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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의 비상 : 여성 한국광복군 지복영 회고록 (6회 대출)

자료유형
단행본
개인저자
지복영, 1919-2007 이준식, 정리
서명 / 저자사항
민들레의 비상 : 여성 한국광복군 지복영 회고록 / 지복영 지음 ; 이준식 정리
발행사항
서울 :   민족문제연구소,   2015  
형태사항
301 p. : 삽화 ; 23 cm
총서사항
여성독립운동가 시리즈 ;2
ISBN
9788993741124
일반주기
"자술 연보" 수록  
주제명(개인명)
지복영,   1919-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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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정보

No. 소장처 청구기호 등록번호 도서상태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No. 1 소장처 중앙도서관/제3자료실(4층)/ 청구기호 953.06309252 2015z1 2 등록번호 111741348 (6회 대출) 도서상태 대출가능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B M

컨텐츠정보

책소개

한국광복군 출신 지복영 회고록. 민족문제연구소가 기획한 '여성독립운동가 시리즈'의 하나로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 선생의 손부 허은 여사의 회고록 <아직도 내 귀엔 서간도 바람소리가>에 이어 두 번째로 빛을 보았다.

지복영 여사는 한국광복군 총사령관 지청천 장군의 막내딸로 3.1운동이 들불처럼 번져가던 1919년 4월 11일(음)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1924년 여름 다섯 살의 어린 나이에 어머니와 오빠를 따라 아버지가 망명해 있던 만주로 이주했다. 이때부터 1945년 해방이 되던 해까지 독립운동가와 그 가족들이 겪었던 역경과 신산한 삶이 회고록에 오롯이 담겼다.

손발이 부르트도록 황무지를 개간해도 끼니를 걱정해야 하며, 일본군과 비적이 횡행하고 밀정들이 염탐하는 불안한 환경에서 밤을 지새우기 일쑤였던 위태로운 나날들, 장티푸스로 죽을 고비를 넘겼던 일 등이 어두운 기억이라면, 어려서부터 고집스레 추구했던 향학열, 자연과의 교감, 국치일 기념식과 연극공연, 청년지사의 열정적 독립운동 등 자부심어린 추억에 이르기까지, 독립투사의 딸로 태어난 운명을 안고 여린 소녀가 '독립전사'로 성장해가는 과정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여성 한국광복군 지복영 회고록 <민들레의 비상> 출간
- 여린 소녀에서 독립전사로 성장한 장군의 딸


광복 70주년을 맞아 한국광복군 출신 지복영 여사의 회고록 <민들레의 비상>이 출간됐다. 이 책은 민족문제연구소가 기획한 ‘여성독립운동가 시리즈’의 하나로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 선생의 손부 허은 여사의 회고록 <아직도 내 귀엔 서간도 바람소리가>에 이어 두 번째로 빛을 보았다.

지복영 여사는 한국광복군 총사령관 지청천 장군의 막내딸로 3.1운동이 들불처럼 번져가던 1919년 4월 11일(음)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1924년 여름 다섯 살의 어린 나이에 어머니와 오빠를 따라 아버지가 망명해 있던 만주로 이주했다. 이때부터 1945년 해방이 되던 해까지 독립운동가와 그 가족들이 겪었던 역경과 신산한 삶이 회고록에 오롯이 담겼다.

손발이 부르트도록 황무지를 개간해도 끼니를 걱정해야 하며, 일본군과 비적이 횡행하고 밀정들이 염탐하는 불안한 환경에서 밤을 지새우기 일쑤였던 위태로운 나날들, 장티푸스로 죽을 고비를 넘겼던 일 등이 어두운 기억이라면, 어려서부터 고집스레 추구했던 향학열, 자연과의 교감, 국치일 기념식과 연극공연, 청년지사의 열정적 독립운동 등 자부심어린 추억에 이르기까지, 독립투사의 딸로 태어난 운명을 안고 여린 소녀가 ‘독립전사’로 성장해가는 과정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지복영 여사는 19세 되던 해인 1938년 말, 일본군을 피해 피난 중이던 중국 광서성 유주에서 항적선전(抗敵宣傳)에 참여한 것을 시작으로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1939년에는 한국광복진선 청년공작대에 참가했고, 1940년 한국광복군이 창군되자 자원입대하여 <광복> 잡지 발간, 적정 탐지, 광복군 초모, 대적 한국어 방송 등의 군사활동에 복무했다.

