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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90 | ▼a 897.35 ▼b 유추강 양 | |
| 100 | 1 | ▼a 유추강, ▼d 1886-1955 |
| 245 | 1 0 | ▼a 양녕 대군 만유기 / ▼d 유추강 저 ; ▼e 강예지, ▼e 이예지 [공]역 |
| 246 | 1 9 | ▼a 讓寧大君漫遊記 |
| 260 | ▼a 부산 : ▼b 틈많은책장, ▼c 2025 | |
| 300 | ▼a 275 p. : ▼b 삽화 ; ▼c 19 cm | |
| 500 | ▼a 해제: 권기성 | |
| 650 | 4 | ▼a 한국 고전 문학 |
| 653 | ▼a 양녕대군 | |
| 700 | 1 | ▼a 강예지, ▼e 역 |
| 700 | 1 | ▼a 이예지, ▼e 역 |
| 700 | 1 | ▼a 권기성, ▼e 해제 |
소장정보
| No. | 소장처 | 청구기호 | 등록번호 | 도서상태 | 반납예정일 | 예약 | 서비스 |
|---|---|---|---|---|---|---|---|
| No. 1 | 소장처 세종학술정보원/신착도서코너(2층 로비)/ | 청구기호 897.35 유추강 양 | 등록번호 151373217 | 도서상태 대출가능 | 반납예정일 | 예약 | 서비스 |
컨텐츠정보
책소개
역사 속 실존 인물인 양녕 대군은 대중들에게 낯설지 않은 인물이다. 그도 그럴 것이 양녕 대군의 동생이 어마어마한 업적을 쌓은 세종 대왕이며, 세종이 왕위를 물려받는 과정과 양녕 대군에 대한 여러 ‘썰’들이 대중문화 속에서 재현되어 왔기 때문이다. 때로 주색에 미쳐 왕으로서의 자질을 갖추지 못한 왕자로, 때로는 동생을 생각하는 마음에 부러 미친 척 흉내를 내는 왕자로 상반되게 그려졌던 양녕 대군. 실제 양녕 대군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보다 중요한 것은, 이렇듯 오랜 시간 양녕 대군을 다양한 콘텐츠 속에서 되살려내며 그에게 역할을 부여한 대중 혹은 시대의 무의식일 것이다.
양녕 대군이라는 캐릭터에 일찌감치 주목한 이로 유추강을 들 수 있다. 그는 『야담』 1936년 12월호부터 1937년 11월호까지 총 10회에 걸쳐 「양녕 대군 만유기」를 연재한다. 땅에서 솟아나는 돌부처, 피 묻은 몽둥이, 죽은 지 1년 만에 다시 살아난 시체, 깊은 물 속에 웅크리고 있던 천년 묵은 이무기 등… 사건과 사연이 끊이지 않는 조선을 돌아다니며 이를 해결하는 작품 속 양녕 대군을 보다 보면 어사 박문수나 홍길동이 생각나기도 한다. 무엇보다 이 이야기가 나왔던 시대가 일제 강점기라는 점을 잊지 말자. 암울한 시대를 살며 피폐해진 사람들의 마음에 온갖 문제를 척척 해결해 줄 영웅과 같은 존재가 희구되었으리라는 점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렇듯 양녕 대군을 활용하여 독자들에게 위안과 감동의 서사를 제공한 유추강이, 역설적으로 일제 말에는 징병을 홍보하는 선전 부대에 소속되어 활동했다는 점을 부기한다. 「양녕 대군 만유기」에서 전국을 유람하는 듯했던 양녕 대군의 행보는 황해도, 평안도, 경기도, 충청도로 끝이 난다. “뒤에 다시 기회가 있는 대로 다시 만나 뵙기로 하겠다“던 작가의 말은 지켜지지 못했다. 자의든 타의든 일제에 협력하는 처지에서 백성을 구원하는 양녕 대군의 서사를 다시 잇기는 어려웠던 것이 아닐까.
◆ 양녕 대군 나가신다, 길을 비켜라!
양녕 대군의 유쾌 통쾌 조선 유람기
역사 속 실존 인물인 양녕 대군은 대중들에게 낯설지 않은 인물이다. 그도 그럴 것이 양녕 대군의 동생이 어마어마한 업적을 쌓은 세종 대왕이며, 세종이 왕위를 물려받는 과정과 양녕 대군에 대한 여러 ‘썰’들이 대중문화 속에서 재현되어 왔기 때문이다. 때로 주색에 미쳐 왕으로서의 자질을 갖추지 못한 왕자로, 때로는 동생을 생각하는 마음에 부러 미친 척 흉내를 내는 왕자로 상반되게 그려졌던 양녕 대군. 실제 양녕 대군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보다 중요한 것은, 이렇듯 오랜 시간 양녕 대군을 다양한 콘텐츠 속에서 되살려내며 그에게 역할을 부여한 대중 혹은 시대의 무의식일 것이다.
