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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90 | ▼a 894.51133 ▼b M299 섬 | |
| 100 | 1 | ▼a Marai, Sandor , ▼d 1900-1989 ▼0 AUTH(211009)107805 |
| 245 | 1 0 | ▼a 섬 / ▼d 산도르 마라이 지음 , ▼e 김인순 옮김. |
| 246 | 1 9 | ▼a (A)sziget |
| 260 | ▼a 서울 : ▼b 솔 , ▼c 2009. | |
| 300 | ▼a 270 p. ; ▼c 20 cm. | |
| 700 | 1 | ▼a 김인순 , ▼e 역 ▼0 AUTH(211009)5697 |
| 900 | 1 1 | ▼a 마라이, 산도르 |
| 945 | ▼a KINS |
소장정보
| No. | 소장처 | 청구기호 | 등록번호 | 도서상태 | 반납예정일 | 예약 | 서비스 |
|---|---|---|---|---|---|---|---|
| No. 1 | 소장처 중앙도서관/제3자료실(4층)/ | 청구기호 894.51133 M299 섬 | 등록번호 111546535 (3회 대출) | 도서상태 대출가능 | 반납예정일 | 예약 | 서비스 |
| No. 2 | 소장처 세종학술정보원/인문자료실2(2층)/ | 청구기호 894.51133 M299 섬 | 등록번호 151282113 (1회 대출) | 도서상태 대출가능 | 반납예정일 | 예약 | 서비스 |
| No. | 소장처 | 청구기호 | 등록번호 | 도서상태 | 반납예정일 | 예약 | 서비스 |
|---|---|---|---|---|---|---|---|
| No. 1 | 소장처 중앙도서관/제3자료실(4층)/ | 청구기호 894.51133 M299 섬 | 등록번호 111546535 (3회 대출) | 도서상태 대출가능 | 반납예정일 | 예약 | 서비스 |
| No. | 소장처 | 청구기호 | 등록번호 | 도서상태 | 반납예정일 | 예약 | 서비스 |
|---|---|---|---|---|---|---|---|
| No. 1 | 소장처 세종학술정보원/인문자료실2(2층)/ | 청구기호 894.51133 M299 섬 | 등록번호 151282113 (1회 대출) | 도서상태 대출가능 | 반납예정일 | 예약 | 서비스 |
컨텐츠정보
줄거리
“인간은 선이 아니라 악을 통해 구원받는다.”
학식 높은 고매한 신사 빅토르 아슈케나시는 안정된 직장과 사회적 지위, 정숙한 아내와 귀여운 딸 등 외적으로는 남부러울 것 없어 보이지만, 내적으로는 삶의 의미와 비밀을 애타게 찾아 방황한다. 그러나 이 세상 그 무엇도 그의 공허한 마음을 채워주지 못하고, 갈구하는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길거리에서 러시아 출신의 무용수 엘리즈를 만난 후에, 지금까지 누려온 안온한 삶을 홀연히 뒤로한다. 낯선 여인 엘리즈는 아슈케나시에게 평범한 일상이나 인습이 아닌 비밀스럽고 특별한 뭔가를 의미한다. 아슈케나시는 그 낯선 여인과의 운명적인 만남을 통해 무의미하고 지루한 삶에서 탈출하여, 그토록 오랫동안 갈망하던 행복과 순수한 정열의 문에 이르길 기대한다. 그는 미련 없이 아내를 버리고 엘리즈를 선택함으로써 삶의 모든 물음에 대한 답변을 찾아 모험을 떠난다. 그러므로 낯선 여인과의 만남은 인생의 중반에서 뒤늦게 타오르는 사랑과 열정의 분출이 아니라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필사적인 열망의 표현이다. 그래서 엘리즈에게 아내가 되어달라고 하는 편지에서 부드러운 애정 표현을 한마디도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아슈케나시는 처음에 육체적인 사랑이 공허한 마음을 채워줄 수 있다고 믿는다. 엘리즈 곁에서 육체적으로 더 젊어지는 것 같고, 때로는 거의 행복하다고 느낀다. 그러나 그 열정은 결코 완벽한 만족감과 성취감을 선사하지 않고, 그토록 갈구하던 삶의 비밀로 인도하지 않는다. 엘리즈는 삶의 진실을 향한 모험에서 잠깐 머무르는 경유지일 뿐 안주할 수 있는 목적지가 아니다. 아슈케나시는 행복한 듯 보이는 몇 주일을 보낸 후에 유감스럽게도 아무런 대답을 얻지 못하고서, 처음 찾아왔을 때처럼 홀연히 엘리즈 곁을 떠난다. 아슈케나시의 절망적인 모험, 삶에 대한 회의는 결국 휴양지의 호텔에서 뚜렷한 동기 없이 한 여인을 살해하는 것에서 절정에 이른다. 이후 섬에 이른 아슈케나시가 신과 독대하며 쏟아내는 긴 독백은 고백을 넘은 도전이며 단연 이 책의 압권이다.
