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까지 교과서로만 배웠던 활자 속 조선이 아닌,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이들이 가득한 ‘진짜 조선’을 보여준다. 저자가 엄선한 스물다섯 가지 이야기는 ‘유교가 지배한 조선’, ‘남존여비와 사대주의에 찌든 조선’이라는 편견을 깨부수는 흥미로운 이야기로 가득하다.
조선 시대에는 능력을 인정받은 여자 선비도 있었고, 억울한 사정을 한글로 풀어내 소송에서 이긴 여인도 있었다. 타국의 첩보 문서를 훔쳐 오던 조선판 비밀 요원 역관과 선교하랴 염탐하랴 바빴던 서양 선교사를 보며, 격동하던 시대 국가 간의 치열한 정보 전쟁도 엿볼 수 있다.
중국과 일본을 사로잡은 조선 의학의 보물 <동의보감>, 현대 못지않게 의약이 분업화된 18세기 서울, 역병으로부터 아이들을 구한 선각자 지석영 선생 이야기는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바꾼 코로나의 시대, K-방역의 역사가 유구함을 보여준다.
이 책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임금은 조선 후기 성군으로 유명한 정조인데, 신하들에게 술을 먹이며 즐거워하던 짓궂은 일면과 함께, 홍삼으로 부의 흐름을 바꾼 사업가의 모습도 엿볼 수 있다. 각 장 끝머리에 덧붙인 ‘서양 역사 톺아보기’는 조선과 동시대 서양을 비교해볼 수 있는 유용한 자료다. 교과서 밖으로 뛰어나간,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스물다섯 모습의 조선을 돌아보며 대한민국의 현재와 미래를 가늠해보자.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교과서 밖 ‘진짜 조선’을 보여주는 길잡이
정조 임금이라 하면 무엇이 생각나는가? 비극적으로 죽은 사도세자의 아들, 조선 후기 중흥 군주, 문체반정 등등 교과서에서 배운 내용이 줄줄이 떠오를 것이다. 그런데 실제 살아 숨 쉬던 정조 이산은 이런 근엄한 왕으로서의 모습만 있었을까? 우리가 알아야 할 《교과서 밖 조선의 역사》에는 ‘술과 담배를 즐기던 쾌락 군주’라는 정조의 또 다른 일면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그 유명한 다산 정약용에게 70도가 넘는 독한 소주를 옥필통에 가득 부어 마시게 한 일화를 보면, 근엄한 군주와 충신이라고만 알고 있던 두 사람도 울고 웃으며 한 시대를 살아간 인간임을 느낄 수 있다. 교과서의 딱딱한 활자로는 알 수 없었던 인간적인 면모이자 신분을 뛰어넘는 우정이다.
한편으로 정조는 사농공상이라 하여 상업을 천시했던 조선에서 사업 수단을 제대로 발휘한 임금이었다. 제조법도 편리하고 유통기한도 긴 ‘홍삼’을 개발한 뒤 중국에 수출하기 위해 관련 제도까지 고친 것이다. 덕분에 오늘날 반도체보다 훨씬 높은 영업이익률을 기록했다니,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 태어났으면 대단한 사업가가 되셨을 듯하다. 교과서만으론 제대로 와 닿지 않았던 ‘중흥 군주 정조’의 모습이다.
공식 역사에는 기록되지 않은 여성의 이야기도 《교과서 밖 조선의 역사》는 생생하게 되살려 낸다. 억울하게 빼앗길 뻔한 아버지의 유산을 절절한 한글 소장으로 되찾은 장 소사, 시댁 선영을 지키기 위해 유려한 한글로 호소한 윤씨 부인 등은 이름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현대의 눈으로 보기에도 대단한 분들이다. 이처럼 《교과서 밖 조선의 역사》는 활자 속 박제된 인물이 아닌, 우리와 다름없는 ‘진짜 인간’이 살아간 조선을 생생히 보여준다.
조선이란 과거의 거울로
현재의 대한민국을 보다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팬데믹에 빠진 지금, K-방역의 우수성이 새삼 각광받고 있다. 이처럼 우수한 대한민국 의학의 뿌리는 어디서 비롯되었을까? 중국과 일본에도 소개되어 ‘천하가 함께 가져야 할 보물’이라 평가받은 허준의 《동의보감》과 전 세계에 수출된 한국산 코로나 진단키트가 교차되니, ‘과거의 역사는 미래의 거울’이란 익숙한 말이 제대로 실감난다. 의약이 이미 분업화되고 서울과 지방의 의료 편차도 의외로 적었던 18세기 조선의 실정은 지방의 의료 인프라가 갈수록 부족해지는 현대 대한민국이 오히려 배워야 할 점이다.
한중일 삼국의 역학관계가 갈수록 복잡해지고,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심상찮은 이때 반면교사로 삼을 만한 과거의 정보 전쟁도 흥미롭다. 타국과의 외교에서 꼭 필요한 역관이 첩보 문서를 훔쳐 오는 등 조선판 비밀 요원으로 활약했고, 서양 선교사들이 종교만 전한 게 아니라 각국의 실정까지 염탐했던 생생한 기록을 보며 ‘정보’와 ‘인재 활용’의 중요성을 실감할 수 있다. 중인이란 신분의 한계로 알아낸 정보를 실제 정책에 적용할 수 없었던 조선 역관과는 달리, 고급 인력으로 구성된 서양 선교사들은 첩보 활동을 착실히 수행했고 이는 서양 열강과 조선의 국력 차이로 이어졌다. 역관이란 인재를 제대로 활용했으면 일제 강점으로 이어진 조선의 운명도 달라졌을지 모른다. 이처럼 《교과서 밖 조선의 역사》가 하나하나 짚어주는 과거 역사를 거울삼아 현재 대한민국을 성찰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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