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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비쿼터스 시대의 지식생산과 문화정치 : 예술-학문-사회의 수평적 통섭을 위하여

유비쿼터스 시대의 지식생산과 문화정치 : 예술-학문-사회의 수평적 통섭을 위하여 (20회 대출)

자료유형
단행본
개인저자
심광현 , 1956-
서명 / 저자사항
유비쿼터스 시대의 지식생산과 문화정치 : 예술-학문-사회의 수평적 통섭을 위하여 / 심광현 지음.
발행사항
서울 :   문화과학사 ,   2009.  
형태사항
495 p. ; 23 cm.
총서사항
문화과학 이론신서 ; 55
ISBN
9788986598889
서지주기
참고문헌: p. 485-4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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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1 ▼a 심광현 , ▼d 1956- ▼0 AUTH(211009)98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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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5 ▼a KINS

소장정보

No. 소장처 청구기호 등록번호 도서상태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No. 1 소장처 중앙도서관/제2자료실(3층)/ 청구기호 303.4833 2009z17 등록번호 111549183 (12회 대출) 도서상태 대출가능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B M
No. 2 소장처 중앙도서관/제2자료실(3층)/ 청구기호 303.4833 2009z17 등록번호 111549184 (8회 대출) 도서상태 대출가능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B M

컨텐츠정보

책소개

이 책은 점점 빨라지고 있는 첨단 과학기술 혁명의 거대한 흐름을 포착하여 이를 “유비쿼터스 시대의 도래”라고 명명하면서, 이 새로운 세계사적 흐름으로 인해 향후 10~30년 사이에 인류의 미래는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역사적 분기점에 이르게 될 것으로 전망한다.

저자에 의하면 사람-기계-사물-공간 전체를 지능화하여 그동안 분리되어 있던 물리공간과 가상공간을 실시간으로 연결하여 “제3공간”을 창출하는 유비쿼터스 컴퓨팅 기술이 시대 전체를 관통하는 ‘지배적인’ 기술로 자리 잡은 것은 아니지만, 빠른 속도로 ‘부상하면서’ 산업과 경제는 물론 도시 구조와 일상생활을 포함한 사회생활, 그리고 과학기술과 학문 및 예술의 구조와 기능까지도 전면적으로 변화시키는 새로운 동력이 되어가고 있다고 말한다.

