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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90 | ▼a 851.1 ▼b P493 칸c | |
| 100 | 1 | ▼a Petrarca, Francesco, ▼d 1304-1374 ▼0 AUTH(211009)96539 |
| 245 | 1 0 | ▼a 칸초니에레 / ▼d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 지음 ; ▼e 김운찬 옮김 |
| 246 | 1 9 | ▼a Canzoniere |
| 260 | ▼a 파주 : ▼b 아카넷, ▼c 2024 | |
| 300 | ▼a 823 p. ; ▼c 20 cm | |
| 490 | 1 0 | ▼a 대우고전총서 = ▼a Daewoo classical library ; ▼v 061 |
| 500 | ▼a 원저자명: Francesco Petrarca | |
| 500 | ▼a 2025년도 대한민국학술원 선정 교육부 우수학술도서 | |
| 504 | ▼a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 연보" 수록 | |
| 536 | ▼a 대우재단의 지원을 받아 연구 및 출간되었음 | |
| 546 | ▼a 이탈리아어로 된 원저작을 한국어로 번역 | |
| 650 | 8 | ▼a 이탈리아 시[--詩] ▼0 KSH2002033660 |
| 700 | 1 | ▼a 김운찬, ▼g 金雲燦, ▼d 1957- ▼0 KAC201315329, ▼e 역 |
| 830 | 0 | ▼a 대우고전총서 ; ▼v 061 |
| 830 | 0 | ▼a Daewoo classical library ; ▼v 061 |
| 900 | 1 0 | ▼a 페트라르카, 프란체스코, ▼d 1304-1374, ▼e 저 |
소장정보
| No. | 소장처 | 청구기호 | 등록번호 | 도서상태 | 반납예정일 | 예약 | 서비스 |
|---|---|---|---|---|---|---|---|
| No. 1 | 소장처 세종학술정보원/인문자료실2(2층)/ | 청구기호 851.1 P493 칸c | 등록번호 151371960 | 도서상태 대출가능 | 반납예정일 | 예약 | 서비스 |
컨텐츠정보
책소개
“만약 서양 시문학사를 통틀어 수 세기 동안 끊임없이 이야기된 한 권의 책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페트라르카의 『칸초니에레』다.”(로산나 베타리니, 르네상스 전문가) 『칸초니에레』는 단테와 더불어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시인인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Francesco Petrarca, 1304~1374)의 가장 유명한 작품으로, 그가 평생에 걸쳐 쓴 서정시 모음집이다.
그가 자필로 쓴 원고에 적힌 제목은 『계관시인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의 속어로 쓴 단편적 시들』이다. 『칸초니에레』는 그동안 우리말로는 매우 제한적으로만 만날 수 있었는데, 국내 이탈리아 문학계의 대표 주자인 김운찬의 전문적이고 세심한 번역과 역주에 힘입어 마침내 우리 독자들도 그 전모와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서막을 연 위대한 시인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의 서정시 모음
국내 첫 완역
“만약 서양 시문학사를 통틀어 수 세기 동안 끊임없이 이야기된 한 권의 책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페트라르카의 『칸초니에레』다.”(로산나 베타리니, 르네상스 전문가) 『칸초니에레』는 단테와 더불어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시인인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Francesco Petrarca, 1304~1374)의 가장 유명한 작품으로, 그가 평생에 걸쳐 쓴 서정시 모음집이다. 그가 자필로 쓴 원고에 적힌 제목은 『계관시인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의 속어로 쓴 단편적 시들』이다. 『칸초니에레』는 그동안 우리말로는 매우 제한적으로만 만날 수 있었는데, 국내 이탈리아 문학계의 대표 주자인 김운찬의 전문적이고 세심한 번역과 역주에 힘입어 마침내 우리 독자들도 그 전모와 만날 수 있게 되었다.
페트라르카는 중세를 넘어 근대로 나아가는 관문에 있는 대표적 인물로 꼽힌다. 고전 문헌을 탐구하고 소개하는 작업으로 르네상스의 본질인 인문주의의 발전에 많은 영향을 준 그는 ‘인문주의의 아버지’ 혹은 ‘최초의 인문주의자’로 일컬어진다. 세상을 떠날 때도 늘 애독하던 베르길리우스의 시집을 베게 삼았다고 한다. 고전 문헌 탐구를 해 온 사람답게 페트라르카는 주로 라틴어로 작품 활동을 했고 그것으로 계관시인이라는 명성도 얻었지만, 『칸초니에레』는 단테가 『신곡』을 쓸 때 그러했듯이 피렌체 속어로 쓴 것이다. 말하자면 여기에 실린 서정시들은 그가 라틴어 작업에서 벗어나 하나의 여흥으로 쓴 것이라 할 수 있는데, 세상 사람들은 속어로 쓴 이것을 더 좋아했다.
『칸초니에레』는 페트라르카가 살던 당시부터 큰 인기를 누렸다. 그것은 단테의 『신곡』을 제치고 이탈리아 운문의 전범으로 꼽히면서 그 문체를 모방하는 것이 널리 유행했으며, 페트라르카의 소네트로부터 자극을 받은 셰익스피어는 ‘셰익스피어 소네트’를 완성하는 등 이후 400여 년간 근대 유럽 문학사에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에도 깊은 영감을 주었으니, 음악가인 프란츠 리스트는 페트라르카의 47번, 104번, 123번 소네트를 피아노 곡으로 만들었고, 마키아벨리는 128번 시 중 “역량이 광기에 대항하여 / 무기를 들고, 전투는 짧게 끝날 것이니, / 이탈리아인들의 가슴속에서 / 옛날의 용기가 아직 죽지 않았기 때문이오”라는 구절을 『군주론』의 결구로 인용하기도 했다. 이로써 페트라르카는 라틴어를 통해 인문주의 확립에 크게 공헌한 한편, 속어를 통해 근대 유럽 문학 발전의 귀한 밑거름이 되었다.