최근 천만 관객 동원을 바라보고 있는 영화 ‘암살’에서 친일파 저격수 안옥윤으로 분한 전지현의 열연으로, 여성 독립운동가에 대한 호기심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여성 광복군의 회고록이 출간되어 더욱 관심을 끌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여성독립운동가’ 시리즈 3편으로 독립운동가 김예진 목사의 아내 한도신 여사의 회고록을 곧 출판할 예정이다. 연구소 관계자는 “기존의 독립운동사가 지나치게 명망가 중심으로 사료에만 입각해 서술되고 있어 구체성과 생동감이 부족하다”고 비판하면서, “특히 여성들이 독립운동에 기여한 바가 큰데, 공적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뤄진 측면이 없지 않다”고 지적했다. 연구소는 문헌사학의 한계를 극복하고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 회고록 출간이나 생존 역사인물에 대한 구술조사사업을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벌여나갈 계획이다.

민들레의 비상-여성 한국광복군 지복영 회고록

비상하는 민들레에서 민족의 모습을 보다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오랜 기간의 작업 끝에 드디어 여성독립운동가 시리즈 두 번째 책으로 한국광복군 출신의 여성 독립운동가 지복영 여사의 회고록을 출간했다. 지복영 여사는 1919년 4월 일제강점기 항일무장투쟁의 거목이던 지청천 장군의 막내딸로 서울에서 태어나 망명한 부친을 따라 만주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나중에는 한국광복군과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활동했지만 해방 이후에는 평범한 아내와 어머니로서의 삶을 살다가 2007년 4월 8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이 회고록은 지복영 여사가 삶을 마감해야 할 날이 가까워졌다고 생각한 노년의 나이에 초고를 쓰기 시작한 이래 고치기를 거듭했지만 끝내 마지막 마무리를 하지 못해 제목도 붙이지 않은 ‘미완’의 육필 원고를 저본으로 한 것이다. 대학노트 세 권 분량의 육필 원고 가운데 마지막 원고에 각주의 형태로 약간의 보완을 한 것은 지복영 여사의 두 아들이다. 원래는 두 아들의 이름을 같이 올려야 하지만 아우가 한사코 형의 이름만 올리는 것이 좋겠다고 우겨서 큰 아들인 이준식의 이름만 정리한 이로 올렸다.
지복영 여사는 노년이 된 뒤 생전에 자신이 해야 할 일로 두 가지를 꼽았다고 한다. 하나는 부친인 지청천 장군의 삶을 정리하는 것이었다. 1995년 3월, 76세의 나이로 펴낸 <역사의 수레를 끌고 밀며: 항일무장독립운동과 백산 지청천 장군>이 바로 그 결실이었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지복영 여사는 늘 독립운동을 이끌던 지도자급 인물 못지않게 이름도 남기지 않은 채 독립운동의 일선에서 싸운 무명의 독립운동가들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지청천 장군과 함께 싸운 독립군의 집단적 기록으로 항일무장독립운동사를 쓰려고 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자신의 회고록을 남기는 일이었다. 특히 어렸을 때 만주에서 겪은 여러 가지 일을 바탕으로 고난 속에서도 민들레처럼 질긴 생명력을 발휘한 우리 민족의 역사를 정리하고 싶다는 것이 지복영 여사의 염원이었다. 아울러 회고록을 통해 언제나 삶의 버팀목이 된 어머니와의 추억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는 개인적인 바람도 갖고 있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어떤 어려움에 처하더라도 늘 올곧던 어머니의 모습이야말로 민족의 수난사와 투쟁사를 상징하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정리의 책임을 맡은 두 아들은 의논 끝에 지복영 여사가 회고록을 쓰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남긴 한 메모에 나오는 ‘민들레의 비상’을 미완의 회고록 제목으로 정했다.
이 책은 ‘1부 회고록’과 ‘2부 논설 기타’로 구성되어 있다. 회고록은 태어나면서부터 1945년 해방 직전까지의 기록이다. 2부에 실린 것은 한국광복군 기관지 <광복> 창간호(1941년 2월)를 통해 발표한 '대시대는 왔다, 한국 여동지들아 활약하자!'라는 제목의 논설을 비롯해 언론에 발표했거나 틈틈이 써놓은 논설, 한시, 편지 등 총 9편의 글이다. 말미에는 저자가 자신의 생애를 정리한 자술연보를 덧붙였다.

만주에서의 유랑생활

1940년 9월 17일 중경 가릉빈관에서 거행된 한국광복군 창립 전례식. 오른쪽 뒤편 네명의 여성 광복군 가운데 가장 키가 작은 이가 지복영 여사이다.

