선조실록 권35 선조 26년 2월 11일(병신)[21집 630면] 국왕이 평양으로 돌아가 머물면서 서울의 수복을 도모하라는 명나라의 자문 103


425. 선조실록 권35 선조 26년 2월 12일(정유)[21집 630면] 영의정, 한성부좌윤 등이 대가를 서울 가까운 지점으로 옮겨갈 것을 아뢰다 103


426. 선조실록 권35 선조 26년 2월 12일(정유)[21집 630면] 왜적은 서울에 모이고 명나라 군은 개성에 주둔하다 105


427. 선조실록 권35 선조 26년 2월 13일(무술)[21집 631면] 임금이 서울에 진주하는 것이 불가능한 이유를 전교하다 106


428. 선조실록 권35 선조 26년 2월 15일(경자)[21집 632면] 심우승이 송시랑을 만나 서울의 지형과 공략의 방법을 논의한 일을 아뢰다 107


429. 선조실록 권35 선조 26년 2월 15일(경자)[21집 633면] 윤근수가 경략을 만나 명군의 서울 진공 일정에 대해 논의한 일을 아뢰다 108


430. 선조실록 권35 선조 26년 2월 16일(신축)[21집 634면] 접반사 윤근수가 서울 왜적에 대한 명군의 정황 파악에 대해 논의한 일을 아뢰다 110


431. 선조실록 권35 선조 26년 2월 17일(임인)[21집 635면] 비변사에서가 서울 수복 때에 도체찰사의 지휘를 받도록 장수들에게 하서하라고 청하다 111


432. 선조실록 권35 선조 26년 2월 17일(임인)[21집 635면] 병조판서 등을 불러 전반적인 전황과 서울의 상황에 대해 논의하다 112


433. 선조실록 권35 선조 26년 2월 18일(계묘)[21집 636면] 명나라 총병을 접견하고 서울 수복 계획 등에 대해 논의하다 117


434. 선조실록 권35 선조 26년 2월 19일(갑진)[21집 637면] 비변사에서 명나라 군대가 서울로 진격하도록 하는 청을 하자고 건의하다 120


435. 선조실록 권35 선조 26년 2월 19일(갑진)[21집 637면] 윤근수가 이 제독에게 회군하지 말고 서울 공략을 도모하기를 청한 일을 치계하다 120


436. 선조실록 권35 선조 26년 2월 19일(갑진)[21집 639면] 유성룡이 한강 이남의 왜적이 권율에 패배한 사실을 보고하다 122


437. 선조실록 권35 선조 26년 2월 20일(을사)[21집 641면] 운천군 이신이 능침을 봉심하고 돌아와 아뢰다 122


438. 선조실록 권35 선조 26년 2월 21일(병오)[21집 642면] 숙녕관에서 방시춘을 접견하고 속히 서울을 수복할 것을 당부하다 123


439. 선조실록 권35 선조 26년 2윌 21일(병오)[21집 642면] 삼성추국의 위관 윤두수가 반적 김덕회를 문초하여 서울에서의 적의 정황을 파악하다 124


440. 선조실록 권35 선조 26년 2월 21일(병오)[21집 643면] 유몽정이 서울 작전에 군량과 마초의 조달 문제를 아뢰다 127


441. 선조실록 권35 선조 26년 2월 22일(정미)[21집 644면] 한응인 등이 명나라 군대의 서울 진격 계획을 보고하다 128


442. 선조실록 권35 선조 26년 2월 23일(무선)[21집 644면] 이조에서 서울 수복 후에 선하들을 죄 주는 일은 공론을 기다려 행하기를 청하다 129


443. 선조실록 권35 선조 26년 2월 23일(무신)[21집 645면] 전라감사 권율이 파주로 옮겨 명나라 군대와 연합할 계획임을 치계하다 129


444. 선조실록 권35 선조 26년 2월 24일(기유)[21집 645면] 신경희가 권율의 행주산성 대첩을 보고하자 인견하고 전투 상황을 상세히 묻다 130


445. 선조실록 권35 선조 26년 2월 24일(기유)[21집 646면] 평양 수복 후에 여러 장수가 서울로 모인 얼과 행주산성의 대첩에 대한 기록 136


446. 선조실록 권35 선조 26년 2월 25일(경술)[21집 647면] 유성룡이 서울의 포위 상황을 아뢰며 왜적이 합세하기 전에 토벌하자고 청하다 138


447. 선조실록 권35 선조 26년 2월 27일(임자)[21집 648면] 좌의정 윤두수를 인견하고 개성의 군량, 서울 수복 방법 등을 논의하다 140


448. 선조실록 권35 선조 26년 2월 28일(계축)[21집 649면] 서울 수복을 위해 군대의 배치를 바꾸라는 헌부의 청을 거절하다 145


449. 선조실록 권35 선조 26년 2월 28일(계축)[21집 649면] 비변사에서 서울의 적세 탐문, 군량 저장소 습격 등의 일을 아뢰다 146


450. 선조실록 권35 선조 26년 2월 28일(계축)[21집 649면] 윤근수가 서울로 진격하기를 청하며 경략에게 보낸 자문 147


451. 선조실록 권35 선조 26년 2월 29일(갑인)[21집 650면] 사헌부가 서울을 수복하는 시기를 놓치지 말라고 청하다 149


452. 선조실록 권35 선조 26년 2월 30일(을묘)[21집 650면] 명나라 경략이 서울 수복의 의사를 거듭 밝히다 149


453. 선조수정실록 권27 선조 26년 2월[25집 638면] 적장 청정이 철군하여 서울로 돌아오다 151


454. 선조수정 실록 권27 선조 26년 2월[25집 638면] 전라도순찰사 권율이 적병을 행주에서 격파하다 151


455. 선조수정실록 권27 선조 26년 2월[25집 638면] 관군의 공격으로 기세가 꺾인 서울 인근의 적을 치고자 하였으나 제독이 따르지 않다 152


456. 선조수정실록 권27 선조 26년 2월[25집 638면] 굶주려서 죽은 경기 백성의 시체가 길에 쌓이다 153


457. 선조실록 권36 선조 26년 3월 2일(정사)[21집 651면] 왜적이 서울에 이르면 왕자를 석방하겠다고 했음을 보고하다 154


458. 선조실록 권36 선조 26년 3월 4일(기미)[21집 652면] 북쪽의 왜군과 서울의 병력이 합세할 것에 대한 우려를 표하다 154


459. 선조실록 권36 선조 26년 3월 4일(기미)[21집 653면] 유성룡이 서울 주변의 군진 상황을 아뢰다 155


460. 선조실록 권36 선조 26년 3월 4일(기미)[21집 653면] 유성룡이 말먹이 콩으로 우선 굶주린 서울 인근의 백성을 구휼하였다고 치계하다 156


461. 선조실록 권36 선조 26년 3월 4일(기미)[21집 654면] 두 왕자의 석방 문제를 서울로 가서 논의하기로 했다는 내용 등을 보고하다 157


462. 선조실록 권36 선조 26년 3월 4일(기미)[21집 654면] 왜적이 포로로 잡힌 왕자의 인편을 통해 서울에서의 강화 협상 의사를 보내오다 159


463. 선조실록 권36 선조 26년 3월 6일(선유)[21집 655면] 이여백 등에게 속히 진병하여 서울 수복 작전을 수행할 것을 청하다 160


464. 선조실록 권36 선조 26년 3월 8일(계해)[21집 658] 비변사에서 방어사 이시언으로 강원의 군병을 거느리고 서울의 적을 협공하도록 하는 방안을 건의하다 161


465. 선조실록 권36 선조 26년 3월 9일(갑자)[21집 658면] 유성룡의 장계대로 한강 남쪽의 적을 공략하는 계책을 시행하도록 하다 162


466. 선조실록 권36 선조 26년 3월 9일(갑자)[21집 659면] 유성룡이 서울의 적세가 많이 늘었다고 보고하다 163


467. 선조실록 권36 선조 26년 3월 10일(을축)[21집 659면] 명의 관원을 접견하여 서울 공략의 필요성을 역설하다 164


468. 선조실록 권36 선조 26년 3월 13일(무진)[21집 661면] 서울로 진격하여 적을 토벌해야 한다는 한 가지만 자문에 강조하도록 하다 165


