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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천기 : 녹두 장군은 왜 실패했나?!

회천기 : 녹두 장군은 왜 실패했나?! (2회 대출)

자료유형
단행본
개인저자
윤백남 尹白南, 1888-1954 이승만 李承萬, 1903-1975, 그림 민병덕, 편
서명 / 저자사항
회천기 : 녹두 장군은 왜 실패했나?! / 윤백남 지음 ; 이승만 그림 ; 민병덕 엮음
발행사항
고양 :   정산미디어,   2013  
형태사항
270 p. : 삽화 ; 23 cm
총서사항
삽화본 특선 시리즈 ;17
기타표제
한자표제: 回天記
ISBN
9788993117295
일반주기
이 책은 1949년 4월 10일~1949년 9월 23일 '자유신문'에 139회 연재 장편소설 '회천기'를 저본으로 삼았음  
윤백남의 본명은 '윤교중(尹敎重)'임  
주제명(개인명)
전봉준   全琫準,   1854-18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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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정보

No. 소장처 청구기호 등록번호 도서상태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No. 1 소장처 중앙도서관/제3자료실(4층)/ 청구기호 897.35 윤백남 화 등록번호 111730943 (2회 대출) 도서상태 대출가능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B M

컨텐츠정보

책소개

'삽화본 특선 시리즈' 17권. 동학농민운동을 제재로 한 윤백남의 장편 역사소설. 동학군의 봉기부터 전봉준이 체포되어 처형되기까지를 그 내용으로 하고 있다. 작가 윤백남은 동학농민운동이 실패한 원인을 탐색하는 것이 현실적 의미가 있다고 판단하여 이 작품을 집필하게 되었다고 토로한다.

<해설> ‘회천기’의 현실적 의미
곽 근(동국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1.
윤백남의 ‘회천기’(‘자유신문’ 1949. 4. 10~1949. 9. 23)는 동학농민운동을 제재로 한 장편 역사소설이다. 동학군의 봉기부터 전봉준이 체포되어 처형되기까지를 그 내용으로 하고 있다. 윤백남은 동학농민운동이 실패한 원인을 탐색하는 것이 현실적 의미가 있다고 판단하여 이 작품을 집필하게 되었다고 토로한다. 당시의 현실은 어떠한가? 주지하다시피 한반도 남쪽에는 미군이, 북쪽에는 러시아군이 진주해 있는 상황이다. 그 영향하에 국토는 남북으로 분단된다. 뿐만 아니라, 부정부패가 만연하고 민생은 도탄에 빠져 있는 상황이다. 국가의 혼란과 위기라는 측면에서 동학농민운동 발발 시기와 해방공간은 흡사하다.
이러한 현실에 윤백남은 ‘현재의 구체적 전사(前史)’로서 동학농민운동을 작품화한다. 오늘의 현실에 교훈을 얻고자 ‘회천기’를 창작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전봉준의 회천대업이 실패한 원인을 어디서 찾는 것일까? 이 글은 이 점을 살펴보는데 주력하고자 한다. 이 점이야말로 이 작품의 진정한 가치를 말해 주기 때문이다.

