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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사건자료집 . 6 : 관보편

제주4·3사건자료집 . 6 : 관보편 (2회 대출)

자료유형
단행본
단체저자명
제주4·3사건진상규명및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 , 편
서명 / 저자사항
제주4·3사건자료집 . 6 , 관보편 / 제주4·3사건진상규명및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
발행사항
서울 :   제주4·3사건진상규명및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 ,   2002.  
형태사항
572 p. : 삽도 ; 26 cm.
ISBN
8989205298 8989205255(Set)
일반주기
색인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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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정보

No. 소장처 청구기호 등록번호 도서상태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No. 1 소장처 중앙도서관/교육보존A/2 청구기호 953.707 2001 6 등록번호 111223967 (2회 대출) 도서상태 대출중 반납예정일 2026-06-15 예약 예약가능 R 서비스 M

컨텐츠정보

목차

목차
권호명 : 1 


1945년 
  미국 총사령관 포고(布告) / 태평양방면 미국육군부대 총사령관본부 : 매일신보 1945. 9. 9 = 27 
  전흔의 제주도 / 현지시찰차 출발 : 매일신보 1945. 9. 28 = 29 
  제주도 일군(日軍) 투항 : 매일신보 1945. 10. 2 = 29 
  제주도는 평화경(境) / 법무국 김영희(金永羲)씨 귀임담 : 조선인민 1945. 10. 10 = 29 
  조선인 사법관 70여 명 임명 / 어제 군청청서 발령 : 조선인민 1945. 10. 16 = 30 
1946년 
  하지 중장 제주도에 / 민정을 시찰 / 즉일 귀임 예정 : 동아일보 1946. 4. 22 = 31 
  제주도 군사시설 조사 : 서울신문 1946. 5. 11 = 31 
  사법관이 부정행위 / 제주도에 특별검사를 파견 : 동아일보 1946. 5. 12 = 32 
  제주도는 명랑한 곳 / 러치 장관 시찰 예찬 일석(一席) : 독립신보 1946. 6. 5 = 32 
  제주도 고구마 / 4만관 인천 입항 : 자유신문 1946. 6. 30 = 33 
  호역(虎疫) 맹위 / 환자 2,000여 명 / 사망자 1,000명 돌파 : 대동신문 1946. 7. 5 = 33 
  제주도(島)를 ‘도(道)’로 / 2군 1읍 11면 구획 : 서울신문 1946. 7. 13 = 33 
  제주도(濟州島)를 제주도(濟州道)로 승격 / 공보부 특별발표 : 자유신문 1946. 7. 13 = 34 
  제주도의 설치법령 94호 : 중외신보 1946. 7. 13 = 35 
  독촉 제주 분회 결성 : 대동신문 1946. 7. 26 = 35 
  민정장관 일행 제주도에 향발 : 대동신문 1946. 8. 4 = 36 
  제주도지사에 박경훈(朴景勳)씨 취임 : 독립신보 1946. 8. 13 = 36 
  호열자 거익(去益) 창궐 / 제주도에 매일 평균 50명 발생 / 총환자 만여 명 중 사자(死者) 6,500 : 서울신문 1946. 8. 23 = 36 
  제주감찰청장에 김대봉씨 발령 : 자유신문 1946. 8. 29 = 37 
  제주도 해저전선 / 일(日) 정부에 수선령 : 자유신문 1946. 9. 16 = 37 
  청주 전주 제주도에 소동 : 서울신문 1946. 10. 11 = 37 
  금년 추곡 수집 계획량 446만석으로 결정 / 각도의 책임수량도 배정 완료 : 독립신보 1946. 10. 18 = 38 
  제주도는 중요지대 / 장래 지브롤터화 할 가능성 있다 / 미(美) 기자 평 : 한성일보 1946. 10. 22 = 38 
  각 도 대의원 배정 / 금월 이내로 선거 완료 : 서울신문 1946. 10. 25 = 38 
  백미 상식(常食) 안 해도 제주도민은 건강 : 대동신문 1946. 10. 31 = 39 
  제주도 대의원 선거 / 문도배(文道培)·김시탁(金時鐸) 양씨가 당선 : 조선일보 1946. 11. 1 = 39 
  이(李)검사총장 등 제주도로 출장 : 경향신문 1946. 11. 16 = 40 
  제주도는 좋은 곳 / 관기(官紀) 정화 민생 확보 / 이(李)검사총장 일행 시찰담 : 대동신문 1946. 11. 23 = 40 
  경무부 인사 이동 / 조선인 결재 효시 : 서울신문 1946. 12. 8 = 40 
  제주도 의원도 입의(立議)거부 / 민전 산하에서 활약할 뿐 : 독립신보 1946. 12. 15 = 41 
  군사시설 태무 / 제주도의 지브롤터화는 무근 / 본사 김특파원 발전(發電) : 독립신보 1946. 12. 18 = 42 
  동백꽃 핀 마을을 찾아 / 일제 유린과 연합군 포연 후에 백일홍과 전단의 향기도 높다 / 제주도 기행기 : 독립신보 1946. 12. 18 = 42 
  신화의 세계 제주도(상) / 일제 침략기지였으나 지금은 평화향(平和鄕) : 서울신문 1946. 12. 18 = 43 
  불요불굴 일하는 도민 / 이번 대전(大戰) 이후로 중요성은 가중 / 제주 답사기(상) : 자유신문 1946. 12. 18 = 45 
  모리배는 여기도 도량 / 경찰은 반동세력을 조장하고 노동자는 공장문 열라고 외친다 / 제주도 기행기 : 독립신보 1946. 12. 19 = 46 
  보고(寶庫) 제주도 시찰기(상) / 노일환(盧鎰煥) / 10년 전진(戰塵)에 원시화 / 무진장의 자원은 아직 수면(睡眠) : 동아일보 1946. 12. 19 = 48 
  신화의 세계 제주도(하) / 천여(天與)의 악조건과 싸우는 이 섬 부녀자의 숭고한 근로정신 : 서울신문 1946. 12. 19 = 50 
  밀수선에도 딱한 사정 / 도 승격에 도민은 신경과민의 기우(杞憂) / 제주 답사기(중) : 자유신문 1946. 12. 19 = 51 
  요지인 까닭에 도는 풍설 / 일제시대는 중요 기지였으나 지금은 평화향 / 제주도 답사기(하) : 자유신문 1946. 12. 20 = 53 
  보고(寶庫) 제주도 시찰기(하) / 노일환(盧鎰煥) / 이곳도 도량(跳粱)하는 모리군(謀利群) / 도민이 경계하는 ‘위인택관’ : 동아일보 1946. 12. 21 = 55 
1947년 1월 
  조선의 자유 위해 계속 노력 / 제주도 미군정청 공보관 케리 대위 : 제주신보 1947. 1. 1 = 57 
  도민청(島民靑) 결성식 / 12일 조일구락부서(朝一俱樂部)서 : 제주신보 1947. 1. 10 = 58 
  입의(立議)의원 재선 / 선거방법은 종전대로 : 제주신보 1947. 1. 16 = 58 
  경찰 인사 이동 / 1월 3일부 도감찰청 발령 : 제주신보 1947. 1. 16 = 59 
  불순간부 제명 / 도 독촉(獨促) 지부장회의 : 제주신보 1947. 1. 18 = 59 
  제주에 소요 발생 / 양(兩) 검찰관 현지에 급행 : 한성일보 1947. 1. 19 = 59 
  제주도 밀수 근거설 / 군정청 당국 부인 : 대동신문 1947. 1. 21 = 60 
  제주도 폭동설 부정 : 동아일보 1947. 1. 22 = 60 
  제주도 민선 대의원 2명 보선일정 결정 : 경향신문 1947. 1. 23 = 60 
  밀수물품을 찾아 제주는 모리 소굴 / 식은(殖銀)서 송금수표 처리난 : 서울신문 1947. 1. 25 = 60 
  기마경관대 설치 / 강화에 매진하는 경찰진 : 제주신보 1947. 1. 26 = 61 
  도(道) 경찰학교 신설 : 제주신보 1947. 1. 26 = 61 
  경찰 인사 이동 / 1월 21일부 발령 : 제주신보 1947. 1. 26 = 61 
  읍면 대의원 300여 명 참집하 / 부동(婦同) 성황리 결성! : 제주신보 1947. 1. 28 = 62 
  일대 모리음보 사건 적발 / 검찰당국 수(遂) 조사에 착수 / 사건의 귀추는 극주목! : 제주신보 1947. 1. 28 = 63 
  조천면 민청(民靑) / 성황리 결성 : 제주신보 1947. 1. 28 = 63 
  복시환(福市丸) 밀수물자 사건 / 각 취체당국 방침 천명! : 제주신보 1947. 1. 30 = 64 
  대정면 농위(農委) / 성황리에 결성 : 제주신보 1947. 1. 30 = 65 
  복시환 사건은 조사 후 발표 / 진상 판명시까지 체재하겠다 / 출장차 내도한 박(朴)검찰관과 일문일답 : 제주신보 1947. 1. 30 = 65 
1947년 2월 
  제주도의 폭동사건은 사실무근(事實無根) / 이인(李仁) 대검찰청장이 언명 : 대동신문 1947. 2. 1 = 67 
  검찰청에 조력한 따름 / 박(朴)검찰관 이도(離道)의 담 : 제주신보 1947. 2. 2 = 67 
  원(元), 체포령을 위요하고 여론분분 / 경찰의 명확한 태도를 기대 / 이에 대하여 신(申)청장과 일문일답 : 제주신보 1947. 2. 4 = 68 
  도 광청(光靑) 결성대회 : 제주신보 1947. 2. 4 = 69 
  입의의언 재선 / 김도현 오용국 양씨 당선 : 제주신보 1947. 2. 4 = 69 
  조천면 민청(民靑)대회 : 제주신보 1947. 2. 4 = 69 
  무법천지 제주도 / 모리배의 기지로 이용 : 경향신문 1947. 2. 5 = 70 
  모리(謨利) 천하 제주도 / 경찰간부·통역 등이 주로 : 동아일보 1947. 2. 5 = 70 
  사건 조사차 왔다 / 내도한 조(趙)감찰장과 일문일답 : 제주신보 1947. 2. 6 = 71 
  신출귀몰하던 원(元) / 체포된 지 불과 1시간에 병을 이유로 보석 : 제주신보 1947. 2. 6 = 72 
  한(韓), 이번은 물가감찰서장 권헌(權憲)씨를 협박 : 제주신보 1947. 2. 8 = 72 
  서울서 내도한 신문인에도 협박 : 제주신보 1947. 2. 8 = 73 
  민생문제 해결은 모리배 숙청으로! / 도 민청(民靑) 선전부에서 절규 : 제주신보 1947. 2. 8 = 73 
  원(元)은 병으로 모병원에 입원? / 변(邊)은 군정청 명령으로 수감 / 김(金)부청장과 일문일답 거취 : 제주신보 1947. 2. 8 = 74
  2합 5작 배급은 계속 / 복시환(福市丸) 사건은 유감천만 / 박(朴)지사 담 : 제주신보 1947. 2. 10 = 74 
  양과자 절대 배격! 1,000여 학도 궐기 일대 시위 전개 : 제주신보 1947. 2. 10 = 75 
  경성 경찰전문학교에 경관 7명 선발 : 제주신보 1947. 2. 10 = 75 
  모리배 도량은 통역정치의 실패 / 관리는 민족적 양심으로 / 독청(獨靑) 선전부 담화 발표 : 제주신보 1947. 2. 10 = 76 
  해방은 모리·오리배 해방? / 폭로된 복시환 사건 전모 : 제주신보 1947. 2. 12 = 76 
  신(申)제주감찰청장의 독직 / 수회 총액은 100여 만원 : 경향신문 1947. 2. 15 = 80 
  서귀면 민청(民靑) 성황리에 결성! : 제주신보 1947. 2. 16 = 81 
  대정면 민청대회 : 제주신보 1947. 2. 16 = 81 
  경악할 모 중대사건의 진상 2주일 후 경무부서 발표 / 경무부 조병설 감찰과장 담화 발표 : 제주신보 1947. 2. 16 = 81 
  본도 군정장관 대리 손휠 대의 귀국 : 제주신보 1947. 2. 16 = 82 
  100여 만원 수회(收賄)한 제주감찰청장 취전(就전) : 동광신문 1947. 2. 18 = 82 
  미국 수집량 78% : 동아일보 1947. 2. 18 = 82 
  제주읍 민청대회 성황리에 종막 : 제주신보 1947. 2. 18 = 83 
  3·1절 기념행사 준비위원회 결성 : 제주신보 1947. 2. 18 = 83 
  3·1절 기념행사에 가두시위 행렬 엄금 : 제주신보 1947. 2. 18 = 84 
  한림면 민청대회 성황리에 종막 : 제주신보 1947. 2. 20 = 84 
  남원면 민청 결성대회 : 제주신보 1947. 2. 20 = 84 
  제주감찰청장 대리에 강인수씨 임명 : 제주신보 1947. 2. 20 = 85 