469. 선조실록 권36 선조 26년 3월 13일(무진)[21집 661면] 정곤수가 평양에서 돌아와 명 장수들의 엇갈린 서울 공략 의사를 보고하다 166


470. 선조실록 권36 선조 26년 3월 15일(경오)[21집 663면] 서울에 있는 왜승 현소가 전사한 것으로 명군에게 와전되다 168


471. 선조실록 권36 선조 26년 3월 15일(경오)[21집 664면] 명나라 군대와 서울의 왜병의 협상이 진행되는 상황을 점검하여 보고하다 172


472. 선조실록 권36 선조 26년 3월 16일(신미)[21집 665면] 광릉참봉 이이첨이 세조의 영정을 모셔오다 174


473. 선조실록 권36 선조 26년 3월 20일(을해)[21집 667면] 명 관원 유황상 등이 명군의 정황 판단과 작전 의도에 대해 조선에 설명한 자문 175


474. 선조실록 권36 선조 26년 3월 24일(기묘)[21집 672면] 경기좌도감사가 왜적과 강화를 논의하고 오는 심유격을 한강에서 만난 사실을 보고하다 179


475. 선조실록 권36 선조 26년 3월 24일(기묘)[21집 673면] 양 대장의 사처에 행행하여 서울의 수복과 협상에 대해 의견을 나누다 180


476. 선조실록 권36 선조 26년 3월 25일(경진)[21집 673면] 비변사에서 명 군대가 출발하지 않으면 관군을 먼저 서울로 보내자고 청하다 182


477. 선조실록 권36 선조 26년 3월 26일(신사)[21집 674면] 경기좌도관찰사 성영이 두 왕자가 남대문 밖 적진에 있다고 치계하다 182


478. 선조실록 권36 선조 26년 3월 27일(임오)[21집 675면] 비변사의 건의로 황해병사 조인득, 강원감사 강신 등을 서울로 진격하게 하다 183


479. 선조실록 권36 선조 26년 3월 27일(임오)[21집 675면] 유성룡이 심유격이 왜장과 서울에서 강화 협상을 하였다고 보고하다 183


480. 선조실록 권37 선조 26년 4월 1일(을유)[21집 679면] 명나라의 강화 의도가 왜병을 섬멸하기 위한 방책이라는 정보를 보고하다 184


481. 선조실록 권37 선조 26년 4월 2일(병술)[21집 679면] 명나라와 왜와의 협상 내용을 보고하다 185


482. 선조실록 권37 선조 26년 4월 2일(병술)[21집 679면] 한성판윤 등에게 백성을 구휼할 것을 지시하도록 결정하다 186


483. 선조실록 권37 선조 26년 4월 8일(임진)[21집 683면] 서울에 주둔하는 왜적의 상황을 전하다 187


484. 선조실록 권37 선조 26년 4월 12일(병선)[21집 684면] 박진을 서울에 주둔하게 하고 별사무과를 보아 군사와 군량을 주라고 분부하다 187


485. 선조실록 권37 선조 26년 4월 12일(병신)[21집 685면] 이항복이 명 장수 유 총병이 화의를 반대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음을 보고하다 189


486. 선조실록 권37 선조 26년 4월 13일(정유)[21집 686면] 경기좌도관찰사 성영이 왜적이 선릉과 정릉을 파헤쳤음을 보고하다 192


487. 선조실록 권37 선조 26년 4월 13일(정유)[21집 686면] 경기좌도관찰사 성영이 속히 서울을 수복하자고 치계하다 193


488. 선조실록 권37 선조 26년 4월 14일(무술)[21집 686면] 헌부가 선릉과 정릉의 변고에 변복하는 예를 다시 강정하라고 청하다 194


489. 선조실록 권37 선조 26년 4월 16일(경자)[21집 688면] 곡식을 옮겨 서울의 유민들을 구제하기로 하다 195


490. 선조실록 권37 선조 26년 4월 18일(임인)[21집 689면] 임시로 매장한 덕빈의 재궁을 직장 윤백상에게 찾아보도록 지시하다 195


491. 선조실록 권37 선조 26년 4월 21일(을사)[21집 692면] 박진이 유총병의 처소에서 돌아와 서울에 명나라 군대가 입성했다고 아뢰다 196


492. 선조실록 권37 선조 26년 4월 23일(정미)[21집 692면] 서울의 수복을 이유로 명나라 군대에 따로 치하하지 않기로 하다 197


493. 선조실록 권37 선조 26년 4월 24일(무신)[21집 693면] 백관이 임금에게 서울 수복을 축하하는 하례를 올리기로 하다 197


494. 선조실록 권37 선조 26년 4월 24일(무신)[21집 693면] 서울 수복의 하례를 중지하기로 하고 적에게 부역한 관원을 찾아 처벌하기로 하다 199


495. 선조실록 권37 선조 26년 4월 24일(무신)[21집 693면] 선릉・정릉의 봉심 결과를 보고받고, 명군에게 왜적과의 싸움을 독려하는 자문 보내는 문제를 논의하다 200


496. 선조실록 권37 선조 26년 4월 24일(무신)[21집 694면] 유성룡 등이 명 장수와 종묘・사직을 분탕한 왜적과의 화해로 언쟁하였음을 보고하다 202


497. 선조실록 권37 선조 26년 4월 25일(기유)[21집 694면] 능침을 수호하지 못한 광주목사 등을 처벌하기로 하다 206


498. 선조실록 권37 선조 26년 4월 25일(기유)[21집 695면] 능침을 보호하기 위해 대신을 파견하기로 하다 206


499. 선조실록 권37 선조 26년 4월 25일(기유)[21집 695면] 이덕형을 한성부판윤으로 임명하다 207


500. 선조실록 권37 선조 26년 4월 26일(경술)[21집 696면] 송경략이 서울에서 물러나는 왜적을 독자적으로 공격하지 말라는 자문을 보내오다 207


501. 선조실록 권37 선조 26년 4월 26일(경술)[21집 696면] 서울에 있던 왜적을 추적할 수 없는 정황을 보고하다 209


502. 선조실록 권37 선조 26년 4월 26일(경술)[21집 696면] 임금이 서울로 돌아가는 것을 미루다 210


503. 선조실록 권37 선조 26년 4월 26일(경술)[21집 696면] 대신이 유성룡 등의 보고에 따라 선릉과 정릉의 상태를 아뢰다 210


504. 선조실록 권37 선조 26년 4월 26일(경술)[21집 696면] 유성룡이 왜적이 분탕한 서울의 피폐함을 아뢰다 211


505. 선조실록 권37 선조 26년 4월 28일(임자)[21집 697면] 대신이 정릉을 옮기는 일을 아뢰다 211


506. 선조실록 권37 선조 26년 4월 28일(임자)[21집 697면] 대선이 정릉을 옛 능으로 다시 옮기는 안건을 제기하다 212


507. 선조실록 권37 선조 26년 4월 28일(임자)[21집 697면] 정릉을 옛 능지로 옮길지에 대해 대신들의 광범위한 의견을 구하다 213


508. 선조실록 권37 선조 26년 4월 28일(임자)[21집 698면] 유홍・정철 등이 정릉을 옛 능으로 옮기자고 아뢰다 216


509. 선조실록 권37 선조 26년 4월 28일(임자)[21집 698면] 서울 수복에 따른 명나라와의 외교 조처에 대해 논의하다 218


510. 선조실록 권37 선조 26년 4월 28일(임자)[21집 698면] 선릉의 재궁에 불탄 흔적을 오산군이 종이에 싸놓다 218


511. 선조실록 권37 선조 26년 4월 29일(계축)[21집 699면] 승정원에서 정릉을 옛 자리로 옮기자는 의견을 내다 218


512. 선조수정실록 권27 선조 26년 4월 1일(을유)[21집 638면] 심유경이 용산의 왜영에 들어가서 강화를 의논하다 219


513. 선조수정실록 권27 선조 26년 4월[25집 638면] 서울에 주둔하던 왜장들이 군사를 이끌고 남하하다 220


514. 선조수정실록 권27 선조 26년 4월[25집 639면] 제독 이여송이 체찰사 유성룡, 유홍 등과 함께 서울에 들어오다 221


515. 선조수정실록 권27 선조 26년 4월[25집 639면] 경기감사 성영이 선릉・정릉의 변고에 대해 장계하다 222


516. 선조수정실록 권27 선조 26년 4월[25집 639면] 평양・개성・서울 등지에 단을 설치하여 전사자를 위한 위령제를 지내도록 하다 222


