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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90 | ▼a 848.9 ▼b S251 2009 | |
| 100 | 1 | ▼a Lévy, Bernard-Henri, ▼d 1948- ▼0 AUTH(211009)90854 |
| 245 | 1 0 | ▼a 사르트르 평전 / ▼d 베르나르 앙리 레비 ; ▼e 변광배 옮김 |
| 246 | 1 9 | ▼a Le siècle de Sartre : ▼b enquête philosophique |
| 246 | 3 9 | ▼a Siècle de Sartre |
| 260 | ▼a 서울 : ▼b 을유문화사, ▼c 2009 | |
| 300 | ▼a 968 p. ; ▼c 24 cm | |
| 600 | 1 0 | ▼a Sartre, Jean-Paul, ▼d 1905-19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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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00 | 1 | ▼a 변광배, ▼d 1959-, ▼e 역 ▼0 AUTH(211009)49199 |
| 900 | 1 0 | ▼a 레비, 베르나르 앙리, ▼e 저 |
| 945 | ▼a KINS |
소장정보
| No. | 소장처 | 청구기호 | 등록번호 | 도서상태 | 반납예정일 | 예약 | 서비스 |
|---|---|---|---|---|---|---|---|
| No. 1 | 소장처 중앙도서관/제3자료실(4층)/ | 청구기호 848.9 S251 2009 | 등록번호 111540312 (16회 대출) | 도서상태 대출가능 | 반납예정일 | 예약 | 서비스 |
| No. 2 | 소장처 세종학술정보원/인문자료실2(2층)/ | 청구기호 848.9 S251 2009 | 등록번호 151276876 (2회 대출) | 도서상태 대출가능 | 반납예정일 | 예약 | 서비스 |
| No. | 소장처 | 청구기호 | 등록번호 | 도서상태 | 반납예정일 | 예약 | 서비스 |
|---|---|---|---|---|---|---|---|
| No. 1 | 소장처 중앙도서관/제3자료실(4층)/ | 청구기호 848.9 S251 2009 | 등록번호 111540312 (16회 대출) | 도서상태 대출가능 | 반납예정일 | 예약 | 서비스 |
| No. | 소장처 | 청구기호 | 등록번호 | 도서상태 | 반납예정일 | 예약 | 서비스 |
|---|---|---|---|---|---|---|---|
| No. 1 | 소장처 세종학술정보원/인문자료실2(2층)/ | 청구기호 848.9 S251 2009 | 등록번호 151276876 (2회 대출) | 도서상태 대출가능 | 반납예정일 | 예약 | 서비스 |
컨텐츠정보
책소개
사르트르라는 거물을 가졌던 시대, 희망과 환멸, 유토피아와 맹목이 한데 어우러졌던 시대, 그것도 우리들의 시대였던 지난 20세기를 가로지르는 책이다. 도대체 이 기념비적인 인물은 어떻게 해서 그 자신의 삶만으로 그처럼 동시대에 우뚝 솟아 있는 것일까? 그 어떤 철학적, 정치적, 문학적 사유로 그는, 소란과 열정으로 가득했던 그 시대를 그처럼 완벽하게 그 자신 속에 구현할 수 있었을까? 저자는 이 저서에서 이와 같은 수수께끼를 풀고자 한다.
또한 곧바로 또 다른 수수께끼가 떠오른다. 사르트르가 문제이다. 하지만 어떤 사르트르인가? <구토>에서 자유로운 인간으로 구현된 사르트르와, 이 소설의 뒤를 잇는 스탈린의 동반자로서의 사르르트 사이에는 대체 어떤 공통점이 있는가?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스탕달과 같은 모습을 보였던 사르트르와, 냉전시대의 투사였던 사르트르 사이에는 또 어떤 공통점이 있는가?
아주 일찍부터 전체주의에 반대하는 백신을 개발해낸 천재 철학자 사르트르와, 후일 이 백신을 자신에게 직접 주사하는 일을 소홀히 한, 그래서 사람들의 뇌리에 덜 기억되는 대사상가 사르트르 사이에는 대체 또 어떤 공통점이 있는가? 바로 이런 사실들로부터 다음과 같은 질문이 떠오른다. “어떻게 한 명의 지식인이 ‘악(惡)’에 굴복하는 것을 받아들임과 동시에 이 ‘악’을 사유하는 것이 가능한가?”