전체 366편으로 이루어진 『칸초니에레』는 페트라르카가 거의 40년에 걸쳐 쓴 시를 한데 모은 것인 만큼 그 형식 또한 소네트, 칸초네, 세스티나, 발라드, 마드리갈 등 다양하다. 하지만 시인 자신이 오랜 기간에 걸쳐 꼼꼼하게 정리하고 편집한 덕에 각 작품은 놀라울 정도로 조화롭고 유기적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 이 모음집에 실린 시들은 대부분 운명적 여인인 라우라에 대한 사랑을 노래한다. 단테에게 베아트리체가 있었고, 보카치오에게 피암메타가 있었듯이, 페트라르카에게는 라우라가 있었다. 페트라르카는 1327년 아비뇽의 성당에서 라우라를 처음 보고 사랑에 빠졌다고 전해진다. 라우라는 그를 냉정하게 대했지만 그럴수록 시인의 마음은 불타올랐다. 그리고 정확히 21년 뒤에 라우라는 흑사병으로 죽고 마는데, 시인은 뒤늦게 그 사실을 알고 인간의 무기력함과 모든 세속적 가치의 덧없음을 이렇게 노래한다.
삶은 달아나면서 잠시도 멈추지 않고,
죽음은 뒤에서 아주 빠르게 오고,
현재의 일들과 과거의 일들은 나에게
고통을 주고, 미래의 일들도 그러하며,
기억하는 것과 기다리는 것은
이쪽저쪽에서 심장을 찌르니, 솔직히
나 자신을 향한 연민이 없다면, 나는
벌써 이런 생각에서 벗어났을 것이오.
슬픈 가슴에 혹시 달콤한 것이 있었다면
앞으로 나와 보라. 그리고 다른 쪽에서는
내 항해에 혼란스러운 바람들이 보이고,
항구에도 폭풍이 보이고, 내 키잡이는
이미 지쳤고, 돛대와 밧줄은 부서졌고,
내가 바라보던 아름다운 빛은 꺼졌다오.
- 『칸초니에레』 272
단순히 한 여인에 대한 사랑의 표현을 넘어 인간 존재의 의미에 대한 심오한 성찰로 나아감으로써 『칸초니에레』는 중세 신 중심의 세계관에서 벗어나 인간의 경험에 주목하는 새로운 문학의 모델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시대를 초월하여 보편적 울림을 갖는 고전으로 자리매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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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지은이)
이탈리아의 시인이자 정치인으로, 단테의 뒤를 이어 중세의 막을 내리고 르네상스의 문을 연 대표적 인물로 평가받는다. 1304년에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의 아레초에서 태어났다. 본래 피렌체의 서기였던 아버지는 단테와 정치적 동료로서, 복잡한 정쟁에 휘말리게 되면서 당시 아레초로 망명해 있었다. 1309년, 로마 교황청이 남프랑스 아비뇽으로 옮겨 간 초유의 사태가 일어나자 페트라르카의 가족도 그곳에 정착했다. 페트라르카는 처음에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법학도의 길을 걸었지만 라틴어 문학에 더 큰 흥미를 보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본격적으로 작품을 쓰기 시작했고, 1327년에는 평생의 짝사랑이자 그의 문학 인생에서 영감의 주요 원천이 된 라우라를 아비뇽의 한 성당에서 운명적으로 만났다고 전한다. 1330년에 로마 명문가의 콜론나 추기경을 섬기기 시작하면서 페트라르카도 성직의 길을 택했다. 이때부터 그의 활동 범위도 넓어져 가문의 사절로 파리, 리옹 등을 여행했으며, 1341년에는 로마에서 계관시인으로 월계관을 받기도 했다. 페트라르카는 여러 차례에 걸쳐 이탈리아의 많은 도시를 여행했지만 상당한 시간을 프랑스 남동부에 위치한 보클뤼즈에서 살면서 주요 작품을 탄생시켰다. 그중 라우라와의 사랑을 피렌체 속어로 담아낸 『칸초니에레』는 중세의 신 중심에서 벗어나 인간 중심의 새로운 시대정신을 명징하게 보여 줌으로써 그에게 커다란 명성을 안겨 주었다. 1352~1353년에는 새로운 교황인 인노켄티우스 6세와의 대립으로 아비뇽을 떠나 이탈리아로 건너갔다. 그곳에서 창작 활동에 몰두하며 평온한 여생을 보낸 그는 일흔 살 생일을 맞이하기 하루 전인 1374년 7월 18일에 아르콰의 집에서 눈을 감았다.
김운찬(옮긴이)
한국외국어대학교 이탈리아어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였고, 이탈리아 볼로냐 대학교에서 움베르토 에코의 지도로 화두(話頭)에 대한 기호학적 분석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1991년부터 2022년까지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로 재직하였고 지금은 명예 교수다. 지은 책으로『현대 기호학과 문화 분석』, 『「신곡」 읽기의 즐거움』, 『움베르토 에코』가 있고, 옮긴 책으로 단테의『신곡』,『향연』, 페트라르카의『칸초니에레』, 아리오스토의『광란의 오를란도』, 타소의『해방된 예루살렘』, 레오파르디의『노래들』, 에코의『논문 잘 쓰는 방법』, 『이야기 속의 독자』, 『일반 기호학 이론』, 『문학 강의』, 칼비노의『우주 만화』, 『교차된 운명의 성』, 파베세의『달과 불』, 『레우코와의 대화』, 『피곤한 노동』, 비토리니의『시칠리아에서의 대화』 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