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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90 | ▼a 333.1 ▼b 2019 | |
| 245 | 2 0 | ▼a (마르크스 엥겔스) 주택문제와 토지국유화 : ▼b 서민·노동자들의 주택문제 해소와 토지 공개념을 제시한 최초의 저서 / ▼d 카를 마르크스, ▼e 프리드리히 엥겔스 외 지음 ; ▼e 김대웅 옮김 |
| 246 | 1 1 | ▼a Karl Marx Friedrich Engels, the housing question & the land nationalization |
| 260 | ▼a 고양 : ▼b 노마드, ▼c 2019 | |
| 300 | ▼a 276 p. : ▼b 삽화 ; ▼c 23 cm | |
| 500 | ▼a 부록: 1. 한국경제와 주택건설의 제문제, 2. 고대 주택의 발달사(경제사적으로 본 고대 건축의 추이) | |
| 700 | 1 | ▼a Marx, Karl, ▼d 1818-1883 ▼0 AUTH(211009)123002 |
| 700 | 1 | ▼a Engels, Friedrich, ▼d 1820-1895, ▼e 저 ▼0 AUTH(211009)22424 |
| 700 | 1 | ▼a 김대웅, ▼e 역 |
| 900 | 1 0 | ▼a 마르크스, 카를, ▼e 저 |
| 900 | 1 0 | ▼a 엥겔스, 프리드리히, ▼e 저 |
| 945 | ▼a KLPA |
소장정보
| No. | 소장처 | 청구기호 | 등록번호 | 도서상태 | 반납예정일 | 예약 | 서비스 |
|---|---|---|---|---|---|---|---|
| No. 1 | 소장처 중앙도서관/제2자료실(3층)/ | 청구기호 333.1 2019 | 등록번호 111831868 (1회 대출) | 도서상태 대출가능 | 반납예정일 | 예약 | 서비스 |
컨텐츠정보
책소개
19세기 말 이후의 주택문제에 대한 일련의 저작들, 즉 엥겔스의 『주택문제』, 『영국 노동자계급의 상태』 중 ‘대도시’, 레닌의 『국가론 노트』 중 『주택문제』, 레닌의 『국가와 혁명』 중 ‘엥겔스의 보충부분’을 소개하고, 또 토지 국유화와 관련된 마르크스의 저작인 『토지 국유화에 대하여』와 레닌의 『사회민주주의의 농업강령』 중 제3장 ‘국유화와 자치체 소유화의 이론적 기초’를 담고 있다.
이는 당시 주택문제의 원인과 해결방안에 대한 고전적 정의를 살펴본 다음, 이런 이론들이 현재 우리가 처한 상황들의 근본적인 원인을 규명하고 그 대처방안을 찾는 데 도움을 주고자 기획하였다. 최근 몇 년간 집값이 엄청나게 올라 평범한 사람들의 삶이 어려워지면서 주택문제의 대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런 때 엥겔스의 『주택문제』를 읽어볼 만하다. 1872∼73년에 집필하여 역사적 상황이 약간 다르긴 하지만, 비슷한 점도 많아 시사하는 바가 크기 때문이다.
심각한 토지와 주택문제에 직면한 지금,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150년 전에 제시한 해법은 지금도 유효하다
지금 세계는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살았던 19세기와 너무도 비슷하다. 19세기에는 과학 기술의 발전에 따른 산업혁명으로 생산과 소비가 급증한 반면, 자본과 노동의 모순으로 빈부의 격차는 더욱 심해졌다. 21세기에는 소위 IT 산업혁명의 완성으로 정보화 사회로 접어들었지만, 자본과 노동의 모순에 정보 소유자와 비소유자의 모순까지 겹쳐 있어 지금도 그때와 상황이 별반 달라진 게 없다.