현재 세계는 20세기를 주도했던 미국 헤게모니의 해체와 더불어 급격한 변화의 물결에 휩쓸리고 있습니다. 여러 변화 중에서도 세계경제가 과연 장기불황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혹은 유례없는 대공황에 직면하게 될 것인지가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지만 날이 갈수록 불확실성이 높아져 한 치 앞을 예측하기 어려운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이런 와중에서 이 책의 저자는 높아져 가는 불확실성의 파고의 심층에서 하나의 일관되고 지속적인, 그러나 최근 들어 점점 빨라지고 있는 첨단 과학기술 혁명의 거대한 흐름을 포착하여 이를 “유비쿼터스 시대의 도래”라고 명명하면서, 이 새로운 세계사적 흐름으로 인해 향후 10~30년 사이에 인류의 미래는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역사적 분기점에 이르게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저자에 의하면 사람-기계-사물-공간 전체를 지능화하여 그동안 분리되어 있던 물리공간과 가상공간을 실시간으로 연결하여 “제3공간”을 창출하는 유비쿼터스 컴퓨팅 기술이 시대 전체를 관통하는 ‘지배적인’ 기술로 자리 잡은 것은 아니지만, 빠른 속도로 ‘부상하면서’ 산업과 경제는 물론 도시 구조와 일상생활을 포함한 사회생활, 그리고 과학기술과 학문 및 예술의 구조와 기능까지도 전면적으로 변화시키는 새로운 동력이 되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주장은 마치 1980년대에 등장한 정보혁명을 “제3의 물결”로 지칭하면서 문명사적 변화를 역설했던 앨빈 토플러의 주장을 새로운 형태로 반복하는 것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많은 학자들은 유비쿼터스 혁명이란 실은 ‘제2의 정보혁명’(웹1.0에 이은 웹2.0, 혹은 웹3.0)에 다름 아니라고 일축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자는 이런 관점을 넘어서 ‘정보혁명’이라는 기술혁신의 현상의 심층에서 진행 중인 거대한 ‘지식혁명’의 물결에 주목하면서, 2000년대에 들어 미국과 유럽에서 등장한 새로운 융복합 ‘기술과학’(Techno-science)인 NBIC(나노, 생명, 정보, 인지과학) 혁명, 혹은 GNR(생명, 나노, 로봇과학) 혁명을 그 사례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 지식혁명은 ‘근대화 과정’에서 수백 가지의 분과학문들과 전공지식들로 세분화되어 분리되어 온 지식들을 유비쿼터스 컴퓨팅 기술을 매개로 하여 하나의 통합적 지식으로 융합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과정으로 인해 한 때 분리되어 있던 자연과학과 기술공학의 경계선이 희미해지면서 하나로 융합된 ‘기술과학’이 등장하고, 나노과학과 생명과학과 인지과학과 로봇공학들이 서로 꼬리를 물고 회전하면서 그 발전 속도도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지고 있습니다. 저자는 레이 커즈와일을 따라 이런 흐름이 향후 20~30년 사이에 인간지능과 인간육체의 능력을 능가하는 사이보그 시스템의 출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고, 그럴 경우 사회적 생산과 유통은 물론 과학기술적 지식의 생산과 유통 역시 인간의 통제를 벗어난 자동기술화의 단계인 ‘특이점’, 즉 인간이 배제된 상태에서 기계-기계 간 커뮤니케이션에 의해 사회 시스템이 작동하는 M2M이 일반화되는 단계로 나아가는 새로운 문명이 등장할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물론 현 단계에서는 이런 주장을 묵시론적 SF 영화의 시나리오라고 일축할 수 있으나, 저자는 커즈와일의 기술지도가 그가 예상한 시간 내에 100% 완벽하게 실현될 것인가 아닐 것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비록 이런 형태의 완벽한 ‘사이보그 사회’에 이르지 않더라도 그를 향해 달려가는 첨단 과학기술혁명의 과정에서 파생될 다양한 기술공학들이 사회 전반에 미칠 다양한 위험과 기회의 양면성에 먼저 주목할 필요가 있음을 역설합니다. 향후 등장할 준-사이보그적인 첨단기술이 자본/권력과 결합했을 때의 위험은 이미 이라크 전에서 가공할 위력을 선보인 무인공격 시스템을 통해 쉽게 예측할 수 있으며, 나노생명공학이 자본/권력과 결합했을 때의 위험은 이미 광우병과 유전자조작식품 등의 위험을 통해 쉽사리 예측해 볼 수 있으며, 유비쿼터스 기술의 사회적 확산이 신자유주의와 결합할 경우 과거 정보혁명이 그랬듯이 유례없는 경제적, 사회적 양극화를 초래할 것입니다. 이런 위험들의 지구적 확대를 저자는 유례없는 억압적 통제사회, 과학적 디스토피아의 도래라고 지칭합니다. 저자는 이런 맥락에서 ‘유비쿼터스 사회의 도래’를 강조하는 것은 새로운 위험사회화에 대한 예방학적인 경고(일종의 ‘유비무환’)의 의미가 담겨 있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첨단과학기술은 위험만이 아니라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는데, 저자는 GNR 혁명이 민주적인 사회적 관계와 결합할 경우 자동기술화의 발전은 노동시간 단축과 자유 시간 증대 및 민주적-문화적 소통의 증대를 가져와 민주적 문화사회의 길, 과학적 유토피아의 길을 열어줄 수 있다고 전망합니다.(가령, 2008년 촛불시위에서 드러났듯이 오프라인의 광장공간과 온라인의 가상공간을 실시간으로 연결하여 소통과 참여를 촉진하는 방식으로 진보적 네트워크의 활성화를 촉진할 수 있고, 아래로부터의 “참여계획경제”가 실현될 수 있음)

