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화보 : 그때 그 4월의 활화산 = 5
간행사 : 4ㆍ18의거 실록을 국민과 역사 앞에 내놓으며 / 박찬세[4ㆍ18의거 실록 편찬위원장] = 25
축사 : 4ㆍ18의거를 바로 알리는 正史가 되기를 / 김정배[고려중앙학원 이사장] = 28
축사 : 4ㆍ18정신이 영원히 계승되기를 소망하며 / 김병철[고려대학교 총장] = 30
축사 : 그날의 喊聲을 잊지 않는 備忘錄이 되기를 / 이양섭[고려대학교 교우회장] = 32
제1부 高大 4ㆍ18義擧의 발자취
Ⅰ. 무엇이 高大 4ㆍ18義擧를 불러왔는가
1. 독립과 자유 위한 저항의 교풍(校風) 반세기 ― 민족운동사적 맥락에서 본 고대의 전통과 기질 = 45
1) 고대정신(高大情神)이란 무엇인가 = 45
2) 항일(抗日)운동의 유장(悠長)한 보전-고대 인맥(人脈) = 48
3) 반탁(反託)과 반공(反共)-자유 수호의 선봉으로 = 51
4) 고대는 형극(荊棘)의 길에서 발전해온 저항의 본거지 = 52
2. 1950년대의 시대적 상황 ― 4월혁명의 원인(遠因)과 근인(近因) = 55
1) 4월혁명의 원인(遠因) = 55
(1) 정치 상황 = 55
(2) 경제 형편 = 57
(3) 사회 환경 = 60
2) 4월혁명의 근인(近因)-3ㆍ15부정선거 = 62
3. 오늘의 대학생은 무엇을 자임(自任)하는가 ―교수와 학생들의 준엄한 자성(自省)과 경종(警鍾) = 67
1) 대학의 권위와 교풍(校風)에 대한 자기비판 = 67
2) '구국(救國)의 투사'를 외친《고대신보》논설들 = 70
3) 지성인의 사회참여(社會參與) 목소리 고조(高調) = 74
Ⅱ. 안암의 언덕에 울린 黎明의 종소리
1. 남녘에서 들려 온 자유와 민주의 서곡(序曲) ― 대구ㆍ마산에 이어 전국에 메아리친 절규(絶叫) = 79
1) 저항의 첫 신호(信號)-2ㆍ28 대구 고교생 데모 = 79
2) 유혈(流血)의 3ㆍ15 마산 시민 1차 의거(義擧) = 81
3) 김주열(金朱烈)의 시신(屍身)에 격분한 마산 시민 2차 의거 = 85
2. 4ㆍ18의 태동기(胎動期) ― 그 겨울 방학에는 ― '우리는 행동성이 결여된 지식인을 거부한다' = 87
1) 1959년 11월, 학생자치단체 임원 개선 = 87
2) '공동선거추진전국위원회 학생특별위원회'에서 활약 = 89
3) 명동 시공관 앞 삐라사건을 주도 = 93
4) 서울의 타 대학들과 연합데모 시도(試圖) = 95
5) 데모 자금으로 유용(流用)된 졸업생 기념품 제작비 = 98
6) 서울대ㆍ연세대와는 당초부터 연대(連帶)시위가 불가능했다 = 99
7) 데모 독촉장이 된《고대신보》사설 2편 = 101
3. 발화점(發火點)에 이른 4월의 휴화산(休火山) ― 제2ㆍ3선(線) 조직까지 치밀하게 추진한 모의(謀議) = 104
1) D데이를 4월 16일 신입생 환영회 날로 = 104
2)〈선언문〉작성 맡은《고대신보》편집국장 = 105
3) D데이를 4월 18일로 연기 = 107
4) 데모 만류하던 학생처장의 눈물 = 111
5) 다시 주역들의 또 다른 증언들 = 112
6) 학생위원회 간부들의 유서(遺書)와 하직(下直)인사 = 116
Ⅲ. 아! 1960년 4월 18일
1. 12시 50분 인촌동상(仁村銅像) 앞으로! ― 민주혁명의 횃불 밝힌 젊은 호랑이들 = 118
1) 재단 주무이사실에서의 최종 담판 = 118
2) 서관 정치외교학회실에서 3개의 플래카드 작성 = 120
3) '기쁜소리사'에서 마이크 임차(임차)사용 = 121
4) 위기일발의〈선언문> 수교(手交) 순간 = 123
5) "急告, 12時 50分 全員 本館 앞에 集合할 事" = 124
