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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읽는)백범일지 (87회 대출)

자료유형
단행본
개인저자
김구 , 1876-1947 도진순 都珍淳 , 편
서명 / 저자사항
(쉽게 읽는)백범일지 / 김구 지음; 도진순 엮어 옮김.
발행사항
파주 :   돌베개 ,   2005.  
형태사항
325 p. : 삽도, 도판, 연보 ; 23 cm.
ISBN
8971992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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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1 ▼a 김구 , ▼d 1876-1947 ▼0 AUTH(211009)220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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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소장처 청구기호 등록번호 도서상태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No. 1 소장처 중앙도서관/제3자료실(4층)/ 청구기호 953.06092 2005j 등록번호 111345373 (36회 대출) 도서상태 대출가능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B M
No. 2 소장처 중앙도서관/제3자료실(4층)/ 청구기호 953.06092 2005j 등록번호 111345374 (31회 대출) 도서상태 대출가능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B M
No. 3 소장처 세종학술정보원/인문자료실2(2층)/ 청구기호 953.06092 2005j 등록번호 151199179 (12회 대출) 도서상태 대출가능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B M ?
No. 소장처 청구기호 등록번호 도서상태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No. 1 소장처 중앙도서관/제3자료실(4층)/ 청구기호 953.06092 2005j 등록번호 111345373 (36회 대출) 도서상태 대출가능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B M
No. 2 소장처 중앙도서관/제3자료실(4층)/ 청구기호 953.06092 2005j 등록번호 111345374 (31회 대출) 도서상태 대출가능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B M
No. 소장처 청구기호 등록번호 도서상태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No. 1 소장처 세종학술정보원/인문자료실2(2층)/ 청구기호 953.06092 2005j 등록번호 151199179 (12회 대출) 도서상태 대출가능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B M ?

컨텐츠정보

책소개

'느낌표' 선정 <백범일지>의 주해자 도진순 교수가, 수년간의 집중적인 수정 집필과 역사적 고증, 학술적 보완을 거쳐 더욱 쉽고 알차게 엮어낸 '대중용 백범일지'다. 원본의 핵심을 잃지 않으면서도, 중복된 기록과 혼란스런 배열 상태를 정리해 백범의 생애와 시대의 흐름을 한눈에 이해할 수 있게 했다.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편안한 현대어로 교열했고, 100컷이 넘는 사진과 지도마다 상세하고 충실한 캡션을 달아 흥미로울 뿐 아니라 이해를 돕는 시각 자료를 꾸몄다. 평범에서 비범으로 성장해가는 백범의 내면세계가 일목요연하게 파악될 수 있도록 한 책.


정보제공 : Aladin

저자소개

김구(지은이)

