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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버지) 루쉰 : 루쉰의 아들로 살아온 격변의 중국 (9회 대출)

자료유형
단행본
개인저자
周海婴, 1929- 서광덕, 1965-, 역 박자영, 1971-, 역
서명 / 저자사항
(나의 아버지) 루쉰 : 루쉰의 아들로 살아온 격변의 중국 / 저우하이잉 지음 ; 서광덕, 박자영 옮김
발행사항
서울 :   강,   2008  
형태사항
621 p. : 삽화, 연표 ; 20 cm
원표제
魯迅與我七十年
ISBN
9788982181160
주제명(개인명)
魯迅,   1881-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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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소장처 청구기호 등록번호 도서상태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No. 1 소장처 중앙도서관/제3자료실(4층)/ 청구기호 895.35 노신 2008 등록번호 111487057 (3회 대출) 도서상태 대출가능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B M
No. 2 소장처 과학도서관/Sci-Info(1층서고)/ 청구기호 895.35 노신 2008 등록번호 121175475 (2회 대출) 도서상태 대출가능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B M
No. 3 소장처 과학도서관/Sci-Info(1층서고)/ 청구기호 895.35 노신 2008 등록번호 121175476 (3회 대출) 도서상태 대출가능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B M
No. 4 소장처 학술정보관(CDL)/B1 국제기구자료실(보존서고5)/ 청구기호 895.35 노신 2008 등록번호 111487056 도서상태 대출가능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B M
No. 5 소장처 세종학술정보원/인문자료실2(2층)/ 청구기호 895.35 노신 2008 등록번호 151263875 (1회 대출) 도서상태 대출가능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B 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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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텐츠정보

책소개

중국의 대문호 루쉰의 아들인 저자가 쓴 아버지에 대한 회고록이다. 루쉰의 아들로 태어나 격동기 중국을 살아온 80여 년 가까운 시간을 돌아보며 루쉰의 삶과 중국 현대사의 이면에 대한 귀중한 증언들을 담았다. 저자는 루쉰의 풍모, 정치적인 행적뿐 아니라 사소한 생활 습관이나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그리고 아버지로서의 루쉰 등 다양한 각도에서 인간 루쉰을 조망한다.

이러한 증언은 전적으로 혈연의 시선을 통과해 지금까지와는 다른 루신에 관한 진실을 들려준다. 루쉰이 국민당의 감시를 받으며 끊임없는 위협 속에서 정치활동을 하고 글을 발표했던 것, 좌익작가연맹 소속 작가들과 ‘혁명문학’ 논쟁을 벌인 일, 심지어 저우쭤런의 일본인 아내와 루쉰을 둘러싼 소문들과 그의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사적인 일화도 담았다.

루신이 사망한 후, 그의 가족들이 살아온 중국 현대사도 소상하게 기록되어 있다. 중화인민공화국의 수립, 반우파투쟁, 문화대혁명, 그리고 타이완과의 관계까지, 중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굵직한 사건들이 거의 모두 등장한다. 사적으로는 루쉰의 친필 원고들이 그의 사후에 어떤 운명을 겪었고, 가족들이 홍위병들의 공격에서 어떻게 살아남았는지도 생생하게 증언한다.

아들이 증언하는 중국의 대문호 루쉰의 삶과 격변의 중국 현대사

중국을 대표하는 지식인이자 ‘아Q’를 탄생시킨 대문호, 루쉰(1881~1936). 『나의 아버지 루쉰(魯迅與我七十年, 2001)』은 루쉰의 아들 저우하이잉(周海?, 1929~)이 쓴 아버지에 대한 회고록이다. 저자는 루쉰의 아들로 태어나 격동기 중국을 살아온 80여 년 가까운 시간을 돌아보며 루쉰의 삶과 중국 현대사의 이면에 대한 귀중한 증언들을 남기고 있다.