6) '고대'기념타월에 얽힌 사연 = 127
7)〈선언문〉낭독과 구호 외치고 교문 밖으로 = 128
2. 경찰도 막지 못한 3천의 강행군(强行軍) ―교문 뛰쳐나가 시민 환호 속에 의사당(議事堂)까지 = 133
1) 안암동 로터리의 첫 저지선 돌파 = 133
2) 대광중ㆍ고 학생들의 뜨거운 박수와 환호 = 135
3) 종로통에서 대낮에도 깡패 난동 = 137
4) 종로 2, 3가에서의 최후 돌파전 = 139
3. 민의(民意)의 전당 앞에서 연좌시위 ― 만민공동회(萬民共同會) 같은 자유토론의 광장 = 144
1) 4ㆍ3학년 주도로 자생적 리더그룹 형성 = 144
2) 구한말(舊韓末) 민중대회를 연상케 한 성토의 마당 = 147
3) 유진오(兪鎭午) 총장의 1차 연설 = 151
4) '이철승(李哲承) 의원을 찾아오라' = 154
5) 유 총장의 2차 연설과 이 의원의 연설 = 156
4. '피의 화요일' 부른 말기(末期)정권의 발악 ― 천일(天一)백화점 앞에서 깡패들에게 피습 = 165
1) 경찰 선도 따라 을지로로 진입 = 165
2) 7시 20분, 신호탄이 올라가자"죽여라" "깡패다" = 168
3) "깡패여 나오라" 외치며 다시 귀굣길에 = 184
4) 고대생 시위대 뒤따르던 군중들 후속시위 = 187
5. 끝까지 잔류한 43명의 투사들 ― 미국《해럴드 트리뷴》기자와 심야(深夜) 회견 = 188
1) 의사당 앞에서 4개 항 결의문 채택 = 188
2) 반도호텔 907호실에서 회견 = 191
6. '늬들 마음을 우리가 안다' ― 어느 스승의 뉘우침에서 = 193
IV. 餘錄―4ㆍ19, 그리고 이듬해 4ㆍ18까지
1. 역사적인 4월 19일! ― 4월혁명의 정점(頂點)이 된 긴 하루 = 197
1) 붕대 감고, 지팡이 짚고 다시 의사당으로 = 197
2) 태평로에서 타 대학생들과 합류(合流) = 199
3) 의사당 앞에서 결의문 채택 = 200
4) 오후 1시, 경비계엄 선포로 임시 휴교 = 201
5) 고대 잠입한 민간인 데모대, 군(軍)이 해산 = 202
6) 오후 5시, 비상계엄 선포와 포고문 발표 = 203
2. 4월 25일, 계엄령 불구 대학교수단 데모 ― "학생의 피에 보답하라" = 204
1) 고대 교수들이 선언문 기초 등 주도 = 204
2) 대통령 사퇴 요구한 시국선언문 = 206
3. 이승만 대통령 하야(下野) ― 제2공화국의 동은 텄다 = 208
1) 4월 26일, "국민이 원한다면 사임"성명 = 208
2) 국회, 피의 승리 이룩한 국민에게 호소문 채택 = 208
3) 이승만 대통령, 국회에 사임서 제출 = 209
4) 허정(許政) 외무부 장관 대통령 권한 대행 = 210
4. 질서 유지와 시국 수습(收拾)에 앞장 ― 부상자 위한 모금(募金)운동도 전개 = 210
1) 4월 22일 학생대표단 계엄사 방문, 수습책 건의 = 210
2) 타 대학 학생들 및 경찰관도 위문 = 211
3) 중부경찰서 관할 지역 담당, 소화(消火) 작업도 = 212
5. 다시 등교(登校)한 활기찬 안암캠퍼스 ―"우리는 진리 탐구에 매진한다" = 214
1) 4월 29일, 대학 초유의 교수ㆍ학생 조회(朝會)열려 = 214
2) 4월 30일, '학생총회'서 결의문 채택 = 215
3) '이제는 혈적(血跡)을 씻고 제2공화국의 통태를 주시하자' = 217
4) 이승만과 정부 각료들을 내란죄로 고발 = 217
5) 5월 19일, 순국학도 합동위령제(慰靈祭) 거행 = 219
6) 5.28-31, 고대신보사 주최'4월혁명기념 사진전' = 221
7)《고대신보》제호(題號)를《고대신문》으로 환원 = 222
8) 4월혁명기념 전국 중ㆍ고ㆍ대학생 문예작품 현상모집 = 223
9) 9.24-25, 민족통일론 전국 대학생 시국토론대회 = 224
