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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의 길,) 이성계와 이방원 (25회 대출)

자료유형
단행본
개인저자
이덕일 권태균, 사진
서명 / 저자사항
(부자의 길,) 이성계와 이방원 / 이덕일 지음 ; 권태균 사진
발행사항
고양 :   옥당,   2014  
형태사항
259 p. : 삽화, 초상화 ; 21 cm
총서사항
이덕일의 역사특강 ;2
ISBN
9788993952544
일반주기
"연표 태조 이성계의 일생", "연표 태종 이방원의 일생" 수록  
주제명(개인명)
이성계   李成桂,   1335-1408  
이방원   李芳遠,   1367-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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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소장처 청구기호 등록번호 도서상태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No. 1 소장처 중앙도서관/제3자료실(4층)/ 청구기호 953.0510922 2014 등록번호 111717555 (15회 대출) 도서상태 대출가능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B M
No. 2 소장처 의학도서관/자료실(3층)/ 청구기호 953.0510922 2014 등록번호 131048422 (10회 대출) 도서상태 대출가능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B 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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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1 소장처 의학도서관/자료실(3층)/ 청구기호 953.0510922 2014 등록번호 131048422 (10회 대출) 도서상태 대출가능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B M

컨텐츠정보

책소개

한국사의 쟁점을 새로운 시각으로 풀어내는 서술 방식으로 역사서 서술의 새 장을 연 역사학자 이덕일의 신간. <정도전과 그의 시대>에 이은 역사특강 두 번째 책인 이 책에서 그는 사생을 함께했던 동지 정도전을 제거하고 골육상쟁의 비극을 겪으며 천륜이라 불리는 부자지간에서 역사의 라이벌이 된 이성계.이방원 부자의 파란의 역사를 새로운 시각으로 조망한다.

태조 이성계의 다섯째 아들 이방원은 조선 개국에 큰 공을 세웠다. 그는 선죽교에서 정몽주를 죽임으로써 개국 반대 세력을 모두 제거하고, 왕대비 안씨를 압박하여 공양왕을 폐위시키고, 이성계를 왕위에 올린 주인공이었다. 그럼에도 태조는 이방원을 배제하고 막내인 방석을 세자로 책봉했다. 그는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왕이 되고 싶은 이방원에게 개국공신 정도전의 존재는 눈엣가시였다. 방원은 정도전이 태조가 위독하다고 속이고 왕자들을 궁중으로 불러 죽이려 했다고 트집을 잡아 사병을 동원해 정도전 일파와 세자 방석을 살해했다. 그런데 난에 성공한 이방원은 바로 왕위에 오르지 않고 방과를 세자로 삼는다. 그의 숨겨진 계획은 무엇일까? 500년 조선 왕조의 기틀을 잡기까지, 부자를 둘러싼 조선 초기 파란의 역사와 만난다.

무자비한 피의 군주인가, 악역을 자처한 성군인가?
조선의 운명을 좌지우지했던 부자의 엇갈린 선택,
그 파란의 역사!


역사학자 이덕일이 《정도전과 그의 시대》에 이은 역사특강 두 번째 책《부자의 길, 이성계와 이방원》을 출간했다. 이 책에서 그는 사생을 함께했던 동지 정도전을 제거하고 골육상쟁의 비극을 겪으며 천륜이라 불리는 부자지간에서 역사의 라이벌이 된 이성계.이방원 부자의 파란의 역사를 새로운 시각으로 조망한다.