  부패한 경찰 규율을 일신! / 신(新)청장 강인수씨 담 : 제주신보 1947. 2. 20 = 85 
  제주감찰청장 소환 : 한성일보 1947. 2. 21 = 85 
  제주도 실정 조사를 논의 : 자유신문 1947. 2. 22 = 86 
  읍부녀회 ‘부동(婦同)’으로 개편 / 정기 대회서 만장일치 가결 : 제주신보 1947 2. 24 = 86 
  애월면 민청대회 성황리에 거행 : 제주신보 1947. 2. 24 = 86 
  전(前)부하를 구타 / 전 청장 신(申)이 폭행 : 제주신보 1947. 2. 24 = 87 
  3·1 기념일에 시위 등 금지 / 경찰당국 발표 : 제주신보 1947. 2. 24 = 87 
  각종 사회단체 참가하고 ‘민전(民戰)’성대리 결성 / 의장단에 안세훈씨 외 2씨 추대 : 제주신보 1947. 2. 26 = 88 
  하물 몰수와 벌금형 언도 / 복시환 사건 군정재판 : 제주신보 1947. 2. 26 = 90 
  민전 상임위원회 : 제주신보 1947. 2. 26 = 91 
  3·1기념 방침 등 / 학교대표 회의서 결의 : 제주신보 1947. 2. 26 = 91 
  민전 의장단 / 파 대위 방문 : 제주신보 1947. 2. 26 = 91 
  제주도 신(申)감찰청장, 경찰부에서 취조 중 / 조사가 끝나면 사문에 회부 : 대동신문 1947. 2. 27 = 92 
1947년 3월 
  제주도 신(申)청장 사건 : 경향신문 1947. 3. 4 = 93 
  3·1운동 민족기념일에 경향 각지서 불상사 속출 / 제주도 등 6지방에 38명 사상 : 독립신보 1947. 3. 4 = 93 
  서글프게 넘긴 3·1 / 남조선 각지의 치안상황 : 한성일보 1947. 3. 4 = 94 
  어쩔 수 없어 발포했다 / 파괴의 집단은 철저 소청(掃淸) / 조(趙)부장 담 : 한성일보 1947. 3. 4 = 95 
  책임의 소재를 명백히 / 민전 사무국 담 : 제주신보 1947. 3. 8 = 95 
  전재민 등에 의연금 / 삼양국민교생의 미거(美擧) : 제주신보 1947. 3. 8 = 96 
  검속중이던 학생들 전부 석방 : 제주신보 1947. 3. 8 = 96 
  3·1사건의 희생자를 도두리서 인민장(人民葬) : 제주신보 1947. 3. 8 = 96 
  원(元)·한(韓) 불복 상고 : 제주신보 1947. 3. 8 = 96 
  모종의 살인사건으로 대법관 검증차 제주도 향발 : 경향신문 1947. 3. 9 = 97 
  사고(社告) : 3·1사건 희생자 유가족 조위금 모집 : 제주신보 1947. 3. 10 = 97 
  제주감찰청 개칭 : 경향신문 1947. 3. 12 = 97 
  3·1사건의 반향! / 도청 각 학교를 위시로 관공서 회사 등 파업 단행 : 제주신보 1947. 3. 12 = 98 
  카스티어 대좌 내도 / 조사에 착수 : 독립신보 1947. 3. 13 = 100 
  사설 : 강(姜)감찰청장의 성명에 대하여 : 독립신보 1947. 3. 13 = 100 
  제주도의 관공리 총파업 / 경찰의 평화군중 살상문제로 / 경찰책임자 극형에 처하라 요구 : 자유신문 1947. 3. 13 = 102 
  조(趙)경무부장 제주에 급행 : 한성일보 1947. 3. 13 = 102 
  제주 전 관공서 총파업의 기세 / 발포 살인한 경관 처단 요구 : 독립신보 1947. 3. 14 = 103 
  제주도 관공리 총파업 : 제주신보 1947. 3. 14 = 103 
  제주 파업상태는 조사 중 / 러치 장관과 일문일답 : 제주신보 1947. 3. 14 = 104 
  진상은 재조사 후 발표 / 파업은 사건해결에 무영향 / 스타우드 장관과의 문답 : 제주신보 1947. 3. 14 = 104 
  총파업에 대처하고자 민생문제 대위(對委) 구성 : 제주신보 1947. 3. 14 = 106 
  도립의원 앞 건은 유감 / 강(姜)청장 담 : 제주신보 1947. 3. 14 = 106 
  파업 전도 파급 / 13일 정오 현재 상황 : 제주신보 1947. 3. 14 = 107 
  읍내 파업 확대 : 제주신보 1947. 3. 14 = 107 
  각 파업단체 망라하고 공동 ‘투위(鬪委)’구성 : 제주신보 1947. 3. 14 = 107 
  경찰간부 이동 : 제주신보 1947. 3. 14 = 108 
  제주도 파업선풍 / 전남북서 경찰응원대 출발 : 현대일보 1947. 3. 14 = 108 
  파업진상 조사 / 경무부장 제주행 : 한성일보 1947. 3. 15 = 108 
  제주총파업 확대 / 체신관계 파업으로 통신 두절 / 관청 은행 회사 상점 등 전도 철시 : 독립신보 1947. 3. 16 = 109 
  제주파업 총사령에 제주도 상공국장 임관호씨 : 독립신보 1947. 3. 16 = 109 
  제주도 파업 상금 계속중 : 동광신문 1947. 3. 16 = 110 
  총파업의 실정 조사차 조(趙)경무부장 14일 입도 : 제주신보 1947. 3. 16 = 110 
  조경무부장 강연 : 제주신보 1947. 3. 16 = 111 
  희생자 유가족에 국민아동이 위문문 : 제주신보 1947. 3. 16 = 111 
  성산면 민청원 피검 : 제주신보 1947. 3. 16 = 111 
  박(朴)지사 사임? : 제주신보 1947. 3. 16 = 111 
  제주 파업 점확(漸擴) : 중외신보 1947. 3. 16 = 111 
  특별수사과 설치 / 농교생 검속설은 낭설 / 강청장 담 : 제주신보 1947. 3. 18 = 112 
  파업단체 책임자 속속 호출하여 취조 : 제주신보 1947. 3. 18 = 113 
  민전간부 일부 피검 : 제주신보 1947. 3. 18 = 113 
  3·1사건 조사단 구성 : 제주신보 1947. 3. 18 = 113 
  조경무부장 시찰차 도일주 : 제주신보 1947. 3. 18 = 114 
  민전서 제주도에 조사단 파견 : 독립신보 1947. 3. 19 = 114 
  18일부터 취무 / 제주도 관공리들의 파업 일단락 : 경향신문 1947. 3. 20 = 114 
  총검거 200여 명 / 파업단체 거의 복구 / 강청장과 문답 : 제주신보 1947. 3. 20 = 115 
  발포행위는 제 사정에 비추어 정당방위로 인정 / 제주도 3·1절 불상사 / 조(趙)부장 담 : 대동신문 1947. 3. 21 = 116 
  제주총파업 무조건 취업 / 일부 교원 학생 무조건 취업 거부 / 조경무부장 발표 : 독립신보 1947. 3. 21 = 117 
  도 직원 전원 복직 / 제주도 파업상황 점차 복구 : 서울신문 1947. 3. 21 = 118 
  3만 명 습격태세에 경찰은 부득이 발포 / 조경무부장 귀환담 : 조선일보 1947. 3. 21 = 118 
  제주감찰장 신씨 사문위원회 회부 : 서울신문 1947. 3. 22 = 119 
  식량배급은 근근(近近) 실시 / 스타우드 군정장관 담화 발표 : 제주신보 1947. 3. 22 = 119 
  3·1사건에 대하여 / 조경무부장 담화 발표 : 제주신보 1947. 3. 22 = 120 
  도립병원 전(前) 발포경관 파면 처분! : 제주신보 1947. 3. 22 = 122 
  중문면 발포사건 상보(詳報) : 제주신보 1947. 3. 24 = 122 
  패드릿치 대위, 강청장 등 중문면 사건 현지시찰 : 제주신보 1947. 3. 24 = 123 
  도민에게 고함! / 도지사 박경훈 : 제주신보 1947. 3. 24 = 124 
  거의 원상회복! / 현재 각 지방 파업상황 : 제주신보 1947. 3. 24 = 124 
  신(申)청장 파면키로 : 경향신문 1947. 3. 26 = 125 
  근근 군정재판 개시 / 무죄자는 금명일 중 석방 / 강청장과의 문답 : 제주신보 1947. 3. 26 = 125 
  도민의 협력 요망 / 장(張) 김(金) 양총경 담 : 제주신보 1947. 3. 26 = 126 
  3·1사건 조사차 기자단 일행 내도 / 인사차 본사 내방 : 제주신보 1947. 3. 26 = 127 
  민전조사단 일행 24일 내도 : 제주신보 1947. 3. 26 = 127 
  국방경비대 모범훈련 공개 : 제주신보 1947. 3. 26 = 127 
  제주경찰감찰청으로 / 제주감찰청 명칭 변경 : 제주신보 1947. 3. 26 = 128 
  우도파견소 피습 / 무장경관대 급행 : 제주신보 1947. 3. 28 = 128 
  비밀서류 발각 / 강(姜)경감청장 담 : 제주신보 1947. 3. 28 = 128 
  중등생 등교율 점차 증가 경향! : 제주신보 1947. 3. 28 = 129 
  파업선동자 2,000명 검거 / 경무부에 들어온 각지보고 : 서울신문 1947. 3. 30 = 129 
  기자단 일행 이도(離道) / 고립화한 감을 준다! / 본도 시찰 중에 느낀 점 : 제주신보 1947. 3. 30 = 129 
  오영씨 피검 수도청장 지령으로 : 제주신보 1947. 3. 30 = 130 
1947년 4월 
  파업후의 제주도 답사 현지보고(상) / 도민은 우의와 향토애로 순경과의 사이에 얽힌 미묘한 대조(對照) : 경향신문 1947. 4. 2 = 131 
  군정재판에 변호 인정 / 군정지사 스타우드 소좌와의 문답 : 제주신보 1947. 4. 2 = 133 
  우도사건 진상 / 경찰당국 발표 : 제주신보 1947. 4. 2 = 133 
  장(張)부국장 등 귀경 : 제주신보 1947. 4. 2 = 134 
  증거서류에 대한 강(姜)청장 담화 발표 : 제주신보 1947. 4. 2 = 134 
  제주사태 참가한 경관들 징계처분 : 중외신보 1947. 4. 2 = 135 
  파업후의 제주도 답사 현지보고(下) / 경관과 민중의 조화 필요 / 쌍방의 과민한 대치가 불행 소치 : 경향신문 1947. 4. 3 = 135
  오영(吳英)씨 피검 : 문화일보 1947. 4. 3 = 137 
  제주도 청장에 김영배(金英培)씨 : 중외신보 1947. 4. 3 = 138 
  응원대(일부) 불일내 송환 / 불순경관을 처분할 터 / 강청장과 문답 : 제주신보 1947. 4. 4 = 138 
  임(任)산업국장 등 도(道) 간부 피검! : 제주신보 1947. 4. 4 = 139 
  남제주군 독청(獨靑) 30일 결성식! : 제주신보 1947. 4. 4 = 139 
  제주도 경관파면에 대하여 남로당 선전부 담화 : 대중신보 1947. 4. 5 = 140 
  피흘린 제주도 기록 / 검붉은 피는 아직도 땅에 원망스러이 고여 있다! : 독립신보 1947. 4. 5 = 140 
  파업선풍은 일단락 / 한때는 80여 명 경관도 가담 : 독립신보 1947. 4. 5 = 141 
  박지사는 해임? : 독립신보 1947. 4. 5 = 142 
  의연금 답지 : 독립신보 1947. 4. 5 = 142 
  이순경은 파면 / 스타우드 군정관 담 : 독립신보 1947. 4. 5 = 142 
  또 8명이 피탄 중상 / 중문면서 경찰과 민중 충돌로 : 독립신보 1947. 4. 5 = 143 
  남녀 230명 피검 : 독립신보 1947. 4. 5 = 143 
  군중은 무저항 / 도립병원 내과과장 김시존씨 담 : 독립신보 1947. 4. 5 = 144 
  너무도 난폭 / 도립병원 안과과장 김완근씨 담 : 독립신보 1947. 4. 5 = 144 
  나도 위협을 받았다 / 도립병원장 문종혁씨 담 : 독립신보 1947. 4. 5 = 144 
  내 아들 무슨 죄 있나 / 피해자 모(母) 장여사 담 : 독립신보 1947. 4. 5 = 145 
  피탄자는 관중 / 도지사 박경훈씨 담 : 독립신보 1947. 4. 5 = 145 
  한씨(농교 교원)에 6개월 체형 / 3·1사건 군정재판 개막 : 제주신보 1947. 4. 6 = 145 
  도(道) 민정장관에 베 중좌 착임! : 제주신보 1947. 4. 6 = 147 
  본도 발전에 기여! / 도 민정장관 신임 제1성 : 제주신보 1947. 4. 8 = 148 
  각 군정재판은 하 사령부에서 재심 / 스 법무관 담 : 제주신보 1947. 4. 8 = 148 
  경감청장 경질 / 후임에 김영배씨 : 제주신보 1947. 4. 8 = 149 
  관대한 처치를 요망 / 경찰 불친절은 역효과 / 관민 좌담회 : 제주신보 1947. 4. 8 = 149 
  군재(軍裁), 통역오면 즉시 속개 / 가급적 급속 완결 도모 / 패드릿치 대위와의 문답 : 제주신보 1947. 4. 10 = 151 
  8일 지사실에서 베 장관 취임 인사 : 제주신보 1947. 4. 10 = 152 