정보제공 :
책소개
헝가리의 대문호 <열정>의 작가 산도르 마라이의 장편소설. 자신에게 주어진 외적인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삶의 진실한 의미를 찾아 헤매는 중년 대학교수의 고백을 빌어 삶의 비밀과 존재의 불안을 파헤친다. 실존주의 문학의 선구작이라 불릴 만한 작품으로, 카뮈의 <이방인>, 사르트르의 <구토>에 앞서 인간 존재의 근원적인 불안과 부조리를 심도 있게 그려냈다.
학식 높은 고매한 신사 빅토르 아슈케나시는 안정된 직장과 사회적 지위, 정숙한 아내와 귀여운 딸 등 외적으로는 남부러울 것 없어 보이지만, 내적으로는 삶의 의미와 비밀을 애타게 찾아 방황한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길거리에서 러시아 출신의 무용수 엘리즈를 만난 후에, 지금까지 누려온 안온한 삶을 홀연히 뒤로하고, 삶의 모든 물음에 대한 답변을 찾아 모험을 떠난다.
카뮈의 『이방인』, 사르트르의 『구토』에 앞선
실존주의 문학의 선구작
20세기 유럽 문단의 풍성한 수확으로 평가받는 헝가리의 문호 산도르 마라이는 인생의 운명적인 전환점을 능숙하게 그려낸다. 『섬』에서는 자신에게 주어진 외적인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삶의 진실한 의미를 찾아 헤매는 중년 대학교수의 고백을 빌어 삶의 비밀과 존재의 불안을 파헤친다.
실존주의 문학은 1940~1950년대에 프랑스에 전개된, 실존주의 사상이 짙게 반영된 문학을 일컫는데 사르트르, 보부아르, 카뮈 등이 그 대표적인 작가이다. 합리주의적 인간관에 대한 의심, 삶에 대한 근원적 반성, 새로운 생존의 길의 모색 등을 보이는 모든 문학을 이 범주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실존철학과 창작활동을 긴밀히 연결시켰던 사르트르는 『존재와 무』(1943)에서 인간 존재의 우연성, 의식과 대상의 관계, 인간이 타고난 괴로운 자유, 타인과 나의 존재론적 관계, 일정한 상황 속에서의 주체적인 선택을 통해서 생성되어 나가야 할 우리의 운명 등에 관해서 이론적으로 설명했다. 카뮈는 『이방인』(1942)과 『시시포스의 신화』(1942)에서 이른바 부조리성을 부각시켰다. 인간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와 새로운 윤리의 모색을 시도한 이들의 문학을 ‘실존주의 문학’이라고 한데 묶어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프랑스 이외 지역의 작가로는 콜린 윌슨이나 그레엄 그린 등이 주목을 받아왔다.
실존주의 문학의 선구작이라 불릴 만한 산도르 마라이의 『섬』(1934)은 카뮈의 『이방인』(1942), 사르트르의 『구토』(1938)에 앞서 인간 존재의 근원적인 불안과 부조리를 심도 있게 그려낸다.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처럼 아슈케나시도 외부세계에 대한 무관심과 이질감, 존재의 갈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살인을 저지른다. 『섬』의 주인공 아슈케나시는 호텔방에서 형편없는 노래를 부른다는 이유로 여인의 목숨을 빼앗고, 뫼르소는 해변에서 태양이 눈부시다는 이유로 아랍인에게 총을 겨눈다. 두 사람의 영혼은 현실의 삶에 적응하지 못하고 자신만의 세계에 침잠하는 닮은꼴을 보인다. 인간 실존의 문제가 크게 부각하던 시기에, 『섬』(1934)은 『이방인』(1942)보다 8년 앞서서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를 예술적으로 뛰어나게 그려냈다.