517. 선조실록 권38 선조 26년 5월 1일(갑인)[21집 700면] 논란 끝에 서울 수복에 따른 명나라 관련 의식을 행하도록 하다 222


518. 선조실록 권38 선조 26년 5월 1일(갑인)[21집 700면] 대신들이 정릉의 옥체를 염습할 때 삼가도록 청하다 224


519. 선조실록 권38 선조 26년 5월 1일(갑인)[21집 700면] 서울 수복에 따른 축하 의식을 행하도록 하다 224


520. 선조실록 권38 선조 26년 5월 2일(을묘)[21집 700면] 청계관에 백관을 거느라고 나아가 망궐례를 행하다 225


521. 선조실록 권38 선조 26년 5월 2일(을묘)[21집 700면] 종묘와 사직에 서울 수복을 고하다 225


522. 선조실록 권38 선조 26년 5월 2일(을묘)[21집 700면] 선릉의 문제로 서울 수복에 대한 축하례를 중지하다 226


523. 선조실록 권38 선조 26년 5월 2일(을묘)[21집 700면] 흩어진 군사들에게 왜적을 초토하라고 하교하기로 하다 226


524. 선조실록 권38 선조 26년 5월 3일(병진)[21집 701면] 유성룡 등이 서울 수복 후 왜적의 추적 문제를 논의하다 227


525. 선조실록 권38 선조 26년 5월 4일(정사)[21집 701면] 영의정 최흥원 등과 선릉과 정릉의 처리, 서울 수복 후 왜적의 토벌 등을 논의하다 229


526. 선조실록 권38 선조 26년 5월 5일(무오)[21집 702면] 왜적의 서울 철병 후 군대의 정황에 대해 논의하다 234


527. 선조실록 권38 선조 26년 5월 5일(무오)[21집 703면] 예조에서 능침을 수정하는 일을 대신과 의논하여 아뢰다 238


528. 선조실록 권38 선조 26년 5월 5일(무오)[21집 703면] 양릉에 지석과 옥책을 쓰는 일로 실록의 관련 기록을 등서하도록 하다 240


529. 선조실록 권38 선조 26년 5월 6일(기미)[21집 704면] 서둘러 어가를 서울로 진주하는 건의를 거부하다 241


530. 선조실록 권38 선조 26년 5월 6일(기미)[21집 704면] 서둘러서 충청도의 전세를 수납할 것을 청하다 242


531. 선조실록 권38 선조 26년 5월 7일(경신)[21집 704면] 서울로 서둘러 진주하자는 사간원의 청을 거절하다 243


532. 선조실록 권38 선조 26년 5월 7일(경신)[21집 704면] 서울 귀환 후 돈녕도정 안황을 가자하라고 분부하다 243


533. 선조실록 권38 선조 26년 5월 9일(임술)[21집 704면] 최원을 서울로 보내어 진무하는 일을 검토하다 244


534. 선조실록 권38 선조 26년 5월 9일(임술)[21집 704면] 전 좌랑 유덕종을 서울에서의 내응 임무를 방기했다는 이유로 파직하다 244


535. 선조실록 권38 선조 26년 5월 12일(을축)[21집 705면] 왜적의 한강 도강 후 군대 해산 문제와 어가의 서울 진주를 논의하다 245


536. 선조실록 권38 선조 26년 5월 12일(을축)[21집 706면] 서울에 잔류한 왜적에게 양식을 공급할 수 없는 입장을 명군에게 전하기로 하다 249


537. 선조실록 권38 선조 26년 5월 14일(정묘)[21집 706면] 서울 유민의 안무・구휼을 위해 한성판윤을 교체하기로 하다 249


538. 선조실록 권38 선조 26년 5월 20일(계유)[21집 707면] 서울에서 의주까지 대가를 호송한 인원을 기록하여 아뢰게 하다 250


539. 선조실록 권38 선조 26년 5월 22일(을해)[21집 708면] 비변사에서 임금이 서울에 진주하는 일에 대해 보고하다 250


540. 선조실록 권38 선조 26년 5월 22일(을해)[21집 708면] 서울의 인구와 성중에 남은 곡식 상황을 보고하다 252


541. 선조실록 권38 선조 26년 5월 24일(정축)[21집 709면] 양사에서 임금에게 서울로 이어할 것을 청하였으나 거절하다 252


542. 선조실록 권38 선조 26년 5월 24일(정축)[21집 709면] 비변사에서 도성을 진수할 책엄자를 논의하여 아뢰다 254


543. 선조실록 권38 선조 26년 5월 27일(경진)[21집 711면] 명나라 장수가 어가를 서울로 들이라는 자문을 보내자, 날짜를 의논하라고 전교하다 254


544. 선조실록 권38 선조 26년 5월 27일(경진)[21집 712면] 호조에서 서울에 호조 낭청과 당상을 먼저 보내 일을 주선하도록 하라고 청하다 255


545. 선조실록 권38 선조 26년 5월 27일(경진)[21집 712면] 내종친의 경우에는 일괄하여 요미를 지급하도록 결정하다 256


546. 선조실록 권38 선조 26년 5월 27일(경진)[21집 712면] 임금이 서울로 진주하기로 결정하다 257


547. 선조실록 권38 선조 26년 5월 27일(경진)[21집 712면] 명 장수를 안주에서 접견하고 서울로 들어가기로 하다 257


548. 선조실록 권38 선조 26년 5월 27일(경진)[21집 712면] 윤근수를 인견하고 임금의 서울 진주를 비롯한 전황 전반을 논의하다 258


549. 선조실록 권38 선조 26년 5월 28일(선사)[21집 714면] 사헌부에서 대가가 곧장 서울로 나아갈 것을 청하다 271


550. 선조실록 권38 선조 26년 5월 28일(신사)[21집 715면] 임금이 서울로 곧바로 진주하라는 청에 대해 비변사와 의논하겠다고하다 271


551. 선조실록 권38 선조 26년 5월 29일(임오)[21집 715면] 서울로의 어가 진주 요청을 거절하다 272


552. 선조실록 권38 선조 26년 5월 29일(임오)[21집 715면] 서울에 왜적이 쌓은 보루를 허무는 일은 신중히 하라고 전교하다 272


553. 선조실록 권38 선조 26년 5월 29일(임오)[21집 715면] 개장도감이 선・정릉 능침에 쓸 의대를 염색할 수 없다고 아뢰다 273


554. 선조실록 권38 선조 26년 5월 29일(임오)[21집 715면] 좌의정 윤두수 등을 인견하고 명국 남병의 주둔, 서울로의 이어 등을 논의하다 274


555. 선조실록 권38 선조 26년 5월 30일(계미)[21집 716면] 헌부가 서울로의 진주를 아뢰다 278


556. 선조수정실록 권27 선조 26년 5월 1일(갑인)[25집 639면] 제독 이여송이 서울에서 철수하는 적을 추격하여 문경까지 갔다가 되돌아오다 279


557. 선조수정실록 권27 선조 26년 5월[25집 639면] 경기감사 성영이 왕릉의 변고를 살펴 아뢰니 대신들을 보내 살피게하다 280


558. 선조실록 권39 선조 26년 6월 1일(갑신)[22집 1면] 예조가 관복제도를 보고하자 임금이 군복 등에 대해 분부하다 282


559. 선조실록 권39 선조 26년 6월 3일(병술)[22집 1면] 서울 수복에 따른 사은사의 파견 문제를 검토하다 283


560. 선조실록 권39 선조 26년 6월 4일(정해)[22집 2면] 명 관원의 서울 상경을 임금이 친히 맞이하다 283


561. 선조실록 권39 선조 26년 6월 5일(무자)[22집 3면] 명나라 관원을 접견하고, 부산 분할론의 실정 명군의 철수 등을 논의하다 283