저자는 지난해부터 교육과학기술부와 주요 언론들이 사회적 화두로 부각시키고 있는 “학문간 융복합” 정책이나 ‘통섭’ 관련 담론들이 과거의 “지식사회론”이나 “신지식인” 담론과 같은 단순한 수사학이 아니라 2000년대에 들어와 미국, 유럽, 일본 등에서 본격화된 이런 “지식혁명”의 흐름을 배경으로 뒤늦게 태동된 것이라는 점에 주목합니다. 그런데 저자는 현재 정부와 주요 언론들이 강조하는 학문간 융복합 정책 및 통섭 관련 담론들은 이 거대한 지식혁명의 미래가 유례없는 억압적 통제사회로 귀결될 위험을 간과하거나 혹은 은폐하고, 단지 지식 경쟁력과 생산성 및 기술적-생활적 편의의 증대 측면만을 강조하고 있으며, 학문간 융복합/통섭이 기술결정론적인 실증주의적인 환원주의의 방식으로 진행되어야 한다는 점을 은밀히 전제하고 있다는 점을 비판합니다. 저자에 의하면 학문간 융복합 같은 제한적 담론을 넘어서 모든 지식의 대통합을 강조하면서 사회과학과 인문학은 물론 예술까지도 모두 자연과학적 설명원리에 의해 환원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회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의 “통섭”(consilience)의 경우가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저자는 이런 형태의 자연과학 중심의 수직적-환원주의적 통섭은 인간적-예술적 가치의 특이성을 배제하고, 모든 것을 자연법칙적 설계로 환원하는 것이기에 인간을 배제하는 디스토피아적인 사이보그 사회를 초래할 위험이 크다고 보면서, 이에 맞서 예술과 인문학-의 가치를 증진하고 사회적 관계의 민주화를 추구하는 사회과학과 과학기술의 긍정적 가치를 중첩적으로 연결하여 인간-자연-기계가 공생하고 공진화할 수 있는 ‘과학적 유토피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모든 지식과 경험들 간의 수평적이고 비환원주의적인 통섭이 필요하다고 역설합니다.

저자는 이런 맥락에서 수직적-환원주의적 통섭이 억압적 통제사회의 디스토피아로 이르는 길로 나아가는 지식생산의 낡은 패러다임(뉴턴적 환원주의의 단순성의 과학의 확대)이라면, 수평적-비환원주의적 통섭은 민주적 문화사회의 유토피아로 나아가게 할 지식생산의 새로운 패러다임(포스트-뉴턴적 비환원주의의 복잡계 과학)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런 이유로 저자는 에드워드 윌슨이 19세기의 과학사가인 윌리엄 휴얼이 만든 용어인 ‘consilience’의 의미를 그 라틴어 어원을 따라 “jumping together”로 재해석하면서 윌슨의 환원주의적 통섭이 아닌 휴얼의 비환원주의적인 ‘가법적’(adductive) 통섭 개념을 지지하며, 윌슨의 제자로서 윌슨의 <통섭: 지식의 대통합>(1998)을 2005년 한국어로 번역하면서 최재천 교수가 만든 신조어인 ‘통섭’(統攝))을 ‘通攝’으로 다르게 재번역하여 사용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이 책의 서문에서 19세기의 윌리엄 휴얼과 1998년의 에드워드 윌슨, 2005년의 최재천, 그리고 2009년 저자 자신에 의해 사용되고 있는 서로 다른 의미의 통섭의 개념적 차이들을 다음과 같이 비교하고 있습니다.