  박지사 사임 / 김(金) 총무국장이 대리 : 제주신보 1947. 4. 10 = 152 
  성산면 민청원에 각각 체형 언도 : 제주신보 1947. 4. 10 = 152 
  광복청년회 구좌면 분회 결성 : 제주신보 1947. 4. 12 = 153 
  민주경찰을 확립 / 김(金)경감청장 취임담 : 제주신보 1947. 4. 12 = 153 
  박도지사 후임은 금월내 부임 / 김총무국장 귀임담 : 제주신보 1947. 4. 12 = 153 
  군재(軍裁) 회부 수 / 260명 돌파 : 제주신보 1947. 4. 12 = 154 
  3·1사건 제3회 군정재판! / 피고 김동철씨에 체형 2개월 : 제주신보 1947. 4. 12 = 154 
  조위금으로 2만여 원 / 광주 재류 본도인의 미거 : 제주신보 1947. 4. 14 = 155 
  “협력은 감사하다”전 청장 강인수씨 담 : 제주신보 1947. 4. 14 = 155 
  3·1사건 제3회 군정재판! / 피고 이경천씨에 징역 8개월 : 제주신보 1947. 4. 14 = 156 
  본도 지사 후임에 유해진씨 발령 : 제주신보 1947. 4. 14 = 156 
  3·1사건 군정재판 중지 / 차후 조선인 법정서 심리 : 제주신보 1947. 4. 16 = 157 
  증거불충분은 불기소 처분! / 채용병 검찰관 담 : 제주신보 1947. 4. 16 = 157 
  3·1사건 검찰청서 취조 개시 / 금월내로 완결 예정! : 제주신보 1947. 4. 18 = 157 
  김택수씨 등 피검 : 제주신보 1947. 4. 18 = 158 
  본사조위금 기탁 / 금월 말일까지 연기 : 제주신보 1947. 4. 18 = 158 
  제주 3·1사건 관계자에 체형 : 조선일보 1947. 4. 19 = 158 
  3·1사건 공판 21일 개정 / 약식재판으로 29명이 출감! : 제주신보 1947. 4. 20 = 159 
  과거를 진사(陳謝)할 뿐! / 전지사 박경훈씨 사임당 : 제주신보 1947. 4. 20 = 159 
  3·1사건 제5회 공판 / 국민학교 교원 등에 각각 체형 6개월 구형 : 제주신보 1947. 4. 22 = 160 
  유(柳)지사 착임 : 제주신보 1947. 4. 22 = 161 
  극단이념 배제하고 공정한 도정 추진 / 본도인 환송회서 유지사 포부 피력 : 제주신보 1947. 4. 22 = 161 
  출장비를 절약하고 경관이 조위금 갹출 : 제주신보 1947. 4. 22 = 162 
  제주도 경관 200명 증원 : 조선일보 1947. 4. 25 = 162 
  3·1사건 제9회 공판 / 피고 등에 각각 체형 언도 / 최고 1년 최저 4개월 : 제주신보 1947. 4. 28 = 162 
  피고 최길두씨 등에 벌금형 구형 : 제주신보 1947. 4. 28 = 164 
  메이데이 기념행사는 허가가 필요 / 김청장 담 : 제주신보 1947. 4. 28 = 164 
  민심의 원상회복은 동경 / 도민의 건강과 행복을 축(祝) / 이도에 제(際)한 강인수씨 담 : 제주신보 1947. 4. 28 = 165 
  광고 : 국방경비대 모병 : 제주신보 1947. 4. 28 = 166 
  3·1사건 10회 공판 / 성명서 발표는 당연 / 김이환(金二煥) 피고의 진술 : 제주신보 1947. 4. 30 = 167 
  26일 모슬포서 또 십수명 피검 : 제주신보 1947. 4. 30 = 168 
  중문에 삐라사건 : 제주신보 1947. 4. 30 = 168 
  김택수씨 석방 : 제주신보 1947. 4. 30 = 168 
  독청 표선지부 결성 / 위원장에 송방식 씨 : 제주신보 1947. 4. 30 = 169 
1947년 5월 
  제주 치안 회복 : 동광신문 1947. 5. 4 = 170 
  제주도 경찰 증원 : 자유신문 1947. 5. 5. = 170 
  응원경관 완전 철퇴 : 제주신보 1947. 5. 8 = 170 
  3·1사건 제13회 공판 / 고창무(高菖武) 피고에 3,000원 벌금형 언도 : 제주신보 1947. 5. 8 = 171 
  무증거 체포는 불법 / 간부이동은 귀임 후 단행 / 김청장과의 문답 : 제주신보 1947. 5. 10 = 171 
  폭행 경관에 일반의 원성 점고(漸高) : 제주신보 1947. 5. 10 = 172 
  물경! 3·1사건 피고 328명 : 제주신보 1947. 5. 10 = 173 
  3·1사건 제14회 공판 / 세 피고에 집유(執猶) : 제주신보 1947. 5. 12 = 173 
  도민의 행복을 축복 / 스 소좌 이도(離道)의 변 : 제주신보 1947. 5. 12 = 174 
  경감청 공보실 설치 / 실장에 현오봉씨 : 제주신보 1947. 5. 12 = 175 
  해경 총사령관 내도 : 제주신보 1947. 5. 12 = 175 
  고두옥씨 등 양 피고 / 검찰관측 불복 상고 : 제주신보 1947. 5. 12 = 175 
  3·1사건 제15회 공판 / 고(高)피고에 집유 언도 : 제주신보 1947. 5. 14 = 175 
  경관 비행은 주저말고 보고하라 / 김(金)부청장 담 : 제주신보 1947. 5. 14 = 176 
  5개 리(里)에 파출소 : 제주신보 1947. 5. 14 = 176 
  재심요구한 현(玄)피고 / 원심대로 판결 언도 : 제주신보 1947. 5. 26 = 177 
  고문경관에 단(斷) / 목하 유치 취조 중 : 제주신보 1947. 5. 26 = 177 
  3·1사건 공판 완결 : 제주신보 1947. 5. 26 = 178 
  민청원 가택 수색 : 제주신보 1947. 5. 26 = 178 
  1구서장 등 검찰당국서 취조! : 제주신보 1947. 5. 26 = 178 
  경찰간부 돌연 이동 : 제주신보 1947. 5. 26 = 178 
1947년 6월 
  또 검거선풍 / 교양생 등 다수 피검 / 일부는 3일 석방 : 제주신보 1947. 6. 6 = 180 
  전(前)1구서(署) 수사계장 수뢰죄로 3일 기소 : 제주신보 1947. 6. 6 = 180 
  복시환 물품에 또 사건 / 21개가 행방불명 / 검찰당국서 엄중 조사중 : 제주신보 1947. 6. 6 = 181 
  전(前) 한림지서장 송치 : 제주신보 1947. 6. 6 = 181 
  도(道)직속 관공서에 신(新)직제 실시 : 제주신보 1947. 6. 8 = 181 
  군감대가 읍내 주둔 : 제주신보 1947. 6. 8 = 181 
  삐라 관계자 송청 : 제주신보 1947. 6. 8 = 182 
  조천서도 삐라 사건 : 제주신보 1947. 6. 8 = 182 
  제주도 경찰서 사건에 검찰청장과 문답 내용 : 현대일보 1947년 6. 11 = 182 
  여경 입교식 11일에 거행 : 동광신문 1947. 6. 13 = 183 
  국경대 모범훈련 / 13일 북교서 공개 : 제주신보 1947. 6. 14 = 183 
  조중(朝中)생에 체형을 구형 / 16일의 공판 2건 : 제주신보 1947. 6. 16 = 184 
  교양생에 체형 구형 : 제주신보 1947. 6. 16 = 184 
  김병덕 등에 집유(執猶) : 제주신보 1947. 6. 16 = 184 
  본도민은 선량! / 민주경찰을 추진 / 미인(美人) 경찰고문 신임담 : 제주신보 1947. 6. 18 = 184 
  종달리사건 관계자 17일 사건 송치 : 제주신보 1947. 6. 18 = 185 
  총액 26만 7,000원 돌파 / 본사기탁 조위금 마감 : 제주신보 1947. 6. 18 = 185 
  석방되는 군정재판 관계자 성명(姓名) : 서울신문 1947. 6. 20 = 187 
  일부 체형, 일부 집유(執猶) / 삐라사건 판결 : 제주신보 1947. 6. 20 = 187 
  야간 통행금지 시간 / 악이용하면 경관도 처단 / 김경감청장 담 : 제주신보 1947. 6. 22 = 187 
  종달리 사건 관계자 계속 수사중 : 제주신보 1947. 6. 22 = 188 
  조위금 5만원 서울제우회서 기탁 / 총액 30만원 돌파 : 제주신보 1947. 6. 22 = 188 
  종달리 사건 관계자 전부 송청 : 제주신보 1947. 6. 26 = 188 
  무허가 삐라 사건 등 24일 공판 : 제주신보 1947. 6. 26 = 189 
1947년 7월 
  이북 이재민 50세대가 본도에 이주 : 제주신보 1947. 7. 2 = 190 
  민주경찰 구현에 노력 / 여(女)경관 기개높게 새 출발 : 제주신보 1947. 7. 2 = 190 
  포고령 위반자 공판 : 제주신보 1947. 7. 2 = 191 
  공보실장에 이재화씨 취임 : 제주신보 1947. 7. 2 = 191 
  성산지서원 피검 : 제주신보 1947. 7. 4 = 191 
  도민전(島民戰) 재등장 : 제주신보 1947. 7. 4 = 192 
  포고령 위반자에 체형 언도 : 제주신보 1947. 7. 4 = 192 
  신두방 밀수사건 공판 / 벌금 3만원 언도 : 제주신보 1947. 7. 4 = 192 
  집회 허가권 도지사에 이관 : 제주신보 1947. 7. 6 = 193 
  삐라사건 관계학생 처단에 동급생들이 반대운동 전개 : 제주신보 1947. 7. 6 = 193 
  야간통금 강화 / 김청장 담화 발표 : 제주신보 1947. 7. 8 = 193 
  독촉국민회 1주 기념대회 성황 : 제주신보 1947. 7. 12 = 194 
  종달리 사건 공판 / 최고 4개년 언도 : 제주신보 1947. 7. 12 = 195 
  김녕지서 송(宋)주임의 미행(美行)에 면민은 감격 : 제주신보 1947. 7. 12 = 195 
  경관시험 합격자 발표 : 제주신보 1947. 7. 12 = 196 
  생도 복교문제 위요하여 학교, 생도간 대립 심각화 : 제주신보 1947. 7. 14 = 196 
  동 교장 김계용 씨 담 : 제주신보 1947. 7. 14 = 197 
  경찰은 충고와 경고로! / 탄압수단 취하지 않겠다 / 김(金)청장 귀임담 : 제주신보 1947. 7. 16 = 197 
  테러행위 등 엄벌 / 김청장 담화 발표 : 제주신보 1947. 7. 16 = 198 
  포고령 위반자 공판 : 제주신보 1947. 7. 16 = 199 
  도 민전(民戰) 강화! / 의장에 박경훈씨 추대 : 제주신보 1947. 7. 18 = 199 
  종달사건 공판 제2회 : 제주신보 1947. 7. 28 = 199 
  여(女)경관 주임 취임 : 제주신보 1947. 7. 28 = 200 
  정식수속만 하면 집회는 허가 / 사회단체로서 행정협력은 가(可) / 베로스 민정장관과의 일문일답 : 제주신보 1947. 7. 30 = 200 
  본사 기자 김삼규 군의 봉변 수기 : 제주신보 1947. 7. 30 = 201 
  원(元)·한(韓)의 협박죄 등 증인 신문하고자 목포서법관 일행 입도 : 제주신보 1947. 7. 30 = 202 
1947년 8월 
  종달리 사건 각 피고에 판결 언도 : 제주신보 1947. 8. 2 = 204 
  8·15 기념에 도 민전(民戰) 담화 발표 : 제주신보 1947. 8. 2 = 204 
  제주경찰학교 제1회 졸업식 거행 : 제주신보 1947. 8. 2 = 205 
  경관 자격시험 합격자 : 제주신보 1947. 8. 2 = 205 
  도제(道制) 실시 1주년 기념 : 제주신보 1947. 8. 4 = 206 
  한독당 남군지부 결성 : 제주신보 1947. 8. 6 = 206 
  부련(婦聯) 남군지부 결성 : 제주신보 1947. 8. 6 = 206 
  북제주에 경민 충돌 / 양측 중경자(重輕者) 다(多) : 중앙신문 1947. 8. 17 = 206 
  학련(學聯) 제주도지부 준비위원회 조직 : 제주신보 1947. 8. 20 = 207 
  구금 중의 민전간부 태부(殆部)는 석방 : 제주신보 1947. 8. 20 = 207 
  북촌사건 피의자 10여 명 검거 : 제주신보 1947. 8. 22 = 207 
  도청 직원 등 석방 : 제주신보 1947. 8. 22 = 208 
  북촌사건 불일간 22명 송청 : 제주신보 1947. 8. 30 = 208 
  공정과 책임있는 보도로 상호 협력 요망 / 김대봉씨와 일문일답 : 제주신보 1947. 8. 30 = 208 
  하귀에 검거선풍 : 제주신보 1947. 8. 30 = 209 
  목포 ∼ 제주 연해항로 취항 : 서울신문 1947. 8. 31 = 210 
1947년 9월 
  6할 7푼 이상 / 하곡수집 성적 양호 : 서울신문 1947. 9. 6 = 211 
  유지사 강비대서 강연 : 제주신보 1947. 9. 10 = 211 