2.
윤백남은 ‘회천기’를 집필하면서 인간 전봉준을 그리려 했음을 표나게 강조한다. 비록 관군에 체포되어 41세로 처형당했지만, 전봉준은 초인적 · 전설적 · 영웅적 인물로 알려져 있다. 작가는 그런 인물이 아닌 보다 인간적인 인물로 소설화한다.
전봉준은 과연 어떤 인물인가? 역사적 기록에 의하면 동학군들은 “장군은 참 영웅이지. 신출귀몰하는 재주가 있고 바람을 일으키고 비를 몰아오는 법술이 있으며 천하의 장사로서 세상에 다시없는 이인(異人)이다. 총검을 맞아도 죽지 않으며 조화가 비상하다.”고 말한다.
윤백남도 이를 일정 부분 인정하여 형상화한다. 그 결과 동학군의 총대장이 되어 탐관오리를 숙청하고, 보국안민의 대의를 밝히자는 목적하에 거의(擧義)하는 인물로 설정한다. 심리를 이용하여 동학군 속에 침투한 관군의 밀탐군을 찾아내고, 보부상으로 위장한 동학군을 관군에 투입시켜 전투를 승리로 이끌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행동은 보통 인간보다 의지가 강하거나 다소 지혜롭고 용기있는 모습일 뿐이다. 영웅도 이인(異人)도 아니며 법술을 터득했거나 신출귀몰하는 재주나 초인적 능력의 소유자는 더더욱 아니다. 신격화·영웅화의 소문을 오히려 ‘허무맹랑한 내용’이라고 강조한다.
그렇다고 비하하거나 과소평가한 것은 아니다. 인간적임을 강조할 뿐이다. 전봉준의 인간다움은 아버지의 빈소 앞에서 눈물을 뎅겅뎅겅 떨어뜨리는 여린 감정의 소유자로, 거사를 앞두고 아내에게 집문서와 토지 문건을 도장과 함께 내주는 가정적인 사람으로 묘사된다. 약자의 해방을 부르짖으면서도 음전이라는 계집종을 거느리고 살기도 한다. 고부읍을 공격할 때는 군수 조병갑의 체포에 실패하는가 하면, 서울의 정국과 국제 사정에도 어둡다.
관군에 체포되어 곧바로 사형에 처해지며 작품이 종결되는 것도 전봉준의 인간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춘 까닭이다.
사실(史實)로 그의 영웅적인 면모는 이때 드러난다. 관군은 체포한 전봉준을 일본공사관 감옥에 구금한다. 그의 재질을 아까워한 일본공사가 이용할 인물로 삼으려고 온갖 수단과 방법으로 협박하고 회유한다. 갖은 악형으로 고문하거나 높은 벼슬을 제시하기도 한다. 하지만 의연한 태도로 “구구한 생명을 위하여 살 길을 구함은 나의 본의가 아니다.”고 일축한다.
윤백남은 이러한 전봉준의 실제적인 면모 즉 초인적·영웅적인 면을 애써 외면한다. 그도 인간이므로 실수나 실패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그는 민중의 지도자로서 최선을 다했지만, 불리한 상황과 현실을 극복하지 못한다. 이것은 한 인간의 능력을 지나치게 믿거나 기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거사의 성패는 한두 개인에 의존할 성질이 아니고 여러 상황과 변수가 작용함을 암시한다.
이 작품에는 전봉준 외에 중요한 인물로 옥매라는 여성이 등장한다. 허구적 인물인 그녀는 ① 서울의 정계 동향과 국제 정세 및 군부 방면의 동정을 염탐하여 보고하고, ② 청국 군사의 도래가 임박함을 알려 주고, ③ 동학군의 장령이 되어 관군과 싸우며 군사를 통솔한다. 전봉준에게 서울로 직충(直衝)할 것을 주문하고, 일청 양국과 외교적 조종을 권하며 전략·전술까지 조언한다. 남자로서도 감당하기 힘든 일을 수행하는 등 다소 비현실적 인물로 등장한다.
이처럼 탁월한 재질과 능력이 있지만 옥매 역시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것은 전봉준과 마찬가지다. 어쩌면 작가는 훌륭한 조력자의 충언을 실천하지 못한 전봉준의 한계를 강조하기 위해 옥매를 설정했는지 모른다. 그녀의 말대로 서울로 직충했다고 성공을 보장할 수는 없지만, 뛰어난 지략을 갖춘 조언이니 승산도 있을 수 있다. 전봉준은 옥매의 조언을 실행하지 못하고 옥매는 전봉준을 끝까지 설득하지 못한다. 인간의 한계를 두 남녀를 통해 고스란히 보여 주려 한 것이다.
이미 언급한 대로 윤백남은 동학농민운동 당시와 해방공간을 국가적 위기라는 점에서 동일한 상황으로 인식한다. 따라서 전봉준의 실패를 거울삼아 해방공간의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고 본다. 이것은 해방공간에서 국가와 민족을 위해 투쟁하겠다며 나선 인물들, 가령 이승만 · 김구 · 여운형 · 김규식 등등을 떠올리게 한다. 이들도 초인이나 영웅이 아님은 물론 그들에 대한 지나친 기대는 금물이라는 것이다.