저자는 작가로서 루쉰의 풍모나 정치적인 행적뿐 아니라, 사소한 생활 습관이나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그리고 아버지로서 루쉰의 모습 등 다양한 각도에서 인간 루쉰을 조망하는데, 여기서 가장 중요한 점은 이러한 증언이 전적으로 ‘아들’이라는 혈연의 시선을 통과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이 회고록의 장점이자 한계이기도 할 것인데, 루쉰이 국민당의 감시를 받으며 끊임없는 위협 속에서 정치활동을 하고 글을 발표했던 것이나, 좌익작가연맹 소속 작가들과 ‘혁명문학’ 논쟁을 벌인 일, 집안이 맺어준 아내를 두고 대학생이자 제자(베이징여자사범대학)였던 쉬광핑(許廣平, 1898~1968--저자의 어머니)과 동거를 하면서 불거진 사건들, 가장 가까운 학문적 ? 정신적 동지였던 동생 저우쭤런(周作人, 1885~1966)과의 결별, 저우쭤런의 일본인 아내와 루쉰을 둘러싼 소문들, 그리고 루쉰의 죽음에 대한 의혹까지 많은 문제들이 아들 저우하잉의 시선을(이 시선이 어느 면 주관적일 수밖에 없으리라는 점은 인정해야 할 것이다) 통해 지금까지와는 다른 진실의 이야기들을 토해내게 된다.
또한 이 책은 루쉰이 사망한 후 그의 가족들이 살아온 중국 현대사, 그 격변의 세월에 대한 소상한 기록이기도 하다. 그렇게 해서 중화인민공화국의 수립, 반우파투쟁, 문화대혁명, 그리고 타이완과의 관계까지 중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굵직한 사건들이 거의 모두 등장한다. 루쉰의 친필 원고들이 루쉰 사후에 어떤 운명을 겪었고, 문화대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루쉰의 미망인 쉬광핑은 어떻게 죽었는지, 그리고 루쉰 가족들은 홍위병들의 공격에서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생생하게 증언된다. 그 밖에 루쉰의 손자가 타이완 여자와 결혼하여 공산당원이었던 저자가 정치적 박해를 당한 일, 문혁 초반에 학교에 다니다가 농촌에 투입되어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던 ‘라오싼제(老三屆--문화대혁명이 가장 격렬했던 1966∼68년 사이에 중 · 고등학교를 졸업한 세대)’ 아이들의 이야기, 문혁 기간 중국을 좌지우지했던 사인방의 하나인 장칭 때문에 당한 고통, 루쉰 저작의 저작권을 놓고 벌어진 소송 사건 등등……

다음은 저우쭤런의 아내 하부토 노부코에 대한 부분이다.

그녀는 돈을 물 쓰듯이 무계획적으로 썼고, 식사가 자기 입맛에 맞지 않으면 멋대로 다른 것을 만들었다. 자식은 아들과 딸 둘뿐인데,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데려오는 인력거꾼을 빼고도 집에서 일하는 일꾼이 적어도 예닐곱 명은 되었다. 아이가 감기에 걸리기라도 하면 곧바로 일본인 의사에게 왕진을 청했다. (……) 그녀의 진짜 목표는 바다오완에 자기 가족만 머무는 것이었다. 젠런 삼촌은 십 개월 후에 쫓겨나고 말았다. 그녀는 아버지에게도 손을 썼다. 그녀가 잠자리에서 저우쭤런 삼촌에게 아버지에 관해 무슨 험담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확실한 것은 1922년 7월 19일 저우쭤런 삼촌이 갑자기 “루쉰 선생 앞”이라 되어 있는 편지를 가지고 왔다는 것이다. 편지에는 “다음부터는 후원에 오지 마시오!”라고 적혀 있었다. 아버지는 의아하여 연유를 알고 싶으니 한번 오라고 일렀으나 저우쭤런 삼촌은 오지 않았다. 노부코의 칼이 얼마나 날카로웠던 것인가! 이리하여 아버지도 바다오완에서 쫓겨났다. (……) 어떤 루쉰 연구자들은 아버지께서 노부코가 목욕하는 것을 봐서 형제 사이가 나빠지게 되었다고 추측한다. 그러나 당시 바다오완 손님방에 살았던 장촨다오 선생의 말에 따르면 바다오완 후원은 창문 아래에 도랑이 있고 화초가 심어져 있어 사람이 접근할 수 없었다고 한다. (본문 118쪽)


상하이가 일본의 지배를 받던 시절, 곡물을 구하기 위해 암시장을 드나들던 이야기도 등장한다.