이성계의 조선 개창과 깊어가는 부자의 갈등

만 스물한 살 때인 공민왕 5년(1356)에 고려 조정에 첫선을 보인 이성계는 독로강만호 박의 일당의 반란 같은 내우와 북쪽의 홍건적, 남쪽의 왜구 침략 같은 외환을 극복하면서 혁혁한 무공을 쌓아 무장으로 이름을 날린다. 그리고 정도전과의 만남을 통해 새 왕조 개창의 꿈을 현실화할 동력을 얻게 된다. 정도전의 토지 개혁을 통한 개국 프로그램은 이성계의 군사력과 결합하면서 기존 체제를 뒤엎는 혁명 이론이 되었고, 이성계의 군사력은 혁명 무력으로 전환되었다.
1388년의 위화도 회군은 고려 왕조를 존속시킬 것인가, 새 왕조를 열 것인가를 둘러싸고 고려를 운명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었다. 정몽주, 이색 등의 온건개혁파와 조준, 정도전 등의 역성혁명파는 나라의 운명을 두고 치열한 싸움을 벌였고, 정몽주의 거센 공격으로 귀양에 처해진 정도전이 사형 위기에 몰리는 상황에까지 치닫는다.
이때 등장한 인물이 바로 이방원이었다. 그는 이성계에게 정몽주를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이성계가 거절하자 스스로 악역을 맡아 정몽주를 제거해 일거에 판세를 바꾸었다. 이 일격으로 반 역성혁명파는 무너졌고, 정도전은 사형의 위기에서 벗어났다. 정몽주 제거 직후 고려는 무너졌고, 조선이 개창되었다.
그러나 이성계는 막내 방석을 후사로 선택했고, 개국에 가장 공이 큰 방원을 소외시켰다. 정도전은 이성계가 그런 선택을 내리는 것을 반대하지 않았고, 결국 이 선택이 정도전의 운명을 비극으로 몰고 간다.
태조 7년(1398) 8월 26일은 이성계, 이방원, 정도전 모두에게 운명의 날이었다. 바로 1차 왕자의 난이 일어난 날이다. 이 난으로 정도전, 남은 등의 요동정벌파는 물론 세자 방석과 방번, 그리고 경순공주의 남편 이제마저 비명횡사하지만, 사실상 방원이 칼을 겨눈 대상은 부친 이성계였다.
이방원은 일단 형인 방과를 세자로 내세워 이성계의 분노를 누그러뜨릴 시간을 번다. 태조는 쿠데타 발생 10여 일 후인 9월 5일 왕위에서 물러났다. 그나마 이복형제들을 죽인 방원이 아니라 쿠데타에 가담하지 않은 방과가 왕위에 오른 것을 위안 삼았다. 하지만 졸지에 어린 두 아들과 사위를 저승으로 보내고, 막내 공주는 사찰로 보내야 했던 이성계의 슬픔은 숨길 수 없었다. 게다가 왕자의 난은 1차로 끝나지 않았다. 정종 2년(1400) 1월 28일, 이번에는 동복형제들끼리 칼부림이 벌어진 2차 왕자의 난이 발생했고, 여기서도 이방원이 승리를 거둔다.
이방원은 돌아선 이성계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노력했다. 방원을 도운 공신들을 처벌하라는 이성계의 요구에 그들을 지방으로 유배 보내기도 했고, 정도전과 남은의 당여黨與를 용서하여 그들의 가족들에게까지 화가 미치는 것을 방지해 잠시나마 이성계의 분노를 누그러뜨리기도 했다. 그러나 방원이 왕자의 난 직후 형 방과에게 사양한 세자 자리와 임금 자리를 정종 2년(1400) 정종의 양위 형식으로 물려받게 되면서, 이성계는 다시 싸늘하게 돌아서고 만다. 그리고 방간을 불러올리라는 이성계의 요구를 방원이 거절하자 결국 이성계가 반 태종 봉기에 가담하면서 둘의 갈등은 최고조에 다다른다.

천명을 받은 이성계, 천명을 만든 이방원

이성계를 추대한 역성혁명파는 이성계가 천명을 받았다는 여러 일화를 남겼다. 그래야 조선 개창이 하늘의 뜻으로 합리화되기 때문이다. 세종대왕이 《용비어천가》를 만든 것은 새로 만든 훈민정음을 시험해보려는 뜻도 있었지만, 조선 건국을 정당화하기 위한 의도도 강했다. 그래서 《용비어천가》에는 천명에 관한 이야기가 여러 번 나온다. 《용비어천가》 1장은 “해동 육룡이 나르샤 일마다 천복이시니 고성이 동부하시니”라는 노래다. 해동 육룡은 이성계의 4대조 조상인 목조, 익조, 도조, 환조와 태조 이성계, 태종 이방원을 뜻한다. 《용비어천가》 83장은 금척에 대한 노래다. “군위君位를 보배라 할새 큰 명命을 알리려고 바다 위에 금탑이 솟게 하시니 / 자〔尺〕로서 제도가 생길새 인정仁政을 맡기시려고 하늘 위에서 금척을 내리시니.” 이성계가 하늘에서 내린 금척을 받고 왕이 되었다는 뜻이다.
정도전은 《삼봉집》 몽금척 서문에서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전하께서 잠저(즉위 전의 집)에 계실 때 꿈에 신인神人이 금척을 받들고 하늘에서 내려와 “경 시중(경복흥)은 맑은 덕이 있지만 장차 늙어서 혼미해질 것이고, 최삼사(최영)는 곧다는 이름이 있지만 너무 융통성이 없다”라고 말하고, 전하에게 “문무를 겸한 자질이 있고 덕과 지식도 있으니 백성들의 신망이 속했다”라고 말하면서 금척을 주었다. - 《삼봉집》 몽금척