본관은 안동(安東). 아명은 창암(昌巖), 본명은 김창수(金昌洙), 개명하여 김구(金龜, 金九), 법명은 원종(圓宗), 환속 후에는 김두래(金斗來)로 고쳤다. 호는 백범(白凡). 황해도 해주백운방(白雲坊) 텃골[基洞] 출신. 김순영(淳永)의 7대 독자이며, 어머니는 곽낙원(郭樂園)이다. 17세에 조선왕조 최후의 과거에 응시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벼슬자리를 사고 파는 부패된 세태에 울분을 참지 못하여 18세에 동학에 입도하였으며, 황해도 도유사(都有司)의 한 사람으로 뽑혀 제2대 교주 최시형(崔時亨)을 만났다. 19세에 팔봉접주(八峰接主)가 되어 동학군의 선봉장으로 해주성(海州城)을 공략하였는데, 이 사건으로 1895년 신천 안태훈(安泰勳)의 집에 은거하며, 당시 그의 아들 중근(重根)과도 함께 지냈다. 또한, 해서지방의 선비 고능선(高能善) 문하에서 훈도를 받았고, 항일의식을 참지 못하여 압록강을 건너 남만주 김이언(金利彦)의 의병부대에 몸담았다. 을미사변으로 충격을 받고 귀향을 결심, 1896년 2월 안악 치하포(&#40223;河浦)에서 쓰치다[土田讓亮]를 맨손으로 처단하여 21세의 의혈청년으로 국모의 원한을 푸는 첫 거사를 결행하였다. 그 해 5월 집에서 은신중 체포되어 해주감옥에 수감되었고, 7월 인천 감리영(監理營)에 이감되었으며, 다음해인 1897년 사형이 확정되었다. 사형직전에 집행정지령이 내려져 생명을 건질수 있었지만, 석방이 되지 않아 이듬해 봄에 탈옥하였다. 삼남일대를 떠돌다가 공주 마곡사에 입산하여 승려가 되어 원종(圓宗)이란 법명을 받았고, 1899년 서울 새절(봉원사)을 거쳐 평양 근교 대보산(大寶山)영천암(靈泉庵)의 주지가 되었다가 몇 달 만에 환속하였다. 수사망을 피해 다니면서도 황해도 장연에서 봉양학교(鳳陽學校) 설립을 비롯하여, 교단 일선에서 계몽·교화사업을 전개하였으며, 20대 후반에 기독교에 입교하여 진남포예수교회 에버트청년회(Evert靑年會) 총무로 일했다. 이런 가운데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상경하여 상동교회 지사들의 조약반대 전국대회에 참석하였으며, 이동녕(李東寧)·이준(李儁)·전덕기(全德基) 등과 을사조약의 철회를 주장하는 상소를 결의하고 대한문 앞에서 읍소하면서 종로에서 가두연설에 나서기도 하였다. 한편, 종로에서 가두연설에 나서기도 하여 구국대열에 앞장섰다. 1906년 해서교육회(海西敎育會) 총감으로 학교설립을 추진하여, 다음해 안악에 양산학교(楊山學校)를 세웠다. 1909년 전국 강습소 순회에 나서서 애국심을 고취하는 한편, 재령 보강학교(保强學校) 교장이 되었다. 그때 비밀단체 신민회(新民會)의 회원으로 구국운동에도 가담하였다. 그 해 가을 안중근의 거사에 연루되어 해주감옥에 투옥되었다가 석방되었다. 그 뒤 1911년 1월 데라우치[寺內正毅] 총독의 암살을 모의했다는 혐의로 안명근(安明根)사건의 관련자로 체포되어 17년형을 선고받았다. 1914년 7월 감형으로 형기 2년을 남기고 인천으로 이감되었다가 가출 옥여 김홍량(金鴻亮)의 동산평(東山坪) 농장관리인으로 농촌부흥운동에 주력하였다. 1919년 3·1운동 직후에 상해로 망명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초대 경무국장이 되었고, 1923년 내무총장, 1924년 국무총리 대리, 1926년 12월 국무령(國務領)에 취임하였다. 이듬해 헌법을 제정, 임시정부를 위원제로 고치면서 국무위원이 되었다. 1929년 재중국 거류민단 단장을 역임하였고 1930년 이동녕·이시영(李始榮) 등과 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을 창당하였다. 1931년 한인애국단을 조직, 의혈청년들로 하여금 직접 왜적 수뇌의 도륙항전(屠戮抗戰)에 투신하도록 지도력을 발휘하였다. 