3.
‘회천기’에서 위정자들과 양반층은 한결같이 부정적 모습이다. 권세를 휘두르는 민씨 일파는 국왕을 농락하고 정권 유지에 급급한 나머지 세계 정세에 무지하다. 위정자들은 그릇된 판단과 상황 파악, 고루하고 안이한 생각과 매관매직으로 나라를 위태롭게 한다. 그 중에도 사리(私利)를 위한 파당과 정권 투쟁이 국가 멸망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윤백남은 강조한다.
국가의 총체적 혼란과 위정자의 부정부패로 민중은 실의와 도탄에 빠져 있다. ‘국가로서 받을 수 없는 굴욕을 받고 있는 형편이니 마땅히 상하가 협심 일체가 되어서 국권을 회복하고 착착 국력 부흥에 노력할’ 시기임에도 이에 역행하는 것이다. 따라서 전봉준의 거의(擧義)는 시의 적절하다. 그러나 민중은 거사를 외면한다. 물론 동학군이 고부성을 공격할 무렵에는 지지한다. 관리와 양반의 온갖 탐학에 시달려 오던 민중들은 드디어 때가 왔다고 환호한다. “어차어피 죽을 것이면 고기값이나 하고 죽세” 하며 적극적으로 동학군에 가담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열기는 점차 식어 간다. 그 원인 중 하나는 동학군의 정체성과 관계된 문제라고 볼 수 있다.
농민과 부랑패들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동학군은 전봉준의 거의(擧義)의 진정한 의미를 알 리 없다. 그들에게는 국가와 민족을 우선하는 거시적 안목보다 기초적 생계 유지를 위한 동물적 욕구만 있을 뿐이다. 그들의 행동은 무모하고 부화뇌동하며 도덕적 · 윤리적 모습도 기대할 수 없다.
동학군과 민중은 융화하지 못하고 점차 이반한다. 가담하는 민중의 수는 줄어들고 동학군이 어서 붕괴하기를 바라는 사람 수는 늘어난다. 이러한 문제점은 동학군의 전력을 약화시키고 민심의 이탈을 촉진한다.
전봉준과 장령간의 융화 단결의 실패도 거사 성공에 장애가 된다. 윤백남은 전봉준이 서울 정계의 실정을 제대로 파악하고 한양을 직충한 뒤 외교적 수완을 발휘했다면 거사는 성공했을 것으로 구성한다.
한양 직충은 장령이나 군장들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데 그 일이 용이치 않다. 그들 중 몇몇은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그 세력을 확장하기에만 급급하기 때문이다. 2차 기병 때는 손화중·김덕명·김개남 등이 전봉준을 배제한 채 동학군을 지휘한다. 최시형은 처음부터 전봉준의 기병을 탐탁히 여기지 않았던 터다. 지도부가 단결하지 못하고 이처럼 분열되어 있는 상태다.
장령들과 전봉준의 갈등은 정부가 집강소 폐해를 문제삼아 동학군을 공격할 때도 계속된다. 전봉준은 외국군과 정부군을 상대한 전쟁은 인명 상실만 초래할 뿐이라며 소극적으로 대처한다. 이에 반해 손화중 · 김개남 · 김덕명 등은 적극적이다. 마침내 손화중과 김덕명이 동학군을 총지휘하게 되고 그들 세력을 억제하기 위해 전봉준은 골몰한다.
전봉준의 명령 계통을 벗어나 행동하기는 황 노인도 마찬가지다. 그는 독자적으로 곽지훈을 운봉에서 기병케 하고 옥매로 하여금 나주를 습격하게 한다. 전봉준을 중심으로 장령들간에 일치단결하여 정부군과 대응해도 힘겨운 상황에서 동학군의 자중지란은 패배를 예견하기에 충분하다.
잠시였지만 남접과 북접의 갈등도 상당히 심각한 국면을 맞는다. 손병희에 의해 가까스로 수습되긴 했지만, 한때 손병희 · 김연국 · 손천민 · 황하일 · 배성천 등 북접이 남접인 전봉준과 서장옥을 사문난적이라고 죽이려 한 사건이다. “어느 때나 사람이 모이면 반드시 생기는 우리 조선의 통폐이었다.”고 화자를 통해 윤백남은 한탄한다. 이런 상황에서 전봉준의 일사불란한 지휘 체계는 기대하기 힘들다.
옥매와 곽 도령 · 황 노인 등 허구적 인물을 이런 차원에서 살펴볼 수 있다. 이들은 젊은 전봉준을 중심으로 여성 · 소년 · 노년으로 배치되어 있다. 확대하면 남녀노소의 전국민이 된다. 비록 현실적 성취는 못했지만 이들 즉 온 국민이 융화단결하여 위기를 극복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암시한다.
곽지훈의 오대조에 발생한 참혹한 사건도 해석에 따라서는 융화단결의 교훈을 전하려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 참변의 원인은 물론 육대조 할머니의 칼칼한 성품과 심한 질투심에 있다. 하지만 육대조(시어머니)와 오대조(며느리) 사이에 고부간 이상의 융화가 있었다면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여운을 남긴다.
여하튼 당시 절실한 것은 동학군 내부의 융화와 단결이다. 전봉준도 일찍이 단결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그 힘을 이용할 생각으로 동학당에 가입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동학군을 단결하는 데 실패한다. 그것은 회천의 실패로 이어진다.