삶의 비밀을 찾아서
“왜 만족은 존재하지 않는가?”
주인공 아슈케나시는 철저하게 고독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아내도 친구도 주변의 그 누구도 그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는 사회로부터 완전히 고립되어 절망적인 외로움에 갇혀 있다. 산도르 마라이는 이런 주인공의 내적 갈등과 심리적 흐름을 냉철한 분석과 심오한 성찰을 토대로 치밀하고 능란하게 묘사한다. 그와 동시에 자기 자신과 인간의 본성을 가차 없이 분석하는 주인공의 독백을 통해, 인간사회의 모습을 신랄하게 드러낸다. 특히 인간과 인간을 맺어주는 ‘말’에 초점을 맞추어 언어의 표현 가능성과 한계, 소문의 진원과 실상, 말과 현실의 괴리 등을 다양한 관점에서 예리하게 파고든다. 사람들은 흔히 안이하게 삶을 몇 개의 고정관념으로 표현할 수 있다고 믿지만, 말은 결코 현실과 일치하지 않는다. 진실을 표현하기에는 불충분하고 허점 있는 경우가 많다.
『열정』을 비롯한 다른 작품들에서처럼 이 소설에서도 마라이는 쉽게 접할 수 있는 진부한 소재에 진지하고 심오한 테마를 담아낸다. 삶에 불만을 품은 중년 남자의 방황과 외도는 인류사에서 이미 자주 일어났으며 또 언제든지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사고로써, 언론에 진수성찬을 마련해주고 호기심에 굶주린 사람들의 허기를 채워주는 사건이다. 이런 진부한 소재를 빌어 인간 존재의 무거움과 근원적인 결핍을 시적으로 뛰어나게 형상화시키는 것에서 마라이의 뛰어난 예술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소설은 마치 한 편의 연극처럼 시작한다. 주변 인물들이 먼저 등장하여 분위기를 한껏 조성한 후에, 끝으로 주인공이 등장하고 사건이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이렇듯 정교한 극적 구성, 현재와 회상이 교차하는 이중적인 구조, 입체적이고 치밀한 묘사, 생생한 어조, 간단히 말해 예술적 형식과 언어적 유희와 심오한 내용이 하나로 어우러져 심층적인 고도의 예술작품을 빚어내며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진한 여운을 남긴다. 『섬』은 산도르 마라이의 다른 어느 작품보다도 지적 독자들을 위한 독특한 글 읽기의 기회를 제공하고, 현대사회의 급속한 발전과 물질적인 현란함에 휘말려 자칫 삶의 중심을 잃고서 외면적인 삶의 노예가 되기 쉬운 우리에게 삶의 의미를 돌아보게 해준다.
왜 ‘섬’인가?
섬, ‘세상을 감지하는 최후의 신경’
아슈케나시가 삶에 대한 회의로 절망적인 모험을 한 끝에 찾아간 섬은 “여기 바다와 하늘 사이에서, 아슈케나시가 움찔거리며 세상을 감지하는 최후의 신경”이다. “이성이 등 돌린 그 공허한 세계가 무심하게 펼쳐진” 바다를 앞에 둔 섬에서 주인공은 신과 독대하며 인간의 부조리한 삶에 대한 끊임없이 질문을 쏟아낸다. ‘이성’ 이전의 세상(바다)에 우뚝 솟은 섬에서 ‘이성’의 편협한 어휘를 부정하면서도 ‘이성’의 언어로밖에는 자신을 설명할 수 없던 아슈케나시는 섬에 와서야 비로소 세상에 던질 수 없었던 존재에 대한 깊은 의문을 풀어내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왜 저를 속이셨습니까?”라고 절규한다. 경찰관에 잡혀 떠나는 아슈케나시 뒤로 “섬은 강렬한 햇살 아래서 선명하고 날카로운 윤곽을 드러”낸다.