  민전 현(玄)씨댁 등 피습 / 정체불명의 청년에 : 제주신보 1947. 9. 10 = 211 
  제주도는 평온상태 / 김대봉씨 담 : 동아일보 1947. 9. 11 = 212 
1947년 10월 
  하곡수집 거의 완료 / 충남·제주·강원만이 계속 중 : 동아일보 1947. 10. 4 = 213 
  68만 석으로 하곡 수집량 9할7푼 강(强) : 서울신문 1947. 10. 4 = 213 
  대동청년단 제주도지단부 결성 : 제주신보 1947. 10. 4 = 213 
  미군이 용담리민을 구타 : 제주신보 1947. 10. 4 = 214 
  감찰청에서 30여 명 검거 : 제주신보 1947. 10. 4 = 214 
  제1구 서장에 문용채(文龍彩)씨 : 제주신보 1947. 10. 4 = 214 
  제주경감청 인사 이동 : 제주신보 1947. 10. 4 = 215 
  도(道) 한독당 대회 위원장에 홍순용씨 피선 : 제주신보 1947. 10. 6 = 215 
  대동청년단 제주도지부 결성 : 제주신보 1947. 10. 6 = 215 
  전(前) 도민전(島民戰)의장 안세훈씨 집행유예로 판결 : 제주신보 1947. 10. 6 = 216 
  대청 도지부 위원장에 김충희씨 피선 : 제주신보 1947. 10. 10 = 216 
  경찰학교 제3기생 수료 : 제주신보 1947. 10. 12 = 216 
  군사후원회 준비회 : 제주신보 1947. 10. 12 = 217 
  월정서 대청과 지방청년 충돌 : 제주신보 1947. 10. 14 = 217 
  테러단 피체(被逮) : 제주신보 1947. 10. 14 = 217 
  이북(以北)인 대회 19일 결성 : 제주신보 1947. 10. 16 = 218 
  경찰후원회 결성 : 제주신보 1947. 10. 22 = 218 
  한독 독촉 독청 성산지부 / 1주년 기념대회 거행 : 제주신보 1947. 10. 22 = 218 
  대청 남군지단부 결성 : 제주신보 1947. 10. 22 = 218 
  대청 성산면지부 결성 : 제주신보 1947. 10. 22 = 219 
  경찰후원회 피선 역원 발표 : 제주신보 1947. 10. 24 = 219 
  조선민족청년단 중앙간부 훈련생 모집 : 제주신보 1947. 10. 24 = 220 
  토지소유자는 식량배급 제외 / 부정수배자 속속 적발 / 김(金)읍장 담 : 제주신보 1947. 10. 26 = 220 
  대청 김녕지부 결성 : 제주신보 1947. 10. 26 = 220 
1947년 11월 
  증배하여야 할 쌀 / 각 도별로 본 식량배급상 : 서울신문 1947. 11. 2 = 221 
  영단(營團)직원 등 36명 / 거(去) 30일 석방 : 제주신보 1947. 11. 2 = 221 
  부산제우회(釜山濟友會) 발족 : 제주신보 1947. 11. 2 = 222 
  불법 기부 강요에 단(斷) / 경감청 경고문 발표 : 제주신보 1947. 11. 6 = 222 
  미군인 음주하고 폭행 / 4일 밤 목포식당서 춘사(椿事) : 제주신보 1947. 11. 6 = 223 
  통행금지 하오 10시부터 : 제주신보 1947. 11. 6 = 223 
  민족청년단 제주도단부 창립위원회 결성 : 제주신보 1947. 11. 8 = 223 
  서청(西淸) 제주도본부 결성 / 위원장에 장동춘씨 : 제주신보 1947. 11. 8 = 224 
  성명서(대청 통일문제) : 제주신보 1947. 11. 8 = 224 
  딘 군정장관 제주도 시찰 : 동광신문 1947. 11. 28 = 224 
1947년 12월 
  통일정부 수립에 힘쓰라 / 베로스 장관 이도(離道)의 한토막 : 제주신보 1947. 12. 4 = 225 
  민생문제 해결에 시책 치중 / 신임 본도 군정장관 맨중좌 포부 피력 : 제주신보 1947. 12. 6 = 225 
  민독당 결성 준위 발족 / 결당식은 래(來) 21일 : 제주신보 1947. 12. 8 = 226 
  대동청년단 대정지부 결성 : 제주신보 1947. 12. 8 = 227 
  민족청년단 학생과(學生課) 제1차 총회 개최 : 제주신보 1947. 12. 8 = 227 
  식량의 수배(手配)인구 남조선만 934만 : 서울신문 1947. 12. 10 = 227 
  민족청년단서 조기회 : 제주신보 1947. 12. 18 = 228 
  민독(民獨) 제주도당부 / 결성식 28일로 연기 : 제주신보 1947. 12. 18 = 228 
  학생의 본분 지키겠소 / 제농생 남로(南勞) 탈퇴 성명 : 제주신보 1947. 12. 22 = 228 
  단장에 김인선(金仁善)씨 피선 / 대청 임시대회 폐막 : 제주신보 1947. 12. 24 = 229 
  전(前) 본도 경찰고문관 / 패 대위 서울로 전출 : 제주신보 1947. 12. 24 = 230 
  제주도가 가장 부진 / 연말 앞둔 추곡수집 : 동아일보 1947. 12. 26 = 230 
1948년 1월 
  경비대 여단장 순시차 13일 내도 : 제주신보 1948. 1. 12 = 231 
  붉은 학생이 혈서로 회오 : 현대일보 1948. 1. 13 = 231 
  기동대 김녕에 출동 : 제주신보 1948. 1. 14 = 232 
  좌창림(左昌林)씨 피검 : 제주신보 1948. 1. 14 = 232 
  경북 제주도 미곡수집 완료 : 대동신문 1948. 1. 27 = 232 
1948년 2월 
  검거진상 발표는 시기상조 / 탈선경관은 엄중단속 방침 / 김청장과 일문일답 : 제주신보 1948. 2. 4 = 233 
  군민정(軍民政) 양 장관 지령 준수 / 시간후의 선객(船客) 억류는 가급적 완화 / 김청장과의 문답 : 제주신보 1948. 2. 8 = 234 
  이 땅 수호는 우리 손으로 / 경비대서 모병 실시 : 제주신보 1948. 2. 8 = 235 
  인명 살상도 불소(不少) / 통신 경찰지서 등 피습 : 한성일보 1948. 2. 11 = 236 
  2·7사건 본도에도 파급 / 문(文)1구서장 담 : 제주신보 1948. 2. 12 = 236 
  통행금지는 수시 발령 / 본도 일대에 비상경계 : 제주신보 1948. 2. 14 = 237 
  이(李)연대장 대전으로 전출 : 제주신보 1948. 2. 14 = 237 
  고산서 소요 : 제주신보 1948. 2. 14 = 237 
  경비대 중상(中傷)은 엄중처단 / 이(李)보도대장 담 : 제주신보 1948. 2. 14 = 238 
  성명서(강성건 오도현 대청탈당 건) : 제주신보 1948. 2. 14 = 238 
  ‘30만 도민에 고함’(상) / 금반 사건에 김청장 담화 : 제주신보 1948. 2. 16 = 238 
  금반 사건 연좌 / 94명을 석방 : 제주신보 1948. 2. 16 = 240 
  ‘30만 도민에 고함’(하) / 금반 사건에 김청장 담화 : 제주신보 1948. 2. 18 = 240 
  방화 1건, 시위 19건 / 금반 사건의 동요 전모 / 감찰청 발표 : 제주신보 1948. 2. 20 = 241 
  민족청년단장 백찬석씨 사임 : 제주신보 1948. 2. 20 = 242 
  경고문(제주경찰감찰청장) : 제주신보 1948. 2. 20 = 242 
  성명서(남로당 탈당) : 제주신보 1948. 2. 22 = 243 
  도(道) 주최로 민심지도 강연회 : 제주신보 1948. 2. 24 = 243 
  성명서(남로당 탈당) : 제주신보 1948. 2. 24 = 243 
  옥외 축하식 금지 / 3·1기념행사의 행정령 : 제주신보 1948. 2. 26 = 244 
1948년 3월 
  유치중에 피의자 급사(急死) / 관계당국서 사인 조사중 : 제주신보 1948. 3. 12 = 246 
  민족청년단 / 1기 훈련 개시 : 제주신보 1948. 3. 12 = 246 
  조위(朝委) 일행 내도? / 관재처에 숙사 알선의뢰 : 제주신보 1948. 3. 12 = 247 
  성명서(남로당 탈당) : 제주신보 1948. 3. 12 = 247 
  군기대(軍紀隊)에서 성명서 발표 : 제주신보 1948. 3. 14 = 248 
  모슬포지서에 불상사 / 피의자 1명 상해치사 / 가해경관은 구속취조 중 : 제주신보 1948. 3. 16 = 249 
  물경 39만명 / 8·15후 발생한 불온사건에 : 서울신문 1948. 3. 17 = 249 
  각도 선거위원 정식 선정 : 경향신문 1948. 3. 25 = 250 
  민성(民聲) : 제주신보 1948. 3. 30 = 250 
  성명서(남로당 탈당) : 제주신보 1948. 3. 30 = 251 
  좌창림씨 석방 : 제주신보 1948. 3. 30 = 252 
신문기사 영인자료 = 253 
찾아보기 = 423 


권호명 : 2 


1948년 4월 
  200의원 선거 / 각 도별 배정 발표 : 서울신문 1948. 4. 1 = 31 
  4일 제주도서 총선거 반대 폭동 / 사상자 12명 발생 : 동아일보 1948. 4. 6 = 31 
  등록실수 64% 4일 현재 경남 80%가 수위 : 대동신문 1948. 4. 7 = 32 
  제주청(廳) 발표 : 독립신보 1948. 4. 7 = 32 
  제주 11경찰관서 등 피습 / 관민측의 사상도 다수 / 조경무부장 담 : 서울신문 1948. 4. 7 = 32 
  응원대를 급파 / 제주도 폭동사건 심대 / 경무부 발표 : 동광신문 1948. 4. 8 = 33 
  남군(南郡) 선위(選委) 임명 : 제주신보 1948. 4. 8 = 34 
  이호, 봉개에 소요사건 발생 : 제주신보 1948. 4. 8 = 34 
  금반 소요사건의 주동은 육지부로부터의 악질도배 / 공안국장 김정호씨 담 : 제주신보 1948. 4. 8 = 35 
  선거인 등록 마감 / 6일 현재 81% / 전북이 최고(93) 다음 경기(91) / 3일간 추가로 90% 돌파 예상 : 동아일보 1948. 4. 10 = 35 
  경비사령부에서 포고문 발포 : 제주신보 1948. 4. 10 = 36 
  성명서(남로당 탈당 : 안덕면 사계리) : 제주신보 1948. 4. 12 = 38 
  경비사령부에서 사건 전모 발표 / 제주비상경비사령부 특별 발표 : 제주신보 1948. 4. 12 = 38 
  성명서(남로당 탈당 : 안덕면 서광리 1구) : 제주신보 1948. 4. 12 = 39 
  김대봉씨 제주도에 선무공작차로 출장 : 대동신문 1948. 4. 13 = 39 
  제주도 반선 폭동사건 속보 / 특파된 대청원 투쟁 / 피살 14, 중상 51명(총본부의 중간보고) : 대동신문 1948. 4. 13 = 40 
  제주도 응원대 또 100명 파견 : 동광신문 1948. 4. 13 = 40 
  제주도 폭동에 위무공작대 파견 : 조선일보 1948. 4. 13 = 41 
  사망자 22명, 부상자 50, 행방불명 12명 / 3 ∼ 7일간 제주도 소요 : 조선중앙 1948. 4. 14 = 41 
  제주도의 살상 즉시 중지하라 / 민전(民戰)서 성명 : 독립신보 1948. 4. 16 = 42 
  경비대 제주읍 진주 / 특별경비대장 포고문 발표 : 제주신보 1948. 4. 16 = 42 
  안심 협조하라 / 김(金)부대장 담화 : 제주신보 1948. 4. 16 = 42 
  모략중상 삼가라 / 이(李)정보부장 담 : 제주신보 1948. 4. 16 = 43 
  공고(국회의원 후보자 등록) : 제주신보 1948. 4. 16 = 43 
  제주도에 무장한 폭도 ‘게릴라전’을 전개 / 경찰은 교통을 차단코 만전의 포진 : 동아일보 1948. 4. 17 = 44 
  제주도의 전신(電信)피해 상황 : 서울신문 1948. 4. 17 = 44 
  14일에도 지서습격 / 제주도는 우금(于今) 교전상태 / 무장도민 300명이 한라산에 집결 : 우리신문 1948. 4. 17 = 45 
  제주도 폭동 아직도 미식(未熄) : 조선일보 1948. 4. 17 = 45 
  제주도 전신 복구 : 조선일보 1948. 4. 17 = 45 
  제주도 사건에 대하여, 민전에서 호소의 성명 : 조선중앙 1948. 4. 17 = 46 
  선거에 경비 만전! / 비상경비총사령부 설치 / 각 관구에는 사령부 두고 맹활동 : 대동신문 1948. 4. 18 = 46 
  제주 15일 또 폭동 / 경관가족 1명 피살 : 동아일보 1948. 4. 18 = 46 
  입후보자 명부 : 동아일보 1948. 4. 18 = 46 
  공고(국회의원 후보자 등록) : 제주신보 1948. 4. 18 = 47 
  김공보실장 내도 / 조경무부장 선무문(宣撫文) 발표 : 제주신보 1948. 4. 18 = 47 
