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우리는 우리의 행동과 사유방식을 규정하고 통제하고 또 억압하는 어떤 제도화된 틀이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만약 아직도 존재한다고 한다면 그것은 하나의 허구에 불과하다는 것임을 또한 알고 있다.
비평이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하나의 형식화된 격자를 작품 위에 놓고 그 안에서 작품을 규정하고 작 가를 평가하는 비평은 진정한 비평이 될 수 없다.
진정한 비평이란 작가의 독특한 개성, 또는 독특한 존재방식이 아로새겨진 작품에 대한 순수한 공감으로부터 출발하여 작가의 바로 그 독특한 존재로서의 개성과 그 개인적 실존의 의미를 밝혀내는 작업이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의식이란 지향행위로서 이미 하 나의 '행위'이며, 발화(parole)로서의 시의 언어 역시 그러한 지향행위로서의 '몸짓', 곧 육화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즉, 작가의 손을 떠난 작품은 이미 작가의
것이 아니라고는 하지만, 여전히 작품은 바로 작가 자신이기 때문이란 말이다. 말하자면 타인들에게 내맡겨진 작가 자신이다. 작품의 언어와 이미지들은 그가 어떠한 존재인가, 또는 어떠한 존재가 되고자 하는가를 잘
드러내줄 것이다. 이러한 내맡겨진 작가와 공감하려는 노력은 모든 비평작업의 토대가 되는 것이다.
-저자 머리말 중에서-
이 글에서 필자는 일차적으로 김수영 시에서 거의 강박적이라고 할 정도로 집요하게 반복되는 이미지 들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 결과 그의 난해해 보이는 작품들도 이해 가능하게 되었으며,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러한 이미지들은 김수영의 의식의 지향성을, 그의 존재의 기본적인 의도를 밝혀주었다.
이 글에서 우리는 그러한 존재의 기본적인 태도를 바탕으로 하여 한 '세계-내-존재'가 인간적 조건에 대응하여 변화 무쌍하게 그의 시세계를 전개해 나아감을 보게 될 것이다. 김수영은 누구보다도 현대적인
시인이다. 이점에 대해서는 모든 평자들의 견해가 일치한다. 그리고 그 는 초현실주의의 부정적 현실인식 태도로부터 깊은 감화를 받았으며, 또 이러한 관점을 끝까지 견지했다. 그러나 김수영이 누구보다도 현대적이었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그가 20세기의 철학적 주류를 이루는 현상학적 인식과 실존주의를 완전히 이해하여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는 데 있다.
그는 "내가 움직일 때 세계도 같이 움직인다"라고 단언하였다. 이른바 나와 세계는 따로 떨어질 수 없는 상태로 존재하는 '세계-내- 존재'로서의 현존재에 관한 인식이다. 김수영의 이러한 인식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다. '시란 온몸으로 밀 고 나가는 것'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것은 바로 시인에게 있어서 시를 쓴다는 것은 '존재의 내어 던 짐'(project of being)이라는 말이다. '존재의 내어 던짐',
이 말은 실존주의의 '크레도'다. 더욱 구체적으로 김수영은 시를 쓰는 것을 '투신'이라고 하였다. 이때 진정한 현대의 자유가 탄생한다. 그리고 그 자유 속에서 불가능이 가능으로 바뀐다. 그리고 또 이 때 시적
기적이 탄생한다. 내가 바람에 나부끼는 풀을 볼 때 나는 그 풀에로 던져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 풀 속에서 나는 나의 존재를 산다. 존재감으로 충만하여 환희 속에 율동하고 있는 풀 말이다. 그 풀은 나의 내부로부터
느껴지고, 나는 그 풀 속에 휘감겨 있다.
-저자 머리말 중에서-
정보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