마지막으로 이 책은 지난 세기에 사르트르의 곁에 있었던 수많은 인물들과 수많은 사건들을 폭넓게 포괄하고 있다. 셀린과 지드, 베르그송과 하이데거, 헤겔, 니체 그리고 모택동주의자들, 참여와 비참여, 악마와 선한 신, 베네치아, 연극의 뒷무대, 제3세계와 카스트로. 이 모든 요소들은 우리의 근대성이 여전히 사로잡혀 있는 사상, 사건, 도전, 패배, 비극 등의 소용돌이를 이루고 있다.
《사르트르 평전》은 미우나 고우나 사르트르라는 거물을 가졌던 시대, 희망과 환멸, 유토피아와 맹목이 한데 어우러졌던 시대, 그것도 우리들의 시대였던 지난 20세기를 가로지르는 저서이다. 도대체 이 기념비적인 인물은 어떻게 해서 그 자신의 삶만으로 그처럼 동시대에 우뚝 솟아 있는 것일까? 그 어떤 철학적, 정치적, 문학적 사유로 그는, 소란과 열정으로 가득했던 그 시대를 그처럼 완벽하게 그 자신 속에 구현할 수 있었을까? 저자는 이 저서에서 이와 같은 수수께끼를 풀고자 한다.
또한 곧바로 또 다른 수수께끼가 떠오른다. 사르트르가 문제이다. 하지만 어떤 사르트르인가? 《구토》에서 자유로운 인간으로 구현된 사르트르와, 이 소설의 뒤를 잇는 스탈린의 동반자로서의 사르르트 사이에는 대체 어떤 공통점이 있는가?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스탕달과 같은 모습을 보였던 사르트르와, 냉전시대의 투사였던 사르트르 사이에는 또 어떤 공통점이 있는가? 아주 일찍부터 전체주의에 반대하는 백신을 개발해낸 천재 철학자 사르트르와, 후일 이 백신을 자신에게 직접 주사하는 일을 소홀히 한, 그래서 사람들의 뇌리에 덜 기억되는 대사상가 사르트르 사이에는 대체 또 어떤 공통점이 있는가? 바로 이런 사실들로부터 다음과 같은 질문이 떠오른다. “어떻게 한 명의 지식인이 ‘악(惡)’에 굴복하는 것을 받아들임과 동시에 이 ‘악’을 사유하는 것이 가능한가?”
마지막으로 이 책은 지난 세기에 사르트르의 곁에 있었던 수많은 인물들과 수많은 사건들을 폭넓게 포괄하고 있다. 셀린과 지드, 베르그송과 하이데거, 헤겔, 니체 그리고 모택동주의자들, 참여와 비참여, 악마와 선한 신, 베네치아, 연극의 뒷무대, 제3세계와 카스트로. 이 모든 요소들은 우리의 근대성이 여전히 사로잡혀 있는 사상, 사건, 도전, 패배, 비극 등의 소용돌이를 이루고 있다. 독자들은 아마도 이 소용돌이 속에서 이제는 마감된 한 시대의 웅성거림을 듣게 될 것이다. 또한 이 소용돌이 속에서 아마도 미래를 예견하는 시대적 힘의 방향을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왜 사르트르인가
이 책은 현재 프랑스를 대표하는 참여지식인이자 “BHL”이라는 애칭으로 널리 알려진 베르나르 앙리 레비(Bernard-Henri L?vy)의 Le Si?cle de Sartre (그라세 출판사, 2000)를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이 책은 평전(評傳)의 부류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보통의 평전과는 달리 이 책에서는 사르트르의 생애가 거의 다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 책의 특징은 오히려 사르트르의 사상과 문학에 대해 꽤 깊이 있는 연구가 병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아마 그런 이유로 레비는 이 책에“철학적 탐구(Enqu?te philosophique)”라는 부제를 붙였을 것이다. 따라서 굳이 규정을 한다면 이 책은 철학적 평전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이 책 이전에도 사르트르에 대한 평전은 이미 여러 권이 출간되었다. 프랑스에서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출간되었다. 이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주저하지 않고 사르트르를 20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인물로 꼽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20세기 지성사를 정리하면서 시앙스 포(Sciences Po) 교수 미셸 비녹(Michel Winock)은《지식인들의 세기Le Si?cle des intellectuels》(쇠유출판사, 1997)라는 저서에서 바레스, 지드와 더불어 사르트르를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3인의 인물로 꼽고 있다. 이 같은 점을 고려하면 이 책 말고도 벌써 사르트르에게 여러 권의 평전이 할애되었음은 별로 이상할 것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바로 이 같은 사실로 인해 우리는 이 책을 앞에 두고 한 가지 궁금증을 갖게 된다. 