골목에는 둔탁하게 옷을 껴입은 소상인들이 자주 나타났는데, 그들이 입은 이중으로 된 면 옷 안에는 양식이 숨겨져 있었다. 구매자와 가격을 합의하고 나면 소상인은 슬그머니 주방으로 들어와 옷을 벗고 식량을 쏟아놓았다. (……) 어떤 때는 양곡 상점에서조차 잡곡가루나 옥수수가루만을 팔기도 했는데, 한 사람당 두 근으로 그 양까지 제한했다. 나와 여자 사촌들은 양식 사는 일을 맡았다. 우리는 문도 아직 열지 않은 이른 새벽에 양곡 상점에 가서 줄을 섰는데, 우리 앞에는 이미 양식을 사려는 사람들이 북적댔다. 한 사람이 여러 번 줄을 서는 것을 막기 위해 양식을 산 사람들은 손에 모두 보랏빛 염료를 묻혀야 했다. 그러나 일부 사람들은 염료를 묻히기 전에 유지를 손에 바르는 꾀를 생각해냈다. 그렇게 하면 손에 묻은 보랏빛 염료를 쉽게 씻어내고 다시 줄을 설 수 있었다. 잡곡가루를 더 사서 암시장에서 살 쌀값을 아끼는 것은 매우 큰 행운이었다. (본문 240쪽)

저자와 모친 쉬광핑은 국민당의 지배를 받고 있던 상하이를 탈출한다. 해방구로 향하는 배 위에서 사람들은 외국 라디오 방송을 들으며 공산당의 승리 소식을 기다린다.

옌안 방송국 외에도 런던의 비비시 영어 방송과 인도의 델리 방송을 들을 수 있었다. 비비시를 듣는 임무는 영어에 능숙한 환샹에게 주어졌다. 그는 뉴스를 듣고 난 다음 사람들에게 내용을 정리해서 전해주었다. 소식통이 더 생긴 것이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세계 각국이 중국 정세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고 있으며 세계 여론의 향배는 어떠한지 알 수 있었다. 그 시절에는 ‘미국의 소리’ 방송을 듣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당시 사람들에게 그 다섯 글자는 거짓말과 헛소리를 대표하는 말이었다. 가령 누가 거짓말을 하면 다른 사람들은 그가 ‘미국의 소리’를 방송한다고 말했다. (본문 357쪽)

루쉰의 가족들도 문화대혁명 당시 홍위병에 대한 공포에 떨어야 했다. 자본주의 냄새를 풍기는 물건들을 서둘러 없애고, 외출할 때마다 『마오 주석 어록집』을 챙기는 것도 중요한 일이었다.

