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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90 | ▼a 907.2 ▼b 2016 | |
| 100 | 1 | ▼a Grafton, Anthony ▼0 AUTH(211009)23174 |
| 245 | 1 0 | ▼a 각주의 역사 : ▼b 각주는 어떻게 역사의 증인이 되었는가 / ▼d 앤서니 그래프턴 지음 ; ▼e 김지혜 옮김 |
| 246 | 1 9 | ▼a The footnote : ▼b a curious history |
| 246 | 3 9 | ▼a Footnote : ▼b curious history |
| 260 | ▼a 서울 : ▼b 테오리아, ▼c 2016 | |
| 300 | ▼a 319 p. ; ▼c 21 cm | |
| 500 | ▼a 색인수록 | |
| 650 | 0 | ▼a Bibliographical citations |
| 700 | 1 | ▼a 김지혜, ▼e 역 ▼0 AUTH(211009)88619 |
| 900 | 1 0 | ▼a 그래프턴, 앤서니, ▼e 저 |
| 945 | ▼a KLPA |
소장정보
| No. | 소장처 | 청구기호 | 등록번호 | 도서상태 | 반납예정일 | 예약 | 서비스 |
|---|---|---|---|---|---|---|---|
| No. 1 | 소장처 중앙도서관/제3자료실(4층)/ | 청구기호 907.2 2016 | 등록번호 111760814 (14회 대출) | 도서상태 대출가능 | 반납예정일 | 예약 | 서비스 |
컨텐츠정보
책소개
학자들은 각주를 자신의 주장이 진실임을 증명하는 장치로 활용하고 있다. 특히 역사적 진실을 주장하려는 역사학자들은 자신의 서사를 각주로 지지하는 일에 더더욱 몰두한다. 각주는 역사가의 이야기를 경험적으로 뒷받침하고, 각주가 없으면 역사학의 명제는 찬사나 항의를 받을 수는 있지만 검증되거나 반증될 수는 없다. 각주는 역사학을 과학으로 만들고 역사학의 모더니티를 전통과 분리한다.
과학적 역사의 기호가 되는 각주라는 종의 기원은 흔히 19세기 독일의 역사학자 레오폴트 폰 랑케라고 여겨져 왔다. 랑케가 1824년 출판한 데뷔작 <라틴과 게르만 여러 민족들의 역사>에서 최초로 상부와 하부의 이원적인 구조로 역사를 서술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랑케가 처음으로 지면의 위쪽에는 중심 이야기가 있고, 그 아래 발치에는 그 중심 이야기를 지탱하는 사료를 비판적으로 제시하면서 부차적인 이야기를 형성하는 각주가 있는 근대적인 이중적인 서사로 역사를 이야기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와 같이 모든 범위의 사료를 비판적으로 검토해 각주로 붙이는 일은, 파리의 거리에서 시작된 더 요란한 혁명에 의해 1800년경 독일의 대학에서 촉발되었으며 기록보관소의 강제 개방을 이끈 지적 혁명의 일환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책 <각주의 역사>에서 저자 앤서니 그래프턴은 각주가 랑케에서 기원한다는 주장을 옹호하거나 공격하는 논의들 모두 한계가 있다고 지적하며, 흩어져 있는 연구의 가닥들을 연결함으로써 이제까지 서술된 적 없는 각주의 역사를 조명하고자 한다.
423개의 각주로 서술된 각주의 역사!
저자 앤서니 그래프턴은
수없이 도서관을 방문하고
희귀본 탐색을 통해 얻은 원사료를 통해
이 책을 완성!
학자의 각주 사용법,
학문적 엄정성의 모범이 되는 책!
학문적 표절이 만연하고
다양한 역사적 현안에 대한 합리적 토론이 부재하는
한국사회에 울리는 경종!
이 책 <<각주의 역사>>는
본문에 주변적인 것으로 간과되어 온 각주의 역사를 추적해
역사의 진실이 서술되는 형식이
어떻게 발전되어 왔는가를 명확히 규명한다.
각주는 왜 중요한가?
