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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90 | ▼a 953.06092 ▼b 2004n | |
| 100 | 1 | ▼a 김구, ▼g 金九, ▼d 1876-1949 ▼0 AUTH(211009)22088 |
| 245 | 1 0 | ▼a 백범일지 : ▼b 백범 김구 자서전 / ▼d 金九 저 |
| 246 | 0 | ▼i 한자표제: ▼a 白凡日誌 |
| 250 | ▼a 재판 | |
| 260 | ▼a 파주 : ▼b 나남출판, ▼c 2004 ▼g (2013 28쇄) | |
| 300 | ▼a 475 p. : ▼b 삽화 ; ▼c 23 cm | |
| 440 | 0 0 | ▼a 백범학술원총서 ; ▼v 2 |
| 500 | ▼a 색인수록 | |
| 945 | ▼a KINS |
소장정보
| No. | 소장처 | 청구기호 | 등록번호 | 도서상태 | 반납예정일 | 예약 | 서비스 |
|---|---|---|---|---|---|---|---|
| No. 1 | 소장처 중앙도서관/제3자료실(4층)/ | 청구기호 953.06092 2004n | 등록번호 111434834 (16회 대출) | 도서상태 대출가능 | 반납예정일 | 예약 | 서비스 |
| No. 2 | 소장처 중앙도서관/제3자료실(4층)/ | 청구기호 953.06092 2004n | 등록번호 111434835 (16회 대출) | 도서상태 대출가능 | 반납예정일 | 예약 | 서비스 |
| No. 3 | 소장처 중앙도서관/제3자료실(4층)/ | 청구기호 953.06092 2004n | 등록번호 111529144 (13회 대출) | 도서상태 대출가능 | 반납예정일 | 예약 | 서비스 |
컨텐츠정보
책소개
<백범일지>는 백범 김구 선생의 자서전이자 유서이다. 또 암울했던 시대에도 독립의 꿈을 버리지 않았던 우리 민족의 역사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다. 평범한 사람들 누구라도 자신만큼 애국심을 갖는다면 독립을 이룰 수 있다고 믿었던 선생의 신념과 평생 이를 실천하며 민족의 독립에 헌신했던 삶을 생생하게 담았다. 이 책은 백범의 사상을 계승하기 위해 최고 전문가들이 모인 백범학술원에서 펴낸 학술원판이다.
위대한 스승 백범 김구의 자서전
<백범일지>는 우리 민족의 영원한 스승이며 위대한 지도자인 백범 김구 선생의 자서전이다. 선생의 어린 시절부터 질풍노도의 청년기, 망국의 시련과 중국으로의 망명, 임시정부와 독립운동, 해방 후 귀국까지 파란만장했던 삶과 더불어 민족을 사랑하는 김구의 마음이 담겼다. 독립운동가로서 평생 헌신했던 민족 지도자 개인의 삶을 이해할 수 있는 창이자, 비극적인 시대적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펼쳤던 민족운동의 역사를 배울 수 있는 최고의 저작이다. 그러기에 <백범일지>가 우리 민족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개인의 자서전에 한민족의 역사를 담다
이 책은 자서전인 동시에 선생이 자신의 인생을 알리기 위해 남긴 유서(遺書)이다. 상권은 죽음이 언제 닥칠지 모르는 임시정부 시절 두 아들에게, 하권은 중일전쟁의 결과로 정처 없이 떠돌아야 했을 때 동포들에게 선생의 삶과 민족운동에 대한 소회를 밝히려 쓴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개인의 일지(逸志)일 뿐만 아니라 동포들을 향한 외침이기도 하다. 또한 독립운동의 중심에 있었던 백범 김구 선생이 직접 남긴 독립운동의 역사서이기도 하다. <백범일지>는 이러한 역사적 가치 때문에 보물 제1245호로 지정되기도 했다.
뜨거운 민족애: 백정과 범부의 마음으로!
이 책은 선생의 호가 의미하듯이 백정과 범부의 마음으로 썼다. <백범일지>에는 선생이 스스로 말했듯이 ‘못난 한 사람’으로서 살아간 본인의 삶을 통해, 누구나 독립운동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던 백범 선생의 철학이 잘 드러난다. 뿐만 아니라 그러한 철학을 평생 실천했던 행동들이 선생의 삶의 궤적을 따라 가득 채워져 있기에 독자의 감동이 클 수밖에 없다. 백범 김구가 한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스승으로 꼽히고 <백범일지>가 꾸준히 사랑받는 이유는 바로 선생의 뜨거운 민족애 때문일 것이다.