10) 4ㆍ18 1주년,〈4ㆍ18기념탑〉제막식 = 229
제2부 그날 우리는 이렇게 일어섰다 - 내가 겪은 고대 4ㆍ18의거―73인의 수기(手記) 및 증언
모의 주도 6인의 수기
'불을 던지는 마음'으로 4ㆍ18 거사(擧事) / 강우정(康宇淨ㆍ법학57) = 235
시위자금 관리와 수건 주문ㆍ배포 맡아 / 김낙준(金洛駿ㆍ농학57) = 240
모의(謀議) 단계부터 귀굣길까지 / 윤용섭(尹湧燮ㆍ생물57) = 245
학내ㆍ외에서 공명선거 운동과 4ㆍ18 주도 / 이기택(李基澤ㆍ상학57) = 254
고대〈4ㆍ18 선언문〉육성으로 읽었다 / 이세기(李世基ㆍ정외57) = 262
모의과정부터 4ㆍ18, 그리고 4ㆍ26까지 / 이재환(李在奐ㆍ정외57) = 269
4ㆍ18 주동자 60인의 수기
4ㆍ18 부상으로 9개월간 정신 신경 치료 / 김면중(金冕中ㆍ철학57) = 283
고대 100년사 중에서 가장 위대한 4ㆍ18 / 김병총(金竝總ㆍ철학57) = 288
18일 깡패에 피습, 19일엔 태평로파출소 지켜 / 김일영(金一榮ㆍ사학57) = 292
1960년 4월 18일 그날 나는! / 김중위(金重緯ㆍ정외57) = 296
4월혁명의 첫 마이크를 잡으면서 / 독고중훈(獨孤重勳ㆍ철학57) = 303
국회의사당에 잔류하여 밤늦게까지 농성 / 박종기(朴鍾基ㆍ정외57) = 312
안암골 철쭉 피처럼 붉었던 그해 4월 / 신경식(辛卿植ㆍ영문57) = 314
피투성이 되어 반도병원에서 수술 / 안재필(安宰弼ㆍ농학57) = 317
'고대' 수건 배포 및 스크럼 짜기 선도 / 유덕현(柳德鉉ㆍ정외57) = 322
공수도부원으로서 학생 동원 및 시위대 보호 / 이상범(李相凡ㆍ정외57) = 325
플래카드 쓰고 데모에 앞장서다 / 조남조(趙南照ㆍ정외57) = 329
공수도부장으로 데모 대열의 앞장에 섰다 / 주석환(朱碩煥ㆍ사학57) = 334
4ㆍ18, '4월민주혁명'의 시동을 걸다 / 강문웅(姜文雄ㆍ법학58) = 341
4ㆍ18의거의 역사적 현장 / 김기수(金起秀ㆍ행정58) = 347
경찰 저지선 돌파하는 특공대원으로 활동 / 김양조(金洋祚ㆍ상학58) = 350
천일백화점 앞에서 눈 위에 부상 / 백용천(白容千ㆍ농예화58) = 353
고대인의 외침은 서울에서 전국으로, 세계 속으로 / 안병남(安秉南ㆍ행정58) = 357
플래카드와 태극기, 그리고 교우애(校友愛) / 육윤경(陸潤坰ㆍ법학58) = 361
젊음과 분노의 활화산(活火山), 그때 그 4월 / 윤덕진(尹德鎭ㆍ법학58) = 365
고대 4ㆍ18의거와 은총(恩寵)체험 / 이기창(李起昌ㆍ법학58) = 373
정의의 열정으로 참여해 뛰고 또 뛰었다 / 이성춘(李成春ㆍ정외58) = 378
4ㆍ18과《고대신보》, 그리고 나의 취재기 / 이용묵(李龍默ㆍ경제58) = 387
의사당 앞에 끝까지 남은 43명, 외신기자 회견까지 / 이윤재(李潤載ㆍ행정58) = 392
연좌 데모 현장에서 임시지도부가 되어 지휘 / 이찬오(李燦五ㆍ철학58) = 397
4ㆍ18의거가 없었다면 4ㆍ19혁명도 없었다 / 장상덕(張相德ㆍ경제58) = 403
1960년 4월 18일, 그 길고 길었던 하루 / 정경모(鄭慶謨ㆍ행정58) = 411
괴한들에 전치 16주의 턱 중상 입어 / 한동웅(韓東雄ㆍ정외58) = 415
역도부의 주무로서 시위대 선두에 / 황이연(黃二淵ㆍ임학58) = 418
4ㆍ18 이전부터 삐라 살포 활동 / 강경식(姜慶植ㆍ경제59) = 423
체육부원들과 동원 및 질서유지 임무 맡아 / 김관치(金寬治ㆍ수학59) = 427
공수도부 요원으로 태평로 시위 앞장 / 김백준(金伯駿ㆍ경제59) = 430
민주화와 산업화의 시발점 4ㆍ18, 그리고 4ㆍ19 / 김유진(金裕珍ㆍ경제59) = 434
