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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백제 첫 도읍지 (14회 대출)

자료유형
단행본
개인저자
강찬석 , 1954- 이희진 , 1963-
서명 / 저자사항
잃어버린 백제 첫 도읍지 / 강찬석, 이희진 지음.
발행사항
서울 :   소나무 ,   2009.  
형태사항
272 p. : 삽도 ; 23 cm.
ISBN
9788971390757
서지주기
참고문헌: p. 270-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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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정보

No. 소장처 청구기호 등록번호 도서상태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No. 1 소장처 중앙도서관/제3자료실(4층)/ 청구기호 953.033 2009z2 등록번호 111560448 (7회 대출) 도서상태 대출가능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B M
No. 2 소장처 중앙도서관/제3자료실(4층)/ 청구기호 953.033 2009z2 등록번호 111560449 (7회 대출) 도서상태 대출가능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B M

컨텐츠정보

책소개

대형 건물터와 와당 등 한성 백제 유적과 유물이 쏟아져 나온 풍납토성이 정말 잃어버린 백제의 첫 도읍지인지를 냉정하게 분석한 책. 21세기 한국 고대사학계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던 풍납토성이 백제 왕성이 될 수 없는 이유와, 그렇다면 진짜 백제의 첫 도읍지는 어디인지를 밝히고 있다.

이 책에서는 풍납토성의 초라한 규모, 왕궁의 흔적이 없다는 점, 도시 계획이 없고 홍수 피해에 시달리는 위치에 자리해있다는 점 등을 주목하여 백제 왕성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또한 대형 목탑의 흔적이 발견되었고, 지천에 한성 백제의 유물이 널린 경기도 하남시 춘궁동 일대 지역이 바로 백제의 첫 도읍지, 하남 위례성임을 논증한다.

저자는 백제의 첫 도읍지를 찾는 긴 여정을 매듭지으며 학술적 문화적 가치가 있는 유적, 유물이 보존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함을 꼬집는다. 학계 기득권층의 취향과 이익에 맞는 것들만 보존되는 고대사학계의 현실을 말하는 것. 이 책은 풍납토성에 가려진 백제의 첫 도읍지에 얽힌 사실을 보여준다.

백제의 첫 도읍지는 어디인가
21세기 한국 고대사학계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른 것은 단연, 풍납토성이었다. 대형 건물터와 와당 등 풍납토성에서 쏟아져 나오는 한성 백제 유적과 유물은 학계를 넘어서 대중들마저 흥분하게 했다. 장수왕이 이끄는 고구려 군에 의해 무너진 하남 위례성, 1500년간 사라진 백제 첫 도읍지가 드디어 그 모습을 드러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감격에 겨워 지나쳐 버린 사실들이 있다. 이제 냉정하게 다시 되짚어 볼 때가 되었다. 풍납토성이 정말로 잃어버린 백제의 첫 도읍지인지. 풍납토성이 아니라면 진짜 백제 첫 도읍지는 어디인지.

풍납토성이 백제 왕성이 될 수 없는 이유

하나, 너무 초라한 규모 : 몽촌토성(6만 7천 평)에 비해 상대적으로 큰 풍납토성(17만 평)의 규모에 감격해, 같은 시기 고구려의 장안성(358만 평), 신라의 왕경(484만 평)을 잊고 있었다. 고구려, 신라와 경쟁하던 백제의 왕성이 고구려, 신라의 10분의 1도 안 되는 초라한 규모라는 것이 납득할 만한 이야기인가? 심지어 장수왕의 공격을 받고 급박하게 옮겨간 백제의 두 번째 도읍인 웅진성도 200만 평이 넘는다. 풍납토성은 왕성이라 하기엔 스케일부터가 동시대 다른 왕성과 비교할 수 없는 초라한 규모인 것이다.

