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은 주인고 '나'의 집에 대한 이야기다. 또한 내가 만나고 사랑했던 남자들의 집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한 집에서만 살았다. 다른 집에서 한 번 살아보는 게 소원일 정도로 그 집에서의 밋밋하고 변화 없는 생활이 싫었다. 그래서였는지 훈을 만나, 그의 종가에 내려갔을 때, 오래된 종가에 매료되기도 했다. 성악을 전공한 훈은 나와 결혼해서 이태리로 유학 가기를 원했지만 할머니는 반대했다. 훈과 다르게 뚜렷한 목적 없이 떠날 수 없었던 난 훈과의 동거를 끝내고 헤어진다. 혼자, 이태리로 떠난 훈은 얼마 되지 않아 사고로 죽는다. 임신한 줄 모르고 있던 나는 사산하고, 결혼해서도 계속 습관성 유산을 해 아이를 낳지 못한다. 그후, 오랜 시간이 지난 다음 다시 가본 훈의 종가는 사람이 살지 않는 폐가가 돼 있었고, 양자로 들어온 훈의 할아버지가 종가와 다른 피를 가진 사실을 알게 되고, 훈과 그의 아버지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서 벗어나기 바랐던 나처럼 게딱지 같은 자기 집에서 벗어나고 싶은 남자와 결혼한다. 어둡고 불결한 그 집에서 그의 어머니는 죽은 듯이 살아가고 있었다. 그의 어머니도 한때, 명문여고까지 나온 예쁜 처녀였으나 한량이었던 아버지를 만나 신경정신과 약을 먹지 않으면 살 수 없을 만큼 피폐해졌다. 그는 그런 어머니를 두고 집을 나와 분가한다는 것에 큰 죄책감을 느꼈다. 그는 아버지를 증오햇따. 나 역시 그처럼 아버지에게 애증을 가지고 있었다. 초등학교 학력으로 임시 공무원이 되고, 평생 말단 공무원으로 보낸 아버지는 자신의 가난과 설움을 자식에게 물려주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섬에서 자란, 도시의 여공이 되는 게 꿈이었던 엄마와 살면서 늘 끊임없이 싸웠다. 부모의 기대와 격려를 받아보지 못한 나는 부모와 다른 삶을 꿈꾼다.
결혼해서 살던 마루가 넓은 집은 겨울에 추웠고, 나는 그 집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을 시작했다. 고등학교 때, 친구의 도움으로 동화의 그림을 그리는 일러스트 일을 하게 된다. 미대를 가고 싶었던 내게 동화를 읽고 거기에 맞는 그림을 그리고, 책으로 나오는 것에 보람을 느끼고 만족했다. 일을 많이 하고 점차 좋은 집으로 옮겨간다. 하지만 새 집에서도 번번이 나는 아이를 유산하고, 남편과는 점점 소원해지게 된다.
새 집에 이사 오면서 나는 일러스트를 그만두었다. 대신 한 달 동안 열심히, 기를 살리는 책대로 집을 꾸몄고, 한때 접어두었던 글쓰기의 욕망에 조금씩 글을 썼다. 그때쯤 선배의 소개로 한 남자를 만나게 된다. 나와 나이가 똑같고 출판사에 다니는 남자였다. 남자에게 내가 쓴 글을 보여주었고, 그 계기로 남자와 가깝게 되고 사랑을 느낀다. 남자 역시 구대 종손이면서, 한때 살았던 종가를 다시 찾아야 한다는, 무거운 짐을 가지고 있었다. 남자는 나를 만나고 돌아가던 날, 면허가 정지되고, 택시기사와 싸워 합의금을 물어 주기도 했다. 또 통풍에 걸려 평생토록 술을 끊어야 한다는 의사의 선고를 받게 된다. 그의 계속된 불운이 내 탓이라고 여겨졌다. 나는 남자와 사랑을 나눌 집도 원했다. 거리에 널려 있는, 천박한 욕망과 떳떳치 못할 사랑을 하고 있다는 기분을 갖게 하는 여관이나 모텔이 아닌 곳을 원했지만 그런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부부 사이의 신뢰를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남편은 다른 사람을 사랑한 나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아직 남편을 사랑하고, 그 남자와는 다른 감정임을 남편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남편과 헤어져 집을 나온 후, 나는 예전에 살던 집을 다시 찾아가 본다. 그 집에 살 때는 그 집에서 벗어나는 게 소원이었는데 가끔, 아무 이유 없이, 그 집에서의 생활들이 선명히 살아날 때가 있었다. 그 동네 그 집은 아직 있었으며, 아직 살고 있는 사람들은 이상하게도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나만 세월 속에서 벅차게 살아온 느낌이 들었다. 남자를 마지막으로 만난 날, 나는 내가 가야 할 집이 어디인지 몰라 거리에서 헤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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