에드워드 윌슨(윌슨, <통섭>, 최재천, 장대익 옮김, 사이언스 북스, 2005; Edward O. Wilson, Consilience: The Unity of Knowledge, New York: Alfred A. Knopf, iNC., 1998)이 부활시킨 윌리엄 휴얼의 ‘통섭’ 개념은 아마도 라틴어 ‘consiliere’에서 온 것 같은데, 여기서 ‘con’은 영어로 ‘with’, 즉 ‘함께’라는 뜻을 갖고 있고, ‘salire’는 ‘to leap’ 즉 ‘뛰어오르다’ 또는 ‘뛰어넘다’는 뜻이다. 그래서 휴얼은 ‘consilience’를 한 마디로 ‘jumping together’ 즉 ‘더불어 넘나듦’으로 정의했다. 휴얼은 우리에게 scientist 즉 과학자라는 용어를 선사한 사람이기도 하다”(최재천의 서문, 10쪽). 최재천 교수는 이 개념을 윌슨의 의도에 근접하도록 ‘통섭’(統攝)이라고 번역하여 “사물에 널리 통하는 원리로 학문의 큰 줄기를 잡다”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필자도 2007년에는 한자어 統攝은 그래도 두고 그 의미 해석을 달리하여 ‘통’의 의미를 “큰 줄기, 실마리로”로 파악하고, ‘섭’의 의미를 “쥐다, 잡다”는 뜻보다는 “끌어당기다”로 해석하여 “여러 실마리들을 함께 끌어당겨 큰 줄기를 이루다”는 의미로 사용했다. 그러나 이후 여러 논의들을 거치는 과정에서 최재천 교수의 번역에 의해 인구에 회자된 ‘통섭’이란 용어는 그대로 사용하되, 윌슨의 환원주의적 의도를 분명히 거부하고, ‘더불어 넘나듦’ 혹은 ‘함께 도약하기’(jumping together)라는 휴얼의 개념에 근접하는 용어가 필요하다는 판단 하에서 ‘通攝’(끌어당겨 통하게 하다)이라는 뜻으로 이 개념을 재번역하여 사용하고자 한다. 필자의 ‘비환원주의적’ 통섭과 최재천 교수의 ‘환원주의적’ 통섭 간의 개념적 차이에 대해서는 본문 제5장을 참조할 것.