1924년 당시 다섯 살인 지복영은 어머니 윤용자, 오빠 지달수와 함께 봉천을 거쳐 아버지가 있는 길림시로 이주했다. 그곳에서 자신이 태어나자마자 서간도로 망명한 아버지를 다시 만난 것이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아버지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해 아버지 친구들의 장난에 속아 정작 아버지한테 “아저씨,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했다는 일화가 회고록에 나온다. 그러자 아버지가 친구들에게 역정을 내시고는 자신을 안아주었는데 아버지의 눈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고 한다.
길림시에 잠시 머물다가 액목현 황띠깡즈로 이사했다. 그곳에는 신흥무관학교의 후신 학교 가운데 하나이자 민족교육기관인 검성중학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빠도 검성중학의 학생이었다. 검성중학의 교장은 신흥무관학교 교장 출신이 여준 선생이었다. 지복영 여사는 검성중학 부설 검성학교에서 처음으로 민족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당시 소학교에는 책상과 걸상은 물론 교과서도 없어서 학생들은 마룻바닥에 앉아서 선생님이 칠판에 적어준 것을 갱지로 된 공책에다 일일이 베껴야 했다. 더하기와 빼기를 배울 때도 나뭇가지를 잘라 셈했고 때로는 그것을 놀이기구로도 사용했다. 오빠가 다니던 검성중학의 사정도 매한가지였다. 검성중학은 농사와 학과공부, 군사훈련을 함께 실시했다. 학과공부는 주로 오전에 했고, 오후에는 학교 공동 경작지에 나가 농사를 지었다. 군사훈련은 새벽이나 저녁시간을 이용했다.
황띠깡즈에서 잊지 못할 기억의 하나는 8월 29일 국치일 행사였다. 이 회고록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 가운데 하나도 바로 이 부분이다. 지복영 여사의 회고에 따르면 국치일에는 나라 망한 치욕을 잊지 말자는 의미에서 우리 동포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끼니를 걸렀다고 한다. 당시의 어떤 자료에도 나오지 않지만 당시 만주에서 살았던 사람만이 전할 수 있는 생생한 기록이다. 국치일이 되면 낮에는 학교 운동장에서 기념식을 거행하고, ‘국치의 노래’를 불렀으며 검성중학 학생들의 분열식과 격검 시범도 거행했다. 그리고 밤에는 강당에서 독립운동가 자녀들이 아버지를 찾으러 집을 떠난다는 내용의 연극 공연을 했는데, 지복영 여사는 오빠들의 가출을 만류하는 딸 역할을 열연해 관중석을 울음바다로 만들었다고 한다.
이후 10년간 지복영 여사의 가족(어머니, 언니 지선영, 오빠까지 네 식구)은 치거띵즈, 싸허즈, 충허, 주하현, 오상현 따스허와 샤오스허 등 길림성 일대를 전전하며 유랑생활을 이어갔다. 현지 중국인들의 텃세와 일제의 추적, 도적의 횡포 등 갖가지 이유로 한 고장에서 한두 해를 버티지 못하고 수십 차례나 이사를 다녀야만 했다.
그런 가운데서도 민족교육은 이어졌다. 특히 사허즈의 한얼학교에서는 신흥무관학교 졸업생으로 무장투쟁과 민족교육운동에 헌신하던 김창도 선생으로부터 큰 가르침을 얻게 되었다. 지복영 여사는 김창도 선생의 가르침이 어렸을 때부터 자신의 삶에 큰 영향을 주었음을 여러 차례 강조하고 있다.
지복영 여사는 만주에서의 체험을 통해 알 수 있었던 당시 한인동포들의 실상을 진솔하게 전한다. 개천절 때 동포들이 음식을 추렴해 마을잔치를 열었던 일, 충허에서 동포들이 합심해 강을 막아 수전개간에 성공한 일, 중국인 산적들과 대지주 사이의 무시무시한 싸움, 1931년 만주사변 뒤 중국 패잔병들이 벌인 갖은 악행, 동포들 사이에서 드러난 지역감정, 어려운 살림에 혼수를 줄이기 위해 동포를 사이에서 행해졌던 삼혼(三婚: 누이바꿈)이란 결혼관행 등 다양한 이야깃거리가 회고록에는 등장한다.