이에 중국군 김홍일(金弘壹) 및 상해병공창 송식표(宋式&#39531;)의 무기공급과 은밀한 거사준비에 따라, 1932년 1·8이봉창(李奉昌)의거와 4·29윤봉길(尹奉吉)의거를 주도한 바 있는데, 윤봉길의 이 의거가 성공하여 크게 이름을 떨쳤다. 1933년 장개석(蔣介石)을 만나 한·중 양국의 우의를 돈독히 하고 중국 뤄양군관학교[洛陽軍官學校]를 광복군 무관양성소로 사용하도록 합의를 본 것은 주목받을 성과였으며, 독립운동가들에게 큰 용기를 주었다. 1934년 임시정부 국무령에 재임되었고, 1940년 3월 임시정부 국무위원회 주석에 취임하였다. 같은해 충칭[重慶]에서 한국광복군을 조직하고 총사령관에 지청천(池靑天), 참모장에 이범석(李範奭)을 임명하여 항일무장부대를 편성하고, 일본의 진주만 기습에 즈음하여 1941년 12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이름으로 대일선전포고를 하면서 임전태세에 돌입하였다. 1942년 7월 임시정부와 중국정부 간에 광복군 지원에 대한 정식협정이 체결되어, 광복군은 중국 각 처에서 연합군과 항일공동작전에 나설 수 있었다. 그 뒤 개정된 헌법에 따라 1944년 4월 충칭 임시정부 주석으로 재선되고, 부주석에 김규식(金奎植), 국무위원에 이시영·박찬익 등이 함께 취임하였다. 그리고 일본군에 강제 징집된 학도병들을 광복군에 편입시키는 한편, 산시성[陜西省]시안[西安]과 안후이성[安徽省] 푸양[阜陽]에 한국광복군 특별훈련반을 설치하면서 미육군전략처와 제휴하여 비밀특수공작훈련을 실시하는 등, 중국 본토와 한반도 수복의 군사훈련을 적극 추진하고 지휘하던 중 시안에서 8·15광복을 맞이하였다. 1945년 11월 임시정부 국무위원과 함께 제1진으로 환국하였다. 그 해 12월 28일 모스크바 3상회의에서의 신탁통치결의가 있자 신탁통치반대운동에 적극 앞장섰으며, 오직 자주독립의 통일정부 수립을 목표로 정계를 영도해 나갔다. 1946년 2월 비상국민회의의 부총재에 취임하였고, 1947년 비상국민회의가 국민회의로 개편되자 부주석이 되었다. 그 해 6월 30일 일본에서 운구해온 윤봉길·이봉창(李奉昌)·백정기(白貞基) 등 세 의사의 유골을 첫 국민장으로 효창공원에 봉안하였다. 이를 전후하여 대한독립촉성중앙협의회와 민주의원(民主議院)·민족통일총본부를 이승만(李承晩)·김규식과 함께 이끌었다. 1947년 11월 국제연합 감시하에 남북총선거에 의한 정부수립결의안을 지지하면서, 그의 논설 「나의 소원」에서 밝히기를 “완전자주독립노선만이 통일정부 수립을 가능하게 한다.”고 역설하였다. 그러나 1948년 초 북한이 국제연합의 남북한총선거감시위원단인 국제연합한국임시위원단의 입북을 거절함으로써, 선거가능지역인 남한만의 단독선거가 결정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서도 김구는 남한만의 선거에 의한 단독정부수립방침에 절대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였다. 그 해 2월 10일 「3천만동포에게 읍고(泣告)함」이라는 성명서를 통하여 마음속의 38선을 무너뜨리고 자주독립의 통일정부를 세우자고 강력히 호소하였다. 분단된 상태의 건국보다는 통일을 우선시하여 5·10제헌국회의원선거를 거부하기로 방침을 굳히고, 그 해 4월 19일 남북협상차 평양으로 향하였다. 김구·김규식·김일성·김두봉(金枓奉) 등이 남북협상 4자회담에 임하였으나, 민족통일정부 수립에 실패하고 그 해 5월 5일 서울로 돌아왔다. 그 뒤 한국독립당의 정비와 건국실천원양성소의 일에 주력하며 구국통일의 역군 양성에 힘썼다. 남북한의 단독정부가 그 해 8월 15일과 9월 9일에 서울과 평양에 각각 세워진 뒤에도 민족분단의 비애를 딛고 민족통일운동을 재야에서 전개하던 가운데, 이듬해 6월 26일 서울 서대문구의 경교장(京橋莊)에서 육군 소위 안두희(安斗熙)에게 암살당하였다.