562. 선조실록 권39 선조 26년 6월 5일(무자)[22집 3면] 명 관원을 접견하여 서울을 중심으로 방어하는 계책을 논의하다 287


563. 선조실록 권39 선조 26년 6월 5일(무자)[22집 4면] 명나라 관원과 서울로 함께 가고자 하는 계책을 마련하다 291


564. 선조실록 권39 선조 26년 6월 7일(경인)[22집 7면] 임금이 서울로 서둘러 들어가야 한다는 건의를 거부하다 291


565. 선조실록 권39 선조 26년 6월 8일(선묘)[22집 7면] 서울에서 인원을 뽑아 포술 훈련하게 하다 293


566. 선조실록 권39 선조 26년 6월 9일(임진)[22집 8면] 사간원에서 임금의 입경을 서둘러야 한다고 건의하다 294


567. 선조실록 권39 선조 26년 6월 10일(계사)[22집 9면] 임금의 서두른 입경 건의를 보류시키고, 논상의 적절성을 검토하게 하다 294


568. 선조실록 권39 선조 26년 6월 11일(갑오)[22집 9면] 서둘러 입경해야 한다는 건의를 거부하다 295


569. 선조실록 권39 선조 26년 6월 12일(을미)[22집 9면] 서둘러 입경하라는 건의를 거부하다 296


570. 선조실록 권39 선조 26년 6월 12일(을미)[22집 9면] 임국로・유영길을 한성부의 좌윤과 우윤으로 임명하다 296


571. 선조실록 권39 선조 26년 6월 13일(병선)[22집 9면] 임금이 먼저 입경하고 세자 등은 평양성에 있다가 나중에 입성하는 일을 의논하다 296


572. 선조실록 권39 선조 26년 6월 13일(병신)[22집 10면] 서울을 재건하는 일에 지리설을 참고하고자 하다 298


573. 선조실록 권39 선조 26년 6월 13일(병신)[22집 10면] 임금의 입경을 19일로 정하다 299


574. 선조실록 권39 선조 26년 6월 14일(정유)[22집 10면] 서울과 평양의 민심을 우려하다 299


575. 선조실록 권39 선조 26년 6월 14일(정유)[22집 11면] 서울에 머물고 있는 대신에게 백성을 위무하여 안집에 힘쓰게 하도록 하다 301


576. 선조실록 권39 선조 26년 6월 16일(기해)[22집 12면] 명 관원에게 왜적을 토벌해야 하는 이유를 밝히다 303


577. 선조실록 권39 선조 26년 6월 17일(경자)[22집 13면] 서울 재건의 원칙을 세우다 305


578. 선조실록 권39 선조 26년 6월 25일(무신)[22집 18면] 한성판윤이 인사문제로 조사를 받다 306


579. 선조실록 권39 선조 26년 6월 26일(기유)[22집 18면] 이기률 한성부좌윤에 임명하다 306


580. 선조실록 권39 선조 26년 6월 27일(경술)[22집 19면] 업무 소홀을 이유로 한성판윤을 조사하다 307


581. 선조실록 권39 선조 26년 6월 28일(신해)[22집 19면] 영의정 최흥원이 선릉을 봉심한 일을 치계하다 307


582. 선조실록 권39 선조 26년 6월 28일(신해)[22집 19면] 영의정 최흥원이 선릉과 정릉의 상태를 봉심하고 치계하다 308


583. 선조실록 권39 선조 26년 6월 28일(신해)[22집 19면] 심수경이 송산에 있는 시신을 봉심하고 기록하여 아뢰다 309


584. 선조실록 권39 선조 26년 6월 28일(신해)[22집 20면] 유성룡이 송산의 옥체를 봉심하고 경솔히 논할 수 없다고 아뢰다 309


585. 선조실록 권39 선조 26년 6월 28일(신해)[22집 20면] 영의정 최흥원이 송산의 옥체를 확인할 길이 없다고 아뢰다 310


586. 선조실록 권39 선조 26년 6월 28일(신해)[22집 20면] 우의정 유홍이 송산의 옥체를 봉심하고 의견을 아뢰다 311


587. 선조실록 권39 선조 26년 6월 28일(신해)[22집 20면] 우찬성 최황이 송산의 옥체를 봉심하고 의견을 아뢰다 311


588. 선조실록 권39 선조 26년 6월 28일(신해)[22집 20면] 지중추부사 성혼이 송산의 옥체를 봉심한 뒤에 의견을 아뢰다 312


589. 선조실록 권39 선조 26년 6월 28일(신해)[22집 20면] 김응남과 신점이 선릉과 정릉을 봉심하고 의견을 아뢰다 313


590. 선조실록 권39 선조 26년 6월 28일(신해)[22집 20면] 아천군 이증이 두 능을 봉심하고 의견을 아뢰다 314


591. 선조실록 권39 선조 26년 6월 28일(신해)[22집 20면] 판윤 이헌국이 송산의 시체를 살펴보고 의견을 아뢰다 315


592. 선조실록 권39 선조 26년 6월 28일(신해)[22집 21면] 형조판서 이덕형이 선릉과 정릉을 봉심하고 의견을 아뢰다 316


593. 선조실록 권39 선조 26년 6월 28일(신해)[22집 21면] 부안 도정 석수와 영원수 이덕수가 두 능을 봉심하고 의견을 아뢰다 316


594. 선조실록 권39 선조 26년 6월 28일(신해)[22집 21면] 직제학 백유함이 선릉과 정릉을 봉심하고 의견을 아뢰다 316


595. 선조실록 권39 선조 26년 6월 28일(신해)[22집 21면] 공조판서 권징이 두 능을 봉심하고 의견을 아뢰다 317


596. 선조실록 권39 선조 26년 6월 28일(신해)[22집 21면] 대사헌 이제민이 두 능을 봉심하고 의견을 아뢰다 318


597. 선조실록 권39 선조 26년 6월 29일(임자)[22집 21면] 사직단에 재차 기청제를 지내다 318


598. 선조실록 권39 선조 26년 6월 29일(임자)[22집 21면] 대신이 봉심한 관원을 불러 의논하여 결정하기를 청하다 319


599. 선조수정실록 권27 선조 26년 6월[25집 640면] 왜적이 진주를 함락시키자 김천일・최경회 등이 전사하다 319


600. 선조실록 권40 선조 26년 7월 1일(계축)[22집 24면] 서울 경기일원의 기민 구제를 위해 황해도에서 소금을 굽기로 하다 327


601. 선조실록 권40 선조 26년 7월 1일(계축)[22집 24면] 서울 경기 출선으로 도망한 군인의 처리 문제를 논의하다 327


602. 선조실록 권40 선조 26년 7월 3일(을묘)[22집 25면] 비변사가 산보다 물을 지키는 것이 옳다는 의견을 제시하다 328


603. 선조실록 권40 선조 26년 7월 4일(병진)[22집 26면] 우부승지 정희번이 선・정릉의 봉심 결과를 아뢰다 330


604. 선조실록 권40 선조 26년 7월 5일(정사)[22집 26면] 윤근수가 장기고에게 들은 심유경의 서울 도착 사실과 남쪽 상황을 보고하다 330


605. 선조실록 권40 선조 26년 7월 5일(정사)[22집 27면] 명나라 경략 등에게 심유경과 동행한 왜적의 통과를 허락하지 말라고 문서를 보내다 331


606. 선조실록 권40 선조 26년 7월 6일(무오)[22집 28면] 서울 진입이 예정된 왜적을 저지시키고 심유경의 일을 명나라에 알려주는 문제를 의논하다 335


607. 선조실록 권40 선조 26년 7월 6일(무오)[22집 28면] 좌부승지 정희번과 대신들이 산릉 문제를 조속히 처치하기를 아뢰다 336


608. 선조실록 권40 선조 26년 7월 6일(무오)[22집 28면] 정릉을 원래의 자리에 그대로 봉안하기로 결정하다 337


609. 선조실록 권40 선조 26년 7월 7일(기미)[22집 29면] 예조의 청에 따라 해당 관청에게 정릉 개장을 조치하게 하다 338


610. 선조실록 권40 선조 26년 7월 7일(기미)[22집 29면] 선릉 개장에 사용한 것들을 정릉 개장시에도 옮겨 사용하기로 하다 338


611. 선조실록 권40 선조 26년 7월 7일(기미)[22집 29면] 정릉 안장일을 8월 15일 이전으로 앞당기기로 하다 339


612. 선조실록 권40 선조 26년 7월 9일(신유)[22집 30면] 호조가 서울 지역 재정을 주관할 관원의 파견을 청하다 339


613. 선조실록 권40 선조 26년 7월 12일(갑자)[22집 32면] 명나라 군의 서울 귀환을 앞두고 행패를 통제할 방안을 모색하다 340


614. 선조실록 권40 선조 26년 7월 12일(갑자)[22집 33면] 한강을 중심으로 조선을 분할하려 한다는 첩보를 보고하다 341


615. 선조실록 권40 선조 26년 7윌 13일(을축)[22집 33면] 심유경이 왜군을 대통하여 서울에 도착한 일을 계기로 명국에 조선의 입장을 전하기로 하다 341