어머니는 나에게 홍위병이 우리 집에 쳐들어와 조반造反하는 것을 어떻게 하면 피할 수 있을지 상의했다. 당시의 분위기에 따르면 이를 피하는 유일한 방법은 마오 주석 상像과 어록을 높이, 그리고 많이 다는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한순간에 우리 집 곳곳에 마오 주석 어록이 넘쳐났다. (……) 언제 닥칠지 모르는 화를 피하려고 라디오 부품, 전자관, 클래식 음반 등의 일상적인 물건들을 모두 나의 큰아들에게 건네 부수게 했다. 반나절을 때려 부수자 모두 조각으로 변했다. 아이들이 좋아하던 이야기책과 연속그림책, 외국 동화책들도 전부 고물상에게 팔아넘겼다. 아이들은 몇날 며칠을 슬퍼했다. 마당에는 겨울을 지키는 모란을 심어두었는데 모조리 뽑아버리고 해바라기, 옥수수로 바꿔 심었다. 어머니가 외출할 때마다 우리들은 어머니 가슴에 마오 주석 휘장이 단정하게 달려 있고, 『마오 주석 어록집』이 가방에 잘 들어 있는지 검사했다. 이는 집안사람 누구든지 책임지고 검사해야 할 일과였다. 우리 집에 면해 있는 거리의 벽은 원래 아무 장식도 없는 푸른 벽돌로 쌓아올린 벽으로 표어 하나 적혀 있지 않았다. 우리들은 혹시 혁명에 대한 경각심이 높은 홍위병이 의심을 하고 뛰어 들어와 물을까봐 재빨리 붉은 페인트를 사와서 “마오 주석 만세”라는 표어를 벽에 칠했다. (본문 491쪽)

쉬광핑은 루쉰의 자필 원고를 중앙문혁소조의 치번위가 가져갔다는 소식을 듣고 중앙에 문제를 제기하는 편지를 쓰다가 쓰러지고 만다. 저자는 쉬광핑을 급하게 베이징병원으로 옮겼으나 조반파가 쉬광핑의 병력카드를 없애버려 응급조치를 제대로 받지 못한다.

나는 어머니가 말씀하시면서 한 손으로는 주머니에서 뭔가를 찾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심장이 좋지 않다는 신호였다. 어머니는 초산 글리세린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황급히 한 알을 꺼내 어머니의 입에 넣어드렸지만 여전히 불편한 기색이었다. 나는 한 알을 더 드시게 하였다. 그러나 약도 병세를 완화시키지 못했다. 어머니는 몸이 의자에서 비스듬히 기울어지고 점점 아래로 미끄러지더니 바로 의식을 잃어버렸다. 링산 선생과 함께 어머니를 자동차에 모시고 어머니의 지정 국비 의료기관인 베이징병원 응급실로 달려갔다. (……) 그런데 환한 대낮의 커다란 베이징병원 응급실에 당직 의사가 하나도 없으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우리가 직접 바퀴가 달린 침대를 끌고 와서 길 가던 해방군 동지의 도움을 받아 정신을 잃은 어머니를 자동차에서 이동침대로 옮길 수밖에 없었다. 나는 여의사 하나를 찾아 빨리 응급조치를 취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그녀는 먼저 병력카드를 찾아야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대답을 했다. 그러나 병원의 접수실에는 어머니의 병력카드가 없었다. 어머니의 베이징병원 의료권은 일찌감치 조반파에 의해 주자파의 것과 함께 말소되어 베이징대학병원의 외래 진료실로 옮겨졌던 것이다. (본문 495~496쪽)

장칭이 노기등등하게 건물 안에서 걸어 나와 큰 목소리로 질책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들이닥쳐서 도대체 뭘 하려는 것이오? 내가 있는 곳에 와서 사람을 잡아갈 참이오? 분위기를 이렇게 험악하게 만들어도 되는 거요?” 푸충비 동지는 그녀에게 중앙의 명을 받고 루쉰의 자필 원고를 찾으러 온 것이며 중앙문혁의 비밀문서실에 원고가 있다는 자백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이 말을 들은 장칭은 더 화를 내며 소리쳤다. “자필 원고가 어떻게 내가 있는 곳에 있을 수 있단 말이오” (……) 얼마 뒤 나무 상자 네 개를 들고 나왔다. 모두 쇠사슬로 묶은 것으로 루쉰박물관에서 가져간 편지와 원고가 틀림없었다. 이런 움직일 수 없는 증거를 앞에 두고 장칭은 바로 화제를 바꾸어 “이 물건은 중요하지 않소. 마오 주석의 중요한 자필 원고가 다섯 권 있었는데 그걸 몽땅 잃어버렸소. 빨리 가서 찾아보시오”라는 소릴 늘어놓았다. (본문 504~505쪽)

저자는 일본에 유학하고 있던 아들 저우링페이(루쉰의 손자)가 갑자기 타이완 여자와 결혼하기로 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 된다. 저자는 공산당원 자격을 박탈당하고 아들과의 관계를 끊겠다는 성명서를 쓰도록 강요당한다.