최고의 전문가들이 풀어 쓴 최고의 판본
나남의 <백범일지>는 백범학술원에서 백범학술원 총서로 출간한 것으로, 어려운 원문을 읽기 쉽게 현대어로 풀어 썼다. 백범 김구 선생의 삶과 사상을 후세에게 전달하기 위해 각 분야 최고의 전문가들이 모인 백범학술원에서 펴낸 만큼 신뢰할 수 있는 판본이다. 또한 선생과 그의 삶에 관련된 사진이 곳곳에 실려 생동감을 더한다.
정보제공 :
저자소개
김구(지은이)
본관은 안동(安東). 아명은 창암(昌巖), 본명은 김창수(金昌洙), 개명하여 김구(金龜, 金九), 법명은 원종(圓宗), 환속 후에는 김두래(金斗來)로 고쳤다. 호는 백범(白凡). 황해도 해주백운방(白雲坊) 텃골[基洞] 출신. 김순영(淳永)의 7대 독자이며, 어머니는 곽낙원(郭樂園)이다. 17세에 조선왕조 최후의 과거에 응시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벼슬자리를 사고 파는 부패된 세태에 울분을 참지 못하여 18세에 동학에 입도하였으며, 황해도 도유사(都有司)의 한 사람으로 뽑혀 제2대 교주 최시형(崔時亨)을 만났다. 19세에 팔봉접주(八峰接主)가 되어 동학군의 선봉장으로 해주성(海州城)을 공략하였는데, 이 사건으로 1895년 신천 안태훈(安泰勳)의 집에 은거하며, 당시 그의 아들 중근(重根)과도 함께 지냈다. 또한, 해서지방의 선비 고능선(高能善) 문하에서 훈도를 받았고, 항일의식을 참지 못하여 압록강을 건너 남만주 김이언(金利彦)의 의병부대에 몸담았다. 을미사변으로 충격을 받고 귀향을 결심, 1896년 2월 안악 치하포(鴟河浦)에서 쓰치다[土田讓亮]를 맨손으로 처단하여 21세의 의혈청년으로 국모의 원한을 푸는 첫 거사를 결행하였다. 그 해 5월 집에서 은신중 체포되어 해주감옥에 수감되었고, 7월 인천 감리영(監理營)에 이감되었으며, 다음해인 1897년 사형이 확정되었다. 사형직전에 집행정지령이 내려져 생명을 건질수 있었지만, 석방이 되지 않아 이듬해 봄에 탈옥하였다. 삼남일대를 떠돌다가 공주 마곡사에 입산하여 승려가 되어 원종(圓宗)이란 법명을 받았고, 1899년 서울 새절(봉원사)을 거쳐 평양 근교 대보산(大寶山)영천암(靈泉庵)의 주지가 되었다가 몇 달 만에 환속하였다. 수사망을 피해 다니면서도 황해도 장연에서 봉양학교(鳳陽學校) 설립을 비롯하여, 교단 일선에서 계몽·교화사업을 전개하였으며, 20대 후반에 기독교에 입교하여 진남포예수교회 에버트청년회(Evert靑年會) 총무로 일했다. 이런 가운데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상경하여 상동교회 지사들의 조약반대 전국대회에 참석하였으며, 이동녕(李東寧)·이준(李儁)·전덕기(全德基) 등과 을사조약의 철회를 주장하는 상소를 결의하고 대한문 앞에서 읍소하면서 종로에서 가두연설에 나서기도 하였다. 한편, 종로에서 가두연설에 나서기도 하여 구국대열에 앞장섰다. 1906년 해서교육회(海西敎育會) 총감으로 학교설립을 추진하여, 다음해 안악에 양산학교(楊山學校)를 세웠다. 1909년 전국 강습소 순회에 나서서 애국심을 고취하는 한편, 재령 보강학교(保强學校) 교장이 되었다. 그때 비밀단체 신민회(新民會)의 회원으로 구국운동에도 가담하였다. 그 해 가을 안중근의 거사에 연루되어 해주감옥에 투옥되었다가 석방되었다. 그 뒤 1911년 1월 데라우치[寺內正毅] 총독의 암살을 모의했다는 혐의로 안명근(安明根)사건의 관련자로 체포되어 17년형을 선고받았다. 1914년 7월 감형으로 형기 2년을 남기고 인천으로 이감되었다가 가출 옥여 김홍량(金鴻亮)의 동산평(東山坪) 농장관리인으로 농촌부흥운동에 주력하였다. 1919년 3·1운동 직후에 상해로 망명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초대 경무국장이 되었고, 1923년 내무총장, 1924년 국무총리 대리, 1926년 12월 국무령(國務領)에 취임하였다. 이듬해 헌법을 제정, 임시정부를 위원제로 고치면서 국무위원이 되었다. 1929년 재중국 거류민단 단장을 역임하였고 1930년 이동녕·이시영(李始榮) 등과 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을 창당하였다. 