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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 | 1 | ▼a 심경호, ▼g 沈慶昊, ▼d 1955- ▼0 AUTH(211009)126506 |
| 245 | 1 0 | ▼a 한시의 성좌(星座) : ▼b 중국 시인 열전 / ▼d 심경호 지음 |
| 246 | 3 | ▼a 한시의 성좌 |
| 260 | ▼a 파주 : ▼b 돌베개, ▼c 2014 | |
| 300 | ▼a 371 p. : ▼b 삽화 ; ▼c 23 cm | |
| 500 | ▼a 색인수록 | |
| 546 | ▼a 一部 漢韓對譯 | |
| 945 | ▼a KLPA |
소장정보
| No. | 소장처 | 청구기호 | 등록번호 | 도서상태 | 반납예정일 | 예약 | 서비스 |
|---|---|---|---|---|---|---|---|
| No. 1 | 소장처 중앙도서관/제3자료실(4층)/ | 청구기호 895.1009 2014z3 | 등록번호 111731466 (17회 대출) | 도서상태 대출가능 | 반납예정일 | 예약 | 서비스 |
| No. 2 | 소장처 세종학술정보원/인문자료실2(2층)/ | 청구기호 895.1009 2014z3 | 등록번호 151324604 (2회 대출) | 도서상태 대출가능 | 반납예정일 | 예약 | 서비스 |
| No. | 소장처 | 청구기호 | 등록번호 | 도서상태 | 반납예정일 | 예약 | 서비스 |
|---|---|---|---|---|---|---|---|
| No. 1 | 소장처 중앙도서관/제3자료실(4층)/ | 청구기호 895.1009 2014z3 | 등록번호 111731466 (17회 대출) | 도서상태 대출가능 | 반납예정일 | 예약 | 서비스 |
| No. | 소장처 | 청구기호 | 등록번호 | 도서상태 | 반납예정일 | 예약 | 서비스 |
|---|---|---|---|---|---|---|---|
| No. 1 | 소장처 세종학술정보원/인문자료실2(2층)/ | 청구기호 895.1009 2014z3 | 등록번호 151324604 (2회 대출) | 도서상태 대출가능 | 반납예정일 | 예약 | 서비스 |
컨텐츠정보
책소개
시인의 삶과 내면, 중국한시의 대표 시인 열전. 이 책에서 다루는 중국한시의 대표 시인은 모두 10명이다. 소식, 이하, 두목, 백거이, 두보, 왕유, 한유, 왕사진, 고계, 도연명.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봄직한 유명 시인들이다. 이들의 시를 번역하거나 감상을 서술한 책은 시중에서 간간히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은 기왕의 책들과 다르다.
시는 그 시인의 삶과 사상을 문자로 노래한 것이다. 그렇기에 시인의 삶을 들여다보고 나면 시 속에서 진정 말하고자 한, 시인의 메시지를 정확하게 꿰뚫어 볼 수 있다. 그래서 이 책의 부제가 '중국 시인 열전'이다.
젊은 날의 포부를 제대로 펴보지 못하고 늙어버린 두목의 시에 담긴 슬픈 시선, 처자와 함께 피난길을 전전하는 괴로운 삶을 살았던 두보의 슬픈 얼굴, 불교에 탐닉함으로써 자연을 성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인 왕유, 투철한 오도의 경지를 시로 읊은 왕사진, 원말 명초의 혼란한 시기에 시 창작을 신선의 일로 여기며 그 속에 침잠해 현실을 도피한 고계, 자신을 오로지하며 천명을 지키는 삶을 살기 위해 귀거래를 노래한 도연명 등 시인의 삶과 그들의 시를 밀접하게 연계시켜 각각의 시의 특징을 살펴보았다.
하늘의 별과 같이 빛나는 한시의 대가들
“문명의 불빛은 하늘의 별빛을 빼앗았다. 게다가 우리는 남 이기려는 궁리에 골몰하고 주머닛돈을 세느라 밤하늘을 바라보지 못하기 때문에 영혼 속의 불꽃을 하늘의 별빛과 일치시킬 수 없게 되었다.