특히 오늘날 우리나라에서는 집값 상승으로 온 나라가 시끄럽고 사람들의 이목은 모두 이 문제에 집중되어 있다. 하지만 어느 시대나, 특히 19세기 이후 자본주의가 태동하여 맹위를 떨치며 모순을 극명하게 드러냈던 사회에서는 토지와 주택문제가 사람들의 이해와 관심이 집중된 영역이었다. 의식주 중에서도 주거지는 삶의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서민‧노동자들의 주택문제 해소와 토지 공개념을 제시한 최초의 저서
이 책은 19세기 말 이후의 주택문제에 대한 일련의 저작들, 즉 엥겔스의 『주택문제』, 『영국 노동자계급의 상태』 중 ‘대도시’, 레닌의 『국가론 노트』 중 『주택문제』, 레닌의 『국가와 혁명』 중 ‘엥겔스의 보충부분’을 소개하고, 또 토지 국유화와 관련된 마르크스의 저작인 『토지 국유화에 대하여』와 레닌의 『사회민주주의의 농업강령』 중 제3장 ‘국유화와 자치체 소유화의 이론적 기초’를 담고 있다. 이는 당시 주택문제의 원인과 해결방안에 대한 고전적 정의를 살펴본 다음, 이런 이론들이 현재 우리가 처한 상황들의 근본적인 원인을 규명하고 그 대처방안을 찾는 데 도움을 주고자 기획하였다.
최근 몇 년간 집값이 엄청나게 올라 평범한 사람들의 삶이 어려워지면서 주택문제의 대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런 때 엥겔스의 『주택문제』를 읽어볼 만하다. 1872∼73년에 집필하여 역사적 상황이 약간 다르긴 하지만, 비슷한 점도 많아 시사하는 바가 크기 때문이다.
19세기 독일의 농민들은 도시로 내몰려 저임금 노동자로 전락하고,
대한민국에서는 재개발로 부동산 기획자들이 떼돈을 벌고
엥겔스의 『주택문제』는 당대 노동계급의 입장에 서서 집필한 저작으로 모두 3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서 엥겔스는 주택문제 해결에 대한 부르주아적 또는 프티부르주아적인 공상적 계획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150년 전 당시 독일은 후발 공업국가로 소규모 산업과 농업을 잠식하여 저임금을 바탕으로 세계시장에 뛰어들었다. 그 밑바탕에 노동자들의 희생이 있었음은 우리와 너무 비슷하다.
이 과정에서 소규모 자영업자와 농민들은 노동자가 되어 도시로 내몰렸고, 그 바람에 대도시의 주택난도 매우 심각했다. 90%에 이르는 사람들이 집이 없었고, 싼 임대료를 찾아 악취 나는 지하방에 살거나 비좁은 방에 여러 가구가 함께 살기도 했다. 파리에서는 오스망 시장의 도시정비 사업으로 부르주아 투기꾼들은 엄청난 이득을 챙겼다. 재개발로 부동산 기획자들이 떼돈을 번 우리의 상황과 마찬가지였다.
주택난을 끝장낼 방법은 국가의 개입인가, 노동자의 행동인가
엥겔스는 당시 가장 발달한 자본주의 국가인 영국의 예를 들면서, 주택문제에 국가가 개입하기를 기다리는 것은 기대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영국의 모든 자유주의 정부의 원칙은 오직 극도의 필요성에 못 이겨서만 사회적 개혁 법안을 제출하며 이미 존재하는 법령들도 전혀 집행하지 않는 것 … 최상의 경우에도 국가는 관례로 된 표면적 미봉책이 어디서나 균일하게 실행되도록 배려할 뿐이다.”
물론 노동자의 대중 행동으로 국가가 주택문제를 해결하도록 만드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필요하기도 하다. 독일과 영국, 스웨덴에서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일어난 혁명이나 준(準)혁명 후 노동자들의 불만을 무마하기 위해 국가가 주택을 저렴하게 공급하기 시작했고, 1950∼60년대 호황기에는 주택문제를 상당 부분 해결할 수 있었다.
그러나 1970년대 경제 위기 이후 전반적인 복지 감축 흐름 속에서 이런 성취들도 공격받고 있다. 1980년 당시 공공 임대주택이 전체 주택의 32%에 이르렀던 영국은 2000년에 공공 임대주택 비율이 22%까지 떨어졌다.
“오늘날 공공 소유에 기초한 스웨덴의 주거정책 역시 도전에 직면해 있다. 많은 지방정부들이 공공 주거정책을 포기하고 있다.”(『스웨덴 사회복지의 유형과 발전상』에서)
놀랍게도 엥겔스는 150년 전에 이미 이렇게 지적했다.
“오늘날의 사회에서는 주택문제도 다른 모든 사회문제와 마찬가지 방식으로, 즉 수요와 공급의 점진적인 경제적 조정을 통해 해결된다.”
“건축업이 비싼 주택을 훨씬 더 유리한 투기 대상으로 보고 노동자들의 주택은 오직 예외적으로만 건축한다.”