둘, 왕궁의 흔적이 없다 : 무엇보다 풍납토성에서는 왕궁이라고 할 만한 터가 발견되지 않았다. 대형 건물의 존재를 뒷받침하는 가장 중요한 단서는 주춧돌이다. 장수왕 대에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 고구려 안학궁에서는 대형 주춧돌만 무려 2,590개가 발견되었다. 백제 왕성보다 일찍 지어진 고구려 환도산성에서조차 대형 주춧돌이 수없이 나왔다. 그러나 풍납토성에서는 단 하나의 주춧돌도 발견되지 않았다. 이것은 초석을 놓고 기둥을 세우는 대형 건물의 단서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이보다 훨씬 원시적인 형태의 벽식구조 건물(얇은 기둥을 촘촘히 세우고 벽재를 덧대는 구조)만이 발견되었을 뿐이다. 고구려와 신라의 왕이 주춧돌에 아름드리 기둥을 세운 대규모 왕궁에서 호령할 때, 백제왕은 움집 같은 곳에 살았다? 이 역시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셋, 도시 계획조차 없다 : 풍납토성이 백제 왕성이라면 고구려 장안성과 신라 왕경에서 볼 수 있는 조방제에 의해 계획된 격자형 도시구조가 나타나야 한다. 이것은 주나라 이래 동아시아 도성을 건설할 때 교과서적인 틀로 자리잡은 것이다. 일본 나라 시대에 건설된 도시들도 엄격한 격자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풍납토성에서는 이러한 도시 구조를 찾아볼 수 없다. 주류를 이루는 육각형 집들은 일정한 축도 없이 아무렇게나 배치되어 있고 도로는 정연하지 못하다.

넷, 홍수 피해에 시달리는 위치 : 백제가 과연 왕성을 위험한 강변에 지었을까? 풍납토성의 일부는 이미 홍수로 쓸려간 상황이다. 한 나라의 왕성을 홍수 피해를 계속 받는 강변에 둔다는 것이 상식에 맞지 않거니와 한성 백제 500년 동안 왕궁이 장마나 한강의 홍수에 의해 피해를 입었다는 기록이 단 한 차례도 없는 것으로 보아 왕궁은 한강으로부터 일정거리 떨어져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다섯, 역사 기록과 도무지 맞지 않는다 : "삼국사기" 등 문헌에 따르면 하남 위례성 서쪽에는 넓은 개활지가 있어야 하고, 주위가 온통 산악이며, 하늘이 내린 험한 지형 즉 ‘천험지리天險地利’한 땅이어야 한다. 그러나 풍납토성 서쪽은 한강이 접해있고, 험준한 산악 지형과는 거리가 멀다.
위와 같은 이유와 정황이 풍납토성은 백제 왕성이 될 수 없음을 말해준다. 그렇다면, 백제의 첫 도읍지는 과연 어디였을까?

하남 위례성은 하남시 춘궁동 일대다

저자들은 건축학적 안목과 문헌의 중요한 대목을 놓치지 않고 거대한 그림 찾기를 시작한다.
북쪽으로는 한강을 띠처럼 두르고 있고, 천지신명에 제사를 지내는 검단산을 동쪽으로 두고, 뒤로는 남한산성을 둔 험난한 지형 가운데 있는 땅, 한성 백제의 성벽과 유물이 출토된 이성산성을 앞으로 두고 서쪽으로 넓은 개활지가 열린 땅, 대형 목탑의 흔적이 발견되었고 지천에 한성 백제의 유물이 뒹구는 땅, 그곳이 바로 경기도 하남시 춘궁동 일대 지역인 것이다. 저자들은 이 땅이 잃어버린 한성 백제의 첫 도읍지, 하남 위례성임을 논증한다.