616. 선조실록 권40 선조 26년 7월 13일(을축)[22집 34면] 비변사의 요청으로 황정욱이 서울에 도착하는 즉시 잡아 올리기로 하다 342


617. 선조실록 권40 선조 26년 7월 14일(병인)[22집 34면] 사간원이 호조판서 김명원을 탄핵하고 환도 날자를 결정하자 아뢰다 343


618. 선조실록 권40 선조 26년 7월 14일(병인)[22집 34면] 서울 수복 후 어가를 호종하지 못한 조관의 처리 문제를 논의하다 344


619. 선조실록 권40 선조 26년 7월 14일(병인)[22집 34면] 서울 일대의 공문이 경유하는 장연・용강 등을 왕래하는 인원의 쇄마, 보종의 폐해를 검칙하다 345


620. 선조실록 권40 선조 26년 7월 15일(정묘)[22집 36면] 영의정 최흥원이 서울 환도를 재촉하는 장계를 올리다 346


621. 선조실록 권40 선조 26년 7월 15일(정묘)[22집 36면] 용산에 명군의 보호를 받으면서 머물고 있는 왜적을 암살하는 문제 등을 검토하다 347


622. 선조실록 권40 선조 26년 7월 16일(무진)[22집 38면] 대신과 도승지 심희수 등이 정릉 개장일을 앞당기자 아뢰다 348


623. 선조실록 권40 선조 26년 7월 16일(무진)[22집 38면] 진주성의 방어 상황과 서울로 국왕이 들어가는 문제 등을 협의하다 349


624. 선조실록 권40 선조 26년 7월 17일(기사)[22집 42면] 정릉 개장일을 25일이나 27일로 하도록 하유하기로 하다 356


625. 선조실록 권40 선조 26년 7월 18일(경오)[22집 43면] 이덕형 등이 진격을 늦추고 있는 이여송 진영의 상황을 보고하다 356


626. 선조실록 권40 선조 26년 7월 20일(엄선)[22집 45면] 이항복이 경략을 만나 관방 설치, 유정 철수, 심유경의 문제를 의논하다 358


627. 선조실록 권40 선조 26년 7월 21일(계유)[22집 46면] 세자와 백관을 거느리고 궁궐 마당에서 통곡하다 359


628. 선조실록 권40 선조 26년 7월 21일(계유)[22집 46면] 풍원부원군 유성룡이 진주성 싸움의 패전 원인을 보고하다 359


629. 선조실록 권40 선조 26년 7월 21일(계유)[22집 47면] 진주에서의 패전에 따른 후속 조처를 서울에서 논의하다 361


630. 선조실록 권40 선조 26년 7월 22일(갑술)[22집 48면] 경상우도 관찰사 김늑이 진주성에서 사망한 전국 병사의 추정 수치를 보고하다 362


631. 선조실록 권40 선조 26년 7월 23일(을해)[22집 48면] 양사가 합계하여 왕이 직접 제독을 찾아가 호소하기를 청하다 363


632. 선조실록 권40 선조 26년 7월 26일(무인)[22집 53면] 예조가 선릉을 개장할 때, 현궁을 내리는 시각을 아뢰다 364


633. 선조실록 권40 선조 26년 7월 26일(무인)[22집 53면] 예조가 하현궁하는 일이 늦어진 것을 묘사에 고하자고 아뢰다 365


634. 선조실록 권40 선조 26년 7월 27일(기묘)[22집 53면] 선릉 개장일에 백관을 거느리고 거애하다 365


635. 선조실록 권40 선조 26년 7월 27일(기묘)[22집 53면] 예조가 경릉 등의 개수에 관한 일을 아뢰다 365


636. 선조실록 권40 선조 26년 7월 27일(기묘)[22집 53면] 서울을 출발했던 이여송이 만류에도 불구하고 다시 서울로 회군하다 366


637. 선조실록 권40 선조 26년 7월 29일(신사)[22집 54면] 서울의 기민을 구제하는 진휼 조처에 태만한 담당 관원들을 처벌하기로 하다 366


638. 선조실록 권40 선조 26년 7월 29일(신사)[22집 55면] 좌의정 윤두수가 서울로의 환도, 명나라 경략에 대한 접대 문제를 아뢰다 367


639. 선조실록 권40 선조 26년 7월 29일(신사)[22집 56면] 호조가 서울 백성 진휼에 명나라 군량을 이용하는 문제를 아뢰다 368


640. 선조실록 권41 선조 26년 8월 2일(계미)[22집 57면] 사헌부에서 임금의 서울 진주를 앞당길 것과 환도 날짜를 늦추고자 한 병조 관원의 처벌을 요청하다 369


641. 선조실록 권41 선조 26년 8월 2일(계미)[22집 57면] 황정욱을 삼성 추국하여 적전에서 있었던 일을 공초받다 369


642. 선조실록 권41 선조 26년 8월 8일(기축)[22집 64면] 서울에서 백성 안집의 책임을 맡은 대신 안홍 등을 교체하고, 안집 조처에 만전을 기하게 하다 377


643. 선조실록 권41 선조 26년 8월 8일(기축)[22집 65면] 경략병부에 수도를 살펴 정할 술사를 청하는 자문을 보내다 379


644. 선조실록 권41 선조 26년 8월 9일(경인)[22집 65면] 서울로 귀환한 우수승지 구성을 인견하고 보고를 받다 380


645. 선조실록 권41 선조 26년 8월 9일(경인)[22집 66면] 임금의 서울 입성에 앞서 주린 백성을 구휼하는 방책을 지시하다 385


646. 선조실록 권41 선조 26년 8월 10일(신묘)[22집 67면] 비변사에서 명나라 군대의 주둔에 따라 발생되는 비용을 계산하여 보고하다 385


647. 선조실록 권41 선조 26년 8월 10일(신묘)[22집 67면] 임금의 서두른 서울 진입을 비롯하여 다양한 현안을 논의하다 387


648. 선조실록 권41 선조 26년 8월 12일(계사)[22집 70면] 서울 떠난 명나라 군대에 응대하는 왕의 행차를 의논하다 393


649. 선조실록 권41 선조 26년 8월 13일(갑오)[22집 71면] 서울로 상번하는 하삼도의 병력을 명나라 총병의 절제를 받아 훈련하게 하다 393


650. 선조실록 권41 선조 26년 8월 13일(갑오)[22집 72면] 안세희가 이홍국이 정릉의 시체를 찾은 연유에 대해 공초하다 394


651. 선조실록 권41 선조 26년 8월 14일(을미)[22집 74면] 임금이 지나친 예로 명 장수를 맞이하고, 어가가 서둘러 서울로 입성해야 한다는 충고를 듣다 397


652. 선조실록 권41 선조 26년 8월 17일(무술)[22집 77면] 명나라 군대가 서울이나 평양에 주둔하려는 계획에 대한 대처를 마련하다 403


653. 선조실록 권41 선조 26년 8월 18일(기해)[22집 78면] 서울 백성의 굶주림을 구홀하기 위해 천 석의 진휼곡을 분급하기로 하다 404


654. 선조실록 권41 선조 26년 8월 24일(을사)[22집 80면] 덕양령 이충윤이 정릉의 일에 관해 공초하다 404


655. 선조실록 권41 선조 26년 8월 24일(을사)[22집 80면] 정릉 문제로 이충윤이 재차 공초하다 405


656. 선조실록 권41 선조 26년 8월 24일(을사)[22집 80면] 이준경이 정릉의 일에 관해 공초하다 406


657. 선조실록 권41 선조 26년 8월 25일(병오)[22집 81면] 이융이 제독에게 글을 보낸 일을 공초하다 407


658. 선조실록 권41 선조 26년 8월 25일(병오)[22집 81면] 이채가 제독에게 글을 보낸 일을 공초하다 408


659. 선조실록 권41 선조 26년 8월 25일(병오)[22집 82면] 서울에 소금을 실어 보내 주린 백성을 구휼하도록 지시하다 409


660. 선조실록 권41 선조 26년 8월 28일(기유)[22집 84면] 양사에서 환도할 날짜를 속히 정하자고 청하다 410


661. 선조실록 권41 선조 26년 8월 29일(경술)[22집 84면] 서울에서 온 우의정 유흥이 2만 병력을 주둔하고자 하는 명나라 군대의 의도를 전하다 410