  동포애만이 사건 해결의 관건 / 내도한 김공보실장 담화 발표 : 제주신보 1948. 4. 18 = 48 
  인민의 생명 재산보호가 목적 / 군 출동에 김연대장 성명서 발표 : 제주신보 1948. 4. 18 = 49 
  국군은 건국의 초석 : 제주신보 1948. 4. 18 = 49 
  경비대 사고(事故)에 딘 장관 각서 / 제9연대에서 발표 : 제주신보 1948. 4. 18 = 50 
  선거등록 74% : 제주신보 1948. 4. 18 = 51 
  전국적으로 향보단(鄕保團)을 조직 : 제주신보 1948. 4. 18 = 51 
  선거사무소 피습 48건 / 선거방해 예방에 만전 / 조부장 담 : 조선중앙 1948. 4. 18 = 52 
  선박 발착(發着) 금지로 제주교통 두절 : 동광신문 1948. 4. 20 = 52 
  김공보실장 도민에 메시지 : 제주신보 1948. 4. 20 = 53 
  사건 진압을 위해서 김사령관 경고문 발표 : 제주신보 1948. 4. 20 = 54 
  선거방해 143건 : 제주신보 1948. 4. 20 = 55 
  시국수습대책위원회 결성 : 제주신보 1948. 4. 20 = 55 
  수습교섭을 토의 : 제주신보 1948. 4. 20 = 55 
  공고(국회의원 후보자 등록) : 제주신보 1948. 4. 20 = 56 
  제주도 등록 63%를 돌파 / 연일 피습중에도 불구하고 : 동아일보 1948. 4. 21 = 56 
  구국 위해 궐기 / 제주도 소요에 반일(反日) 담 : 우리신문 1948. 4. 21 = 57 
  제주 폭동 계속 / 사망 25·중상10 : 현대일보 1948. 4. 21 = 57 
  미군대도 파견 예정 / 제주도 소요 거익(去益) 확대 : 조선중앙 1948. 4. 23 = 57 
  항쟁 제주도에 민전(民戰)에서 조사단 파견을 준비 : 독립신보 1948. 4. 24 = 58 
  혈해화(血海化)한 제주도 / 미군 출동하면 국제 문제 : 독립신보 1948. 4. 25 = 58 
  살상 중지하라 / 제주도 사태에 전평(全評)서 성명 : 독립신보 1948. 4. 25 = 59 
  민애청에서도 항의 : 조선중앙 1948. 4. 25 = 60 
  제주도 사태에 항의한다 / 민애청(民愛靑)서 하지 중장에 서한 전달 : 독립신보 1948. 4. 27 = 60 
  전통적인 평화향에 단정 반대의 무장 봉기 / 제주도 봉기의 진상(1) : 독립신보 1948. 4. 27 = 61 
  제주도 1대 6의 격전 / 입후보 : 자유신문 1948. 4. 27 = 62 
  제주신보사 무전기 차압 : 독립신보 1948. 4. 28 = 63 
  제주도 사건에 전농(全農) 담화 : 우리신문 1948. 4. 28 = 63 
  살상 중지하라 / 제주도사건에 전농 등서 요구 : 독립신보 1948. 4. 29 = 63 
  동포 살상의 비극 / 4개월간 350명 살해 / 제주도는 미증유의 폭동 : 동아일보 1948. 4. 29 = 64 
  항쟁이라 찬미하면 체포 / 장(張)청장 폭동사건에 관해 선언 : 우리신문 1948. 4. 29 = 64 
  동족상잔 중지하고 양군 즉시 철퇴하라 / 문맹(文盟) 성명 : 조선중앙 1948. 4. 29 = 65 
  투쟁하는 형제 잊지 말라 / 제주 무장봉기 인민에 대해 국방경비대 김중령 전투중지 요청 : 독립신보 1948. 4. 30 = 65 
  내 형제 죽이지 마라! / 제주도 인민 살상에 여맹(女盟) 항의 : 독립신보 1948. 4. 30 = 66 
  미군 출동이란 만부당 / 근민당서 엄중한 항의 성명 : 독립신보 1948. 4. 30 = 66 
  위정자는 반성할 일 / 교협(敎協)서 성명 : 독립신보 1948. 4. 30 = 66 
  일병(日兵)이 남긴 작전시설 2,000반도가 이용 / 김(金)공안국장 제주도 시찰 담 : 동아일보 1948. 4. 30 = 67 
  제주 소요사태 / 한라산 중심 게릴라전 / 김공안국장 귀임담 : 서울신문 1948. 4. 30 = 68 
  제주도의 무장대치 / 그 동기를 파악 / 당국의 냉정한 처리요망 : 우리신문 1948. 4. 30 = 68 
  상잔을 중지하라 / 근민, 전농 등에서 담화 : 우리신문 1948. 4. 30 = 69 
  소요 중의 제주도 / 동굴속에 잠복 / 식량과 무기도 확보 / 김(金)공안국장 목격담 : 자유신문 1948. 4. 30 = 70 
  공옥청야(空屋淸野)작전을 계속 / 김공안국장 제주도 소요 근황 담 : 한성일보 1948. 4. 30 = 71 
1948년 5월 
  제주도 소요 악화 경비대 행동개시 선언 : 대동신문 1948. 5. 3 = 72 
  경찰관서 23처 피습 : 서울신문 1948. 5. 3 = 73 
  제주도의 소요 화평교섭? / 국방경비대서 행동을 개시 : 조선일보 1948. 5. 3 = 73 
  피로 물들인 제주도를 주시하자! / 쓰러져 가는 제주인민 구출하자! / 민전서 애국인민에 격(檄) : 독립신보 1948. 5. 4 = 74 
  통행중의 도민을 / 참혹! 경관이 사살 : 독립신보 1948. 5. 4 = 74 
  무고한 노유(老幼)만 죽이는 제주폭도의 만행 / 경무부 선무사 김대봉씨 귀래담 : 동광신문 1948. 5. 4 = 75 
  제주소요 격심 / 미(美) 부녀자를 소개(疎開) : 서울신문 1948. 5. 4 = 75 
  제주도 사건 조사 거부에 민전 담 : 우리신문 1948. 5. 5 = 76 
  민전 조사단 파견 / 당국 아직 불허가 : 조선중앙 1948. 5. 5 = 77 
  귀순자도 다수 / 제주 성내는 평온했다 / 선무공작 갔다온 김(金)공보실장 담 : 경향신문 1948. 5. 6 = 77 
  제주도 사건에 반일구원회 담 : 우리신문 1948. 5. 6 = 77 
  제주 소요 의연 계속 / 군·민정 양(兩)장관 공로로 현지 시찰 : 조선일보 1948. 5. 6 = 78 
  불원 진압될 터 / 공보실장 귀임담 : 조선일보 1948. 5. 6 = 78 
  제주도와 각 항(港)간 항행시간을 개정 : 조선일보 1948. 5. 6 = 79 
  편의대(便衣隊) 활약으로 곤란 / 제주도에서 김공보실장 귀환담 : 조선중앙 1948. 5. 6 = 79 
  제주도 폭동 계속 / 게릴라대의 활동 격화 : 한성일보 1948. 5. 6 = 80 
  제주 선거위원 4명이 또 피살 : 경향신문 1948. 5. 7 = 80 
  제주소요는 도외(外)서 온 공산분자의 선동 / 딘 장관 : 대동신문 1948. 5. 7 = 81 
  딘 장관 일행 제주 향(向) : 동광신문 1948. 5. 7 = 81 
  소(蘇) 테러전술로 선거 파괴를 기도 / 미지(美紙) 제주도 폭동 평(評) : 동아일보 1948. 5. 7 = 81 
  제주도 폭동 현지 답사 / ‘피의 제장(祭場)’으로 변모한 남해의 고도 제주 : 동아일보 1948. 5. 7 = 82 
  700만원 사건 발표할 수 없다 / 제주 소요는 일반적으로 평온화 / 딘 장관 담 : 조선일보 1948. 5. 7 = 84 
  제주도 폭동 현지 답사 / 중죄범 관대처분 / 좌익세력 날로 증대 : 동아일보 1948. 5. 8 = 84 
  요구는 단선 중지 / 제주도 봉기사건에 UP보도 : 우리신문 1948. 5. 8 = 86 
  제주도 치안문제 / 조(趙)경무부장 수습 대책 담 : 경향신문 1948. 5. 9 = 87 
  제주경찰 고문사건 / 지서장 등 체형 벌금 언도 : 대동신문 1948. 5. 9 = 88 
  형제 구출하자 / 제주도 유학생 궐기 : 독립신보 1948. 5. 9 = 88 
  제주도 폭동 현지답사 / 5월 1일 메이데이에도 농민 참살의 비극 : 동아일보 1948. 5. 9 = 89 
  남조선 전역 93%의 호(好)성과 : 동아일보 1948. 5. 12 = 90 
  민주정치에의 시련! / 투표율 90.82% / 10일 오후 7시 기하여 투표 일제 완료 : 한성일보 1948. 5. 12 = 90 
  제주도는 개표 중 / 당선결과 무소속이 다수 : 대동신문 1948. 5. 15 = 91 
  제주간 경찰간부 후보생 1명 피살, 1명은 납치 : 동아일보 1948. 5. 15 = 91 
  남방의 도원경 제주 / 소요는 어찌됐나 / 한라산에 2,000명 잠복 / 게릴라전을 연출하고 출몰 폭행 : 자유신문 1948. 5. 15 = 92 
  제주 치안의 꽃 손(孫)경감 순직 : 현대일보 1948. 5. 15 = 93 
  소요 중이던 제주도의 선거 : 자유신문 1948. 5. 16 = 93 
  남제주군은 제외 2개구 당선 결정 : 조선일보 1948. 5. 16 = 93 
  제주 소요로 희생자 또 9명 / 건물도 15동 전소 : 자유신문 1948. 5. 17 = 94 
  제주도 폭동 현지답사 / 경무부 공보실장 김대봉 / 폭동에 현로(顯露)된 공당원의 의도와 전술 / 잔인한 동족살해가 인민봉기? : 동아일보 1948. 5. 18 = 94 
  제주도 소요 격화 / 수도청 형사대들도 현지 향발 : 조선일보 1948. 5. 18 = 96 
  경찰 정예부대 제주도 향발 : 독립신보 1948. 5. 19 = 96 
  선거 불능구(區) 과반 / 제주 선거상황 홍순재씨 보고 : 조선일보 1948. 5. 19 = 96 
  제주도 폭동 현지답사 / 경무부 공보실장 김대봉 / 국가가 주는 자유, 파괴행위에 역용(逆用) / 민족주의의 가면 쓴 좌익 : 동아일보 1948. 5. 20 = 97 
  북제주 재선? / 무효선포 건의 : 조선일보 1948. 5. 20 = 98 
  제주에 경찰 응원대 / 목포서도 다수 출발 : 서울신문 1948. 5. 21 = 99 
  항거하의 제주도 선거 / 전도민의 불과 5할만 투표 : 우리신문 1948. 5. 21 = 99 
  제주에 응원대 증파 : 자유신문 1948. 5. 21 = 99 
  제주도 소요 확대 / 진압까지 상당시일 소요 : 한성일보 1948. 5. 22 = 99 
  악화일로의 제주사태 / 통신도 두절 / 경비대 전원철거 / 정예 경관대를 파견 : 동광신문 1948. 5. 23 = 100 
  제주도에 사법관을 특파 : 한성일보 1948. 5. 23 = 101 
  구국전선의 선봉대로 단선단정 분쇄에 사투 / 반동숙청에 영웅적 혈전 벌어진 제주도(상) / 조국을 방어하기 위하여 민족의 선두에서 사투하는 제주도 애국동포를 구출하자! : 노력인민 1948. 5. 25 = 101 
  무력으로 해결은 부당 / 제주도 사건에 각계에서 성명 : 조선중앙 1948. 5. 25 = 103 
  제주에 사법관 파견 : 자유신문 1948. 5. 26 = 103 
  법조 기자단 시찰행 : 자유신문 1948. 5 26 = 104 
  무력해결 부당 / 제주사건에 각계 담 : 조선중앙 1948. 5. 26 = 104 
  북제주 양구(兩區)는 재선거 / 래(來) 23일 시행 / 딘 장관 발표 : 조선일보 1948. 5. 27 = 104 
  무효된 북제주 선거 / 6월 26일 재개 : 한성일보 1948. 5. 27 = 105 
  제주행 회피로 철경(鐵警) 군재(軍裁) 회부 : 한성일보 1948 . 5. 27 = 105 
  제주도 소요 더욱 확대 / 4월이래 사망자만 160 : 대동신문 1948. 5. 29 = 106 
  제주행 회피 철경 / 군재(軍裁)서 집유(執猶) 언도 : 조선일보 1948. 5. 29 = 106 
  제주도 사건에 반일(反日) 과학(科學)에서 성명 : 조선중앙 1948. 5. 29 = 106 
  조(趙)부장 부산에 / 30일 귀임 예정 : 한성일보 1948. 5. 29 = 107 
1948년 6월 
  제주 하곡수집 철폐한다 / 제주도 비상경비사령관 발표 : 경향신문 1948. 6. 3 = 108 
  조국의 식민지화 분쇄전에 전도 순국 열정으로 작렬! / 반동숙청에 영웅적 혈전 벌어진 제주도(중) / 조국을 방어하기 위하여 민족의 선두에서 사투하는 제주도 애국동포를 구출하자! / 망국단독정부를 결사 분쇄하자! : 노력인민 1948. 6. 3 = 108 
  제주 경주 양처 소요에 대청원 60여 명 순사(殉死) : 대동신문 1948. 6. 3 = 113 
  소요 진압에 노력 / 제주사태에 유(柳)부장 담 : 서울신문 1948. 6. 3 = 113 
  저지리 1부락 전소 / 700 이재민 산중에서 노숙 : 조선일보 1948. 6. 3 = 114 
  불원 진정 기대 : 현대일보 1948. 6. 3 = 114 
  제주법원장 대리에 양원일(梁元一)판사가 취임 : 경향신문 1948. 6. 4 = 115 