레비에게 사르트르의 평전을 집필할 만한 특별한 이유라도 있었을까? 이 같은 궁금증은 이 책에《사르트르의 세기》라는 제목을 붙이면서 레비가 프랑스의 20세기를 “사르트르의 세기”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더 커진다. 또한 레비가 이 책을 다른 해가 아니라 새로운 밀레니엄이 시작되는 해인 2000년에?새로운 밀레니엄이 2000년에 시작되든 아니면 2001년에 시작되든 그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출간했다는 사실 역시 우연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 같은 궁금증에 대해 피상적으로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답을 할 수 있다. 2000년이 사르트르 서거 20주년이 되는 해라는 것이 그 하나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10의 배수가 되는 해에 의미 있는 행사가 많이 치러진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책의 출간은 사르트르 서거 20주년을 기리기 위한 작업의 일환이라고 할 수도 있다. 실제로 2000년에 이 책을 포함해 사르트르에 대한 연구서와 다른 평전이 많이 쏟아져나오기도 했다. 또 하나는 새로운 밀레니엄이 시작되는 시점에서 레비가 사르트르의 부재를 내심 아쉽게 느꼈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세기말부터 새로운 세기로 접어드는 시점에서 프랑스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세계 곳곳에서 분쟁이 계속 발생하는 상황에서, 이 같은 상황에 대해 사르트르가 생전에 했던 것처럼 이른바 “쓴소리”를 할 세계적인 명망을 가진 인물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같은 피상적인 이유만으로는 레비가 이 책을 집필한 이유에 대한 궁금증이 충분히 해소되지 않는다. 이와 관련하여 역자는 레비로부터 직접 이 책의 집필 이유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지난 2005년 7월 프랑스 북서부 지역에 위치한 스리지 라 살(Cerisy-la-salle)에서 열흘 동안 개최된 사르트르 탄생 100주년 기념 국제 콜로키엄에서였다. 그때 레비는《아메리칸 버티고》라는 책의 집필을 위해 미국에 체류중이었다. 그 와중에서도 레비는 발표를 위해 미국에서 스리지 라 살로 직행했고, 그곳에서 세 시간 정도 머물다가 곧장 미국으로 되돌아간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 레비가 콜로키엄에서 한 발표 주제가 바로 이 책의 내용과 관련한 것이었다.
두 명의 사르트르
레비의 발표 제목은 <한 명 혹은 두 명의 사르트르 Un Sartre ou deux?>였다. 레비는 왜 이 주제를 택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이 책의 집필 동기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레비는 발표를 통해 이 책을 집필하게 된 동기가 사르트르에게서 발견되는 일종의 내적 모순이었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어떻게 한 사람이 그처럼 다른 모습을 보일 수 있는가? 어떻게 한 사람이 이것을 하고 또 저것을 할 수 있는가? 어떻게 한 사람이 그렇게 길이가 다른 주파수를 내보낼 수 있는가? 어떻게 한 인간의 내부에 그처럼 거대한 단절이 있을 수 있는가?
좀 더 구체적으로, 어떻게《구토》와《문학이란 무엇인가》를 쓴 사르트르가 모택동주의자들의 기관지《인민의 대의》를 지지하고 또 거기에 글을 기고할 수 있는가? 어떻게 이스라엘을 열렬히 지지하던 사르트르가 뮌헨 올림픽에서 이스라엘 선수단에 가해진 테러 행위를 지지할 수 있는가? 요컨대 사르트르라 는 동일 인물이 어떻게 절대 자유를 추구하고,《 존재와 무》와《구토》로 대표되며, 니체주의적 경향을 가진 개인주의 예술가 사르트르이면서 동시에 폭력을 선호하고,《변증법적 이성비판》으로 대표되며, 마르크스주의적 경향의 전체주의를 신봉하는 정치인 사르트르가 될 수 있는가? 이 같은 질문이 이 책의 출발점이라는 것이다.
이어서 레비는 이 같은 현상이 사르트르에게서 발생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주요 사건이 작용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첫 번째 사건은 제2차 세계대전중에 사르트르가 포로수용소에서 공동체를 직접 체험한 것이다.