4.
이 작품은 몇 가지 측면에서 매우 의미 있다. 먼저 해방 후 후속된 이 방면의 많은 소설들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채길순은 동학농민운동을 전편에 걸쳐서 다룬 작품과 부분적으로 다룬 작품을 모두 포함한 31편의 목록을 만든다(그 목록에 ‘회천기’는 빠져 있다). 이 중 중요한 작품으로 ① ‘전봉준’(최인욱, 1967), ② ‘혁명’(서기원, 1972), ③ ‘들불’ 상·하권(유현종, 1976), ④ ‘여명기’ 총3권(박연희, 1978), ⑤ ‘갑오농민전쟁’ 총6권(박태원, 1988), ⑥ ‘녹두장군’ 총12권(송기숙, 1994), ⑦ ‘동학제’ 총7권 (한승원, 1994), ⑧ ‘광화문’ 총7권(서기원, 1997) 등을 든다. ‘회천기’가 신문에 연재된만큼 이들 작품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가능케 한다.
다음으로 동학농민운동의 전모를 비교적 사실적 · 객관적으로 전해 주었다는 점이다. 6·25 이전에는 채만식의 몇 작품을 제외하고는 진지하게 동학에 접근한 경우가 없다. 대개가 동학농민운동 이후를 문제 삼아 그 본질을 외면하고 있다. 특히 신소설은 본래의 의미를 벗어나 있다. 이에 비해 ‘회천기’는 허구적 요소로 소설적 흥미를 더하면서도 역사적 사실을 전하는 데 소홀함이 없다.
무엇보다도 이 소설의 핵심은 전봉준의 거사 실패의 원인을 탐색하여 해방공간의 현실에 경종을 울리고자 함에 있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국가의 혼란과 위기는 초인이나 영웅에 의해서가 아니라, 남녀노소 상하가 융화 단결해야만 극복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 이것은 해방 후 민족지도자라고 자처하는 어떤 인물에게도 지나친 기대를 해서는 안 되겠다는 뜻이다. 아울러 국가와 민족이 분열되어서도 안 되겠다는 것이다.