영원한 미의 세계에서 한시의 작가들은 하늘의 성좌(星座)와도 같이 오늘도 빛을 발하고 있건만, 우리는 그 빛을 감지할 능력을 상실해 가고 있다. 아름다운 것이 어렵게만 여겨져 미의 세계로 나아갈 엄두를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완성된 시가(詩歌) 형식을 이용하여 저마다의 꽃을 피운 시인들은 미의 세계에서 성좌를 이루어, 한자 문화권에서 미의 역정(歷程)이 나아가야 할 길들을 비추어 왔다. 그렇기에 우리의 선인들도 한시 작가들의 기라성을 바라보면서 스스로의 미적 정서와 사유를 열어 나가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_「책머리에」 중에서
시인의 삶과 내면, 중국한시의 대표 시인 열전列傳
―이 책에서 다루는 중국한시의 대표 시인은 모두 10명이다. 소식, 이하, 두목, 백거이, 두보, 왕유, 한유, 왕사진, 고계, 도연명.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봄직한 유명 시인들이다. 이들의 시를 번역하거나 감상을 서술한 책은 시중에서 간간히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은 기왕의 책들과 다르다.
―시(詩)는 그 시인의 삶과 사상을 문자로 노래한 것이다. 그렇기에 시인의 삶을 들여다보고 나면 시 속에서 진정 말하고자 한, 시인의 메시지를 정확하게 꿰뚫어 볼 수 있다. 그래서 이 책의 부제가 ‘중국 시인 열전’이다.
소동파가 유배객으로 전전하는 피곤한 삶 속에서도 천지의 주인, 이른바 풍월주를 자부하며 명랑성을 잃지 않았던 것은 불교와 도교를 활발하게 받아들인 사상의 자유로움이 있기 때문이었다.
중국문학사에 등장하는 문인들 중에서 가장 상상력의 스케일이 크다는 이하(李賀)는 초자연적 소재를 시작(詩作)에 이용함으로써 ‘귀재’(鬼才)라 불렸다. 이하의 이러한 면모는 27세에 요절함으로써 좌절할 수밖에 없던 자신의 불우한 삶을 시로써 극복하기 위해서였으리라.
한유의 시는 그의 산문과 닮았다. 시 또한 산문으로 쓰는 고체시를 즐겼는데, 이러한 시들은 비록 아름다움은 적고 고담(枯淡)하지만, 기발한 시어와 압운법으로 그 한계를 뛰어넘어 자신만의 시 세계를 열었다.
백거이의 시에는 괴로움, 근심, 탄식을 드러낸 말이 거의 없다. 백거이는 슬픔과 괴로움을 거의 대부분 거문고와 술에 의탁했다. 이러한 시적 특징은 백거이의 비교적 순탄했던 인생과 그의 타고난 낙천성에서 연유한다. 그의 자 또한 낙천(樂天)으로, 백거이는 백낙천이라는 이름으로도 잘 알려진 시인이다.
젊은 날의 포부를 제대로 펴보지 못하고 늙어버린 두목의 시에 담긴 슬픈 시선, 처자와 함께 피난길을 전전하는 괴로운 삶을 살았던 두보의 슬픈 얼굴, 불교에 탐닉함으로써 자연을 성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인 왕유, 투철한 오도(悟道)의 경지를 시로 읊은 왕사진, 원말 명초의 혼란한 시기에 시 창작을 신선의 일로 여기며 그 속에 침잠해 현실을 도피한 고계, 자신을 오로지하며 천명을 지키는 삶을 살기 위해 귀거래를 노래한 도연명 등 시인의 삶과 그들의 시를 밀접하게 연계시켜 각각의 시의 특징을 살펴보았다.
