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왕’과 ‘책’의 만남을 소재로 우리 역사의 현장들을 새롭게 찾아가는 교양서. 지은이 윤희진은 제왕과 책이 얽혀 빚어내는 특별한 상황들, 그리고 현상 뒤에 숨은 다양한 변화의 동력들을 예리하게 들춰낸다. 나아가 고전들이 태어날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그것이 오늘날까지 호소력을 띄는 나름의 이유를 기술하고 있다.
책에 등장하는 우리 역사 속 국왕은 모두 열 명. 그들은 서로 다른 상황과 필요에 의해 책을 선택했고, 그것은 그들의 통치 스타일은 물론 당대의 가파른 국면들과 맞물리는 장면을 연출했다. 왕들의 역사 속에서 책은 통치력 함양의 매개체로, 때론 실용서로, 때론 정치적 도구로 기능했던 것이다.
인생의 여러 고비에서 더 높은 곳으로 도약하고 싶은 사람들은 절절한 마음으로 책을 손에 잡았고, 책은 절절한 마음에 구체적인 힘을 선사한다고, 그것은 왕의 경우라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고 지은이는 넌지시 암시하는 듯하다. 제왕의 책읽기에 대한 소개를 통해, 이 책은 책이 갖는 힘을 다시 한번 강하게 웅변하고 있다.
이복동생에게 세자 자리를 빼앗긴 이방원이 분노와 울분의 나날을 보내던 무렵, 개국공신 조준이 “이 책을 읽으면 나라를 다스릴 수 있습니다.”라며 한 권의 책을 건넸다. 《대학연의》였다. 이것이 전의를 일깨우는 원동력이 되었을까. 정도전을 비롯한 반대파를 제압한 그는 마침내 왕좌를 차지했고 《대학연의》에서 터득한 통치술로 왕권주의 국가 조선의 기틀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개경에서 한양으로 이동하는 도중에도 이 책을 읽었다는 그는 제왕학의 교재로, 실추된 이미지를 쇄신하는 도구로 《대학연의》를 사용하며 일생 동안 가장 위대한 스승으로 받아들였다.
책, 제왕을 만나다
‘책만큼 친절한 스승은 없다.’는 오래된 경구를 들추지 않더라도 한 권의 책이 우리 삶에 행사하는 영향력은 막대하다. 국가를 통치했던 왕들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오히려 ‘제왕’과 ‘책’이 만나 분출해내는 폭발력은 지식과 감동의 전수라는 독서의 1차적 기능을 훌쩍 넘어서기 일쑤다.
《제왕의 책》은 ‘제왕’과 ‘책’이라는 특별한 두 존재의 만남을 소재로 우리 역사의 역동적인 현장들을 새롭게 찾아가는 교양서이다. 저자 윤희진은 특유의 정갈하고 신뢰 넘치는 문장으로 제왕과 책이 얽혀 빚어내는 특별한 상황들, 그리고 현상 뒤에 숨은 다양한 변화의 동력들을 예리하게 들춰낸다. 나아가 이 고전들이 태어날 당시의 시대적 배경, 오랜 시간을 넘어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까지 조곤조곤 들려주고 있어 독서의 즐거움을 배가시킨다.
제왕들이 그 책을 손에 잡은 이유
대개의 경우, 군주의 독서는 덕성과 치세술을 갈고닦는 제왕학의 교재로써 시작되었다.
고려 제4대 왕 광종. 두 형을 무력으로 제치고 왕위에 오른 그가 《정관정요》를 처음 손에 쥔 것도 그 때문이었다. 즉위 직후 큰 바람이 불어 나무가 뽑히는 재앙이 발생했을 때 “덕을 닦음만한 것이 없다”는 조언에 따라 펼쳐들게 된 책이 《정관정요》였다. 당나라 사관史官 오긍이 당 태종의 치세를 그리워하며 지었다는 이 책은 광종에게 뜻밖의 소득을 가져다주었다. 형제를 죽이고 아버지마저 폐위한 뒤 황제에 오르고도 후세에 성군으로 칭송받는 당 태종을 보며 그는 마음을 굳게 다졌다. “당 태종은 나보다 더했다. 그런데도 위대한 군주로 칭송받고 있다. 나도 당 태종처럼 정치를 잘하면 될 것 아닌가.” 광종은 책에서 배운 그대로 독자적 연호를 선포하고 스스로 황제를 칭하며 강력한 왕권주의자로 거듭났다. 광종 치세 최대의 업적으로 평가받는 노비안검법과 과거제 도입도 《정관정요》를 읽으며 구상한 개혁 정책들 중 하나였다.