양녕 대군이라는 캐릭터에 일찌감치 주목한 이로 유추강을 들 수 있다. 그는 『야담』 1936년 12월호부터 1937년 11월호까지 총 10회에 걸쳐 「양녕 대군 만유기」를 연재한다. 땅에서 솟아나는 돌부처, 피 묻은 몽둥이, 죽은 지 1년 만에 다시 살아난 시체, 깊은 물 속에 웅크리고 있던 천년 묵은 이무기 등… 사건과 사연이 끊이지 않는 조선을 돌아다니며 이를 해결하는 작품 속 양녕 대군을 보다 보면 어사 박문수나 홍길동이 생각나기도 한다. 무엇보다 이 이야기가 나왔던 시대가 일제 강점기라는 점을 잊지 말자. 암울한 시대를 살며 피폐해진 사람들의 마음에 온갖 문제를 척척 해결해 줄 영웅과 같은 존재가 희구되었으리라는 점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렇듯 양녕 대군을 활용하여 독자들에게 위안과 감동의 서사를 제공한 유추강이, 역설적으로 일제 말에는 징병을 홍보하는 선전 부대에 소속되어 활동했다는 점을 부기한다. 「양녕 대군 만유기」에서 전국을 유람하는 듯했던 양녕 대군의 행보는 황해도, 평안도, 경기도, 충청도로 끝이 난다. “뒤에 다시 기회가 있는 대로 다시 만나 뵙기로 하겠다“던 작가의 말은 지켜지지 못했다. 자의든 타의든 일제에 협력하는 처지에서 백성을 구원하는 양녕 대군의 서사를 다시 잇기는 어려웠던 것이 아닐까.
◆ 암울한 시대를 이겨 내는 방법
활력 넘치는 인물들과 생동하는 이야기
「양녕 대군 만유기」는 양녕 대군을 ‘주연’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조연’ 역할로 나오는 다양한 인물을 보는 재미가 쏠쏠한 작품이기도 하다. 양녕 대군은 지혜와 관록을 지닌 인물이나 나이가 들어 체력이 약해진 데다가 무력을 겸비하지는 않았다. 이런 양녕 대군의 한계를 보완해 주는 이들이 바로 그의 가신이라 할 수 있는 ‘범이’와 ‘봉이’다. 범이와 봉이는 위기에 처한 양녕 대군을 구해 주면서 그의 수하가 되는데, 양녕 대군과 함께 억울한 일을 당하거나 위험에 빠진 백성들을 도와준다. 범이, 봉이 두 콤비의 활약을 보는 재미도 크거니와 어리숙하면서도 천진스러운 이들의 모습은 작품의 긴장된 분위기를 이완시키며 서사에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만유기’라는 특성상 인물이 한곳에 머물지 않고 계속해서 이동한다는 점 또한 서사의 재미를 배가한다. 다음 장소에서는 어떤 인물과 사건이 기다리고 있을지 독자를 궁금하게 만들며, 각 지역에서 만나는 백성들이 쓰는 입말(방언)은 그 지역을 더 실감 나게 느끼고 상상할 수 있는 요소이다. 요컨대 「양녕 대군 만유기」의 생동감은 양녕 대군 혼자서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그의 여정에 등장하고 개입하는 수많은 백성에 의해 만들어진다. 양녕 대군과 백성들이 어우러지며 빚어지는 생동감이 가장 잘 드러나는 공간은 ‘마방집’이다.
“얘, 그럼 마방집에 들어가 하루 쉬어 가자.”
“원 망령의 말씀이신지. 마방집에를 어찌 들어가십니까. 그리고 이제 길을 떠나서 몇 걸음 걷지도 않고 벌써 쉬어 가시렵니까.”
“아니다. 우리 무슨 볼일이 있어 가는 사람이냐. 어찌 그런지 평양을 떠나기가 싫구나. 어디 널찍한 마방집 하나 찾아봐라.”
“아무리 그래도 마방에서 어찌 쉬십니까. 그러면 감사가 그렇게 더 묵어가시라고 야단을 하는데 왜 이렇게 급히 떠나셨어요. 음, 참 망령이시지.”
“얘들아, 그런 말 말아라. 감사가 아무리 잘 대접을 해 주어도 원 불편해 견디겠더냐. 막걸리 한 잔도 못 먹고 그 도토리 깍지만 한 잔에 감홍로인가 무언가 발그레한 소주를 눈물만큼씩 주니 어디 혓바닥이나 축여지더냐. 아마 너희도 뱃가죽이 쭈글쭈글하리라. 어서 얘 봉아, 마방집 하나 찾아 들어가자!”