녹두장군 전봉준 약전

전봉준(全琫準) : 1854~1895. 조선 말기 동학농민운동의 지도자. 초명 명숙(明叔), 별명 녹두장군. 전북 태인(泰仁) 출신. 전창혁(全彰爀)의 아들.
고부군 향교의 장의를 지낸 아버지가 민란의 주모자로 처형된 후 정부에 대한 원한을 품고, 또, 사회개혁의 뜻을 품게 되었다. 당시 점차 득세하던 동학에 입교, 고부 접주로 임명되었다. 한편, 운현궁에 은거중인 흥선대원군과 알게 되어 1년여 동안 출입하면서 귀족계급의 내정을 정탐하고, 또정권을 다시 잡으려는 대원군과 내통할 것을 계획하고 고향 고부로 돌아와 거사의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마침 고부군수 조병갑(趙秉甲)이 만석보 문제로 농민들과 알력이 있어 소란해지자, 1894년(고종 31년) 2월 15일 군내의 분노에 찬 농민과 동학교도를 이끌고 관아를 습격, 무기를 탈취하여 강탈당했던 세곡(稅穀)을 농민에게 배분하고 부패한 관원들을 감금하였다. 정부는 조병갑 등 부패 관리를 처벌하고 안핵사를 보내어 사태를 수습하게 했으나 민란의 책임을 동학교도에게 돌려 체포, 투옥하는 등 동학교도 탄압과 탐학을 자행하였다.
이윽고 보국안민의 슬로건을 내세우고 인근 각지의 동학접주들에게 통문을 보내어 궐기를 호소하였다. 고부에 인접한 태인, 무장, 금구, 정읍, 부안 등지의 동학교도와 농민들이 봉기, 고부 백산에 모여 금구, 부안을 점령, 전주를 향해 진격, 4월 28일 전주를 점령하였다. 그러나 정부의 요청으로 청군이 인천에 상륙하고 동시에 일군도 입국하여 국가의 운명이 위태롭게 되자, 정치를 잘하겠다는 정부의 선무(宣撫)에 응하기로 하고 12개 조목의 시정개혁에 대한 확약을 받고 휴전을 성립시켰다.
그러나, 본격적인 시정개혁이 실현되지 않아 재궐기를 계획하던 중 일본이 청일전쟁에서의 우세를 이용하여 침략행위를 노골화하자 이에 격분, 재봉기하였다. 전봉준은 남도접주로 12만의 병력을 지휘, 북도접주 손병희의 10만과 연합하여 교주 최시형의 총지휘하에 항일구국의 대일전을 시작했다. 한때는 중부, 남부 전역과 함남, 평남까지 항쟁 규모가 확대되었으나 관군과 일본군의 반격으로 패배를 거듭하였으며 공주에서 일본군과의 대격전 끝에 대패하고 10월 금구 싸움을 끝으로 종식되었다.
전봉준은 순창으로 피신, 동지들과 재기를 모의하던 중 지방민의 밀고로 붙잡혀 서울로 압송되어 동지들과 함께 1895년 3월 사형당하였다.

‘회천기’ 관계 학술논문
●동학농민운동 제재 역사소설 연구 : 윤백남의 역사소설 ‘회천기’를 중심으로 / 곽근, ‘반교어문연구’ 제28집(2010. 2), pp.439~463, 반교어문학회.
●한국현대소설과 동학 / 정호웅, ‘우리말글’ 31호, 2004. 8, pp.2~20.
●동학농민운동 소재 역사소설에 나타난 역사인식과 그 소설화양상 연구 /이주형, ‘국어교육연구’ 제33집, 국어교육학회, 2001. 12, pp.171~180.
●역사소설의 동학혁명 수용양상 연구 / 채길순, ‘한국문예비평연구’ 2(1998).
●윤백남 역사소설 연구 / 윤지경, 대구대 교육대학원, 1994. 2.<석사>
●해방직후 한국 장편역사소설 연구/ 임무출, 계명대대학원, 1992. 12.<박사>
●윤백남 역사소설 연구 / 송백헌, ‘논문집’ 39(1992. 8), pp.23~43, 충남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윤백남의역사소설고 / 박종홍, ‘국어교육연구’ 17(1985. 12), pp.103~126, 경북대학교사범대학 국어교육연구회.
●동학소설연구 / 최원식, ‘어문학’ 통권 40호, 1980.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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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윤백남(지은이)