실제로 사르트르는 여러 차례에 걸쳐 자신의 삶과 사상이 제2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완전히 다른 두 부분으로 나뉘었다는 사실을 밝힌 바 있다. 두 번째 사건은《변증법적 이성비판》의 출간에 즈음해서 사르트르 스스로 철학적으로 실패했다는 느낌을 가졌다는 것이다. 특히 헤겔과의 대결에서 사르트르가 패했다는 것이 레비의 견해였다. 세 번째 사건은 자전적 소설《말》의 출간과 더불어 사르트르가 문학에 이별을 고했다는 점이다. 문학에 대한 이별은 멀리는 라신, 가깝게는 랭보와 말라르메 등의 경우와도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처럼 레비는 이 책에서 이 세 가지 사건을 계기로 사르트르는 끝없는 자기 투쟁을 하게 되고, 현재의 사르트르가 과거의 사르트르를 부정하게 되었으며, 그 결과 사르트르는 한 명이 아니라 두 명이라는 결론을 내렸던 것이다.
그런데 이 같은 내용을 담고 있는 레비의 책이 2000년에 출간된 뒤, 사르트르 연구자들 사이에서 상당한 논란거리가 되었다(물론 이 논란에는 사르트르가 자신의 비서였던 베니 레비의 영향으로 말년에 유대교로 경사되었다는 내용도 포함된다). 물론 사르트르의 삶과 사상을 제2차 세계대전을 기준으로 두 부분으로 나누고, 그 두 부분 사이에 이른바“인식론적 단절”이 있느냐의 여부는 그에 대한 연구에서 항상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럼에도 두 명의 사르트르라는 레비의 주장에 대해 사르트르 연구자들의 비판이 거셌던 것은, 그 주장 속에 사르트르의 삶과 사상에 인식론적 단절이 있다는 점에 대한 인정뿐 아니라 그 두 명의 사르트르 가운데 한 명의 사르트르는 “선(善)”이고, 다른 한 명은 “악(惡)”이라는 이분법적 이해가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사실을 의식해서인지 2005년 7월 콜로키엄에서 레비는 이 책에서 펼쳤던 두 명의 사르트르라는 주장을 약간 완화하는 태도를 취했다.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기준을 중심으로 다시 검토해본 결과 결국 한 명의 사르트르만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두 명의 사르트르에게 공통으로 적용되는 몇 가지 요소가 있다는 것이다. 레비는 실제로 두 명의 사르트르에게 공통된 다음과 같은 네 개의 요소를 제시했다. 반휴머니즘, 반자연주의, 반역사주의, 역사적 비관주의가 그것이다.
레비가 보는 사르트르
레비에 따르면 우선 사르트르의 반휴머니즘은 인간 또는 인간 주체에 대한 선험적 정의가 존재한다는 견해에 반대 입장으로 설명된다. 그렇기 때문에 레비 자신을 포함해 들뢰즈라든가 투르니에 등과 같은 젊은 철학자들과 작가들은 1945년에 행해진 그 유명한 사르트르의〈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라는 연설 제목 때문에 아연실색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사르트르 사유의 핵심은 인간 존재에게는 먼저 어떤 정의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창조하면서 하나의 존재로 정립된다는 점에 있기 때문이다.
그다음으로 레비는 사르트르의 사상을 관통하는 요소로 반자연주의를 들고 있다. 사르트르가 보들레르와 마찬가지로 자연을 싫어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1966년에 사르트르가 일본을 방문해서 “회”를 한 점 맛보고 밤새 토하면서 괴로워했다는 일화는 널리 알려져 있다. 이처럼 사르트르는 인간을 특징짓는 부정성, 결여 등과 같은 개념에 의해 매개되는 상태를 자연상태보다 더 낫게 평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요컨대 사르트르는 자연, 날것, 순진함, 어린아이 등에 대해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대신 인간의 숨결이 배어 있는 인공적인 것과 성숙한 어른의 모습을 더 선호한다는 것이 레비의 주장이다.
레비가 제시하는 사르트르의 사상을 지배하는 또 하나의 요소는 반역사주의이다. 레비는 사르트르를 헤겔과 맞선 마지막 철학자로 여기고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사르트르는 변증법적 과정을 거쳐 절대지에 도달할 수 있다, 따라서 인류에 의해 형성된 역사의 총체성을 포착할 수 있다는 헤겔의 주장을 수용하는 한편, 그 총체성의 담지자로서의 개인의 내면성을 중시하는 키르케고르의 주장을 수용하기도 한다. 또한 헤겔 관념론의 결점을 보완하기 위해 마르크스를 동원했다는 것이 헤겔에 맞선 사르트르의 전략이라는 것이 레비의 견해이기도 하다.