또한 고려 말과 조선 초의 문신이었던 권근은 태조 이성계의 건원릉신도비명에 “예전부터 고려 서운관에 전하던 비기 《구변진단지도》에 ‘나무를 세워 아들을 얻는다’라는 말이 있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나무를 세워 아들을 얻는다’라는 말은 한자로 ‘건목득자建木得子’라고 한다. 목자득국木子得國과 마찬가지 이야기인데, 목자木子는 ‘이李’ 자를 파자破字한 것으로, 이 이야기 역시 이씨가 개국한다는 뜻이다. 이 밖에도 이성계가 천명을 받았음을 보여주는 증거들이 여럿 전해진다.
개국시조 아버지에 이어 조선의 군주가 되고 싶었던 이방원은 스스로 천명을 만들기로 했다. 방원이 천명을 만들기로 했다는 말은 결국 부친에게 칼을 겨눈다는 뜻이다. 실제로 세자 방석 형제와 정도전 등을 죽인 것은 부왕에게 칼을 겨눈 것이었다. 개국시조가 자신 대신 동생을 선택했고, 그래서 방원은 부왕과 대립하면서 스스로 새 나라를 만들어야 했다. 그는 자신의 행위가 천명에 따른 것임을 입증해야 했다. 그래야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방원이 즉위 후 행했던 수많은 일은 여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는 공신을 숙청해 올바른 정치가 이루어지게 하고, 종부법을 제정해 천인들의 아픔을 달래주며 자신에게 내린 천명의 당위성을 입증하려 했다. 이성계와 정도전의 토지 개혁에 이방원의 공신 숙청, 종부법 등이 더해져 조선은 보다 완벽한 나라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500년 조선 왕조의 기틀을 다지다

권력은 국왕 한 사람에게만 속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방원은 집권 후 권력 분배를 단호하게 거부했으며, 개혁의 칼날을 내부로 겨누었다. 그렇게 시작된 공신 숙청은 처남은 물론이고, 측근 중의 측근 이숙번에 이르기까지 거침없이 진행되었다. 조선은 태종의 피의 숙청으로 비로소 법이 지배하는 법의 나라가 되어갔다. 고관들은 더 이상 법 외의 횡포를 자행할 생각을 못하게 되었다. 그러면 바로 대간에서 탄핵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태종이 피의 숙청을 통해 얻은 가장 큰 성과였다.
그리고 태종은 조선이 개창되면서 개혁되지 못한 노비제도 개혁에도 앞장섰다. 태종은 수많은 사대부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종부법을 제정해 모친의 신분 때문에 눈물 흘리던 수많은 천인들을 구제하고, 양인 수 증가로 국가 재정도 튼튼하게 했다.
태종은 권력의 냉혹함을 누구보다 잘 아는 군주였다. 또한 군주로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았던 군주였다. 하늘이 자신에게 천명을 내렸다면 그것은 악역을 하라고 내린 천명이라고 생각했던 군주였다. 태종은 누구나 걷기 싫어하는 악역이 자신의 역할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길을 묵묵히 걸어갔다. 그러는 과정에서 부친에게 칼을 겨누었고, 부인과 원수가 되었으며, 맏아들도 버렸다. 태종은 “이 또한 하늘이 시켜서 한 일이지, 내가 즐거워서 한 일이 아니다”라고 말하며 자신의 악역을 합리화했다.
하지만 그 누구 못지않게 성군이 되기를 바랐던 군주가 태종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태종은 세종 못지않은 성군의 자질을 갖고 있었다. 또한 태평성대를 만들려고 누구보다 노력했던 군주였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의 치세 동안 백성들은 태평성대였다.
태종처럼 파란만장하고 복잡다단했던 삶을 산 군주를 찾기도 쉽지 않다. 정몽주를 격살해 개국의 전기를 마련하고, 왕자의 난을 일으켜 부왕을 쫓아냈으며, 네 처남을 비롯한 공신들을 가혹하게 숙청해 법이 지배하는 나라를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온갖 비난과 저주를 들어야 했다. 그러나 태종의 이런 악역을 통해 신생 조선 왕실은 반석 위에 서게 되었다. 태종의 죽음과 함께 피로 얼룩졌던 한 시대가 막을 내렸다. 그런 토대 위에서 세종 르네상스라고 불리는 문화의 시대가 만개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세종 르네상스는 태종이 뿌린 피를 거름 삼아 피어난 꽃이다.