“따라서 그야말로 더러운 돼지우리 같은 집도 언제나 빌리려는 사람이 나타나며, 끝으로 가옥 소유자가 자본가로서 자기 소유의 가옥에서 최고의 집세를 무자비하게 짜낼 권리뿐 아니라 또한 경쟁으로 말미암아 어느 정도 그렇게 해야만 하는 사회가 존속하는 한 주택난을 겪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엥겔스의 지적은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지금 우리의 현실과 다를 게 거의 없다. 그리고 엥겔스의 다음과 같은 비판은 집값이 폭등한 지난 몇 년 간 아무 대책도 내놓지 않다가 대선이 가까워서야 표를 얻기 위해 대책을 내놓는 우리나라의 현실과 과연 뭐가 다른가?
그래서 엥겔스는 마침내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주택난을 끝장내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오직 하나의 수단이 있을 뿐이다. 지배계급에 의한 노동계급의 착취와 억압을 전반적으로 제거하는 것이다.”
정보제공 :
저자소개
카를 마르크스(지은이)
1818년 5월 5일 독일 트리어에서 유대인 가정의 7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다. 1835년에 본 대학에 진학해 법학을 전공했지만, 이듬해 베를린 대학으로 전학해 철학으로 전공을 바꿨다. 1841년 『데모크리토스와 에피쿠로스 자연철학의 차이』로 예나 대학에서 철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842년 쾰른의 『라인신문』에서 일하기 시작해 편집장이 되었고, 프로이센 정부와 언론 탄압에 맞서 싸웠다. 그 결과 『라인신문』은 폐간되었고, 1843년 파리로 거처를 옮겼다. 파리에 체류하면서 경제학, 프랑스혁명의 역사, 사회주의 사상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헤겔 법철학 비판을 위하여』(1843), 『유대인 문제에 대하여』(1843), 『경제학·철학 초고』(1844)를 집필했다. 또한 평생의 친구이자 동지인 프리드리히 엥겔스를 만났고, 엥겔스와 함께 브루노 바우어를 비판한 『신성 가족』(1845)을 공동으로 집필했다. 프랑스에서 추방되어 브뤼셀로 이주해, 엥겔스와 함께 『독일이데올로기』(1845)를 편찬했으며, 프루동의 『빈곤의 철학』에 대한 반론서인 『철학의 빈곤』(1847)을 출판했다. 1848년 유럽 전역에서 혁명이 발발하기에 앞서, 엥겔스와 함께 『공산당 선언』을 출판했다. 1848년 독일 혁명에 참여했고, 『신라인신문』을 쾰른에서 창간했다. 그러나 혁명의 좌절과 당국의 탄압으로 결국 1849년 평생의 안식처가 된 런던으로 망명했다. 런던 시절 초기 『신라인신문. 정치·경제 리뷰』를 다시 창간해 『프랑스 계급 투쟁』(1850)을 발표했고, 『뉴욕 데일리 트리뷴』의 통신원으로 영국 및 유럽 각국의 정치·경제·사회 상황을 분석하는 기고문을 다수 작성했다. 1851년 프랑스 쿠데타 직후에는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1851)을 출판했다. 『쾰른 공산주의자 재판에 대한 폭로』(1853)을 끝으로 정치·조직 활동의 일선에서 잠시 물러났다. 이후 영국박물관 도서관에서 경제학 연구에 매진해, 『자본』의 이론적 밑거름이 된 『경제학 비판 요강』(1857)과 『경제학 비판을 위하여』(1859)를 작성했다. 동시에 1848년 유럽 혁명의 패배 이후 소강상태에 빠져 있던 노동운동을 재건하는 일에도 힘을 쏟았다. 그 결과물은 1864년 런던 세인트 마틴 홀에서 창립한 국제노동자협회(제1인터내셔널)였다. 국제노동자협회의 이름으로 공포한 거의 모든 문서를 전담하여 작성했다. 마침내 평생의 역작인 『자본』 제1권이 1867년 함부르크에서 출판되었다. 『자본』 제2권과 제3권은 마르크스가 완성하지 못하고, 그의 사후 엥겔스가 직접 편집해 1885년과 1894년에 출판했다. 『자본』의 제4권이라고 할 수 있는 『잉여가치론』은 엥겔스 사후 카우츠키가 1905-10년에 출판했다. 1871년 최초의 사회주의 자치정부인 파리 코뮌의 전개와 의의를 분석한 『프랑스 내전』을 출판했다. 1875년 『고타 강령 비판』에서 낮은 단계의 사회주의와 높은 단계의 공산주의를 구별하여 과학적 공산주의의 구체적인 이행 전략을 제시했다. 1883년 3월 14일 엥겔스 곁에서 생을 마감하였고, 3월 17일 런던 하이게이트 묘지에 안장되었다.