레비가 지적하고 있는 사르트르의 사상을 관통하는 네 번째 요소는 역사적 비관주의이다. 이것은 그의 전기 사상을 대표하는《존재와 무》에서 후기 사상을 대표하는《변증법적 이성비판》에 이르기까지 한결같다. 《존재와 무》에서 인간 존재는 “신이 되고자 하는 욕망”, 즉 “대자-즉자”의 결합상태를 실현하려고 하는 기도(企圖)로 여겨진다. 하지만 이 같은 욕망과 기도는 궁극적으로 실패로 끝날 수밖에 없고, 바로 거기에 인간 존재의 비극적 속성이 자리한다는 것이 사르트르의 견해이다.《변증법적 이성비판》에서도 인간들은 “희소성”에 의해 지배되는 물질적 환경 속에서 자신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고, 그러면 서 무엇인가를 창조하고 또 그것을 바탕으로 “역사”를 만들어가야 하는 존재들로 여겨진다. 하지만 그들의 관계 역시 궁극적으로 서로가 서로의 죽음을 겨냥하는 “반-인간적” 관계로 귀착되고 말며, 따라서 그들의 손에 의해 만들어지는 역사 역시 비극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사르트르의 견해이다.
레비는 이 같은 네 개의 요소를 토대로 결국 두 명의 사르트르가 아니라 한 명의 사르트르가 있을 뿐이며, 바로 그 사르트르가 “자유의 길”로 우리 모두를 인도하는 지난 세기의 위대한 스승들 가운데 한 명이었다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레비가 이처럼 이 책의 출간 후 5년이 지난 상황에서 자신의 주장을 완화시켰다고 해서 이 책의 의의가 줄어드는 것은 결코 아니다.
레비는 이 책에서 두 명의 사르트르라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스피노자”와 “스탕달”이 동시에 되고자 했던 사르트르의 젊은 시절의 소원에서 시작하여, 그 소원을 실현해가는 과정을 면밀히 추적하고 있다. 우선 철학 분야에서는 사르트르가 베르그송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위해 후설과 하이데거를 원용했다는 사실을 부각시키고 있다. 또한 문학 분야에서는 지드의 그늘을 벗어나기 위해 사르트르가 프루스트, 셀린 등과 같은 프랑스 작가들을 위시해 포크너, 도스 패소스, 헤밍웨이 등과 같은 미국 작가들을 전략적으로 원용한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밝히고 있다. 요컨대 레비는 이처럼 우리가 알고 있는 현재의 사르트르가 되기 위해 그 자신이 직접 받아들이고, 거절했고 또 극복했던 철학자들의 지형도를 그리고 있다. 문학에서 이 같은 작업은 “상호텍스트성”이라는 용어로 지칭되는데, 이 같은 시각에서 보면 레비는 사르트르의 철학과 문학의 상호텍스트화 과정을 파헤치고 있다.
물론 이 방대한 책에서 레비의 작업은 거기에만 그치지 않는다. 레비는 사르트르의 최후 목표가 헤겔 철학의 극복에 있다고 본다. 물론 레비는《변증법적 이성비판》의 출간에도 불구하고 사르트르가 헤겔과의 마지막 전투에서 패하고 말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기는 하다. 또한 사르트르가 실제로 두 명의 사르트르 가운데 두 번째 모습을 한 사르트르가 된 것이 궁극적으로는 이 같은 헤겔과의 전투에서 패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레비의 주장이기도 하다. 물론 그 과정에서 사르트르는 보부아르라는 평생의 친구의 한결같은 도움을 받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 아롱을 위시해 카뮈, 메를로 퐁티 등과 같은 친구들과 논쟁에 휘말리기도 하며, 나중에는 그들 모두와 헤어지는 슬픔을 맛보기도 했다.
사르트르가 한 명의 사르트르이든 아니면 두 명의 사르트르이든,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사르트르의 모습이 형성되는 과정, 그 과정은 곧 20세기에 프랑스에서 형성된 지성사의 흐름과 거의 일치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같은 시각에서 보면 이 책은 단지 사르트르 개인의 평전이 아니라 20세기 프랑스를 관통하는 지성사의 생생한 기록이라고도 할 수 있다.