  포로 귀순 3,000 쌍방 사망자 9명 / 유(柳)통위부장 제주폭동 사건 진상 담 : 동아일보 1948. 6. 4 = 115 
  불안 속의 제주 / 진압시기는 속단 불허 : 서울신문 1948. 6. 4 = 116 
  아직도 해결의 서광없는 제주도 사태 이모저모 : 서울신문 1948. 6. 4 = 116 
  4·3폭동 공판 / 사형 등을 구형 : 조선일보 1948. 6. 4 = 118 
  군은 작전, 경찰은 치안 / 소요 처리에 이참모총장 담 : 조선일보 1948. 6. 4 = 118 
  제주의 밤은 죽음의 거리 / 산간부락에는 끊임없이 총성이 은은 / 1읍 12면의 경찰지서 대부분이 피습 : 조선중앙 1948. 6. 4 = 119 
  사설 : 제주사태 수습에 대하여 : 조선일보 1948. 6. 5 = 119 
  인민군 사령부 소탕전 제주도에 전개 / 국경대(國警隊) 맹활동 : 동아일보 1948. 6. 5 = 121 
  전소(全燒) 부락도 다수 / 도로 교량은 모두 파괴 / 제주도 현지보고 : 한성일보 1948. 6. 5 = 121 
  보리는 익어 가는데 농부의 그림자도 안보이는 들판 / 상공에는 미군 기(機) 해안에는 미 군함(艦) / 제주도 현지보고 : 조선중앙 1948. 6. 6 = 122 
  최초의 출진(出陣)이 동족에겐 유감 / 민중동맹 담 : 조선중앙 1948. 6. 6 = 123 
  제주도 사건과 각 정당들의 태도 : 조선중앙 1948. 6. 8 = 123 
  사건원인엔 흥미없다 나의 사명은 진압 뿐 / 최고지휘관 브라운 대좌 기자단에 답변 / 제주 현지보고 : 조선중앙 1948. 6. 8 = 124 
  부녀자 폭행 후 생매(生埋)까지 / 이렇다, 제주도의 인민항쟁 진상 / 조(趙)경무부장 담 : 경향신문 1948. 6. 9 = 125 
  귀순권고에 혈서반항 / 경비대가 말하는 인민해방군 / 제주도 사건 현지보고(4) : 조선일보 1948. 6. 9 = 126 
  불안에 싸인 그들, 묵묵하고 활기없다 / 제주 현지보고 : 조선중앙 1948. 6. 10 = 127 
  재선(再選) 불능 상태 / 제주선관위 재연기 요청 : 조선중앙 1948. 6. 10 = 128 
  살상 말라 / 학병거맹(學兵拒盟)서 담화 : 조선중앙 1948. 6. 10 = 129 
  제주도에 이변(異變) / 미인(美人) 살인미수사건 : 한성일보 1948. 6. 11 = 129 
  망국 단선단정 분쇄전의 영웅적 혈전 벌어진 제주도(하) : 노련인민 1948. 6. 11 = 129 
  조선의 축도판(縮圖阪) / 원인 제거가 급선무 / 제주 소요 현지보고 : 조선중앙 1948. 6. 11 = 132 
  국방경비대 계속 활약 / 제주 폭도 소탕전 진행 : 현대일보 1948. 6. 11 = 133 
  제주지사(濟州支社)에서 소요 이재민 구호 : 경향신문 1948. 6. 12 = 133 
  무장 경관 800여 / 날이 갈수록 살기 창일 / 제주도 현지보고 : 조선중앙 1948. 6. 12 = 133 
  북제주의 선거 무기 연기키로 : 서울신문 1948. 6. 13 = 134 
  감정의 악화가 금반 사건의 도화선 / 제주도 현지보고 : 조선중앙 1948. 6. 13 = 135 
  제주도 사건 원인 / 첫째는 민심과 경찰 이반(離反) / 해결에는 무력보다 행정력 / 현지 시찰한 박(朴)검찰관 담 : 경향신문 1948. 6. 15 = 136 
  덕망자 등용하라 / 박 검찰관 제주시찰 담 / 폭도는 일본서 돌아온 공당원(共黨員) : 동아일보 1948. 6. 15 = 136 
  사태수습은 어렵겠다 / 박(朴)검찰관의 제주도 소요 시찰담 : 서울신문 1948. 6. 15 = 137 
  일인(日人) 내조(來朝), 제주도 문제에 / 기자회서 하지 중장에 공개 질문장 : 조선중앙 1948. 6. 15 = 137 
  포착(捕捉)만 3천 수백 / 군은 동족애를 견지한다 / 제주도 사건 통위부 발표 : 경향신문 1948. 6. 16 = 138 
  악질관리 행동이 큰 원인 / 이(李)검찰총장 제주도사건 담 : 대동신문 1948. 6. 16 = 139 
  관공리의 개편뿐 / 제주도 사건에 이인씨 담 : 서울신문 1948. 6. 16 = 139 
  제주도 전과 / 통위부서 발표 : 서울신문 1948. 6. 16 = 140 
  요는 민심수습 / 관민이반이 한 원인 / 제주 소요에 이(李)검찰총장 담 : 자유신문 1948. 6. 16 = 140 
  관공리의 부패가 원인 / 제주사건에 이인 검찰총장 견해 : 조선일보 1948. 6. 16 = 141 
  43건을 판결 / 제주도로 파견된 판검사 활동 : 대동신문 1948. 6. 17 = 141 
  제주폭도 소탕 성과 : 동아일보 1948. 6. 17 = 141 
  강대해진 인민위원회 / 경찰과 청년단의 과오도 일인(一因) / 제주도 사건에 양원일판사 담 : 조선일보 1948. 6. 17 = 142 
  경찰 가혹으로 민심 이탈 / 급속 수습 못하면 또다른 민요(民擾) 발생 / 양원일 심판관 제주도 시찰담 : 조선중앙 1948. 6. 17 = 142 
  지서 습격한 경비대원 제주도에서 32명을 체포 : 조선중앙 1948. 6. 17 = 143 
  ‘동요기세’농후 / 산중폭도도 군의 온정에 감격 / 제주사건에 통위부 발표 : 경향신문 1948. 6. 18 = 144 
  면소(面所) 학교 개문(開門) / 경관은 ‘고문철폐’를 서약 / 제주사태 점차 평온 : 자유신문 1948. 6. 18 = 144 
  제주경찰청장 정직 처분 : 한성일보 1948. 6. 18 = 145 
  제주경찰 신기구 / 감찰청을 경찰청으로 / 2서(署) 신설하고 대량 증원 : 동아일보 1948. 6. 19 = 145 
  경비대 숙사서 박진경 대령 암살 / 딘 장관, 직접 조사차 제주행 : 조선일보 1948. 6. 19 = 145 
  제주사건에 인공당(人共黨)서 담화 : 조선중앙 1948. 6. 19 = 146 
  대청 담화 / 질서유지 위해 희생뿐 / 제주청년단에 심판관 담 유감 : 대동신문 1948. 6. 20 = 146 
  폭동하는 제주 수습에 거물 청장 배치 / 김(金) 8관구 부청장 불일 부임(赴任) : 동광신문 1948. 6. 20 = 146 
  경비대 박대령 제주도서 피습 절명 : 조선중앙 1948. 6. 20 = 147 
  박대령 시체싣고 딘 장관 즉일 상경 : 조선중앙 1948. 6. 20 = 148 
  딘 장관 귀임 : 현대일보 1948. 6. 20 = 148 
  박대령 장의(葬儀) / 오늘 부대장 집행 : 자유신문 1948. 6. 22 = 148 
  국경대는 건투(建鬪) / 대내(隊內) 제 사건은 조사중 / 유(柳)통일부장 담 : 자유신문 1948. 6. 22 = 149 
  평화적인 진압을 요청 / 제주출신 제우회(濟友會)에서 건의 : 자유신문 1948. 6. 22 = 149 
  정치적 환경 개혁만이 제주사건 해결의 열쇠 / 제우회서 요로에 청원서 제출 : 조선일보 1948. 6. 22 = 149 
  살상 적게 하고 사태수습할 것이 목적 / 유(柳)통위부장 담 : 조선중앙 1948. 6. 22 = 150 
  고 박대령 부대장(部隊葬) 거행 / 후임 대장에는 최경록(崔慶祿)씨 / 통위부서 기자회견 : 한성일보 1948. 6. 22 = 151 
  고(故) 박대령 부대장(部隊葬) 엄숙 집행 : 경향신문 1948. 6. 23 = 151 
  경비선 월북은 사실 / 통위부장 기자단 회견 담 : 동광신문 1948. 6. 23 = 152 
  폭도 귀순을 가장(假裝) / 장기항전을 기도 / 최(崔)경감 제주도 시찰 담 : 동아일보 1948. 6. 24 = 152 
  제주 폭동의 근본 원인은 공산당의 음모 / 은위(恩威) 병행으로 수습에 노력 / 조 경무부장 담화 발표 : 현대일보 1948. 6. 24 = 153 
  이(李)검찰총장 제주 시찰행 : 동아일보 1948. 6. 27 = 154 
  경관 2명 또 피살 / 제주소요 언제 해결? : 조선중앙 1948. 6. 27 = 155 
  제주도 인민대중에게 드림 / 미제의 분할침략으로부터 조국의 민족주권을 방어하기 위하여 싸우는 인민들에게 영광을 드리자 / 남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서한 : 노력인민 1948. 6. 28 = 155 
1948년 7월 
  각지 제주도인 궐기 / 평화적 해결을 당국에 진정 : 조선중앙 1948. 7. 1 = 158 
  제주사건 수습 / 광주제우회에서 제주청장에 청원 : 조선일보 1948. 7. 2 = 158 
  제주도 문제를 제우회(濟友會)에서 건의 : 한성일보 1948. 7. 3 = 159 
  제주치안은 회복 / 브라운 사령관 시찰담 : 현대일보 1948. 7. 3 = 159 
  제주작전 대체로 종결 / 민심수습은 치안당국 책임 : 조선일보 1948. 7. 4 = 160 
  어획금지 등 해제 / 제주치안 점차 회복 : 대동신문 1948. 7. 6 = 160 
  예상보다 양호 / 박대령 살해혐의자 9명 체포 / 이인검찰총장 제주도 시찰담 : 조선일보 1948. 7. 6 = 161 
  철경(鐵警) 제주응원대 / 폭도소탕하고 무기 등 압수 : 동아일보 1948. 7. 7 = 161 
  제주대책위회(委會) / 제우회(濟友會)에서 제안 토의 : 한성일보 1948. 7. 7 = 162 
  총검 버리고 직장으로 / 경비대 제주 신(新) 사령관 담화 : 대동신문 1948. 7. 8 = 162 
  제주사건을 평화적으로 해결 희구(希求) / 부산 제우회(濟友會) 요로에 진정 : 한성일보 1948. 7. 9 = 162 
  제주도에 제2차 응원대 파견 / 철도관구청서 : 조선일보 1948. 7. 10 = 163 
  제주 토벌대 제3차 부대 출발 : 동광신문 1948. 7. 11 = 163 
  제주는 울음의 바다 / 죽도 살도 못하는 그들의 심경 / 부락민은 복구공사에 동원 / 제주도 현지보고 : 조선중앙 1948. 7. 11 = 163 
  경찰 불법숙청이 급무 / 무력만으론 해결 불능 / 김청장 최대장 방침 천명 : 조선중앙 1948. 7. 11 = 164 
  제주 제3차 토벌대 출발 : 조선중앙 1948. 7. 11 = 165 
  박(朴)대령 살해범 군법재판 개정 : 한성일보 1948. 7. 11 = 165 
  제주도 사태는 일단락 / 통위부 이(李)참모총장 담 : 동아일보 1948. 7. 13 = 165 
  청년없는 마을들, 도민의 회의감은 여전 / 그 후의 제주도 : 서울신문 1948. 7. 13 = 166 
  군기(軍紀) 숙청 강화 / 박대령 살해범에 중형 / 이(李)참모총장 담 : 자유신문 1948. 7. 13 = 166 
  제주도 지사에 임관호씨 취임 : 동아일보 1948. 7. 14 = 167 
  민족의 비극 제주사건, 평화해결 바라오 / 제주출신 학생들 진정 : 서울신문 1948. 7. 16 = 167 
  양인 사망 292명 / 가옥 소실이 400여호 / 제주사건 종합보고 : 조선중앙 1948. 7. 16 = 168 
  제주사태 변모 / 사형(私刑)의 복수전이 자행 : 조선중앙 1948. 7. 17 = 169 
  목포 ∼ 제주간 여행증 폐지 : 조선중앙 1948. 7. 17 = 169 
  제주도 이모저모 / 양기하(梁基河) : 경향신문 1948. 7. 18 = 169 
  동란의 제주도 사건 전무 / 이도(吏道) 부패가 원인 / 사설단체의 가렴주구도 성행 : 서울신문 1948. 7. 20 = 171 
  제주사건 / 경찰의 무장해제 등 소요측서 조건을 제출? : 조선일보 1948. 7. 20 = 174 
  제주도 사건 그 후의 변모 / 학교는 둔영(屯營)으로 / 학동들까지 ‘산사람편’ : 조선중앙 1948. 7. 20 = 174 
  민심 수습 / 오리(汚吏) 단속 / 제주지사 소신 담 : 국제신문 1948. 7. 21 = 175 
  요즘 제주사태 / 아직도 불안한 정세 : 조선중앙 1948. 7. 21 = 176 
  여전히 항전 계속 / 사령부에는 400여 명의 폭도 수용 / 제주 소요 속보 : 한성일보 1948. 7. 21 = 176 
  박(朴)대령 살해용의범 불일 군법회의 회부 : 국제신문 1948. 7. 23 = 177 
  제주도 그 후 사태 / 유기시체 처처서 발견 : 조선중앙 1948. 7. 23 = 177 
  선처 않으면 재발 위험 / 제주사건 대위회(對委會)에서 성명 : 서울신문 1948. 7. 24 = 178 
