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세기 동아시아 변혁기에서부터 출발하여 개혁 입법의 등장 배경, 조선의 청사진, 실제 입법 과정 등을 종합적으로 다루고, 조선 전기 실록을 토대로 가장 빈도가 높았던 법리 논쟁 약 40여 가지를 바탕으로 시기별 변화상과 법전의 수록 상태를 비교 검토하는 방식으로 법치국가 조선의 면모를 종합적으로 드러내는 책이다.
조선의 국법체계를 살펴보기 위해서 이 책은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접근한다. 제1부 '법치주의 국가의 탄생 배경'에서는 입헌주의 운동의 정치사상적 배경과 국법체계의 형성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 구체적으로 1장은 고려 말의 개혁 과정과 조선의 사상적 지향, 2장은 법제서의 편찬 과정이나 중국법과 아국법(我國法) 등에 대해 다양한 시각에서 접근한다.
또한 제2부 '사법 개혁의 지향점'에서는 실록을 중심으로 태조-명종대 주요 입법 논의를 살펴봄으로써 국법체계의 성격에 대해 검토한다. 3장에서는 형정의 체계화를, 4장에서는 사회윤리 체계의 변동을, 5장에서는 사회경제구조의 재편을, 6장에서는 국가조직의 재정비를 각기 세분화하여 살펴본다.
명실상부한 법치국가 조선의 진면목을 밝히다
서구적 잣대에 의해 폄하된 동아시아 법치주의 전통의 일면을 복원하기 위한 진일보한 연구
20세기 이래 서구의 근대 학문 체계가 수용되면서 국내 학계에서는 서구의 가치 체계가 중요한 시금석으로 활용되었다. 동아시아의 연구자들이 바라본 전통은 같은 시기 서양의 학자들이 자신들의 중세를 바라보는 시선보다도 차갑기 그지없었다. "과학적"이라거나 "근대적"이라는 이름하에 자행된 수많은 평가는 사실 대단히 주관적이고 선험적인 결론에 지나지 않았다. 이러한 연구 방식은 앙시앵레짐(구체제)에 대한 비판을 위한 관점에서는 유용하지만, 역사적 진실을 규명하고 시대상을 복원하는 데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방법이었다. 동아시아 유교 문화권의 국가들은 전통 시대의 효과적인 통치 수단으로 법가의 사상을 다소 변형한 유교적 법치(法治)를 채택해왔다. 그러나 19세기 말 서구 문명화의 절대적인 척도하에서, 동아시아 유교 문화와 법치주의 전통은 한결같이 근대에 미치지 못한다고 폄하되면서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였다. 하지만 서구의 근대화 시점으로부터 불과 1-2세기 전만 하더라도 동양의 관료제 등 유교 정치체제는 서구의 이상적인 국가 모델로 인식되었을 뿐만 아니라 유럽 계몽주의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사실을 미루어보면 기존 평가는 모순이 아닐 수 없었다. 적어도 서양과 동양에 동일한 잣대를 적용하는 것이 연구에 있어서 최소한의 기초일 것이다.
이 책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조선의 국법체계의 기원과 형성을 규명해보고자 하는 시도이다. 그동안 전통 시대 법에 대해서는 대개 범죄와 처벌을 중심으로 하는 형정 연구가 일반적이었으며 국가의 법체계 전반에 대한 실증적 연구는 거의 시도되지 못하였다. 그동안 간헐적으로 이루어진 법전에 관한 담론 연구들은 역사적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피상적인 접근이 많았을 뿐 아니라, 『경국대전』을 근대법 기준에 입각하여 행정법 정도로 치부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이 책은 14세기 동아시아 변혁기에서부터 출발하여 개혁 입법의 등장 배경, 조선의 청사진, 실제 입법 과정 등을 종합적으로 다루고, 조선 전기 실록을 토대로 가장 빈도가 높았던 법리 논쟁 약 40여 가지를 바탕으로 시기별 변화상과 법전의 수록 상태를 비교 검토하는 방식으로 법치국가 조선의 면모를 종합적으로 드러낸다.