662. 선조실록 권41 선조 26년 8월 30일(신해)[22집 85면] 양사가 서울로 떠날 날짜를 속히 정하자고 아뢰다 411


663. 선조실록 권41 선조 26년 8월 30일(신해)[22집 85면] 영의정 최흥원이 서울에 머물고 있는 왜적에 대한 조처를 요청하다 411


664. 선조실록 권41 선조 26년 8월 30일(신해)[22집 86면] 영의정 최흥원이 서울에 있는 왜적이 서쪽으로 가려 한다고 보고하다 412


665. 선조실록 권42 선조 26년 9월 1일(임자)[22집 87면] 정원이 선위하라는 전교를 받들 수 없다고 아뢰다 413


666. 선조실록 권42 선조 26년 9월 1일(임자)[22집 88면] 임금이 선위를 구실로 서울로의 입성을 미루다 414


667. 선조실록 권42 선조 26년 9월 2일(계축)[22집 89면] 김응남이 서울 주변 백성의 굶주리는 상황과 진상 물품을 줄여줄 것 등을 아뢰다 415


668. 선조실록 권42 선조 26년 9월 5일(병진)[22집 93면] 과천 등의 곤궁한 처지 때문에 지방 편제를 개편하기로 하다 419


669. 선조실록 권42 선조 26년 9월 6일(정사)[22집 95면] 우승지 정희번이 서울의 진휼 상황을 보고하고 어가의 조속한 서울 입성을 촉구하다 419


670. 선조실록 권42 선조 26년 9월 9일(경신)[22집 96면] 어가의 서울 진주를 암두고 잔류 왜인의 처리를 지시하다 421


671. 선조실록 권42 선조 26년 9월 9일(경신)[22집 97면] 이홍국이 선릉과 정릉을 봉심한 일을 공초하다 421


672. 선조실록 권42 선조 26년 9윌 9일(경신)[22집 97면] 어가의 서울 진주에 즈음하여 실시하고자 하는 진휼책을 비롯한 10여 조를 논의하다 422


673. 선조실록 권42 선조 26년 9윌 10일(신유)[22집 97면] 좌승지 홍진에게 한성판윤을 제수하다 424


674. 선조실록 권42 선조 26년 9월 11일(임술)[22집 98면] 어가의 도성 진입에 앞서서 서울 및 산천에 제사를 행하라 명하다 425


675. 선조실록 권42 선조 26년 9월 11일(임술)[22집 98면] 예조가 서울 및 산천에 제사할 일을 아뢰다 426


676. 선조실록 권42 선조 26년 9월 13일(갑자)[22집 98면] 서울을 구제할 곡식을 제대로 운반하라 재촉하다 426


677. 선조실록 권42 선조 26년 9월 15일(병인)[22집 99면] 수성대신에게 서울에서 혼자 날뛰고 있는 왜적의 처리를 유시하다 427


678. 선조실록 권42 선조 26년 9월 15일(병인)[22집 99면] 서울에 들어가면 종묘와 선성묘에 가서 곡하기로 결정하다 427


679. 선조실록 권42 선조 26년 9월 19일(경오)[22집 102면] 비변사의 거둥 요청에 선위의 뜻을 다시 비치며 귀경을 미루다 428


680. 선조실록 권42 선조 26년 9월 21일(임신)[22집 102면] 환도 후 종묘 곡림에 앞서 황제의 은혜에 사례하겠다고 전교하다 429


681. 선조실록 권42 선조 26년 9월 22일(계유)[22집 102면] 예조가 황제에게 사은하는 일에 대한 대신들의 의견을 아뢰다 429


682. 선조실록 권42 선조 26년 9윌 23일(갑술)[22집 103면] 비변사가 연안에서 2일간 머물고 서울로 들어가기를 청하다 430


683. 선조실록 권42 선조 26년 9월 26일(정축)[22집 103면] 비변사에 어가의 입성에 따른 도성에서의 제반 조처를 취하도록 지시하다 430


684. 선조실록 권42 선조 26년 9월 26일(정축)[22집 103면] 비변사가 어가의 입성에 즈음하여 조령, 한강까지의 여울, 도성 방어 등에 관해 아뢰다 431


685. 선조실록 권42 선조 26년 9월 28일(기묘)[22집 104면] 동파역에 머물며 접대를 지나치게 한 지응관을 잡아들이게 하다 432


686. 선조실록 권42 선조 26년 9월 29일(경진)[22집 104면] 벽제관에 머물다 432


687. 선조실록 권42 선조 26년 9월 29일(경진)[22집 104면] 선・정릉을 참배할 일을 조처하라 이르다 432


688. 선조실록 권42 선조 26년 9월 29일(경진)[22집 104면] 임금이 서울에 돌아가는 것을 사방에 알리기로 하다 433


689. 선조실록 권43 선조 26년 10월 1일(신사)[22집 105면] 임금이 벽제역을 출발하여 정릉동 행궁으로 들어가다 433


690. 선조실록 권43 선조 26년 10월 1일(신사)[22집 105면] 임금이 모화관에 이르러 사배례하고 종묘에 이르러 곡림하다 434


691. 선조실록 권43 선조 26년 10월 1일(신사)[22집 105면] 판윤 홍진이 제때에 구휼하지 못한 일로 대죄하다 434


692. 선조실록 권43 선조 26년 10월 1일(신사)[22집 105면] 용산에서 구휼하겠다고 전교하다 434


693. 선조실록 권43 선조 26년 10월 2일(임오)[22집 105면] 임금이 정릉동 행궁에 머무르다 435


694. 선조실록 권43 선조 26년 10월 2일(임오)[22집 105면] 임금이 도성을 직접 시찰하겠다고 지시하다 435


695. 선조실록 권43 선조 26년 10월 2일(임오)[22집 105면] 승려를 동원하여 서울 안팎의 시체를 매장하는 방안을 지사하다 435


696. 선조실록 권43 선조 26년 10월 2일(임오)[22집 105면] 한성부 등에서 소의 도살을 엄격하게 금하도록 전교하다 436


697. 선조실록 권43 선조 26년 10윌 2일(임오)[22집 105면] 서울에서 절개를 지키다 죽은 사람을 포상하기로 하다 436


698. 선조실록 권43 선조 26년 10월 2일(임오)[22집 105면] 서울 거주자들의 일본어 사용을 엄금하라고 전교하다 436


699. 선조실록 권43 선조 26년 10월 2일(임오)[22집 106면] 예조가 종묘의 옥책과 신위에 대해 아뢰다 437


700. 선조실록 권43 선조 26년 10월 3일(계미)[22집 106면] 궁안의 관서들을 인근에 거접하도록 전교하다 437


701. 선조실록 권43 선조 26년 10월 3일(계미)[22집 106면] 병조가 여러 관서의 궐 밖으로 이전하는 사안을 보고하다 437


702. 선조실록 권43 선조 26년 10월 3일(계미)[22집 106면] 사간원에서 서울 및 인근에서 행패를 부린 관원의 처벌을 요청하다 438


703. 선조실록 권43 선조 26년 10월 3일(계미)[22집 106면] 노원・덕빈・하릉군의 일에 대해 전교하다 439


704. 선조실록 권43 선조 26년 10월 3일(계미)[22집 106면] 병조가 서울 일원에서의 쇄마・역참・호위・기찰・경기 수군 등에 관해 보고하다 439


705. 선조실록 권43 선조 26년 10월 4일(갑신)[22집 107면] 임금이 용산에 머물며 기민을 구제하다 444


706. 선조실록 권43 선조 26년 10월 4일(갑신)[22집 107면] 예조가 삼사의 의궤가 유실되어 변통할 것을 아뢰다 444


707. 선조실록 권43 선조 26년 10월 6일(병술)[22집 107면] 전일에 싸움터에서 도망한 자들을 서울에서 숙위하게 문제에 대해 재검토하기로 하다 445