당시 해협 양안은 일촉즉발의 긴장 상태에 놓여, 일체의 왕래가 금지되었다. 장남 저우링페이는 관직이 없는 일개 보통 국민에 지나지 않았지만 사람들이 주목하는 유명인의 후손이자 공산당원이었다. 이런 ‘특수 신분의 인물’이 ‘신분이 의문스러운’ 타이완 아가씨와 타이베이에서 결혼을 한 것이다. 당시 홍콩과 타이완 신문들이 말한 대로 해협 양안의 선을 넘어간 첫번째 사람이 되었으니 ‘지진’을 일으키지 않을 수 없었다. (……) “지금 나가자마자 바로 성명서를 하나 작성하시오. 저우링페이와 부자 관계를 끊겠다는 내용으로 말이오.” (……) 아들의 일이 터진 후 문건을 볼 수 있는 자격이 취소되었다. 공문서가 사라진 대신 괴상한 물건들이 내 책상 위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사흘이 멀다 하고 책상에는 홍콩에서 보낸 편지들이 그득 쌓였다. 어떤 때는 두꺼운 편지가 올라오기도 했는데 봉투에 적힌 발신자 이름은 늘 “편지 안에 자세히 적었음”이라고 되어 있었다. 글자체는 졸려하기 그지없고 봉투를 뜯으면 안에서 크고 작은 종이 쪼가리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어떤 것은 국민당의 청천백일기였고 어떤 때는 영문도 모를 매화 기호였으며 링페이가 타이베이에서 올린 결혼식 장면을 실은 기사도 있었다. 가장 웃기는 것은 여성의 누드 사진이었다. (본문 528쪽, 535쪽, 538~539쪽)

루쉰의 미망인 쉬광핑은 루쉰이 죽은 후 루쉰 저작에서 인세를 받으며 생활해왔다. 그런데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후 인세를 받는 것이 자본주의적이라는 비판을 받게 된다. 쉬광핑은 뒤늦게 인세를 학교에 기부하려고 했으나 거절당한다.

해방 후의 사회 관념도 변했다. 과거에 우리 모자는 아버지의 인세를 받아서 생활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해방 후의 법률은 유산 계승을 합법적인 것이라고 명문으로 규정하고는 있지만, 여론은 노동 없이 소득을 얻는 것은 자산계급의 사상에 찌들어 있다고 생각하여 부끄럽게 여겼던 것이다. (……) 가장 충격을 받았던 것은 우리가 학교에 기부를 하려고 하는데도 그것이 무슨 깨끗하지 못한 돈이라도 되는 양 거절당한 일이었다. (본문 574~575쪽)

다음은 반우파투쟁이 벌어지던 무렵, 마오쩌둥에게 루쉰이 살아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를 묻는 대목이다.

1957년 마오 주석이 상하이에 잠시 머물렀을 때 관례에 따라서 몇 명의 동향인을 불러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거기에는 저우구청도 있었고, 뤄 선생도 후난 사람이었기에 좌담에 참가했다. 당시는 반우파투쟁이 벌어지던 무렵이었기 때문에 화제도 자연스럽게 문화계 인사들의 행로로 모아졌다. 뤄 선생은 이 틈에 마오 주석께 대담한 질문을 하나 던졌다. “만약 루쉰이 살아 있다면 그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 마오 주석은 의외로 잠시 진지하게 생각하더니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나의 생각으로는 감옥에 갇혀 글을 쓰고 있거나, 아니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아무 소리도 않고 가만히 있었을 것 같소.” 걱정했던 질문에 대한 대답은 이렇게 엄혹했던 것이다.(본문 595~596쪽)