1931년 한인애국단을 조직, 의혈청년들로 하여금 직접 왜적 수뇌의 도륙항전(屠戮抗戰)에 투신하도록 지도력을 발휘하였다. 이에 중국군 김홍일(金弘壹) 및 상해병공창 송식표(宋式驫)의 무기공급과 은밀한 거사준비에 따라, 1932년 1·8이봉창(李奉昌)의거와 4·29윤봉길(尹奉吉)의거를 주도한 바 있는데, 윤봉길의 이 의거가 성공하여 크게 이름을 떨쳤다. 1933년 장개석(蔣介石)을 만나 한·중 양국의 우의를 돈독히 하고 중국 뤄양군관학교[洛陽軍官學校]를 광복군 무관양성소로 사용하도록 합의를 본 것은 주목받을 성과였으며, 독립운동가들에게 큰 용기를 주었다. 1934년 임시정부 국무령에 재임되었고, 1940년 3월 임시정부 국무위원회 주석에 취임하였다. 같은해 충칭[重慶]에서 한국광복군을 조직하고 총사령관에 지청천(池靑天), 참모장에 이범석(李範奭)을 임명하여 항일무장부대를 편성하고, 일본의 진주만 기습에 즈음하여 1941년 12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이름으로 대일선전포고를 하면서 임전태세에 돌입하였다. 1942년 7월 임시정부와 중국정부 간에 광복군 지원에 대한 정식협정이 체결되어, 광복군은 중국 각 처에서 연합군과 항일공동작전에 나설 수 있었다. 그 뒤 개정된 헌법에 따라 1944년 4월 충칭 임시정부 주석으로 재선되고, 부주석에 김규식(金奎植), 국무위원에 이시영·박찬익 등이 함께 취임하였다. 그리고 일본군에 강제 징집된 학도병들을 광복군에 편입시키는 한편, 산시성[陜西省]시안[西安]과 안후이성[安徽省] 푸양[阜陽]에 한국광복군 특별훈련반을 설치하면서 미육군전략처와 제휴하여 비밀특수공작훈련을 실시하는 등, 중국 본토와 한반도 수복의 군사훈련을 적극 추진하고 지휘하던 중 시안에서 8·15광복을 맞이하였다. 1945년 11월 임시정부 국무위원과 함께 제1진으로 환국하였다. 그 해 12월 28일 모스크바 3상회의에서의 신탁통치결의가 있자 신탁통치반대운동에 적극 앞장섰으며, 오직 자주독립의 통일정부 수립을 목표로 정계를 영도해 나갔다. 1946년 2월 비상국민회의의 부총재에 취임하였고, 1947년 비상국민회의가 국민회의로 개편되자 부주석이 되었다. 그 해 6월 30일 일본에서 운구해온 윤봉길·이봉창(李奉昌)·백정기(白貞基) 등 세 의사의 유골을 첫 국민장으로 효창공원에 봉안하였다. 이를 전후하여 대한독립촉성중앙협의회와 민주의원(民主議院)·민족통일총본부를 이승만(李承晩)·김규식과 함께 이끌었다. 1947년 11월 국제연합 감시하에 남북총선거에 의한 정부수립결의안을 지지하면서, 그의 논설 「나의 소원」에서 밝히기를 “완전자주독립노선만이 통일정부 수립을 가능하게 한다.”고 역설하였다. 그러나 1948년 초 북한이 국제연합의 남북한총선거감시위원단인 국제연합한국임시위원단의 입북을 거절함으로써, 선거가능지역인 남한만의 단독선거가 결정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서도 김구는 남한만의 선거에 의한 단독정부수립방침에 절대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였다. 그 해 2월 10일 「3천만동포에게 읍고(泣告)함」이라는 성명서를 통하여 마음속의 38선을 무너뜨리고 자주독립의 통일정부를 세우자고 강력히 호소하였다. 분단된 상태의 건국보다는 통일을 우선시하여 5·10제헌국회의원선거를 거부하기로 방침을 굳히고, 그 해 4월 19일 남북협상차 평양으로 향하였다. 김구·김규식·김일성·김두봉(金枓奉) 등이 남북협상 4자회담에 임하였으나, 민족통일정부 수립에 실패하고 그 해 5월 5일 서울로 돌아왔다. 그 뒤 한국독립당의 정비와 건국실천원양성소의 일에 주력하며 구국통일의 역군 양성에 힘썼다. 남북한의 단독정부가 그 해 8월 15일과 9월 9일에 서울과 평양에 각각 세워진 뒤에도 민족분단의 비애를 딛고 민족통일운동을 재야에서 전개하던 가운데, 이듬해 6월 26일 서울 서대문구의 경교장(京橋莊)에서 육군 소위 안두희(安斗熙)에게 암살당하였다.