―간혹 한시의 시인은 자기 시를 음풍농월(吟風弄月)에 불과하다고 말하곤 한다. 자신의 시가 웅대한 뜻을 담지 못한다고 겸손해한 것이다. 그래서 어떤 이는 한시를 단순한 농지거리라고 폄하하기도 한다. 하지만 한시는 자연, 현실, 그리고 역사의 모든 것을 소재로 삼으며, 서정뿐 아니라 기록과 논변의 기능도 한다.
이 책은 중국한시의 대표 시인들이 그들의 내면세계와 삶의 역정을 어떻게 그들의 시에 담아냈는지, 그리고 시를 통해 시인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를 이야기하며, 그 시인만이 가진 독특함, 별처럼 빛나는 고갱이를 잡아냈다. 특립독행(特立獨行)하며 하늘의 성좌와도 같이 미의 역정에서 찬란한 빛을 드리운 한시 작가들을 이 책에서 만날 수 있다.
소식 풍월주인의 노래
소식은 그 이름보다 소동파라는 호로 더 유명하다. 소동파의 삶은 기구했다. 문재(文才)를 타고났지만, 북송(北宋) 시대 신법당과 구법당의 알력 속에서 부단히 지방관으로, 유배객으로 전전하는 피곤한 삶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파의 작품은 슬프지 않다. 오히려 조물주가 만들어놓은 천지자연의 주인, 이른바 풍월주를 자처하며 호방한 기운, 낙락한 감흥을 시어에 담아냈다. 소동파는 산림에 은둔하지 않았으며, 현실 세계와 동떨어진 제3자의 입장에서 세상을 관망하지도 않았다. 이는 당나라의 맹교(孟郊)가 자신을 세속 밖에 멀찌감치 세워 두고 명리(名利)의 사람들과 뾰족하게 대립시킨 것과는 다르다.
비에 씻긴 동쪽 언덕, 달빛 맑은 밤
왕래 끊긴 길을 야인 홀로 걷노라니,
울퉁불퉁 돌길에
잘각잘각 지팡이 소리._「동파」(東坡)
소동파는 불교와 도교의 사상을 깊이 받아들여 초연하고 활달했다. “강산풍월은 본시 일정한 주인이 없으니, 한가한 사람이 곧 주인이다”라는 말은 그의 초연하고 활달한 태도를 가장 적절하게 보여준다.
이하 귀계의 소년
이하는 이장길이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하다. 27세의 나이로 요절했다. 짧은 생애 동안 현실에서의 좌절을 뛰어넘으려는 듯, 상상력을 극도로 추구했다. 천재적 재능을 지닌 데다가 초자연적 소재를 애용했으므로 후인들은 그를 ‘귀재’(鬼才)라고 불렀다. 중당(中唐) 시기의 문호 한유는 이장길이 명함과 함께 들여보낸 「안문태수행」을 읽고 깜짝 놀라 버선발로 뛰어나가 그를 맞았다고 한다. 이장길이 17세 때의 일이다.
서산에 해 지고 동산이 저물자
회오리바람 따라 귀신의 말이 구름을 밟고 내려오니,
거문고 낮게 울리고 피리는 빠른 소리를 내며
무당은 꽃무늬 치마로 사락사락 가을의 흙먼지를 밟는다.
바람에 계수나무 잎 떨어지고 열매 떨어지는 밤
푸른 털 살쾡이는 피를 토하고 겨울 여우는 고꾸라지누나.
낡은 벽에 그려진 오색 수룡은 꼬리의 금박이 반짝이고
비 귀신은 말을 타고 가을의 못물로 들어가는데,
백 년 묵은 올빼미의 도깨비가
깔깔 웃자 파릇한 귀화(鬼火)가 둥지에서 일어난다._「신현곡」(神絃曲)
이장길의 작품은 기묘하다 못해 음산하다. 이 작품은 무녀가 접신하는 광경을 묘사한 것이라고 한다.