상하이의 뒷골목, 롱탕의 풍경

역사라는 거대한 문제에서 시선을 돌려, 1930, 40년대 상하이의 일상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는 것도 이 책의 매력이다. 외국에 개방되어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살았던 상하이의 골목 롱탕(弄堂--상하이의 골목을 롱탕, 베이징의 골목을 후통胡同이라고 한다)의 풍경, 롱탕을 차지하고 놀던 어린아이들의 모습, 화려한 음식들, 군것질거리, 도시락, 축구 경기, 라디오 조립, 유성기, 책방, 출판사, 병원, 민간 치료법, 영화관, 도박장, 목욕물 파는 사람, 소방관, 걸인, 동네 술꾼 등 수많은 사람들과 흥미로운 에피소드들이 등장한다.

롱탕의 아침은 시큼한 소 노린내로 가득했다. 그릇을 씻은 물이 빠지는 도랑에는 아주 두꺼운 황백색의 기름때가 떠다녔다. 우리 집의 우측, 여섯 가구 칠십여 명의 러시아인들이 사는 집에서 흘러나오는 것이었다. 이 집의 러시아 주부들은 매일 소의 경골, 토마토, 서양 고구마, 양파를 넣은 탕을 한 솥 끓인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발효된 기름도 넣는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러시아 스프 ‘보르시’이다. 당시 러시아인들은 자국에서 가져온 많은 양의 귀중품을 처분할 수 있어 주머니가 비교적 넉넉했다. 롱탕 입구에는 산둥 사람이 연 잡화점이 있었다. 주 고객은 러시아인이었고, 프랑스 교민, 유대인 등도 있었다. 상점 안쪽의 통로에는 절인 채소를 넣은 큰 통이 놓여 있었는데, 안에는 잘게 썬 양배추가 가득하고, 붉은 고추와 향엽도 있었다. 냉장고 안에는 쇠고기 소시지가 있고 토막을 낸 닭고기도 있었다. 부엌 창문에는 기름이 흐르는 누런 뱀장어 토막과 가시가 적은 생선 토막이 걸려 있었다. 가게 안에는 여러 색의 소시지가 걸려 있었는데, 밖에서 보면 굵기도 서로 달랐다. 보라색 막을 뚫고 비곗살이 튀어 나온 것도 있었다. (본문 204~205쪽)

우리 둘은 자주 커피가루를 사러 가는 임무를 맡고는 했다. 샤페이팡에서 동쪽으로 나가 골목을 벗어나 삼 분쯤 걸어가면 샤페이루에 위치한 카페 디디에스 옆에 커피 원두를 파는 가게가 있었다. 가게에서 꽤 떨어진 곳에서도 커피콩을 볶는 향기를 맡을 수 있었다. (……) 아버지는 커피에 관해서 그렇게 열성적이지는 않으셨다. 오히려 커피 마실 시간을 아껴 글을 쓴다는 말씀을 하신 적도 있다. 그러나 바진 선생과 몇몇 커피 애호가들의 경우에는 글도 술술 잘 나왔으니, 커피를 마시는 일이 자신이나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것은 아니었다. (본문 221~222쪽)

롤러스케이트를 샀는데, 거기에는 네 개의 작은 철바퀴가 달려 있어 감히 양쪽 발에 다 신을 수가 없었다. 그저 한쪽 발로만 딛고 앞으로 밀었는데, 그 ‘화아화아’ 하는 소리는 온 골목길에 울려 퍼졌다. 우리들이 너무도 신나게 노는 그 순간, 근처 2층 창문에서 한 남자가 큰 머리를 불쑥 내밀며 시끄럽다고 야단을 치기도 했다. 한번은 어느 나라 사람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양코배기 두셋이 큰 소리로 꾸짖었는데, 굴러가는 서양식 발음으로 중국어를 말해 사람들의 웃음보를 터지게 만들었다. 그들은 “저리 가! 저리 가! 시끄러워” 하면서 팔을 휘저었다. 그러나 우리는 기죽지 않았고, 하나의 놀이를 못하게 하면 바로 새로운 놀이를 시작했다. 소리는 오히려 더 커졌다. 깡통을 쌍방의 진지 가운데 놓고 공격과 수비로 나누어 멀리 찬 횟수가 많은 쪽이 승리하는 놀이를 하기도 했다. 깡통은 작은 고무공과는 달라서 남의 집 정원을 넘어가 돌려받지 못해도 억울한 생각은 들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었다. (본문 225~226쪽)