목차
백범일지 상권 ...10 인 신 두 아들에게 ...19 우리집과 내 어린 시절 선조와 고향 ...21 어리신 어머니의 난산으로 태어난 나 ...23 개구쟁이 어린 시절 ...24 아버지의 가난과 불평 ...27 글공부와 과거 본 이야기 나의 글공부,소년 시절 ...30 과거 본 이야기 ...35 동학입도와 동학농민봉기활동 동학 입도 ...40 동학접주 시절 ...42 동학 농민봉기와 해주성 전투 ...45 청계동 생활과 유학훈도 청계동 안 진사와 소년 안중근 ...53 고능선 선생 ...56 유학과 의의 공부 ...60 청국 시팔과 의병부대활동 관북지방과 청국 시찰 ...65 의병부대 참가활동 ...71 고능선 선생의 손녀사위가 될 뻔한 인연 ...77 명성황후 시해 복수와 치하포 의거 ...83 첫번째 투옥과 옥중생활 첫 번째 투옥과 심문 ...93 인천감옥과 심문 ...100 사형수의 신사상 독서와 옥중생활 ...107 광무황제의 사형정지 칙령 ...111 일제의 석방 방해와 탈옥 ...115 방랑, 유람과 견문 서울로 가는 길 ...123 삼남 지방 유람 견문 ...130 견문 가운데 몇 가지 ...137 승려생활과 환속 마곡사의 중 원종 ...142 부모님 상봉과 영천사 주지 ...146 환속과 동지 탐방 ...155 고능선 선생 문안 ...166 아버님의 별세 ...171 약혼녀와의 사별 ...173 신교육 운동 ...177 자유결혼 ...181 애국계몽운동과 신민회 활동 을사조약 반대 투쟁 ...185 교육구국운동과 애국계몽활동 ...188 안중근 의거 때의 피체 ...200 보강학교 교장 시절의 이재명 ...201 신민회의 활동과 무관학교 설립운동 ...207 안악사건과 세번째 투옥 안악사건(안명근 사건) ...209 세 번째 투옥 ...210 일제의 고문과 신문 ...213 15년 징역형 ...223 일제의 양산학교 강탈 ...225 가족의 수난과 고통 ...228 신민회사건과 옥중생활 서대문감옥으로의 이감 ...233 신민회 사건(105인 사건)과 2년형 추가 ...241 면회 오신 어머님 ...242 옥중생활 이야기 ...243 감옥에서 만난 기인과 열사 ...252 인천감옥으로의 이감 ...265 출옥과 귀향 ...270 중국으로의 망명 동산평 농감 생활 ...278 중국으로의 망명 출국 ...283 임시정부 경무국장 ...287 임시정부 내무총장 시절과 상처 ...289 임시정부 국무령 ...290 옛 친우들의 소식 ...292 백범일지 하권 하권을 쓰면서 ...297 상해 임시정부 시절 상해 도착과 임시정부 ...301 임시정부 경무국장 시기 ...304 민족주의와 공산주의의 갈등 ...311 내무총장 취임과 국민대표회의 해산 ...314 상해 한국독립당과 만주 독립군 ...315 임시 정부 국무령 취임과 국무위원 ...317 하와이,미주,멕시코,쿠바 동포들의 성금 ...322 이봉창 의사의 의거 이봉창 의사와의 면담 ...325 이봉창의 동경 투탄 의거 ...328 한인 이봉창 저격일황 불행부중 ...331 동포들의 호응과 지원 ...332 윤봉길 의사의 의거 윤봉길 의사와의 만남 ...334 홍구공원 투탄 의거의 준비 ...335 윤봉길 홍구공원 의거의 성공 ...337 윤봉길 의거의 대성과 ...344 임시정부 이동의 대장정 가흥피신과 60만 원 현상 ...347 광동 사람 장진구 ...349 해염피신 ...351 중국 농촌의 견문 ...355 여사공과의 만남 ...357 임시정부의 개편과 독립군 장교 양성 장개석 면담과 낙양군관학교 한인반 ...360 임시정부 개편과 한국국민당 ...363 임시정부의 이동 ...365 어머님의 추억 ...368 장사 임시정부와 남목청 사건 ...374 중경 임시정부와 광복군 임시정부으 중경 도착 ...379 어머님의 별세 ...382 3당 통합과 한국독립당 ...385 광복군 창설 ...388 한인 대가족과 조국에 바친 영혼 ...391 백범일지 계속편 ...399 중경 임시정부의 활동고 일제의 항복 통일문제 ...401 광복군 조직공작의 성과 ...402 일제의 항복 소식 ...407 중경 7년 생활의 사정 개요 ...409 폭격의 참상과 중경 임시정부 ...410 그리던 조국에의 환국 귀국하는 길에서 ...415 조국에의 귀환 ...417 지방 순회와 옛 추억 ...422 3열사의 유해 봉환 ...423 삼남 순회 ...424 38선 이남 서부 일대 순회 ...429 나의 소원 민족국가 ...433 정치 이념 ...437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 ...443 .찾아보기 ...44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