708. 선조실록 권43 선조 26년 10월 6일(병술)[22집 107면] 서울 등지에 복무하는 위졸・역졸들의 급료를 올려주기로 하다 445


709. 선조실록 권43 선조 26년 10월 8일(무자) [22집 108면] 예조가 재정적 궁핍에도 불구하고 시행해야 할 중요한 제사에 대해 아뢰다 446


710. 선조실록 권43 선조 26년 10월 9일(기축) [22집 108면] 서울 백성에게 상복을 착용하는 등 예법에 따르게 할 것을 전교하다 447


711. 선조실록 권43 선조 26년 10월 9일(기축) [22집 108면] 굶주림을 호소한 최영경의 아내에게 곡식을 주도록 정원에 전교하다 448


712. 선조실록 권43 선조 26년 10월 10일(경인) [22집 108면] 도망한 부방군을 서울에서 복무하게 하는 문제를 대신들에게 하문하다 448


713. 선조실록 권43 선조 26년 10월 13일(계사) [22집 109면] 예조가 한성부에서 덕빈의 상구를 탐문했으나 찾지 못했다고 보고하다 449


714. 선조실록 권43 선조 26년 10월 15얼(을미) [22집 109면] 임금이 선릉과 정릉에 나아가 제사하다 450


715. 선조실록 권43 선조 26년 10월 18일(무술) [22집 110면] 사간원이 선릉・정릉 친제시 의례 절차를 잘못한 승지 처벌 건 등을 건의하다 450


716. 선조실록 권43 선조 26년 10월 18일(무술) [22집 111면] 사헌부가 관작 제수가 외람된 점을 아뢰다 453


717. 선조실록 권43 선조 26년 10월 18일(무술) [22집 111면] 선릉・정릉 발굴 죄인에 대한 추국을 의금부에서 담당하도록 하다 454


718. 선조실록 권43 선조 26년 10월 22일(임인) [22집 112면] 임금이 편전에 나아가 대신들과 함께 전황을 점검하고 서울 방어의 방책을 논의하다 455


719. 선조실록 권43 선조 26년 10월 25일(을사) [22집 114면] 사간원이 군율을 어긴 장수들을 처벌할 것을 청했다 466


720. 선조실록 권43 선조 26년 10월 25일(을사) [22집 114면] 경복궁 후원에 임시궁궐을 지을 준비를 하라고 전교하다 467


721. 선조실록 권43 선조 26년 10월 29일(기유) [22집 116면] 비변사가 호서 방백 윤인함의 체차를 청하다 468


722. 선조실록 권43 선조 26년 10월 29일(기유) [22집 116면] 비변사가 우성전의 한강 일대 작전에 대한 공적 평가를 다시 할 것을 요청하다 468


723. 선조실록 권43 선조 26년 10월 29일(기유) [22집 116면] 능침을 발굴한 죄인을 금부에서 추국하도록 하였다 470


724. 선조실록 권43 선조 26년 10월 30일(경술) [22집 116면] 임금이 도성을 비롯한 전국의 민심을 수습하는 방안을 논의하다 471


725. 선조실록 권43 선조 26년 10월 30일(경술) [22집 116면] 영의정 유성룡이 동궁이 전방에 나가는 일에 대해 아뢰다 472


726. 선조수정실록 권27 선조 26년 10월 [25집 643면] 임금이 서울로 돌아와서 정릉동 월산대군의 집을 행궁으로 삼다 474


727. 선조수정실록 권27 선조 26년 10월 [25집 643면] 교서를 반포하고 택일하여 종묘의 터에 곡읍하다 474


728. 선조수정실록 권27 선조 26년 10월 [25집 643면] 승려를 모집하여 도성의 안팎에 있는 시체를 거두어 매장하게 하다 474


729. 선조수정실록 권27 선조 26년 10월 [25집 643면] 청을 설치하여 서울의 기민을 구휼하게 하다 475


730. 선조실록 권44 선조 26년 11월 1일(산해) [22집 117면] 유성룡이 서울의 상황을 포함하여 송 경략에게 회보할 내용에 대해 아뢰다 475


731. 선조실록 권44 선조 26년 11월 2일(임자) [22집 118면] 유성룡이 세자가 서울로 왔다가 남으로 가는 일에 대해 아뢰다 477


732. 선조실록 권44 선조 26년 11월 2일(임자) [22집 118면] 선릉・태릉을 발굴한 죄인에 대한 조사를 종결하기로 결정하다 478


733. 선조실록 권44 선조 26년 11월 2일(임자) [22집 118면] 임금은 서울에 머물고 세자가 남으로 이동하여 명나라의 요청에 호응하는 안을 검토하다 478


734. 선조실록 권44 선조 26년 11월 3일(계축) [22집 118면] 평시서제조 유영길의 건의로 서울의 상업을 재건하기 위해 물품을 시장에서 구입하도록 하다 480


735. 선조실록 권44 선조 26년 11월 6일(병진) [22집 119면] 서울 가족에게 군량을 전용하여 물품을 보낸 경기수사 등 불법행위 관원을 처벌하다 481


736. 선조실록 권44 선조 26년 11월 9일(기미) [22집 120면] 임금이 모화관으로 나아가 장 도사를 맞이하다 482


737. 선조실록 권44 선조 261건 11월 9일(기미) [22집 120면] 병국 사신을 맞이하는 예를 거행하다 482


738. 선조실록 권44 선조 26년 11월 15일(을축) [22집 123면] 한성부에서 진휼용 곡식 마련 방안을 보고하다 486


739. 선조실록 권44 선조 26년 11월 16일(병인) [22집 123면] 경기감사 등의 비용 충당의 서울 관원의 방식을 따르도록 결정하다 487


740. 선조실록 권44 선조 26년 11월 16일(병인) [22집 124면] 비변사의 건의로 군량을 서울 둥지에 나누어 보관하고 관리 인력을 배치하기로 하다 488


741. 선조실록 권44 선조 26년 11월 17일(정묘) [22집 124면] 임금이 모화관에 나아가 장 도사를 전송하다 489


742. 선조실록 권44 선조 26년 11월 18일(무진) [22집 125면] 임금이 남별궁에 나아가 총병 척금을 만나 서울에의 주둔여부를 묻다 490


743. 선조실록 권44 선조 26년 11월 20일(경오) [22집 126면] 병조참판 심충겸이 적을 격퇴할 계책을 아뢰다 492


744. 선조실록 권44 선조 26년 11월 20일(경오) [22집 127면] 예조가 능침 배일에 관해 아뢰다 495


745. 선조실록 권44 선조 26년 11월 21일(신미) [22집 127면] 이광정이 척 총병의 남진과 서울로의 회군 가능성에 대한 언급을 보고하다 495


746. 선조실록 권44 선조 26년 11월 21일(신미) [22집 127면] 임금이 편전에서 대신들을 인견하여 전반적인 전황과 작전 방향 등을 논의하다 496


747. 선조실록 권44 선조 26년 11월 26일(병자) [22집 130면] 기민을 제대로 구휼하지 못한 한성부의 참봉 및 판관을 파직하다 504


748. 선조실록 권44 선조 26년 11월 28일(무인) [22집 131면] 영상에게 명나라 총병을 만나 왜병과의 교전을 포기할 수 없는 입장을 전하도록 하다 504


749. 선조실록 권44 선조 26년 11월 28일(무인) [22집 132면] 임금이 편전에서 대신을 만나서 왜적과의 전황을 명국에 알리는 문제를 논의하다 506


750. 선조실록 권45 선조 26년 윤11월 1일(신사) [22집 134면] 명국 사신이 서울까지 올 것인지의 여부를 알아보도록 지시하다 511


751. 선조실록 권45 선조 26년 윤11월 2일(임오) [22집 134면] 임금이 편전에서 대신을 접견하여 서울을 포함한 전국의 전황과 형세를 논의하다 512


752. 선조실록 권45 선조 26년 윤11월 4일(갑신) [22집 139면] 윤근수가 소서행장이 심유경에게 보낸 서찰을 입계하다 533


753. 선조실록 권45 선조 26년 윤11월 5일(을유) [22집 140면] 정원에서 임금이 서울에 머물고 있는 심유경을 직접 접견할 것을 청하다 535


754. 선조실록 권45 선조 26년 윤11월 5일(을유) [22집 140면] 홍문관에서 강화론자 심유경의 접대에 소홀하지 말 것을 건의하다 536