황룡사 9충 목탑에 필적하는 목탑의 심초석이 묻혀 있다 :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불교를 처음 도입하던 삼국시대에는 사찰과 대형 탑이 도시 안에 있었다. 대형 건물의 흔적을 주춧돌에서 찾듯, 목탑의 흔적은 목탑의 중심 기둥을 떠받치는 심초석의 존재가 그 결정적 단서다. 이미 20년 전에 저자는 남한산성 북문 아래 하사창동이라는 마을 가운데 밭에서 천왕사라는 절터를 발견하고 정부에 발굴 요청을 해왔다. 마침내 2001년, 문화재보호재단이 시험 발굴에 들어갔는데 이 절터에서 거대한 목탑의 심초석이 발견된 것이다. 대형 심초석은 신라 목탑의 심초석보다 2미터 아래에 있어 신라 이전에 이곳을 지배했던 백제의 것으로 추정되며, 게다가 백제의 전형적인 가람 형식인 1금당 1탑 형식을 띄고 있었다. 이 심초석의 지름은 무려 205센티미터로 이는 경주 황룡사 목탑에 필적하는 규모의 한국 최초 목탑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었다.(186~197쪽 참고)

지천에 널린 백제 유물들 : 춘궁동 일대에는 보물 제332호 광주철불의 좌대라고 추측되는 석조물이 가정집의 장독대 받침으로 방치되고 있는가 하면, 가정집 마당의 빨래판과 정원석으로 이용되고 있는 고대 건물의 초석들은 수도 없으며, 하수도 공사를 위해 중장비를 동원해 땅을 파다 해태상을 발견하기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동네 어디든 와편이 발견된다고 할 정도로 길거리 곳곳에서 고대건물의 기와로 추정되는 와편들이 그대로 나뒹굴고 있으며, 현지 주민들은 이곳은 땅만 파면 기왓장이 쏟아져 나온다고 증언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남한산성이 있는 청량산에서 북쪽으로 내려오는 줄기에서 이어진 금암산에 접한 이성산성(하남시 춘궁동) 성벽 속에 또 다른 성벽이 발견되었는데, 이 성벽에서 백제 토기가 출토된 것이다.(<이성산성 8차 발굴보고서>) 백제 토기가 발견된 곳은 이곳뿐이 아니다. 서울시 둔촌 아파트에서 하남시로 들어가는 길목에서 3기의 횡혈식 석실분이 발굴되었는데, 여기서도 초기 백제의 ‘목 짧은 항아리(단경호)’가 나왔다. 이로써 한성기 백제의 횡혈식 석실로 판명되어 학계에 보고되기도 했다.(197~211쪽 참고)

백제의 첫 도읍지는 왜 묻혀버렸나?
이토록 중대한 사실들이 왜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을까?
2001년, 문화재보호재단은 천왕사터의 심초석을 발견하고도 무슨 이유에서인지 본격적인 발굴을 하지 않고 다시 덮어버렸다. 대형 심초석의 진실은 그렇게 아직도 땅 속에 파묻혀 있는 것이다. 이런 일은 지난 20년 동안 계속되어 왔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다. 예로부터, ??삼국사기??의 기록에서부터 고려시대 문헌, 조선시대 정약용, 하물며 이병도까지 일관되게 지금의 하남시 일대를 한성 백제의 도읍지로 지목해 왔다. 도대체 언제부터 백제의 첫 도읍지가 엉뚱한 곳으로 둔갑한 것일까?
1980년대 몽촌토성을 발굴하면서 유력한 학자들이 이곳을 하남 위례성으로 지목하자 세간의 이목이 쏠리게 되었다. 그러다 다시 90년대 말, 풍납토성이 발굴되면서 진짜 하남 위례성은 풍납토성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게 된다. 그 근거는 불확실한 끼워 맞추기식 추정 속에 있었지만 전문가라는 이름에 그것은 가리워졌다. 이제 그 학설을 지키기 위해 그에 어긋나는 증거를 틀어막고 왜곡하고 지워버리려고까지 하는 시도를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백제의 첫 도읍지를 찾는 긴 여정을 매듭지으며 학술적 문화적 가치가 있는 유적과 유물이 보존되는 것이 아니라 학계 기득권층의 취향과 이익에 맞는 것들만 보존되는 고대사학계의 현실을 꼬집는다. 그리고 많은 논란의 종지부를 찍을 핵심 열쇠인 천왕사 심초석의 발굴을 촉구하고 있다.