저자의 이런 논의들을 정리해 보면 유비쿼터스 혁명을 촉진하는 21세기의 지식혁명은 윌슨-최재천 교수의 환원주의적/수직적 통섭의 방법을 따라갈 경우 억압적 통제사회의 길에 이르게 될 위험이 크다면, 휴얼-심광현 교수의 비환원주의적/수평적 통섭의 방법을 따라갈 경우 민주적 문화사회의 길에 이르게 될 기회를 제공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저자는 첨단 거대기술과학의 양면성에 주목하면서 부상하는 기술문화의 위험을 최대한 예방하고, 새로운 기회를 최대한 선취하여 벤야민이 강조했듯이 기술의 문화정치적 ‘기능전환’을 위해 노력하기 위해서는, ‘기술과학에 의한 사회의 구성’(ANT)이라는 흐름만이 아니라 반대로 ‘사회에 의한 기술과학의 재구성’(SSK)이라는 흐름을 ‘겹쳐서’ 보아야 할 필요, 즉 사회를 기술로 환원하는 것과 기술을 사회로 환원하는 양자 모두에 반대하면서 기술-사회의 공동구성의 상호작용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 필요성을 강조합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예술-인문학-사회과학-기술공학-자연과학 사이의 수평적 통섭인데, 저자는 다음과 같은 예술에서 출발하여 수평적 통섭을 확장해 가는 방법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예술이야말로 경계를 넘어서는 자유, 이질적인 것들을 접속하여 새로운 경험을 창조하는 상상력을 생명으로 삼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술에서 출발하여 과학기술과 제 학문들은 물론 사회 적 실천 전반으로 나아가는 수평적 통섭의 사례로 저자는 자신이 미래교육준비단장으로 책임을 맡아 추진한 한국예술종합학교의 “U-AT통섭교육사업”의 추진 체계와 교육방법 등을 설명하면서 이런 방법을 통해 ‘T’ 형의 창의적 인재 육성이 현실화될 수 있음을 강조합니다. 그밖에도 저자는 2009년부터 한국에서 실행에 들어가기 시작한 “유비쿼터스 도시계획법”이 수원 동탄 신도시 건설에서 첫 적용이 되어, 2015년경에는 전국 30여개의 신도시에 230만명 정도가 “유비쿼터스 도시”에 주거하게 될 것이라는 새로운 개발계획에 내포된 다양한 문화정치적 함의를 분석하면서 유비쿼터스 시대의 예술-학문-사회의 수평적 통섭이라는 과제가 단순한 당위가 아니라 진보적 지식인과 예술가들이 앞서서 추진해야 할 역사적 과제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저자는 유비쿼터스 컴퓨팅의 확산에 따른 네트워크 확장을 새로운 학술운동과 사회운동의 기반으로 활용하면서 서로 분리되어 있는 대학과 사회, 지식인과 대중 간의 새로운 소통을 촉진하기 위해 진보적인 정치적 이념들 간의 수평적 통섭과 사회운동들 간의 수평적 통섭이 실천적으로 시급히 요구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특히 저자는 이 책의 결론에서 그동안 한국사회에서 서로 반목해온 진보적 이념들, 즉 맑스주의, 페미니즘, 생태주의 사이에서 연대를 위한 움직임이 일고 있는 최근의 새 흐름에 주목하면서, 이런 흐름이 생산적 성과를 내는데 도움이 될 두 가지 실험적 가이드라인을 다음과 같이 제안하고 있습니다.

1) ‘적’의 쟁점이 생산수단의 ‘사회화’와 국가장치의 해체와 변형을 통한 계급 철폐라는 문제설정에, ‘녹’의 쟁점은 좁게는 생산의 원료이자 넓게는 인간과 자연의 신진대사와 그 터전인 자연생태계의 지속가능성이라는 문제설정에, ‘보’의 쟁점은 좁게는 가부장적 노동력 재생산 방식에서 넓게는 성적 차이와 평등에 이르는 문제설정에 집중되어 있다. 그런데 이 쟁점들은 추상적으로 보면 서로 무관하게 분리된 것으로 보이지만 현실적인 사회적 생산과정에서는 노동대상+생산수단+노동력=생산(1)→노동대상+생산수단+노동력=재생산(2)라는 반복적 순환 과정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 이런 점에서 ‘적-녹-보 연대’의 문제설정을 사회적 생산과정의 맥락으로 번역해 보면 노동대상(녹)+생산수단(적)+노동력(적-녹-보)=생산(녹-적-보)에 이르는 등식이 성립할 수 있다. 이런 가설은 ‘적-녹-보’ 연대가 나열식 결합일 수가 없고, 주체화(노동력 재생산) 양식과 생산양식(노동대상과 생산수단의 소유 및 통제 양식)의 특정한 형태의 결합이라는 자본주의적 사회적 관계의 변혁의 내재적 구성 요소로 서로를 내적으로 제약하며 결합하고 있음을 알게 해준다. 그리고 이런 내적 제약 관계로 인해 ‘적-녹-보’ 연대는 단순히 이념적 혈맹에 이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과학적 분석을 필요로 하며, 그와 동시에 연대의 목표를 둘러싸고 가치론적 상호비판을 요구한다는 점이 드러난다.