755. 선조실록 권45 선조 26년 윤11월 6일(병술) [22집 141면] 사헌부의 건의로 진휼사 한성판윤 홍진 등의 교체를 결정하다 537


756. 선조실록 권45 선조 26년 윤11월 6일(병술) [22집 141면] 명 사신이 서울에 오는 대로 적정을 알리는 문서를 전달할 수 있도록 준비하게 하다 537


757. 선조실록 권45 선조 26년 윤11월 8일(무자) [22집 142면] 왕세자가 해주로부터 서울로 돌아오다 538


758. 선조실록 권45 선조 26년 윤11월 8일(무자) [22집 142면] 김늑을 한성부우윤으로 임명하다 538


759. 선조실록 권45 선조 26년 윤11월 9일(기축) [22집 142면] 좌상의 서울로 돌아오는 것을 늦추도록 정원에 전교하다 538


760. 선조실록 권45 선조 26년 윤11월 10일(경인) [22집 144면] 임금이 시어소에서 참장 심유경을 접견하다 538


761. 선조실록 권45 선조 26년 윤11월 11일(신묘) [22집 144면] 명나라 사신의 서울 입성을 앞두고 대응 방안을 논의하다 539


762. 선조실록 권45 선조 26년 윤11월 12일(임진) [22집 145면] 영의정 유성룡이 명국 사신을 만나고 경솔한 인물로 판단하여 보고하다 542


763. 선조실록 권45 선조 26년 윤11월 12일(임진) [22집 145면] 임금이 모화관으로 나아가 명나라 사신을 맞이하다 544


764. 선조실록 권45 선조 26년 윤11월 12일(임진) [22집 146면] 윤근수가 명에서 받은 자문을 담은 봉서 한 통을 바치다 546


765. 선조수정실록 권27 선조 26년 윤11월 [25집 644면] 명의 사신이 오는 것을 계기로 임금의 선위 문제가 논의되다 547


766. 선조실록 권45 선조 26년 윤11월 12일(임진) [22집 147면] 임금이 편전에서 퇴위를 종용하는 명나라의 문서에 대해 영의정 유성룡과 논의하다 551


767. 선조실록 권45 선조 26년 윤11월 14일(갑오) [22집 148면] 임금이 명국 사신을 만나 서울을 비롯한 전국의 전황을 논의하는 문서를 주고받다 555


768. 선조실록 권45 선조 26년 윤11월 14일(갑오) [22집 151면] 정원에서 임금이 명국 사신에게 전달한 문서의 내용을 문의하다 568


769. 선조실록 권45 선조 26년 윤11월 18일(무술) [22집 156면] 임금이 명국 사신과 세자가 서울을 떠나 남행하는 문제 등을 논의하다 568


770. 선조실록 권45 선조 26년 윤11월 18일(무술) [22집 157면] 명국 자문에 답하여 조선의 정황을 전하는 자문을 전달하다 571


771. 선조실록 권45 선조 26년 윤11월 20일(경자) [22집 158면] 임금이 모화관에 나아가 전별연을 베풀다 573


772. 선조실록 권45 선조 26년 윤11월 20일(경자) [22집 159면] 명군 전몰자 제사를 건으로 요동도지휘사사에서 보낸 자문 575


773. 선조실록 권45 선조 26년 윤11월 22일(임인) [22집 162면] 명국 사신의 접대 소홀로 관찰사 및 원접사를 조사하기로 하다 577


774. 선조실록 권45 선조 26년 윤11월 23일(계묘) [22집 163면] 임금이 숭례문밖에 나가 유총병을 배웅하다 578


775. 선조실록 권45 선조 26년 윤11월 17일(정유) [22집 154면] 심수경 등이 선위하는 일이 불가함을 비밀히 아뢰다 579


776. 선조실록 권45 선조 26년 윤11월 24일(갑진) [22집 164면] 심수경・유성룡・윤두수가 네 번째 선위의 불가함을 아뢰다 580


777. 선조실록 권45 선조 26년 윤11월 24일(갑진) [22집 164면] 서울 등 주요 도시에서 전사한 조선 및 명나라 군병의 제사를 지내도록 하다 581


778. 선조실록 권45 선조 26년 윤11월 25일(을사) [22집 165면] 비변사가 서울 기민의 구휼에 대해 아뢰다 582


779. 선조실록 권45 선조 26년 윤11월 25일(을사) [22집 166면] 비변사가 구휼을 담당하는 관리들을 엄히 다스릴 것을 청하다 583


780. 선조실록 권46 선조 26년 12월 1일(경술) [22집 173면] 임금이 정릉동 행궁에 머물다 584


781. 선조실록 권46 선조 26년 12월 1일(경술) [22집 174면] 영의정 유성룡 등의 적극 만류에 양위시기를 두 달 정도 미루기로 하다 585


782. 선조실록 권46 선조 26년 12월 1일(경술) [22집 174면] 비변사에서 명나라 군에게 너무 많은 군량이 지급되고 있으니 바로 잡을 것을 청하다 585


783. 선조실록 권46 선조 26년 12월 1일(경술) [22집 174면] 경기감사의 장계로 왜군을 토벌하는 데 공이 있는 경기도 고을을 사상하도록 하다 587


784. 선조실록 권46 선조 26년 12월 2일(신해) [22집 175면] 강감에 있는 막장을 재상과 대관 등에게 나누어 주다 587


785. 선조실록 권46 선조 26년 12월 3일(임자) [22집 176면] 호조에서 서울 둘레 10리 범위 내 경작 가능한 땅의 권농방안 등을 보고하다 588


786. 선조실록 권46 선조 26년 12월 3일(임자) [22집 177면] 비변사에서 군량미를 마련할 계책을 건의하다 590


787. 선조실록 권46 선조 26년 12월 8일(정사) [22집 183면] 비변사에서 서울 인근의 밭에 사용할 채소 종자의 구입을 건의하다 593


788. 선조실록 권46 선조 26년 12월 9일(무오) [22집 183면] 서울의 진제장에서 하리의 농간으로 사람들이 굶어 죽으므로 이를 조사하게 하다 594


789. 선조실록 권46 선조 26년 12월 10일(기미) [22집 183면] 임금에게 공급하는 쌀의 절반을 진제장에 보내 진휼에 사용하도록 하다 595


790. 선조실록 권46 선조 26년 12월 11일(경신) [22집 184면] 서울 인근의 봄보리 파종을 위해 하삼도에서 급히 종자를 운반하도록 하다 595


791. 선조실록 권46 선조 26년 12월 11일(경신) [22집 184면] 비변사의 건의로 방리군 등을 동원하여 서울에 쌓여 있는 사체를 처리하기로 하다 596


792. 선조실록 권46 선조 26년 12월 15일(갑자) [22집 186면] 병조참판 심충겸이 서울 및 전국의 둔전 설치에 관한 의견을 진술하다 596


793. 선조실록 권46 선조 26년 12월 16일(을축) [22집 186면] 군자감에서 서울 일대에 도둑이 성하므로 군자창의 경계를 강화할 것을 청하다 598


794. 선조실록 권46 선조 26년 12월 16일(을축) [22집 186면] 도둑이 치성하여 금군 30 명을 더 뽑아 도성 수비를 강화하다 599


795. 선조실록 권46 선조 26년 12월 16일(을축) [22집 187면] 비변사 대신들이 둔전 설치와 경영에 대한 방책을 아뢰다 599


796/377. 선조실록 권46 선조 26년 12월 20일(기사) [22집 192면] 서울에 모여든 군공자를 대상으로 시험을 실시하여 도태시키는 문제를 검토하다 603


797/378. 선조실록 권46 선조 26년 12월 21일(경오) [22집 193면] 서울에서 무과 시험을 실시하는 문제 등을 검토하다 604


798/379. 선조실록 권46 선조 26년 12월 22일(신미) [22집 194면] 한성부좌윤 등이 포함된 무군사에서 동궁 관련 사안을 보고하다 605


799/380. 선조실록 권46 선조 26년 12월 23일(임신) [22집 194면] 서울에서 과거를 실시하되 조총으로 시취하기로 하다 605


800/381. 선조실록 권46 선조 26년 12월 24일(계유) [22집 194면] 비변사에서 서울을 비롯한 전국의 기근 상황과 구제 방안을 건의하다 606


선조실록 원문

관련분야 신착자료

순천대학교. 10·19연구소 (2025)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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