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들어가는 말 = 4
차례 = 9
Ⅰ. 국내 사료(史料)의 빈곤 = 13
Ⅱ. 우리 상고사 이해의 전제조건 = 25
Ⅲ. 우리 조상은 대륙문화의 주역(主役) = 41
1. 중국(中國)이란 말의 유래 = 43
2. 중국의 상고조선에 대한 인식 = 46
3. 전국시대(戰國時代) 이전 숙신(肅愼)의 본거지(本據地)는 섬서성(陝西省) 북부였다 = 63
4. 한혁(韓奕)은 한(韓)의 조상인가? = 81
5. 한원(韓苑)에 기술된 삼한(三韓)은 어디인가 = 93
Ⅳ. 부여(夫餘)ㆍ구려(句麗)ㆍ한(韓)은 언제부터 어디에 있었을까 = 97
1. 부여ㆍ구려ㆍ한(韓)은 BC 11세기 이전의 상은(商殷)시대에도 있었다 = 99
2. 부여의 발상지(發祥地)는 어디였을까? = 107
Ⅴ. 고구려의 발상지(發祥地)의 대한 재고(再考) = 127
1. 구려(句麗)의 발상에 대한 재고 = 129
2. 고구려 발상지에 대한 재고 = 139
3. 옥저(沃沮)와 예(濊)는 어디에 있어야 옳은가? = 147
4. 『신증동국여지승람』의 평안도에 대한 비판 = 158
Ⅵ. 위만조선의 땅에 한사군이 있었는가? = 171
1. 한사군의 한반도 설치ㆍ존속 설 = 175
2. 패수(浿水)를 요하(遼河) 지류의 태자하(太子河)에 비정(比定)하는 설 = 186
3. 패수(浿水)를 난하(난河)에 비정(比定)하는 설 = 200
4. 한사군을 난하(난河) 상류 승덕(承德)지역에 비정하는 설 = 205
5. 상곡(上谷) 이동(以東)의 예맥조신에 한(漢)의 2군이 있었다 = 210
6. 위만조선의 땅에 한사군(漢四郡)은 없었다 = 224
Ⅶ. 대방군(帶方郡)이 있었다면 어디에 있었을까? = 241
1. 대방군(帶方郡)이 황해도 봉산군에 있었다는 설 = 247
2. 한반토에 북ㆍ남 대방군이 있었다는 설 = 252
3. 난하(난河) 동쪽에 낙랑군, 남쪽 하류지역에 대방군이 있었다는 설 = 255
4. 공손연(公孫淵)이 주살된 이후에는 대방군은 어디에 있어야 사리(事理)에 맞는가? = 260
Ⅷ. 부여융(扶餘隆)의 묘지명에 새겨진 백제 = 267
1. 묘지명(墓誌銘) 해설 = 270
2. 백제사의 미스터리 = 319
1) 백제의 시조는 온조(溫祚)인가 비류(沸流)인가?
2) 왕의 품위에 어울리지 않는 무령왕릉의 묘지석(墓誌石)과 묘지(墓誌)
3. 풀기 어려운 백제에 관한 중국 사서(史書)의 기록 = 327
Ⅸ. 신라사(新羅史)의 미스터리 = 331
1. 무슨 이유로 왜(倭)는 신라만을 침범 하였을까? = 333
2. 주산도(舟山島)에 있는 신라초(新羅礁)와 신라번(新羅藩)의 신라상인에 관하여 = 349
3. 영일군과 울진군의 고비(古碑)에 새겨진 신라 = 354
4. 신라의 연원은 흑해(黑海)에서 찾아야 하는가? = 355
5. 김씨(金氏) 신라 왕실은 흉노의 후예(後裔)인가 = 357
6. 『삼국유사』에 기록된 경주의 호수(戶數)로 본 신라 = 358
7. 통일신라시대의 왕릉(王陵)이 중국대륙에 있다? = 359
Ⅹ. 한신(韓神)을 봉사(奉祀)하는 일본 왕실 = 363
1. 사람이 이동하면 언어도 그 이동한 고장의 말에 섞여 전해지게 마련이다 = 365
2. 일본열도의 초기 지배층은 변진(弁辰)의 왕족이었다 = 384
3. 가야ㆍ신라ㆍ백제ㆍ고구려 사람들이 일본에 도래하여 개척한 발자취를 추적(追跡)해 본다 = 396
1) 일본열도의 인구 급증이 의미하는 것 = 396
2) 신국(神宮)ㆍ신사(神社)의 본향(本鄕) = 401
3) 삼ㆍ삼국 사람이 남긴 지명과 문물(文物)
4. 왜(倭)의 실체(實體) = 419
5. 일본은 왜국(倭國)이 아니다 = 486
XI. 가야족(伽倻族)은 남방(南方) 몽골로이드인가? = 437