‘섬’인가, ‘신’인가는 분명하지 않다, 아슈케나시가 절박하게 묻는 대상이. ‘이성’ 이전의 세계를 상징하는 ‘바다’에 한줄기 빛처럼 비추는 ‘섬’은 이 대답을 알고 있을까? 산도르 마라이는 이 책에서 이 모든 질문에 답을 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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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산도르 마라이(지은이)
1900년 독일과 헝가리 문화의 접합지이며, 1차 세계대전 후 체코에 귀속된 캇사에서 태어났다. 마라이의 아버지 집안은 작센에서 이주한 독일 계통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는 유년 시절부터 헝가리어와 더불어 독일어를 말하고 배웠다. 그리고 슬로바키아어도 약간 말할 수 있었으며, 당시 중부와 동부 유럽의 시민 계층에서 대부분 그랬듯이 프랑스어를 배웠다. 그가 대학 생활을 시작한 부다페스트는 당시 다른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급진적인 변화의 징조가 뚜렷했다. 군주제에서 좌익공화국으로, 그리고 다시 우익 호르티 정부로의 변화. 마라이는 눈앞에서 “모든 것이 붕괴한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그는 헝가리를 떠나 라이프치히의 신문학 연구소에서 강좌를 수강한 다음,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으로 옮겨 『프랑크푸르트 신문』에 독일어로 기고하기 시작했다. 귀족의 작위를 받은 작센-메렌-헝가리 시민 가문에서 출생한 마라이는 독일과 헝가리 양국의 언어에 능통했다. 1923년 잠시 베를린에 체류한 후, 그는 같은 고향 출신의 젊은 부인과 함께 파리로 이주했다. 그곳에서 그는 『프랑크푸르트 신문』에 계속 기사를 쓰는 한편, 유랑민과 같은 생활을 하면서 당대의 위대한 시인들의 작품을 읽는다. 그 가운데 그는 카프카·트라클·벤 등의 작품을 헝가리어로 번역한다. 카프카에 대한 헝가리 최초의 비평 역시 그의 손을 거쳐 1922년 『카샤우 신문』에 실린다. 1927년 그는 중동 여행기 『신들의 흔적을 좇아-여행 소설』을 출간한다. 그 후 그는 영영 잃어버린 조국애를 키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헝가리 말로 쓰기 위해 고국으로 돌아간다. 거기서 그의 왕성한 작가 활동이 시작된다. 서정시·산문·희곡 그리고 마라이의 장기라 할 수 있는 수상록 『가난한 이들의 학교』(1933), 『나라, 나라』(1945~1947) 등에서 그는 중부유럽의 상황을 선명한 필치로 절조 있게 논평하고, 타국에서뿐 아니라 헝가리에서도 드러나는 자신의 이중적인 이질감을 설명한다. 그리고 마라이는 『어느 시민의 고백』(1934)으로 성공을 거두어 유명해지기 시작한다. 당대의 저명한 한 비평가는 이렇게 말했다. “이 고독한 작가의 커져가는 인기를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그의 글 밑바탕에 웅크린 존재론적인 문제들 때문이 아닐까!” 마라이는 당시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영향을 미친 몇 안 되는 작가 중 한 명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이러한 성공을 뒤로하고 1948년, 고개를 쳐든 독재에 혐오를 느껴 헝가리를 떠난다. 게오르그 루카치가 그를 골수 보수주의자로 공격하면서 그는 숨막히는 질식감을 느낀 것이다. 처음에 그는 나폴리에 정착하지만, 1952년 뉴욕으로 이주한다. 그는 뉴욕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흥미 있는 도시, 사람이 살기에 적합하지 않아 애석하기 그지없다.” 마라이는 당시 미국 시민권이 있었지만 1968년에 이탈리아의 사례르노로 건너가 10년 이상 머무른다. 그러다가 다시 1979년 미합중국의 샌디에이고로 돌아간다. 이 무렵 역사·신화·성경에 관련된 주제를 비유적이고 함축적으로 다룬 소설들을 헝가리어로 집필한다. 마라이는 망명지에서뿐 아니라 헝가리에서도 전과 다름없이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헝가리의 독재 정권은 그의 책들을 금지했지만, 그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는 동시에 1943년에 시작한 일지를 1983년까지 계속 쓰는 한편(일지는 방대한 분량뿐만 아니라 내용상으로도 그의 작품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1931년에서 1947년 사이에 집필한 대하소설 『가렌의 업적』의 내용과 문체를 수정한다. 그의 망명 생활은 고독과 쓸쓸함의 연속이었다. 스위스에서 1년, 이탈리아에서 2년, 그가 증오한 뉴욕에서 15년, 다시 이탈리아, 그리고 결코 안식처가 될 수 없었던 마지막 거주지 캘리포니아 해안의 샌디에이고. 