  제주도 사건 진상조사단 20여 정당 사회단체로 구성 : 조선중앙 1948. 7. 24 = 179 
  제주도 사건 대책위원회 성명 : 조선중앙 1948. 7. 24 = 179 
  군형(軍刑)으로 4명 총살 / 제주사건 관계의 경비대원들 : 국제신문 1948. 7. 28 = 181 
  제주 파견 연대 귀환 : 현대일보 1948. 7. 28 = 181 
  동란의 제주도 현지답사(1) / 무력만으론 해결불능 / 최(崔)국경비사령관 기자단에 역설 : 조선중앙 1948. 7. 29 = 181 
  동란의 제주 현지답사(2) / 산사람 요구는 경찰의 무장해제 / 김봉호 경찰청장과 일문일답 : 조선중앙 1948. 7. 30 = 183 
1948년 8월 
  관공리의 부패가 주인(主因) / 제주사태에 원(元)검사 시찰담 : 국제신문 1948. 8. 5 = 185 
  제주도 사태 / 사람없는 마을 / 유격대는 다시 공작 개시 / 김(金) 3대장 담 : 조선중앙 1948. 8 5 = 185 
  소요 점차로 미약 / 원택연(元澤淵) 부장검사 담 / 제주도 근황 : 한성일보 1948. 8. 5 = 186 
  제주도에 2차 응원대 파견 / 1관구청서 : 조선중앙 1948. 8. 7 = 186 
  무장한 산사람 다시 출몰 / 제주도 소요 아직도 불안정 : 조선중앙 1948. 8. 8 = 187 
  제주 관공서원 피검 / 구국투위(救國鬪委) 관계로 : 조선중앙 1948. 8. 8 = 187 
  경비대원 3명 총살형 집행 : 조선중앙 1948. 8. 8 = 187 
  박대령 암살사건 공판 / 9일 군기대사령부에서 개정 : 한성일보 1948. 8. 8 = 188 
  박(朴)대령 살해범 / 고등군법회의 개정 : 국제신문 1948. 8. 10 = 188 
  박(朴)대령 암살범 군법회의 : 경향신문 1948. 8. 11 = 189 
  제주관공서원에 벌금형 : 조선중앙 1948. 8. 11 = 189 
  증인으로 유동열씨 지명 / 박대령 암살공판 제3일 : 한성일보 1948. 8.12 = 189 
  박(朴)대령 암살범 군법회의 계속 : 경향신문 1948. 8. 14 = 190 
  “지령받은 일 없소” / 박대령 살해범 3회 공판정서 진술 : 국제신문 1948. 8. 14 = 190 
  박대령은 도민을 무조건 탄압 / 문상길 중위 진술 / 박대령 암살 제4회 공판 : 조선중앙 1948. 8. 14 = 190 
  사건심문을 계속 / 박진경 암살공판 제4일 : 한성일보 1948. 8. 14 = 191 
  총살 체형 등 언도 / 박(朴)대령 암살범 고등군법회의 : 경향신문 1984. 8. 15 = 192 
  제주 경계 다시 강화 / 지하선거 실시도 사실 : 조선중앙 1948. 8. 15 = 193 
  4명에 총살형 / 박대령 암살사건 언도 : 조선중앙 1948. 8. 15 = 193 
  4명에게 사형 언도 / 박대령 군법회의 일단락 / 암살공판 : 한성일보 1948. 8. 15 = 194 
  쌀이란 구경도 못하는 재주 / 물가고로 도민의 생활고는 극도 / 학교는 교원 없어 황폐 : 조선중앙 1948. 8. 18 = 195 
  총살형은 혹심(酷甚) / 요로에 감형 진정서 / 박대령의 암살공판 : 한성일보 1948. 8. 19 = 196 
  문중위 총살형 언도 / 각계에서 철회를 요망 : 조선중앙 1948. 8. 20 = 197 
  지서장 또 피살 / 제주소요의 여파 : 조선일보 1948. 8. 21 = 197 
  해상에 괴선이 기총쏘며 도주 : 한성일보 1948. 8. 21 = 198 
  제주 검거 977명 : 국제신문 1948. 8. 24 = 198 
  목포 ∼ 제주 여행증제 부활 : 동광신문 1948. 8. 25 = 198 
  인민대표 대회 제2일 김달삼(金達三)씨 등단하자 박수우뢰 : 조선중앙 1948. 8. 25 = 199 
  박대령 살해사건 총살형은 부당 / 법학가동맹 견해 : 조선일보 1948. 8. 27 = 199 
  제주도 상(尙) 미평온 / 현지에서 온 두 인사의 말 : 국제신문 1948. 8. 28 = 199 
  문중위 등의 총살형 철회 요구 / 민애청과 법학자동맹 성명 : 조선중앙 1948. 8. 28 = 200 
  박대령 살범(殺犯) 감형하라 / 인권옹호연맹에서 성명 : 서울신문 1948. 8. 29 = 200 
  문(文)중위 등의 총살형 보류 / 감형여부 주목 : 조선일보 1948. 8. 29 = 201 
  제주사건 진상조사단 / 제우회(濟友會)에서 파견 : 조선일보 1948. 8. 29 = 201 
  경관 응원대 제주도에 파견 : 조선중앙 1948. 8. 29 = 201 
  제주도 사건 조사단 출발 : 한성일보 1948. 8. 29 = 202 
  문중위 등의 총살형 철회하라 / 신진당서 담화 : 조선중앙 1948. 8. 31 = 202 
1948년 9월 
  문중위 사형 반대 삐라! : 독립신보 1948. 9. 1 = 203 
  응원경관대 800명 도착 / 동포상잔 비극 또 다시 전개 / 제주사건 : 조선중앙 1948. 9. 1 = 203 
  문중위 등 감형하라 / 기독교 민주동맹 주장 : 조선중앙 1948. 9. 1 = 204 
  문중위 등 행위는 민족정기에서 / 사형 취소하라 / 재일조련(在日朝聯)서울위(委)서도 성명 : 조선중앙 1948. 9. 1 = 204 
  최대 토벌전 전개? / 특별 응원경관대 도착 / 제주도는 언제나 평화지가 되나? : 동광신문 1948. 9. 2 = 204 
  제주조사단 목포서 지체 / 여행증명 불여의(不如意)로 : 조선중앙 1948. 9. 2 = 205 
  제주 소요관계 200명 광주지심(地審)에 : 독립신보 1948. 9. 3 = 205 
  제주사태 악화 / ‘토벌전’을 재연? : 서울신문 1948. 9. 3 = 205 
  제주사건 토벌전 재개? / 상잔(相殘) 화근은 무엇 / 무장응원대 파견설의 귀추 주목 : 조선일보 1948. 9. 3 = 206 
  못가게 하는 이유는? / 제주 현지조사단 경찰이 승선제지 : 조선중앙 1948. 9. 3 = 207 
  문중위 등 총살형 즉시 철회하라 / 민중동맹 담화 : 조선중앙 1948. 9. 3 = 208 
  사형은 부당 / 근대당(勤大黨) 학병거부자연맹서도 성명 : 조선중앙 1948. 9. 3 = 208 
  제주 토벌 중지하고 문중위 등 사형 철회하라 / 민전 인공 청우 담화 : 조선중앙 1948. 9. 4 = 208 
  제주토벌 중지 요망 / 교협(敎協)에서 담화 발표 : 서울신문 1948. 9. 5 = 208 
  제주사태 긴급을 호소 / 출항제지로 현지조사단 분기(奮起) : 조선일보 1948. 9. 5 = 209 
  제주도 사태에 3개 단체 성명 : 조선일보 1948. 9. 5 = 209 
  제주도 증원부대 파견에 여론 비등 / 평화적으로 해결하라 / 각 정당 단체서 성명 발표 : 조선중앙 1948. 9. 5 = 210 
  목포경찰서 갈 길을 막아 / 제주진상조사단 허귀(虛歸) : 국제신문 1948. 9. 7 = 211 
  30만 제주 동포에 민족적인 구원을 재(再) 호소 / 제주도사건 진상조사단 성명 : 독립신보 1948. 9. 7 = 211 
  선무공작으로 민심수습 / 제주도 사태와 군(軍) 방침 / 제5여단 참모장 담 : 동아일보 1948. 9. 7 = 213 
  제주에 응원대 / 토벌전 개시? : 서울신문 1948. 9. 7 = 213 
  비극의 섬 제주 / ‘토벌’즉시 중지 요망 / 승선 제지된 조사단 귀경 성명 : 서울신문 1948. 9. 7 = 213 
  동족상잔 중지하라 / 12정당 단체 성명 발표 : 조선중앙 1948. 9. 7 = 214 
  문중위 등 사형 반대 / 교협(敎協)서 담화 : 조선중앙 1948. 9. 7 = 214 
  제주진상조사단 승선 금지로 귀경 : 한성일보 1948. 9. 7 = 214 
  제주도 사태에 민주독립당 성명 : 국제신문 1948. 9. 8 = 215 
  무장경관대의 증파 / 제주도 유혈 참극 예고! / 조사단 경찰 제지로 여론 점고(漸高) : 독립신보 1948. 9. 8 = 215 
  제주 소요 사건 기록 / 무려 5,000여 정(丁) / 광주법 원서 정식 수리 : 동광신문 1948. 9. 8 = 216 
  제주도민 무력탄압 중지하라 / 유련(儒聯) 민애청 사맹(寫盟)서 성명 : 독립신보 1948. 9. 9 = 217 
  사설 : 제주도 사건 재검토 : 조선일보 1948. 9. 9 = 217 
  제주사태 은폐말고 조사단 행동 자유주라 / 인공(人共) 기민(基民) 유련(儒聯) 음맹(音盟) 담화 : 조선중앙 1948. 9. 10 = 218 
  제주사건 관계자 40명을 또 이송 : 국제신문 1948. 9. 11 = 219 
  제주도 사건 평화해결 요망 / 인공경기당부 불청(佛靑) 담화 : 조선중앙 1948. 9. 11 = 219 
  제주 증파 경관 즉시 철회하라 / 민중동맹 담화 : 조선중앙 1948. 9. 12 = 219 
  13세 소년을 고문치사 / 제주도에 일어난 경관 만행 : 서울신문 1948. 9. 15 = 219 
  중지당한 제주도 조사단 / 윤장관에 서한 : 조선중앙 1948. 9. 15 = 220 
  구장(區長) 대청원(大靑員) 피살 / 제주사태 다시 험악화 : 서울신문 1948. 9. 22 = 220 
  제주사건 문(文)중위 등 총살형 집행 : 국제신문 1948. 9. 24 = 220 
  집행직전에 신(申), 배(裵)만 특사 감형 : 경향신문 1948. 9. 25 = 221 
  제주 소요사건 래(來) 1일부터 공판 : 동광신문 1948. 9. 25 = 221 
  총살의 그 찰나 / 비창(悲愴)한 유언 : 자유신문 1948. 9. 25 = 221 
  비장한 유언 / 문(文)·손(孫) 양명(兩名) 종용(從容)히 취사(取死) / 박대령 암살범 총살형 목격기 : 서울신문 1948. 9. 26 = 222
  악질경관 등 원인 / 제주사태와 춘천 공보원장 담 : 서울신문 1948. 9. 26 = 223 
1948년 10월 
  제주 다시 폭동 / 쌍방간의 교전을 전개 : 자유신문 1948. 10. 2 = 225 
  13구장(區長)도 총사직 : 국제신문 1948. 10. 3 = 226 
  5명이 사상 / 제주서 경관대 귀경 : 동아일보 1948. 10. 3 = 226 
  치안에 적신호 / 제주도 수도청 응원대 급파 : 조선일보 1948. 10. 3 = 226 
  경찰과 폭도 접전 / 제주도 사태 재악화 : 한성일보 1948. 10. 3 = 227 
  제주도 폭동 대비 작일 군경대를 급파 : 한성일보 1948. 10. 3 = 227 
  제주사태 재 악화 / 경관과 폭도간 교전 : 현대일보 1948. 10. 3 = 227 
  제9경찰청장 경질 : 조선일보 1948. 10. 6 = 228 
  제주 순직 경관 유해 안착(安着) : 국제신문 1948. 10. 7 = 228 
  예상보다 평온 / 제주도서 귀임한 정(丁)대령 담 : 국제신문 1948. 10. 7 = 229 
  2명에 사형 / 제주 4·3사건 구형 : 서울신문 1948. 10. 7 = 229 
  제주 순직경관 고별식을 거행 : 국제신문 1948. 10. 9 = 230 
  제주 4·3사건 계속 공판 구형 : 조선일보 1948. 10. 12 = 230 
  제주 근해에 괴장함(怪潛艦) / 함미(艦尾)에는 인공기 게양 : 동아일보 1948. 10. 13 = 230 
  제주 각처에 인공기 : 서울신문 1948. 10. 13 = 231 
  제주사건 공판 완결 / 최고 무기징역 언도 : 동광신문 1948. 10. 15 = 231 
  접전 후에 격퇴 / 사상자 다수, 제주사태 험악 : 조선일보 1948. 10. 15 = 232 
  폭도측 병기부를 발견 / 쌍방간 치열한 산악전 : 조선일보 1948. 10. 16 = 232 
  불안은 극도 / 독촉지부장 서한 : 조선일보 1948. 10. 16 = 233 
  제주사건 언도 : 국제신문 1948. 10. 17 = 233 
  제주읍 관공서에 파업강요 협박장 : 조선일보 1948. 10. 19 = 234 
  제주사건 공판에 최고 15년형 구형 : 자유신문 1948. 10. 20 = 234 
  무허가 통행금지 / 제주 송(宋) 연대장 포고 : 조선일보 1948. 10. 20 = 235 
  제주서 또 교전 / 폭도 4명이 피살 : 국제신문 1948. 10. 21 = 235 
  제주사건 언도 연기 : 동아일보 1948. 10. 27 = 236 