항일독립운동의 길에 나서다
지복영 여사의 만주 생활은 1933년으로 끝이 났다. 1933년 중국 관내의 북경으로 이주했기 때문이다. 지청천 장군은 이 해 대전자령 전투에서 악명높은 일본군 간도임시파견대를 대파하는 전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만주의 상황은 날로 악화되었다. 1931년 만주사변을 일으킨 일제는 1932년 만주국을 수립했다. 만주 전역이 사실상 일제의 점령지가 된 것이다. 국지적인 전투에서는 독립군이 여러 차례 승리했지만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독립군의 형세는 점차 불리해지고 있었다. 이에 지청천 장군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연락을 받고 자신이 이끌던 한국독립군의 간부들과 중국 관내로 이동했다. 지복영 여사가 만주를 떠나 북경으로 간 데는 부친의 동정이 큰 영향을 미쳤다. 어렸을 때 만주로 망명한 부친을 따라 만주로 이주했듯이 소녀기에도 중국 관내에서 독립운동을 벌이게 된 부친을 따라 북경으로 이주한 것이다.
북경에서는 독립운동가인 조성환 선생에게 중국어를 배웠고 중국인 소학교에 다니기도 했다. 그러나 북경에서의 생활도 오래가지는 못했다. 일제의 마수가 만주에서 북경에까지 뻗쳤기 때문이다. 독립운동가의 가족에게 언제 피해가 닥칠지 모르는 상황이어서 결국 다시 당시만 해도 일본군의 점령지역이 아닌 남경으로 이주했다. 그 뒤에도 상황의 변화에 따라 독립운동가들과 함께 호남성 장사, 광동성 광주, 광서성 유주 등지로 이동을 계속했다.
그리고 1938년 10월 유주에서 오광심 등 30여 명의 젊은이들이 항일선전활동을 벌일 때 지복영 여사도 동참했다. 만 열아홉 살의 젊은 나이에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에 투신한 것이다. 지복영 여사는 동지들과 함께 공공장소에 항일포스터를 부치고 길거리에서 일본을 타도하자는 구호를 외치는 등 선전공작을 전개했다. 또한 중국인 부상병들을 위문하는 연극공연을 실시해 중국인으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이러한 선전활동은 1939년 2월 한국광복진선 청년공작대의 출범으로 이어졌다.
지복영 여사는 이후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중경에 안착함에 따라 다른 독립운동가 가족들과 함께 중경으로 이동했다. 중경에서는 임시정부가 중국국민당과 교섭해 청년들을 유학생 자격으로 중국인 학교에 편입시켰는데 지복영 여사는 친구 조계림과 함께 제5중산중학(고등학교 과정)에 입학하게 되었다. 제5중산중학에 다닐 때 지복영 여사는 중국인 장학관이 귀화를 권유할 정도로 똑똑한 학생으로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독립운동가의 딸로 강렬한 민족의식을 갖고 있었기에 귀화 요구를 단호하게 거부했다고 한다.
이후 지복영 여사는 한국광복군에 창군 대원으로 참여했다. 지금도 그 해 9월 17일 중경의 가릉빈관에서 거행된 한국광복군 창립 전례식의 사진이 전해지는데 이 사진의 왼쪽 뒤편에 나오는 네 명의 여성광복군 가운데 가장 키가 작은 여군이 바로 지복영 여사이다. 이어 한국광복군 총사령부가 서안으로 이전하자 지복영 여사도 함께 이동했다. 서안에서 한 중요한 활동은 한국광복군의 기관지인 <광복>의 편집과 제작이었다. 그리고 1942년 4월에는 한국광복군 초모위원회 일원이 되어 김학규 장군, 오광심 등과 함께 중국군과 일본군의 전투가 벌어지던 최전선인 안휘성 부양에 파견되었다. 일제에 의해 끌려온 한인 병사들을 설득해 광복군으로 끌어들이는 초모공작은 1년 남짓 계속되었다. 이후 병 때문에 중경으로 복귀한 지복영 여사는 1943년부터는 중국방송국의 방송시설을 이용해 한인 학병들의 탈출을 권유하는 대적(對敵) 선무방송을 진행했다.
1945년 8월 해방이 되었지만 지복영 여사는 바로 귀국할 수 없었다. 지복영 여사뿐만이 아니라 중국 관내의 독립운동가들이 모두 한 동안 중국에 발이 묶여 있었다. 남한에 진주한 미군정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환국을 꺼렸기 때문이다. 1946년에야 귀국한 지복영 여사는 새 조국 건설에 헌신하고자 했으나 친일파가 득세하던 해방공간에서 임시정부와 한국광복군 출신들이 그랬듯이 주변으로 밀려났고 이후 서울대학교 도서관 사서, 부산화교중·고등학교 교사 등 평범한 삶을 살았다. 1990년 여사는 국가보훈처로부터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았고, 작고 후인 2012년 5월에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되었다.