학자들은 각주를 자신의 주장이 진실임을 증명하는 장치로 활용하고 있다. 특히 역사적 진실을 주장하려는 역사학자들은 자신의 서사를 각주로 지지하는 일에 더더욱 몰두한다. 각주는 역사가의 이야기를 경험적으로 뒷받침하고, 각주가 없으면 역사학의 명제는 찬사나 항의를 받을 수는 있지만 검증되거나 반증될 수는 없다. 각주는 역사학을 과학으로 만들고 역사학의 모더니티를 전통과 분리한다.
각주는 언제부터 존재해왔는가?
과학적 역사의 기호가 되는 각주라는 종의 기원은 흔히 19세기 독일의 역사학자 레오폴트 폰 랑케라고 여겨져 왔다. 랑케가 1824년 출판한 데뷔작 <<라틴과 게르만 여러 민족들의 역사>>에서 최초로 상부와 하부의 이원적인 구조로 역사를 서술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랑케가 처음으로 지면의 위쪽에는 중심 이야기가 있고, 그 아래 발치에는 그 중심 이야기를 지탱하는 사료를 비판적으로 제시하면서 부차적인 이야기를 형성하는 각주가 있는 근대적인 이중적인 서사로 역사를 이야기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와 같이 모든 범위의 사료를 비판적으로 검토해 각주로 붙이는 일은, 파리의 거리에서 시작된 더 요란한 혁명에 의해 1800년경 독일의 대학에서 촉발되었으며 기록보관소의 강제 개방을 이끈 지적 혁명의 일환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책 <<각주의 역사>>에서 저자 앤서니 그래프턴은 각주가 랑케에서 기원한다는 주장을 옹호하거나 공격하는 논의들 모두 한계가 있다고 지적하며, 흩어져 있는 연구의 가닥들을 연결함으로써 이제까지 서술된 적 없는 각주의 역사를 조명하고자 한다.
랑케 이전에 각주는 어떤 모습이었는가?
그래프턴에 따르면, 각주가 가장 눈부시게 번성했던 때는 각주가 본문의 진실성을 뒷받침하는 것은 물론이고 본문의 서사에 대한 역설적인 언급으로도 기여했던 18세기 계몽주의 시대였다. 이 시대 각주는 비극의 코러스와 같은 역할을 했다.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는 불경스럽기로 정평이 나 있는 풍자적인 각주로 유명했다. 그런데 18세기 역사서술에서 각주가 급속히 확산된 데에는 각주가 이미 허구에서 유행하고 있었다는 점도 한몫을 했다. 신고전주의자 알렉산더 포프는 <<우인열전 집주판>>에서 각주를 이용해 자신의 시대의 끔찍한 우둔함을 풍자했고, 독일 작가 고트리프 빌헬름 라베너가 <<힝크마르 폰 레프코브의 텍스트 없는 주들>>을 출판했을 때, 각주는 심지어 그 자체가 풍자의 대상이 되었다.
이처럼 18세기에 각주는 이미 만연했고 그래프턴은 기번의 출판인에게 보낸 데이비드 흄의 편지를 증거로 기번은 새로운 기술의 발명자라기보다는 기존 기술의 대가로 여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제 그래프턴은 각주의 기원을 찾아 시간을 좀 더 거스른다. 결과적으로 그의 이 여정은 미래로 돌아가는 여정인데 그가 거기서 만난 역사가들의 역사서술은 시간적으로는 더 오래되었지만 비판적이고 근대적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과거 속의 미래에서 만나는 역사가 가운데 하나는 프랑스의 법률가 오귀스트 드 투이다. 1544년에서 1607년에 이르는 자기 시대 유럽의 역사를 직접 쓰기 위해 준비하고 있던 드 투는 특유의 방식으로 정확한 역사를 서술하겠다는 자신의 바람을 이루고자 했다. 그는 자신의 <<현대사Historia sui temporis>>의 첫 부분이 가편집 판본으로 나오자마자 유럽 전역의 학자들에게 책을 보내 자신이 이미 정리한 사실들을 확인하고 보완하기를 희망했다. 그는 모든 입장의 학자들을 동원해 세부사실을 고증했다. 그리고 이 고증에 있어 직접적인 증언의 권위를 존중했다.