도진순(엮은이)

서울대학교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하버드 대학교, 중국 베이징대학교, 일본 국제일본문화연구센터 초빙교수를 지냈다. 현재 창원 대학교 사학과 교수이다. 저서로 『한국 민족주의와 남북 관계: 이승만·김구 시대의 정치사』(한국백상출판문화상 저작상 수상), 『백범일지』, 『정본 백범일지』, 『백범어록』, 『분단의 내일, 통일의 역사』, 『강철로 된 무지개: 다시 읽는 이육사』, 『백범의 길: 조국의 산하를 걷다』(공저) 등이 있다.

정보제공 : Aladin

목차


목차
백범 출간사 = 3
책을 퍼내면서 = 7
상권
 인(仁)ㆍ신(信) 두 아들에게 = 17
 1. 황해도 벽촌에서의 어린 시절 = 18
  1. 상놈이 된 집안 내력과 양반에 대한 울분 = 18
  2. 난산으로 태어난 개구쟁이 = 21
  3. 양반의 꿈, 궁핍한 배움길 = 24
 2. 파란만장한 실패와 단련의 성장기 = 29
  1. 과거 낙방, 양반의 꿈은 무너지고 = 29
  2. 동학 입문으로 다시 태어나다 = 32
  3. 동학군이 동학군에 패하다 = 37
  4. 적장의 집에서 만난 스승 고능선 = 43
  5. 의병의 국제연대를 찾아 청나라로 = 50
  6. 김이언 의병도 실패하고 = 55
  7. 인연 없는 스승의 손녀사위 = 61
 3. 질풍노도의 복수 의거, 치하포 사건 = 66
  1. 치하포 단독 의거 = 66
  2. 첫번째 투옥, 인천으로 이감 = 74
  3. 신문장에서 영웅이 되고, 옥중에서 왕이 되다 = 79
  4. 신지식을 접하고 교수형을 면하다 = 85
  5. 탈옥, 조롱을 박차고 나가다 = 92
 4. 5년간의 방랑과 모색 = 100
  1. 동지를 찾아서 = 100
  2. 고기 먹고 시를 짓는 장발의 걸시승(乞詩僧) = 109
  3. 뜻이 있으면 어디선들 만나지 못하리 = 117
  4. 스승, 아버님, 미혼처와 영원히 이별하다 = 124
 5. 새로운 사상, 새로운 교육 = 133
  1. 근대적 교육사업에 투신하다 = 133
  2. 을사늑약 반대 투쟁과 결혼 = 135
  3. 앙반도 깨어라! 상놈도 깨어라! = 139
  4. 황해도 순회 교육운동과 두번째 투옥 = 145
  5. 이재명 의사에 대한 회한 = 150
 6. 일제의 모진 감옥에서 백범(白凡)이 되다 = 154
  1. 세번째 투옥, 고문에서 얻은 교훈 = 154
  2. 기약 없는 15년형, 교육 건국의 꿈은 무너지고 = 164
  3. 마음가짐의 대변동, 계몽운동을 넘어서 = 168
  4. 도적에게 결사의 비법을 배우다 = 174
  5. 이름을 구(九)로, 호를 백범(白凡)으로 = 183
 7. 전격적인 망명과 상해 임시정부 = 189
  1. 마흔 살에 가출옥하다 = 189
  2. 농장 감독으로 뜻을 숨기고 = 193
  3. 임시정부의 문지기가 되고 싶소 = 198
  4. 사상 혼란기의 내무총장 = 205
  5. 무정부 상태의 국무령 = 210
  6. 혈혈단신이 되어 육십 평생을 돌아보니 = 213
하권
 하권을 쓰고 나서 = 223
 8. 대륙을 진동시킨 이봉창과 윤봉길 = 227
  1. '일본영감' 이봉창의 영원한 즐거움 = 227
  2. 불행히 명중하지 못했으나 = 229
  3. 윤봉길 의사와의 짧은 만남 = 234
  4. 홍구공원의 쾌거 = 238
 9. 피신과 유랑 속의 민족운동 = 244
  1. 위기일발의 상해 탈출 = 244
  2. 별장 생활과 산수 구경 = 248
  3. 여뱃사공 주애보와 선상 생활 = 253
  4. 장개석 면담과 낙양군관학교 = 257
  5. 9년 만의 모자 상봉 = 259
  6. 혁명난류의 총탄을 맞다 = 263
 10. 전시수도 중경의 임시정부와 광복군 = 270
  1. 광주(廣州)로, 다시 중경(重慶)으로 = 270
  2. 공동묘지의 지하회장이 되신 어머님 = 272
  3. 한국광복군과 국내 침공 작전 = 273
  4. 왜적의 항복,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듯 = 279
  5. 중경 생활 7년의 회고 = 283
 11. 조국의 산천과 동지를 찾아서 = 287
  1. 감격의 귀국 = 287
  2. 삼의사 유골 봉안 = 291
  3. 제주도와 삼남 순방 = 295
  4. 서부 지역 순방 = 301
나의 소원 = 305
 민족국가 = 305
 정치 이념 = 309
 내가 원하는 우리 나라 = 315
백범 연보 = 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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