정보제공 : Aladin

저자소개

이덕일(지은이)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소장. 객관적 사료와 논쟁적인 주제로 새로운 역사 해석의 선두에 서 있는 우리 시대 대표적 역사학자이다. 풍부하고 고증된 사료를 근거로 우리 역사의 숨겨진 이면을 대중에게 알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사도세자가 꿈꾼 나라』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 『당쟁으로 보는 조선 역사』 『누가 왕을 죽였는가』 『조선 왕을 말하다』 『조선 왕 독살 사건』1·2 『고조선은 대륙의 지배자였다』 『한국사, 그들이 숨긴 진실』 『우리 안의 식민사관』 등 치열한 역사의식으로 무장한 50여 권의 저서가 있다.

권태균(사진)

1955년 경상남도 의령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사진학과를 졸업한 뒤 《월간중앙》 사진기자를 거쳐, 신구대학교 사진영상미디어과 교수로 사진사와 다큐멘터리 사진 등을 가르쳤습니다. 2015년 1월,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우리나라 문화와 역사, 한국인의 삶에 관한 다양한 작품 활동을 했습니다. 유작 사진집으로 《노마드-변화하는 1980년대 한국인의 삶에 대한 작은 기록》 등이 있습니다.

정보제공 : Aladin

목차

서문|이성계ㆍ이방원 부자를 둘러싼 조선 초기 파란의 역사와 만난다! = 4
 운명의 날
 이색의 변심과 정도전의 위기
 세자 책봉 문제로 엇갈리는 운명
 이방원의 눈물
1장 이성계 일가의 등장
 하늘의 명을 받다 = 18
 무학대사와의 만남 = 30
 고려 조정에 첫선을 보이다 = 37
 최고의 활 솜씨로 무명을 떨치다 = 47
 고려의 계속되는 내우외환 = 51
 승승장구하는 이성계 = 56
 무너지는 군사제도, 몰락하는 고려 사회 = 64
 말 위의 사람 이성계, 서재의 사람 정도전 = 69
 군신 관계를 넘어서 동지로 = 74
2장 고려 500년, 최후의 날
 혼란에 빠진 원나라와 공민왕의 북강회수운동 = 84
 공민왕 시해 사건 = 89
 명 사신 채빈 암살과 친원파의 승리 = 93
 명나라의 횡포와 요동정벌 = 99
 이인임의 몰락 = 103
 최영, 사전 혁파의 중요성을 깨닫다 = 108
 비참한 말로로 치닫는 우왕의 운명 = 116
3장 이성계, 새 왕조를 열다
 요동정벌과 사불가론 = 128
 위화도 회군을 단행하다 = 136
 요동치는 정세 속, 과전법이 반포되다 = 139
 정몽주의 반격 = 144
 이방원의 등장 = 152
 고려의 마지막 임금, 이성계 = 156
4장 이방원, 아버지를 몰아내다
 무리한 세자 책봉이 불러온 위기의 씨앗 = 162
 친명에서 반명으로, 다시 불거지는 요동정벌론 = 170
 왕자의 난과 정도전의 처단 = 178
 이성계의 분노 = 182
5장 엇갈리는 부자의 길
 아버지를 달래는 이방원 = 190
 깊어가는 이성계의 딜레마 = 197
 반 태종 봉기에 가담한 이성계 = 199
 측근도 가리지 않는 피의 숙청 = 206
 종부법을 제정하다 = 214
 사대부들의 반발 = 218
6장 새로운 시대의 시작
 악역의 눈물 = 226
 폭군과 성군 사이 = 229
 하늘이 시켜서 한 일이다 = 235
 어긋나는 양녕과의 관계 = 238
 양녕을 폐위하다 = 242
 아직도 남은 악역들 = 246
 세종 르네상스를 잉태하다 = 252
연표
 태조 이성계의 일생 = 256
 태종 이방원의 일생 = 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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