  제주도 의연 소란 / 군 당국 근일 소탕작전 개시호(乎) : 국제신문 1948. 10. 28 = 236 
  제주 무장폭도, 순경 등을 살해 : 국제신문 1948. 10. 29 = 236 
  제주읍 등에도 내습 : 국제신문 1948. 10. 29 = 237 
  제주서도 교전 빈번 / 아라리서 교전 : 조선일보 1948. 10. 30 = 237 
  승객 버스 피습 : 조선일보 1948. 10. 30 = 237 
1948년 11월 
  제주서 소탕전 / 폭도 수십명을 사살 : 국제신문 1948. 11. 2 = 239 
  민보단은 경찰 일익(一翼) / 조직완료는 경하사(慶賀事) / 수도청장 담 : 한성일보 1948. 11. 2 = 239 
  현지질서 회복 / 제주작전서도 포로 200여 / 반란사건 속보 국방부서 발표 : 조선일보 1948. 11. 3 = 240 
  제주인민군 사령 이덕구 등을 사살 : 국제신문 1948. 11. 6 = 241 
  당중앙위원회 메시지에 답함 / 학살과 폭압에 항(抗)하며 제주도 인민항쟁 선두에 선 당제주도위원회 메시지 : 노력인민 1948. 11. 7 = 241 
  제주도서 김씨 피살 : 한성일보 1948. 11. 11 = 243 
  서귀포 방화 폭동 / 양민 가장(假裝) 폭도 100명 사살 : 경향신문 1948. 11. 12 = 244 
  폭도 섬멸은 시간문제 / 제주연대장 송(宋)소령 담화 : 자유신문 1948. 11. 12 = 244 
  폭도 서귀포발전소 내습 : 동아일보 1948. 11. 14 = 245 
  제주도 파견한 통학(統學)간부 피살 : 독립신문 1948. 11. 18 = 245 
  3특경(特警) 1계급 승진 / 제주서의 수훈 표창 : 한성일보 1948. 11. 19 = 245 
  제주계엄령은 무근(無根) : 조선일보 1948. 11. 20 = 246 
  군관계 기사 사전에 검열 : 국제신문 1948. 11. 21 = 246 
  언론억압 아니다 / 군 기사 검열에 군 당국 담 : 국제신문 1948. 11. 23 = 246 
  폭도 88명 사살 / 제주도 각처서 잔적을 소탕 : 조선일보 1948. 11. 26 = 247 
  폭도 79명을 사살 / 북제주군서 국군 소탕전 : 독립신문 1948. 11. 27 = 247 
  이 국무총리 제주연대 격려 방송 : 자유신문 1948. 11. 27 = 247 
  제주 4·3사건 공판 : 국제신문 1948. 11. 30 = 247 
  제주에 계엄령 / 선무공작의 성과 다대 : 자유신문 1948. 11. 30 = 248 
1948년 12월 
  제주 진압 진척 / 폭도 속속 체포 : 한성일보 1948. 12. 2 = 249 
  식량 노획에 인한 적의 타격 심대 / 제주방면 토벌작전 : 동광신문 1948. 12. 3 = 249 
  제주사건 언도 / 최고 무기, 최하 3년 / 제7회 : 동광신문 1948. 12. 3 = 250 
  폭도 본거 포위 / 제주에서 230명 포로 : 자유신문 1948. 12. 3 = 250 
  폭도섬멸에 공훈세우고 / 김(金)중대장 외 전원 개선 / 제8관구청 제주응원부대 : 동광신문 1948. 12. 4 = 251 
  맹렬히 토벌 중 / 제주도내 반도 소탕은 계속 : 서울신문 1948. 12. 5 = 251 
  안도하라! 국군은 엄존 / 반란사건의 전모 / 이(李)국방장관 국회서 설명 : 국제신문 1948. 12. 9 = 251 
  국내 반란사건 종합 집계 / 잔존 반도 약 300 / 숙청은 민족 양심에 호소 : 대동신문 1948. 12. 9 = 252 
  제주사태는 점차 호전, 1만여 재민 구호가 긴급 / 임제주지사가 말하는 도내 실정 : 서울신문 1948. 12. 9 = 253 
  제주 등 잔도(殘徒) 소수 / 3개월 내에 완전 진압 / 이 국무총리 반란경위 보고 : 한성일보 1948. 12. 10 = 254 
  제주 4·3사건 공판 재개 : 조선중앙 1948. 12. 12 = 254 
  제주소탕전 진척 / 창 가진 시민 3,000명도 협력! : 대동신문 1948. 12. 17 = 255 
  제주사건 9회 공판 / 강성인(姜性仁)에 무기 언도 : 독립신문 1948. 12. 18 = 255 
  혼돈은 언제 종식되나 / 함양·북제주 등지에 반도 내습(來襲) : 자유신문 1948. 12. 21 = 256 
  내무장관 증명서가 제주도 여행에 필요 : 서울신문 1948. 12. 23 = 256 
  제주4·3사건 계속 언도 : 조선중앙 1948. 12. 29 = 256 
  제주 파견 철경 귀환 : 조선중앙 1948. 12. 29 = 257 
  제주도 계엄령 31일로 해제 : 경향신문 1948. 12. 31 = 257 
  제주치안 점차 회복 / 계엄령도 금명간 해제 / 채(蔡)준장 담 : 국제신문 1948. 12. 31 = 257 
  제주사태 양호! 채(蔡)참모총장 담화 발표 : 대동신문 1948. 12. 31 = 258 
  제주사태 완전진압 / 도민의 협력도 다대 : 한성일보 1948. 12. 31 = 259 
1949년 1월 
  전(全) 제주 계엄령 31일 해제 : 조선중앙 1949. 1. 1 = 260 
  제주사건 공판 3개월만에 결심(結審) : 조선중앙 1949. 1. 1 = 260 
  최고에 무기 징역 / 제주 4·3사건 : 한성일보 1949. 1. 3 = 261 
  제주도청 전소 / 원인은 조사 중 : 조선중앙 1949. 1. 6 = 261 
  전소설 비상사령부 부인 : 조선중앙 1949. 1. 6 = 261 
  국적불명의 잠수함 / 제주도 근해에 출현 : 동광신문 1949. 1. 7 = 262 
  제주평정부대를 / 목포 시위(市委)의 위로 : 동광신문 1949. 1. 7 = 262 
  제주 명덕리서 격전! 아직도 계속되는 한라산 전투 : 독립신문 1949. 1. 12 = 262 
  제주사태 재악화 / 오용국 의원 현지시찰 담 : 조선일보 1949. 1. 12 = 163 
  선무공작 보고 청취 / 미곡매상에 경찰력 행사는 불가 / 신년벽두의 첫 국회 : 조선중앙 1949. 1. 12 = 263 
  군(軍)의 기사는 헌병서 검열 : 조선중앙 1949. 1. 15 = 264 
  신(申)내부장관 제주 부산 등 시찰 : 동아일보 1949. 1. 16 = 264 
  공산당에 주민들은 목침(木枕) 방망이 들고 대항 / 제주도 시찰한 신(申)내무장관 담 : 경향신문 1949. 1. 18 = 265 
  제주도 등 시찰 / 신성모 내무장관 귀경 담화 : 조선중앙 1949. 1. 18 = 265 
  제주검사 봉변 : 경향신문 1949. 1. 20 = 266 
  대통령령 제50호로 제주에 2개 서(署) 증치 : 자유신문 1949. 1. 20 = 266 
  소지(蘇紙), 제주도 근해 잠수함설 부인 : 동광신문 1949. 1. 22 = 267 
1949년 2월 
  제주에 식량부족 / 본도서 4,000여 석 원조 : 동광신문 1949. 2. 1 = 268 
  제주서 육해공 공동작전 / 사살이 360, 포로 130명 : 조선중앙 1949. 2. 9 = 268 
  지리산 등지의 폭도 / 근일 완전소탕 개시 : 경향신문 1949. 2. 15 = 269 
  사태는 호전 일로 / 남제주지사의 도내 상황 담 : 대동신문 1949. 2. 18 = 269 
  평화통일을 염원 / 제주사태는 3월까지는 결말 / 이(李)참모장 광주서 담화 : 대동신문 1949. 2. 19 = 270 
  34명을 사살 / 제주서 폭도 토벌 : 대동신문 1949. 2. 20 = 270 
1949년 3월 
  준법정신을 기만 / 부임검사 또 피검 / 소속장관의 사전연락이란 말 뿐 : 경향신문 1949. 3. 1 = 271 
  양(梁)검사 체포 해제를 시달 : 경향신문 1949. 3. 4 = 272 
  경찰이 검사를 체포 / 제주서(濟州署)서 : 조선중앙 1949. 3. 4 = 272 
  2만여 호가 회진(灰塵) / 400부락이 105부락으로 감소 / 상경(上京) 대표가 말하는 제주도 : 조선중앙 1949. 3. 4 = 273 
  검경(檢警)간 기사문제에 김효석 내무차관 담화 발표 : 조선중앙 1949. 3. 6 = 273 
  제주도 대표 수습 진정(陳情)차 상경 : 조선중앙 1949. 3. 10 = 274 
  선무 군악대 / 18일 제주에 파견 : 동아일보 1949. 3. 12 = 274 
  비참한 제주도 / 진정(陳情) 온 홍(洪)씨 읍소 : 동아일보 1949. 3. 12 = 274 
  회신(灰燼)으로 화한 제주 / 살인·방화는 다반사 / 인민은 자유와 평화 애원 / 재경 제주도민대회 : 자유신문 1949. 3. 12 = 275 
  제주문제 해결책 / 정부 국회 합심 노력하라 / 민주 국민당 담 : 자유신문 1949. 3. 12 = 276 
  폭도소탕 강행 / 육군참모장 담화 : 경향신문 1949. 3. 15 = 277 
  국방부 발표 주간 전과 : 경향신문 1949. 3. 15 = 278 
  제주사태는 호전 / 이총리 목포서 답별 : 동광신문 1949. 3. 15 = 278 
  각처서 귀중한 희생 / 38선 제주 등 소탕전과 : 동아일보 1949. 3. 15 = 279 
  1부락 721호 파괴 / 도민의 생활상태는 극도 / 외인선교사가 말하는 제주 근황 : 독립신문 1949. 3. 16 = 279 
  폭도섬멸 주간 각지 전과 / 국방부 제2국 보도과 발표 : 동광신문 1949. 3. 16 = 280 
  먼저 민심수습 하라 / 이총리 제주도서 연설 : 자유신문 1949. 3. 16 = 280 
  제주민 구별 곤란 / 도 대표 - 번즈씨 회담 내용 : 자유신문 1949. 3. 16 = 281 
  날로 클로즈업 되는 제주도 / 부락 태반이 페허화 / 이(李) 신(申) 양 장관 현지를 시찰 : 조선일보 1949. 3. 16 = 281 
  충남 경찰국서 제주에 위문단 : 조선중앙 1949. 3. 16 = 283 
  잔도 섬멸을 개시 / 이국무총리 전남반란지 시찰담 : 경향신문 1949. 3. 17 = 283 
  반도섬멸은 불원 / 민중도 이젠 속지 않는다 / 이국무총리 제주시찰담 : 자유신문 1949. 3. 17 = 284 
  신(申)내무장관도 제주도 사태 보고 : 조선중앙 1949. 3. 17 = 285 
  민사처 설치 / 제주사령부에 : 조선중앙 1949. 3. 17 = 286 
  제주 구호물자 또 8트럭 발송 : 독립신문 1949. 3. 19 = 286 
  제주에 구호물자 / 의복 식량 등등 화차수송 : 동광신문 1949. 3. 19 = 286 
  육군 군악대 제주장병을 위문 : 조선일보 1949. 3. 19 = 287 
  반란으로 연기했던 제주 양 국의원(國議員) 선거 : 자유신문 1949. 3. 20 = 287 
  인적은 간 곳 없고 산촌엔 해풍만이 소슬 / 주(朱)국회의원 제주 답사기 : 자유신문 1949. 3. 20 = 287 
  사살 181명 등 제주 제2연대 발표 : 조선중앙 1949. 3. 20 = 289 
  군정 3년이 유죄 / 일부 오리(汚吏)에도 책임 있다 / 주(朱)국회의원 제주 답사기(2) : 자유신문 1949. 3. 22 = 289 
  1주간 소탕전과 / 군 보도과에서 종합발표 : 자유신문 1949. 3. 22 = 290 
  아직 ‘동정자’있다 / 그러나 사태는 점차 회복 / 신(申)장관의 제주사태 전망 : 조선일보 1949. 3. 22 = 290 
  험난한 한라산봉 / 군경 소탕전에 지장 막대 / 주(朱)국회의원 제주 답사기(3) : 자유신문 1949. 3. 23 = 291 
  기근 대책 세워주오 / 제주도민 당국에 진정 : 동아일보 1949. 3. 24 = 293 
  인심수습에 치중 / 복구에 관민 협력 지요(至要) / 주(朱)국회의원 제주 답사기(4) : 자유신문 1949. 3. 24 = 293 
  제주민 구제하고자 식량선(食糧船) 인천 출항 : 조선일보 1949. 3. 25 = 295 
  보안법 위반으로 양을(梁乙) 검사보 기소 : 경향신문 1949. 3. 26 = 295 
  제주도 평정 불원 / 반도소굴 한라산 소탕 : 자유신문 1949. 3. 26 = 295 
  제주도 현지 전람회 : 조선중앙 1949. 3. 29 = 296 
  군재(軍裁) 수형자 재심 / 66명 의원이 긴급 동의 : 조선중앙 1949. 3. 29 = 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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