그래프턴은 과거 속의 미래에서 교회사가와 호고가antiquary도 만난다. 17세기 독일 예수회 수도사 아타나시우스 키르허는 당대 중국 시안의 그리스도교의 무덤에서 출토된 9세기 비석의 명문의 진위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그 비석의 발견, 전사과정, 번역 등의 모든 것을 자신의 말이 아니라 자신이 사용한 사료의 말로 기록했다. 그의 <<중국의 비석>>은 교회사라는 역사 장르에서 엄격한 고증을 거친 역사를 보여 준다. 키르허는 또한 역사적 증거의 분명한 인용과 분석을 강조했던 또 다른 학문적 전통, 호고주의적 전통 안에서도 연구했다. 키르허는 로마에서 발견된 오벨리스크의 상형문자를 해독하기 위해서 오벨리스크의 흩어진 비문을 단 한 조각도 빠트리지 않고 재조립했고, 비문 전체와 각 부분들을 자신의 책에 그대로 옮겨 놓았다.
그러나 드 투도 키르허도 본문과, 각주라는 학문적 장치를 뚜렷이 구별해 역사를 서술하지는 않았다. 각주의 탄생에는 지적 유전자 풀의 한 가닥이 더 필요했다고 그래프턴은 주장한다.
데카르트적 정신으로부터의 근대적 각주의 탄생
그래프턴은 다시 한번 흄을 인용하면서, 역사학의 각주의 기원을 흄보다 한두 세대 전인 1700년이나 그 직전에서 구한다. 프랑스의 철학자 피에르 벨의 <<역사 비평 사전>>은 각주로, 심지어 각주에 대한 각주로 구성되었다. 이 책은 고대, 중세, 근대의 인물과 몇몇 장소를 다룬 역사 사전으로 그 모두는 어마어마한 참고문헌과 인용의 장치로 뒷받침되었다. 벨은 각주라는 장치를, 17세기 말의 지식인이라면 누구라도 직면했던 문제, 데카르트의 회의가 촉발한 지적 권위에 대한 독자의 의구심을 해소시킬 수 있는 확신을 제공하기 위한 프로토콜로 사용했다. 벨은 각주를 사용해 역사학의 명제, 역사학의 주장이 모든 관련 증거에서 도출되었음을 분명하게 보여주었고, 역사의 “확실성”은 비록 수학의 확실성과는 다르지만, “수학의 심오한 추상성”보다 훨씬 더 구체적이며 인간의 삶에 훨씬 더 잘 적용되며 심지어 “형이상학적 의미에서 훨씬 더 확실하다”고 주장함으로써, 역사학은 유익함과 엄격함에서 여행보다 나을 것 없는 유희에 불과하다는 데카르트의 주장에 답했다.
이렇게 더딘 실천의 역사를 통해서 17세기말 각주가 탄생했고, 19세기에는 표준적인 학문적 도구의 지위로 부상했다고 그래프턴은 말한다. 그는, 역사학의 각주의 탄생에는 랑케뿐 아니라 여러 세대의 역사가들이 관여했고, 각주는 역사가뿐 아니라 철학자까지도 포함하는 다양하고 재능 있는 이들의 집단 창조물이라고 결론짓는다.
각주는 어떻게 역사의 증인이 되는가?
각주는 이렇게 탄생하여 과학적이고 비판적이고 근대적인 역사의 증인이 되었다. 그렇다면 각주는 하나의 보편적인 역사를 가능하게 하는가?
그래프턴은, 과학적 역사 방법론을 통해 자신이 편집한 <<케임브리지 근대사>>의 기고문들이 그 방법과 내용을 봐도 기고자의 국적을 유추할 수 없기를 바란 액튼식의 역사는 바다가 레모네이드로 바뀔 때나 쓸 수 있을 만한 것이라고 여긴다. 그래프턴에 따르면 각주를 연구하는 일은, 예술로서의 역사를 과학으로서의 역사와 엄격히 구별할 수는 없다는 것을 이해하는 일이다.
이러한 역사 인식론적 자각을 한편에 두고, 그래프턴은 다른 한편 이렇게 문화적으로 조건 지워져 있고 오류의 가능성이 현저한 각주야말로 과거에 관한 진술이 확인 가능한 사료에서 도출되었음을 보증하고 그 진술을 신뢰해야 하는 유일한 근거를 제시한다고 주장한다. 역사가는 각주를 사용함으로써만 자신의 역사서술을 독백이 아닌 대화로 만들 수 있고 학문적 논쟁의 장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프턴은 또한 각주라는 학문적 장치를 사용한다는 이유만으로 역사서술의 진실성이 증명되지는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이 책 <<각주의 역사>>에는 거짓된 증언을 하는 여러 역사가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자신의 주장을 지지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사료를 왜곡하고 위조해 자신의 각주(를 비롯한 학문적 장치)에 인용한다.
