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발표한 첫 단편집 <럭셔리 걸>에서 '섹스와 폭력과 도착과 환각이 난무하고 현실과 환상이 뒤섞인 세계'를 그려냈던 소설가 이문환. 이후 4년 만에 발표하는 첫 번째 장편소설 <플라스틱 아일랜드>에서 그는 한층 높은 강도의 기괴함과 당혹스러움을 선사한다. 이야기는 한 소심한 남자가 어느 날 밤 수상한 남자에게서 소원을 들어주는 마술 인형을 얻게 되면서부터 시작된다.
증권회사에서 일하는 조식은 1년 전 교통사고로 가족을 모두 잃었다. 그리고 우연찮게 '혼자 살아남은 사람'만이 가입할 수 있는 '클럽'의 일원이 되고, 이 '클럽'의 크리스마스 모임에서 누군가로부터 '리얼돌'을 선물받는다.
여자친구 혜정과 크게 다툰 어느 날, 조식은 어디선가 들려오는 목소리의 요청에 따라 옷장 속에 숨겨두었던 인형의 목을 매달아버린다. 그리고 며칠 후 그는 혜정이 목을 매고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인형은 말하자면, 소원을 들어주는 요술램프였던 것. 그후 조식은 '클럽'의 회장인 트랜스젠더 가연과, '클럽'의 또다른 회원인 9등신의 미녀 이지를 동시에 애인으로 거느리게 되고, 그를 괴롭히던 직장상사는 돌연사한다.
소설 속에는 맹목적 탐욕과 막대한 물질적 행운, 파괴적이고 강박적인 성욕, 주식과 부동산으로 대변되는 경제적인 가치들, 세계 최고의 브랜드가 생산하는 최고급 제품들, 플라스틱 인형이 일으키는 흑마술의 세계가 한 덩어리로 꿈틀거린다. 고도로 타락한 물질적 세계의 세부를 이만큼 세련되고 탐미적으로, 거의 역겨울 정도로 집요하게 보여줄 수 있을까.
요술램프와도 같은 리얼돌과 흑마술 등 얼핏 판타지의 요소들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그저그런 판타지소설로 넘겨버릴 수 없는 것은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이를 통해 이문환이 그리고 있는 일상들은 매일매일 우리가 접하고 있는 현실의 그것과 징그러울 정도로 맞닿아 있기에. 어쩌면 이상향일지도, 또 어쩌면 지옥의 불길 속일 수도 있는 ‘플라스틱 아일랜드’는 이미 우리 사회 곳곳에, 혹은 우리 내부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작가는 "욕망의 내장을 흐르는 탐욕 · 증오 · 분노 · 질시 등을 재료로 풀코스 만찬을 차리는" 것이 지향하는 바라고 밝히고 있다. 만찬의 첫 코스는 벌써 시작된 듯하다. 『플라스틱 아일랜드』로 한껏 입맛을 돋우는 에피타이저를 우리는 이미 맛보았다. 자, 이제 본격적인 시작이다. 그가 그려 보일 다음의 세계는, 또다른 ‘오늘’, 이 만찬의 메인디시는, 또 어떠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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