1888~1954. 한국의 소설가, 극작가, 연극 영화인. 본명은 교중(敎重), 기타 미봉(眉峰), 태백남인(太白南人) 등. 충남 공주 출신. 어릴 때는 한학을 공부했다. 1903년 한성부로 올라와 경성학당 중학부 졸업, 1904년 일본으로 건너가 1906년 일본 와세다대학 고등 예과 졸업, 1910년에 동경고등상업학교를 졸업했다. 귀국 후 1911년 보성전문학교 강사로 근무했다, 매일신보 기자가 되어 문필 생활을 시작했다. 신파극 극단인 문수성을 창단하여 번안 신파극을 공연하고 배우로도 활동했다. 잡지사 반도문예사를 설립하여 월간 잡지 ‘예원’을 발간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1919년에 ‘동아일보’가 창간되자 입사하였고, 매일신보에 단편소설 ‘몽금’을 발표하였다. 연극론과 희곡을 발표하고 민중극단을 조직하여 자신의 희곡을 무대에 올리기도 했다. 1923년에는 한국 최초의 극영화 ‘월하의 맹서’를 촬영했다. 윤백남은 이 영화의 각본과 감독을 맡았으며, 민중극단 배우였던 이월화를 출연시키기도 했다. 영화 ‘운영전’, ‘심청전’ 등을 연이어 발표하였으나 흥행에 성공하지 못하자 1920년대 후반부터는 소설 창작에 몰두했다. 1930년에 동아일보에 연재한 ‘대도전’이 큰 인기를 끌면서 윤백남은 인기 작가 반열에 올랐다. 1930년대에는 야담 운동에 뛰어들어 많은 야담 작품을 발표했고, 1934년 10월 월간야담을 창간했으며, 1937년에 만주로 이주해 역사소설을 썼다. 1945년 8·15 광복 후 귀국하여 조선영화건설본부의 위원장으로 취임하였다. 1950년 6·25사변 중 해군 중령으로 복무, 1953년에는 서라벌예술대학 학장을 맡고, 1954년 대한민국예술원 초대 회원을 지냈다. 1954년 9윌 29일 6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연극, 영화, 문학 등 여러 분야에서 근대 문화의 발전에 중추적 역할을 한 인물로 평가된다. 장편 역사소설 ‘봉화’, ‘흑두건(黑頭巾)’, ‘해조곡(海鳥曲)’, ‘백련유전기(白蓮流轉記)’, ‘낙조의 노래’, ‘회천기(回天記)’,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 등과 희곡집 ‘운명’, 저서 ‘조선야담전집’, ‘조선형정사(朝鮮刑政史)’ 등이 있다.

이승만(그림)

1903~1975. 화가, 삽화가. 호는 행인(杏仁), 향린(香隣). 서울 출생. 서울 교동보통학교를 거쳐, 휘문고등보통학교 재학중 고희동을 알게 되어 그로부터 그림 지도를 받았다. 졸업 후 서울 종로 기독교청년회 내 고희동의 고려화회 소속 장발, 안석주, 구본웅 등과 같은 화우 문하생으로 수업을 하였다. 그 후 일본의 가와바타화학교(川端畵學校)에서 그림 공부를 하고 돌아와 조선미술전람회 서양화부에 제4회부터 연속 4회나 특선의 영예를 누렸다. 또, 신극단 토월회에 가입하여 무대 장치를 전담하였다. 1928년 매일신보 학예부 기자로 입사한 뒤부터는 신문연재소설 삽화를 전담하여 신문 삽화의 상징적 존재가 되었다. 특히 역사소설 ‘금삼(錦衫)의 피’, ‘임진왜란’, ‘세종대왕’ 등 연재소설에 풍속화풍의 삽화를 그려, 삽화계의 원로로서 만년에는 삽화가협회 회장에 추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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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선녀 화신(仙女化身) 2. 홍보 비책(紅褓秘冊) 3. 죽는 길로 4. 비 내리는 밤
5. 죽는 길 6. 전봉준은 일어서다 7. 고부 함성 8. 완병 접전(完兵接戰)
9. 인연의 실마리 10. 천우협(天佑俠) 11. 새로운 전략 12. 전주 함락
13. 국제의 풍운 14. 가련한 신세
◇ 전봉준 약력 ◇ 해 설 : ‘회천기’의 현실적 의미 : 곽 근 ◇ 윤백남 약력 ◇ 이승만 약력
◇ ‘회천기’ 관계 학술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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