지난 과거는 오늘의 삶에 발판이 되고 거울이 되어
<민들레의 비상>은 일차적으로는 26년간 만주와 중국 관내의 곳곳을 이동하면서 항일운동을 전개한 지복영 여사 가족의 기록이다. 그러나 이 책의 의미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이 책에는 1920년대 이후 만주 한인사회의 실상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온갖 역경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독립운동의 의지를 다지는 평범한 한인동포들의 삶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1930년대 후반부터 1945년까지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 가족들의 생활상이나 한국광복군의 창설과 활동 등에 관한 정보도 돋보인다. 무엇보다도 어렸을 때 이미 몇 번의 죽을 고비를 겪는 등 늘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으면서도 민족의식을 키워나갔고 그랬기 때문에 문학소녀와 음악소녀의 꿈을 포기하고 조국의 독립과 민족의 해방을 위해 주저없이 여전사의 길을 선택한 지복영 여사의 기개와 애국혼 그 자체가 소중한 기록이다.

오늘을 사는 우리들은 지난 일을 곧잘 잊어버리곤 합니다. 그러나 지난 과거는 그냥 흘러간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과거는 오늘의 삶에 발판이 되고 거울이 되어 앞날을 설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과거는 소중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 기록들을 남기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제시의 일기> 출판기념 축사에서)


정보제공 : Aladin

저자소개

지복영(지은이)

1919년 4월 서울에서 지청천의 막내딸로 태어났다. 1940년 9월 한국광복군이 창설될 때 여군으로 입대했다. 처음에는 광복군 총사령부 정훈처에서 기관지 &lt;광복&gt;을 편집하는 일을 하다가 1942년 4월부터 안휘성 부양에서 광복군을 모집하는 활동을 벌였다. 광복군 총사령부 비서를 거쳐 해방 직전에는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활동했다.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았다. 2007년 4월 8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 대전 현충원에 안장되었다. 2012년 5월 국가보훈처가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이준식(정리)

연세대학교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일제강점기 민족운동사를 전공했다. 연세대학교 연구교수, 친일재산조사위원회 상임위원, 성균관대학교 초빙교수,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 독립기념관 관장 등을 지냈다. 주요 논저로 『농촌 사회 변동과 농민 운동』(1993, 민영사), 『조선공산당 성립과 활동』(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09), 『일제 강점기 사회와 문화』(역사비평사, 2014), 『민족의 독립과 통합에 바친 삶 김규식』(역사공간, 2014), 『조선총독부의 일본어 보급 정책과 조선어 규제 정책』(동북아역사재단, 2023), 『일제하 사회주의 운동사』(공저, 한길사, 1991), 『지식 변동의 사회사』(공저, 문학과 지성사, 2003), 『일제 파시즘 지배 정책과 민중 생활』(공저, 혜안, 2004), 『일제하 지식인의 파시즘 체제 인식과 대응』(공저, 혜안, 2005), 『일제 식민지 시기 통치 체제의 형성』(공저, 혜안, 2006), 『남과 북을 만든 라이벌』(공저, 역사비평사, 2008), 『한국 근현대 인문학의 제도화』(공저, 혜안, 2014), 『한국 근대사 2: 식민지 근대와 민족 해방 운동』(공저, 푸른역사, 2016), 『분단 시대 앎의 체제』(공저, 혜안, 2016), 『한글의 사회문화사』(공저, 혜안, 2022) 등이 있다.

정보제공 : Aladin

목차

책을 펴내며 
일러두기 
차례 
제1편 회고록 
서장 
1부 들숨과 날숨 사이에서 
1. 출생 
2. 길림시 장명등의 길고 짧은 그림자 
3. 황띠깡즈에서 
4. 치거딩즈에서 어린 영혼의 외로움 
5. 싸허즈의 민들레와 뱀 
6. 충허에서-감당키 어려운 거센 물살 
7. 주하현에서 일년 살이 
8. 오상현의 따스허와 샤오스허―전화(戰禍)의 중압 
9. 중국 고도(古都) 북평에서 
10. 남경에서 
2부 산도 굽이굽이 물도 굽이굽이 
1. 남경 실함(失陷), 금륭비화(金隆悲話) 
2. 악록산의 불빛, 영산홍 
3. 산도 물도 굽이굽이-월계(奧桂) 양성(兩省)에서 
4. 안개의 도시 중경(霧都重慶) 
5. 고도 서안에서 
6. 부양에서 
제2편 논설 기타 
대시대는 왔다, 한국 여동지들아 활약하자! 
종군편린(從軍片鱗) 
한시 2수(首) 
무제 
『제시의 일기』 출판기념 축사 
노래에 얽힌 사연 
8?15 광복일을 맞아 일본인에게 보내는 편지 
편지 
신문 면담 어록 
자술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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