조선의 국법체계에 대한 자료 중심의 기초 연구에서 심화 연구로의 도약을 꾀하고 있는 이 책은 향후 전통과 근대, 서양과 동양의 학문 간 소통의 장을 마련하고 장차 동아시아 문명에 대한 올바른 이해의 방향을 제시하기 위한 중요한 출발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통치는 법에 근거한다"
법치국가 조선의 특징
조선은 성문법에 기초하여 국가 체제를 운영하였다. 국초부터 『경제육전』을 편찬하여 국가의 모든 운영 규정을 "국법(國法)"에 명문화하고자 노력하였다. 이후 약 1세기간 오랜 검토 끝에 보다 거시적인 틀에서 조선의 전반적인 체제를 규정하는 『경국대전』이 반포되었다. 이로써 조선은 명실상부한 "법치주의 국가"가 되었고 모든 통치는 법에 근거하였다. 세월이 흐르면서 변화된 사안에 대해서는 기존의 법제도에 반영시켜야 할 필요성이 대두하였으며, 법치주의를 원칙으로 내세웠기 때문에 새로운 규정 역시 국법에 명시하는 전통이 지속되었다. 그래서 『대전속록』, 『대전후속록』 등의 후속 법제가 편찬되었으며, 『경국대전주해』와 같이 『경국대전』의 내용을 더욱 명확하고 상세하게 이해하기 위한 노력도 지속되었다. 이를 계기로 15세기 말-16세기에 『경국대전』을 중심으로 하는 국법체계가 일정하게 구현되었다.
또 후왕(後王)은 조선의 국법에 대한 수정을 함부로 할 수 없었다. 오직 조정의 치열한 법리 논쟁을 거칠 때만 추가로 개정이 용인되었다. 이는 『경국대전』 체계가 조선을 움직이는 근간이며 국왕은 열성(列聖)의 법제 내에서 국가를 통치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조선왕조의 장기 지속은 "법의 안정성", "법에 의한 통치"를 당연한 상식으로 정착시켰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후왕들은 통치의 정당성을 높이고자 끊임없이 자신의 수교(受敎)를 '대전(大典)'의 체계 속에 편입시키고자 노력하였다. 국왕은 법 위에 군림하기보다는 공고한 국헌(國憲)의 수호자로서 자리매김하였다. 조정의 법치주의 원칙이 확고할 때 백성의 지지 기반을 확고히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국왕의 통치 명분도 한결 강화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 국법체계의 성격 규명과 동아시아 국법체계의 이론 모델에 대한 모색
이 책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의문과 목표를 바탕으로 출발하였다.
첫째, 법원(法源)의 규명이다. 사실상 조선 후기에 편찬된 『수교집록』, 『전록통고』, 『신보수교집록』, 『속대전』, 『대전통편』 등에 대한 기초적인 연구만으로는 입법 취지와 그 실용성에 대해 가늠하기는 어렵다. 법전들이 18세기에 최종 편찬되었다고 할지라도 그 법원이 조선 전기 혹은 고려 말까지 소급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우 수교가 최초 입안된 시대 상황에 대한 이해 없이 그 취지를 완벽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둘째, 축조(逐條) 성격이다. 법조문은 당대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인가? 아니면 '미래'의 이상적인 사회상을 천명하는 것인가? 혹은 이미 사문화된 채 빛바랜 '과거'를 형상화하고 있는 것인가? 하지만 입법 취지는 한 세대만 지나도 변질되거나 잊혀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며, 동일한 조문에 대한 이해 방식도 시대별로 천차만별이다. 대부분의 법전은 과거, 현재, 미래 등의 면모를 중층적으로 지니고 있다. 그러나 그동안의 조선 전기 법전 연구는 대개 『경국대전』 조문 자체에 의지하여 조선왕조의 성격을 규명하고자 했다. 입법 논의 과정에 대한 고찰 없이 확정된 법조문만을 토대로 한 분석은 당대 현실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였다.
셋째, 동아시아 국법체계의 이론 모델에 대한 모색이다. 이상의 법원과 축조 성격에 대한 논의를 종합해본다면, 서구의 근대적 시각에서 벗어나 유럽의 근대 이전에 이미 유구한 입법 전통을 갖고 있는 동아시아의 법체계를 이론화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주요 내용: '법치국가 조선의 탄생 배경'과 '사법 개혁의 지향점'
조선의 국법체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14세기 이래 동아시아의 변혁, 특히 사회.경제적 변동과 정치.사상적 전환 등을 폭넓게 고려하면서 입법 취지에 다가갈 필요가 있다. 조선의 국법은 한갓 형정 일반에 국한되지 않고 당대 역사상을 종합적으로 반영하는 거울로 자리하였기 때문이다.
조선의 국법체계를 살펴보기 위해서 이 책은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접근한다. 제1부 '법치주의 국가의 탄생 배경'에서는 입헌주의 운동의 정치사상적 배경과 국법체계의 형성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 구체적으로 1장은 고려 말의 개혁 과정과 조선의 사상적 지향, 2장은 법제서의 편찬 과정이나 중국법과 아국법(我國法) 등에 대해 다양한 시각에서 접근한다.
또한 제2부 '사법 개혁의 지향점'에서는 실록을 중심으로 태조-명종대 주요 입법 논의를 살펴봄으로써 국법체계의 성격에 대해 검토한다. 3장에서는 형정의 체계화를, 4장에서는 사회윤리 체계의 변동을, 5장에서는 사회경제구조의 재편을, 6장에서는 국가조직의 재정비를 각기 세분화하여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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