정보제공 :
저자소개
베르나르 앙리 레비(지은이)
‘BHL’이라는 애칭으로 더 유명한 그는 무엇보다 철학자다. 프랑스 고등사범학교에서 자크 데리다와 루이 알튀세르에게 철학을 배우고 24세의 나이에 철학교수 자격을 취득했으며, 스트라스부르대학교와 파리 고등사범학교에서 철학을 강의했다. 인간의 얼굴을 한 야만』 『자유의 모험』 등을 통해 70년대에 전체주의에 대한 증오와 자유에 대한 사랑을 바탕으로 한 소위 ‘신철학’이라는 사조를 창시해 일대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좌파와 우파, 서구 제국주의와 제3세계 군부독재, 부시와 사담 후세인 등을 싸잡아 공격하는, 그래서 종종 많은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그에게 성역이란 없다. 인간 자유를 억압하는 모든 이념이 그의 공격 대상이다. 그는 또한 저널리스트다. 젊은 시절, 알베르 카뮈가 창간한 잡지 《콩바》의 전쟁 특파원으로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등에서 활동했다. 그 이후로도 틈틈이 보스니아, 수단, 앙골라, 부룬디, 스리랑카, 콜롬비아 등 전 세계의 지역분쟁을 취재하여 신문에 기고하거나 『누가 대니얼 펄을 죽였는가』 등의 책으로 묶어내는 한편, ‘앙가주망’ 전통의 계승자답게 이에 대한 서구 사회의 적극적인 관심과 개입을 호소해왔다. 1990년대 모두가 침묵하고 있을 때 보스니아내전에 개입할 것을 국제사회에 가장 먼저 촉구한 지식인 중 한 명이며, 2003년 《월스트리트저널》 기자인 대니얼 펄이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에 의해 납치되었을 때는 미테랑 대통령 특사로 아프가니스탄을 방문하기도 했다. 그는 또한 소설가이자 영화감독이기도 하다. 첫 소설인 『머리 속의 악마』로 공쿠르상과 함께 프랑스의 대표적인 문학상 중 하나인 메디치 상을 수상했다. 이 책은 그해 프랑스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의 딸인 쥐스틴 레비도 소설가로 활동하고 있다. 한편 보스니아내전의 실상을 담은 다큐멘터리 〈보스나〉를 1994년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에 출품했고, 첫 극영화인 〈낮과 밤〉은 1996년 베를린영화제에 공식 초청되었다.
변광배(옮긴이)
한국외국어대학교 프랑스어과와 같은 학교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프랑스 몽펠리에 3대학에 불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외국어대학교 미네르바 교양대학 교수를 역임하고, 현재 프랑스 인문학 연구 모임 ‘시지프’를 이끌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존재와 무: 자유를 향한 실존적 탐색》, 《제2의 성: 여성학 백과사전》, 《사르트르의 ‘문학이란 무엇인가’ 읽기》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자살: 사회학적 연구》, 《지식인의 아편》, 《롤랑 바트르, 마지막 강의》, 《사르트르 평전》, 《레비나스 평전》(공역), 《데리다, 해체의 철학자》(공역), 《사르트르와 카뮈: 우정과 투쟁》(공역) 등 다수가 있다.
목차
목차 옮긴이의 말 = 6 머리말 = 16 제1부 "세기의 인간" 1. 사르트르의 영광 = 31 2. 스탕달과 스피노자 = 96 3. 지드와의 결별을 위하여 = 156 4. "독일계" 철학자 = 210 5. 하이데거 문제에 대한 설명 = 269 제2부 사르트르를 위한 공정한 재판 1. 실존주의는 반휴머니즘이다 = 321 2. 괴물이란 무엇인가?(전기적 파편들) = 389 3. 철저한 반파시스트 = 463 4. 비시 문제에 대한 설명: 저항운동가 사르트르 = 521 5. 사르트르와 지금 = 569 제3부 시대의 광기 1. 또 다른 사르트르 = 619 2. 한 지식인의 삶에서 볼 수 있는 실수의 관리 규칙에 대하여 = 678 3. 고백 = 726 4. 사르트르의 실패 = 782 5. 문학을 위한 무덤 = 844 에필로그 - 장님이 된 철학자 = 902 색인 = 95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