이장길은 공상을 즐겼다. 중국 시인 가운데 이장길만큼 자유로운 공상을 구사한 인물은 없다고 한다. 이장길은 심장을 도려내는 듯한 고통을 겪으면서 시어를 토해 내어 ‘고음’(苦吟)이란 단어를 탄생시켰다. 이장길이 귀계를 넘나들며 환상적인 시를 고음한 것은 인간의 유한성을 극복하려 한 그 나름의 방법이 아니었을까!
한유 주지주의의 실험
한유의 시를 읽으면 마치 그의 산문 작품을 읽는 듯하다. 주지하듯 한유는 당송팔가(唐宋八家)의 대표 문인으로 고문(古文)으로의 회귀를 주장한 인물이다. 사상가로서 한유는 유교 중심주의를 강조하여, 불교·도교를 맹렬히 공격했다. 「논불골표」 등이 대표적인 산문 작품이다.
한유는 57세에 병으로 죽을 때까지 관리로서 좌천과 승진을 거듭했다. 그래서인지 한유의 시는 현실에 대해 직접 발언하고 서사적 제재로 장대한 시편을 짓거나 인생의 이치를 논하는 사변적인 작품이 많다. 한유는 지식으로 시를 지었으며, 고사를 사용해 뜻을 표현하는 방법을 즐겼기에 해당 고사를 모르면 한 줄도 해석하기 어려운 시들도 있다.
한유는 산문으로 시를 짓는 고체시를 즐겼다. 그렇기에 한유의 시는 우아한 아름다움은 적고 고담(枯淡)하기만 하다. 한유는 자연에 동화되지 않았고, 늘 자연과 자신이 격리되어 있음을 자각했다. 그래서 그의 시는 따뜻하지 않고 대신 기험(奇險)하고 호방하다. 한유는 대담한 상상력을 필요로 하는 신선이나 괴물, 귀신, 무덤 등을 소재로 삼지 않았다. 이 점에서 이장길과 다르다. 한유는 친근한 소재로 인간 보편의 생각을 시에 담되, 남들과는 달리 기발한 시어와 압운법을 추구했다. 한유는 흰 눈을 고래의 뼈와 옥석의 가루로 비유했다.
땅에 올라와 죽은 고래의 뼈
화염에 재가 된 옥석의 가루_「눈을 노래하여 장적에게 주다」
한유가 비유어로 사용한 기발한 시어들은 훗날 상투어가 된 것이 많다. 예를 들어 마을 사람들끼리 계를 닦는 것을 계돈계라고 하는데, 이 말은 “부디 같은 마을 사람 되어, 봄가을마다 계돈(鷄豚)으로 잔치를 했으면”(「남계에 처음으로 배를 띄우고」)이라는 시에서 비롯되었다. 또 아들을 뜻하는 첨정(添丁)이라는 말도 “지난해 아들 낳아 첨정이라 이름 지었나니, 나라에 바쳐 농사에 충당하겠다는 뜻이었지”라고 한 구절에서 비롯되었다(「노동에게 부치다」).
한유의 시는 주지주의적이고 의미의 과잉도 있지만 사물 하나하나에서 의미를 찾아내려 한 그의 사유가 고스란히 반영되었다. 이 때문에 조선의 지식인들은 특히 한유의 시를 사랑했다.
도연명 그 평온한 곳으로 돌아가자
도연명과 가장 밀접한 단어는 ‘고향’이다. 새들이 밤이 되어 새둥지를 찾아가듯, 도연명은 고향을 택했다. 그의 대표작 「귀거래사」는 바로 이러한 그의 정신을 담고 있다.
돌아가리라! 전원이 황폐해지려 하거늘 어찌 돌아가지 않으리오?
