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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0 | ▼a 9791130410272 ▼g 0382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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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41 | 1 | ▼a kor ▼h chi |
| 082 | 0 4 | ▼a 895.124 ▼2 23 |
| 085 | ▼a 895.24 ▼2 DDCK | |
| 090 | ▼a 895.24 ▼b 육경약 가 | |
| 100 | 1 | ▼a 陸鏡若, ▼d 1885-1915 ▼0 AUTH(211009)118791 |
| 245 | 1 0 | ▼a 가정은원기 / ▼d 루징뤄 지음 ; ▼e 김종진 옮김 |
| 246 | 0 9 | ▼a 家庭恩怨記 |
| 246 | 3 | ▼a Jia ting en yuan ji |
| 260 | ▼a 서울 : ▼b 지식을만드는지식, ▼c 2014 | |
| 300 | ▼a 134 p. ; ▼c 19 cm | |
| 440 | 0 0 | ▼a 지식을만드는지식 희곡선집 |
| 500 | ▼a 이 책은 <<傳統劇目徽編>>(上海文藝出版社, 1959)에 실린 <家庭恩怨記>을 저본으로 삼았음 | |
| 700 | 1 | ▼a 김종진, ▼e 역 ▼0 AUTH(211009)30090 |
| 900 | 1 0 | ▼a 陸鏡若, ▼e 저 |
| 900 | 1 0 | ▼a 루징뤄, ▼e 저 |
| 945 | ▼a KLPA | |
| 949 | ▼a 지만지 희곡선집 |
소장정보
| No. | 소장처 | 청구기호 | 등록번호 | 도서상태 | 반납예정일 | 예약 | 서비스 |
|---|---|---|---|---|---|---|---|
| No. 1 | 소장처 중앙도서관/제3자료실(4층)/ | 청구기호 895.24 육경약 가 | 등록번호 111721083 (1회 대출) | 도서상태 대출가능 | 반납예정일 | 예약 | 서비스 |
컨텐츠정보
책소개
'지식을만드는지식 희곡선집'. 루징뤄의 <가정은원기>를 통해 중국 화극의 초창기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연극에 일생을 바친 작가의 열정이 고스란히 담긴 작품이다. 이 작품은 작게는 루징뤄와 그의 친구들이 가졌던 연극의 꿈을 대표하고, 크게는 중국 초창기 화극이 해낼 수 있었던 극예술의 최고 수준을 대변한다.
일본 유학에서 돌아와 젊은 연극인들과 신극동지회를 결성한 루징뤄는 '춘류극장'을 창설해 전통극에서 벗어난 서양식 연극을 꾸준히 선보였다. 그중에서도 창작극 <가정은원기>는 대중의 호응을 얻는 데 성공해 이들의 대표작이 되었다.
정보제공 :
저자소개
루징뤄(지은이)
중국 최초의 화극 <흑인 노예의 절규>(1907)에 참여하며 화극의 매력에 빠져들었고 후지사와 아사지로의 배우 양성소에 다니며 본격적으로 연극 공부를 시작했다. 특히 일본 신파극 중에서도 예술지상주의 경향이 강했던 이이요호(伊井蓉峰)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는 자신처럼 연극을 좋아하는 어우양위첸 등 친구들과 춘류사 내에 연극 소모임 신유회를 만들어 <명불평>(1908), <열혈>(1909) 등을 공연했다. 그리고 1910년, 그는 배우 양성소를 나와 쓰보우치 쇼요(坪內逍遙)의 연극 연구소로 가서 연극 공부를 계속했다. 연극 공부와 동시에 이 무렵부터 그는 여름방학이면 귀국해서 공연을 하기 시작했다. 1910년 6월, 그는 상하이 문예신극장(文藝新劇場)에서 <노예(奴隸)>, <애해파(愛海波)>, <맹회두(猛回頭)> 등을 3주에 걸쳐 공연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11년 여름에는 <열혈>과 사토 코우로쿠의 <구름의 울림(雲之響)>을 개역한 <사회종>을 황난난(黃喃喃) 등과 공연했다. 1912년, 춘류사 시절 친구들이 귀국하자 그는 유학 시절의 옛 친구들과 국내에서 함께 공연하던 루루사(陸露沙) 등 새 친구들을 모아 신극동지회(新劇同志會)를 만든다. 신극동지회는 장쑤 성과 저장(浙江) 성 등 창장 하류 유역에 있는 여러 도시들을 순회하며 활발하게 활동했다. 그러다가 1914년 4월, 머우더리(謀得利) 소극장을 상설 공연장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면서 춘류극장(春柳劇場)이라는 새 이름을 쓰기 시작했다. 관객에게 외면당한 직업 극단의 형편은 어쩔 수 없었다. 그는 사재를 털어 극단 붕괴를 막았고, 번역과 창작, 연출, 연기 등 극단의 거의 모든 일을 감당했다. 극예술을 향한 그의 열정은 초인적인 것이었지만, 몸은 초인이 아닌 사람이었다. 너무 많은 책임을 혼자 떠맡았던 그는 결국 서른 살 젊은 나이에 병사했다.
김종진(옮긴이)
서울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영동대학교 중국어과에서 학생을 가르치고 있다. 중국 근현대 연극을 전공했으며 대표 저서로는 ≪중국 근대 연극 발생사≫(연극과인간)가 있고, 대표 논문으로는 <중국 화극의 중국성(中國性)과 중국적인 화극>, <중국의 화극 민족화와 민족 화극> 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