20세기 초 독일의 저명한 역사학자 에른스트 칸토로비치는 신성로마제국의 프리드리히 2세를 예수와 동일시하는 역사서를 저술했다. 이 역사서는 나찌 표식을 단 채로 출판되어 곧바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칸토로비치는 신화를 사료로 하고 사료의 중요한 구절을 누락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주장을 지지하는 주석을 별도의 부록으로 발간했다.
17세기 초 리처드 화이트는 잉글랜드의 기원에 관한 20페이지 남짓한 본문의 서사를 100페이지에 가까운 미주로 지지했다. 화이트의 미주에 달린 사료는 브리튼인의 선조를 고대 트로이 왕자로 끌어올리는 위조된 사료였으며, 그가 이를 미주에 인용한 것은 잉글랜드의 역사의 고색창연함을 증명하고 국민적 자긍심을 북돋우려는 의도에서였다.
이렇게 각주는 그 자체로서는 아무것도 보증하지 않는다. 정직한 역사가는 각주를 사용하여 진실을 규명하려 애쓰지만, 반대로 또 누군가는 그 진실을 부정하기 위해 각주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지금 여기, 21세기 한국 사회에서 각주는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21세기 한국 사회는 학문적 표절에 둔감하고, 고대사 논쟁, 위안부 서술, 무엇보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등 첨예하게 대립하는 역사적 현안에 대한 합리적인 토론이 부재한다. 이러한 문제의 많은 부분이 학문적 엄정성에 대한 인식 부족에 기인한다고 여겨진다. 이러한 점에서 학문적 엄정성을 보증하는 최소한의 필요조건인 각주에 주목하는 일이 의미를 지닐 것이다. 올바른 각주가 지지하는 학문이야말로 지금, 여기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실마리를 제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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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앤서니 그래프턴(지은이)
프린스턴대학교 역사학 교수. 책과 독서, 학문과 교육과 관련한 다양한 주제에 대해 연구하는 지식사학자로, 르네상스 시대부터 18세기까지 고전 학문의 전통에 대한 독보적인 연구로 인정받고 있다. 근대 유럽의 문화사와 지성사에 대한 그의 연구가 집약되어 있는 이 책은 편지를 통해 근대 지식 공동체를 만들었던 위대한 학자들의 이야기에서부터 21세기에 혁명적으로 변화한 텍스트 생산과 소비의 메커니즘까지, 인류의 역사를 관통하는 지식의 흐름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시카고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에서 고대 역사학자인 아르날도 모밀리아노와 함께 연구했으며, 미국 역사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각주의 역사》 《시간 지도의 탄생》 《신대륙과 케케묵은 텍스트들》 등이 있다.
김지혜(옮긴이)
서강대학교 대학원 사학과에서 박사과정을 마쳤다. 현재 서강대학교, 한국기술교육대학교에서 영화와 역사를 주제로 강의하고 있다. 『시인을 체포하라』, 『주변부의 여성들』, 『혁명 전야의 최면술사』, 『세상을 바꾼 100가지 문서』, 『각주의 역사』, 『로마는 왜 위대해졌는가』, 『면화의 제국』 등의 역사책들을 우리말로 옮겼다.
목차
추천사 머리말 헌사 1장. 각주: 종의 기원 2장. 랑케: 과학적 역사에 관한 각주 3장. 역사가는 어떻게 뮤즈를 찾았을까: 각주에 이르는 랑케의 길 4장. 각주와 계몽사상가: 계몽주의의 간주곡 5장. 미래로 돌아가다 1: 드 투, 세부사실을 고증하다. 6장. 미래로 돌아가다 2: 교회사가와 호고가의 개미 같은 근면성 7장. 학식의 심연 속 명석함과 판명함 : 근대적 각주의 데카르트적 기원 에필로그: 몇 가지 결론적 각주 옮긴이의 말 찾아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