정보제공 : Aladin

저자소개

저우하이잉(지은이)

1929년 9월 27일 상하이, 중국의 대문호 루쉰과 그의 실질적인 아내였던 쉬광핑 사이에서 태어났다. 1936년 루쉰이 사망하고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기까지 성장기의 대부분을 일본군과 국민당의 지배를 받던 상하이에서 보냈다. 공산당이 베이징을 차지한 1949년, 화베이대학에 입학하여 혁명사상을 공부하고, 1950년에는 베이징 푸런대학 사회학과에 진학했으며, 2년 뒤에 베이징대학 물리학과로 편입해 공부했다. 1960년부터 중앙광파사업국에서 근무했고, 2003년에 광파전경전신총국의 부부장이 되었다. 전국인민대표대회 대표와 전국정협위원회 위원을 역임했고, 현재 베이징과 상하이에 있는 루쉰박물관 고문을 맡고 있다.

박자영(옮긴이)

연세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중국 화동사범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협성대학교 중국어문화학과에서 재직 중이다. 문화연구의 관점에서 현대 중국과 동아시아의 역사와 사회, 문화 현실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상하이의 낮과 밤』, 옮긴 책으로는 『루쉰전집14: 서신2』, 『루쉰전집4: 화개집·화개집속편』(공역) 등이 있다. 논문으로 「난민과 경계(境界)의 문제」, 「문화연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최근 중국문화연구에 대한 일 검토」, 「어떤 포퓰리즘의 귀환?: ‘소분홍’ 현상에서 ‘인민’ 담론으로」, 「루쉰의 귀신, 벤야민의 천사」 등이 있다.

서광덕(옮긴이)

연세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 후 동 대학원 석사, 박사과정을 졸업했다. 저서로는 『루쉰과 동아시아 근대』(2018), 『중국 현대문학과의 만남』(공저, 2006), 『동북아해역과 인문학』(공저, 2020) 등이 있고, 역서로는 『루쉰』(2003), 『일본과 아시아』(공역, 2004), 『중국의 충격』(공역, 2009), 『수사라는 사상』(공역, 2013), 『아시아의 표해록』(공역, 2020) 등이 있으며, 『루쉰전집』 20권 번역에 참가했다. 2025년 현재 부경대학교 인문사회과학연구소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정보제공 : Aladin

목차

목차
아버지에 대한 기억 = 7
다루신춘 9호 = 59
아화와 쉬마 = 76
아버지의 죽음 = 87
형제간의 불화와 바다오완의 집 = 116
젠런 삼촌의 결혼 = 132
주안 여사 = 155
배신하지 않는 친구 = 165
샤페이팡으로 이사 = 185
샤페이팡의 이웃들 = 204
체포당한 어머니 = 230
우리 집 세입자들 = 247
친구들 = 258
외가 친척들 = 273
상하이 지키기 = 287
해방 전후 = 307
해방구로 가자 = 336
선양에서 베이핑으로 = 365
공부 이력 = 399
혼인 = 431
어머니의 입당 = 448
진상 설명 = 462
루쉰 자필 원고 사건과 어머니의 죽음 = 493
마오 주석에게 편지를 쓴 전후 사정 = 514
맏아들 저우링페이의 혼사 = 527
아버지의 유산 = 567
못다 한 이야기 = 594
후기 = 598
옮긴이의 말 = 605
루쉰 연보 = 608
중국 근현대사 연표 = 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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