마음이 육신의 부림을 당했음을 안다면, 어찌 낙담하여 홀로 슬퍼하고만 있는가?_「귀거래사」
도연명은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29세에 벼슬길에 올랐고, 41세에 누이의 죽음을 구실 삼아 팽택현의 현령 직을 사임한 후 62세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관계에 나가지 않았다. 현령을 그만둘 때 지은 작품이 바로 「귀거래사」다. 도연명은 오두미(五斗米)로 상징되는 세속적이고 외적인 모든 구속을 벗어던지고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하지만 도연명이 말하는 고향은 세속과 단절된 외진 곳이 아니었다.
집을 사람들 사는 곳에 지었지만
수레와 말발굽 시끄러운 소리 없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물으면
마음 멀어서 땅이 절로 외지다 하리라.
동쪽 울타리 아래 국화를 꺾다 보면
유연히 남산이 시야에 들어오고,
날 저물어 산 기운이 아름다울 때
날던 새들 짝하여 돌아오누나.
이 가운데 참 뜻 있으나
밝히려 하다가 말을 잊었노라._「음주 제5수」
“동쪽 울타리 아래 국화를 꺾다 보면, 유연히 남산이 시야에 들어오고”라는 구절은 천하의 명구다. ‘유연’(悠然)은 객관 대상과 주체가 합일한 상태이다. 탈속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이미 세속을 넘어선 경지다. 도연명의 귀거래는 ‘천명을 즐기며 마음껏 자유롭게 살아가는 세계’로 나아가 내면의 주체성을 확립하려는 결단이었다.
백거이 치유의 언어
도연명이 ‘고향’이라면, 백거이를 대표하는 말은 ‘지족’(知足)이다. 그의 자 낙천(樂天)도 백거이의 이런 면모를 반영하고 있다. 중소지주 집안 출신으로 비교적 순탄한 관직생활을 만년까지 지속해서일까, 백거이의 시는 너글너글하고 솔직하다. 백거이는 나이가 몇 살이든 젊다 늙다 여기지 않고 늘 적절한 연령이라고 했다. “오품 벼슬은 천하지 않고, 오십 나이는 요절이 아니지.”(「서액의 초가을 숙직하는 밤 속마음을 적다」)
백거이는 진실한 감정을 담아내는 것이 참된 시이고 또 그것이 사람을 감동시킨다고 보았다. 특히 백거이는 슬픔이라는 감정을 응시했는데, 특이하게도 백거이의 시에는 괴로움, 근심, 탄식을 드러낸 말이 거의 없다. 늘 “한적하여 한껏 넉넉하고, 술로 즐기느라 다른 겨를이 없었다”고 했다. 백거이라고 해서 왜 슬픔과 괴로움이 없었겠는가. 백거이는 이러한 감정들을 술과 거문고에 의탁했다. 그의 대표작 「하처난망주」, 풀이하자면 “어디서 술 생각 간절한가?”는 바로 이러한 백거이의 심리를 잘 보여준다.
백거이는 술을 사랑했다. 술은 한가함 속에서 정신을 치유할 수 있는 절호의 수단이었다. 백거이는 아예 자신을 가공의 인물에 가탁해서 「취음선생전」을 지었다.
거문고 끌어안으니 영계기의 즐거움
술을 마음껏 마시니 유영의 달통함.
시선을 놓아 청산을 바라보나니
머리에 백발이야 생기든 말든.
모르겠네, 천지 사이에
몇 년이나 더 살지.