정보제공 : Aladin

저자소개

강찬석(지은이)

1954년생. 중앙대학교 건축학과와 대학원 졸업. 인터콘티넨탈 호텔, 한라대학교, 서울대학교 박물관 등 많은 건축물들을 설계한 건축가로, 한반도와 중국을 누비며 숨겨진 역사의 현장을 조사?연구해온 건축역사학자로, 우리 문화유산을 지키는 시민운동가로 왕성한 활동을 펼쳐왔다. 백제문화연구회 회장, 국립중앙박물관 혁신위원회 위원, 문화재청 문화재 전문위원, 문광부 문화환경조사위원회 위원 등을 지냈다. 현재 대환건축 대표, 문화유산연대(KOREAN HERITAGE) 공동대표, 풍납토성보존 국민연대 집행위원장, 외교통상부 외규장각 문서반환 TF팀 자문위원, 덕수궁 터 미대사관 신축반대 시민모임 공동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다.

정보제공 : Aladin

목차

목차
들어가면서|한성 백제 왕성을 찾는 여정 = 6
여는 글|방랑하는 도읍지 = 13
1. 풍납토성도 왕성(王城)이 아니다! 
 왕성이라 하기엔 너무나 초라하다 = 18
 도시계획조차 없는 왕성 = 20
 왕궁의 흔적도 없다 = 32
 너무나 원시적인 풍납토성의 건물터 = 42
 한성과 웅진을 동시에 관리했던 백제 = 50
 홍수가 왕궁만 피해갔다? = 55
 유물만 많으면 왕성인가? = 59
 그 밖의 이유들 = 61
2. 거대한 백제 도읍지의 밑그림 - 남성과 북성
 하북 위례성은 있었다! = 68
 하북 위례성을 지워버린 이유 같지 않은 이유 = 71
 풍납토성이 북성, 몽촌토성이 남성? = 77
 한성이 군사방어선?= 81
 상당한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던 북성과 남성 = 84
 확인되는 북한성의 존재 = 87
 지명 변화를 통해 보는 북한성과 남평양 = 93
 한성과 남한성 = 101
3. 주요 거점의 위치 
 천험지리(天險地利) = 110
 한산(漢山) = 112
 숭산(崇山) = 119
 남단(南壇)과 서쪽의 개활지 그리고 왕성의 위치 = 124
4. 도성의 구조 
 당시에도 강남과 강북이 있었다 = 132
 살꽂이 목장과 북한성 = 136
 위례성과 한성은 같은 성일까? = 147
 위례성과 한성의 실체 = 153
 강남 방어의 도구, 진성(鎭城)의 존재 = 156
 『삼국사기』에는 왕도 한성의 성벽을 쌓은 기록이 없다 = 163
 한성백제의 별궁과 이성산성 = 172
 그 밖의 시설들 = 179
5. 백제 첫 도읍지의 흔적들 
 대형 목탑의 흔적 = 186
 하남시와 이성산성에서 나온 백제 토기들 = 197
 지명에 남아 있는 한성 백제 도읍지 = 212
 한성 백제 도읍지와 관련된 후세의 기록 = 216
 전설처럼 이어지는 이야기들 = 221
6. 지금도 숨겨지는 백제 첫 도읍지 
 말하지 않는 진실 = 230
 동양 최고의 목탑지로 둔갑한 우물터 = 232
 무엇 때문에 서둘렀을까? = 238
 숨겨지고 있는 백제 토기 = 241
 도로 흔적들과 파괴된 고분들 = 245
 살꽂이 목장의 담장이 돼버린 아차산의 장성 흔적 = 249
 대한민국 역사의 비극 = 252
맺기 전에|풍납토성의 진짜 주인은 누구일까? = 259
맺는 글|역사의 징검다리를 놓으며 = 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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