프리드리히 엥겔스(지은이)
프로이센의 바르멘에서 부유한 공장주의 아들로 태어났다. 김나지움 졸업을 1년 앞두고 중퇴한 후 아버지의 회계 사무소를 거쳐 3년 동안 브레멘의 수출회사에서 일한다. 이 시기에 자유주의나 혁명 관련 서적을 읽으며 헤겔의 변증법을 받아들였다. 1841년부터 1년간 베를린에서 군복무를 하는 동안 베를린 대학의 다양한 강의를 청강했으며, 소장 헤겔학파와 가깝게 지냈다. 1842년 아버지의 방적 공장이 있는 맨체스터로 가는 도중 쾰른에 들러 《라인 신문》에서 일하던 마르크스와 처음 만난다. 방적 공장에서 조수로 일하며 노동자 계급의 현실을 알게 되었고, 이는 후에 자본주의의 모순을 연구해 《1844년 영국 노동 계급의 상황》을 쓰는 계기가 되었다. 1844년 마르크스가 편집하던 《독불 연보》에 〈국민경제학 비판 개요〉와 〈영국의 상태〉 등의 논문을 기고하여 자유주의 경제 이론의 모순을 폭로했고 혁명에 대한 전망을 내놓았다. 이후 마르크스와 《독일 이데올로기》, 《공산당선언》 등을 함께 작업하면서 평생 동안 변함없는 동지가 된다. 1848년 혁명의 와중에 마르크스가 설립한 《신라인 신문》에 글을 썼고, 1849년에는 독일의 바덴과 팔츠에서 혁명 전투에 직접 참여했다. 혁명이 실패한 후 그는 맨체스터로 돌아와 군사와 전쟁에 관한 다수의 논문을 쓰기도 했다. 1883년 마르크스가 사망하자, 엥겔스는 마르크스가 남긴 저작들을 검토하고 새로 번역하는 등의 작업을 맡았다. 이 과정에서 마르크스가 미국 인류학자 모건의 《고대 사회》를 발췌해놓은 것을 보고, 마르크스의 비판적 주석을 참조하며 모건의 연구 결과를 사적 유물론의 관점에서 분석한다. 그 결과물이 《가족, 사적 소유, 국가의 기원》이다. 《자본론》 2, 3권 역시 엥겔스가 고인의 노트를 정리하여 출간한 것이다. 1895년, 런던에서 후두암으로 사망했다.
김대웅(옮긴이)
전주고와 한국외대 독일어과를 나와문예진흥원 심의위원,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위원, 충무아트홀 갤러리 자문위원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 “알아두면 잘난 척하기 딱 좋은 교양 시리즈”인 《최초의 글들》, 영어잡학사전》, 《신화와 성서에서 유래한 영어표현사전》 등을 비롯해 《그리스 7 여신이 들려주는 나의 미래》, 《커피를 마시는 도시》등이 있다.
목차
ㆍ옮긴이의 글 ㆍ1장 주택문제 Zur Wohnungsfrage/The Housing Question 독일어본 제2판 서문 프루동은 주택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가 부르주아지는 주택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가 다시 한 번 프루동과 주택문제에 관하여 ㆍ2장 토지국유화에 대하여 ㆍer die Nationalisierung des Grund und Bodens/The Nationalization of the Land 토지국유화에 대하여 ㆍ3장 영국 노동자계급의 상태 Die Lage der arbeitenden Klasse in England/The Condition of the Working Class in England 대도시 주요 직물 산업의 공장 노동자 ㆍ4장 1905~1907년 제1차 러시아 혁명기의 사회민주주의 농업강령 The Agrarian Programme of Social-Democracy in the First Russian Revolution, 1905-1907 제3장 국유화와 자치체 소유화의 이론적 기초 ㆍ5장 국가론 노트(마르크스주의 국가론) Marxism on the state 주택문제 ㆍ6장 국가와 혁명 Государство и Pеволюция/The State and Revolution 제4장 보론_엥겔스의 보충설명 ㆍ부록 1_ 한국경제와 주택건설의 제문제 2_ 고대 주택의 발달사(경제사적으로 본 고대 건축의 추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