‘좋은 책을 읽는 것은 지난 몇 세기에 걸쳐 가장 훌륭한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이다’라는 데카르트의 전언을 행동으로 먼저 실천한 이는 호학의 군주 세종이었다. 세종은 왕자 시절부터 무섭게 학문에 정진한 천재소년이었다. 그런 세종에게도 각별히 사랑한 책이 있었으니 당시 최고의 역사서로 꼽히던 《자치통감》이었다.
“무릇 잘된 정치를 하려면 반드시 전대前代의 치세와 난세의 발자취를 돌아보아야 할 것이요, 그 발자취를 돌아보려면 오직 역사의 기록들을 상고하여야 할 것이다.”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세종은 역사와 역사서의 가치를 정확하게 꿰뚫은 왕이었다. 그랬기에 신하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총 294권에 이르는 《자치통감》을 다 읽었고 《자치통감훈의》라는 해설서까지 펴내도록 지시했다. 매일 밤 그 초고를 친히 교정할 정도로 애정을 보이면서 그는 사서史書에 기록된 제도와 문화를 당대에 적용하려 애썼다. 세종대에 유독 많은 문물이 개발된 것은 왕의 이 같은 열정 덕이었다. 세종에게 《자치통감》은 정치 교재이며, 실전 경험을 전해주는 실용서였고, 역사 연구의 전범이었던 셈이다.
똑똑한 왕들은 고전을 재해석하고, 이를 매개로 정적들과 불꽃 튀는 권력 대결을 벌이기도 했다.
성종은 거듭되는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때까지 ‘초학의 글’로 인식되어온 《소학》을 경연 과목에 넣었다. ‘교화의 중요성을 강조한 이 책이야말로 종신토록 되뇌며 행하여야 한다’는 게 표면적 이유였지만 성종에게 《소학》은 더 큰 의미가 있었다. 조선 건국 이후 재야에 묻혀 살며 《소학》의 실천적 덕목을 제일의 가치로 여겼던 사림파, 그들을 중앙 무대로 끌어들여 조정을 장악하고 있던 훈구파를 견제하겠다는 심중의 계산이 《소학》 강독으로 표면화된 것이다.
야심 많은 학자 왕 정조도 마찬가지였다. 극심한 당쟁 속에서 아버지 사도세자까지 잃은 정조는 《서경》에 나오는 요순 임금을 개혁 군주로 재해석해 자신의 역할모델로 삼았다. 그러나 노론은 정조의 견해에 끊임없이 반발했고 평화적으로 양립하기 어려웠던 그들의 관계는 정조가 의문의 죽음을 당함으로써 막을 내렸다.
책은 종종 제왕에게 정치적 도구로도 이용되었다.
영조는 신하들 앞에서 《예기》를 읊조리며 수차례나 눈물을 흘리는 촌극을 연출했다. 자신에게 씌워진 경종 독살 혐의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 즉 ‘악어의 눈물’이었다.
연산군은 역사 평가의 엄중함을 말하는 책 《춘추》를 손에 들고 “사관은 틀림없이 내가 어진 정치를 하지 않았다고 쓸 것이나…”라고 하소연했지만 결국 ‘춘추대의’에 무릎 꿇은 꼴이 되고 말았다.
효종은 북벌이라는 필생의 과제를 실현하기 위해 ‘마음의 경전’인 《심경》을 선택했다. 조광조 이래 사림들이 임금에게 그토록 읽히고자 했던 책 《심경》을 효종이 경연 과목으로 채택한 이유는 단 하나, 송시열로 대표되는 산림 세력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여 북벌을 감행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자신의 모든 걸 양보하며 산림의 지지를 얻으려 했던 효종은 송시열과의 기해독대 직후 갑작스레 사망했고, 고독하게 밀어붙였던 북벌의 꿈도 함께 스러졌다.
성공하고 싶은 자 책을 찾고, 책은 위대한 인간을 탄생시킨다
《제왕의 책》에 등장하는 우리 역사 속 국왕은 모두 열 명. 서로 다른 상황과 필요에 의해 책을 선택하고, 그것이 왕의 통치 스타일은 물론 당대의 가파른 국면들과 맞물리는 장면을 읽다보면 지금껏 피상적으로 알던 역사는 새로운 생명력을 가지고 우리 곁으로 찾아온다.
나아가 때론 통치력 함양의 매개체로, 때론 실용서로, 때론 정치적 도구로 기능하며 왕에게 길을 제시했던 한 권 한 권 고전을 통해 독서가 인간에게 주는 엄청난 힘을 확인하게 된다.
어디 제왕뿐이겠는가. 인생의 여러 고비에서 더 높은 곳으로 도약하고 싶은 사람들은 절절한 마음으로 책을 손에 잡았고, 책은 위대한 인간을 탄생시켰다. 《제왕의 책》은 바로 그 진리를 역사 속 제왕들의 이야기를 빌려 우리에게 환기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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