그는 그곳에서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이 낯설기만 한 타향에서의 고독이 때때로 유럽을 생각나게 하는 뉴욕에서의 상실감보다 견디기 쉬었다. 게다가 샌디에이고에서는 적은 수입으로 어떻게든 생활을 꾸려나갈 수 있었다. 마라이는 헝가리 망명 인사들의 모임에도 전혀 참여하지 않고, 헝가리 문인협회가 정치적인 화해의 표시로 발송한 초대장도 거절한다. 그리고 헝가리에서 자신의 희곡이 상연되는 것과 작품이 출판되는 것을 거부한다. 그의 고독을 대변해주듯 수상록 『하늘과 땅』(1942)에는 이러한 문구가 있다. “파스칼·횔덜린·니체를 파괴했듯이, 고독은 사람을 파괴할 수 있다. 그러나 유혹한 다음 무덤 속에 내팽개치는 세상에 아첨하는 것보다는 이러한 실패, 붕괴가 사색하는 인간에게 더 어울린다. …… 혼자 남아 대답하는 것……” 60년 이상 생을 함께한 부인이 죽었을 때 그는 오히려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녀와 완전히 하나다. ……그녀는 마치 독립된 개체가 아닌 것 같다. …… 그녀는 아름답다. 사멸의 아름다움은 청춘의 도도한 아름다움이나 완벽한 여성미보다 때때로 더 설득력이 있다.” 이렇듯 자신과 완벽하게 합일한 인간의 사멸에 대한 관찰은 동시에 자신의 죽음에 대한 신중한 준비라고 볼 수 있다. 게다가 부인에 이어 의붓아들마저 갑자기 세상을 떠났을 때, 그는 완전히 혼자 남았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상황을 반어적으로 표현했다. “그래서 나는 지루하지 않다.” 그러고 나서 그는 권총을 산 다음 경찰 강좌에서 무기 다루는 법을 배운다. 그의 고향은 그때까지 그를 계급의 적, 배반자로 칭했으며, 거의 40년 동안 그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와 그의 작품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런데도 그는 추호의 의심 없이 말했다. “어디로 떠밀려 가든지, 나는 항상 헝가리 작가일 것이다.” 그는 젊은 날 한때 독일어로 글을 쓴 적이 있었으며, 영어도 능숙하게 구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 지구상에서 잘해야 천만 명 남짓한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는 소수 민족의 언어에서 가능한 최대의 것을 얻어내는 데 자신의 사명이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어쨌든 우리에게는 독일어 번역들이 그의 예술의 한 가닥 빛을 전해주어 참으로 다행이다. 그는 지극히 아름다운 문장들로 시적인 깊이를 창조했다. 그 때문에 씌어진 지 60~7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그의 소설들은 선명함과 생명력, 슬픔과 사랑을 우리에게 안겨준다. 1988년 ‘전환기’가 예고되었을 때, 부다페스트의 출판사 세 곳에서 그의 대작을 출판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갑자기 깨어난 이러한 관심이 그를 움직일 수는 없었다. 그는 러시아 군대가 완전히 물러나고 자유로운 민주선거가 실행된 다음에야 자신의 작품을 출판할 수 있다고 고집했다. “문인협회라는 사람들이 집으로 전화해서 나와 내 책들의 기념비를 만들겠다고 한다. …… 모든 기념비 공동의 운명은 개들이 발치에 오줌을 눈다는 것이다.” 그는 어떠한 초대에도 응하지 않았다. 정치적인 전환기가 새로운 답변을 요구하기 직전인 1989년, 세상과 완전히 격리되었을 뿐 아니라 더 이상 글도 쓸 수 없게 된 마라이는 샌디에이고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89세의 그는 거의 한 세기를 헤아리는 자신의 삶을 권총으로 마감했다. 그는 죽음 앞에서도 자유로운 정신일 수 있는 권리를 주장한 것이다. 그의 죽음은 그가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는 날을 무려 41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기다린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그리고 그는 그의 부인처럼 자신의 유골을 태평양에 뿌려달라고 했다.
김인순(옮긴이)
고려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독어독문학과에서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고려대학교의 초빙 교수를 역임했다. 옮긴 책으로 프리드리히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파우스트』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프리드리히 폰 실러의 『도적 떼』, 지크문트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깊이에의 강요』, 산도르 마라이의 『열정』, 헤르타 뮐러의 『저지대』 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