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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90 | ▼a 953.063 ▼b 2007 | |
| 100 | 1 | ▼a 안형주 |
| 245 | 1 0 | ▼a 박용만과 한인소년병학교 / ▼d 안형주 지음. |
| 260 | ▼a 서울 : ▼b 지식산업사 , ▼c 2007. | |
| 300 | ▼a 452 p. : ▼b 삽화, 초상 ; ▼c 23 cm. | |
| 500 | ▼a 부록수록 | |
| 504 | ▼a 참고문헌 수록 | |
| 586 | ▼a 제4회 나라 안팎 한국인기록문화상 집중취재기 갈래 당선작 |
소장정보
| No. | 소장처 | 청구기호 | 등록번호 | 도서상태 | 반납예정일 | 예약 | 서비스 |
|---|---|---|---|---|---|---|---|
| No. 1 | 소장처 세종학술정보원/인문자료실2(2층)/ | 청구기호 953.063 2007 | 등록번호 151235938 (3회 대출) | 도서상태 대출가능 | 반납예정일 | 예약 | 서비스 |
| No. 2 | 소장처 세종학술정보원/보존서고(2층)/ | 청구기호 953.063 2007 | 등록번호 151235937 (2회 대출) | 도서상태 대출가능 | 반납예정일 | 예약 | 서비스 |
컨텐츠정보
책소개
독립운동가 박용만(1881~1928)이 주도하여 미국 네프라스카 주에 세웠던, 우리겨레가 해외에 최초로 세운 무관학교인 한인소년병학교(1909~1914)를 본격적으로 추적한 집중취재기가 나와 눈길을 끈다.
전 미국을 두루 돌아다녀 흩어진 자료를 찾아 내 사진만 120 여점을 수록한 이 책은 20세기 초 재미동포 유학생들의 뜨거운 애국심과 그들의 삶이 그대로 들어난다.초대 대통령 이승만과 노선이 달랐다는 하나의 이유로(박용만은 이승만과 의형제였고 이승만의 네 살짜리 아들을 미국으로 데리고 가기도 했다), 소년병학교 출신들은 일시 귀국도 허용되지 않았고 미국에 영주한 탓에 역사의 그늘에 묻힌 경우가 많았다.
박용만은 강원도 철원 태생으로 일찍 개화에 눈을 떠 일본을 거쳐 미국에 가서 고학으로 공부하면서 네프라스카 주립대학에 편입, 여름방학 동안 고교 교사를 빌어 여름군사학교(Summer Military Camp)인 한인소년병학교(Young Korean Military School)를 세우고 1기 13명을 모아 유학 온 젊은이들에게 군사훈련을 실시한 것이 첫 출발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단순한 군사교육만이 아니라, ‘조국 광복을 이끌 젊은 선비 양성’에 뜻이 있었기에 군사교육 외에 우리말과 우리 전통문화도 가르쳤으며, 박용만과 그의 동지 백일국 등은, 미국 독립전쟁 당시 자급자족하면서 둔전병을 양성했듯이, 언젠가 때가 되면 한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남만주나 연해주로 가서 광복의 지도자로 일하도록 길렀던 것이다. 소년병학교 관련자들은 소수의 순수 유학생 외에도 노동이민자들의 자제나 노동이민자까지 포함된 모두가 고학생들이었다. 대학생들은 중고등생들에게 우리 말과 우리 선비관을 가르친 한편으로 화학과 농학, 상학 등도 가르쳐 그들이 나중에 과학자ㆍ기술자ㆍ경영자들이 되게 했다. 그리하여 소년병학교 졸업생(모두 100명 미만)들은 거의 고등학교를 나왔고, 학사 36명, 박사 2명, 의(약)사를 6명이나 배출했으며, 그들은 거의 미국에서 활동했고, 유일한(유한양행 창설자)ㆍ정한경(정치학자) 등은 조국에 와서도 활약했던 것이다.
저자 안병주는 서울대학교 국문과 출신으로 1960년대 중반에 미국에 들어가 활동하다가, 지난 10여 년 동안 박용만과 소년병학교의 미국 전역에 흩어진 자료를 모으기 위해 그 후손들을 찾아 소중한 자료들을 모았으며, 이 저술은 제4회 <나라안팎 한국인 기록문화상> 집중취재기 부문의 당선작으로 뽑힌 것이다.