이제부터 죽는 날까지는
일체 한가한 세월로 삼으리._「취음선생전」
「취음선생전」에서 백거이는 인간 행복의 다섯 가지 조건으로 돈에 곤란을 겪지 않을 것, 충분한 수명을 누릴 것, 먹는 것에 곤란을 겪지 않을 것, 인생을 즐겁게 받아들일 것, 몸이 건강할 것을 들었다. 그러면서 각각의 조건에서 밑바닥 상태에 있던 옛사람들을 거론하여, 자신은 그들보다 나은 조건에 있다고 안도했다. 백거이의 지족한 삶, 너글너글한 심리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두보 침울한 얼굴
두보가 처한 시대는 당 제국이 안사의 난으로 붕괴 위기를 맞던 때였다. 안사의 난은 두보의 인생을 철저히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두보의 어린 아들은 먹을 것이 없어 굶어죽었고, 자신은 남은 가족을 데리고 피난지를 떠돌았다. 조선 성종 때 만들어진 『두시언해』 서문에는 두보가 충군애국의 뜻을 시에 담았기 때문에 그 시를 높이 친다고 말했지만, 이러한 평가는 ‘삼리’(三吏)와 ‘삼별’(三別)로 대표되는 두보의 사회시 때문이다. 그러나 두보의 시들을 전반적으로 살펴보면, 그는 전란으로 떠도는 자신의 처지를 서글퍼하다 못해 침울한 모습을 시로 드러냈다. 괜찮은 벼슬자리 하나 얻어 가족 부양하는 소박한 꿈을 꾸던 두보는 58세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변변한 벼슬 한번 못해보고 전란에 휩쓸려 떠돌아야 했다.
나그네, 나그네, 이름은 자미
흰머리 헝클어져 귀를 덮었거늘,
도토리 줍느라 원숭이를 따르다니
추운 날 저물도록 산골 속에서.
중원에선 소식 없어 돌아가지 못하고
손발 얼어 터져 살가죽이 죽었네.
아아, 첫 번째 노래, 애처로운 노래
슬픈 바람이 하늘에서 불어오네._「동곡칠가 제1수」
두보는 극도로 지쳐서 눈물도 흘리지 못할 상태였다. 그런데도 개인이 느끼는 슬픔의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고 인간 보편의 슬픔을 시적 언어로 표현해냈다. 두보의 침울한 정서는 보편성을 띠었다. 두보의 서정은 허위도 아니고 과잉도 아니다. 그의 서정시들은 내면의 고통을 여과없이 드러내어 솔직한 느낌을 주고, 인간 존재의 보편적 슬픔을 시로 그려 내어 쉽게 공감이 간다. 그렇기에 후대의 작가들은 두보의 진솔한 시를 귀하게 여기고 또 기꺼이 그 소재나 어휘를 이용해서 자신의 내면을 드러냈다.
두목 애상의 시선 젊은날 포부를 펼 기회를 얻지 못하고 현실에의 의지를 상실한 두목의 시는 슬프고도 화려하다. “서리 맞은 단풍이 봄꽃보다 붉어라”라는 시구를 통해 젊은날의 무수한 역경을 겪은 뒤 이제는 담담한 마음을 갖게 된 두목 자신의 처지를 투영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담담함 뒤에는 쓸쓸함이 숨어 있다.
왕유 성스러운 자연 자가 마힐(摩詰)인 왕유는 어려서부터 불교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관직생활을 무난하게 했지만 그는 정치에 대한 열정이 희박했고 불교에 탐닉했다. 시에서도 불교의 관념을 많이 드러내서, 사람들이 그를 ‘시불’(詩佛)이라 불렀다. 왕유는 산수 자연의 성스러움을 극도로 추구했다. “가다가 강물 다한 곳에 이르러, 앉아서 구름 일어나는 것을 바라본다”(「종남산 별장」)는 시구는 자연에 내맡긴 삶, 허물을 벗고 만물의 바깥에 부유하는 태도를 말하고 있다. 자연을 신성한 것의 현성으로 간주하며 자연 속에 몰입한 의식을 시에 담아냈다. 자연을 사랑한 나머지 인간까지도 하나의 점경으로 처리한 것이 그의 시의 가장 큰 특징이다.
왕사진 상념의 정화 왕사진은 한시의 역사에서 ‘신운’(神韻)의 설을 제창한 것으로 유명하다. 언어의 함축적 기능을 극단적으로 추구하면서, 외물에 속박되지 않는 평정한 마음 상태를 추구했다. 왕사진은 시의 상징성과 이미지를 중시하고, 외부 대상에 접하여 일어나는 흥취를 추구했으며, 투철한 깨달음을 창작 방법으로 삼았다.