-본문 중에서
양녕 대군, 범이, 봉이는 다른 지역으로 넘어갈 때마다 그곳의 마방집에 머문다. 마방집에는 “아랫목 윗목에 누워 있는 사람, 앉아 있는 사람, 티끌 먼지가 자욱한 속에서 움찔움찔하는 말몰이꾼, 봇짐장수, 늙은이, 젊은이” 등 온갖 백성들로 가득하다. 사건은 언제나 마방집 여기저기에서 들려오는 백성들의 사연에 귀를 기울이는 과정에서 시작되며, 봉이와 범이를 시켜 사건의 전말을 조사한 후 양녕 대군이 직접 그 현장에 출두해 문제를 해결하며 하나의 에피소드가 끝이 난다. 일제 강점기, 대중들에게 「양녕 대군 만유기」가 인기를 얻은 까닭에는 백성을 구원하는 양녕 대군의 매력만큼이나 마방집의 저 떠들썩함과 활기가 자리하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 틈에서 찾은 이야기, 틈 많은 책장에서 보내는 편지
지금까지 우즈베키스탄, 타이완, 일본의 20세기 초 문학 작품을 독자들에게 소개해 왔다. 네 번째 책은 우리나라 작품이면 좋겠다고 막연히 생각하다가, 근대 야담 중 한 작품을 고르게 되었다. 꽤 오랫동안 함께 근대 야담을 읽고 공부해 온 멤버들이 이번 책의 현대어 번역과 해제를 맡아 주었다.
근대 야담은 일제 강점기에 대중 독자들이 즐겨 읽던 이야기지만, 조선 시대 야담을 조합한 오락적 읽을거리일 뿐 문학적·예술적 가치는 찾을 수 없다고 평가받으며 문학계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한 작품군이다. 근대 야담을 쓴 작가들에 대한 관심도 미미한데, 유추강의 경우 해방 후 냈던 작품집 중 현재 다시 발간된 것도 없고 그에 관한 연구도 거의 없다는 점에서 잊힌 지식인이자 작가라 할 수 있다. 한때는 독자들의 열렬한 사랑을 받았으나, 지금은 책들 뒤에 가려져 틈에 숨어 있는 미지의 작품 「양녕 대군 만유기」를 소개한다. 근대 야담이 현대의 독자들에게는 어떻게 읽힐지 기대된다.
정보제공 :
저자소개
유추강(지은이)
유추강은 서울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유석우(庾錫祐)이며, 호는 추강(秋岡)이다. 그는 가을의 풍경을 좋아하고, 특히 단풍 물이 든 뫼를 사랑해서 추강이라는 호를 지었다고 한다. 1906년 경성학원(京城學園)을 졸업하고 일본 교토대학(京都大学)에서 철학을 공부하였다. 이후 3·1 운동과 연관되어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그가 야담가로 활동을 시작한 것은 1933년경으로 추정된다. 당시 야담은 1930년대에 접어들며 본격적인 오락 독물로서 그 위상을 떨치고 있었다. 잡지, 신문 등과 같은 지면뿐 아니라 라디오 방송을 통해서도 야담의 활용은 그야말로 다대하게 진행되었다. 이 과정에서 여러 지식인은 야담의 흥행을 못마땅하게 여기기도 했으나, 독자들의 폭발적 수요는 여러 문인과 다양한 작가층의 공급이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그중에서도 인기 있었던 야담의 작가가 바로 윤백남이나 신정언, 김동인과 같은 사람이었는데, 유추강 또한 그들과 함께 당대 손꼽히는 야담가의 하나로 이름이 거론되었다. 그는 1930년대 이후 라디오 방송뿐 아니라 야담 대회 및 여러 지면을 통해 야담가로서 다양한 행보를 이어 갔고 여러 작품을 남긴 바 있다. 1940년대에는 신정언과 함께 <매신교화선전차대>에 소속되어 징병을 홍보하기도 했으며, 해방 후에도 야담과 관련된 활동을 하다가 1955년에 세상을 떠났다.
강예지(옮긴이)
구비 문학을 전공하고 있으며, 최근 <손님굿> 무가의 환대성에 주목한 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서사 무가를 시작으로 고전 문학을 오늘날의 시선으로 새롭게 풀어내고, 그 안에서 현대적 가치를 모색하기 위해 공부 중이다.
이예지(옮긴이)
한국 이무기 설화에 대한 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괴이한 존재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하여, 최근에는 괴이한 이야기와 그 안에 담긴 여러 목소리를 주목하며 공부를 이어 가고 있다.
권기성(해제)
19세기 말 20세기 초 필사본 야담집을 연구해 박사 학위를 받았다. 최근에는 고전 문학에 그려진 미시 문화사적 연구와 20세기 초 새로운 매체에 담긴 고전 문학의 여러 흔적을 탐색하는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