2) ‘적-녹-보’ 연대를 위한 과학적 분석과 가치론적 분석은 결과적으로 학문적 통섭과 실천적 통섭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 가령 노동과정의 생태학적 리모델링을 위해서는 문화-경제-과학기술의 순환적 연결 분석이 필요하며, 생산관계의 탈자본주의적 리모델링을 위해는 문화-정치-경제-과학기술의 순환적 연결 분석이 요구된다. 또한 노동력 재생산의 탈가부장적 리모델링과 새로운 주체화 양식을 창조하기 위해서는 문화-정치-과학기술의 순환적 연결 분석이 요구된다. 그동안 한국의 진보진영은 학문적으로는 분과학문의 제도적 틀에, 사회운동에서는 부문운동의 틀에 묶여 왔다. 맑스주의, 페미니즘, 생태주의를 지향하는 경우에도 그 이념들 자체는 통합학문적이고 통합운동적 성격을 지니지만, 개개의 연구자나 활동가들은 현실적으로는 분과학문과 부문운동의 틀 내에 갇혀 실제로 통합학문적 연구를 수행하거나 통합운동적 활동을 수행한 경험이 거의 없다. 당장 이런 상황을 넘어서기가 쉽지 않다. 오랫동안 몸에 밴, 분과학문적, 부문운동적 아비투스를 극복하기는 쉽지 않고, 또한 다양한 분과와 부문에 걸친 다양한 지식과 정보를 수집하고, 이해하며, 체화하여 새로운 통섭형 지식을 생산하기는 더 더욱 어렵기 때문이다. 개별 연구와 부문 운동의 차원을 넘어서 새로운 형태의 통섭형 공동연구와 통섭형 공동실천의 네트워크가 필요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전자의 경우가 학문적-이념적 통섭을 실험하는 ‘씽크탱크-네트워크’를 축으로 한 새로운 학술운동의 구성을 요한다면, 후자의 경우는 부문운동과 의제 중심의 통섭형 운동 간의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방식의 새로운 순환적 연결이 필요하다.

물론 현재에도 분과학문들 간에, 부문운동들 간에 느슨한 연결망이 존재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런 느슨한 연결망으로는 지구적 연결망 속에서 복잡성을 더해가고 있는 사회적 과정의 실제에 근접하기 어렵다. 이런 간극을 메우는 방법 중의 하나는 수평적 통섭의 과정을 중첩시켜 보는 것이다. 중첩성을 증대시키면 조밀도와 복잡성과 창발성이 증대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그동안 분과학문과 부분운동의 관성에 의해 분리되고 위계화되어 있던 이념적-실천적 운동의 관행에 ‘수평적 통섭’의 방법론과 프랙탈한 자기조직화의 방법론을 도입해 보자는 것이다. 역동적인 수평적 통섭의 중첩을 통한 프랙탈한 자기조직화의 방법은 굳이 따져본다면 새로운 것이 아니라 사실상 변증법의 원리에 충실한 방법이다. ‘프랙탈’ 이론은 유클리드적인 경직된 개념과 틀에서 벗어나 자연의 복잡하고 창발적인 실제에 근접하기 위해―0과 1, 1과 2, 2와 3 등과 같은―양자택일적인 두 극(구조와 행위, 구조와 과정 등의 두 극) 사이에 지그재그형의 ‘순환적’ 왕복운동을 텅비어 있다고 생각되는 자연적, 사회적, 심리적 시공간 내에 조밀하게 도입하는 일종의 변증법적 시뮬레이션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그동안 진보적 이론과 실천은 점점 더 복잡해지고 다변화되고 창발성이 높아져 가고 있는 사회적 과정의 실제에 근접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새 술을 담기 위해서는 낡은 부대를 수술하고 바꾸는 일부터 시작해야 하듯이 새로운 사회적 진보를 위해서는 그간의 연구와 실천의 방법 자체를 근본적으로 혁신하는 일부터 착수해야 한다. 선형적 인과성의 통시성과 결합된 분과학문 체제라는 낡은 부대를 해체하여 비선형적 인과성의 공시성과 결합된, 학문적 제도의 안과 밖에서 생산되는 다양한 지식들과 경험들의 수평적 통섭이라는 새 부대로 재구성하는 일은 오랫동안 단절되어 있던 이론과 실천, 대학과 사회, 지식인과 대중, 정신노동과 육체노동 사이에 선순환적인 연결 구조를 만들기 위한 필수적 전제이다. 21세기의 과학기술혁명과 더불어 도래하고 있는 유비쿼터스 시대는 이런 가능성을 전례 없이 활짝 열어놓고 있다. 이 열린 가능성을 오직 인구의 10%에게만 허용하며 자연을 유린하는 반민주적 반생태적 통제사회로 나아가려는 흐름을 거슬러 자연과 인간의 공진화를 촉진하는 민주적 생태적 문화사회로 나아가는 동력으로 삼을 것인가는 오직 사방으로 두 팔을 활짝 벌려 손을 잡고 함께 도약해 나가는 우리의 능동적 노력 여하에 달려 있다.