고계 서른아홉 살의 내면 고계는 원말 명초, 장사성과 주원장이 패권을 다투던 시절에 살았다. 나이 서른아홉에 역적죄에 연좌되어 죽임을 당했다. 짧은 생애에 그는 2천 수 이상의 시를 지어 분방한 정신세계를 드러냈는데, 그중에서도 「청구자가」(靑邱子歌)는 그러한 정신세계를 스스로 고백한 작품으로 유명하다. “청구자여, 여위고 맑구나. 본시 오운각의 신선이었건만, 어느 해 유배되어 내려와 세상에 있게 됐나.” 고계는 시 짓는 일을, 쌀을 단사로 만드는 것과 같이 신비스런 영능으로 여겼다. 그리고 그것은 천상의 존재가 하는 일을 흉내 내는 것이기에 천상의 존재로부터 노여움을 사게 되리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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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심경호(지은이)
현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1955년 충북 출생으로,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동 대학원 석사과정을 졸업하고, 일본 교토(京都)대학에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한문학과 교수, 고려대학교 한자한문연구소장을 역임하고, 현재 동아한학연구 편집위원장, 애산학회 이사 및 편집위원장, 율곡국학원 이사로 있다. 저서로 『강화학파의 문학과 사상』(단독 및 공저 1-4), 『조선시대 한문학과 시경론』, 『한학입문』, 『한국한문기초학사』 1-3, 『다산과 춘천』, 『여행과 동아시아 고전문학』, 『김시습평전』, 『안평 : 몽유도원도와 영혼의 빛』, 『한국한시의 이해』, 『한시의 세계』, 『한시의 서정과 시인의 마음』, 『한시의 성좌』, 『김삿갓 한시』, 『(증보)한문산문미학』, 『간찰』, 『참요』, 『내면기행』, 『산문기행』, 『국왕의 선물』 1-2, 『옛 그림과 시문』, 『한국의 석비문과 비지문』, 『호, 주인옹의 이름』, 『한국의 과문(科文)의 양식과 시제(試題)』, 『응제(應製)와 제술(製述)』, 『서울 고전만유』, 『성호사설의 변정·상론·제안』 등 40여 종이 있다. 역서로 『주역철학사』, 『불교와 유교』, 『금오신화』, 『역주 원중랑집』(공역), 『한자 백가지 이야기』, 『선생, 세상의 그물을 조심하시오』, 『증보역주 지천선생집』(공역), 『서포만필』 1-2, 『삼봉집』, 『기계문헌』 1-6, 『심경호 교수의 동양고전강의 : 논어』 1-3, 『육선공주의』 1-2(공역), 『동아시아 한문학 연구의 방법과 실천』, 『도성행락(圖成行樂) : 명청문인의 화상 제영』, 『여유당전서(시)』(네이버 지식백과), 『춘향전·춘향가』, 『을병조천록』, 『신편신역 청련집』, 『강화학파 정제두·이충익·심대윤』(한국사상선), 『신편신역 김시습전집』 등 40여 종이 있다.
목차
책을 엮으며 = 5 소식 : 풍월주인의 노래 = 11 이하 : 귀계의 소년 = 29 두목 : 애상의 시선 = 48 백거이 : 치유의 언어 = 68 두보 : 침울한 얼굴 = 90 두보 : 이 가을이 슬프다 = 117 왕유 : 성스러운 자연 = 144 한유 : 주지주의의 실험 = 165 한유 : 사유의 시적 구조화 = 194 왕사진 : 상념의 정화(精華) = 213 고계 : 서른아홉 살의 내면 = 234 도연명 : 그 평온한 곳으로 돌아가자 = 270 도연명 : 언술의 자유 = 306 후기 = 332 미주 = 335 찾아보기 = 35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