의사당 앞 데모 현장에 남은 43명의 고군분투 / 김주성(金周成ㆍ법학59) = 438
플래카드 들고 선두에서 기수(旗手) 역할 / 박규직(朴圭直ㆍ상학59) = 443
"자유 정의 진리 드높이자" 플래카드 들어 / 박선규(朴善圭ㆍ행정59) = 448
4ㆍ18 데모 대열의 맨 앞에 서서 / 박세환(朴世煥ㆍ정외59) = 451
'한상철 피살?'설이 4ㆍ19 불러왔다 / 배익순(裵益淳ㆍ국문59) = 458
체육부원들과 시위 선도활동 중 중상 / 백홍빈(白弘彬ㆍ수학59) = 462
선봉대에서 플래카드 사수와 구호 선창 / 양영식(梁榮植ㆍ정외59) = 465
자랑스러운 4ㆍ18의 고대 선배들 / 원충희(元忠喜ㆍ국문59) = 469
각목을 쥐어주던 광장시장 상인들 / 이정원(李定遠ㆍ경제59) = 475
그날의 함성을 되새기며! / 이준호(李峻浩ㆍ사학59) = 478
귀굣길에 깡패 습격으로 복사뼈 부상 / 이창록(李昌錄ㆍ행정59) = 481
국회의사당 앞에서 식수 공급 / 장명환(張明煥ㆍ사학59) = 483
철학과 대의원으로 참여해 깡패습격으로 부상 / 정동구(鄭東九ㆍ철학59) = 486
4ㆍ18과 4ㆍ19 데모 질서 유지에 역도부가 큰 역할 / 최동욱(崔東旭ㆍ수학59) = 489
'민주역적 몰아내자' 플래카드 들고 행진 / 최진호(崔眞豪ㆍ사학59) = 492
'고대생 1명 피살?' 오보(誤報)의 주인공은 나였다 / 한상철(韓相哲ㆍ화학59) = 495
4ㆍ18의 기억과 그 흔적 / 홍재기(洪在基ㆍ행정59) = 499
쇠몽둥이로 뒤통수 맞고 12일간 백병원 입원 / 김재우(金載寓ㆍ상학60) = 502
그해 4월의 분노와 감격 / 김종순(金鍾順ㆍ임학60) = 506
그 봄은 따뜻했으나, 온 세상이 시끄러웠다 / 김흥일(金興一ㆍ국문60) = 509
새 교복 입은 신입생의 자랑스런 기억 / 노재동(盧載東ㆍ법학60) = 513
역도부원들과 함께 앞장서 행진 / 박용남(朴勇男ㆍ경영60) = 518
플래카드를 들고…심한 고문도 당했다 / 손가명(孫嘉明ㆍ행정60) = 520
그날 역사의 전환점 한가운데 섰던 행운 / 오경자(吳敬子ㆍ법학60) = 523
상아탑의 거룩한 분노(4월의 일기) / 이광훈(李光勳ㆍ국문60) = 527
데모대의 선두는 거의 1, 2학년생들 / 최복현(崔福鉉ㆍ국문60) = 531
데모대 선봉에서 플래카드를 들다 / 한덕기(韓德基ㆍ행정60) = 535
역도부 등 체육부가 4ㆍ18의 중추적 역할 / 허정남(許正男ㆍ농화60) = 539
4ㆍ19 및 4ㆍ25 관련 2인의 수기
4ㆍ19 파고다공원 앞 지프차 위에서 시위 / 강기태(姜基泰ㆍ정외57) = 542
4ㆍ25 대학교수단 데모 플래카드 준비 /김현(金炫ㆍ국문57) = 545
기자 2인의 취재기
4ㆍ18 오후의 고대생 국회 앞 연좌데모 / 제재형(諸宰馨ㆍ정치53) = 548
'고대생 피습사건' 대대적 언론 보도로 4ㆍ19 유발 / 송두빈(宋斗彬ㆍ사학54) = 552
교수 3인의 목격기
고대의 운명(運命)을 걸었던 4ㆍ18 / 유진오(兪鎭午ㆍ고대 총장) = 556
가까이서 본 고대 4ㆍ18의거(義擧) / 현승종(玄勝鍾ㆍ학생처장) = 562
실로 순수하고 자발적인 거사였다 / 오주환(吳周煥ㆍ《고대신보》주간) = 567
부록
1. 4ㆍ19혁명 공로 건국포장 수훈 교우 명단(45명) = 577
2. 4ㆍ19혁명 공로 건국포장 수훈 교수 명단(7명) = 579
3. 4ㆍ18 고려대 의거 데모대 습격사건 재판 기록(1961.8.25 혁명재판소) = 580
집필 후기 = 587
참고 문헌 = 589
고려대학교 4ㆍ18의거 실록 편찬위원회 = 5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