정보제공 : Aladin

저자소개

심광현(지은이)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이론과 명예교수. 미학·문화연구 전공. 『문화/과학』 편집인, 한국문화연구학회 회장 및 맑스코뮤날레 집행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유진화와 3권의 공저를 집필했고, 단독 저서로는 『맑스와 마음의 정치학』(2014), 『유비쿼터스 시대의 지식생산과 문화정치』(2009), 『흥~한민국』(2005), 『프랙탈』(2005) 등 다수가 있다. 인지생태학 관련 주요 논문으로 「기술-사회 공진화의 기초, 신경과학-윤리학 공진화의 촉매제로서의 예술」(2018), 「오토포이에시스, 어포던스, 미메시스」(2014), 「인지과학과 이미지의 문화정치」(2013), 「시공간의 변증법과 도시의 산책자」(2010) 등 다수가 있다.

정보제공 : Aladin

목차

목차
서문 통섭: 유비쿼터스 시대의 예술-학문-사회의 공진화의 키잡이 = 6
서장
 1. 유비쿼터스 사회의 두 얼굴: 통제사회와 문화사회 = 23
1부 유비쿼터스 시대 지식생산의 새로운 패러다임
 2. 21세기 과학ㆍ기술 혁명에 대한 철학적 성찰: 'GNR' 혁명의 문화ㆍ정치적 함의를 중심으로 = 63
 3. 문화/과학 - 과학혁명과 문화연구의 변증법적 절합 = 112
2부 비환원주의적 통섭을 통한 예술과 인문학의 창조적 혁신
 4. 제3공간의 출현과 예술과 과학기술 통섭의 철학적 전망 = 145
 5. 예술ㆍ인문학ㆍ과학기술 통섭의 개념과 방법 = 199
 6. 21세기 지식(기반)사회를 위한 한국의 고등교육정책과 인문학의 역할 = 245
3부 유비쿼터스 시대의 공시성의 체계와 새로운 문화정치
 7. 미국 기술혁신의 엔진, GNR 혁명의 명과 암 = 289
 8. 유비쿼터스-디지털 미디어 시대의 탈근대 문화정치: 맑스-벤야민-맥루언의 성좌적 배치와 새로운 주체성의 생산 = 321
 9. '유비쿼터스 도시'의 출현과 대안적 도시인문학의 과제 = 355
 10. 유비쿼터스 시대의 도시공간과 미디어공간의 문화ㆍ정치적 상호작용 = 419
종장
 11. 유비쿼터스 시대의 새로운 학술운동과 사회운동: 이념적 통섭과 프랙탈 네트워크 = 453
참고문헌 = 485

관련분야 신착자료

김지연 (2026)
한국. 특허전략개발원 (2025)
한국. 특허전략개발원 (2025)
Nelson, John P., (Professor of public policy) (2025)
더밀크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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