정보제공 :
목차
목차 책을 내면서 = 4 제1장 머리글 = 15 한인소년병학교의 뿌리 = 16 상동청년회 = 16 상동청년학원 = 18 한인소년병학교의 '선비' 양성운동 = 20 구한말 도미 유학생들 = 21 소년들을 데리고 미국으로 건너간 청년 지도자들 = 23 19세기 말 극동 삼국의 소년 구미 유학생들 = 29 대동보국회(大同保國會)와 재미 보황회(保皇會) = 31 간성학교(干城學校) = 36 간성학교의 종말 = 40 《중서일보》와 재미 한인들 = 43 제2장 네브래스카 주의 한인들 = 49 셔먼 부인의 한인 전도관 = 54 커니 시의 한인 '스쿨보이'들 = 56 정한경(鄭翰景, 1890~1985) = 56 정양필(鄭良弼, 1893~1974) = 61 유일한(柳一韓, 1894~1971) = 64 이관수(1897~1917) = 69 이노익(李魯翊, 1878~?) = 72 커니 시의 한인들 = 74 제3장 재미 한인들의 초기 독립운동과 한인소년병학교의 태동(1905~1908) = 81 포츠머스 강화회담 = 82 주미 한국공관의 철거 = 87 부역자를 다룸 = 88 헤이그 세계평화회의 = 90 스티븐스 사건 = 96 애국동지대표회 = 102 한국인 밀정의 보고 = 111 제4장 한인소년병학교(1909~1914):생도들, 일과, 그리고 교과목 = 123 목적 = 124 커니의 소년병학교(1909) = 125 구한말의 두 군인과 한국식 산병교련 = 131 미국 무관학교의 분류 = 132 소년병학교와 헤이스팅스 대학 = 135 소년병학교 구성원 = 146 소년병학교의 일과 = 164 과목들 = 168 무기와 군복 = 174 군가 = 178 정신교육 = 182 소년병학교와 두 미국 군사고등학교 = 184 제5장 한인소년병학교의 과외활동 = 191 육상반 = 191 야구반 = 193 연극반 = 197 한국유학생회 창립과 영문잡지 출판 = 203 지방사회 미국인들과 교류 = 209 제6장 한인소년병학교의 종말 = 219 일본 정부의 한인소년병학교에 관한 보고서들 = 221 한인소년병학교의 단기적 영향 = 237 군민군단 = 241 한인비행사양성소 = 243 소년병학교와 간성학교의 비교 = 245 다른 한인 무관학교와 비교 = 246 소년병학교와 신흥무관학교 = 248 제7장 네브래스카 한인사회와 네브래스카 문화 = 251 네브래스카 대한인거류민회 = 255 대한인국민회와 교섭 = 257 링컨 시의 한인 학생 기숙사 = 266 헤이스팅스의 한인 학생 전도관 = 271 소년병학교의 후원자들 = 277 1910년대 초 커니와 헤이스팅스의 경제와 문화 = 279 헤이스팅스 시의 경제와 문화 = 284 사회기구와 각 교파 교회들 = 285 소수민족들 = 291 문화 = 292 제8장 한인소년병학교 교사와 생도들의 글 = 301 《제국신문》에 실린 소년병학교 교사들의 글 = 302 소년병학교 교사들의 한시(漢詩) = 306 박용만의 시조(時調) = 315 박용만의 《신한민보》 사설 = 316 소년병학교 교사들의 글 = 323 생도들의 글 = 326 제9장 한인소년병학교와 민족운동 = 333 학업의 성취 = 334 대학원을 마친 생도들 = 345 독립군 양성을 위하여 헌신한 소년병학교 출신 = 348 김장호 극동 방문의 의의와 영향 = 353 3ㆍ1 운동과 구미위원부 = 359 네브래스카 주 주민들의 한국을 위한 청원서 = 361 박용만의 한글 연구와 소년병학교 생도들 = 365 재미 한인 신문의 언론인으로 활약한 이들 = 369 중국음식 도매업을 창업한 이들 = 370 의사가 된 소년병학교 출신들 = 376 사진사가 된 소년병학교 출신들 = 380 출판된 저서들 = 385 소년병 출신들의 귀국과 활동 = 387 태평양전쟁과 그 영향 = 397 김용성과 맹호군 = 398 유일한과 재미 한족연합회 그리고 납코(NAPKO) 작전 = 399 의견의 차이와 타협 그리고 인내 = 406 태평양전쟁 뒤 = 407 제10장 맺는 말 = 415 참고 문헌 = 431 부록 1 〈상동청년회〉(보고서 〈조선 독립운동의 근원〉 가운데) = 439 부록 2 우운선생츄도문(憂雲先生追悼文) = 443 부록 3 우성(于醒) 박용만 연보(1881~1928) = 45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